꿈에도 소원은
<2차 송환>
차한비 / Choice / 2022-10-01

해방 10년 후 태어난 김동원 감독에게 한국전쟁은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부모는 평안북도 강계 출신, 어릴 적 거실엔 인풍루 정경을 담은 그림이 걸려 있었다. 물론 한반도에 38선이 그어지고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들어선 것도,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전쟁이 휴전 협정을 맺기까지 3년이 걸린 것도 감독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벌어진 일이다. 다만 부모와 친척이 오래 간직해온 비밀, 국가보안법 존폐를 둘러싸고 지난하게 거듭되는 소란, 우연으로 시작해 어느덧 떼어낼 수 없는 인연으로 삶에 자리 잡은 관계는 그에게 끈질기게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자산일까, 족쇄일까. 창작 욕구를 불어넣는 동력인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을 하염없이 늘려버린 애물단지인지 딱 잘라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감독은 카메라를 가운데 놓고서 사람과 이야기 안팎을 습관처럼 오갔다.

1992년, 김동원 감독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송경용 신부와 함께 김석형, 조창손 씨를 만났다. 둘은 1960년대에 남파됐다가 30년간 감옥살이했던 비전향 장기수로, 당시만 해도 감독에겐 생경한 존재였다. 그들과 10년을 함께한 다음, 감독은 <송환>(2003)을 완성했다. 소문처럼 퍼지고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던 ‘송환’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급물살을 탔고, 2000년 6·15 공동선언을 계기로 현실이 됐다. 당시 감독은 눈물로 재회를 약속하며, 판문점에서 이별을 치렀다. 그로부터 20년. 긴 시간을 통과한 끝에 나온 <2차 송환>(2022)은 전작 <송환>에서 도착한 엔딩을 출발지로 삼는다. 시기는 맞물리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1차 송환 이후,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걷는다. 2002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 칭했고, 이에 따라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몰고 온 열기와 통일에 초점을 맞춘 여러 담론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춘다.

<2차 송환>
<2차 송환>

실현하지 못한 미래 앞에서 만일이라는 가정은 쓸데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독은 과거를 곱씹는다. “순진한 희망”을 폐기하는 동안, 상황만 잘 풀렸다면 진작 갈무리하고 털어냈을 영화는 영화가 되지 못한 채 그의 곁을 서성댔다. 2차 송환은 무기한 중단됐고, <송환>을 연출할 때부터 소망했던 방북은 해를 거듭할수록 가능성을 잃어 갔다. 부시가 취임하지 않았다면? 송환 대상자를 전향 여부로 구분하지 않았다면? 남과 북이 좀 더 긴밀하게 대화에 나섰다면? 꼬리를 물듯 이어지는 질문들은 그에게 착잡함을 안겼지만, 다가오지 않은 미래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서 벗어나 결국 현재를 직시하도록 이끌었다. 감독은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영화를 열고, 2차 송환 대상자 46명의 명단을 보여주며 영화를 닫는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름이 뒤얽힌 목록에서 이제 생존자는 단 9명뿐이다. <2차 송환>은 낙관할 여지가 거의 없음을 인정하고, 사실에 집중한다. 전쟁은 종식되지 않았으며, 그러한 현실에서 오래도록 고통을 겪는 이가 여전히 그의 곁에 존재한다.

2000년부터 오늘날까지 인물의 행적과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변화를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는 구성은 필연적이다. 2차 송환은 이뤄지지 않은 사건이기에 이를 중심으로 기승전결을 갖추기란 어렵고, 비전향 장기수를 향한 관심은 눈에 띄게 줄어드는 중이다. 영화는 절망과 소외가 수시로 들이닥친 20년 세월을 대통령 임기 5년 단위로 구분한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남북 정세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이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염원하는 이들의 상황은 극과 극을 오간다. 개인의 노력이나 욕망이 아니라, 정부와 사회라는 거대한 집단이 그들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셈이다. 기대는 무너지고, 예상은 어긋난다. 무력감을 상상하기는 쉬운데, 그들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티고 무엇으로 채워냈는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이때 <2차 송환>은 이상한 노인을 중앙에 데려다 놓는다. 언젠가 한 번쯤 거리에서 스쳐 지나간 듯한, 눈이 마주치면 다짜고짜 말을 붙일 것 같아서 뒷모습만 훔쳐봤던 이의 얼굴이다.

<2차 송환>
<2차 송환>

이름은 김영식, 1962년 남파하여 27년간 복역했다. 잔혹한 고문을 견디지 못해 감옥에서 전향서를 썼고, 1988년 출소 후 ‘폭력에 의한 전향 무효 선언’에 나섰다. 옷을 사 입는 일이 없는 그는 늘 비슷한 차림으로 지하철을 탄다. ‘국가보안법 철폐’라고 적힌 어깨띠를 두른 채, 승객들이 흘깃거리거나 말거나 “우리 모두 단군의 자손이니 화목하게 살자” 청한다. 대뜸 통일부로 달려가서는 “여기 통일 반대부 아니냐” 호통치기도 한다. 그에게 미국은 철천지원수이며, 한국은 이해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문제 많은 나라다. 동시에 그는 장기수들이 모여 사는 집 마당에서 과실수를 정성껏 기르고, 주름진 손가락으로 간이 피아노 건반을 눌러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연주한다. 함께 지내는 이는 물론, 사상이 다르다고 표현할법한 이 또한 선생이자 이웃으로 여기며 살뜰히 챙긴다. 영화는 퍼즐 맞추듯 김영식의 조각들을 비춘다. 크게 실망하고 크게 기뻐하는 표정을 담으며, 감독은 부럽다고 말한다. “적당히 사는 사람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순박함”을 지녀서다. 영화는 그 얼굴과 목소리를 줄기 삼아, 역사로 남은 이들의 생애를 고집스레 기록한다.

김영식을 중심으로 비전향 장기수들과 송환 운동의 전개 과정을 담지만, <2차 송환>은 인물에게 의존하는 영화는 아니다. ‘김영식은 누구인가?’에 나름대로 답한 후, 감독은 차츰 질문 대상을 자신으로 전환한다. 나는 왜 김영식을 이토록 오랫동안 지켜보는지, 이 영화가 어떻게 내 영화가 될 수 있는지 고민한다. 이는 결국 ‘<2차 송환>을 만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낳는다. 감독은 <송환>에서 들려주지 않은 가족사를 털어놓는다. 한국전쟁 당시 ‘켈로부대’ 소속으로 일했던 아버지에 관해 말하고, 어머니가 북한에 자식을 두고 월남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한편, 감독은 영화 제작 기간 내내 장벽에 부딪혔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본래 연출을 맡은 공은주 감독이 중간에 작업을 관두는가 하면, 아무리 기다려도 북한에 방문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외국 제작사와의 협업이 무산되고 나서, 감독은 “평소 신념을 배반”하며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을 신청한다.

<2차 송환>
<2차 송환>

그렇게 김영식과 김동원은 한 영화에 있다. 둘은 겹치지 않는다. 김영식의 피로와 분노는 김영식의 것이고, 김동원의 불안과 아쉬움은 김동원의 것이다. 두 개의 목소리는 수신과 발신으로 역할을 나누지 않으며, 거리를 유지한 채 교차한다. 닮은 구석이나 끈끈한 연결을 강조하는 대신, 영화는 이따금 그들이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들은 선거 개표 방송을 함께 보면서 후보의 당락을 점치고, 향후 맞닥뜨릴 변화를 짐작한다.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고,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그런 장면들은 영화가 차마 보여줄 수 없거나, 영화에는 끝내 담지 못할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김영식이 암담한 현실에 주저앉았다면, 김동원은 <2차 송환>을 완성하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영식은 종잡을 수 없는 기인도 ‘위험 분자’도 아니라, “마음에 안 드는 게 너무도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래서 세상에 끊임없이 말을 거는 사람이다. 그의 간절함과 지구력이 김동원에게 영향을 미친다. 감독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지만 멈출 수 없다”는 말로 영화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는 언제 필지 모르는 꽃을 기다리며 매일 나무에 물을 주는 마음이고, 눈앞에 실패가 뻔히 보여도 도전하는 자세다. <2차 송환>은 다시 한번 미래에 이야기할 몫을 남겨둔다. 그때까지 김영식도, 김동원도 각자 할 일을 계속해나갈 뿐이다.

 

2차 송환 The 2nd Repatriation 감독 김동원 출연 김영식 제작 푸른영상 배급 시네마달 제작연도 2022년 상영시간 156분 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22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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