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길, 피어난 꽃
<녹턴> 정관조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2-08-25

외국의 어느 연주회장, 은성호라고 소개받은 한 클라리넷 연주자가 무대에 선다. 악보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는지 연주가 잠시 지연되는 사이, 누군가 급히 뛰어 들어와 연주자 앞에 악보를 놓아준다. 곧 시작할 거라며 객석에 양해를 구하던 사회자의 한마디, “아, 이미 시작됐군요.” <녹턴>은 자각하지도 못한 사이 출발해버린 운명의 협주곡에 관한 영화다. 여기엔 엄마와 두 아들의 이야기가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인 은성호는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가다. “2004년 5월 16일이 생각났어요.” 하고 말할 정도로 정확한 기억력을 가졌으나, 타인과 대화가 어렵고 혼자 생활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어머니 손민서는 성호 씨가 어렸을 때부터 음악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느라 온갖 고생을 했다. 모든 게 뒷전이었다.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는 둘째 아들까지도. “차라리 형이랑 역할을 바꾸고 싶어요.” 엄마가 형만 돌보고 챙기는 게 못내 서운해서 입을 비죽 내미는 소년 은건기는 음악가의 길을 걷지 못하고 자꾸 집 밖을 떠돌았다. <녹턴>은 두 아이의 얼굴이 아직 말간 2008년부터 가족의 10년 넘는 세월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다. 굵직한 사건과 소소한 일상이 두루 담겼지만, 어쩔 도리 없이 기쁨보다 슬픔이 더 짙어지는 순간이 곳곳에 있다. 다만 그들을 감싸는 음악만큼 그들의 눈도 종종 아름답게 빛난다. ‘내가 죽으면 내 역할을 누가 하나’ 걱정하는 엄마는 자꾸 건기 씨를 바라보는데, 그의 손에는 아직 악보가 들려있지 않다. 오래도록 가족의 곁을 지킨 정관조 감독은 이들에게서 어떤 음악을 들었을까. 2019년에 완성한 영화로 드디어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게 된 감독에게 그 곡조에 관해 물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개봉했다. 주인공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별 건 없었다. 수원에 계신 성호 어머니가 성호와 함께 여러 일정에 참석하느라 장거리를 오가고 계셔서 신경이 좀 쓰인다. 성호는 계속 연습하고 연주해야 하는데, 괜히 시간을 빼앗는 게 아닌가 싶어서. 건기는 해외에 나갔다가 일이 잘되어 기분 좋게 귀국했다. 덕분에 시사회에도 참석해줬지. (웃음)

 

가족이 나란히 사진을 찍었더라.

오래 꿈꾼 광경이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셋이 다 같이 앞에 나가서 인사하고 박수받는 거 말이다. 가족이 상당히 오랫동안 어려운 시기를 겪었잖나. 그 광경이 실현된다는 건 상황이 좋아졌다는 뜻일 테니까, 감격스럽고 기뻤다.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최고상을 수상한 뒤, ‘지나온 길에 핀 꽃을 잊지 않으리’라는 제목으로 직접 연주회를 기획했다. 피아니스트 은성호와 바이올리니스트 한지연의 협연으로 꾸려진 연주회였는데, 어땠나.

작년 4월의 일이다. 좀 힘든 시기였다. 나도 수입이 없었고, 성호도 놀고 있었는데, 뭐라도 해보고 싶더라. 성호는 뭔가 할 게 있으면 또 잘하거든. 한지연 선생님은 그 전에 다른 프로젝트로 만났다.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씀드리며 우리 영화를 보여드렸는데, 감명 깊게 봤다며 참여 의사를 밝혀주셨다. 여러 가지 준비할 것도 많고 기존에 해봤던 일이 아니기도 해서 힘들었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연주회를 준비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듀엣으로 기획했다. 성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또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메인 곡이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였는데, 피아노가 반주 역할을 하며 바이올린을 도와줘야 하는 구성이다. 그러려면 참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상대를 살필 줄도 알아야 한다. 성호가 그걸 너무 잘했지. 기분 좋았다. 한지연 선생님은 줄리아드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석사를 마친 정상급 커리어의 프로 연주자다. 그런데 성호한테 많이 배웠다고 하시더라. 성호에게는 그만의 음악이 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해주시니 나도 기뻤고, 성호도 연주회를 좋아했다.

<녹턴>
<녹턴>

가족의 모습을 2008년부터 담았다. 어떻게 시작된 만남인가.

방송국에서 휴먼다큐를 만들고 있을 때, 아이템을 찾다가 성호와 가족을 알게 됐다. 호기심이 생겼다. 성호가 패턴에 집착하는데, <레인 맨>(배리 레빈슨, 1988)이나 <뷰티풀 마인드>(론 하워드, 2001)가 생각나더라. 당시 30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송을 내보냈고,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한 편을 더 했다. 그러면서 성호네랑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난 계속 성호가 궁금했고, 건기가 투정 부리는 것도 재밌더라. 엄마가 성호한테 쏟는 마음의 깊이도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 이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깨끗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호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기도 했다. 내가 아마 성호 음악의 지구 1등 팬일 거다. (웃음) 그러다 2013년도부터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며 기획을 시작했다.

 

영화로 완성하고 싶었던 계기가 있나.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짓지 않고, 5년이든 10년이든 기다려서 삶의 변화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를 해보고 싶었다. 방송 다큐멘터리 환경이 참 어렵다. 공정한 가격이 매겨지지 않고, 저작권도 해결이 잘 안된다. 여건상 호흡이 짧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 한동안 돌파구를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방송만 25년 했는데, 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더라. 해볼 만큼 했는데도 계속 벽에 부딪혔다. 물론 방송 다큐멘터리 따로 있고, 다큐멘터리 영화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방송 다큐멘터리에도 고유하게 추구하는 바가 있고, 충분히 가치 있는 작품도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긴 호흡으로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제대로 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 것을 쏟아 부어서라도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녹턴>은 2017년 SBS 스페셜로 방영된 2부작 다큐멘터리 ‘서번트 성호를 부탁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작품이기도 한데.

자금을 마련하는데 점차 한계가 왔고, 방송 기반 펀드로 제작비를 충당했다. 그러니 SBS 스페셜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일부가 공개된 거라고 봐주면 좋겠다. 외국에는 이렇게 제작하는 경우가 꽤 있다. 제작 기간이 최소 5, 6년이라 영화 쪽 펀드로는 한계가 있어서 중간중간 방송에 소스를 제공하면서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제작 방식의 차이다.

 

촬영자가 상황에 개입하는 일은 없지만, 사소한 대사와 제스처에서 주인공들이 감독을 무척 편하게 여긴다는 게 느껴진다. 형제들에게는 믿음직한 큰형 같고, 어머니에게는 답답한 속을 조금이나마 터놓을 수 있는 동생 같다. 인물과의 관계는 어떻게 두터워졌나.

관계를 만들고 싶다고 만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방법은 따로 없었다. 그저 속이거나 믿음을 저버리지 말자는 나의 가장 큰 원칙을 고수했고,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했다. 우리는 많이 들어야 하잖나. 그래야 인터뷰도 잘하고, 쓸 수 있는 게 많아지니까. (웃음)

정관조 ⓒ이영진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이들에게 무엇을 봤는지.

성호네 가족이 존엄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한다. 가진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 지위도 낮지만 인간적 존엄을 지닌 분들이다. 어머니가 성호를 데리고 다니면, 대놓고 멸시하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성호네 가족은 최선을 다해 삶을 산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건기도 마찬가지고. 성호 엄마는 그런 힘겨운 상황에서도 사람들에게 따뜻했다. 조연출과 함께 촬영하러 가면, 항상 조연출을 먼저 챙겼다. 반찬 하나 더 주고, 귤이 두 개 있으면 귤 하나를 나눠주는 주는 그런 분이다. 성호네 가족은 우리가 뭘 가졌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성호도 주어진 걸 끝까지 해낸다. 그런 분들과 함께 촬영하고 생활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

 

건기 씨와 가족의 관계가 영화에 또 하나의 깊이를 만든다. 형을 챙기는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끝까지 이 여정의 동행인으로 남는다.

처음부터 건기를 보면 짠했다. 구석에서 혼자 밥 먹는 아이 같다고 할까? 항상 챙겨주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건기가 말을 험하게 하거나 좀 잘못할 때면 어른 된 입장에서 그러지 말라고 해야 할 것 같았고, 하지만 그러면 또 개입하는 게 되니까 어렵더라. 한바탕 하고 나면 나는 엄마 한 번 달래드리고, 건기한테 가서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되겠니” 하며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건기는 가족 안에서도 늘 가족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알아서 살겠다며 집을 나갔다가도 엄마 밥 먹겠다고 쫄래쫄래 다시 들어오곤 했다. 건기는 엄마를 엄청나게 사랑한다. 그런데 워낙 엇나가니까 언젠가부터 엄마도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더라. 건기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 나만 알고 있었지. 그 덕에 작품이 잘 됐다고 생각한다. 자기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건기가 알았던 것 같다.

 

오랜 기간 촬영하며 예상했던 방향이나 출구가 있었나. 어떤 영화가 될 거라고 예감했는지.

성호를 밝히고 성호를 아는 게 목표고 꿈이었다. 백 퍼센트 실패했지. 하나도 알 수가 없더라.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걸 알았다는 게 소득이다. 성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왜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수많은 단어를 띄워놓는지 너무 알고 싶었다. 논문도 찾아보고 자폐 관련 서적을 읽어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 실마리가 풀려야 다음 것들이 풀리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안 되니까 넋 놓고 있었다. 그런데 넋 놓고 찍은 그 세월, 함께 한 시간이 영화가 됐다.

 

소득이라고 표현한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상황을 알려주는 자막이나 내레이션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선택이 그와 관련되는 걸로 보인다. 자칫하면 눈앞의 장면을 어떻게 봐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까.

맞다. 그건 올바른 길이 아니지. 내가 생각하는 걸 말하면 주의가 그쪽으로 쏠리게 되고, 편견이 작용하게 되니까. 애초에 내가 가고 싶은 길로 못 갔잖나. 그러니까 “이게 이거다”라고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수밖에. 내가 다 알기 전에는 알았다고 하지 말자는 원칙이 있다. 휴먼다큐를 오래 하다 보니까 장애에 친숙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대오각성을 한 적이 있다. 2006년도쯤에 뇌 병변이 심한 친구를 만났다. 잘 걷지 못하고, 그 친구의 말을 알아듣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나를 좀 좋아했다. 그래서 나한테 뭐라고 말을 하면, 난 못 알아듣는데도 “어 그래 알았어.” 하곤 했다. 그랬더니 엄청나게 화를 내더라. 옆에 계신 선생님께 물었더니, “피디님, 방금 못 알아들었는데 알아들은 척했잖아요.”라고 하셨다.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나. 그 친구한테 배운 거다. 함부로 안다고 하지 않기.

<녹턴>
<녹턴>

한편, 성호 씨의 재능이나 소질,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최소화돼있다는 점도 <녹턴>이 설명적이지 않은 영화로 느껴지는 데 한몫한다. 어떤 것을 염두에 뒀나.

알 수 없기 때문에 판단을 할 수 없었다는 큰 전제 때문이다. 나도 성호에 대해 많이 물어보고 다녔다. 이만큼 하는 건 어느 정도의 실력이냐고. 초등학교 4, 5학년 정도라고 얘기하시는 분도 있었다. 그런데 러시아에 갔을 때 만난 악장 선생님은 성호가 모차르트를 칠 때 너무 황홀했다고 하시더라. 어떻게 모차르트를 이렇게까지 모차르트처럼 칠 수가 있냐고. 하지만 또 음악 하시는 분들이 보면 엉망진창인 부분도 있다.

 

자기 세계가 있어서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성호는 음악의 기초가 안 돼 있고, 핑거링이 제대로 안 된다. 내가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추측한 바는 이렇다. 성호 같은 기질을 가진 친구들은 자기만의 방대한 매트릭스가 있다. 성호에게는 음의 체계, 시스템이 있는데, 그것과 현실을 맞춰보고 정확히 맞아떨어질 때 희열을 느끼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성호는 절대음감이고, 화성학을 배운 적 없는데도 본능적으로 화성과 대위법 같은 걸 정확하고 완벽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기능적인 면이 떨어진다. 손가락이 못 따라가거든. 빼먹고 안 치는 음이 있는 거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어떤 걸 빼놓을지까지도 다 계산하는 것 같다. 박자도 굉장히 정확하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은 연주에 감정이 없다는 건데, 그래서 듣고 있으면 마음이 굉장히 편하다. 연주자의 감정을 읽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작곡가의 의도마저도 알 필요가 없다. 음만 들으면 되니까. 오르골이나 기계 소리를 들을 때처럼, 인간의 의도가 결합되지 않는 음악처럼 들린다. 난 그게 정말 좋다.

 

어쩌면 그것이 음악의 본질에 가까운 태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일종의 물리적 접근이잖나.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성호가 하는 음악은 고전 음악이기 때문에, 이미 확고한 서양의 음 체계가 있지. 또 서양 음악은 노래나 춤곡에서 나온 것들이 많아서 곡에 전개가 있다. 쇼팽의 녹턴도 마찬가지고. 성호는 그런 부분에 약하다. 노래하는 걸 들어보면, AI도 그런 AI가 없다. (웃음)

 

감독이 성호 씨 음악의 그런 지점을 좋아하고 집중한 덕일까, <녹턴>은 ‘능력 있는 장애인’이나 ‘천부적 기질’이 주가 되는 서사와 멀다. 연습을 제대로 안 해서 꾸중을 듣는 장면도 있잖나. 사회적 기준과 체계 밖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진다.

맞다. 나 역시 기계적 태도를 취하려고 애썼다. 말하자면 과학적 태도랄까. ‘이 강낭콩이 어제보다 0.2mm 자랐다’ 식의 태도다. 편견을 제거하는 일은 마냥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습관으로 만들지 않으면 편견이 계속 끼어든다. 그러면 결국 본질이 훼손된다. 내가 아예 편견 없이 만들었다는 게 아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썼다는 거다.

정관조 ⓒ이영진

성호 씨는 녹턴처럼 전개가 있는 곡에 약하다고 했는데, 흥미롭게도 영화 제목은 ‘녹턴’이다. 어머니는 성호 씨보다 건기 씨의 녹턴 연주가 더 마음을 울린다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녹턴은 엄마의 화두다. 이 어두운 세상, 절망적인 상황을 넘어갈 수 있는 빛이다. 그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살아갈 힘이 생기는 거다. 엄마한테는 자기 삶이 녹턴 아닐까. 슬프지만 아름다운…. 엄마의 삶은 성호를 음악하게 하는 것 단 하나로만 이뤄져 있다. 엄마가 자기 제삿날에 건기에게 녹턴을 연주해달라고 하잖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성호가 계속 음악을 하는 거라고, 건기가 본인 말을 잊지 않고 있다고, 엄마가 생각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건기에게 들려달라고 했을 거다.

 

건기 씨와 어머니가 갈등하는 장면에서 카메라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도 튀어나온다. 개입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카메라가 촉발하는 것들이 있다는 지점을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대상과의 거리 설정 등에 관한 원칙이 있다면.

가까이 가면 갈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카메라를 CCTV처럼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촬영을 싫어한다. 그건 도촬이지. 촬영 당하는 사람이 촬영하는 사람의 존재를 항상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원칙이 있다면 사람 눈높이에서 찍자는 거다. 내가 찍은 장면들은 눈높이에서 15도 이상 벗어나지 않는다. 인물이 카메라를 사람으로, 같이 있는 친구로 알아야 한다. 그게 휴먼다큐를 오래 하면서 터득한 기술이다. 성호네를 촬영할 때는 가서 엄마가 밥 주면 먹고 촬영하고, 엄마랑 얘기하다가 집에 오는 게 일상이었다. 엄마가 나를 너무 편하게 대해주었다. 건기는 그날 집에 오기 전부터 기분이 안 좋았다. 아마 모든 게 거슬렸을 거다. 카메라가 어떤 상황을 촉발했다기보다는 그저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고 본다.

 

후반부 형제의 러시아행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엄마 없는 여정이라 조마조마했는데, 형제는 생각보다 좋은 파트너가 되어 여행하며 연주회를 준비한다. 어떤 마음으로 동행했나.

일단은 연주회 잘 마치고 돌아오는 게 목표였으니 굳이 다른 걸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실 보호자 입장으로 간 거라 힘들었다. 엄마가 없으니 내가 애들을 돌봐야 했다. 둘이 만날 싸우는데, 또 그걸 방치할 수는 없잖나. (웃음) 거기다 촬영까지 혼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빠듯한 형편에 촬영감독을 데려갔다. 가서는 둘이서 어떤 호흡을 보여줄지 주목하면서, <레인 맨>을 많이 떠올렸다. 러시아에서는 대부분이 연주회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는데, 그 중간에 보석 같은 순간들이 있더라. 그런 걸 잘 챙기려고 했다.

 

연주회 말미에 마치 선물처럼 형제가 연주하는 무대가 마련된다.

그때는 또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둘이 같이 연주하는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찍힌 걸 봤을 땐 상당히 감격스러웠다. 뭉클하더라. 내가 느낀 감정을 관객들도 비슷하게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녹턴>
<녹턴>

오랜 촬영 끝에 영화를 마무리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

솔직히 말하면, 더는 끌고 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삶은 그냥 연속선상에 있고, 스토리는 그렇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이 10년 살아서 무슨 변화가 있겠나. 강산은 변하겠지만, 사람은 잘 안 변한다. 그래서 10년 정도 찍고는 이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방법이 없었다. 다만 각박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냉철한 다큐멘터리가 되면 출연자도, 감독도, 관객도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2017년에 방송 나갔을 때 악플이 많이 달렸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대사들과 무척 비슷했다. ‘내 삶도 각박한데, 왜 장애인한테만 기회를 주나’ 하는 거다. 어쨌든 끝낼 고민을 하던 차에 러시아 공연이라는 기회가 생겼다. 건기가 여행 가이드 일을 하며 외국에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까, 공연하시는 분을 만나서 초청받게 된 거다. 그런데 러시아 공연이 끝나고도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그러다 건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전에도 건기는 자기가 돌아온 탕아라고 했거든. 그래서 시간을 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예르미타시 박물관에 가서 ‘돌아온 탕아’를 봤다. 렘브란트의 엄청난 대작이다.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아들의 발바닥을 보는데, 안도감이 들었다. 그 큰 그림 앞에 서니까 구원받은 느낌이었다. 끝낼 수 있겠더라. 너무 추상적인가? (웃음)

 

성호 씨 어머니는 영화 보시고 뭐라고 하시던가.

볼 때마다 감상이 달라진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틀었을 땐 주변 환경이 시끄러웠던지, “영화가 어수선해” 하시더라. 두 번째 보시고는 “형님, 영화가 참 아름답네.” 하셨다.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시거든. (웃음) 나도 영화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들어서가 아니다. 거기 담긴 삶의 궤적이 아름답다.

 

어느 기사에서 보니, 감독은 ‘지나온 길에 핀 꽃을 잊지 않으리’에서 연주된 모차르트의 E단조 소나타를 무척 좋아한다고. 이유를 들려줄 수 있나.

모차르트의 엄마가 파리에서 돌아가셨는데, 그 이후에 작곡된 곡이다. 항간에는 엄마를 위해 바치는 곡이라는 얘기도 있다. 되게 단순한데, 슬프고 엄청 아름다운 곡이다. 궁극의 아름다움은 그런 단순함에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영화 제목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고 싶다. 처음엔 제목으로 쓸 생각이 없었다. 인류의 걸작 중 하나 아닌가. 난 음악 전공자도 아닌데,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2019년 봄에 폴란드에 갈 일이 있었다. 가서 쇼팽의 자취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쇼팽의 심장이 있는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성당에 갔는데, 녹턴이 딱 떠오르더라. 엄마가 녹턴을 원하지 않느냐, 하는 마음이었지. 그래서 속으로 쇼팽에게 허락을 구했다. 제목으로 쓸 테니 용서하십시오. (웃음) 참 묘했다. 촬영하고, 영화를 끝내고, 제목을 결정하는 것까지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엄마가 그랬듯이, 나도 위대한 예술가들의 정신에 기댔다.

 

인간을 찍고 관찰하는 작업을 계속해오면서 어떤 것을 느끼나.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게 내 다큐 작업의 목표다. 사는 게 어렵고, 도대체 왜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지만, 긴 세월 안에서 보면 그게 다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녹턴>에서 그게 잘 드러나서 다행이고, 계속해서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연주회 제목도 ‘지나온 곳에 핀 꽃을 잊지 않으리’로 지었다. 엄마의 삶이 그렇거든. 난 그게 너무 아름다운데, 본인은 잘 못 느낀다. 영화로 만들어서 긴 시간을 차분히 볼 수 있다면, 그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던 건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엄마가 그걸 느꼈다고 하신 게 가장 기쁘다. 지나온 삶이 절망에 가득 찬 것처럼 보여도, 충분히 사는 의미가 있다. 엄마의 삶은 성호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했고, 10년이 고됐다고 말하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돌아보면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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