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시절이 언제였는지 모르게, 문득 누추해지는 삶이 있다. 어제와 같은 얼굴로 오늘도 밥을 먹고 잠이 들지만, 굳이 말하지 않을 뿐 깨달은 지 이미 오래다. 기회는 영영 지나가 버렸고, 영광은 문 앞에도 찾아온 적이 없다. 언젠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기를, 더 커다란 세계에서 살기를 꿈꿨던 아버지(이태훈)는 결국 같은 자리에서 수십 년을 보냈다. 제집조차 지킬 여력이 없는 그는 새벽마다 경비복을 입고 남들이 사는 집을 지키러 나간다. 어머니(김민경)는 조금씩 주저앉는 삶을 애써 붙잡는다. 단숨에 와르르 무너지지 않도록 집안을 쓸고 닦고, 누구 하나라도 허기에 휩쓸릴까 싶어 쉼 없이 식구들 배를 채운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원형(강길우)은 그저 입을 다문다. 원망하기엔 어느새 많이 닮아버렸다. 쓸쓸한 마음을 챙기고 보듬기엔 제 몫의 무게가 버겁다.
<초록밤>은 멀리서 그들 가족을 바라본다. 녹음이 짙어 가는 계절, 세 사람은 거듭 죽음을 경험하고 며칠간 어디론가 떠나기도 한다. 그들은 삶과 죽음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만큼 작아 보이지만, 주어진 자리를 끝내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현실을 감당한다. 그들은 초라해 보일지언정 미움을 사진 않는다. 무기력과 열패감만큼이나 어떻게든 버티려는 안간힘이 느껴져서다. 집안에는 눈을 번뜩이는 호랑이 그림과 ‘참는 마음’이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가구와 가전제품 대부분을 20년은 족히 쓴 듯한 그곳에서 유일하게 새것처럼 보이는 물건은 ‘치매 예방 운동법’ 포스터다. 몸과 마음에서 사그라드는 생기를 대신 채우듯 화분에서는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난다. 그렇게 <초록밤>은 낮과 밤의 초록을 오가며, 구저분하지만 애틋한 풍경을 비춘다. 영화가 말해주지 않는 영화 밖 이야기까지 무사히 전달해낸 비결이 궁금해서 추경엽 촬영감독과 신우정 미술감독에게 대화를 청했다. 윤서진 감독과 함께 둘은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을까. 흐르는 시간과 쌓아 온 시간을 모두 그려내고자 어떤 일을 했을까.
이번 작품을 어떻게 시작했는지부터 듣고 싶다. 윤서진 감독이 처음부터 촬영과 조명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이를 찾던 상황인가.
추경엽_ 그건 아니고, 처음에는 CGK(촬영감독조합)를 통해 연락받았다. 윤 감독이 메일을 보냈는데, 글에 특유의 정중함이 가득 묻어났다. (웃음) 감독님은 한국에서 영화를 처음 찍다 보니, 내심 ‘이게 될까?’ 생각하는 부분이 좀 있던 것 같다. 일단 만나서 대화를 나눴고, 그 자리에서 작업 영역과 방식을 결정했다. 내가 촬영과 조명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 자연스레 얘기가 나왔다.
그럼 윤 감독에게 먼저 제안한 건가.
추경엽_ 맞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조스 웨던, 2015)를 한국에서 찍을 때, 촬영팀에 계셨던 황기석 촬영감독님 덕분에 현장을 며칠 경험했다. 황 감독님은 <친구>(곽경택, 2001) <형사>(이명세, 2005)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임순례, 2007) <암수살인>(김태균, 2017) 등 여러 작품에 참여하신 분인데, 촬영과 조명 둘 다 하신다. 당시 현장에서 굉장히 감명받았다. 비싸고 큰 장비에 놀란 것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으로 조성해놓은 환경에 감탄했다. 일하는 사람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구조. (웃음) 그 후 ASC(미국영화감독협회)가 주최하는 마스터 클래스에 들어가면서 한 달 정도 미국에서 체류했다. 그때 나와 성향이 맞는 분을 강사로 만나면서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촬영과 조명을 동시에 컨트롤 하겠다는?
추경엽_ 내가 욕심이 좀 많다. 어쨌든 내가 상상한 이미지를 극장에서 보려면, 촬영과 조명을 포함해서 색보정까지 관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라라랜드>(2016, 데이미언 셔젤)가 한창 인기였다. 촬영감독이 색보정 기사와 함께 다니면서 상영 컨디션을 체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 필름이 아닌 디지털 시네마에서는 촬영감독이 이렇게 일하는구나.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내 작업에도 적용했고, 그때부터 김정호 색보정 기사와 쭉 손발을 맞춰 왔다. 영화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드라마도 함께했다.


안 그래도 윤 감독이 색보정실에 두 번만 갔다는 얘기를 들려주더라. “중간에 가서 피드백하고, 최종 확인한 다음 끝.”
추경엽_ 우리가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편이지. (웃음)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우선’이라고 여기며 어떤 의견이든 들으려고 했다. 근데 잘 모르겠더라. 누구와도 싸우지 않고 작업을 마치기는 했지만, 결과를 보니 아쉬웠다. 노력하고 기대한 만큼 영화가 안 나온 느낌. 그렇다고 내가 무작정 고집을 피워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그때부터 촬영 계획 PPT를 만들기 시작했다. 구성원이 얼마나 원활하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니까. 각 분야의 전문 인력이 모여서 협약을 맺는 상업영화 시스템과 달리, 독립영화에서는 여건상 그와 동일한 조건을 고수하기가 어렵다. 대신 작품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창작자를 중시하며, 시나리오에 관해 충분히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이다. 감독님들을 만날 때마다 꼭 얘기한다. 나를 촬영감독이 아니라, 그냥 영화를 좋아하는 팬 혹은 동료 영화인으로 여겨달라고.
그게 더 괴로울 수도 있겠는데? (웃음)
추경엽_ 초반에는 다들 어색하겠지. 처음 만난 자리에서 갑자기 PPT를 발표하고. (웃음) 물론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감독님이지만, 글을 영상화하는 몫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나. 텍스트를 영상으로 옮길 때는 여러 차이가 발생한다. 시간의 길이와 흐름도, 그를 표현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전체 스태프가 모인 자리에서 작업 방향을 설명하는 일이 중요하다. 감독님한테도 양해를 구한다. 촬영 감독으로서 괴롭히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월권이라고 받아들이지 말아 달라. 일전에 <나와 봄날의 약속>(백승빈, 2018)으로 로테르담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때, 아이디 카드를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director, producer, cinematographer 등 직책을 표기하는 대신, 전부 filmmaker라고 기재했더라. 어떤 위계나 격차 없이, 우리 모두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그곳에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대다수가 어색하게 느끼는데, 난 그런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본다.
신우정 감독은 첫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나.
신우정_ 그때 윤 감독이 나한테도 발표 자료를 준비해오라고 하더라. (웃음) 감독과 색감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결과적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애초 감독은 한국적이고 키치한 색을 쓰고 싶어 했다. 촌스럽기까지 한, 재래시장에서 마주할 법한 컬러풀한 이미지를 중심으로 미술 계획을 세웠다.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여러 장면이 떠오른다. 집안을 빽빽하게 채운 장식품이라든지, 가족들이 부의금을 세는 여관방 한쪽에 켜켜이 쌓인 누빔 이불처럼 눈길을 끄는 소품이 많다.
추경엽_ 거실에 걸린 호랑이 그림 액자도.
신우정_ 맞다, 얘기해준 것들 모두 같은 맥락이다. 원형의 집에는 전사가 있다. 그들 가족은 언젠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리라는 희망을 품고 살다가, 결국 수십 년 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한 상황이다. 자연스레 집에는 새로 사들인 가구나 물건이 없다. ‘나중에 이사 가면, 그때 좋은 걸로 바꿔야지’ 생각했을 테니까. 생활감이 느껴지면서도 컬러가 강한 소품들로 집을 채웠다.
추경엽_ 신우정 감독이 원형의 집, 할아버지가 살던 시골집, 모텔 등 공간마다 포인트를 잘 살려줬다. 참고로 윤 감독은 20대를 미국에서, 신 감독은 영국에서 보냈다. 둘 다 유학하면서 오랜 시간 해외에서 생활했기에, 한국적이라든지 키치적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밖에서 바라볼 때,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으니까.
윤 감독과 오랜 친구 사이라고 들었다. 단편 <미스터 쿠퍼>(오정미, 2015)에서 함께 작업했고, 이후 <센스8>을 통해 다시 만났다고. <초록밤>을 제안받았을 때는 어땠나.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었을까.
신우정_ 진짜 할 줄은 몰랐다. 감독들은 항상 말하지 않나. 곧 찍을 거라고. (웃음) 서진이가 글을 쓴다는 얘기는 종종 전해 들었다. 근데 이번에는 함께 작업하자며 시나리오를 보내주더라. 이후 1년 정도 느슨하게 만나며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유년 시절을 어떻게 보냈으며, 요즘에는 뭘 고민하는지. 회의보다는 수다에 가까웠다. 그렇게 대화가 쌓이다 보니, 시나리오에 금세 공감이 가더라. “당시 사회적으로 이러이러한 사건이 벌어졌잖아. 그때부터 원형 가족도 힘든 상황에 부닥쳤을 거야.” 이런 식으로 영화에서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는 부분까지 하나씩 풀어서 얘기했다.
<초록밤>은 색감과 구도에 있어 명확한 원칙이 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을지 궁금하다. 추 감독은 시나리오를 어떻게 읽었나.
추경엽_ 여러 갈래로 해석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가장 크게 들어온 부분은 가족의 일상이다. 등장인물 모두 참 현실적이지 않나. 실제로 우리 아버지도 경비 일을 하시는데, 시나리오를 읽으며 많이 생각났다. 윤 감독에게 가족은 한 프레임에 들어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개별화하기보다는 전체를 조망하는 느낌이 어울릴 거라 판단했고, 클로즈업도 인물마다 한 번씩만 사용했다. ‘사라지는 공간’에 관해서도 대화를 오래 나눴다. 윤 감독이 먼저 주공아파트를 언급하더라. 낡은 건물과 그를 뒤덮을 정도로 높이 자란 나무들. 풍경은 대조적이지만, 둘 다 머지않아 사라진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촬영은 철산 주공아파트에서 했다. 반포도 가봤는데, 촬영할 만한 컨디션이 아니었다. 한편, 그린 라이트는 처음 PPT를 선보였을 때부터 공유했던 콘셉트다. 주차장에서 초록색 가로등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딱 떠올랐다. 환상적이지만, 분명히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초록이거든. 오프닝에서 영화 속 세계와 현실이 만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추 감독이 컨셉 레퍼런스라든지 이번 영화에서 구상한 바를 프레젠테이션했을 때, 신 감독은 어떻게 들었나. 초록빛이 많이 들어가면 색이 지워지거나 흐트러지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미술이나 의상, 분장 등에서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떠안는 상황인데, 두 분 사이에 마찰은 없었나.
신우정_ 의견 차이는 전혀 없었다. 처음에 레퍼런스 이미지를 보여줬을 때부터 ‘되게 좋은데?’ 했거든.
추경엽_ 난 눈치 있는 사람이다. 상대가 뭘 원하는지 빨리 캐치한다. (웃음) 영화 내용이 그리 밝지 않기에, 본래 로우 콘트라스트로 촬영할 생각이었다. 근데 감독과 미술감독은 포인트 컬러가 많이 들어간, 아까 말한 대로 키치한 이미지를 준비해왔더라.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이런 느낌을 상상하고 있구나.’ 그렇게 두 사람의 의중을 파악한 다음부터 채도를 높였다.
미술감독의 눈으로 본 현장은 어땠나. 독립 장편영화에서 미술을 맡은 건 오랜만이고, 그간 지속해온 작업 규모와 방식과는 여러모로 달랐을 듯한데.
신우정_ 현장 자체가 좀 특이했다. 굉장히 여유롭다고 해야 하나. 보통은 해가 뜨면 찍는데, 여기는 ‘마음에 드는 해’가 떠야 찍었다. 아니면 그날은 촬영을 접고.
추경엽_ 내가 강압적인 사람처럼 비칠 것 같은데. (웃음)
신우정_ 아니, 정말 드문 경험이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했던 현장이다.
추경엽_ 코로나19가 큰 계기이긴 했지만, 이전부터 영화라는 매체에 고민을 가졌다. 한국영화가 되게 잘나가던 시절이 있지 않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황금기. 다들 그때 영화들을 좋아하고, 여전히 그렇게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근데 부흥을 이뤄내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난 시스템의 변화가 결정적이라고 본다. 현재 정착한 주 52시간 근로 제도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황금기를 보낸 선배들과는 작업 환경 자체가 다르다는 뜻이다. 그때는 작품 하나를 6~7개월 동안 찍었다.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 같은 경우도 해가 뜨면 촬영 접고, 비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고 하더라. <초록밤> 들어가기 전에 윤 감독과 합의했다. “우리가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콘티나 조명을 논의하기에 앞서, 일단 일정표부터 바꿔야 한다.” 하루에 찍는 양을 대폭 줄였다. 신 감독이 말한 대로 적절한 때를 기다렸고, 중간중간 커피 마시면서 쉬기도 했다. 무엇보다 감독과 배우가 충분히 대화를 나누며 모니터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윤 감독이 이해해준 덕분에, 나 역시 좋은 현장을 경험했다.
신우정_ 사실 독립영화 현장이 힘들긴 하다. 예산이 부족하니, 다들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근데 윤 감독은 최대한 내 입장에서 생각해주려고 했다. 준비 기간도 넉넉했던 편이다. 촬영 한 달 전에 공간을 대여해줬거든.
윤 감독이 자랑하더라. 예산 문제로 난처했는데, 그때 신 감독이 “한 달만 시간을 주면 완벽하게 채워 놓을게” 했다고. 듣는 이에게 큰 힘이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추경엽_ 역시 윤 감독은 달변가야.
신우정_ 그러니까. 이걸 내 버전으로 말하면, 멋이 없어지는데. (웃음) 본래 집을 대여하려 했는데, 중간에 계약이 어그러졌다. 급한 대로 아파트 상가에 있는 사무실을 구했다. 여기라도 빌릴 테니, 한 달 동안 네가 채울 수 있는 만큼 채워보라고 하더라.
추경엽_ 비슷한 사이즈의 영화를 꽤 많이 해봤는데, 사실 미술에는 좀 애매해지는 부분이 생긴다. 일단 들어가는 돈이 많아야 티가 나는 작업이거든. (웃음) 이번에 지켜보면서 정말 놀랐다. 말 그대로 텅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 신 감독이 소품뿐만 아니라, 벽지며 장판까지 일일이 구해서 채워 넣더라.

장판이 무척 특이하다. 큼직한 패턴이 들어간 걸 골랐는데.
신우정_ 윤 감독이 옛날 사진을 정리해서 보내줬다. 그중 무늬가 큰 장판이 눈에 띄더라. 요새는 보기 어렵지만, 예전에는 흔히 썼거든. 너무 밋밋하게 가기보다는 패턴을 사용하는 방식이 어울릴 거라 봤다. 시중에 구할 수 있는 옵션이 많지는 않아서, 결국 해외 구매를 택했다. 하나처럼 보이지만, 두 개의 장판을 섞어서 붙인 거다.
미술은 서사의 여백을 채우고, 영화의 인상을 결정짓는다. 어떤 벽지와 어떤 가구를 쓰느냐, 어떤 소품을 어디에 놓느냐. 선택의 연속이라고 부를 만한 일인데, 이번 작업에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았나.
신우정_ 어릴 적 기억을 되짚으면서 생각나는 물건을 하나씩 모았다. 대화를 나누다가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감독과 나, 강길우 배우까지 셋이 동갑내기다. 나이가 같다 보니, 공통으로 떠올리는 과거 풍경이 있더라. 예전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화도 많이 찾아봤다. 묵직한 영화이기에, 미술이 분위기를 깨면 안 됐다. 현실 속 공간처럼 느껴지도록 생동감을 최대한 살리려 했고, 소품 배치에도 신경을 썼다. 현장에서 카메라가 어디를 비춰도 비어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추경엽_ 촬영하면서 정말 만족했다. 카메라에 잡힐 부분만 미술을 세팅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꽉 채워줬다. 어떻게 움직여도 걱정 없는 상황이라, 훨씬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효율성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지만, 공간을 제대로 구현하는 건 가치 있는 일이라고 본다. 그래야 배우가 감정을 가질 수 있고, 그 순간을 카메라로 담을 수 있으니까.
집안에 가득한 화분도 인상적이다. 식물의 종류와 크기를 세심하게 고른 흔적이 보인다.
신우정_ 집 내부에 화분을 여러 개 배치하면, 바깥 풍경과 연결성을 가질 거라 생각했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파트니까. 식물도 시기마다 트렌드라는 게 있는데, 최대한 어머니 세대가 선호하는 식물을 찾으려고 했다. 촬영하기 전까지 화분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보며 세팅했다.
추경엽_ 아, 포인트 컬러로 빨간색을 사용한 점도 좋았다. 고춧가루라든지 김치, 피, 어머니 옷까지. 신 감독이 미술과 의상을 동시에 담당했다.
신우정_ 의상팀이 따로 없어서 연출부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다. 초록과 대비하는 색을 쓰면,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인 느낌을 줄 수 있겠다고 봤다.
추경엽_ 영화에서 모든 빨강을 소화하는 사람이 어머니란 점이 의미심장하다. 지저분한 걸 치우고, 사고 나면 수습하고, 남편과 아들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사람. 결국 가족을 지탱하는 힘은 어머니에게서 나온다는 뜻이다. 영화 곳곳에 그런 장치를 심어놨다. 클로즈업 화면에서 뭔가를 만지는 손은 다 어머니 손이다. 그게 돈이든, 음식이든.
극장에서 상영하는 순간을 상상할 때, 가장 기대했던 장면은 뭐였나.
추경엽_ 특정 장면보다는 화면에 보이는 사이즈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저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영화가 아니라, 미술 작품처럼 한 장 한 장 천천히 감상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인물을 타이트하게 잡은 샷이 없고, 멀찍이 공간 전체를 바라보는 위치를 유지했다. 드라마나 상업영화를 찍을 때보다 훨씬 넓은 사이즈로 작업하다 보니, 극장에서 볼 때도 그런 부분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영화 초반, 아파트 단지에서 부부가 스쳐 지나는 롱테이크 장면 기억하나. 아버지는 귀가하고 어머니는 고추를 말리러 나가는, 그야말로 아버지의 퇴근과 어머니의 출근이 맞물리는 장면이다. 그때 인물은 아주 작게 보인다. 모니터로 보면 더 하다. 중앙에는 큰 나무가 서 있고, 좌우로 인물들의 동선이 드러난다. 그 쇼트를 보면서 ‘이게 우리 영화의 성격이구나’ 했다.
말한 대로 풀샷과 롱테이크에서 인물들은 부분으로 존재한다. 화면 구석에 작은 움직임으로 머무는 주인공을 보면서, ‘인간은 참 작구나, 가족은 가까운 듯해도 먼 사이구나’ 싶었다.
추경엽_ 내 입으로 좋다거나 잘했다고 말하기 민망한데,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고 싶었다. 다 보여주기보다는 부분을 통해 상상하도록 프레임을 설정했고, 인물이 충분히 현실감을 갖도록 초반에 테이크를 길게 가져갔다. 영화를 보면서 각자 자신의 어린 시절 혹은 부모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랐다. 예를 들어 아침 식사 장면을 보면, 화면에는 아버지만 등장한다. 어머니는 프레임 밖에 있지만, 다들 그 순간 어머니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짐작할 수 있다.
강길우 배우가 집에 들어와서 소파에 앉는 장면에 관해서도 듣고 싶다. 불을 끄고 나면, 베란다와 맞댄 거실이 초록빛으로 물든다. 그늘진 상태에서 검게 변한 사물의 윤곽이 눈에 들어오더라. 화분 밖으로 나온 잎사귀라든지 호랑이 액자 같은 것. 두 감독 모두 자랑할만한 장면 아닐까 싶다.
추경엽_ 보통 그런 장면을 찍을 때는 외부에 조명기를 두 개 정도 놓는다. 하나를 끄고, 하나를 켜는 방식이다. 근데 <초록밤>은 사실적으로 보여줘야 할 부분이 있다고 봤다. 사람의 눈이 그렇지 않나. 갑자기 어두워지거나 밝아지면, 빛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걸린다. 결국 두 가지 밸런스를 다 만들었고, 영화에서 소등하는 시점에 맞춰 동공이 열리듯 카메라 조리개를 열었다. 곧장 초록빛으로 물드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밝아지게끔 조정했다. 중요한 장면이다. 그때부터 원형 가족의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여행이 시작되니까. 내가 영화에 판타지를 부여하는 색으로 초록색을 가져왔듯, 인물에게도 초록빛이 약간 들어가도록 했다.
신우정_ 호랑이 액자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하면 되겠다. 극 중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봤다. 지금과는 달리, 패기 넘치고 의욕에 찬 남자 아니었을까. 살면서 한 번쯤은 큰일도 벌여보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다 보니 호랑이처럼 기운을 내뿜는 모습이 떠올랐고, 그림을 걸면 대조적인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라 봤다. 게다가 현장에 범띠가 많았다. 나, 윤서진 감독, 강길우 배우까지. (웃음) 호랑이 그림은 무조건 넣자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한편, 아버지의 침대 위에는 소나무 그림을 걸었다. 영화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소나무 아래 묻힌다. 늙고 쇠약해진 아버지 역시 그와 비슷한 운명을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 했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나름 혼자만의 연결 고리를 만들며 작업했다.
추경엽_ 요새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아버지로서 가족을 위해 뭔가 해내고 싶은 마음, 지금보다 좀 더 잘 살고 싶어서 노력하는 시간.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원치 않은 변화를 때로 마주하지 않나. 영화 속 호랑이 액자라든지 장례식장에서 홀로 소주를 마시는 아버지 뒷모습을 볼 때, 그런 것이 떠올랐다. 엔딩에 쓴 소품 아이디어도 좋았다. 죽음에서 멀어지는 용기를 가져야,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내 주변에 <초록밤>을 본 50대가 몇몇 있는데, 다들 깊이 공감하더라.
<초록밤>을 초록으로 물들였듯, <꿈의 제인>(2016)에서는 마젠타를 풍성하게 사용했다. 조명에 사용한 핵심 컬러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당시의 취향이나 관심사도 얼마간 반영되지 않을까 싶다.
추경엽_ 맞다, <꿈의 제인> 할 때도 PPT를 만들었다. (웃음) 성격이 그렇다. 이걸 하면, 저걸 하고 싶고. 기존에 했던 것을 반복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재미를 느낀다. <꿈의 제인>을 촬영했던 2015년 무렵에는 다양한 컬러를 연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새로 나오는 장비들을 사용해서 마젠타와 보라색 중심으로 팔레트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행사용품도 찾아봤고, 미국에서 국내엔 아직 들어오지 않은 조명을 가져오기도 했다.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오멸, 2012)는 애초에 하이 콘트라스트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한 작품이다. 당시 영화들 대부분 소프트한 경향을 보였고, 나는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물론 영화의 주제와 내용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지만, 돌이켜보면 작품마다 나만의 색깔을 드러내려는 마음도 조금씩 반영됐던 것 같다. 촬영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이썬>(최익환, 2020)은 전부 핸드헬드로 찍었는데, 다음 작품인 <초록밤>에서는 픽스를 고집했다. 화면 비율도 각각 다르다. <초록밤>은 꼭 극장에서 봐주기를 바라며 찍었고, 스크린 상영에 적합한 2.39:1을 택했다. <마이썬>에는 표준비를 적용했다. 장애 청소년이 주인공이고, 가능하면 많은 관객을 만나기를 기대했다. 개봉 이후 OTT 상영을 염두에 두면서 작업했다.
<꿈의 제인> 백재호 프로듀서는 추경엽 감독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더라.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한다는 건, 그만큼 공부하고 연구한다는 뜻인데.
추경엽_ 평소에 데이터를 많이 쌓아둔다. 요즘에는 뭐가 유행하는지,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찾아보면서 그중 내가 시도해보고 싶은 부분을 정리하는 식이다. 그러다가 감독을 딱 만나면, 그의 취향과 욕구에 맞을법한 아이디어를 꺼내놓는다. 윤 감독과도 그런 면에서 죽이 맞았다. 그림과 사진,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더라. 나도 마찬가지거든. 이렇게 취향이 통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작업이 훨씬 즐거워진다.
촬영과 조명을 동시에 감당하기가 벅찰 때는 없나. 어느 부분에서 가장 큰 만족감을 얻는지도 궁금하다.
추경엽_ 박현원 조명감독님과 정정훈 촬영감독님이 작업한 <박쥐>(박찬욱, 2009)를 무척 좋아한다. 두 분이 어떻게 협업했는지 궁금해서 인터뷰도 읽고, 직접 여쭤보기도 했다. 근데 서로 대화를 전혀 안 했다고 하더라.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내가 일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그게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촬영은 앵글만 신경 쓰고, 조명은 분위기를 만들고. 연출자 또한 촬영과 조명을 별개 영역으로 두며, 대화도 따로따로 했다. 근데 촬영감독 입장에서 보면, 결국 분위기라는 건 조리개 수치로 결정되거든. 각자 생각하는 수치가 다를 수 있고, 그때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방식마다 장단점이 있을 텐데, 나는 촬영과 조명을 동시에 맡는 방식을 택했다. 내가 생각한 분위기를 좀 더 명확하게,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다. 오해할까 봐 조심스러운데, 협업을 꺼린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다른 조명감독과 일할 때는 나 또한 최대한 그의 영역을 존중하며, 서로에게 좋은 컨디션을 찾으려고 한다.


신 감독은 어떤 작품을 좋아하나.
신우정_ 왕가위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영화 미술이라는 영역을 인지했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본래 순수 미술을 전공했다. 드로잉과 자화상 작업을 주로 했고, 나 자신에게 몰두하는 시기를 보냈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졸업 후, <조지아>(2020)를 연출한 제이 박 감독의 첫 번째 단편에 참여하면서 영화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가장 존경하는 분은 류성희 미술감독님. 모든 작업을 좋아하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올드보이>(박찬욱, 2003)다. 그러고 보니 추 감독과 통하는 지점이 있네. (웃음)
추경엽_ 박찬욱 감독님과 류성희 미술감독님 모두 행복하게 작업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헤어질 결심>(박찬욱, 2022) 같은 작품이 나왔겠지.
기존에 해왔던 작업과 비교하면, 신 감독에게 영화 미술은 정반대의 영역처럼 다가왔겠다.
신우정_ 맞다, 학교생활은 한 마디로 고립이었다. 항상 혼자 다니면서 나에 관해서만 생각했으니까. 영화의 경우, 팀워크를 이뤄야 가능하지 않나. 나한테 필요한 일처럼 보였다. 사람들과 만나서 소통하고, 사회성도 좀 기르고. (웃음) 여전히 힘들 때가 있지만, 보람을 느낀다. 작품이 잘 되면, 이렇게 일이 끝난 후에도 다시 얼굴 볼 기회가 생기고.
추 감독은 단편 <꽃길만 걸어라>(2017) <마지막 고해>(2016) 등을 연출하기도 했던데.
추경엽_ 영화과를 나오면서 만든 단편들이고, 뭐 지나간 일이다. (웃음)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는 토요일마다 명보극장 앞에 줄을 서서 시사회를 봤다.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1998)를 봤던 날, 처음으로 스크린 밖이 궁금해졌다. 영화에 나오지 않는 저 너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렇게 영화과 진학을 결심했고, 자연스레 카메라에 관심을 가졌다. 우리 아버지가 지금은 경비 일을 하시지만, 본래 고무 판화를 제작하는 장인이셨다. 10대 시절에 아버지가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 매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카메라가 그런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진학 후, 운 좋게도 처음 갔던 현장에서 정광석 촬영감독님을 뵀다. <동감>(김정권, 2000) 촬영장이었는데, 그때 정 감독님이 60대 중반이셨다. ‘촬영감독이 되면, 오래 일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막상 내가 촬영감독이 됐을 때는 직업 수명이 짧아지는 추세였는데. (웃음) 어쨌거나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경험이 쌓일수록 고민해야 할 부분이 늘어난다. 촬영은 단순히 찍는 행위에만 그치지 않는다. 각 파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배우의 감정에도 주의 깊게 신경을 써야 한다.
드라마 <그린마더스클럽>(JTBC)에 출연했던 주민경 배우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더라. “현장에 제가 들어가면 (추경엽 촬영감독이) 박수를 쳐주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놀리시는 줄 알았죠. 그런데 진정 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치시는 거였더라고요.” 배우들과 소통하는 본인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나.
추경엽_ 결국 우리는 배우를 찍는 사람 아닌가. 배우의 몸과 마음 상태를 살펴야, 완성도 높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배우를 기분 좋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이 칭찬해주고, 응원해주는 것. 배우가 다른 스트레스 없이 오롯이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현장에서는 그게 첫 번째라고 믿는다. 김민경 선생님도 첫 모임에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칭찬 받으면 춤도 출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감독님, 우리 많이 칭찬해주세요.” 현장에서 사람들이 행복해야 영화도 잘 나오더라. 부정적인 기운을 잘라내면서, 현장을 무조건 즐겁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니까 스케줄이 여유로워야 한다. 밤새우고 과로하면 행복할 수가 없거든. 헤어질 때 “이런 현장을 또 만날 수 있을까?”라며 아쉬워해야, 다시 모여서 영화를 만들 힘이 생긴다. <초록밤>에서 결혼식 장면을 촬영할 때, 보조 출연자 50명을 섭외했다. 대부분 드라마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라, 다들 쉬는 시간을 낯설어했다. 누가 “이래도 되는 거야?” 하니, 맞은편에서 “이런 게 영화야” 하더라. (웃음) 그때 기분 좋았다. 영화는 다르다, 이런 부분에서 다르다. 그렇게 영화 만들기의 재미를 알리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역할 아닐까 싶다.
꾸준히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드라마 현장을 오간다. 목표하는 바가 있나.
추경엽_ 어떤 작업이든 내가 임하는 자세는 똑같다. 최대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밖에서나 안에서나, 독립영화라고 해서 마냥 열악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좋겠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이 정도로 양극화가 심각하지는 않았다. 상업영화를 하는 분들도 독립영화 현장에서 일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교류가 없어졌다는 점이 아쉽다. 독립영화여서 기술적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균 수준 자체가 차츰 낮아진다는 느낌이 들거든.
지금 준비하는 작품은 뭔가.
신우정_ <초록밤> 덕분에, 요즘 작업 제안을 많이 받는다. 현재 연락하는 감독님 중에 인연이 닿는 분이 있다면, 곧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추경엽_ <맥북이면 다 되지요>(2016)를 연출한 장병기 감독의 첫 장편 <여름이 지나가면(가제)>을 준비하는 중이다. 사춘기 소년이 주인공이고,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내 아이들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테스트 촬영했는데, <초록밤>과는 에너지가 확연하게 다르더라. <초록밤>이 죽음 같은 느낌이라면, 여기는 막 살아 있지. 당장 어디로든 달려 나갈 것만 같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