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위에서 자유를 걷다
<강변 호텔> 기주봉
글 정지혜 사진 소동성 / Interview / 2018-09-07

배우 기주봉의 연기 인생에서 올해는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게 틀림없다. 기주봉은 4월 들꽃영화상에서 임대형 감독의 장편 데뷔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7)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1977년 배우로 데뷔한 그가 연기로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 영화에서 기주봉은 젊은 시절 배우를 꿈꿨으나 시골 이발사로 살아온 모금산이다. 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이기도 한 모금산은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듯 차마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풀어가는데 그 모습이 꽤 쓸쓸하다. 

이어 기주봉은 8월에 열린 제71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의 23번째 장편영화 <강변 호텔>(2018)로 또 한 번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됐다. 홍상수 감독과는 <밤과 낮>(2007)을 시작으로 <하하하>(2009), <북촌방향>(2011),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 <자유의 언덕>(2014),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그 후>(2017)로 만났고 10월 개봉을 준비하는 <풀잎들>(2017)도 함께했다. <강변 호텔>에서 기주봉은 시인 영환이다. 눈이 소복이 내린 한겨울의 강변, 뭍과 강의 경계쯤에 있을 법한 호텔에서 영환이 들려줄 시와 삶의 이야기를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더 늦기 전에 그를 만나 축하를 전하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해보고 싶어졌다. 만남의 청에 흔쾌히 응답해준 그가 저 앞에 보인다. 청바지에 셔츠 하나를 가뿐히 걸치고 잠행하듯 고요한 걸음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살펴본 자료들에서 기주봉은 말수가 적고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이 길며 엉뚱한 상상을 즐기는 인물처럼 보였다. 그와 마주 앉아보니 능변가는 확실히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느끼고 감각하는 것에 충실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의 말은 특유의 서정이었다. 다음 말을 고르는 화자의 신중함보다 건너편의 청자까지 배려하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침묵이었다. 오감을 열고 대화하는 이만이 진귀한 상상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연기라는 한 우물만을 줄기차게 파온 사람, 동시에 그 우물에 빠져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지경을 누구보다 경계했던 사람, 배우 기주봉 이야기다.

 

- 무엇보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40년 넘게 배우로 활동해오면서도 유독 상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는데요. 올해 두 번이나 수상했고, 모두 주연 배우상입니다. 100여 편이 훌쩍 넘는 영화 작업 가운데 주연보다는 조‧단역으로 참여한 작품의 수가 훨씬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번 수상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신년에 좋은 꿈이라도 꾸셨는지요.

= 특별히 꿈을 꾸진 않았지만 좋은 기운을 느낍니다. 그간 배우상 후보에는 몇 번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수상을 하더라도 조연상으로 끝날 줄 알았지 이렇게 두 번이나 주연상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 이제부터 주연을 하라는 것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웃음)

 

- 상이라는 게 그간의 작업에 대한 보상이자 다음 작업을 해나갈 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상을 받기 위해 작업을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상이야 받으면 좋겠지만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갈 길은 배우의 길이고, 그 길은 상을 받기 위해 가는 길이 아니며, 그저 내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니까요. 다만, 상이라는 게 나로 하여금 관객이나 주변 분들께 조금 더 책임감을 갖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알려진 사람으로서 절제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게 아니라 남을 의식하는 것이죠. 사회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입니다.

 

- 들꽃영화상 시상식 때 수상 소감을 전하며 울컥하셨던 게 기억나는데요.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참석차 올랐던 비행기에서는 눈물을 쏟았다고 하셨습니다.

= 들꽃영화상 때는 남 앞에서 인정받는다는 걸 의식하니 그런 감정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로카르노행 때는 어휴, 그게 대체 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인데 창밖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저쪽에 앉아 있는 홍상수 감독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막 흘러내리는 겁니다. 손으로 닦아내야 할 정도였고요. 제 상황이 그래서 그런 건지, 내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 때문인지. 로카르노에서 <강변 호텔>을 처음 봤습니다. 이 정도 이유만으로도 울컥했던 겁니다. 아까 제게 좋은 꿈을 꾸지 않았느냐고 물었는데 내적으로 어떤 흐름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 정서가 제게 생겼다는 게 흥미롭지요.

 

- ‘정서가 생겼다’고 하셨는데요, 그 정서라는 게 없던 게 생겼다는 것인지 혹은 잊고 있던 정서였던 것인지요.

= 배우로 일하다 보면 새로운 것이나 약간의 변화를 아주 예민하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번엔 공항으로 가기 전부터 ‘내 영화로 해외 영화제에 간다, 세계로 나간다’는 생각이 잠재해 있었던 거죠. 그렇게 생각만 해오던 일이 어떤 출구를 만나게 되니 그간 제 안에 쌓여 있던 정서가 눈물로 나온 것 같습니다.

 

- 로카르노영화제의 수상 소감이 짧지만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연과 우주의 보이지 않는 것에까지 ‘땡큐’”라고 하셨습니다.

= 폐막 하루 전날 자그마한 파티가 있었습니다. 내겐 그런 자리가 처음이고 또 초면인 사람들도 많다 보니 혼자 정원 한쪽으로 가서 하늘을 쳐다보며 담배를 한 대 피웠지요. 그때 영화제 관계자가 오더니 영어로 뭔가를 슬쩍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영어라 저는 알아듣지 못했는데 옆에 있던 홍 감독이 저를 툭 치며 “축하한다”고 하는 겁니다. 그날 저녁에 잠이 안 왔습니다. 즉흥적으로 소감을 전할까 하다가 많은 사람 앞이니까 준비를 해야겠다 싶어 소감을 써 내려가다 보니 A4 1장 분량이나 되더군요. 다음 날 홍 감독에게 보여줬더니 인사말 부분만 전해도 좋겠다며 그 부분을 직접 영작까지 해줬습니다. 늘 보면 자연이 도와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도요. 그 앞에 홍 감독이 ‘우주의’라고 쓰더군요. 하늘이 도와준다는 말이 있듯이.

<강변 호텔>

 

- <강변 호텔>에서는 시인인 영환이라는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아직 영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어느 겨울날 강변의 호텔에 머물게 된 영환이 아들들의 방문과 낯선 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무언가를 느끼게 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영환이라는 인물에게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 특별히 영환이 크게 와 닿았다기보다는 홍 감독이 같이 작업하자고 하면 당연히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독에게도 내가 할 게 있다면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고 또 언젠가는 나에게 딱 맞는 뭔가를 할 때가 있겠구나 싶었으니까요. 다만, 영환이 어째서 시인일까를 생각했습니다. 홍 감독의 영화에서는 대체로 감독인 누군가가 나와서 매듭을 지어가곤 했던 것 같은데 시인의 등장이라니. 제 생각에는 홍 감독의 변화 같습니다. 자신의 영화 세계의 맥은 이어가되 변화해가는. 그 변화가 저는 참 좋습니다. 어떤 영화의 경우는 영화적 테크닉은 부릴 줄 알아도 사람 냄새는 나지 않는데 홍 감독의 영화는 인물의 뒷모습만 봐도 언어가 있고 표현이 됩니다. 그의 장점이지요. <강변 호텔>을 끝내고도 언제든, 어떤 역이든 같은 호흡으로 갈 수 있다면 참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감독님도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 <강변 호텔>에 앞서 지난해 가을에는 <풀잎들>에서 일신상의 곤경과 곤궁에 처한 창수라는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앞서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는 죽음의 문턱 앞에 와 있는 나이든 아버지였고요. 공교롭게도 죽음 앞에 서 있거나 또는 커다란 장벽에 가로막힌 남자들입니다.

= 저를 보는 감독들의 눈에 보편적으로 흘러가는 게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해 제게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도 했고요.(그는 대마초 흡연 혐의로 올해 8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지금의 제 상황이라는 게…. 그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홍 감독입니다. <풀잎들>을 같이 하자고 해줬고 이어서 <강변 호텔>까지 하면서 나를 견디게 해준 분입니다. 그 배려가 고맙습니다. <풀잎들>에서 내가 한 대사를 생각해보면 감독님이 그때의 내 절실함을 영화에 많이 넣어주셨구나 싶습니다. 그때 뭘 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였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배우로서 유치해지고 싶진 않았습니다. <풀잎들> 때부터 지금까지 수염도 그대로 뒀습니다. 내 상황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또 변화가 생기면…. 어차피 변화는 생길 테니까요.

<풀잎들>

- <밤과 낮>(2007)으로 홍상수 감독과 처음 같이 작업한 걸로 압니다.

= 예, 지인의 소개로 만났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감독님은 거의 변함이 없는 성품입니다.

 

- <밤과 낮>에서는 파리의 한인 민박을 운영하는 장 선생 역이었습니다. 자기보다 키도 덩치도 한참 큰 성남(김영호)이 어린 아이처럼 울 때 장 선생이 안아주며 “하여간 우니까 좋네. 되게 좋아지는 거예요”라고 말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 상대방을 지긋이 눌러주고 안심시키고 달래는 사람의 온화함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홍상수 감독은 배우 저마다의 모습을 관찰해 인물에 묻어나게끔 하는데요. 장 선생도 그러했을 것 같습니다.

= 게스트 하우스 주인은 많은 손님들을 만나야 하고 살펴야 하잖아요. 세상을 좀 살아본 사람이어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좀 알고, 눈치도 살필 줄 알지 않을까요. 제 안의 그런 부분을 홍 감독이 조금은 봐준 것 같고 장 사장 같은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신 것 같습니다.

 

- 생각해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기주봉 배우가 맡은 인물들은 낯선 이에게 무람없이 곁을 내주거나(<밤과 낮>,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조용히 상황을 지켜봐주거나(<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유난떨지 않으면서 상대의 기운을 북돋아 줬던 것 같습니다.(<북촌방향>) 때론 단호하게 필요한 말을 하기도 하고요.(<하하하>, <자유의 언덕>) 초연하고, 느긋하고, 주변을 돌보고 기다려주는 어른 같습니다.

= 그런 걸 하나씩 집어넣어주신 것 같습니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후원도 해원(정은채)이나 성준(이선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낯선 사람이잖아요. 후원은 홀로 자연 속의 남한산성에 올라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해원이 오니까 막걸리 한 잔을 주고 싶었던 겁니다. 후원은 아마도 항상 혼자 산에 다녔을 테고 자연과 친할 테니까 그런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자유의 언덕>의 남희(정은채)의 아버지 병주는 한 집안의 어른으로서 자식을 걱정하는 보편적인 마음이었을 겁니다. 딸아이의 마음이 뭔지 정확히는 몰라도 아버지로서 자식에 대한 애정이 있으니까요. 자식을 크게 나무랄 것도 없이 ‘여기 이러고 있지 말고 같이 가자’는 심정이었을 거고요.

 

-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기주봉 배우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늘을 보며 담배를 태우는 모습입니다. <밤과 낮>에도 있었고,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술집 ‘시인과 농부’ 앞에서의 모습도 그렇고. 그 모습들이 영화 속에서 여백이고 또 전환처럼 느껴집니다.

= 예, 가끔씩 하늘을 보며 그렇게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뭔가 변화가 생기길 바라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주위 사람들이 제게 ‘또 먼 산 본다, 망상을 한다’고도 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 ‘시인과 농부’의 주인 역이었는데 그래서 <강변 호텔>에서 내가 시인 역할을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감독님이 미리 예고라도 한 것 같아요. 와! 소름이…. 감독님 영화에서 내가 어떤 연장선상 위에 있다고 느끼며 그게 뭘까 생각해왔는데 그것인 것 같습니다.

 

- 시인의 이미지가 있으셨던 겁니다. (웃음)

= 하하하. 사색을 하곤 하니까요.

ⓒ 소동성

 

- 1977년에 연극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고 1981년 이장호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로 영화 데뷔를 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배우로서 중요한 기점이 돼준 작품이나 시기나 사람이 있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 20년 이상 연기를 했을 때인 1998년부터 2000년도쯤이었을 겁니다. 당시에도 경제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때 ‘지금껏 내가 배우로 살아왔는데 배우를 해도 배우고 배우를 안 해도 배우지. 물건을 팔러 다녀도 배우로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굉장한 힘이 됐어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때 6개월 정도 물건을 파는 등 사회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지인이 “배우가 뭐하고 있느냐. 한 달에 얼마가 필요한가. 돈은 대줄테니 연극만 하라”고 하더군요. 얼마간 그렇게 지원을 받다가 또 다시 생활고에 시달렸죠. 서울 근교 농장이나 야외무대로 가서 공연하고 돈을 벌고. 그 후에 영화를 시작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내가 40년 이상 해온 게 연기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배우의 길이 내 팔자였구나 싶은 겁니다.

 

- 요즘도 경제적인 문제는 계속되고 있나요.

= 그럼요, 큰 문제죠.(웃음) 하지만 배우가 생활에 안주하면 연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배우는 굴곡진 변화를 겪는 와중에 남들에게 보여줄 신선한 뭔가도 나오는 것일 텐데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남들과 똑같이 생활한다면 연기의 세계가 어떻게 구축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특히나 연극인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을 견디면서도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그 어떤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저도 배우 생활하며 40, 50대가 됐을 때도 경제적 능력 하나 생기지 않다보니 제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 중학교 때 배우 남궁원 씨를 보고 배우의 몸에서 빛이 난다는 건 저런 것이구나, 처음 느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 그때 친구들과 남산에 놀러갔다가 영화 촬영하는 걸 처음 봤습니다. 남궁원 씨가 연기를 하는데 정말 빛이 나더군요. 우리 형(기국서. 극단 76단의 대표이자 연극 연출가이며 영화 <도둑들>(2012), <좋은 친구들>(2014), <차이나타운>(2014) 등에 배우로 출연했다.)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잘하는 배우가 될래, 위대한 배우가 될래. 어떤 배우가 될지 목표를 세워야 할 것 아니냐. 남들이 ‘잘한다’고 말해줬다고 만족하면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 아우라가 있는 배우가 되려는 그 태도는 변함이 없습니다. 빛이 난다면 보통 사람과는 다를 것 아닙니까. (웃음)

 

- 연극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고 형 기국서 연출가와도 연극 작업을 해온 터라 연극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것입니다. 지금이야 배우가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게 별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연극하던 사람이 영화, 드라마 작업을 한다고 하면 안팎의 저항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 30대 때 주위에서 TV 드라마로 많이 가는 걸 보고 나도 가야하나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니다, 지금껏 해온 만큼 앞으로 10년 또 연극을 열심히 해보자’ 싶었지요. 그렇다고 연극만을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에게 다가올 기회를 기대하고 있었지요. 그냥 배우라면 연기를 ‘토탈’로 다 해봐야지 싶었고 세계적인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꿈이 컸습니다. 그런 오랜 생각이 홍 감독 덕분에 현실이 됐으니 먹먹하더군요. 항상 해온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꿈꿔온 곳으로 폭 들어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로카르노에서 돌아오며 홍 감독에게 말했습니다. “나한테 홍 감독은 귀인이다. 우리 어머니께서 늘 ‘자식 귀인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데 그 귀인을 만난 것 같다.”

 

- 작품을 선택할 때 어떤 점들을 주의 깊게 살피는지요.

= 시나리오가 좋다, 잠깐이라도 욕심이 생긴다 싶으면 합니다. 때론 의리로 할 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나와 맞지 않아도 내가 맞출 수 있겠다 싶으면 합니다. 시나리오대로 가면 관객들에게 이 역할이 어떻게 보일 것 같다는 게 그려지는데 그렇게 보이지 않게끔 내가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배우는 캐릭터를 다듬을 수도 있고, 비틀 수도 있습니다. 웬만큼 내가 변화시켜볼 수 있겠다 싶으면 해봅니다. 내 나름의 노하우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 최근 신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에 등장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첫 수상의 기쁨을 안겨준 임대형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김대환 감독의 <초행>이 그렇습니다.

=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시나리오를 읽고 탐이 났어요. 또 작품보다도 감독을, 그 사람의 태도, 생각, 느낌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임 감독님이 똘똘해 보였고 자기 안에 뭔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완성된 작품을 보니 작품 역시도 참 좋았습니다. 김대환 감독은 사고력이 풍부한 사람 같았습니다. 현장에서 보니 품도 넓고요. 엊그제에도 단편영화를 하나 찍고 왔는데요. 현장에서 오랫동안 조연출로 일하다 뒤늦게 학교에 들어간 신인 감독의 작품입니다. 그 친구가 보여주는 영화에 대한 열정과 태도가 좋아서 참여했습니다.

 

- 임대형 감독은 대사 어미의 고저, 장단 등을 세밀하게 살피고 촬영 전 배우와 이 부분을 긴밀히 조율하는 거로 압니다.

= 배우가 작품의 인물을 분석할 때, 연기할 때 그런 세밀함이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어떤 인물일지 내 나름대로 유형을 그려볼 수도 있고요.

 

- 한편 <초행>은 현장의 즉흥적인 상황을 좀 더 받아들인 편인 것 같습니다. 지영(김새벽)의 아버지로 등장했는데요, 그가 그네를 타다가 넘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아무리 봐도 설정이 아니라 진짜 넘어진 것 같았습니다.

= 제가 실제로 의도치 않게 그렇게 넘어졌습니다. 내가 그 상태 그대로 이어가니까 감독이 그걸 끊지 않고 그대로 가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됐습니다.

 

-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모금산처럼 일기를 쓰거나 시나리오로 삼을 만한 뭔가를 써본 적이 있을지요.

= ‘아, 이런 건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느낌이 들 때면 메모를 해둔 적은 있습니다. 작정하고 ‘뭘 써야지’는 안 해봤고요. 이번에 로카르노에 갔을 때 홍 감독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둘 다 취미 생활이랄 게 없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하는 것(연기) 외에 다른 걸 하려면 그 일에도 몰입을 해야 하잖아요. 그럼 원래의 내 일을 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홍 감독님도 현장에서 보면 항상 카메라를 들고 있고요. ‘아, 그래서 취미 생활을 따로 갖는 게 아니구나’ 했지요.

 

- 연기하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뭘 하시나요.

= 멍청하게 있거나 TV를 켜두고 흘러가는 대로 그냥 두고 봅니다. TV도 현실이고 세상이니까요. (배우로서) 현실을 너무 직시해도 안 되겠지만 현실과 무관해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주인공 모금산은 극 중 극 속에서 찰리 채플린처럼 분장하고 행동하며 연기합니다. 한때 배우가 꿈이었던 모금산이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을 줄줄 읊기도 하고요. 문득 어린 시절의 기주봉 배우라면 어떤 배우들을 동경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 찰리 채플린이야 좋아는 했지만, 오히려 영화를 찍으면서 그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영화를 보며 자극받지는 않습니다. 어찌 보면 자의식이 굉장히 강한 편이지요. 누구 때문에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거나 누굴 보며 ‘저 배우를 따라해 봐야지’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예전부터도 롤 모델이랄 게 없었어요. 내 육체적인 조건이나 사고방식을 누구와 비교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나 자신으로서의 내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 강한 자의식이 콤플렉스에 대한 또 다른 반응은 아닐까요.

=콤플렉스일 수도 있겠지요. 젊었을 땐 나 스스로 작고 못생겼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 시나리오마다 다르겠으나 대체로 어떤 식으로 인물을 파악하고 이야기를 이해하는지 궁금합니다.

= 시나리오 전반을 다 알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맡은 인물이 어디에 있고 누굴 만나느냐에 보다 집중합니다. 물론 작품 전체를 알려고 하면 알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는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해야 할 역할에 충실한 편입니다.

 

- 홍상수 감독은 촬영 당일 그날의 시나리오를 현장에서 쓰고 배우에게 전하는 거로 압니다.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기존의 해본 역할들과 비교도 해보고. 이런 식의 접근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배우로서는 이런 방식이 어떤 기대와 부담으로 다가오나요. 또 연기에 임하는 방식의 차이는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 완전히 다른 상황이지요. 그러니 오히려 내 눈앞에 있는 걸 믿는 겁니다. 감독이 나를 보고 캐스팅했으니 그 자체를 믿어버리는 겁니다. 물론 이런 방식이 당황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배우에게는 ‘아, 나를 캐스팅했으니 내 안에서 해결하면 된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눈앞에 있는 대사만 보고도 상황 파악도 됩니다. 그럼으로써 그 전 단계는 없어지는 겁니다. 다이렉트하게 핵 중의 핵으로 들어갑니다. 내가 그 대사만 잘 소화하면 그 인물이 됩니다. 다른 작품들의 경우는 대본을 받으면 분석이라는 걸 해보고 예전에 내가 작업했던 인물들과 비교도 하며 유형화도 하고 필요하다면 사전 준비와 연습도 하지요. 하지만 홍 감독의 현장은 그런 준비가 아예 없습니다. 군더더기가 없어요. 일하는 스태프들도 열댓 명 정도로 군더더기가 없고요. 그렇게도 충분히 영화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분입니다.

ⓒ 소동성

 

- 올여름 개봉한 윤종빈 감독의 <공작>(2018)에서는 김정일 역으로 깜짝 등장했습니다. 실존 인물이었고 정치적 상징성과 역사성이 선명한 인물이며 고난도의 특수 분장까지 소화해야 했습니다. 앞서 이야기 나눈 작품들과는 또 완전히 다른 방식의 작업입니다.

= 전혀 달랐습니다. 나름 철저히 준비하고 들어가야 했지만 절대로 김정일과 똑같이, 또는 김정일을 흉내 내는 식으로 접근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윤종빈 감독도 같은 생각이었고요. 그렇다면 그 인물은 결국 나로부터 출발해야 하고 또 나인 것입니다.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니 내가 그 모든 걸 감당해야 합니다. 특수 분장 준비로 뉴욕에 갔는데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참고로 기주봉의 분장은 <블랙스완>(2010),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 <버드맨>(2014) 등의 특수 분장을 담당한 ‘프로세틱 르네상스’(Prosthetic Renaissance Inc.)가 진행했다.) 단지 외적으로 유사한 게 문제가 아니다, 절대 권력자라면 어떤 정서를 느낄지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절제’를 생각했습니다. 최고 권력자는 결정적 순간에 손가락 하나 딱 움직여 모든 걸 품지 않을까요. 시선 하나, 몸짓 하나로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그게 좀 통한 것 같긴 합니다. 누군가 제게 “특수 분장 다 필요 없다. 그냥 당신 얼굴이 분장을 뚫고 밖으로 뿜어져 나올 것만 같다”고 말씀해줬습니다. 고맙지요. (웃음)

 

- 배우는 작품마다, 감독마다 작업의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는 유연성이 요구됩니다. 동시에 연기에 대한 확고한 생각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연극을 하는 후배에게 이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이라면 모든 상황을 감당해야한다.” 주인공은 자기 역할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극의 모든 관계를 다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감당한다는 건 나랑 상대하는 배우가 나보다 선배이고 왠지 묘하게 어렵고 등등을 다 떠나야만 가능합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역할로서 상대 배우에게 덤빌 수가 없어요. 모든 배우를 감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주인공이 됩니다. 물론 서로가 서로의 기운을 느끼고 맞춰나갈 수도 있겠지만요.

 

- 감당한다는 게 꼭 연기 경력과 경험에 비례하는 건 아닐 텐데요.

= 자기 자신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때 외부의 ‘옵션’에 걸리지 말아야합니다. 옵션이라고 하면 예를 들면 경제적인 이유나 여러 사회적 제약들일 텐데 그런 것들에 스스로 묶여버리면 배우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뿐이지요. 배우는 현실적인 조건,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합니다. 저도 그 자유를 지키고 싶습니다. 근데 생활이 힘들 땐 ‘아, 어디 옵션이라도 좀 걸렸으면’ 하지요. (웃음)

 

- 올해의 작품 계획이 있을까요.

= 엊그제 찍었다고 한 단편에서도 아버지 역할이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앞으로 아버지 역할로 뭔가를 좀 남겨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또 후배가 대구에서 연극을 하는데 같이 하자고 해 겨울쯤 무대에 오를 것 같습니다.

 

- 배우로서 앞으로의 자신의 길을 그려볼 때가 있으신지요.

= 만들어지겠지요. 여태껏 해온 게 있으니 그걸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게 순리고 자연적인 것일 테고요. 조금 환상적인 꿈을 꿔본다면 연극하면서부터 늘 생각한 게 하나 있습니다. 하늘에 바칠 만한 작품이나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겁니다. 하늘과 같은 마음으로 땅에 내려와 사는 게 인간일 테니까요.

 

- 유독 이 질문에 오랫동안 생각하고 답을 주셨습니다.

= 내가 또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가 싶어서 대답을 망설였습니다. 근데 얘기해놓고 보니 제가 해온 그간의 작품에 다 있던 것들인 것 같습니다. 로카르노 얘기를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홍 감독 방 키와 내 방 키가 갑자기 말을 듣지 않아 카운터로 가서 바꿔달라고 할 일이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그 잠깐 사이에 홍 감독이 로비에 있던 피아노 앞으로 가더니 연주를 하는 겁니다. ‘아, 이 공간을 이렇게 메울 수도 있구나.’ 공간을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는 것은 나 역시도 늘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그간 연기해오며 그 방법을 찾은 것도 있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족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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