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살고 싶어서
<고양이들의 아파트> 정재은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2-03-17

정재은이 고양이와 함께 돌아왔다.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2001)로부터 꼬박 20년 만이다. 인천 서쪽 끝에서 스무 살을 맞이한 다섯 여성을 뒤따르던 카메라는 서울 동쪽 끄트머리로 옮겨 왔다. 화면에는 변두리를 배회하는 청춘의 열기와 낙담이 뒤엉키는 대신, 철거를 앞둔 거대한 아파트가 보인다. ‘국내 최대 규모 재건축’이 결정되고 나서, 아파트에는 근심 어린 질문이 퍼져 나간다. 건물은 무너져 내리고 사람은 떠나는데, 그럼 고양이들은? 둔촌주공아파트는 주민뿐만 아니라, 최소 250여 마리의 고양이가 거주하는 ‘고양이들의 아파트’이기도 했다. 고양이는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삶의 터전을 쉽게 바꾸지 않는 정주 동물이다. 주민들은 오랜 시간 만나며 눈에 익은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이고, ‘밥자리’를 만들어 사료와 물을 내어줬다. 적당한 거리를 받아들이면서 더불어 사는 평화가 파괴될 위기에 처하자, ‘둔촌냥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동네 고양이들이 안전하게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도우려 나선 것이다. 정재은은 낡은 아파트와 분주한 사람들, 그리고 도무지 속내를 알기 어려운 고양이들을 나란히 응시한다. 그중엔 ‘티티’도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공장 단지를 헤매다가 지영(옥지영)의 품에 안겼던, 다섯 친구의 손을 모두 거치며 말없이 안부를 묻던 새끼 고양이. <고양이들의 아파트>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등장한다. ‘둔촌냥이’ 활동가가 케이지 문을 열자, 티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네모난 아파트 안으로, 드디어 제집에 왔다는 듯 홀가분한 뒷모습으로.

 

 

2020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 당시 인터뷰를 제안했던 적이 있다.

물론 거절했겠지.

 

다정한 거절이었다. “저를 섭외 못 하면 혹시 곤란해지나요?” 되물었거든. 무엇보다 말하기에 대한 피로가 느껴져서 길게 설득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에 관해 말한다는 게 썩 편하진 않다. 사실 말로 설명하기 싫어서 영화를 만드는 것 아닌가. 게다가 늘 처음 말하는 것처럼 얘기해야 하는데, 난 그게 잘 안 되더라. (웃음) 본래 인터뷰를 힘들어하는 편이지만, 다큐멘터리를 하면서 더 싫어하게 된 것 같다. 대화 자체가 매우 진지하게 흘러갈 때가 잦고, 프로젝트를 반복해서 설명해야 한다. 실은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개봉할 마음이 별로 없었다. 어쨌든 오랜만에 관객과 만나게 됐으니,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극영화에 비해, 홀로 감당할 부분이 많으리라 짐작한다. 영화보다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최근 행보라든지, 주요 이슈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을 테고.

다큐멘터리로 관객 앞에 서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들기는 했지만, 내가 곧 영화에서 다루는 활동의 당사자는 아니다. 물론 다큐멘터리 감독 중에는 거의 당사자라고 할 정도로 활동에 깊숙이 참여하며 영화를 찍는 분도 있다. 그런가 하면 나는 이제껏 영화 속 세계에 발을 완전히 담그지는 않은 상태로, 일정 거리를 지키면서 작업했다. 어느 때는 관객에게 적절한 답변을 줄 수가 없어 미안해진다. 감독이라기보다는 활동가로서 답해야 하는 순간이 꽤 많거든. 한편, 영화적 미학을 논하기도 어렵다. 다큐멘터리는 우연적 요소가 풍부한 작업이고, 영화에는 감독이 원하는 대로 찍지 못한 장면도 많다. 작업할수록 느낀다. 아, 다큐멘터리를 말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구나. 이번에 홍보사에서 동반, 공존, 공생 같은 단어로 영화를 설명해줬다. 좋은 말인데, 사실 영화를 만들면서는 떠올리지 못했던 단어들이다. 그러니까 내 입으로 말하면 너무 부끄러워지는 거다. 내 말을 통해, 이 ‘피시’함이 드러나도 괜찮은가? 난처하지. ‘사실 난 이렇지 않으면서…’ 싶고. (웃음)

 

개봉할 마음이 없었다는 건 무슨 뜻인가.

영화를 완성하고 개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좀 혼란스러웠다. 그간 내가 찍어온 인물들은 아티스트를 포함해서 대개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이었다. 시민사회에 기반한 정치적 활동 혹은 활동가를 찍은 적은 없고, <고양이들의 아파트> 역시 그게 메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 활동을 스스로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물론 동물 구조 활동과 ‘둔촌냥이’ 프로젝트는 중요한 의의를 지니지만, 나로서는 ‘이 활동과 인물을 어떤 식으로 소개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러닝 타임을 줄였다. 짧게 가자고, 오히려 더 영화적으로 접근하자고 판단했던 거다.

<고양이들의 아파트>
<고양이들의 아파트>

그래서인지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보고 나면, 작업을 결심한 첫 번째 요인이 뭐였을까 궁금해진다. 고양이, 아파트, 사람 중 무엇에 가장 먼저 끌렸나.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사람에게 1도 관심이 없었다. 내 눈에는 아파트가 도시처럼 보였다. 사라짐이 예정된 거대한 도시. 아파트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을 찍고 싶었고, 그 장면을 영화의 엔딩으로 상상했다. 그걸 어떻게 풀어내느냐, 어떤 이야기를 찍느냐는 문제에 관해서는 운이 좋았다. 고양이들이 보였고, 이 과정을 사람이 아닌 고양이의 시선으로 따라가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재개발과 해당 지역의 고양이, 둘 다 한국 사회에서 무척 중요한 이슈 아닌가. 두 가지를 동시에 담는 프로젝트를 시도해보자고 마음먹게 됐다.

 

‘둔촌냥이’ 활동가 이인규 씨에게 초대를 받아서 아파트에 처음 방문했다고.

둔촌주공아파트의 존재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단편 <고양이를 돌려줘>(2012)를 둔촌주공아파트에서 촬영했거든. 그때만 해도 둔촌주공아파트는 재건축을 확정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다 인규 씨를 만났고, 함께 아파트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는 재건축이 확정되어 관리 처분을 앞둔 상황이었다. 얼마 후면 아파트가 텅 빌 테니, 촬영하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 <나비잠>(2018) 촬영을 마치고, 한창 편집과 후반 작업에 열중하던 시기다.

 

2017년 무렵이겠다.

맞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개봉을 준비하던 때다. 2016년 9월에 인규 씨와 둔천주공아파트를 방문했고, 2017년에 첫 촬영을 했다. 그 사이에 예산 마련 등 프로젝트 세팅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다큐멘터리는 제작과 연출, 출연자 섭외까지 동시에 진행해야 하니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앞서 “거대한 도시”라고 표현했듯 둔촌주공아파트는 대규모 단지다. 드론으로 촬영한 전경을 보며, 조금이나마 규모를 실감했다. 공간을 파악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듯하다.

하루에 아파트 전체를 둘러보려면, 걸어서는 불가능하다. 단지 안에서도 계속 차로 이동해야 한다. 드론 샷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영상과 샷의 일부로써 이미 흔하게 사용되고, 어떤 면에서는 낭비하듯 쓰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근데 둔촌주공아파트의 경우, 드론이 아니면 보여줄 수가 없더라. 드론을 사용해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규모가 엄청나니까.

정재은 ⓒ이영진  

그 와중에 고양이에게는 공간의 경계가 사람보다 훨씬 희미하지 않나. 아파트, 상가, 놀이터, 지하실 등 여러 공간을 드나들고, 그중에는 촬영에 불리한 조건을 지닌 곳도 많았을 텐데.

따라가기가 정말 어렵지. 촬영을 계획한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고양이를 보면, 일단 찍고 봤다. 그 고양이가 어디로 가는지, 또 어떤 고양이인지 파악하려면, 우선 팔로우를 해야 하니까. 촬영 구도부터 카메라 장비에 이르기까지 계속 고민이 필요했다. 건물이나 인간에 비하면, 고양이는 아주 작은 개체다. 조금만 거리가 생겨도 화면 안에서 너무 멀어지는데, 그렇다고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다. 고양이들이 놀라지 않는, 동시에 풀샷이 가능한 적정 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카메라도 최소형을 사용했다. 고양이들이 검은 물체나 카메라 같은 기계 장치를 무척 싫어하거든. 트라이포드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스탠드형 짐벌로 촬영 대부분을 소화했다. 촬영 감독들이 많이 고생했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면, 각자 흩어져서 고양이를 찾았다. 발견하는 사람은 찍고, 다른 사람은 또 어딘가에서 헤매고. 그러다 누가 “여기 좀 와보세요” 하면, 그쪽으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촬영 팀은 어떻게 꾸렸나.

촬영은 심플하게 진행하는 편이다. 다큐멘터리 작업에서는 감독과 촬영 감독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데, 나는 직접 촬영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동료를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으로 만드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나와 작업했던 친구들은 이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모두 할 수 있는 촬영 감독들이 됐다. 이번에는 메인 촬영에 다큐멘터리 경험이 많은 사람 한 명, 세컨드이자 촬영보조 한 명, 그리고 사운드 체크는 내가 맡았다. 이렇게 세 명을 중심으로 움직이되, 인물이 좀 더 늘어날 때는 인력을 따로 추가했다.

 

<말하는 건축가>(2011) <말하는 건축 시티:홀>(2013) <아파트 생태계>(2017)로 건축 다큐멘터리 3부작을 완성했고, 스스로 ‘건축 애호가’라고 밝히기도 했다. 여행지에 가면 습관처럼 건축물을 살피고, 극영화에서도 공간을 많이 활용한다고. 건축 애호가의 눈으로 봤을 때, 둔촌주공아파트는 어떤 매력을 지닌 공간이었나.

1980년대에 준공한 오래된 아파트이자, 국내 최대의 단지형 아파트다. 단지형 아파트는 한국 주거 공간의 큰 특징인데, 나는 이러한 건축물이 왜 생겼으며 그 역사는 어떠한지 줄곧 궁금했다. 아파트를 통해 도시 주거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관련하여 공부와 작업을 병행했다. 사실 둔촌주공아파트는 내 관심 밖이었다. 이미 아시아선수촌아파트를 찍은 다음이라 감흥이 덜했다. 설계나 배치 측면에서 보면, 아시아선수촌아파트가 훨씬 아름다워 보였거든. 근데 주민들의 반응이 특이했다. 다들 둔촌주공아파트를 너무나 사랑하더라. 떠나면서도 계속 아쉬워하고, 그러니 인규 씨는 ‘둔촌냥이’ 프로젝트도 시작하고. 이 아파트를 그토록 아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찬찬히 돌아봤다. 둔촌주공아파트에 처음 입주한 대다수 주민은 대도시를 경험하지 않은 채,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다. 덕분에 그곳에는 일종의 농촌 공동체 문화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저층형과 고층형 아파트의 배치라든지 녹지 공간을 디자인하는 방식에도 무척 놀랐다. 반포주공아파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단지형 아파트는 평지에 조성됐다. 모래로 덮은 한강 변에 아파트를 많이 세웠으니까. 근데 둔촌주공아파트는 기존의 산비탈과 언덕을 밀어내지 않고, 아파트 배치에 자연스레 이용했다. 바로 그런 점을 아름답다고 느꼈다. 단지 오래되고 낡아서가 아니라, 그만의 특별한 매력을 지닌 아파트이기에 기록하고 싶어졌다. 그 아름다움 또한 얼마 후면 완전히 사라질 것이기도 하고.

<고양이들의 아파트>
<고양이들의 아파트>

영화 속 아파트에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새와 나무 등 생명을 지닌 비인간 존재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특히 재개발 이주가 시작되면서 “사람도 없고 차도 없고 고개만 돌리면 고양이가 보이는” 상황에 접어드는데, 마치 비무장지대의 생태계처럼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더러 있다. 

아파트가 파괴되기 직전, 신기루처럼 존재했던 풍경이다. 새로운 자연환경이 만들어지고, 남은 동물끼리 나름의 관계를 형성했다. 지속할 수 없는, 판타지에 가까운 시간이었지.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면, 우리 모두 나가야 했다. 근데 사람들이 떠난 후 공사가 실행되기까지 약 1년 6개월이 걸렸다. 당시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가서 촬영했으니, 아파트 생태계의 변화를 꽤 길게 지켜볼 수 있던 셈이다. 주민들이 빠져나가고 아파트가 조용해지자, 주변에서 새들이 엄청나게 몰려들더라. 서울에 사는 새들은 다 여기 모인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우리 촬영 팀에서 새까지 찍는 건 무리였다. 새를 구별할 수도 없을뿐더러 촬영에도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했다. 국내 조류 촬영의 대가로 손꼽히는 김수만 감독님께 연락을 드렸다. 따오기, 도요새 등 귀한 새를 전부 찍고 다니는 분이다. 자동차 안에 텐트와 침낭, 취사도구 등 온갖 살림살이를 갖춰놓으셨더라. 우리와는 촬영 방식이 전혀 달랐다. 일단 아파트에 도착하면, 망원경으로 주변을 한 바퀴 쭉 훑어보셨다. 나는 봐도 모르거나 심지어 발견하지도 못했던 새들이 그분 눈에는 다 보이는 듯했다. 우리가 고양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 김수만 감독님은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관찰하는 식이었다. 실은 새를 촬영한 분량만 해도 상당하다. 30분짜리 단편영화 한 편이 나올 정도이고, 영화에 넣지 못해 아쉬운 장면도 참 많다. 우리가 황조롱이를 찍었거든. 그냥 새를 찍었다는 게 아니라, 황조롱이와 까치의 싸움부터 황조롱이의 교미 등 정말 흥미로운 장면을 담았다. 근데 그걸 영화에 넣으면, 갑자기 내용이 다른 데로 튀면서 영 이상해지더라.

 

차기작으로 <새들의 아파트>를 만들어야겠다. (웃음)

진짜 만들고 싶다. 촬영 분량이 아깝기도 하고, 무엇보다 새의 생태를 지켜보며 많이 배웠다. 애초 김수만 감독님께 부탁드린 장면은 따로 있다. 고양이가 새를 잡는 모습을 꼭 찍어주십사 했지. 고양이와 새는 독특한 면모를 지닌 관계이고, 둘을 둘러싼 오해도 워낙 많지 않나. 결국 그 장면은 찍지 못했지만, 새를 관찰하는 건 무척 즐거운 체험이었다. 아파트에는 다양한 새가 찾아왔고, 나무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각각 달랐다. 아마 아파트에 사람과 차가 돌아다녔다면, 소리의 차이를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다. 김수만 감독님처럼 새를 찍는 분들이 부럽기도 했다. 고양이는 개체마다 털 색깔이며 얼굴 생김에 이르기까지 특징이 다르지 않나. 말하자면, 섞어 쓰는 데 한계가 있다. 근데 새는 완전히 자의적으로 편집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게 가능하더라. 각각 다른 개체를 찍더라도 탄생부터 죽음까지 풀어낼 수 있지. 고양이와 사람은 그게 어렵다. (웃음)

 

새를 보며 “많이 배웠다”고 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둔촌주공아파트를 상징하는 거대한 굴뚝 위에 까치가 집을 짓더라. 땅에서 주운 나뭇가지를 물고, 아파트 십몇 층 높이와 맞먹는 굴뚝까지 날아가는 거다. 나뭇가지 옮기는 일을 반복하며 서서히 둥지를 완성해 나가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니 경이롭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아파트가 무너지는 와중에, 새들은 집을 짓는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기도 했고. 어느 날에는 아파트에 수도가 전부 끊겼다. 그곳에 사는 사람이 더는 없으니까. 봄이었다. 새들은 생식을 위해 한참 물이 필요할 때 아닌가. 그러다 무슨 일인지 상수관이 하나 터져서 갑자기 물이 나왔는데, 거기 가보니 새들이 바글바글하더라. 무척 감동적인 순간이었고, 도시에 사는 새들에게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아파트 재건축이나 도시 개발이 동물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들 삶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오히려 인간보다는 동물을 향한 관심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았나 싶다.

정재은 ⓒ이영진  

고양이가 등장하는 일부 장면은 영화 속 영화처럼 느껴진다. 부제를 붙이면 ‘고양이의 모험’ 정도 될까. 고양이를 구조하는 사람들을 찍다가, 돌연 고양이를 뒤따라가며 아파트 내부를 이리저리 파고든다. 한 번에 촬영한 장면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운 좋게 단번에 찍은 장면도 있다. 길을 가다가 멈춘다, 앉아서 잔다, 일어나서 먹을 걸 달라고 배를 보인다, 뭔가를 얻어먹고 나면 자리를 떠난다. 사실 고양이는 이 정도 패턴을 반복하거든. 근데 사람이 없을 때, 너덧 마리가 동시에 무리를 지어서 이동하는 모습은 꼭 담고 싶었다.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지 않나. 대개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한 마리씩 나타나서 움직이니까. 물론 쫙 몰려서 이동하다가도 금세 흩어지다 보니, 해당 신으로 어떤 이야기를 이어가기란 어려웠다.

 

이때 흐르는 음악도 인상적이다. 멜로디를 강조하기보다는 고양이의 걸음걸이나 태도를 묘사하는 의태어 같은 음악을 사용했다. 장영규 음악감독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작업했나. 

음악 감독님과의 소통은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슬픈 음악을 만들어달라 했다고 치자. 내가 느끼는 슬픔과 상대가 받아들이는 슬픔의 결은 각기 다를 수 있다. 특히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짤막한 이야기를 여러 개 연결한 구성이기에,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음악이 나오기엔 어려웠다. 그래도 장영규 음악 감독님이 얼마나 유니크한 분인지, 어떤 작업을 해오셨는지 익히 알기에 부탁드렸다. 특정 악기나 멜로디를 주문하지는 않았다. 전체보다는 각 장면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고양이라면 어떻게 느낄까?”라는 질문을 드렸다. 고양이의 느낌으로 다가가기를 바랐거든. 어떤 스토리가 읽히거나 관객을 자극하기보다는, 고양이를 가만히 지켜볼 수 있는 음악이 어울릴 거라 여겼다. 음악 감독님이 힘들어하시기는 했다. 작업하며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동물을 다루기는 하지만, 동물을 통해 억지로 이야기를 만드는 영화는 아니지 않나. 신 하나하나에 충실하자는 느낌으로 접근했기에, 음악 작업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과 비교하면, 고양이는 훨씬 까다로운 촬영 대상이리라 짐작한다. 주로 등장하는 고양이는 반달, 뚱이, 깜이, 노랭이, 예냥 등이다. 수많은 고양이 중에 이들이 영화에 들어온 이유가 있나.

사람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는 고양이를 캐스팅한 것 같다. 집에 사는 고양이는 계속 찍으면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게 가능하지만, 길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찾아간다고 늘 만날 수 있는 애들이 아니니까. 결국 컷이 아니라, 독자적 신으로 반응할 수 있는 고양이에 집중했다. 내가 신마다 표현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들이 있고, 그러한 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애들이 영화에 남았다. 물론 닥치는 대로 찍고 나서, 나중에야 ‘얘가 얘구나’ 발견하는 경우도 많았다.

 

후반부를 제외하면 인터뷰 장면이 거의 없다. ‘캣맘’인 아파트 주민과 ‘둔촌냥이’ 활동가, 전문가 등 여러 인물이 출연하는데, 이름과 직업 등 개인 정보 역시 표기하지 않는다. 관객 스스로 맥락을 살피며, 이들의 정체를 유추하도록 구성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친절한 설명문 내지는 정보문의 형식을 띠는 다큐멘터리가 많아진 것 같다. 아무래도 대다수 관객은 방송 다큐멘터리에 익숙하기도 하고. 근데 나는 다큐멘터리를 하면 할수록, 영화 본연의 요소가 힘을 발휘한다는 믿음이 확고해진다. 계속 찍어나가면, 그 쇼트들이 모여 영화가 되면, 시공간의 변화는 자연스레 담길 거라고 본다. 인물들의 나이나 직업을 밝히지 않아도, 이미 영화에서 그들의 역할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럼 관객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지 알고 보면 감상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의견도 있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러한 정보가 도리어 영화적 감상을 방해하지 않나 싶고, 차라리 정보를 적게 줄 때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어당길 수 있으리라 본다. 관객 스스로 유추 가능한 부분까지 구태여 설명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나는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다큐멘터리적인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들의 아파트>
<고양이들의 아파트>

덕분에 대등한 시선이 돋보인다. 주민뿐만 아니라, 고양이와 그들의 이주를 돕는 활동가까지 모두가 아파트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대상 간에 위계를 두지 않겠다는 마음인가. 

다큐멘터리를 처음 만들 때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아파트 생태계>부터는 인포메이션을 거의 넣지 않았다. 나이나 직업 등을 떠나서 그냥 아파트 주민으로 바라보길 원했다. 이는 결국 감독이 관객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내가 어떤 정보를 취하고, 영화에서 그 정보를 어떻게 끝까지 끌고 나가느냐. 근데 극영화와는 달리, 다큐멘터리에서는 이상하게 한 가지 방식만 고수한다는 느낌이 들더라. 관객의 집중을 끌어내는 방식이 너무 서툴다고 해야 할까. 아마 어떤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이해한 게 맞나? 혹시 내가 모르는 비밀이 더 있나?’ 생각할 수도 있다.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드니까. 하지만 전부 안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를 통해 극히 일부만을 접할 뿐인데, 그렇다면 그 일부를 설명이 아닌 감각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게 나의 소망이다.

 

개봉 후, 관객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겠다.

인물이나 프로젝트에 관한 설명이 적다 보니, 오히려 고양이의 표정과 몸짓이 잘 보인다고 하지 않을까. 이번에 한글자막을 넣은 건, 나로서는 큰 결정이었다. <말하는 건축가> 개봉 당시, 주변에서 자막을 쓰라는 요구가 많았다. 정기용 씨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내가 끝까지 반대했다. “제목이 <말하는 건축가>인데, 사람들이 자막에 집중하면 안 되지!” 사실 나는 자막을 쓰지 않은 덕분에 <말하는 건축가>가 흥행했다고 생각한다. (웃음) 지금은 그때보다 다들 자막에 익숙해진 상황이고, 무엇보다 TNR(trap-neuter-return, 길고양이를 인도적 방법으로 포획하여 중성화하고 재방사하는 활동)처럼 동물 구조 활동에서 쓰이는 용어가 계속 등장하지 않나. 관객이 힘들어할 수도 있겠다 싶어 자막을 삽입했다.

 

아파트를 다루는 작품이지만, ‘건축 3부작’보다는 오히려 <나비잠>(2018)이 떠오르더라. <나비잠>을 개봉하며 “우리 사회도 이제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고 했다. 그 말을 지금 생각해보면, 삶을 다른 위치와 각도에서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아파트의 노화와 죽음은 어떻게 보였나.

재미있네. <고양이들의 아파트> 1차 포스터가 나왔을 때, 친구들한테 보여주며 어떠냐고 물어봤다. “<나비잠> 같은데?”라고 하더라. 사실 둘 다 같은 디자이너가 만들었다. (웃음) 사람의 죽음뿐만 아니라, 공간의 소멸 또한 내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다. 어떻게 보면 재건축은 창조적 파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건물을 탄생시키기 위해 기존의 것을 죽이는 일이니까. 근데 돌이켜보면 그 아파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았나. 6천 세대가 40년 가까이 거주했던, 아주 밀도 높은 공간이다. 인간이 겪을 법한 수많은 일이 그 안에서 벌어졌겠지.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온갖 정령과 영혼이 머물던 곳 아니겠나. 아파트가 무너질 때, 그저 돌덩어리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티티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등장할 때처럼 <고양이를 부탁해>와 겹쳐 보이는 순간도 있다. 그러고 보면 그림을 그리는 김포도 작가는 텍스타일 디자이너를 꿈꾸는 지영과,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발행한 이인규 활동가는 친구의 손을 잡고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태희(배두나)와 닮은 면이 있다.

나도 깜짝 놀랐다. 예냥이를 입양가족에게 인계한 정미진 씨와 만났을 때는 더 그랬다. 세 사람이 ‘둔촌냥이’의 주축 멤버인데, 미진 씨는 딱 혜주(이요원) 같은 캐릭터거든. 칼 같은 성격의 직장인에, 결혼까지 일찍 하고. (웃음) 그래서 영화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아쉽게도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 하여간 세 인물이 등장했을 때는 나 역시 ‘<고양이를 부탁해>의 연장인데?’ 싶었다. 그만큼 내가 만든 캐릭터가 보편성을 지녔다는 뜻이지. (웃음)

<고양이들의 아파트>
<고양이들의 아파트>

20년 전 지영(옥지영)은 새끼 고양이를 집에 데려왔다가 할머니에게 핀잔을 듣는다. “괭이는 영물이라 집에 들이면 못 써.” 시간이 흘러 <고양이들의 아파트>에서는 재개발을 앞둔 주민들이 고양이의 주거지 상실을 걱정하며 이주를 계획한다. 이쯤 되면 정재은에게 대체 고양이란 뭘까 싶은데, 작품과 작품 사이에서 변화를 체감하는 개인적 순간은 어땠나.

뭐, 나한테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다. 20년 전에는 고양이를 키우던 때라, 영화에도 고양이가 자연스레 들어왔던 것 같다. 지금은 고양이를 인식하는 문화가 크게 달라졌다. 길고양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이러한 풍경이 관객에게 일종의 도시 우화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 봤다. 도시에서 사람들이 맺는 관계, 비인간 존재와 마주하는 순간, 그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일. 그런 것들을 통해 질문해보고 싶었다. 아파트가 그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투자 대상이 아니라, 그 이상이 될 수 있다면? 우리가 아파트라는 공간에 애정을 품을 수 있다면? 그럼 도시에서의 삶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아지지 않을까.

 

재건축이라는 사업의 관점으로 보면, 고양이는 사소한 걸림돌 혹은 마냥 안쓰러운 연민의 대상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고양이는 생명을 지닌 구체적 존재이자, “우화”라고 표현했듯 사회적 가치를 내포한 상징처럼 읽히기도 한다.

맞다, 실은 고양이만 나와도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신기하게도 사람이 나올 때보다 고양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오히려 집중력이 높아지더라.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왜일까? 사람이 아니라서, 타종이기에 더 눈길이 가는 걸까? 그러다 보니 신의 길이를 정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고양이가 흙산을 걷는 장면을 30분 정도 찍었다. 보통 극영화에서는 잠시라도 대사가 비면, 관객들이 못 참지 않나. 근데 고양이를 볼 때는 참는 거다. 그냥 하염없이 걷기만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아주 많은 상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니까. 처음에는 거기에 음악을 넣었다. 별로더라. 시적인 내레이션도 넣어봤는데, 역시나 별로였다. 아무런 장치 없이 고양이에게만 집중할 때, 비로소 느낌이 살아났다. 그럼 그 장면을 몇 분으로 보여줄 것인가. 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은 과연 어느 정도인가.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깨달았다. 다큐멘터리는 감각을 열어주어야 한다. 한동안 바라보는 것, 그렇게 다른 존재와 교감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역할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가을에는 <고양이를 부탁해> 개봉 20주년을 맞이하며 재개봉을 진행했고, 올해 봄에는 오래 품고 있던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선보인다. 참 쉬지를 않는 것 같다.

그럼, 난 언제나 새 작업을 하고 있지. 최근 목천건축아카이브의 ‘동시대건축의 현장’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웹 다큐멘터리 <원하는 것에 다가가는 방법들>(2022)을 공개했다. 동시에 역사 공부를 계속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SF 판타지라고 하면 보통 미래를 떠올렸는데, 요새는 과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 지금은 개봉에 집중하려고 한다. 여러 사람이 이 영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여주니, 나도 매일 밤 기도한다. 영화가 잘 되기를. (웃음)

정재은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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