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습
<온 세상이 하얗다> 강길우·박가영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2-02-08

속삭이듯 두런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강길우와 박가영은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했다. 부랴부랴 인사를 건넸더니 반갑게 응하고선 다시 둘만의 대화를 잇는다. 오랜만에 만나서 할 말이 많은가 보다, 했는데 이미 근황은 서로 파악할 만큼 파악한 상태였다. 어쩌면 평소에도 두 배우에게 근황 같은 건 그리 중요한 주제가 아닌 듯했다. 강길우와 박가영은 어제 만난 사이처럼 오늘을 이야기했고, 각자 기억하는 지난 시간을 함께 엮어 들려줬다. <온 세상이 하얗다>에서도 둘은 도란도란 말을 주고받는다. 영화 속 여자와 남자는 한겨울에 술에 취한 채로 또 술을 사다가 우연히 마주친다. 알코올성 치매를 앓는 모인(강길우)은 매일 죽음을 결심하며 밧줄을 사지만, 죽겠다는 다짐마저 번번이 기억에서 삭제된다. 무력감에 시달리며 솔직한 마음을 어디에도 내보일 수 없던 화림(박가영)은 그런 모인에게 매번 거짓말을 늘어놓는데, 그 속엔 진실이라고 부를만한 것도 조금씩 섞여든다. 타고난 기질이나 삶의 맥락이 전혀 다른 둘은 절절한 사연을 풀어놓지도 않을뿐더러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다만, 죽음이라는 목적지만을 공유한다. “우리 같이 태백에 가기로 했는데 기억 안 나요?” 여자가 대뜸 묻자, 남자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내 ‘까마귀 숲’을 찾아 나선 모인과 화림. 죽음에 가까워지는 동안에도 둘의 대화는 끊이지 않는다. 싸웠다가 화해하고, 울다가 웃는다. 박가영의 지저귀듯 가느다란 고음과 강길우의 부드럽고 묵직한 저음이 평화롭게 어우러진다. 같은 곳에 도착하려는 낯선 이들의 여행, 문득 새들이 머무는 숲에선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싶다.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이는 계절에 두 배우의 목소리를 다시 청해 들었다.

 

 

길우 씨 요새 바쁘죠? 작년 가을에 영화 <왼쪽을 보는 남자, 오른쪽을 보는 여자> 합류 소식이 들려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가 방영됐어요. 지금은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재벌집 막내아들> 등이 공개를 앞둔 상태고요.

강길우_ 대부분 촬영을 마쳤어요. 얼마간 쉬면서 지내다가 2월부터는 다시 바빠질 예정이에요. 짧은 스케줄이 2월에 몰리는 바람에, 개봉 이후에는 정신없을 것 같아요.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에선 납치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로 등장해서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시선을 집중시키는, 영리한 코믹 연기를 선보였어요. 말투와 표정은 스스로 떠올려낸 건가요?

강길우_ 캐릭터를 구현해내는 건 제 몫이었지만, 일단 윤성호 감독님과 “콜롬보 형사 느낌으로 가자”는 아이디어를 주고 받았어요. 감독님 작품에는 불필요한 말이 나오지 않잖아요. 대화에서 빠른 템포를 유지하며 재미를 주고요. 초반에는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동안 독립영화에서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연기하는 스타일에 익숙해진 터라, 단번에 바꾸기가 힘들더라고요. 대사도 완전히 입에 붙여야 했어요. 뇌를 거치지 않고서 뱉어야 하는 거죠. 게다가 드라마 현장에서는 일하는 속도 자체가 영화와는 다르잖아요. 여기서 NG를 냈다가는 분위기가 안 좋아지겠구나 싶어서 부담감이 컸어요. 엄청나게 연습했고, 위급할 때는 ‘컨닝 페이퍼'도 만들고 그랬어요. (웃음) 개인적으로 과장하지 않는 코미디를 좋아해요. 다행히 윤성호 감독님도 제 연기를 좋아해주셨어요. 처음에 말씀하셨거든요. 저를 캐스팅하는 건 감독님 본인에게도 모험이라고. 감독님은 주로 박근영 감독님 영화를 통해 제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셨으니까요. 물론 그간 영화제라든지 사석에서도 여러 번 뵙긴 했지만요. 제가 어떤 스타일로 연기하는지 이미 알고 계신 터라, 오히려 대화가 잘 통했던 것 같아요.

 

가영 씨는 화보와 광고 촬영을 꾸준히 했죠. 우원재의 ‘Pandemic’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걸 봤어요. 짧은 순간에도 계속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프레임 바깥에서도 줄곧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것만 같고, 한편으로는 “무조건 카메라 앞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되자”는 원칙도 유효하구나 싶었고요.

박가영_ 원래 샷이 더 많았는데, 뮤직비디오에는 안 나오더라고요. (웃음) 어쨌거나 연기도, 생활도 열심히 채워가는 중이에요. 광고도 몇 편 찍었고, 여름과 가을에는 단편영화를 촬영했어요. <올 겨울에 찍을 영화>(김경래, 2021)로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참석했고요.

<온 세상이 하얗다>
<온 세상이 하얗다>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온 세상이 하얗다>를 상영했을 당시, 두 분에게 따로 대화를 청했어요. 상대에 관해 말할 때 격려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성큼 다가가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존중하려는 태도가 기억에 남아요. 그래선지 개봉 때는 함께 만나면 좋을 듯했어요.

강길우_ 딱 그런 마음이에요.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늘 존중하고 존경하는 동료예요. 연락이 뜸해지면, 괜히 멀어진 것만 같은 사람이 있잖아요. 서로 서운함이 쌓이기도 하고요. 반면, 가영이는 연락을 특별히 주고받지 않아도 늘 일정한 거리 내에 있는 느낌이에요. 그러다 한 번씩 생각날 때, 연락해서 편하게 안부를 묻는 사이예요.

박가영_ 길우 오빠는 저를 무척 응원해주는 선배예요. 배울 점도 많고요. 오죽하면 제가 선생님이라고 부르겠어요? 적재적소에 필요한 말을 해줘요. 기본적으로 둘 다 조심스러운 성격이고, 텐션도 그리 높지는 않아요. 그래도 제 입장에서 이 정도면 되게 친한 거예요. (웃음) 저한테 오빠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입이 무겁다는 뜻이기도 하네요.

박가영_ 그렇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요.

강길우_ 가영이는 이렇게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줘요. 제 좋은 점을 이야기해주고, 다른 곳에서 누가 저를 칭찬하는 걸 들었다며 전해주기도 해요. 함께 있으면 자존감이 올라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박가영_ 실제로 그만큼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제가 없는 칭찬을 지어낼 수는 없잖아요. (웃음)

 

길우 씨가 ‘미담 자판기’네요.

박가영_ 너무 그렇게만 가면 안 되는데! 오빠가 좀 망가지는 모습도 보고 싶어요. (웃음)

강길우_ 가영이한테 제가 고맙죠. 늘 응원해주니까요. 이번 작품도 가영이가 감독님에게 저를 추천해준 덕분에 만났고요.

강길우 ⓒ이영진  

겨울에 <온 세상이 하얗다>를 다시 선보이는 기분은 어떤가요. 길우 씨는 완성된 영화를 몇 번이나 돌려 봤다면서요.

강길우_ 앉은 자리에서 계속 봤어요. 그때는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박가영_ 지금은 아니고? (웃음)

강길우_ 재미없다는 게 아니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 이미 여러 번 봐서 그런가 봐요. 어쨌거나 개봉 소식을 듣고 참 감사했어요. 최근에는 영화를 찍어도 개봉 여부가 불투명하잖아요. 극장에서 선보일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에요. 겨울에 개봉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바람도 이루었고요.

박가영_ 저도 감사한 마음이에요. 이 계절을 보내지 않고, 관객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해요. 요즘 눈이 자주 왔잖아요. 며칠 후에도 눈 소식이 있더라고요. 한겨울에 영화를 보면 어떨지 기대돼요. 연일 확진자가 늘어나는 상황이라, 걱정스럽기도 하지만요.

 

촬영 기간이 매우 짧았어요. 아무래도 지금쯤 기억이 희미하지 않을까 싶어요. 달리 보면, 영화를 영화 자체로 받아들이는 시간도 다른 때보다는 단축됐을 것 같기도 하고.

강길우_ 머릿속에는 스틸 이미지처럼 남아 있어요. 촬영이 총 5회 차였어요. 서울에서 이틀 찍고, 그 다음 주에 태백으로 넘어가서 사흘을 찍었어요. 나중에 영화를 보고 놀랐어요. 짧게 촬영했는데, 영화는 그렇지 않은 거예요. 두 인물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긴 시간 진득하게 찍은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5회 차로 찍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요.

박가영_ 어제 급하게 영화를 다시 봤어요. 기억이야 나지만, 인터뷰하려면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더라고요.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제나 상영회를 통해 몇 차례 관객과 만났고, 그때마다 새로운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걸 듣고 나서 영화를 보니, 전과는 다르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영화 속 제 모습을 보며 쑥스러워했다면, 지금은 <온 세상이 하얗다>를 좀 더 영화 자체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감상에 영향을 준 코멘트는 어떤 거예요?

박가영_ 친구가 부산에 와서 영화를 봤는데, 그동안 우울증이 심했다고 하더라고요. 회사를 6개월 정도 쉬면서 치료에 집중하는 때였는데, 저는 아예 몰랐어요. 친해도 서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관계가 있잖아요. 그 친구가 영화보고 나서, 죽고 싶을 정도로 삶이 힘들다고 해서 전부 놓아버린다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모인과 화림은 그 와중에 화분도 예쁘게 키우고 싶고, 강아지한테 밥도 주고 싶고, 다른 사람을 살리고 싶기도 한 거잖아. 그런 마음에 공감했어.” 친구가 해준 말이 오래 남아요. 듣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거든요.

박가영 ⓒ이영진  

영화 속 모인과 화림은 너나할 것 없이 이상한 사람들이고, 기묘한 관계예요. 두 인물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영화에 긴장과 재미를 불어넣는 요소이기도 하고요. 가영 씨는 “화림은 모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마음이 갔다고 해석했다” 했어요. 각자 이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러한 감정과 태도를 연기에 어떻게 반영했는지 듣고 싶어요.

강길우_ 저는 아무 사이도 아니어서, 서로 뭘 하든 상관없는 사이니까 둘이 동행할 수 있다고 봤어요. 특히 모인 같은 경우에는 관객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더라고요. 죽었을 것이다, 혹은 안 죽었을 것이다. 음, 저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모인은 삶에 미련이 없는, 오히려 죽는 게 행복한 사람이거든요. 사랑이나 연애 감정으로 화림을 보지는 않았어요. 그냥 함께 길을 가는 사람, 딱 그 정도예요. 화림이 잔치상처럼 차려 놓고 밥 먹다가 우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때 저라면 무슨 말이라도 하면서 위로해주려고 애썼을 거예요. 근데 모인은 말없이 건조하게 바라보기만 하죠. 그만큼 초연한 상태였기에 화림과 동행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반면, 화림은 모인보다는 삶에 미련이 좀 있고요. (웃음)

박가영_ 화림에게 모인은 부담 없는 상대예요. 무슨 거짓말을 해도 모르는, 전부 잊어버리는 사람이잖아요. 동시에 마음의 상태가 비슷하다 보니, 같이 까마귀 숲까지 갈 수 있었고요. 처음부터 함께 죽으러 갈 사람을 찾는다고 했으면, 로맨스 정서를 떠올리지 않았을 거예요. 근데 둘은 우연히 만난 사이잖아요. 짧게나마 시간을 공유하고, 때로는 함께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화림은 여러 감정을 느낄 거라고 봤어요. 이성적 호감, 동질감, 의지하는 마음 등이 섞여들지 않을까 하면서요.

 

모인이 생수병에 소주를 담을 때, 뚫어져라 쳐다보는 화림 얼굴이 떠오르네요. ‘저때 반했나?’ 했어요.

박가영_ 소주를 한 방울도 안 흘리잖아요. 감탄하면서 흥미롭게 구경하는 거죠. (웃음)

강길우_ 모인이나 화림이나 서로 신기했을 거예요. 그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던 종류의 인간이니까요.

 

‘동반자살을 약속한 남녀’라고 캐릭터를 설명하면 굉장히 무겁게 다가오지만, 사실 <온 세상이 하얗다>는 로맨스, 호러, 판타지, 블랙코미디 등 여러 장르가 혼합된 작품이에요. 시간 순서가 뒤섞이는 장면 구성, 내레이션과 음악 등이 예상치 못한 활기를 더하는 데 큰 몫을 하고요. 촬영할 때도 인지했던 부분인가요?

강길우_ 편집이나 음악을 미리 파악할 순 없었지만, 어쨌든 처음 글을 읽으며 느꼈던 톤대로 영화가 완성됐어요. 애초에 너무 진지하거나 심각하게 읽지는 않았거든요. 색깔로 표현하면 보라색이라고 할까요. 어딘가 이상했죠. 우선 시나리오로 쓴 글이 아니었어요. 소설이었고, 존댓말로 쓰여 있었어요. 저한테는 좀 낯설지만, 그런 느낌 그대로 좋았어요. 영화도 마찬가지여서 저는 만족해요. 관객들이 저와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매력적이라고 여겼던 흐름은 영화에도 반영됐어요.

박가영_ 저도 비슷해요. 죽음으로 가는 여정을 담고 있지만, 지나치게 무겁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그 안에 자리 잡은 재미있고 독특한 지점이 눈에 들어 왔어요. 죽음을 진정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봤어요. 마냥 우울하지는 않은 거죠. 직접 준비하고 계획한 일이니까요.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입장에 따라, 감상이 다를 것 같아요. 굉장히 흥미롭게 볼 수도, 왜 저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죠.

<온 세상이 하얗다>
<온 세상이 하얗다>

김지석 감독은 “변죽을 울리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는데, 연기에서도 그런 흐름이 유려하게 이어져요. 두 인물 모두 현실을 버거워하지만, 괴로움에 짓눌린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화림이 할 말은 꼭 하고 마는 사람이라면, 모인은 어눌함과 능청 사이를 수시로 오가죠. 둘의 티키타카가 재미있어요.

박가영_ 사전에 대화를 많이 나누기는 했지만, 연기하면서 뭔가를 상의하거나 일부러 맞추지는 않았어요.

강길우_ 되게 자연스러웠지? 말로는 표현이 어려운데, 가영이나 저나 자연스럽게 연기했어요.

박가영_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사를 빼먹기도 하고요. 심지어 둘 다 알아차리지도 못했어요. (웃음)

강길우_ 작가 입장에서는 꽤 중요한 대사였는데, 다시 찍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 그냥 넘어갔죠.

 

어떤 장면에서요?

강길우_ 죽기 전날, 담벼락에서 모닥불 피워 놓고 대화할 때요. 롱테이크인 데다, 대사도 굉장히 많잖아요. 가영이와 서로 말하고, 듣고, 또 말하면서 대화를 이어 갔어요. 흐름이 어색하지 않다 보니, 특정 문장이 빠진 줄도 몰랐던 거예요.

박가영_ 길우 오빠는 워낙 잘 듣는 사람이고, 저도 그러려고 한창 노력하는 시기였어요. 사전에 뭔가를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서로에게 귀를 잘 기울였던 것 같아요.

강길우_ “여기서는 이렇게 해보자, 나는 이렇게 할 테니까 너는 저렇게 해라” 하는 식은 아니었어요. 감독님도 현장에서 일일이 디렉팅하기보다는, 우리가 연기하는 모습을 쭉 지켜보는 편이었고요. 각자 느끼는 바는 조금씩 달랐을 수도 있는데, 운 좋게 셋이 잘 맞았나 봐요.

 

산당에 들어간 모인이 무당을 흉내 내며 “그래서 무엇이 궁금한고?” 천연덕스럽게 묻는 장면이 떠올라요. 화림도 질세라 진지한 표정으로 “제가요, 오늘 아침에요, 뭘 먹었을까요?” 응수하잖아요. 산당 신 촬영은 어땠는지 듣고 싶어요. ‘라이브’하듯 진행한 부분도 있다고 하던데요.

강길우_ 약속한 시간보다 좀 늦게 산당에 도착했어요. 공간을 빌려주신 분께는 죄송한 일인데, 스태프 분들이 알아서 부담감을 재워주신 덕분에 배우들은 연기에 편안히 집중할 수 있었어요. 감독님도 CF를 찍는 분이라,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현장 상황에 익숙했고요. 돌이켜보면 마법 같아요. 사실 글을 읽을 때부터 저는 “이 영화를 5회차에 찍겠다는 건 말이 안 돼요”라고 했지만, 감독님은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자신했거든요. 근데 실제로 해냈어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촬영이 눈앞에서 이뤄졌죠. 아, 진짜 마법 같은 일도 있었네요. 갑자기 목이 쉬어서 가영이가 무척 고민했거든요. 산당 신부터였지?

박가영_ 아마 그랬을 거예요.

강길우_ 신기했어요. 문제가 발생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엄청나게 큰 사고까지는 아니잖아요. 게다가 제가 보기에는 그 목소리도 영화에 적절하게 활용될 것 같았어요. 재미있고 엉뚱한 톤으로요.

박가영_ 정말 다행이에요. 실은 촬영하고 나서도 한동안 힘들었거든요. 아무리 무리해서 촬영했다고 해도 목소리가 쉬어버린 적은 없어요. 많이 당황했는데, 주변에서 괜찮다고 해주더라고요. 아마 응원을 담아서 했던 말들이겠지만, 그래도 캐릭터 자체가 영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고 해서 마음을 조금 놓았어요.

ⓒ이영진 

대사에도 들어오잖아요. 아까 휴게소에서 소리 지르는 바람에, 목이 쉰 것 같다고.

박가영_ 현장에서 추가한 대사예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계세요. 어떤 관객은 “자살을 거듭 시도하다가 목이 쉰 줄 알았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화림이 두르고 나온 빨간색 목도리가 죽음의 오브제냐고, 모인이 사 모으는 밧줄과 비슷한 의미냐고 물으시는 분도 있어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했죠. 당시에는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지만요.

 

목소리에 요철이 생기니 도리어 좋던데요.

강길우_ 맞아요, 영화 속 디테일이 되는 것 같아요.

박가영_ 길우 오빠가 정말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는 걸 인증한 셈이죠. 저와는 완전히 대조적이잖아요. 어떤 분은 일부러 목을 쉬게 만들었다고 말하라던데요. 영화를 위해서 그게 낫지 않겠냐고. (웃음)

 

아니면 화림처럼 매번 말을 바꿔봐요. 인터뷰에서는 이랬다가, GV에서는 저랬다가. (웃음)

박가영_ 오, 괜찮은데요?

강길우_ 다들 모여서 코멘터리 한 번 해야겠네. (웃음)

 

산속 촬영은 어땠어요? 추위와 시간 제약, 감정 조절 등 상상만 해도 고된 일이었을 것 같아요.

박가영_ 사실 산에 들어갔을 때는 목 상태가 최악이어서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요. 목소리가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 할 정도로 심각했거든요. 캐릭터에 관해 더 고민할 겨를이 없었고, 촬영 당시 날씨를 포함한 외적 요인도 거의 기억나지 않아요. 길우 오빠 목소리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요.

강길우_ 춥기도 춥고 어려운 상황이기는 했는데, 저한테는 아쉬움이 컸어요. 마지막 촬영이었고, 마지막 장면이었어요. 모인도 곧 죽을 사람이고요. 저도 모르게 짧은 시간 동안 꽤 집중했나 봐요. 촬영이 끝나서 아쉽다기보다는, 이 세계가 잠시 후면 사라진다는 사실이 확 다가왔어요. 영화가 끝난다, 모인과 화림도 이제 끝이다. 그런 생각이 맴돌아서 집중이 잘 됐던 것 같기도 해요. 완성된 영화를 볼 때도 당시의 아쉬움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영화가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어요.

 

모인은 어떤 인물로 남았어요? “죽는 게 더 행복한 친구”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좀 애틋한가요.

강길우_ 글쎄요, 애틋하다기보다는… 그런 따뜻한 마음보다는, 건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가까워요. 어떻게 살아라 혹은 죽어라 하는 말도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그냥 그대로 두고 싶어요. 안쓰러운데, 달리 보면 굉장히 용감한 사람이구나 싶기도 해요.

 

반면, 화림은 모인보다는 생에 미련이 남아 보인다고 했어요. 가영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박가영_ 모인과 동행하는 여정 속에서 조금씩 미련이 생겼을 것 같아요. 처음 글을 읽었을 때는 화림도 환상인 줄 알았어요. 모인 앞에는 계속 유령 같은 존재가 나타나잖아요. 화림도 그중 하나로서 모인 눈에만 보이는 존재가 아닐까 했어요. 실제로 글에서 화림은 주체적 인물이라기보다는 환상 같은 느낌이 짙었고요. 그러다 촬영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어쩌면 화림은 모인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오히려 삶에 애정을 약간 느낄 수도 있겠다고요.

강길우_ 반대로 모인은 화림과 동행하면서 미련을 완전히 털어내죠. 이전까지 늘 혼자 지내다가 화림을 만나면서부터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즐거움을 느끼잖아요. 덕분에 ‘힘내서 더 살아야지’ 하는 게 아니라, ‘이만하면 됐으니 정말 떠나야겠다’ 하는 거예요. 화림에게 고마움도 표현하고.

 

까마귀 숲에서 죽어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해석했나요. 근거 없는 충동 같기도 하고, 일종의 속죄처럼 들리기도 하거든요.

강길우_ 감독님과 깊게 얘기하진 않았는데, 저는 까마귀 숲에 관해 말할 때 모인의 엄마를 떠올렸어요. 물론 그곳에서 죽겠다는 다짐과 죽은 엄마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죠. 근데 저한테는 귀향하는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도시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은 인물이 이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기로,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했구나. 아마도 모인은 그런 의미에서 까마귀 숲 이야기를 간직해온 것 아닐까. 죽음의 시기를 스스로 정했던 것처럼 공간 또한 나름대로 그려왔다고 볼 수 있겠죠. ‘나의 마지막 공간은 까마귀 숲이 될 거야’ 하고요. 그래서 뭐랄까, 까마귀 숲에 관해 말할 때 조금 자랑하듯 보였어요.

 

묘 자리를 미리 구해놓은 사람처럼요.

강길우_ 네, 그런 느낌이요. 표정을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영화를 보니 그렇더라고요.

<온 세상이 하얗다>
<온 세상이 하얗다>

영화에 아름다운 장면이 많이 나와요. 숲에서 찍은 장면은 두 배우의 영상 화보 같던데요. 실제로 모인은 죽을 날이 가까워질수록 머리 모양, 옷차림이 점점 근사해지잖아요.

강길우_ 아무래도 감독님이 CF를 찍으셨던 분이라. (웃음) “모인은 엔딩에 다다를수록 멋있어져야 해!”라고 의견을 공유하지는 않았어요. 근데 제가 볼 때, 모인에게 죽음은 계획을 실천하는 일이거든요. 그럴싸한 의식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모인에게 ‘죽음은 곧 행복’이라는 명제가 성립하려면, 그런 장치가 필요할 듯했어요. 감독님도 의도하신 부분 아닌가 싶어요. 이전까지는 패딩을 입었는데, 서울 떠날 때부터는 코트를 입혔거든요. 당시 감독님이 일하던 회사 대표님에게 빌려왔다면서 되게 비싼 코트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박가영_ 처음에 글을 읽을 때부터 그 장면을 상상했어요. 감독님한테 숲에서는 두 사람 모두 이전보다 차려 입었으면 좋겠다고, 나무로 둘러싸인 풍경과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실은 그래서 길우 선배가 떠올랐어요. 딱이다, 싶었죠.

 

두 분이 입은 코트가 예뻐요. 색깔도 조화롭고.

강길우_ 가영이가 또 워낙 코트를 잘 소화해요. 절대 패딩은 안 입을 것 같아.

박가영_ 아니, 요즘엔 패딩만 입어. (웃음)

강길우_ 촬영할 때 스태프들도 코트 예쁘다고 한 마디씩 했어요.

박가영_ 길우 선배 의상은 이미 정해진 상태였고, 그에 맞춰 제 의상을 준비했어요. 다행히 제가 가진 코트 중에 어울리는 게 있더라고요.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빨간 목도리도 제 거예요. 원래 소품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갑자기 쓰게 됐어요. 그때 입고 나온 코트는 감독님이 가져온 의상이고요.

 

그러고 보면 두 분 모두 여름보다는 겨울, 도시보다는 자연과 인연이 깊은 듯해요. 가영 씨는 <온 세상이 하얗다>외에도 <올 겨울에 찍을 영화>(김경래, 2021) <두 번째 겨울>(김의곤, 2018)처럼 아예 제목에 ‘겨울’이 들어간 영화를 찍었죠. 길우 씨는 <식물카페, 온정>(최창환, 2021)에서는 푸른 화초로 가득한 카페를 운영하는 이였고, <정말 먼 곳>(박근영, 2021)에서는 고요한 목장에서 안식을 찾는 일꾼이었어요. 실제로는 어때요, 겨울에 접어든 자연과 궁합이 잘 맞는 편이에요?

강길우_ 자연을 좋아해요. 스스로 도시보다는 자연과 어울린다고 생각하고요. 반대로 얘기하면, 도시와는 별로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웃음) 어쨌든 규격에 맞춰서 딱딱 정해진 것보다는 정답이 없는 쪽을 선호해요. 사물이든, 풍경이든. 자연스럽다는 말 자체가 그런 뜻이잖아요. 예전에 그림을 그릴 때도 공산품처럼 대칭과 비율이 정확한 건 관심 밖이었어요. 대신 나무나 꽃처럼 내 뜻대로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을 좋아했어요.

박가영_ 저도 비슷해요. 지방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터라, 도시보다는 자연이 익숙하기도 하고요. 여전히 쉴 때는 자연과 가까운 곳을 찾아가려고 하는 편이에요. 근데 사실 겨울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추위에 약하거든요. 그러다 말씀하신 대로 겨울에 영화를 여러 편 찍으면서 이 계절을 좋아하게 됐어요. 일단 눈 오는 날을 참 좋아해요. 그것만으로도 겨울을 좋아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아요.

강길우 ⓒ이영진

<온 세상이 하얗다>처럼 한겨울에 여행한 적 있어요?

박가영_ 계획하고 떠난 여행보다 우연히 마주한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배우로 일하기 전에 혼자 정읍에 간 적이 있어요. 고속터미널에서 가장 빨리 출발하는 표를 샀는데, 그게 정읍이었어요. 어릴 적에 내장산에나 한번 가봤지, 딱히 인연이 있는 지역은 아니었어요. 무작정 버스에 올라탔는데, 중간에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눈이 온다는 예보조차 없었는데, 운행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펑펑 쏟아졌죠. 결국 휴게소에 정차하고 1시간 넘게 대기했어요. 다른 승객들은 버스 기사와 회사에 항의하거나 어딘가에 급히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했어요. 다들 가야할 곳이 분명하고, 지켜야 할 약속이 있으니까요. 근데 저는 아닌 거예요. 밖에 나가서 혼자 평온하게 눈 구경했어요. “예쁘다” 하면서 사진도 찍고요. 대부분은 갑작스럽게 내린 눈을 불편하게 여겼지만, 저는 좋았어요. 저한테만 주는 선물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막상 정읍에 도착해서는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분명히 뭔가를 했을 텐데, 지금 머릿속에 남은 건 휴게소에서 봤던 설경뿐이에요. 그렇게 오랫동안 휴게소에 머무른 것도 처음이었고, 이후에도 그만큼 큰 눈을 본 적은 없거든요.

 

영화에 등장할법한 에피소드네요.

박가영_ 네, 정읍이 되게 특별해졌어요. 사진 찾아봐야겠다. 진짜 예쁘게 나왔거든요.

강길우_ 저는 최근에 친구들과 강원도에 갔어요. 고성 쪽으로 드라이브를 했는데, 동해 풍경이 참 멋졌어요. 혹시 눈 내린 바닷가 보신 적 있어요? 저는 처음 봤거든요. 우주 같아요. <인터스텔라>(크리스토퍼 놀란, 2014)의 한 장면에 들어온 느낌이었어요. 모래사장에는 눈이 쫙 쌓여 있고, 뒤에는 깊고 넓은 바다가 보여요. 하얀 발자국을 따라서 걷다 보면, 푸른 바다와 만나는 거죠. 무척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박가영_ 저 방금 사진 찾았어요. (핸드폰을 보여주며) 봐요, 눈 많이 왔죠?

강길우_ 와, 진짜 하얗네.

박가영_ 말 그대로 ‘온 세상이 하얗다’였어요.

강길우_ 사실 감독님은 이런 풍경을 꿈꾸면서 글을 썼는데, 촬영할 때는 눈이 많이 안 왔어요.

박가영_ 맞아요, 하필 그해에 눈 소식이 없어서.

강길우_ 그냥 태백(太白)이라는 의미로 밀어붙이자 했죠. (웃음)

 

최근 두 분 작품에서는 유독 ‘죽음’이 등장해요. 길우 씨는 작년 영화제를 통해 <초록밤>(윤서진, 2021) <살아짐이 사라짐>(김종재, 2021) 등을 공개했고, 가영 씨의 경우에는 <보글보글>(이이다, 2020) <서스피션>(박우건, 2019) 등을 꼽을 수 있을 듯해요. 때로는 죽음의 당사자였고, 때로는 목격자였어요. 죽음에 관해 이모저모 곱씹어보는 시간을 나름대로 거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강길우_ 나이가 들어서 자연스레 맞이하는 죽음은 별로 와 닿지 않아요. 근데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죽음을 선택하는 분들을 지켜보면서 계속 생각하게 됐어요. 어떤 마음일까? 어떤 심정이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던 걸까? 예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만 여겼죠. 근데 지금은 달라요. 물론 제가 막 우울하다거나 죽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구나 싶은 거예요. 작품의 영향인지, 예전보다는 생각이 조금이나마 깊어져서인지는 모르겠어요. 지금은 반반이랄까요,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어요. 그래서 무섭기도 하고요. 죽음에 관해 고민해본다는 것 자체는 좋은 일 같아요. 시점은 알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오니까요. 잘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나도 죽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살다가 죽어야 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박가영 ⓒ이영진  

“어떻게 살다가”가 중요한 거네요.

박가영_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렇다고 먼저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도 없고요. 진지하게 생각할 때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일부러 외면하기도 해요. 죽음을 떠올린다는 게 긍정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으니까요. 근데 오빠가 한 말에 공감해요. 죽음을 생각하다 보니, 사는 동안 내 삶을 잘 가꿔야겠구나 싶더라고요. 죽음이라는 말은 아직 막연하고 어렵지만요.

강길우_ 요새는 부모님 생각하면 조금 와 닿기는 해요. 두 분에게는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 셈이잖아요. 그걸 인식하고 나니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산다는 게 진짜 뭘까?’ 싶고.

 

가끔 운이 좋다는 생각도 들죠. 여태 무사히 살아 있다니, 하면서요.

박가영_ 그래선지 죽음을 떠올리다 보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더 사랑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돼요. 그래서 저는 아낌없이 사랑하려고 노력해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 같아요.

 

죽음을 생각하며 삶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도 있겠어요. 그럼 새해에는 어떻게 살고 싶나요. 길우 씨는 해마다 신년 목표를 정한다고 말한 적도 있는데, 두 분이 올해 어떤 풍경을 상상하는지 궁금하네요.

강길우_ 뭐라고 해야 할까, 올해는 약간 ‘다운그레이드’ 된 느낌이 들어요. 겸손과는 좀 달라요. 저라는 사람 자체는 그대로이지만, 저를 둘러싼 판이 커졌잖아요.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는 중이고, 전부 흡수하고 싶어요. 뭔가를 이루거나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고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골고루 담을 수 있도록 그릇을 키우려고 해요. 그래서 바쁘게 작품을 하는 겁니다. (웃음) 이 작품으로 어떻게 돼야겠다, 얼마를 벌어야겠다, 그런 마음은 없어요. 그저 지금껏 해보지 않은 걸 시도하면서 경험치를 높이고 싶어요.

 

신입사원의 마음 같네요.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강길우_ 그러게요. 덧붙이면, 저는 요즘 즐거워요. 전보다 재미있거든요.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제가 어떤 작품과 인물을 만날지 궁금해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건 분명해요.

<온 세상이 하얗다>
<온 세상이 하얗다>

가영 씨는요?

박가영_ 계속 열심히 가야 하는데요, 최근에는 연기하는 제 모습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있어요. 연기를 우연히 시작했어요. 어떤 배움이 없는 상태에서 실전을 마주하다 보니, 그동안 저라는 사람과 인물간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로서 작품에 들어갔고, 그때마다 진심을 담으려고 했어요. 아무래도 단점을 들여다보기에는 어려웠죠. 올해는 내게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찾아 가면서 차분히 힘을 쌓고 싶어요.

 

용기를 냈네요. 단점을 인정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박가영_ 맞아요, 사실 좋은 것만 생각하고 싶죠. 근데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 아프더라도 직면해야 하잖아요. 문제를 살펴보면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개발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애써 모른 척했던 것도 같아요. 요즘 저도 연기할 때 재밌어요. 제가 갖춰야 할 부분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되니까요.

강길우_ 듣고 보니 비슷하네. 우리가 결국 같은 말을 한 것 같아. 근데 가영이는 장점과 매력이 뚜렷한 배우예요. 이미 좋은 것을 많이 갖고 있어요.

 

새해 덕담을 주고받아야 할 순간 같은데요. 서로에게 한 마디씩 해주면요.

강길우_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화이팅! 잘 해나갈 거라는 점에 관해서는 믿어 의심치 않아요.

박가영_ 작품을 같이 하면서 후배로서도, 동료로서도 길우 오빠를 더 좋아하게 됐어요. 여전히 관객으로 만나는 강길우를 가장 좋아하고요. 다만 오빠가 좀 더 자유로워지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팬심’이에요. 워낙 건강한 사람이기는 한데, 지금보다 마음이 훨씬 편안해지면 어떨까 해요.

강길우_ 아, 그리고 일전에 가영이와 나눴던 바람이 있어요. 작품에서 다시 만나자고요. 이 인터뷰를 읽는 분 중에 제안해주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니, 이거 기록해주세요. (웃음)

 

동반 캐스팅!

박가영_ 또 다른 결을 지닌 영화에서 꼭 한번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더 치열하게 연기해보고 싶어요.

강길우_ 다음엔 멜로로!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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