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물고 버틴 시간
<모어> 모지민·이일하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2-06-24

“엄마도 이해 못하고 친구들도 가까운 애완동물도 이해 못하는 아마 그게 너의 리듬” <모어>는 삽입곡인 이랑의 ‘너의 리듬’이 말하는 것처럼 남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리듬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인물이 가진 운율과 박자가 독특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큰 감정의 낙차를 오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너무 좋은데 한없이 아쉽고, 정말 행복했는데 진짜로 슬펐던 시간. 어쩌면 리듬보다는 끊임없는 진동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합할 크고 작은 떨림을 모두 품어낸 뒤에야, <모어>는 완성될 수 있었다. 

‘낮은 곳에서 하이힐을 신고 높은 곳에서 토슈즈를 신는’ 모지민 이야기는 이일하 감독이 깔아둔 판에서 펄떡이며 숨을 쉰다. 영화엔 드래그 퀸 모어의 퍼포먼스와 무대 아래 모지민의 일상, 그의 고향 집 풍경과 주변의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마구 뒤섞여 들어온다. 촬영을 진행한 3년의 세월엔 뉴욕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 공연에 오른 일이나, 모어의 영원한 스타 ‘헤드윅’ 존 카메론 미첼을 만난 일처럼 놀라운 사건들도 솟아났다. 화려한 춤과 소박한 말, 아름다운 얼굴과 쓸쓸한 어깨를 정신없이 마주하고 나면, 다시 드래그 쇼를 위해 클럽이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모어를 보게 된다. 아마 지금도 자기 리듬을 열심히 지켜내고 있으리라. 그를 잠시 불러 세운 뒤 대화를 청했다. 여기에 이일하 감독의 리듬까지 더해져, 이야기는 종종 저 멀리까지 가곤 했다.

 

 

2018년에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촬영을 시작했다고. 서로 편하게 여기는 사이인가.

이일하_ 그럼, 몇 년을 같이 찍었는데. 공기다, 공기. (웃음)

모어_ 피부, 세포, 살, 뼈. (웃음)

이일하_ 물론 촬영 끝나고는 만남이 뜸했다. 개봉 준비하면서 다시 보기 시작했지.

 

촬영 때와는 여러모로 다른 느낌이겠다.

모어_ 촬영할 때는 여유가 없고 아무래도 에너지가 부정적이었는데, 지금은 찬란하게 힘이 샘솟는다.

이일하_ 모어는 촬영 끝나고 거기서 끝났지만, 나는 그게 또 다른 시작이었다. 편집이라는 거대한 산이 있었잖아. (웃음)

모어_ 감독님이 그 산을 가는 동안, 나는 마무리가 어떻게 될까 불안했다. 찍어놓고도 확신이 없었다고 할까. 다큐멘터리라는 게 참 감당할 게 많더라. 해결해야 할 마음의 숙제가 있었다.

 

지금은 후련한 마음인가.

모어_ 사실 부끄럽다. 영화제에서 상영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내 부끄러움을 감안하고 보면 참 좋은 영화다.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최종본을 봤는데, 눈물이 많이 나더라. 무슨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모어는 최근 『털 난 물고기 모어』라는 에세이를 출간했다. 관련해서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분들이 출간을 계기로 “언니라고 부르라”며 살뜰히 챙겨주기 시작했다고. 영화도 함께 보기로 했나.

모어_ 그 책 한 권 때문에 내가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들 사이가 갑자기 ‘그냥 주민’에서 친언니처럼 되고, 0에서 100으로 확 쫀쫀해졌지. 언니들이 매일 밥 먹었냐고 물어봐 주고, 밥해주고, 좋은데 데려가 준다. 영화도 다 같이 예매해서 보기로 했다.

<모어>
<모어>

이일하 감독은 2017년에 모어의 사진 한 장을 보고 긴 여정을 시작했다. 그 사진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느꼈나.

이일하_ 모어가 다리를 벌리고 있는 사진인데, 그게 나한테 굉장한 에너지를 줬다. 내게 그 사진은 ‘세상을 향해 다리를 벌리고 있는 한 사람’으로 해석됐고, 습기 찬 지하실에 있는 드랙 퀸을 햇살 밝은 밖으로 끌고 나와서 지랄을 한번 해보는 영화를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음악과 춤이 있는 뮤지컬 같은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난 다큐를 새로 만들 때, 그것이 나에게 새로운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게 동력이 된다. <모어>도 그랬다. 지금까지 없었던 뮤지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기로 한 거니까.

 

모어도 ‘미친년’이라는 수식을 좋아하잖나. 둘이 이미 통하는 지점이 있었네.

모어_ 그 감독에 그 주인공이지. 그러니까 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웃음) 감독님이 내게 프러포즈했을 땐 강렬한 이미지를 기대했을 텐데, 내가 거기 부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이일하_ 너무 잘했다. 또 모어는 누구나 보면 감탄할 수밖에 없는 몸을 갖고 있잖나. 천부적이다. 모어를 찍을 수 있어서 굉장한 행운이었다. 촬영하면서 아름다움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됐다. 모어는 항상 아름답게 살고 싶어 하잖아. 그러다 보니 나도 과연 무엇이 아름다운 것일까, 영상으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게 됐지. 모어의 아름다움과 나의 아름다움이 상충하는 지점도 있었고.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게 파고들어가는 건 우리의 공통점이었지만, 모어가 메이크업 잘못된 걸로 낙심할 땐 참 다르다고 느끼기도 했다.

모어_ 영등포 시장에선 가발도 다 날아갔지.

이일하_ 내게는 완벽한 메이크업보다 좀 삐쳐나가는 메이크업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모어_ 난 드랙 퀸이니까, 룩이 너무 중요했다. 하지만 눈밭에서 촬영하는데 거울이나 제대로 볼 수 있었겠나.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찍었고, 그게 고통스러웠다.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가발을 제대로 쓰고 다시 찍고 싶다. (웃음)

이일하_ 가발이 늘 문제였어.

모어_ 내가 하도 격렬하게 댄싱을 하니까.

 

실내 무대에서도 종종 가발이 날아가곤 했나?

모어_ 난 항상 그 모양이다. 춤 안 추고 얌전히 있으면 되는데, 발광하니까.

 

섭외 이야기를 좀 더 묻고 싶다. 감독이 처음부터 3~5년 정도 걸릴 프로젝트로 설명했다고. 그 말 듣고 어땠나.

모어_ 못 한다고 했지. 한두 번이야 촬영하겠지만, 그걸 어떻게 하나. 인생에서 3~5년은 길고도 짧지만, 작품에서는 굉장히 긴 시간이다. 난 그런 대단한 걸 해본 적도 없으니, 고민이 많았다. 클럽 ‘트랜스’ 사장 언니가 나랑 띠동갑인데, 언니한테 이만저만 얘기를 했더니 당장 가서 찍으라고 하더라. 그 감독이 너한테 특별한 기운을 봤을 거라고, 이런 기회는 아무한테나 오지 않는다고 말이다. “이년아 정신 차려라.” (웃음) ‘트랜스’ 사장 언니가 20년 동안 나를 지켜줬다. 내가 하도 이상한 쇼를 하니까 다른 쇼걸들이 날 안 좋아했거든. 그런데 언니가 날 예뻐해서 안 잘리고 계속 일할 수 있었다. 영화도 그 언니가 결정적인 코멘트를 해줘서 찍게 됐는데, 말을 안 들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내 인생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촬영 시작할 땐 뉴욕 스톤월 항쟁 기념 공연 등 굵직한 사건들도 전부 확정되기 전이었나.

모어_ 그렇지. 극영화처럼 텍스트도 없는 상황이니, 대체 모르겠더라. 내 이야기가 영화로 성립이 될까 싶기도 했고.

이일하 ©이영진

이일하 감독은 영화 촬영을 제안하면서 그린 상이 있나. 인물을 어떻게 담아내는 영화가 되길 바랐는지.

이일하_ 그때는 그것도 모르고 시작했다. 그게 다큐멘터리의 묘미 아닌가. 3~5년이 바로 그 ‘어떻게’를 만드는 기간인 거다.

 

둘이서 가장 처음 한 건 뭔가.

모어_ 우리 집에 와서 녹음했다. 내 삶의 이야기를 들려드렸지. 근데 감독님이 갑자기 우시더라. 속으로 왜 저러시나 했다. (웃음)

이일하_ 그때부터 프리 프로덕션이 시작됐다. 그리고 완성할 때까지,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계속 고민했다. 촬영할 때는 어두운 은하를 헤매고, 편집할 때는 거대한 장벽에 맞서는 느낌이다. 다큐 감독들은 보통 편집 굴에 들어간다고 표현한다. 우울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모어_ 러프 컷 보여주신 날 감독님 집에 갔다. 온 벽면이 내 이야기로 가득하더라. 영화에서만 보던 광경이었다. 이 감독은 미쳤구나, 이렇게 애를 쓰고 있구나, 너무 고달프겠다고 생각했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타인이 그렇게까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창피하기도 했다.

이일하_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어. (웃음) 다 불완전한 사람들이지.

모어_ 하지만 난 완벽해지고 싶은걸.

이일하_ 모어가 말하는 완벽이 뭐야?

모어_ 아니, 누군가 내 삶의 치부를 본다는 건 부끄러운 일 아닌가.

이일하_ 보통은 하기 힘든 일이지, 우리 영화 찍을 때 늘 이랬다. 싸우는 거 아니다. (웃음) 알고 싶을 뿐이지.

 

책에도 영화에 대해 짧지만 솔직한 이야기가 쓰여 있다. 첫 1년은 본인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힘들었던 것 같더라. 그 시간은 어떤 마음으로 보냈나.

모어_ 일단 감독님이 하염없이 날 설득했다. 네가 두르고 있는 갑옷 좀 벗으라고 그러더라. 근데 난 그게 너무 어려웠다. 대체 내가 무슨 갑옷을 입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인간은 원래 깨닫기 전까지 자기의 모자란 부분을 모르잖나. 지금이야 다 완성됐고, 아름다운 결말이 됐지만, 그때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내 모든 것, 시골집에다가 엄마, 아빠까지 보여줘야 한다는 게 참 힘들었다. 그러다 결국 나의 오만을 깨달았다. 나를 다 보여줄 자신도 없으면서 영화를 찍겠다고 했던 거다. 찍으면서 그걸 알았다. 착각하고 있었지. 영화로 인생을 배웠다. 이 기회가 아니었으면 절대 터득하지 못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한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성장했다.

 

난 이미 다 보여주고 있다는 착각이었나.

모어_ 그냥 에둘러서 말하거나, 반만 보여주려고 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지. 정상적인 컨디션의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어느 날은 씻지도 않고 촬영하고 그랬다.

이일하_ 모어는 그동안 한껏 꾸미고 최상의 컨디션에서 찍는 촬영에만 익숙한 사람이었다. 쇼가 그렇잖나. 그런데 이건 굉장히 ‘로우’한 촬영이었으니, 익숙지 않았을 거다. 그냥 들이대고, 갑자기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니까. (웃음)

모어_ 한마디로 날 것의 극치. (웃음) 감독님 되게 즉흥적이다. 어느 날 밤에 갑자기 국회의사당에 가서 걷고, 그걸 촬영하고 그랬다. 그것도 한밤에.

<모어>
<모어>

앞서 이야기한 글에는 “카메라가 주는 폭력과 피로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는 구절이 있다. 읽으면서 새삼 그것이 다큐멘터리 작업의 핵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피사체가 카메라에 무감해지는 게 아니라, 그걸 분명히 인지하고 거기 맞섬으로써 무언가 생성된다는 거다. 작업하는 동안 모어에게 카메라는 어떤 의미였나.

모어_ 멋모를 때는 막 하는데, 촬영이 거듭될수록 카메라를 의식하게 되면서 하던 말도 안 나오고 그랬다. 그게 거듭되니까 나중엔 회의적이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카메라라는 것이 폭력적으로 다가오더라. 굉장히 피곤해지고. 사실 촬영해보지 않으면 그게 왜 그렇게 폭력적이거나 피곤한지 모른다. 나중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데 그냥 그 앞에 바보처럼 서 있게 된다. 그러고 집에 가면 또 왜 그거밖에 못 했나 계속 곱씹게 되고. 결국 그러다가 끝났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여전히 한다.

이일하_ 예전에는 카메라가 총 같았다. 카메라 돌릴 때 슛이라고 하는데, 총 쏜다는 의미잖나. 카메라가 그 자체로 폭력적인 기계인 건 맞다. 게다가 옛날엔 필름으로 촬영했으니, 모두에게 매 순간이 부담스러웠을 테고. 디지털 시대가 된 지금도 감독과 표현자를 매개하는 카메라라는 기계에는 여전히 분명 폭력적인 지점이 있을 거다. 늘 그걸 생각하면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야 하겠지. 그런데 이번엔 내가 찍은 다큐멘터리 중에 가장 촬영 횟수가 적고, 세팅 촬영이 많았다. 모어는 아마 그보다는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들어가는 카메라를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다. 근데 누가 자기를 찍어주니까 너무 좋다고 얘기한 적 있는데, 기억하나?

모어_ 내가 그랬나? (웃음)

이일하_ 모어는 늘 자기를 표현하고, 아름답게 찍히는 데서 행복을 느끼잖나. 그 여파로 물론 부담감이 있겠지만.

모어_ 영화 찍으면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시간은, 2018년 10월 30일 핼러윈 쇼하고 나서 지하철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데, 진짜 험난했다. 이태원의 핼러윈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거의 걷지도 못하는 수준이거든. 난 거의 떡실신해서 집으로 갔고, 감독님이 나를 쭉 팔로우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답더라. 20년 동안 쇼를 했지만, 그 뒷면을 누가 찍어준 적은 없거든. 화려한 무대만 찍었지 내 초라한 모습을 찍어주지도 않았고. 아, 정말 아름답다, 영화 찍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일하_ 모어는 쇼가 물리적으로 남지 않고 사라지는 걸 늘 허망해했다.

모어_ 무형의 것들은 사라지니까. 아니라곤 해도, 난 감독님 말처럼 담기려는 욕망이 강한 사람일 거다. 그러니까 이런 영화를 찍었겠지. 이미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사진이 많이 찍히기도 했다.

 

복합적인 마음일 거다.

모어_ 정말 그렇다. 부끄럽기도 하고,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또 숨고 싶기도 하다. 자아가 엄청나게 흔들린다고 할까. 충돌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결국 난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 가장 큰 사람이다. 그래서 버텨야 한다고 여기고, 기록해야 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세팅 촬영 얘기를 했는데, 주인공의 적극적인 퍼포먼스를 요청한다는 점에서 <모어>는 이일하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달라지는 지점이 있는 영화 같다. 연출자로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건 무엇인가.

이일하_ <모어>는 <울보 권투부>(2014)나 <카운터스>(2017)와 비교하면 꽤 명확한, 클리어한 작업이었다. 어느 정도 스토리가 있었고, 프리 프로덕션이 가능한 스타일의 영화였다. 프로덕션에서는 내 이미지를 어떻게 실현하느냐, 어떻게 실체화해서 영상으로 남기느냐가 관건이었다고 할까. 물론 그런데도 편집에서 다시 힘들어졌지만. (웃음)

모어_ 감독님 입장에선 클리어했겠지. (웃음)

이일하_ 아, 표현이 잘못됐다. 클리어했던 건 아니다. 시작할 땐 나도 어렴풋했지. 하지만 맨 처음에 내가 모어의 이야기를 쭉 들었잖아. 거기서 스토리에 대한 실마리는 잡혔다. 영화의 핵심은 아무래도 스토리니까. <카운터스> 때는 그런 게 없이 양쪽 세력이 계속 데모만 했다. (웃음) 아무튼 모어 얘기를 내가 들었고, 거기서 재밌는 지점들을 발견해서 페이퍼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모어에게서 발레를 끄집어내야겠다고 생각한다든지, 제냐라는 사람이 참 재밌다든지, 그런 느낌을 하나씩 잡아갔다.

모어_ 난 감독님 머릿속을 모르니까, 어렵더라.

 

그런 의문이나 불안을 직접 말해본 적은 없나.

이일하_ 모어가 내게 말했지만, 그땐 나도 미래를 몰랐으니까.

모어_ 감독님이랑 나랑 2박 3일을 우리 시골집에서 먹고 자며 촬영한 적이 있다. 뉴욕에 다녀온 다음이었는데, 집에서 목포역 가는 택시 안에서 감독님이 대략의 얼개가 보인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이때다 싶으면 미련 없이 카메라를 내려놓겠다고 했다. 그때 되게 찡했다.

이일하_ 다큐멘터리가 그렇게 대단한 예술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다. 굉장히 생활에 밀접한 작업이다. 찍기 싫은 날에도 카메라를 짊어지고 나가는 숙제 같은 것이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채로 시작했다. 다만, 이번에는 뮤지컬 판타지가 되길 바라며 작업했다.

<모어>
<모어>

결과적으로 드래그하는 다큐멘터리가 됐다. 모어의 드래그 이야기를 좀 듣고 싶다. 20년 전에 처음 시작할 때부터, 특정한 레퍼런스 없이 자기 안에 있는 걸 표출하면서 본인만의 드래그 쇼를 만들어온 것 같더라.

모어_ 정확하다. 나는 너무 나다. 그 누구도 흉내 내 본 적이 없다. 그건 내 고집이었는데, 남들은 다 이상하다고 했다. 처음 데뷔했을 때 다들 ‘또라이’라고 했다. 그런데 난 그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고. 그게 내 아이덴티티다. 바꾸려고 하지 않았고, 융화도 안 되더라. 나는 나일 뿐이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모어_ 그냥 타고난 것 같다. 책엔 좀 장황하게 썼는데, 엄마가 스님에게 내 태몽을 말했더니, 장차 커서 무대에 설 거라고 했다더라. 뉴욕 공연할 때 안무가 선생님이 내 삶을 정말 특별하다고 얘기해주기도 했다. 사실 나는 내 삶을 모른다. 내가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 옛날에 그 시골에서 내가 국민 체조하는 걸 보고 선생님이 발레를 해야 한다고 말했고, 부모님이 그걸 또 시켜준 걸 생각하면 신기하지. 자꾸 귀신이라고 표현하게 되는데, 정말 귀신이 머리채 끌고 간 것 같다. 발레로 데려갔다가, 지하세계로 끌고 갔다가. 그렇게 뻘밭을 하염없이 구르고 뒹굴었다. 드래그 쇼는 엄청난 엔터테인먼트다. 아무리 우울해도 입을 찢고 웃어야 한다. 얼마나 고달픈지. 항상 다음 주까지만 한다, 한 달만 더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난 항상 그 안에서 내 색깔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드래그에 대한 애정을 자주 표현했다. 드래그의 한계가 없는 치장을 좋아하고, 그 과장 자체를 아름답게 여긴다고. 그런데도 늘 애증 덩어리라고 표현하는 건, 결국 그렇게 오른 무대가 모어를 괴롭혔기 때문일까.

모어_ 지금이야 화려한 말들이 있지만, 옛날엔 그냥 ‘여장남자’다, ‘게이가 쇼한다’고 했다. 그냥 술집이잖나. 예술의 전당이 아니다. 사람들이 얌전하게 보지도 않았다. 쇼하면 정말로 술병이 날아다녔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쇼가 중단되고, 매번 시궁창이었다. 그럼 결국 폭력적인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고, 난 너무 힘든데 항상 입을 찢어야 했다. 그러니 도망가고만 싶었지. 그런데 드래그가 아름답기 때문에 해야 했다. 그러니 애증 덩어리라고 표현하지.

 

쇼에 관해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장르를 막론하고 무대에 오래 선 직업인의 애환이 느껴진다. 동료들과 고민을 나눈 적은 없나. 모어에게 유독 이 허무가 짙었는지.

모어_ 워낙 외로움, 공허함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유별나지. 큰 무대에서 화려하게 공연하고 뒤돌면 텅 빈 객석이 보이는데, 그때 정말 어마어마하게 뼈가 시리다. 왜 그렇게 항상 외로운지 모르겠다. 무슨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웃음) 그런데 그걸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엄살이라고 말하더라. 그게 정말 슬프다. 난 하고 싶은 걸 하니까 행복한 사람이고, 세상에 나보다 힘든 사람이 많다는 거다. 아니 내가 지금 아프다는데, 너무하지. 그렇게 외롭게, 뼈를 긁으며 살아왔다. 뉴욕 공연하고 나서 감독님은 한국으로 돌아왔고, 나는 뉴욕에 더 머물렀다. 그때 존 카메론 미첼과 함께 있었는데, “존, 내 뼈의 시림을 만져줘.” 했더니, 존이 “넌 방금 애를 낳았을 뿐이야.”라는 명언을 해줬다. 예술가든 누구든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게 있는 것 같다.

<모어>
<모어>

영화에선 무대가 한없이 확장된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선 혹여나 촬영 방해는 없었을지 걱정스럽더라.

이일하_ 다른 현장에 비해 특별히 큰 방해는 없었다. 아저씨들이 와서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는 정도의 일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웃음)

모어_ 보니까 감독님은 아랑곳하지 않는 성격 같다.

이일하_ 카메라 잡을 땐 용감해야 한다. 물론 모어보다는 덜했지. 카메라 뒤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감독으로서 책임지고 완성해야 한다는 마음이 정말 컸다.

 

모어는 화장부터 의상까지 혼자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모어_ 말해 뭐해. (웃음) 감독님이 바쁘게 카메라 세팅하는 동안, 난 오롯이 내 몫의 세팅을 해야 했다. 그게 실내촬영이면 일도 아닌데, 야외 촬영이라 험난했다. 드레스를 이고 지고 이동하고, 화장실 가서는 드레스 자락을 둘러맸다. 힘들어서 울기도 했다.

 

장소나 콘셉트는 어떻게 정했나.

이일하_ 광화문처럼 상징성을 생각해서 사전에 서치하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정하기도 했다. 양배추밭은 즉흥이었다. (웃음) 무안에 바다 씬을 찍으러 갔는데, 옆에 양배추밭이 있더라. 게다가 스프링클러까지! 거기서 한국적인 느낌을 받았다. 한국적인 것과 서양의 드래그, 그 이질적인 것의 합, 엇나감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게 비주얼 콘셉트 중 하나였다.

모어_ 그런 걸 표현하고자 하는 성향은 둘이 되게 잘 맞았다. 느닷없는 거, 기이하고 어두운 거.

 

모어는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게 큰 자양분이라고 얘기한 적도 있다.

모어_ 어릴 때는 시골에 사는 게 싫었는데, 지금은 그게 내 예술적 토양을 키워준 자양분이라고 느낀다. 자연에서 나고 자랐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의 농사를 도우며 지냈다. 그런 것들이 참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모지민 ©이영진

영화에 삽입된 음악들도 흥미롭다. 삽입곡뿐 아니라 오리지널 트랙도 무척 재밌고. 오프닝엔 ‘I am More’란 곡이 흘러나온다.

이일하_ 스코어는 현진식 감독님이 해주셨고, 오프닝 곡은 <울보 권투부> 때부터 함께 작업했던 노영래 형과 같이 만들었다. 삽입곡은 내가 재밌겠다고 생각한, 그러나 좀 잊힌 곡들을 골랐다. 좀 반전의 느낌이 있는 선곡이길 바랐다. ‘조율’, ‘아 대한민국’, ‘서기 2000년’이 그랬고, ‘담다디’는 스토리에 녹아있는 곡이었다. 그리고 이랑의 곡들. 워낙 가사가 좋아서 썼다. 모어랑 이랑이 절친이기도 하고. 이랑도 촬영했지만, 영화엔 안 나왔다.

 

‘조율’이 흘러나오는 장면은 뒷배경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했다. 여러모로 <헤드윅>이 생각나는 구성인데, 혹시 <헤드윅>(존 카메론 미첼, 2001)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하나.

모어_ <헤드윅>이 개봉했을 땐 DVD방이란 게 있었다. 그때 ‘트랜스’ 사장 언니랑 쇼걸들이랑 다 같이 DVD방 가서 <헤드윅>을 처음 봤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대단한 영화가 있다고? 그때부터 완전 팬이 됐지. 그런데 웬걸, 2018년도에 헤드윅을 실제로 만난 거다. 그때는 영화 촬영 초반이었는데, 감독님한테 전화해서 존 카메론 미첼 만난다고, 꼭 오셔야 한다고 했지. 물론 내가 영화에서 가장 싫어하는 장면이다. (웃음) 내 모습이 너무 창피해서 볼 때마다 눈 감는다.

이일하_ 대신 다른 사람들은 다 웃는 장면이다. (웃음)

 

그때 바보 같았다고 속상해하며 얘기하는 장면도 따로 있잖나.

모어_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사람들이 나보고 한국의 헤드윅이라고 했다. (웃음) 아무튼 나의 우상을 만났고, 친구가 됐고, 뉴욕에서도 만났으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뉴욕에서 같이 공연도 했는데, 감독님이 한국에 돌아온 다음이라 그게 영화에 못 담긴 게 아쉽다. 그다음에 존이 한국에 오기로 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못 왔지.

이일하_ 나도 <헤드윅> 정말 좋아한다. 10번 이상 본 영화다. 우리 영화에서 존이 그런 얘길 한다. 로큰롤이 영혼을 구원해줬다고. 그 말이 너무 좋더라.

모어_ 확실히 스타는 다르다니까. 카메라를 딱 대니까 기운이 다르더라.

이일하_ 본인이 감독이기도 하고 말이다.

모어_ 또 반했다.

이일하_ 원래 존의 한국공연, 일본공연을 우리가 따라가려고 했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한국에서 존과 모어가 같이 공연한 모습을 찍을 수 있었을 테고, 그러면 영화가 바뀌었을지도 모르지.

모어_ 근데 감독님, 나한테 스릴러 만들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이일하_ 감정의 서스펜스를 주고 싶다는 뜻이었다. 모어의 감정 표현이 좀 부족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그걸 더 극대화해서 스릴러적인 텐션을 만들고 싶었다.

모어_ 나는 무표정하게 있는 장면이 참 좋다. 그게 나를 굉장히 자극한다.

 

어떤 면에서?

모어_ 거기 엄청난 애환이 담겨있다고 느끼거든. “드래그엔 너무 많은 애환이 있어.” 하는 내레이션 나올 때도 무표정이다. 그게 다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어떤 화려한 것들보다 말이다.

<모어>
<모어>

영화 후반부에서 모어는 시골집 마당에 엄마, 아빠, 제냐를 관객으로 모시고 작은 공연을 연다. 20년 된 발레 재킷을 입고 말이다.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돌려주는 것 같은 장면이다. 이일하 감독은 모어 주변의 사람들을 보며 어떤 걸 느꼈나.

이일하_ 영화에 나온 그대로다. 너무나 사랑스럽지. 부모님의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내가 느낀 대로 담으려고 했다. 어머니가 정말 명배우시다. (웃음)

모어_ 거의 윤여정 선생님이지 뭐. (웃음) 그들은 이미 삶을 초월했다. 오히려 나만 어색하지. 엄마는 명언 제조기다. 긴말 안 한다. 짧고 굵게. 어쩜 그렇게 통찰력이 있을까.

 

그 장면 찍을 땐 어땠나.

모어_ 사실 그때 눈물이 났다. 그런데 거기서 울면 신파가 될 것 같더라. 그래서 꾹 참았다. 안 울길 잘했다.

 

슬픈 감정이었을까?

모어_ 누구든 그렇잖나. 부모에 대한 마음이란 게. 엄마 얘기만 들어도 눈물 난다. DMZ 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됐을 때, 감독님이 오랜만에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아르바이트로 크로키 누드 모델을 하거든. 일하는 중에 메시지가 왔더라. 엄마가 사투리를 쓰니까, 무슨 말인지 알려달라고 보낸 거였다. 그런데 그걸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지는 거다. 수업 때 울면 안 되니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리고 영화제 가서 오열했지. 엄마, 아빠가 날 어렵게 발레를 시켜줬잖아. 빚을 져가면서. 그런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라. 근데 다들 그 장면 좋아한다. 감동했다고들 한다.

이일하_ 명장면이지. (웃음)

 

오랜 여정을 마치고 개봉하는데, 그 시간을 통과한 본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모어_ 애썼다. 진짜 애썼다. 내가 요새 그런 말 많이 한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운명적으로 벌어진 모든 일들 속에, 그 시간 안에 내가 존재했잖아. 그런 것들에 감사하다. 그렇게 얻은 이 결과물은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 모든 순간을 누리고 싶다. 온전히.

이일하_ 나한테 할 말은 없다. 모어한테 말하고 싶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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