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 밤>은 영화동아리 ‘리그 오브 쉐도우’의 좌충우돌 영화제작 과정을 담은 페이크다큐멘터리다. 덕후들로 구성된 동아리 멤버들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광팬이고, 마블과 DC 영화들에도 심취해있다. 여느 날처럼 안감독(송의성), 심피디(심정용), 요한(이요셉), 조빙(조병훈)은 골방에 모여앉아 각종 히어로 레고를 가지고 노는데, 안감독이 문득 오랫동안 써온 히어로물 시나리오가 있다며 함께 영화를 찍자고 제안한다. 예비군이 주인공인 한국적인 히어로물이다.
“어둔 밤? 이상해. 뭐야 그게.” 영화 제목을 들은 심피디의 반응. 그의 핀잔대로, 이 영화는 이상하다. 안감독이 어눌하게 소개하는 예비군 히어로 물도 이상하고, 이에 동조하는 친구들도 이상하다. 심지어 골방에 가만히 있는 이 친구들을 제대로 찍는 것도 버거워하며 세차게 흔들리고 계속 기울어지는 카메라도 이상하다. 영화는커녕 1분짜리 영상은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싶은 이 친구들은 여하튼 예비군 히어로물인 ‘어둔 밤’을 찍기로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장면을 찍고 있던 조빙에게 소리친다. “야 너도 우리 계속 찍어. 그래! 메이킹필름!”

이렇게 어쩌다가 찍게 된 예비군 히어로물 ‘어둔 밤’의 메이킹 필름이 <어둔 밤>의 1부다. 전문성은 없고 허세로 가득한 ‘리그 오브 쉐도우’ 멤버들의 영화 제작이 순탄할 리 없다. 카메라 테스트, 홍보, 장소 섭외, 촬영, 회의. 할 건 다하지만 제대로 하는 것은 없는, 이들의 어눌한 노력들이 웃음을 자아내고, 그것이 <어둔 밤>의 가장 큰 재미다. 하지만 1부의 방점은 유머코드에 있는 것이 아니다. 1부에서 가장 큰 울림은 주연 배우를 뽑는 오디션 장면에서 온다. 오디션을 보러 온 마지막 인물은 다름 아닌 ‘리그 오브 쉐도우’의 일원인 요한. 요한은 비장한 표정으로 배트맨 가면을 뒤집어쓰고 카메라 뒤에 있던 스텝 상미넴(김상훈)을 불러 조커 역을 부탁한다. 또 하나의 웃음을 기대하던 찰나, 짧은 시간이지만 요한과 상미넴은 배트맨과 조커로 완벽히 변신해 열연을 펼친다. 1부에서 유일하게 웃음을 걷어낸 이 순간, 이들이 항상 외치던 “진정성 있는 영화”에 대한 진심이 불쑥 드러난다. 동시에 요한과 상미넴이라는 캐릭터 뒤에 숨어있던, 이요셉과 김상훈이라는 배우가 페이크다큐라는 얇은 영화적인 막을 뚫고 나오는 장면이기도 하다. <어둔 밤>은 철저히 웃음으로 승부하지만, 영화가 실제로 다가서려는 지점은 많은 유머 사이에 나타날 “진정” 어린 순간이다.
1부는 원년 멤버들이 대부분 입대를 하게 되면서 허무하게 끝이 나지만, 후배 상미넴이 선배들의 뒤를 이어 ‘리그 오브 쉐도우’를 이끌면서 2부가 시작된다. 상미넴은 새롭게 ‘다크나이트 리턴즈’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영화를 찍기 위해 원년 멤버들을 다시 모으는데, 원년멤버들은 전역 이후 다가온 현실의 쓴맛을 맛보고 있는 중이다. 모두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자신들이 부르짖던 “진정성”을 깎아내리기 바쁘다. 2부는 아직 “진정성”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후배 상미넴과 변해버린 선배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1부와는 다른 시각으로 “진정성”을 들여다본다.
3부에 이르러 우여곡절 끝에 ‘리그 오브 쉐도우’ 멤버들이 완성한 영화를 만나보게 된다. 이들이 만들어낸 영화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히어로물이다. 영화에 대한 지식도, 기술도, 심지어 인맥도 없이 ‘덕력’으로만 뭉친 이들이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3부가 주는 감동에 동의하는 것에는 다소 망설여진다. 1,2부에서 우리가 지켜봐 온, 어찌 보면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이들의 어눌한 진정성과, 3부의 매끄럽게 다듬어진 영화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 우리가 1,2부를 함께 하며 응원하고 있던 것은, <어둔 밤>이 긍정하려 했던 것은 지식도, 기술도, 인맥도 없는 이들의 예정된 실패가 아니었던가. 3부를 마주하며 우리가 느끼는 쾌감과 감동이 과연 지금까지 긍정하던 이들의 ‘진정성’에서 오는 것인지, 매끄럽게 다듬어진 결과물이 가져다주는 장르적인 쾌감에서 오는 것인지는 다시금 질문해봐야 할 일이다. 웃음들 사이에 불쑥 고개를 내밀었던 이들의 진심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히어로물로 봉합되어 못내 서운하다.

어둔 밤 Behind the Dark Night 제작 풋메이드픽쳐스 감독 심찬양 출연 송의성, 이요셉, 심정용 배급 영화사 오원 제작연도 2017년 상영시간 112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9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