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 예매 창이 열린 지 얼마 안 돼서 <성덕>은 전부 매진됐다. 트위터에는 ‘피켓팅’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왔고, 간신히 표를 손에 넣은 이들은 성공을 자축했다. 오세연 감독의 첫 다큐멘터리 <성덕>에 쏟아진 이 열띤 관심은 뭘 의미할까? 정준영의 오랜 팬이자 ‘성덕’이었던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덕질’로 상처받은 이를 찾아간다. 한때 사랑했던 ‘오빠’가 범죄자가 되어버린, 웃지 못할 현실. 텔레비전에 나온 연예인을 열심히 좋아했을 뿐인데, 애정은 순식간에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여길 수 없는 이유는, 가해자가 너무 많아서다. 노래방에서 ‘사랑앓이’를 열창하며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에 씁쓸해하던 감독은 이내 이 노래를 부른 그룹에도 성범죄자가 있음을 깨닫는다. 감독 말대로 “온통 지뢰밭이다.” 감독은 혼란스러운 감정에 귀를 기울이며, 남성 연예인의 성범죄를 목격한 여성 팬이 어떤 곤경에 처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때 영화에는 ‘덕질’이라는 행위가 떠안는 불안과 깔끔하게 봉합되지 않는 복잡한 마음이 나란히 기록된다. 지난한 여정이지만,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감독은 과거의 사랑보다 훨씬 크고 단단한 무엇을 발견해내며, 스스로 ‘성덕’의 의미를 재정의해 나간다. 서울독립영화제2021 개막을 앞두고 오세연 감독을 만났다. 최근에는 영화를 ‘덕질’ 중이라고 하니, 아마 여기서도 곧 ‘성덕’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른바 ‘정준영 단톡방 사건’이 처음 보도된 것은 2019년 3월이다. 이후 재판 항소심을 거쳐 최종 선고가 나오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렸다. 영화를 만들기로 한 시점은 언제였나.
사건 보도 후, 한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시작했다. 나 역시 큰 충격에 빠진 터라, 영화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근데 내가 ‘성덕’이라는 사실을 아는 주변 사람들이 “이거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뜬금없다고 여겼는데, 아직도 정준영을 지지하는 팬이 남아 있다는 걸 알고 난 후에는 호기심이 생겼다. 이유가 궁금했고, 내 눈에는 그들이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겹쳐 보이기도 했다. 영화를 통해 이러한 의문을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당시 목표는 뭐였나. 기획 단계부터 ‘성덕’을 재정의하는 결말을 예상했는지.
누군가를 우상으로 삼으며 무조건적 사랑을 퍼붓는 마음, 그게 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연예인 ‘덕질'을 포함해서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우상화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러다 촬영하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우상화보다는 지금 ‘우리’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나와 내 친구들, 누군가의 팬이었던 사람들로 초점이 옮겨 간 셈이다.
감정을 정리하기엔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 힘들지는 않았나.
사람마다 감정이 오는 시간이 다르지 않나. 영화를 시작할 때는 분노도 컸지만, 무엇보다 내 상황이 웃겼다. 주변에 내가 정준영의 팬이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고, 유튜브에는 아직도 내가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 영상이 남아 있다. 댓글 창에는 ‘얘도 이제 정준영 안 좋아하겠지?’ 같은 말이 달리고. 슬프기보다는 민망하고 어이없었다. 그러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점점 다른 감정이 오더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좋아했더라? 나는 무엇을 좋아했던 거지?’ 갑자기 너무 슬퍼졌다. 아무것도 못한 채, 몇 달을 무기력하게 보냈다. 나중에 조연출 친구가 “네가 힘들어했던 이유를 오랫동안 생각해봤어”라면서 그러더라. 오랫동안 사랑했던 사람의 실체를 알게 됐을 때, 내 감정을 흘려보내는 것만도 힘들지 않냐고. 근데 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하니, 계속 그 감정을 붙잡아야 했을 거라고.


‘나’에서 출발하지만, 작업을 진행할수록 큰 세계와 마주했으리라 짐작한다. 혹여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고민했던 바다. 이 영화가 누구에게도 상처를 안 주었으면 했다. 심지어 정준영도 상처받지는 않을 것 같은데? (웃음) 자극적으로 흘러가기 쉬운 소재이지만,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 들어 세상이 이분법적이라고 느낀다. 인터넷 댓글도 찬성 아니면 반대, 딱 둘뿐 아닌가. 어떤 이슈에 관해 의견을 말할 때도 맞거나 아니면 틀리거나, 항상 이런 식이다. 범죄를 저지른 스타의 팬들이 부당한 비난에 시달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또는 아직도 혼란을 겪고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무척 나쁘고 못난 사람처럼 취급하지 않나.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나 관계에는 그런 식으로 단칼에 잘라낼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봤다. 나라도 그걸 헤아려주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보이면 어쩌나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찬반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범죄로 상처를 받은 모든 사람이 피해자인 것 같거든. 그들을 비난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친구, 지인, 가족 등 여러 인터뷰이가 등장한다. 대부분 카메라 앞에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더라. 이들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참여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처음에는 제목을 따라서 각 분야의 성덕을 찾아 나설까 했다. (웃음)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끈끈하게 관계를 맺은, 평소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터놓는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디에도 말하기 어려운 속내를 끌어내야 하는데, 낯선 이와는 라포 형성에 한계가 있을 듯했다. 결국 가족, 친구, 동료 등 가까운 이들에게 인터뷰를 부탁했다.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결국 카메라 옆에 앉은 사람이 나이기에 다들 편히 이야기해준 것 같다. 감독이 아니라, 친구와 대화하는 시간이니까. 영화를 만들면서 우정을 확인했다. 각자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을 텐데, 나를 믿어주는구나 싶더라. 동시에 말하고자 하는 욕구도 느껴졌다. ‘정준영 팬’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밖에서는 놀림감이 되지 않나. 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한 번쯤 시원하게 풀어낼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인터뷰이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하나는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로 고통받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 팬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선망하는 남성 연예인이 여성 대상 범죄의 가해자가 될 때, 팬들 또한 자신을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여기게 된다.
문화계 전반을 놓고 봤을 때, 여성 팬 또는 여성 소비자가 월등하게 많다. 하지만 덕질을 하는 그 누구도 ‘내가 너를 이렇게 서포트하니, 나를 특별 대우해줘’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다. 우리끼리는 자조적으로 말하지. “난 오빠만을 위한 현금지급기”라고. 근데 ‘오빠’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거든. 일련의 범죄를 접했을 때, 여성 팬들은 무시당하는 기분이었을 거다. 오랜 시간 스타를 지켜본 입장에서 일반 대중보다 그에 관해 많이 알 수밖에 없는데, 그런 나조차 몰랐던 미지의 세계가 있다니. 그곳에서 여성을 혐오하고 무시하며 살았다니. 그때 충격이 엄청나다. 여성 혐오 범죄를 일삼는 사람을 응원했던 셈이지 않나. 그런 범죄자를 지원 사격해 준 것만 같아서 죄책감이 들고, 한편으로는 굉장히 허무하다.
영화에 넣지 못한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감독 입장에서는 인터뷰이를 보호하는 동시에, 영화에 필요한 주제도 던져줘야 했다. 인터뷰를 고르는 기준은 뭐였나.
한 사람당 평균 세 시간씩 이야기했다. 울고, 웃고, 한숨 쉬고, 욕도 하고. 아무래도 친구이기에 대화가 길어질 수밖에 없더라. 편집 과정에서는 변화에 주목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팬이었다는 사실과 그를 좋아했던 기억을 후회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마지막에는 사랑이 주는 힘과 에너지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변화하는 여정을 영화에 담으려고 했고, 인터뷰이 한 명 한 명을 만날 때마다 정류장을 거쳐 가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친구들과 대화하면, 늘 뭔가를 배웠다. 누군가는 아주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고, 누군가는 또 다른 각도에서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다. 결국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덕분에 내 생각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며 인터뷰를 배치했다.


영화의 주요 질문이 후반부에 달라진다. 줄곧 ‘탈덕’하지 않은 이들에게 “도대체 왜? 아직도?”라는 질문을 던지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을 향해 ‘나는 정말 그들과 다른 사람인가?’라고 되묻는다.
정준영은 이미 2016년에 불법 촬영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썼던 일기를 다시 봤을 때, 무척 놀랐다. 지금과는 굉장히 대조적이더라. 물도 안 넘어간다면서 “오빠 입으로 나오는 말만 믿고 기다릴 거다” 했지. 과거의 나를 보면서 반성했다. 나도 그랬으면서 지금은 되게 다른 사람인 척, 떳떳한 척했구나. 정준영 곁에 남은 팬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니었던 거다. 그런 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고, 결국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됐다.
2016년에 사건을 보도했던 박효실 기자를 직접 찾아간다.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었나.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2년 6개월 정도 걸렸는데, 6개월쯤 지났을 때부터 계속 기자님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만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늘 마음이 불편했고,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그러니까 정준영의 팬덤 차원에서 상처를 준 사람이라고 기억하거든. 다만, 내 의도가 어떻든 기자님 입장에서는 무척 기만적으로 보일 것만 같았다. 영화를 만들 목적으로 뒤늦게 사과한다고 받아들이면 어쩌지? 그냥 내 마음 편하자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어쩌지? 근데 실은 나도 잘 모르겠더라. 많은 경우에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사과하기도 하니까. 결국 복잡한 마음을 전부 메일에 썼다. 나처럼 속이 좁은 사람은 메일을 받자마자 차단할 텐데, 기자님은 일주일 후에 답장을 주셨다. 자신은 괜찮으니,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하라고. 기자님이 팬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과거에 팬들의 극단적 요구와 비난에 가까운 말을 직접 경험하신 분이니까. 근데 놀랍게도 팬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시더라. 팬들은 그럴 수 있다고. 영화를 만들면서 정말 사람에게 많은 걸 배웠다.
맹목적 사랑을 관찰하는 여정에서 ‘박사모’를 만나기도 했다.
관련 논문과 책을 열심히 찾아봤는데, 감정으로 와닿지는 않더라. 고향 부산과 서울을 오가다 보니, 서울역에서 태극기 집회 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직접 가서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 배경 화면을 태극기로 바꾸고, 정보를 얻기 위해 네이버 밴드에도 가입했다. 본명을 밝힐 수 없는 상황이라, 프로필도 ‘57세, 대구, 박석찬’으로 바꾸고. 아무래도 무섭더라. 연령대도 다르고, 심지어 동행한 친구는 머리카락을 파란색으로 물들인 상태였다. (웃음) 처음에는 다들 우리를 의심스럽게 보셨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특하게 여기셨다. 어느새 우리가 태극기 집회의 ‘뉴 블러드’가 됐더라. 물론 윤리적으로 고민할 부분이 남아 있고, 그분들에게 죄송한 마음도 크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그곳에 모이는 분들의 마음을 평생 이해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정치적 맥락을 무시하기 어렵지만, 누군가를 응원하고 기다리는 마음 자체는 아름다운 것 아닌가. 대상의 잘못으로 인해, 그런 마음까지도 더러워진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분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요즘 ‘덕질’하는 상대는 영화 아닐까 싶다. 어릴 적부터 영상 매체를 숱하게 접했을 텐데, 그중 왜 하필 영화를 택했나.
어릴 적에는 방송이나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다.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드라마를 진짜 많이 봤거든. 오전에 학교 갈 준비하면서 아침 드라마를 보고, 방과 후에는 할머니 따라서 재방송을 봤다. 저녁 드라마, 심야 드라마까지 합하면, 하루에 6-7편을 봤던 셈이다. 영상에는 익숙했는데, 딱히 드라마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영화에 푹 빠졌다. 그때부터는 영화를 향해 돌진했다. 세 가지로 이유를 추릴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영화는 날 위로해줬다. 가장 힘든 순간에 구해줬다고 해야 할까. 두 번째로 영화는 참 멋져 보였고, 끝으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했다. 글이나 그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영화는 훨씬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낸다고 봤다.

10대 시절에 좋아했던 영화를 말해준다면.
무척 많은데, 말하려니 부끄럽다. 이런 마음 알겠나? 예전에 좋아했던 것을 떠올리면, 살짝 부끄러워지는 거. (웃음) <비긴 어게인>(존 카니, 2013)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요시다 다이하치, 2013) <아무도 모른다>(고레에다 히로카즈, 2004) 등을 좋아했다. 기숙 학교를 다녔는데, 자습 시간에 인터넷 강의 듣는 척하면서 영화만 봤다. 아, <화양연화>(왕가위, 2000)도 있다. 고등학생 때는 그냥 좋구나 하고 말았는데, 작년에 다시 보고 놀랐다. 진짜 멋진 영화더라. 지금 좋아하는 영화는 <도쿄가>(빔 벤더스, 1985) <낭트의 자코>(아녜스 바르다, 1991) <하나 그리고 둘>(에드워드 양, 2000)이다.
영화를 폭넓게 접했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는 어떻게 영화를 찾아봤나.
열일곱 살에 우연히 청소년 영화 체험 교실에 갔다. 주말마다 모여서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때 우리를 가르쳤던 강사가 오민욱 감독님이다. 어린 마음에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 실은 내가 부산에서 유명한 ‘오민욱 팬’이다. 얼마 전에 누가 정준영 이후로는 누굴 덕질했냐고 물어서 오민욱 감독님이라고 답한 적도 있다. (웃음) 막연하게 ‘저 사람은 어떤 영화를 만들까?’ 궁금했다. 그때 부산독립영화제에서 <범전>(오민욱, 2015)을 봤다. 영화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한 번 더 반했다. 이렇게도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싶었고, 자연스레 독립영화에 관심이 생겼다. 아주 넓고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그때부터는 닥치는 대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덕질은 DNA”라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웃음) 감독이라면 덕질과 영화 만들기의 공통점을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덕질이든 영화든 결국 자기가 좋아서 해야 한다. 싫으면, 누가 시켜서 하는 거면 끝까지 못 한다. 가만 보면 영화 만드는 사람들도 다 ‘오타쿠’ 같다. 어차피 만들어봤자 대부분 잘 안 되거든. 근데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서 영화를 만드는 거다. 거기에 몸은 몸대로 상하고,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셀프 가해’ 같은 느낌도 드는데, 어쨌든 그 안에서 재미와 해방감을 느낀다. 진짜 엄청난 덕질 아닌가. (웃음) 게다가 덕질과 영화 만들기 모두 내 집단 밖의 사람들, 소위 ‘머글’에게는 이해받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계속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아, 망상도 많이 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재학 중이다. 두 번째 작품은 극영화일까?
학교에서 이단아로 불린다. 영화과 애들은 “다큐멘터리 찍을 거면 방송영상과로 전과해” 하고, 방송영상과 애들은 ‘쟤는 뭐지?’라는 눈으로 본다. (웃음) 늘 그래왔듯 떠돌이처럼 살 운명이구나 싶다. 그래도 내가 생각할 때, 다큐멘터리든 극영화든 결국 영화는 영화거든. 학교에서는 기준을 나누지만, 연출자로서 장르에 크게 구애받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다큐멘터리로 말해야 할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 극영화에 걸맞은 이야기는 극영화로 만들 생각이다. 실험 영화에도 관심이 많고. 난 아네스 바르다 감독님을 좋아한다. 그분처럼 나도 영화로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