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식당>의 공동연출자인 정재익과 서태수는 그들의 작품을 ‘공동체 영화’라고 부른다.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함께 만든 영화라는 뜻이다. 이들은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현장에서 배우가 됐고 스태프가 됐다. 경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영화의 취지에 공감하며 모였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모두 각자의 재능을 발견하고 펼칠 기회를 얻었다. 누구도 자격을 따져 묻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우리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사고로 장애를 얻은 정재익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는 이처럼 ‘함께’라는 양분을 머금고 한 편의 영화가 됐다. 물론 그 시작에는 두 감독의 만남이 있다. 둘은 정재익 감독의 글을 원안으로 삼아 시나리오를 썼고, 그들 삶의 터전인 제주에서 여러 장애인과 작업했다. 그렇게 탄생한 <복지식당>은 후천적 장애인 재기(조민상)를 중심으로 복지 제도의 허점을 꼬집고, 병호(임호준)로 대표되는 장애인 사회 내부의 부조리를 직시하는 영화다. 서태수 감독의 말처럼 거칠고 직선적인 작품이지만, 그 안에는 공동체 영화다운 자유로움이 함께 숨 쉰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조연들의 어색한 연기는 결함이 아니라 개성으로 느껴지고, 화면에 고스란히 담긴 장애인의 생활공간은 영화의 호흡을 깊게 만들어준다. 영화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두 감독을 만나, 이 특별한 작품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라고.
정재익_ 20년 만에 와본다. 정말 새롭다. 날씨가 좋으니 기분도 좋다. (웃음) 잘 먹고 잘 지내다 가려고 한다.
서태수_ 일정 소화하는 게 꽤 버겁긴 하지만, 영화 보시고 많이들 응원해주셔서 기분 좋게 다니고 있다.
정재익_ 행복해서 피곤한 것도 모르겠다.
서태수_ 하루하루가 기적이지. (웃음)
정재익 감독은 제주가 고향인데, 서태수 감독은 이주한 지 얼마나 됐나.
서태수_ 10년 조금 넘었다. 제주에서 꽃이 거의 만개했을 때 홍보 일정을 시작해서 계속 꽃 따라 올라오는 중이다. 광주에서 상영했고, 이제 서울에 왔으니까. 다음엔 포항으로 간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가 처음 공개되고 꼭 1년이 지났다. 그동안 관객을 만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을 텐데, 어떤 경험이었나.
정재익_ 처음엔 GV 같은 걸 왜 하나 싶었는데, 하다 보니 이유를 알게 됐다. 관객들의 말을 듣고, “아, 그게 그 장면의 의도였구나!” 하고 거꾸로 알게 된 적도 있다. 물론 영화는 주관적인 거니까, 그 해석도 맞고 내 생각도 맞는 거겠지. (웃음) 또 생각보다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걸 알게 됐다. 관객들이 정말 많은 걸 물어보더라. 장애 스포츠인 론볼도 잘 모르고 장콜(장애인 콜택시)도 모른다. 재기가 왜 중증 장애인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막연히 중증이면 안 좋은 거라고 여기는 거다. 장애인 문제를 여기저기 많이 알리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장애인 관객의 반응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도 있나.
서태수_ 광주에서 상영할 때 장애인 단체장들이 100명 가까이 왔다.
정재익_ 보통 연극 행사 같은 걸 하면 박수치고 그냥 가는 경우가 많은데, 남아서 인사하고 얘기하는 게 놀라웠다.
서태수_ 장애인들의 반응을 기대도 했지만, 걱정스럽기도 했다. 장애인 사회의 문제점들, 어떻게 보면 감추고 싶은 것들을 우리가 들춰낸 상황 아닌가. 그런데 용기를 잘 냈다고, 우리가 없는 얘기를 한 게 아니라고들 하시더라.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좀 편해졌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우리 둘 다 고민이 많았다. 정 감독은 실제로 그 사회에 속해있으니까 이게 문제가 됐을 때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스러웠고, 나는 “네가 뭘 알아?” 하는 비난을 들을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해야 하는 말을 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힘이 됐다.
영화에 대한 물리적 접근에 관해서도 고민이 많았으리라 짐작한다. 서태수 감독은 정기상영회, 제주혼듸독립영화제 운영 등을 꾸준히 해오기도 하지 않았나. 극장은 여전히 비장애인 중심적 공간인데, 물론 온라인 상영도 고려하겠지만 다른 논의는 어떤 게 있었는지 궁금하다.
서태수_ 영화제는 초청받아서 가는 거지만, 개봉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고민할 게 당연히 많았다. 말한 대로 장애인들의 극장 접근성이 굉장히 떨어지잖나. 극장에서만 상영하는 게 우리 영화에 정말 적절한지 고민했고, 배급사, 홍보사와의 논의를 통해 직접 찾아가서 만나자는 결론을 내렸다. 전국을 다 돌기는 어려우니 우선 제주 지역에서만이라도 커뮤니티 중심으로 만나자고 방향을 정했다. 복지관, 체육관, 공공시설 등 휠체어가 마음껏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극장 이외의 공간을 찾았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난 상영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조금 힘들면 더 많은 분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는 걸 잘 안다. (웃음) 그렇게 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정 감독은 장애인 단체를 만나 영화의 취지를 설명하며 모객했다. 빠듯했지만 배리어프리 버전까지 다 만들어뒀다.
정재익_ 상영관에 휠체어가 적어도 10대 이상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극장은 없잖나. 또 장애인들은 자기가 잘 아는 곳에 가고 싶어 한다. 그냥 영화 보러 오라고 하면 주저하지만, 체육관이나 복지관처럼 잘 아는 곳에서 영화를 튼다고 하면 “나도 가볼까?” 하게 된다. 다들 좋아했고, 그걸 보며 나도 기분이 좋았다.
서태수_ 극장으로 초대하면 장애인들은 갈 생각을 아예 안 한다. 극장이 어떤 공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감독 말대로 잘 아는 곳은 가게 된다. 커뮤니티도 다양한 곳을 생각했다. 장애인 단체는 당연히 포함했고, 성당, 교회 같은 종교기관도 중요하게 고려했다. 그런 곳에는 장애인 부서가 꼭 따로 있잖나. 동시에 비장애인도 올 수 있는 상영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애초에 영화나 공연처럼 문화예술에 대한 참여도가 높은 청년들도 많이 만났다. 그들이 정 감독과 만나면 분위기가 늘 좋았다. 무겁지 않고 즐거웠다.
사람 만나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나 보다.
서태수_ 장난꾸러기다. (웃음)
정재익_ 원래 나가서 활동하는 걸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장애인이 되고 나서 좀 변했다.
서태수_ 처음에 장애인 사회에서 소외당했다고 하더라. 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됐고, 후유증으로 언어장애가 생겼는데, 좋지 못한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정재익_ 모자란다고 무시한 거다. 그러니까 밖에 나가기도 싫었고, 집에서 술이나 마셨다.
서태수_ 이제는 좀 달라졌지. 영화를 통해 관객을 만나고 응원도 받으니까, 자존감이 높아졌다.
두 사람은 영화 제작 워크숍에서 강사와 수강생 사이로 처음 만났다고. 정재익 감독은 워크숍을 수강하게 된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었나.
정재익_ 난 2기 수강생이다. 친한 동생이 워크숍 1기를 들었는데, 그걸 보고 “네가 영화를 만든다고? 신기하네.” 싶었다. (웃음)
서태수_ “그럼 나도 만들겠다.” 했던 거네. (웃음)
정재익_ 나도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내가 가진 불만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워크숍 수료작으로 <나의 순례길>이라는 단편을 만들었더라. 정재익 감독의 인생을 성당 가는 길과 겹쳐보는 작품이다. 만들어보니 어땠나.
정재익_ 단편을 만들고 나니 그때부터는 나도 정말 영화를 만들 수 있겠더라. 주변에 항상 날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네가 뭔데 영화를 만드냐고, 할 수 있겠냐고 말하곤 했다.
서태수_ 또 흥분했다. 천천히. (웃음)
정재익_ 아무튼 영화 만드는 건 재밌고 좋은 일이다. 또 영화라는 게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나. 같이 호흡하면서 기분 좋게 만들어야 좋은 영화가 나온다. 그게 다 좋은 경험이 된다.
<나의 순례길>을 보면, 젊은 시절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간호사가 되기 위해 간호대학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
정재익_ 원래는 용산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했다. 그런데 좀 힘들었다. 직장생활이 끔찍했다. 온종일 일만 하니까. 그러다 회사를 나왔다. 그때 이미 서른이 넘어서 갈 데도 딱히 없었다. 고민이 많았다. 돈이 없어 노가다를 했는데, 친구가 간호사를 해보라고, 같이 공부하자고 하더라.
서태수_ 친구가 살렸네. 간호사 할 때 인기 많았다고 엄청나게 자랑한다. (웃음)
정재익_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걸 좋아했으니까. (웃음)
서태수 감독은 워크숍을 어떻게 기억하나.
서태수_ 1기를 잘 마치고 2기로 넘어갔는데, 계속 잘 되진 못했다. 포기하는 사람도 생겼고, 마지막엔 정 감독만 유일하게 시나리오를 붙들고 있게 됐다. 그냥 뒀다가는 완성이 안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각색을 같이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원안이 아주 좋았다. 그걸 내가 영화적 이야기로 각색하고, 계속 서로 주고받으면서 장편의 틀을 만들어 나갔다.


영화는 어떻게 시작했나. 2002년에 만든 <손님>은 상당히 많은 영화제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서태수_ 영화감독이 어렸을 적 꿈은 아니었다. 우연히 서울에 있는 광고 제작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연출부 일을 했고, 자연스레 영화를 많이 봤다. 아시아 영화를 주로 봤는데, 그게 되게 새롭더라. 고민하다가 뒤늦게 다시 학교에 들어갔다. <손님>은 영화과 졸업 작품이다. 원래 졸업 영화 준비하다 보면, 계속 바깥에서 이야기를 찾다가 결국 내 안에 있는 걸 하게 된다. (웃음) <손님>도 가족 얘기다. 어머니 일상의 단면을 담게 됐는데, 시나리오가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그런데 졸업영화제에서 상영하고 나니까 선배들이 잘 나온 것 같다고 영화제에 내보라고 하더라. 인디포럼에서 상영하고 여기저기 많이 초대됐다. 그다음부터 의욕적으로 영화를 잘 만들 수 있겠거니 했는데, 쉽지 않았다. 많이 실패했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 계속 일도 했고. 그렇게 20년이 지나버렸다. 이제 영화는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 감독님을 만났다.
정재익 감독이 처음에 쓴 원안은 어떤 내용과 형식이었나.
정재익_ 억울하다는 내용이었다.
서태수_ 처음부터 끝까지 다 화가 나 있는 수필이었다. 그걸 보고 처음엔 영화로 완성할 수 있게 옆에서 돕고 싶었고, 진행하면서 내가 시나리오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다 장편이 된 거다. 이걸 끝까지 완성하려면 정 감독 본인의 의사가 확실한지 알아야 했다. 그때 했던 한마디가….
정재익_ 죽을 각오로 하겠다! 영화 만들려고 일도 그만뒀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더라. 장애인은 일을 그만두면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이 줄어든다. 복지 일자리가 유일한 수입원이기도 하고 말이다.
어떤 마음이었나.
정재익_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를 꼭 완성해야겠더라.
서태수_ 의지를 확인한 다음부터는 빨리 추진했다. 제작지원은 내는 족족 다 됐다. (웃음) 이야기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제도에 대한 비판과 장애인 사회 내부의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의 힘 말이다. 이후 정 감독은 장애인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장애인의 삶이 드러나는 공간들을 섭외하고, 사람을 모았다. 나는 기술을 담당하는 키 스태프를 찾았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정재익_ 혼자선 정말 못 할 일이다. 많은 도움을 받았고, 다 같이 해나갔다.
서태수_ 그게 우리가 <복지식당>을 공동체 영화라고 얘기하는 이유다.
정재익_ 너무 즐거웠다. 그런데 촬영 끝나니까 몸이 안 움직이더라.
서태수_ 17회차로 촬영했는데, 정 감독이 하루도 안 거르고 현장을 지켰다. 그러니까 응집력 같은 게 생기더라. 배우와 스태프가 모두 정 감독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참 대단한 힘이다. 그런데 다 끝나고 긴장이 풀리면서 강직이 왔다. 게다가 아주 심한 감기도 앓았다. 거의 한 달을 뻗어있었다.
장애, 장애인에 관한 영화 중에서 제도를 이 정도로 섬세하게 본격적으로 다루는 작품도 드문 것 같다. 단순히 어떤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넘어서, 현행 제도가 어떻게 오작동하고 있는지 조목조목 짚어낸다. 대부분이 정재익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정재익_ 나도 처음엔 등급제가 뭔지도 몰라서 엄청나게 공부했다. 내가 왜 5급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더라. 공부해보니 다 기준이 있고, 한번 받은 등급은 바꾸기가 어렵다고 했다. 의사한테 소견서를 받아도 힘들었다.
서태수_ 애초에 공부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제도나 규정이 복지 혜택을 받을 장애인들에게 맞춰져 있지 않다. 그냥 의학적 기준만 정해져 있고, 거기 모든 장애인을 꿰맞추는 거다. 그러다 보면 정 감독처럼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팔을 들 수 있고, 두 걸음 걸을 수 있다고 5급 장애인이 된다. 시스템이 없는 게 아닌데도 이런 일이 생긴다. 그러면 중증 장애인이 본인이 중증인 걸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게 다 꼼꼼한 서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건데, 초보 장애인이 그걸 어떻게 하나.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결국 장애인이 자립해서 살기 위한 기준은 장애인 각자에 맞게 적용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재익_ 재기는 전동휠체어 지급 대상자가 아니지만, 융통성과 배려 덕분에 전동휠체어를 빌릴 수 있게 된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런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거다. 반면 규정이라는 이유로 재기는 장콜을 사용할 수 없고, 지팡이도 못 바꾸잖나. 물론 지팡이는 사면 된다. 하지만 왜 안 되냐고 질문하려는 거다. 이런 답답함은 직접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재기에게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인물 묘사를 생략하는 등 그들을 각각의 나쁜 개인으로 보여주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느껴진다.
서태수_ 시나리오 작업하면서, 사람을 탓할 건가, 시스템을 만든 사회를 탓할 건가를 두고 많은 얘기를 했다. 물론 시스템을 운영하는 건 결국 사람이지만, 결코 규정을 이탈할 수 없는 그들의 입장을 반영하려고 했다. 규정 안에서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조차 어렵다. 다들 “규정이 그렇습니다.”라고 하잖나. 그러니까 그들의 말투, 성격, 외모 등을 굳이 정확하게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이건 그 제도를 필요로 하는 당사자가 중요한 이야기니까. <나, 다니엘 블레이크>(켄 로치, 2016)의 공무원들도 비슷한 느낌인데, 우리는 그것보다 더 숨겼다.
정재익_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서 비슷한 걸 많이 느꼈다. 결국 복지 문제를 다루고 있잖나. 그 영화는 마지막에 벽에 글자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도 해볼까 싶었다. (웃음)
재기가 다니엘 블레이크처럼 분명한 제스쳐를 취했으면 어떤 영화가 됐을지 궁금하다. 지금처럼 끝낸 이유가 있는지.
정재익_ 관객에게 맡기고 싶었다. 관객이 재기의 입장이라면 앞으로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상상해보길 바랐다. 어쩌면 병호처럼 될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르게 살 수도 있을 거다.
서태수_ 몇 가지 결말을 두고 논의했는데, 여기까지가 딱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더 나가면 또 다른 단계로 가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그건 재기의 다음 문제이고, 우리는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정재익_ 원래는 제목을 ‘마지막 말씀’으로 하고, 재기를 죽일 생각도 했다. (웃음)
서태수_ 자꾸 죽이려고 해. (웃음)
정재익_ 안 죽여서 다행이지. 지금이 훨씬 낫다.
상황이 워낙 강조돼있어서 주인공을 보여주는 방식에 관해 많이 고민했을 것 같다. 자칫하면 단면적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
정재익_ 재기를 나라고 생각해서, 큰 고민은 하지 않았다. 상황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서태수_ 자기 얘기니까 별로 고민 안 했지, 난 엄청나게 했는데. (웃음) 우리 이야기가 가뜩이나 힘든데, 인물마저 계속 분노에 차 있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해서 감정의 변화를 만들고 인물에 입체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정 감독이 굵직한 사건들로 큰 줄기를 만들면, 나는 인물 배치에 신경 썼다. 한편, 미디어에서 보통 장애인은 한없이 약자, 끝없는 피해자로만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재기는 약자이지만 계속해서 우직하게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배우인 민상 씨가 처음엔 재기를 표현하는 걸 힘들어했다. 연기자로서 고민이 많았는데, 그게 고스란히 영화 속 재기의 고민으로 드러나더라. 민상 씨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 덕분에 병호라는 인물도 상대적으로 잘 보였던 것 같고.
조민상 배우는 자세와 표정의 미세한 차이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다. 배우가 가장 공을 들였던 건 어느 부분이었나.
정재익_ 심리적 장애를 표현하려고 노력한 부분이다. 나도 재기처럼 계속 입으로 소리를 내는데, 이게 의사도 이유를 정확히 모르는 증상이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고, 불안이 쌓이고 쌓인 결과라고 봐야 한다. 민상 씨가 이걸 따라하더라. 재기가 겪는 압박감을 잘 표현했다. 역할에 빠져든 게 보였다.
서태수_ 배우들이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는 오히려 그들의 얘기를 많이 듣는 편이었다. 현장에서 배우들이 만들어낸 장면, 촬영팀이 만든 장면들이 꽤 있다. 재기가 엄마 집 계단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도 민상 씨한테 먼저 물어봤다. 이때 재기가 어떤 기분일 것 같냐고. 배우가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고, 그게 그대로 끝 장면이 됐다.
병호의 무료한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물론 나쁜 사람이지만, 다른 삶의 방식을 알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재익_ 내가 직접 겪은 세 명의 사람을 합쳐놓은 인물이다. 악인은 확실히 악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지만,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됐을까 고민하고 과거를 보여주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봤다. 병호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서태수_ 병호는 시스템에 기대서 권력, 정보력, 경제력을 가지고 다른 장애인들을 장악한다. 아주 위협적인 인물이다. 병호를 통해 그런 상황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의 문제를 이야기하려고 했다.
서태수 감독이 행정 소송을 돕는 사무장 역으로 출연했다. 종종 연기하나.
서태수_ 가능하면 안 하려고 한다. (웃음) 다른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서 내가 하게 됐다. 병호 역을 맡은 임호준 배우가 “형님이 만든 캐릭터인데, 형님이 하면 되죠.” 하더라.
배우와 스태프를 장애인, 비장애인 공동으로 꾸렸다. 제작기를 읽어보니, 제작진 구성이 학생부터 전문가까지 정말 다양하더라.
정재익_ 조감독이 발이 넓어서 섭외를 많이 했다. 나는 론볼 선수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처음엔 다들 주저했지만, 나중엔 전부 좋아하면서 계속 도와주겠다고 하더라.
서태수_ 장애인 한 사람이 움직이면, 비장애인 두세 명이 같이 움직인다. 그들의 가족, 활동지원사가 현장에 놀러 왔다가 자연스럽게 참여하곤 했다. 잘 아는 식당에 가서 촬영하면, 자연스럽게 사장님이 연기를 하기도 했고. 그런 식으로 전부 다 참여하는 영화가 됐다.
정재익_ 영화 속 재기의 집이 실제로 장애인의 집이다. 그게 딱 표시가 난다.
서태수_ 전동휠체어 타는 장애인의 집이라서, 출입구에 휠체어에 할퀸 자국이 많이 나 있다. 그건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거다. 재기와 누나 은주가 갈등하는 장면에서 화면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 그게 마치 두 사람 마음을 할퀸 흔적 같다.
정재익_ 장애인이니까 침대가 낮다. 그런 부분이 다 보인다.


<복지식당>의 굵직한 키워드 중 하나는 자립이다. 정재익 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의 자립’이라는 표현을 쓴 적도 있는데, 각자 어떤 자립을 생각하나.
정재익_ 장애인들이 모여서 자기 소재를 찾고, 같이 즐겁게 영화를 만드는 것, 그게 자립인 것 같다.
서태수_ 공동작업의 시작은 내가 정재익 감독을 돕는 차원이었는데, 결국 두 사람 다 자립하게 됐다. 우리는 조금 더 같이하겠지만, 각자 길을 가야 할 때도 분명히 올 거다. 그런 홀로서기의 시기에 정재익 감독이 무엇을 할지, 나는 또 어떤 걸 하게 될지 기대된다.
정재익_ 꼭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있는 그대로 진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
서태수_ 장애인은 영화 속에서 대상으로 존재하거나 현장에서도 제한적인 역할만 부여받는다. 우리 영화에선 그렇지 않았다. 영화의 요소마다 분명한 역할이 있었고, 그걸 다 해냈다. 우리가 시작이라고 본다. 감독뿐 아니라 전문 스태프 영역에도 장애인들의 참여가 늘어나야 한다. 이미 촬영 장비는 다 디지털로 바뀌었다. 조명, 사운드도 마찬가지다. 교육이 잘 이뤄지고, 기술을 잘 익히기만 하면, 다양한 영상 분야에서 장애인이 활약할 수 있을 거다. 제주에서 그런 장애 인식개선 사업을 조금씩 시도하는 중이다.
최근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논의가 뜨거운데, 정재익 감독을 초대하고서 새삼 반성했다. 자주 오가는 공간의 장애 접근성을 평소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아서다. 이 영화가 어떤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지 듣고 싶다.
정재익_ 딱 그 정도면 된다. 몰랐던 걸 알게 되는 거. 나 때문에, 영화 때문에 장애인의 현실을 알게 된다면 충분하다. 이동은 그냥 삶이다. 비장애인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는 움직여야 하고, 그건 아주 기본적인 거다.
서태수_ 시사회 끝나고 배우들이랑 스태프들이랑 밖에서 서 있으면, 관객들이 와서 물어본다. “장콜 기다리세요?” 그게 시작이라고 본다. 나도 워크숍 진행할 때, 같이 밥 먹으러 갈 식당의 진입로가 어떤지 알아보는 데서 시작했다. 우리가 다 함께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고, 우리 영화는 그 기점에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텐데, 영화를 통해 또 어떤 걸 하고 싶나.
정재익_ 장애인의 세계를 알리는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 하나씩 배우면서 천천히 해나가려고 한다.
서태수_ 지금 같이 쓰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초고 정도 작업 중이다. 계속 장애 관련 이야기를 하겠지만, 거칠고 직선적인 <복지식당>보다는 더 부드러워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