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드라마티쿠스
<역할들> 윤종구·연송하·김원정·김범석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2-03-29

대화에는 종종 밥과 술이 등장했다. 누군가는 고마워서 밥을 사야겠다 했고, 누군가는 그런 얘긴 이따 술 마시면서 하자 했다. 어쨌든 같이 먹고 마시자는 말이었다. 이들이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차례 끼니를 나눈 사이라는 걸, 때때로 술잔을 부딪치며 어깨를 빌려줬다는 걸 알고 난 후엔, 밥과 술이 전부 마음으로 들렸다. 너와 밥을 먹고 싶다는 말은 너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싶다는 뜻이다. 오늘도 술 한잔하자는 말은 우리가 지금껏 해온 일을 오래도록 함께하자는 약속이다. 연송하, 윤종구, 김범석, 김원정. 네 명의 배우가 한자리에 모이니, 주고받는 말만으로도 배불렀고 만취했다.

영화 <역할들>을 만들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 연극 무대에서는 베테랑으로 통했지만, 제작 전반을 손수 진행하는 영화 작업은 배우들에게 난생처음이었다. 일은 없고 생계는 막막할 때, 연송하는 “뭐라도 해보자”며 선배들을 설득했다. “송하가 하자니까 했어요. 내가 좀 풍족하면 제작비에 보태라고 얼마라도 줬을 텐데, 얘 혼자 큰 짐을 짊어졌죠.” 하지만 돈 대신 내어줄 것은 차고 넘쳤다. 서로 응원하고 사랑하면서, 그들은 여러 ‘역할들’을 소화했다. 직접 시나리오를 썼고, 같이 카메라를 잡았다. 능청스럽게 주연과 조단역을 넘나들며, 네 가지 에피소드를 동시에 펼쳐 낸다.

<역할들>에는 잘 모르는 배우가 나온다. 그들은 가끔 무대에 오르고, 매일 일상을 꾸려나간다. 새벽에 김밥을 팔러 나가는 고단한 얼굴, 오래전 헤어진 연인을 향한 죄책감, 곧 태어날 아이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겠다는 절박한 결심, 무리한 요구와 비아냥을 감내해야 하는 불편한 순간. 잘 모르기에 짐작조차 못했던 그들의 하루가 영화 속에 켜켜이 쌓이고, 네 사람은 빛나는 조명과 환호성이 없는 곳에서도 배우로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들에게도 대단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지만, 사뭇 평범해 보이는 시간을 통과하고 나니 눈앞이 또렷해진다. 그들은 지금 제 몫의 삶을 책임지는 중이다. 계속 연기하려고, 좀 더 나아지려고, 그리하여 언제든 밥과 술을 건네는 든든한 동료가 되려고.

 

 

워낙 오래 걸린 작업이어서 이제 영화를 떠올리면 좀 지긋지긋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 감정이 많이 남은 것 같아요. 개봉을 앞둔 기분은 어떤가요.

연송하_ 오빠들과 언니는 어제 최종 편집본을 보면서 감동적이라고 했어요. 반면에 저는 후반 작업하며 과부하가 걸렸어요.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해요. 영화를 반복해 보니 너무 익숙해진 거예요. 내용도 새롭지 않고, 대사도 다 놓치고.

김원정_ 시기마다 편집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이번에 영화를 볼 때는 촬영 당시의 추억이 떠오르더라고요. 관객 입장에서 좀 더 객관적으로 봐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영화를 보면 자꾸 그때의 나에게로 돌아가는 거예요. ‘저 장면은 미세먼지 되게 심했던 날에 광화문에서 찍은 건데’, ‘복싱을 해본 적도 없는 나한테 오빠들이 스텝부터 가르치느라 고생했지’ 하면서요. 오빠들은 실제로 복싱을 오래 했거든요. 제 눈에도 저는 엉성한데, 계속 잘한다면서 격려해주더라고요.

윤종구_ 처음 하는 사람치고 너무 잘했어, 진짜로.

김원정_ 촬영 마치고 2-3일 정도 앓았어요. 근육통이 세게 왔죠.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떠올라요.

윤종구_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솔직히 우리 삶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비슷하게 유지되는 부분이 있어요. 게다가 우리는 사실과 사실 아닌 것, 사실이기는 하나 살짝 가공한 것을 포함해 영화를 만들었거든요. 자연스레 삶의 연속성을 지닌 영화가 된 것 같아요. 아직 영화를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됐고, 실은 떠나보내기가 싫기도 해요.

김범석_ 아이가 태어날 무렵, 영화를 시작했어요. 우리 아들이 벌써 6살이 됐네요. 그 사이 장모님이 편찮아서 함께 살게 됐고요. 직업 면에서는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하는 등 좋은 일이 많이 생겼어요. 근데 참 이상해요. 어렸을 때는 좋은 일이 생기면 그냥 좋았어요. 지금은 좀 무서워요. ‘내가 좋아해도 되나? 이걸 즐겨도 되나?’ 아마 직업병이겠죠. 어젯밤에 혼자 편집본을 보는데, 목이 메는 거예요. 너무 좋은데, 그만큼 두려워서요. 10년 후에 우리 넷이 이 영화를 가지고 얘기한다면, 아무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조용히 술만 마셔도 대화가 채워질 것 같은, 그런 영화예요.

 

영화의 시작을 말하려면 2017년으로 돌아가야 해요. 연송하 배우가 동료에게 안부를 묻는 ‘잘사냐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이 프로젝트가 다음 스토리펀딩 ‘나는, 무명배우’로 이어졌어요. 당시 “김밥 파는 여배우”로 불리며 화제가 됐던 기억이 나는데,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판을 벌였던 건가요.

연송하_ 안 좋은 상황에 부닥치면, 오히려 전환이 일어나잖아요. 김밥 장사를 하다가 구청에 걸렸을 때, 말 그대로 무너지는 듯했어요. 어떤 오디션에 떨어졌을 때보다 비참했어요. ‘내가 왜 길에서 범법 행위자가 됐지?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대학 나와서 열심히 살았는데?’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오빠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근데 다들 아르바이트하느라 바쁘더라고요. 누구는 무대를 짓고, 누구는 공사 현장에 나가 있고. 제가 상상했던 방식은 아니지만, 신기하게 위로가 됐어요. ‘그래,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당시 SNS에서 카드 뉴스가 한창 유행했어요. 우리 이야기도 그렇게 만들어서 페이스북에 올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빠들에게 의논한 다음, 제 이야기를 먼저 올렸어요. 게시글이 SNS에서 돌고 돌다가 펀딩 제안을 받았고요.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어요. ‘쉬면 뭐 하나, 그냥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응원을 많이 받았어요. 후원금이 560만 원 정도 모였어요. 꽤 큰 돈이잖아요. 본래 단편영화를 찍으려고 했어요. 촬영과 조명 등 기술적 부분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요. 근데 재호 오빠가 펀딩 봤다면서 연락을 줬어요. 일단 만났죠. 단편을 만들 생각이라고 했더니, 오빠가 “장편영화도 할 수 있어”라는 거예요.

 

<시민 노무현>(2019) <대관람차>(2018) 등을 연출한 백재호 감독이 기획과 프로듀서로 참여했죠. 앞서 백 감독의 제안이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렸을 텐데요. (웃음)

연송하_ 순간 솔깃했어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줄도 모르고. (웃음) 장편을 찍기엔 돈이 부족하지 않냐고 되묻자, 배우들이 스태프 일도 같이 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다 같이 고생 문을 열었죠. 1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시간이 흘러버렸네요. 남들은 하루면 할 일을 우리는 사나흘에 걸쳐서 하니까요. 개봉이라고 하니 정말 큰일을 벌인 듯한데, 과정을 뜯어 보면 작고 소소한 일의 연속이었어요. 사실 처음엔 무슨 개봉이냐고 했어요. 저는 그냥 극장 하나 빌려서 고생한 사람들끼리 보면, 그걸로 만족한다고요. 재호 오빠가 <델타보이즈>(고봉수, 2017)를 보여줬어요. 우리처럼 친구들이 모여 만든 영화인데, 개봉해서 관객과 만났다면서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계속 떠오르는 거예요. <역할들>이 기술적으로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이대로 버릴 영화도 아닌 것 같고. 누군가는 알아봐 줄 거라는 생각에 개봉을 결정했어요. 그때부터 미친 듯이 후반작업에 매달렸죠.

김범석_ 송하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진짜 끈질긴 것 같아요. 송하도, 재호도.

<역할들>
<역할들>

윤종구, 김범석 배우와는 극단 골목길에서 동고동락했고, 김원정 배우는 “연극 동지”라고 표현했어요. 다만, 친분만으로 진행하기엔 어려운 일이잖아요. 기획자이자 감독으로서 함께할 이를 찾는 과정에서 무엇을 고려했나요.

연송하_ 극단 생활을 했으니, 오빠들의 성향을 잘 알아요. 얼마나 열정적으로 연기하는지, 무대 밖에서는 또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도요. 머리 쓰지 않고 마음을 다해서 도와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자 배우를 찾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렸어요. 어느 날, 공연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원정 언니를 만났어요. 사실 언니와는 오랜 인연이에요. 언니가 고등학교 1학년, 저는 중학교 3학년일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 워크숍에서 처음 만났거든요. 그날 공연을 계기로 다시 연락을 주고받다가, 언니에게 같이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공연 끝나고 일주일쯤 지나서였나? 언니는 당황했죠. 오랜만에 나타난 애가 뜬금없는 소리를 하니까요. 근데 계획을 듣더니,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한번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세 배우가 참여를 제안받자마자 선뜻 수락했는지 궁금했어요. 어떤 작품에 캐스팅되는 상황과는 전혀 다르니까요. 그때 솔직한 마음은 어땠나요.

김범석_ 글을 써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물론 극단 선생님께 “배우는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듣기는 했죠. 근데 배우는 굉장히 이기적인 존재거든요. 다들 자기 것만, 연기만 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란 말이에요.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어엇?’ 했어요.

연송하_ “나보고 다 하라고?” (웃음)

김범석_ 근데 송하는 우리한테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예요. 송하가 하자면, 해야죠.

윤종구_ 저도 약간 망설였어요. 연기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건 좋지만, 개인 윤종구를 드러내는 건 즐기지 않아요. 뭔가 까발려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타인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오픈해야 하는 상황으로 다가왔거든요. 근데 곰곰이 되짚어보니, ‘어쩌면 내가 숨기고 싶은 만큼 드러내놓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솔직히 ‘그래, 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걸 본다고!’ 싶기도 했고요. 일단 시작하고 나선 최선을 다했어요. 그래봤자 연기 외에는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지만요. 송하가 제일 큰 짐을 짊어지고 여기까지 왔죠.

김원정_ 종구 오빠와 비슷한데, 저 역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어려웠어요. 글쓰기도 부담스러웠고요. 저한테야 큰일이지만, 남들에겐 별거 아닌 이야기일 수 있잖아요. 근데 송하 글을 보면서 용기를 냈어요. 송하는 자신에게 벌어진 큰 사건을 소소한 에피소드로 풀어내더라고요. 범석 오빠와 종구 오빠도 마찬가지고. 내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삶의 일부로 가 닿을 수 있겠구나 싶었고, 그렇다면 이 작업에 참여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5년이나 함께할 줄은 몰랐을 텐데, 어때요? 알았어도 했을 것 같아요?

연송하_ 제가 볼 때는 다들 5년이 흘렀는지도 몰랐을 것 같은데요? (웃음)

윤종구_ 그러게. 오래된 일 같지 않아.

김범석_ 그냥 엊그제 찍은 느낌이야.

연송하_ 나이를 계산해보니 실감이 나요. 34살에 시작했는데, 이제 39살이 된 거예요. 촬영 당시에는 30대 중반이었잖아요. 그래도 지금보다는 에너지가 있으니, 패기 넘치게 뛰어든 거죠. 요새는 몸이 달라요. 허리도 아프고, 작업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웃음)

김원정 ⓒ이영진 

사실 네 배우에게 가장 친숙하고 자신 있는 작업은 연극 아닐까 해요. 펀딩 당시에는 무명 배우의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겠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근데 연극도 다큐멘터리도 아닌, 독특한 극영화를 완성했어요.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아주 많은 이야기가 오갔을 것 같아요.

김범석_ 일단 자주 모였어요. 다들 애주가라서 술도 많이 마시고, 그러다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고.

윤종구_ 우리끼리 “근데 이게 돼? 정말 영화가 되는 거야?” 그랬죠.

연송하_ 초반에는 목표를 딱 정하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무래도 다큐멘터리는 아쉽더라고요. 사실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연기잖아요. 연기할 자리가 적어서, 긴 호흡으로 인물을 그려낼 기회가 없어서 다들 고민하는 시기였어요. 이 기회를 연기하는 데 써보자고 마음을 모았죠. 그렇게 각자 실화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에는 연극 형식을 빌려왔어요. 카메라를 관객이라고 여기며 고정해놓은 상태에서 배우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거예요. 배우들이 일인다역을 맡는다든지, 음향으로만 빗소리를 연출한다든지, 그런 식으로 경제적 효율을 챙길 방안을 강구했고요.

김범석_ 송하가 대단해. 카메라는 계속 픽스라는 거예요. 내가 이유를 물었더니, “오빠 <로마>(알폰소 쿠아론, 2018) 못 봤어? 거기서도 이렇게 하잖아.”

윤종구_ 그때 난 속으로 ‘그건 <로마>잖아…’ 했지. (웃음)

김범석_ 근데 막상 하니까 또 되긴 되더라고요.

 

연출을 따로 공부하거나 경험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냈어요?

김범석_ 송하가 영화광이에요.

연송하_ 에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연출은 전혀 상관이 없더라고요. 정말 힘들었어요. 전문가가 보면 ‘완전 초짜가 만들었구나’ 할 거예요. 편집할 때도 그랬어요. 촬영 감독님이 프레임 끝에 뭐가 걸렸다면서 계속 거슬린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제 눈에는 그게 안 보여요. 배우만 보니까. (웃음) 달리 말하면, 그렇게 있는 그대로 담기를 원하기도 했고요. 실제 풍경이 늘 깨끗하진 않잖아요. 지저분하면 지저분한 대로 찍고 싶었어요. 밖에서 새가 지저귀면, 그 소리도 집어넣고.

김범석_ 그때 송하가 대사를 즉흥으로 시키더라고요. 새를 어떻게 내쫓을 수는 없으니까.

연송하_ ‘세상이 곧 무대’라는 생각으로 합리화했죠. (웃음)

 

배우 자신의 삶에 기반해서, 직접 시나리오를 썼어요. 픽션으로 완성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내 이야기’라는 뜻이에요. 실제 내 모습과 생활을 노출하는 일에 관해 걱정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당시에 어떤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어서 용기를 낸 것 같나요.

김범석_ 종구 형이 제 멘토예요. 하루는 낮에 반주 한잔하고서 같이 성북천을 걸었어요. 누구나 삶의 무게를 안고 살잖아요. 참 힘든 날이었는데, 제가 형한테 말했어요. “형, 나 포기를 못 하니까 너무 힘들어. 진짜 이러다 죽을 것 같아.” 그때 형이 이러더라고요. “범석아, 우리는 사는 게 일인 것 같다. 그게 직업 같아.”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어요. 음, 근데 질문이 뭐였죠?

연송하_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냐고! (웃음)

김범석_ 아, 맞다. 그때 곧 아빠가 될 예정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몸과 마음이 이상했어요. 우울증이 왔더라고요. 저는 운동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인데, 복싱장에 갔어요. 우리 아이가 컸을 때, 아빠 직업을 인지할 나이에 접어들 때를 생각하니까 갑자기 두려워지더라고요. 아이가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아빠는 뭘 하든 절대 포기하지 않는구나. 그게 시작점이었어요.

윤종구_ 작업을 결심한 후에는 적극적으로 임했어요. 영화로 보여준다면, 이야기를 사실로만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안도감도 들었어요. 말은 배우라고 해도, 실제 연기하는 날은 별로 없던 때죠. 애가 둘로 늘어나면서 경제적 부담은 늘었는데, 연극에서 다른 매체로 옮긴 지 얼마 안 된 터라 일이 많지 않았어요. 결국 지방으로 행사를 뛰었어요. 그러다 ‘내가 여기서 대체 뭘 하는 거지? 이러려고 지금까지 30년을 달려왔나?’ 하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든 순간이 있어요. 행사 무대에서는 가수들이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고, 저는 그 앞에서 바람잡이 하며 춤췄던 날이에요. 실상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마당판 같은 곳이죠. 갑자기 술 취한 남자가 막걸리 사발을 들고 무대로 가더니, 여자 가수들한테 막 고함을 치면서 마시라고 강요하는 거예요.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제가 정색할 수는 없잖아요. “아이고, 왜 이러셔~ 저한테 한 잔 주시면 돼. 나 막걸리 좋아한다니까.” 그렇게 달래면서 무대 밖으로 데리고 나왔어요. 근데 그 사람은 거기서 기분이 상했나 봐요. “알았어, 내가 줄게!” 하며 술을 들이켜더니, 제 얼굴에 확 내뿜더라고요. 그 순간에요, 찰나라고 할 정도로 짧은 시간인데 별생각이 다 들었어요. 속에서는 확 올라오지만, 다음을 생각하면 참아야 하는 거예요. 결국 “맛있네, 맛있어! 한 모금 더 줘~” 하며 무난하게 넘겼어요. 그리고는 행사 끝나고 와서 씻는데…

연송하_ 인터뷰가 원래 이런가요? 다들 얘기하면서 우네.

김범석 ⓒ이영진 

차라리 화가 나면 싸우기라도 할 텐데. 내가 나에게 모욕을 줬다는 느낌에 괴로웠을 것 같아요.

윤종구_ 그날 집으로 올라가는데, 옷에서 냄새가 계속 나는 거예요. 진짜 그놈의 막걸리 냄새… 그때 번쩍했어요. 내가 배우라는 걸 잊지 말자, 할 거면 제대로 하자. 아, 미안합니다. 갑자기 울컥하네요.

연송하_ 오빠들이 우리보다 더 여린 것 같다니까.

 

김원정 배우는 어땠나요? 영화 속 원정은 한 집단에 속해 있지만, 마음 붙일 곳이 없는 사람처럼 보여요.

김원정_ 뭔가를 써야 하는데, 딱 떠오르는 소재가 없었어요. 그때 라이터가 눈에 들어왔어요. 내 것이지만 자주 남에게 빌려주고, 그러고 나면 되돌려받기 어려운 물건이잖아요. 사소한 이야기이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경험 아닌가 싶었어요. 자연스레 가장 오랜 시간 속했던 집단을 배경으로 글을 썼죠. 송하가 각색을 도와주면서 좀 더 풍성한 이야기가 됐어요. 다만, 약간 마음에 걸려요. 연극판이 다 그렇진 않거든요. 지금은 오히려 후배를 괴롭히는 선배가 혼이 나죠. (웃음) 제가 어떤 집단 혹은 사람을 겨냥해서 쓴 글이 아니란 걸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비단 극단뿐만 아니라, 회사나 집 등 여느 공동체에서든 일어날 만한 일이라고 봐요.

연송하_ 문제는 범석 오빠였지. 너무 못되게 연기해서. (웃음)

김원정_ 저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tvN, 2018)를 상상했거든요? 아이유처럼 연기하려고요. 머리도 아이유처럼 하나로 묶고. (웃음)

 

근데 선량한 박동훈(이선균) 대신, 못된 슬기(김범석) 선배가 등장했군요.

김원정_ 그러니까요! (웃음)

 

연송하 배우는 김밥 장사하며 생계를 잇는 배우로 등장해요. 그때 경험이 깊게 남았나 봐요.

연송하_ 왜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답답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더 큰 책임감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아요. “너는 하고 싶은 일 하잖아. 그럼 배고파도 참고, 힘들어도 참아. 생활고쯤 알아서 감당해야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연기하고 싶으니까, 그게 나니까 어쩔 수 없이 견뎌야지.’ 그렇게 34살까지 산 거예요. 당시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김밥을 말고, 7시에 버스를 탔어요. 말끔하게 차려입고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데,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참기름 냄새 풍기는 내가, 그런 내 인생이. 처음에는 잘 팔지도 못했어요. 고개 푹 숙이고 기둥 뒤에 숨어 있었죠. 창피했어요. 사람들이 나를 하대할까 봐 두렵기도 했고요. 근데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아주 밝은 목소리로 “김밥 하나만 주세요!”라며 다가오셨어요. 그때 기운이 딱 나더라고요.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토록 움츠러들었나 싶고. 그날 이후, 조금씩 달라졌어요. 자신감도 생기고,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요. 전단 돌리는 아주머니가 화장실 가시면, 짐을 맡아드렸어요. 청소하는 아저씨는 저한테 감기 걸리지 말라면서 뜨거운 물을 가져다주셨고. 어떻게 보면 다른 세계를 만난 거죠. 그동안 무신경하게 지나쳤던 사람을 다른 시점으로 바라보게 됐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용기가 생겼어요. “너희 아무것도 안 하잖아. 앓는 소리 할 시간에 아르바이트라도 해.” 다들 그런 말을 참 쉽게 하잖아요. 조금은 알아주길 바랐어요. 우리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 아니거든요. 연기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해도, 다들 그날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또 나름대로 잘 살고 있어요.

ⓒ이영진 

각자 진지하게 고민하며 시나리오를 썼어요. 이렇게 모인 글을 한 편의 영화로 섞고 엮어내는 과정은 어땠나요.

윤종구_ 사실 우리는 ‘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단편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대본 하나를 썼을 뿐이에요. 각각의 이야기가 지금처럼 연결된 건 오롯이 송하 덕분이에요. 애초 저는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일종의 옴니버스 영화를 상상했어요. 근데 송하가 회의에서 말하는 걸 가만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인물과 배경이 중간중간 교차하고, 마지막에는 네 배우가 한자리에 모이는 식이었어요. 굉장히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이 잘 전달될까?’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나중에 결과물을 보고 놀랐죠. 진짜 해냈구나 싶어서요.

연송하_ 처음이라 가능했던 것 같아요. 왜 있잖아요, 무지에서 오는 용기?

윤종구_ 용맹함! (웃음)

연송하_ 뭐라도 좀 알았다면, 그렇게는 못 했을 거예요.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어차피 네 명의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따로 떨어뜨릴 필요가 있나? 마지막에만 잘 묶어주면 되는 거 아닌가? 배우 생활이라는 공통 주제가 있다 보니, 연결도 부자연스럽지 않았고요. 초반에는 일인다역 콘셉트 없이, 그냥 신 순서만 정해뒀어요. 종구 오빠가 한 번 나오면, 그 다음에는 제 이야기가 나오는 식으로요. 대강 얼개를 잡고 나니,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역할이 보였어요. 다른 배우를 캐스팅해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원정 언니가 불쑥 묻더라고요. “그냥 우리끼리 하면 안 돼?” 다들 연극을 했던 터라, 다역을 맡는 일에 익숙하거든요.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죠. 관객에게 도리어 혼란만 안길 수도 있으니까요. 근데 곧 결정했어요. 어차피 완벽하게 갖춘 상태에서 시작한 작업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걸 만들어내겠나 싶더라고요. 그럴 바엔 남의 기준에 맞추지 말자고,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서로 연기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가능했던 작업 같아요. 일인다역을 선택한 덕분에, 영화 곳곳에 재미도 생겼어요. 김원정 배우 에피소드에서 김범석 배우는 본인이 무대에 등장할 때 음악 볼륨을 한껏 높이라고 주문하는 극단 선배로 나오잖아요. 근데 김범석 배우 에피소드를 보니, 유난히 음악이 자주 쓰이더라고요.

연송하_ 그건 재호 오빠 의견이었어요. 범석 오빠가 음악 얘기를 계속하니, 오빠 장면에 음악을 꼭 넣어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음악을 많이 넣지 말자는 입장이었어요. 좀 설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근데 막상 넣고 보니, 재밌더라고요. 재호 오빠가 후반작업을 많이 도와줬어요. 촬영까지는 대부분 우리끼리 했는데, 믹싱이라든지 색보정 등 이후 작업에는 전문가가 꼭 필요했거든요. 촬영 원본이 워낙 형편없다 보니 다들 고생하셨죠. 포커스 날아간 부분도 일일이 잡아주시고.

윤종구_ 더군다나 우리는 거의 모든 장면을 원신 원컷으로 찍었거든요. 편집의 묘미를 느낄만한, 영화적으로 어떻게 만져볼 부분이 많지 않다는 뜻이죠. 작업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난감했을 거예요.

연송하_ 카메라도 제대로 다룰 줄 몰랐어요. 촬영 감독님한테 딱 하루 배웠어요. 노출은 이렇게 조정하고, 포커스를 이렇게 잡는다. 그러고 나선 카메라를 안 건드렸어요. 촬영 감독님이 세팅해준 대로 다 찍은 거예요. 촬영 마지막 날, 기념사진을 찍으러 모였어요. 카메라를 사진 모드로 돌렸는데,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한 달 동안 그 카메라로 영화를 찍었는데! 결국 핸드폰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어요. 비싼 카메라는 가만히 모셔 두고. (웃음)

 

스스로 ‘초짜’라고 했지만, 다양한 시도가 엿보여요. 특히 김범석 배우 에피소드에 공을 들인 느낌이에요. 촬영 구도라든지 공간 활용이 눈에 띄어요. 다른 배우들이 동작을 정지한 상태에서 김범석 배우 홀로 움직이며, 일종의 슬로우 모션 효과를 연출하기도 했어요.

김범석_ 제가 송하에게 많이 찡찡거렸어요.

연송하_ 아니, 오빠 시나리오가 그랬어요. 원정 언니는 <나의 아저씨>의 아이유를 꿈꿨잖아요. 시나리오도 극적이지 않고, 잔잔했어요. 종구 오빠 시나리오는 슬펐어요. 오래된 아픔과 현재 맞닥뜨린 어려움이 한꺼번에 나오니까요. 근데 범석 오빠 글은 달랐어요. 복싱을 시작하면서 의지와 자신감이 한껏 올라간 게 글에서도 느껴졌어요. 슬로우 모션도 오빠가 낸 아이디어예요. 시나리오를 그렇게 써왔으니, 저는 어떻게든 그 아이디어를 살려야 했죠.

김범석_ 내가 그랬다고? 네가 한 거 아니야?

연송하_ 오빠가 했어. “송하야, 나는 지금 머릿속에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어.” (웃음)

김범석_ ‘행진’을 부르며 두 손을 번쩍 드는 건, 송하 아이디어였어요. 자꾸 저한테 손을 들라는 거예요. 아무래도 송하는 여러 일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현장에서 예민할 수밖에 없잖아요. 손을 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송하가 무서워서 그냥 알겠다고 했어요. 나중에 영화 보고 깨달았죠. 다 이유가 있었구나. 송하야, 고맙다. (웃음)

윤종구 ⓒ이영진 

인터뷰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박재철 윤정일 두 배우에 관해서도 듣고 싶어요. 그야말로 변신을 거듭하며, 일인다역이라는 콘셉트를 이해하도록 설득하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두 배우가 연기한 인물만 해도 열 명이 넘더라고요.

김범석_ 정일이랑 재철이, 종구 형, 그리고 저까지 넷이서 8년 넘게 같이 일했어요. 크루처럼 다니면서 무대도 짓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죠. 정일이를 처음 본 날이 떠올라요. 연기를 전공한 친구가 아니거든요. 어느 날, 무작정 극단에 찾아와서는 선생님 앞에 서서 연기를 하더라고요. 벌벌 떨면서도 끝까지 했어요. 그 순간 정일이가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재철이는 우리 팀에 늘 에너지를 불어 넣어줘요. 센스도 좋고, 까불기도 잘하고. 두 동생 모두 장점과 능력이 아주 많아요. <역할들> 하면서는 형들, 누나들 위해 희생도 많이 했고요.

연송하_ 개봉 앞두고 후시 녹음을 했어요. 벌써 5년이 지났잖아요. 재철이가 자기 연기를 까먹은 거예요. 어떤 목소리와 말투를 썼는지요. 결국 영화를 다시 보고 녹음했어요.

김범석_ 재철이는 이제 글로벌 스타가 됐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금 우리 학교는>에 출연했거든요.

연송하_ 우리들의 글로벌 스타! (웃음)

 

서로 손과 마음을 보태며 만든 작품이구나 싶어요. 스태프 없이 촬영, 조명, 사운드 등을 자체 소화했으니, 촬영장에서도 1인 다역을 맡은 셈이에요. 어떤 경험으로 남았나요.

윤종구_ 힘들다기보다는 즐거웠어요. 연극 외에는 내가 연기하는 인물에게 존재감을 느낄 만한 기회가 거의 없어요.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렇거든요. 난 조연도 아니죠. 행인이 된다든지, 말할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연기를 한다든지. 깊이 고민하면서 한 인물을 건설해나가는 과정이, 그럴 이유가 주어지지 않는 거예요. 비록 우리끼리 만드는 영화이지만, 작품에서 긴 호흡을 갖고 연기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서 힘을 얻어요.

연송하_ 원시인이 처음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다들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매 순간 우왕좌왕했어요. 어쩌다 사소한 거라도 해내면, 곧장 일이 추가됐죠. “소질 있네. 이건 네가 하면 되겠다.” (웃음)

김범석_ 송하 남편은 아내 잘 만난 덕분에, 붐 마이크를 열심히 들었지. (웃음)

 

안 그래도 물어보려 했어요. 가수 노을 멤버이자 배우, 그리고 연송하 배우와는 부부 사이인 이상곤 씨가 영화 음악을 담당했어요. 크레디트를 보니 음악뿐만 아니라, 투자에도 이름을 올렸더라고요. 금전과 노동력 지원, 둘 다 포함하는 의미 아닐까 짐작했어요.

연송하_ 맞아요, 딱 그런 의미에요.

김원정_ 상곤 씨가 매번 촬영장에 왔어요.

김범석_ 한 번도 빠진 적 없지. 붐 마이크만 든 것도 아니야. 현장에서 짐 나르고, 운전하고, 진짜 온갖 일을 했어요. 상곤이가 콘서트에 초대해줘서 아내와 함께 갔는데, 둘 다 깜짝 놀랐잖아요. ‘우리가 아는 상곤이 맞아? 저 사람이 내 술친구 상곤이라고?’ 그만큼 멋있더라고요.

연송하_ 심지어 촬영을 맡아준 적도 있어요. 배우들 6명이 전부 출연할 때는 카메라를 볼 사람이 없잖아요. 그때 도움을 받았죠. 말하다 보니, 고마운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영화 밖에서도 의지가 많이 됐겠어요. 현장 상황을 다 지켜봤으니,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고.

연송하_ 그럼요. 한 집단의 우두머리라고 해야 할까, 리더를 맡은 사람이 종종 욕을 먹게 되잖아요. 다들 서운하거나 아쉬운 점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보통은 그때 얘기할 상대가 마땅치 않지만, 저는 남편한테 털어놓을 수가 있었죠. 대화하는 과정에서 좋은 길을 발견했어요. 동지처럼 옆을 굳건히 지키며, 내조든 외조든 열심히 해줬네요.

연송하 ⓒ이영진 

음악 관련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연송하_ 남편이 엔딩곡 가사를 썼어요. 제가 ‘전부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내가 남아 있더라.’ 같은 내용이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걸 담아서 만들어주더라고요. 오빠 입장에서 보면, 처음으로 우리 영화에서 본업을 하게 된 거잖아요. 작업하며 얼마나 까다롭게 굴었는지 몰라요. (웃음) 눈빛이 확 달라지는 순간이었어요. 어쨌든 여러모로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네 배우 모두 연기를 업으로 삼은 인물로 등장해요. 배우라는 정체성을 끈질기게 붙잡으려 한다는 것이 캐릭터의 공통점인데, 그 와중에 각자 처한 상황이나 고민하는 사안은 조금씩 달라 보여요. 글을 쓰고 연기할 당시,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 혹은 내가 가장 바랐던 것을 들려준다면요.

김범석_ 어릴 적에는 많은 작품에 출연하는 것, 그만큼 돈을 벌고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 것을 성공이라고 정의했어요. 근데 어느 순간, 그게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무엇보다 내가 건강해야,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내 아내와 아들이 나를 믿어주고, 내가 연기를 계속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제가 생각하는 성공은 자신감이에요. 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 사실 불안에 크게 시달렸어요. <역할들>을 찍고 난 후에, 아예 연기를 관두려고 한 적도 있어요. 그 마음이 99퍼센트까지 갔는데, 남은 1퍼센트가 자꾸 걸리더라고요. 그게 뭔 줄 아세요? 억울함이요. 결국 1이 99를 이겼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약도 거의 안 먹어요. 한창 우울증이 심각할 때는 약이 없으면 안 됐거든요. 그때 내가 참 불쌍했어요. 왜 이렇게 힘들지? 왜 담배를 피울 때도 손을 벌벌 떨지? 지금 생각해보니, 계속 연기를 하고 싶어서 그런 거였어요. 요즘은 스스로 너무너무 칭찬해요. 이렇게 건강하게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윤종구_ 뜨고 싶은 마음으로 연기를 시작하지 않았어요. 저는 계속한다는 것에 의미를 많이 두는 사람이에요. 어릴 적에 꿈이 두 개였어요. 하나는 배우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토바이로 전국을 유랑하는 거였죠. 바라는 대로 배우가 됐고, 오토바이를 탔어요. 근데 중요한 건 하는 게 아니라, 계속하는 것이더라고요. 연기든 오토바이든, 어느 방점을 찍은 다음에 내리막길 타고 살살 내려오는 일이 아니었어요. 나는 시작하면 쭉 가야 하는구나. 그 과정에서 다른 이를 부러워하고 싶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솔직히 배 아팠어요. 같이 연기했던 친구나 후배가 주연을 맡고, 그 영화가 극장에 걸리고. 잘 됐다고 박수를 보내면서도 내심 속이 쓰렸어요. 인간이니까. 근데 그걸 넘고 나니, 지금은 편안해요. 어찌 됐든 쟤도 배우, 나도 배우잖아요. 쓸데없는 감정에 영향받지 않고, 계속 나아갈 동력이 생겼어요. 가족도 큰 힘을 주고요. 제가 여전히 연기한다는 사실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도 배우로 살고 싶어요.

 

배우로 살아가기가 참 쉽지 않겠구나 싶어요. 계속해보겠다는 말은 더 나은, 더 괜찮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겠다는 말처럼 들리거든요. 좋은 배우는 곧 좋은 사람을 뜻하나 봐요.

윤종구_ 제가 너무 피곤하게 얘기했나요? (웃음)

김원정_ 불안은 늘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배우는 결국 누군가로부터 선택받는 입장이니까요. <역할들> 작업하기 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왜 자꾸 남의 시선에 나를 맞추지? 왜 그렇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냥 내 멋대로 해보자, 한번 사는 인생인데 나답게 살자. 그런 마음으로 <역할들>에 참여했던 것 같아요. 다만, 지켜야 할 선은 있죠. 예의에 어긋나지 않되,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타인을 대하고 싶어요. 저한테는 관계가 오랜 숙제로 남아 있거든요. 오해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데, 종종 제 말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될 때가 있어요. 목소리도 저음인 데다 말투도 덤덤해선지, 누군가에게는 공격적으로 들리나 봐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이거 왜 하는 거야?”

연송하_ 그럼 옆에 있는 사람은 “미안해, 안 할게”

김원정_ 이렇게 된다니까요. (웃음) 오해를 안 받으려면, 계속 웃어야 하는 건가 싶더라고요. 근데 저도 감정에 기복이 있잖아요. 때로는 속마음을 솔직히 드러내고 싶기도 하고요.

연송하_ 가면을 써야 했던 거네.

김원정_ 친구가 “왜 제목이 <역할들>이야?”라고 물었을 때, 저는 이렇게 답했어요. “영화에서 우리가 다양한 역할을 맡지만, 따지고 보면 일상에서도 비슷한 것 같아. 집에서는 딸, 회사에서는 직원, 필라테스를 배우러 가면 회원 역할을 하잖아.” 누구나 한 가지 역할만 하며 살지는 않아요. 바로 그게 우리 영화에서 말하려는 이야기 아닐까요.

 

연송하 배우는 어땠나요? 사실 불안과 욕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건, 꿈이라는 장치를 반복해서 사용한 연송하 배우 에피소드를 보면서예요. 송하는 꿈에서 그토록 바라는 무대에 오르는데, 늘 악몽으로 끝나요. 불안과 욕망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는구나 싶었죠. “꿈 깨”라는 말을 이미지로 보여준 느낌도 들고요.

연송하_ 실제로 무대 공포증이 있고, 꿈도 자주 꿔요. 꿈에서 갑자기 대본을 받는 거예요. “공연까지 이틀 남았어. 너 당장 외워야 해.” 그럼 저는 연기하고 싶은 마음에, 일단 알겠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정작 무대에 서면, 입에서 대사가 안 나와요. 선생님과 다른 배우들은 저만 쳐다보고 있고. 말씀하신 대로 욕망인가 봐요. 배우라면 누구나 미래의 제 모습을 상상하잖아요. 몇 년 후에는 드라마 조연을 하고, 또 얼마 지나면 주인공을 하고. 그렇게 계획을 세우며, 다짐하죠. 난 어디까지는 갈 거야.

김범석_ 난 이제 그런 거 없어.

연송하_ 원래는 있었지?

김범석_ 한동안 그랬지. 근데 그런 생각이 나를 갉아먹더라고.

연송하_ 맞아, <역할들> 촬영 당시가 좀 그랬어요. 매사가 짜증스럽고, 피곤했어요. 그러다 영화를 만들면서 다시 재미를 느낀 거예요. 이렇게도 연기를 계속할 수 있구나 싶었죠. 그때부터 다짐이 바뀌었어요. 너무 정신 차리면서 살지 말자고요. 지금은 나사를 풀어 두려고 해요. 조금 모자라면 어떤가 싶어서요.

<역할들>
<역할들>

다음 영화도 생각 중이에요?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경험한 다음이라 ‘모 아니면 도’일 듯해요. 영화에 완전히 질려버렸거나, 아니면 푹 빠졌거나.

연송하_ 당장 계획은 없어요. 당분간은 글만 쓰려고 해요. 물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아요. 다만, 지금 같은 방식으로 두 번은 못 할 것 같아요. (웃음) 대신 오빠나 언니가 연출한다고 하면, 당연히 도와야죠.

 

폭탄 돌리기 같은데요? (웃음)

김범석_ 잠깐 ‘나라면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아니예요. 저는 못 해요.

연송하_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예 몰랐으면 했을 텐데.

김범석_ 이건 사담인데요, 예전에 송하랑 같은 극단에 있을 때…

연송하_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나중에 우리끼리 술 마실 때 얘기해도 되지 않나. 오빠, 여기 일하러 온 자리예요.

김범석_ 잠깐만. 그때 송하랑 포스터도 많이 붙였어요. 땀 뻘뻘 흘리면서 돌아다녔죠. 그러다 하루는 얘가 무슨 ‘삐딱선’을 탔는지, 너무 꼴보기가 싫은 거예요. 송하한테 말도 안 걸었어요. 송하가 대단한 게, 자기도 내가 싫으면 그냥 서로 모른 척해버리면 되잖아요. 근데 어느 날, 아르코 극장을 지나는데 갑자기 얘기 좀 하자면서 불러 세우는 거예요. 그리고는 제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어요. “오빠, 나한테 그러지 마” 그때 깨달았어요. 송하는 나한테 진짜 소중한 사람이구나. 제가 사랑하고 아끼는 동생이에요. 갑자기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스스로 무명 배우라고 생각하세요? 각자 ‘무명’이라는 타이틀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해요.

윤종구_ 언젠가 사회적으로 무명 배우를 조명한 적이 있어요. 영화 시상식에서 무명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유명한 배우들이 텔레비전에 나왔죠. 그때도 나는 식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에 무명 배우가 어디 있나요. 다 이름이 있고,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는 주인공인데. 다만, 바깥에서 나를 그렇게 볼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모르는, 작품에서 만난 적이 없는 배우니까. 그런 맥락이라면 이해하겠어요. 하지만 굳이 나를 무명 배우라고 비하하며, 위축되고 싶지는 않아요. 좀 더 긍정하고 인정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어차피 난 흔들리지 않을 테니, 원한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다. 그런 말에 지나치게 신경 쓰며 걱정할 필요 없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김원정_ 저도 영화를 찍을 때보다는 나이를 먹어선지, 조금 더 단단해진 듯해요. 물론 아직도 철없고, 흔들릴 때도 많지만요. 어렸을 때는 인기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얼굴도, 이름도 많이 알려져서 대중교통 이용하기가 어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연송하_ 난 지금도 그래.

김원정_ 너무 불편할 것 같지 않아?

연송하_ 그래도 느껴보고 싶어.

김원정_ 저는 배우로서는 꾸준히 알려지고 싶지만, 이제 그런 욕심에서는 벗어났어요. 지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에요. 그러다 보면 천천히 스며들지 않을까요.

 

가랑비가 되자!

윤종구_ 가랑비처럼 적시는 배우들!

김범석_ 8년 전이었나요. 원정이를 전혀 몰랐을 때인데, 우연히 공연하는 모습을 봤어요. 연기를 정말 잘하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무명 배우이지만, 저한테는 위대한 배우가 된 거죠. 이제 무명 배우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서,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삶을 책임지는, 자신을 충실히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멋지다고 생각해요.

연송하_ 동감이에요. 제가 프로젝트 제목을 ‘나는, 무명 배우’라고 정했잖아요. 거기엔 약간 풍자적 의미를 담았던 것 같아요. 결국 무명 배우라는 호칭은 다른 사람이 붙이는 거예요. “쟤는 A급, 얘는 B급” 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저를 무명이라고 불렀죠. 사실 내가 나를 무명 배우라고 소개하는 건, 되게 가슴 아픈 일이거든요. 근데 현실적으로 내 위치를 가늠해보면, 틀린 말이 아닌 거예요. 가족 외에는 내가 배우라는 걸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차라리 스스로 “나는 무명 배우야”라고 인정하면서 또 다른 시각과 입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단역이든 조연이든 무명 배우든, 존재의 크기는 같잖아요. 우리가 세상에 쏟는 힘도, 쓰는 시간도 똑같아요. 남들이 1시간 쓸 때, 무명 배우라고 10분 쓰는 거 아니에요. 무명 배우도 당신과 같은 곳에 사는, 당신만큼 애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지금 무명 배우냐고 묻는다면, 맞아요. 저는 여전히 무명 배우죠. 근데 괜찮아요.

김범석_ 좋아, 명확해!

 

풍자라는 단어가 다행스럽게 들리네요. 곤경에 처하면 ‘누가 날 함부로 대하기 전에, 내가 가장 먼저 날 함부로 대해버릴 거야’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게 자신을 내몰지 않기를 바랐거든요.

연송하_ 제가 절망했으면, 무명 배우라는 말을 못 썼을 거예요. 괜찮으니까 쓴 것 같아요. 무명 배우라는 단어가 밉거나 싫지 않아요. 한편으로는 희망을 품은 단어처럼 보이거든요. 아직은 무명 배우이지만, 이름을 알릴 기회는 앞으로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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