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찬 바람이 부는 계절인데, 최희서는 왼손에 아이스 커피를 쥐고 들어왔다.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차가운 걸 마셔야 잠이 잘 깨거든요” 하며 웃는다. 기운을 끌어 올리고 눈을 빛내며, 늘 깨어 있는 사람.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을 연출한 이시이 유야는 최희서를 도전자라고 정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낯선 과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최희서는 언제나 전진을 택했다. 대학 시절에는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었고, 돌연 미국으로 떠나 UC 버클리에서 연극을 공부하기도 했다. 데뷔작 <동주>(이준익, 2015) 캐스팅 과정도 독특하다. 각본으로 참여한 신연식 감독이 지하철에서 혼자 대사 연습을 하던 최희서를 우연히 발견하고 명함을 건넸다는 일화는 이미 여러 차례 회자되었을 만큼 유명하다. <박열>(이준익, 2017)에서는 조선 항일운동가의 신실한 동지이자, 누구보다 뜨거웠던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를 연기했다. 일어와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동시에, 실존 인물을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해내며 큰 호평을 받았다. 여성의 몸과 자의식을 탐구하는 <아워바디>(한가람, 2019)에서 단독 주연을 맡으며 다시금 연기력을 입증했고, <미스트리스>(OCN, 2018) <빅 포레스트>(tvN, 2018) <비밀의 숲2>(tvN, 2020) 등 드라마에서도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 최희서는 ‘왓챠’ 제작 프로젝트 <언프레임드>를 통해 감독으로 변신했다. 단편 <반디>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홍원찬, 2020)에서 호흡을 맞춘 박소이 배우와 독특한 모녀 관계를 연기한다. 2021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지만, 최희서가 한 해를 마무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는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SBS, 2021) 방영을 앞둔 상태이고, 내년 초에는 2019년부터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틈틈이 써온 글을 엮어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지난 10월 28일에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개봉을 맞이했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을 감당하나 싶었는데, 대화를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답을 찾았다. 최희서에게 카페인보다 강력한 각성제는 자기 자신이다. 쉬기를 어려워할 정도로 분주한 나,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앞서는 나. 열정과 노력이 묵직하게 스며든 걸음걸음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최희서의 요즘 생활을 들여다봤다.
지난주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로드무비인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과 어울리는 일정이다.
개봉을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남편과 6개월 전부터 예약해놓은 여행이라 취소하기가 어려웠다. 나이를 먹으면서 ‘일할 때 일하고, 쉴 때는 쉬자’라는 생각이 든다. 원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이다. 끊임없이 뭔가를 하다 보니,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도 한 거지만. 이제 컨디션 관리를 해야 할 때다. 나를 지나치게 몰아세우면서 일하다 보면, 도리어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올 수도 있거든. 쉬는 것도 일이구나 싶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일부러라도 만들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맞다, 나는 잘 때를 제외하고는 집에서도 눕지를 않는다. 소파에도 안 눕는다. 남편과 가구를 고를 때 재밌더라. 남편은 소파를 보자마자 누웠거든. 놀라서 물었다. “왜 누워? 앉아야지. 소파는 텔레비전 볼 때 앉는 용도로 쓰는 거야.”
TV는 좀 보나.
사실 그리 즐겨보지 않는다. 영화는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로 본다. 근데 최근에 <스트릿 우먼 파이터>(Mnet, 2021)에 푹 빠져서 ‘텔레비전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싶었다. (웃음) <반디> 편집에도 텔레비전을 요긴하게 썼다. 드라마를 찍는 와중에 <반디>를 만들었고 도통 편집실에 갈 여유가 나지를 않았다. 결국 드라마 촬영이 일찍 끝나는 날, 편집 기사님이 집으로 와줬다. 텔레비전을 모니터 삼아서 함께 편집했다. 그야말로 가내수공업이었다. 편집 기사님이 동갑내기 여성이라 가능했던 작업 방식 같기도 하다. 실은 오늘도 집에서 포스터, 메이킹 영상, 예고편 등 <반디> 관련 일을 하다 왔다. 다른 이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아야 한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확인할 것이 많더라.
연출에서 대화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들었다. 소통해야 할 사람이 워낙 여러 명이니까.
동시에 연출은 질문에 답하는 일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내가 이야기를 만들면서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그다음 실제 작업에 들어가면,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다 보면, 어느새 촬영이 끝나 있더라. 개봉해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관객의 질문에 대답해야 할 테니까. 감독에게는 연출적 재능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화술도 필요한 것 같다. 논리 정연하게 설명할 줄 알아야 하고, 작품에 책임을 져야 한다. 실은 <반디>를 만들면서 너무 힘들었다. 더는 못하겠다 싶더라. 내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으니 꼭 봐주면 좋겠다. (웃음)


촬영할 때는 무척 즐거워했던 것 같은데.
찍는 순간에는 행복하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내가 쓴 대사를 말해주고, 내가 만든 상황으로 들어가니까. 그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쾌감이 있다. 감독 겸 배우라는 역할도 꽤 재밌었다. 연기할 때 신경 써야 할 감독님이 없는 상황, 그거 되게 편하더라. (웃음) 아무도 나를 지켜보거나 평가하지 않는 환경이었고, 내가 생각한 대로 연기하면 됐다. 덕분에 이번에 연기가 꽤 잘 나왔다. 물론 스스로 오케이와 엔지를 결정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지나고 나니 재밌고 유익한 경험으로 남았다.
디렉팅이 없어서 막막하지는 않았나. 눈치를 볼 사람이 없다는 건, 조언을 구하거나 의지할 이도 마땅치 않다는 뜻인데.
직접 대본을 썼기에 가능했다. 시나리오를 쓰려면, 캐릭터를 정확히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이미 연기를 어느 정도 준비한 셈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레타 거윅, 벤 에플렉 등 각본부터 연출과 연기까지 모두 소화하는 배우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왜 이런 방식을 택하는지, 작업에서 어떤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조금은 알겠더라. 나에게 전부 잘 해낼 자신이 있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좀 어렵지만. (웃음)
<반디> 시나리오는 어떻게 썼나. 처음에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라고 하기에, 배우의 유년 시절과 연결된 작품일 거라 짐작했다. 근데 주인공이 싱글맘인 걸 보니, 최근에 출연했던 다른 작품이 떠오르더라.
3년 전에 시나리오를 70% 정도 썼다. 엔딩을 쓰지 못한 상태였는데, 이번에 연출 제안을 받고 완성했다. 드라마 <빅 포레스트>에서 처음 싱글맘 캐릭터를 맡았다. 당시 주인공은 남성 두 명이었고, 내가 연기한 임청아는 주변 인물이었다. 나는 낯선 인물을 연기할 때, 역할 비중과 관계없이 최대한 조사하고 공부하려고 한다. 그때도 싱글맘 캐릭터를 이해하고자 다방면으로 찾아봤다. 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문득 ‘싱글맘에게 아이란 삶을 살아가는 큰 이유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혼자 아이를 양육하는 삶은 너무나 외롭고 고되다. 하지만 달리 보면, 아이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보람과 애정 또한 오롯이 자기 차지다. 아이는 때때로 무거운 짐이지만, 결국 크나큰 힘이 되는 존재인 셈이다. 1년 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다시 한번 싱글맘 역을 맡았을 때, 자연스레 그때 기억을 떠올렸다. 작품 내용과는 별개로, 상업 콘텐츠에서 싱글맘을 다루는 방식에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싱글맘이 어떻게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지, 아이와는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는지 알고 싶었다. 소모적 캐릭터로 쓰이기보다는 좀 더 현실적 인물로 구현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반디> 이야기를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박소이 배우를 만났다. 그때부터 소이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연출을 처음 해보는 건 아니다. 대학 시절 ‘고급영상제작’ 수업에서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이후 남편과 함께 ‘서울라이트필름’이라는 영화 제작 단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때도 ‘쉬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낫지!’라는 마음이었다. 단체라고 말하기엔 쑥스럽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동아리 활동에 가까웠고, 작품을 완성해서 영화제에 출품하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당시 나는 연출보다 연기 필모그래피를 쌓는 일에 집중하는 상태이기도 했다. 출연작을 늘려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던 거다.

‘서울라이트필름’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나와 남편이 지었다. 서울라이트는 서울 사람들, 즉 뉴요커나 파리지앵처럼 특정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다. 서울에서 영화를 만들며 시작된 모임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처음 만든 영화가 <서울 로스트>라는 단편인데, 주인공이 가수 지망생이다. 오디션에 떨어진 여자가 세종문화회관 근처에 낙담한 채 앉아 있다. 그때 서울에 놀러 온 외국인이 여자에게 다가와서 길을 묻는다. 여자는 딱히 할 일도 없는 상태이니 삼청동을 소개해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 동안 북촌 일대를 걷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여자는 한국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미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데, 남자는 이렇게 좋은 한국을 왜 떠나려고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다 끝에는 여자도 서울 풍경을 바라보며 작은 위안을 얻는다.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이야기를 뒤로 좀 미루고 있는데, 방금 말한 시놉시스는 영화에서 연기한 솔의 과거처럼 들린다.
말하고 보니 그렇다. (웃음) <서울 로스트>는 대학교 3학년 2학기 수업 과제였고, 내게는 첫 연출작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터라, 연기까지 직접 하지는 않았다. 요새는 친구들과 자주 못 만난다. 대부분 다른 분야에 취직했고, 결혼해서 바쁘기도 하고.
어쨌거나 귀한 경험을 공유한 관계다.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할 줄 몰랐는데, 재밌는 기억이 많다. 소니 DSR-PD150으로 찍어서 늘 여분 테이프를 들고 다녔다. 편의점에서 테이프를 팔던 시절이다. 촬영하다가 편의점이 보이면 들어갔다. 음료수를 사는 것처럼 테이프 두 개씩 사서 나오는 식이었다. 너무 ‘라떼’ 이야기지? (웃음)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며 디지털라이징 작업을 했던 것도 기억난다. 당시에 남편은 나를 무서운 사람으로 봤다고 하더라.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이 부담스러워서 다가가기 어려웠다고. 다행히 지금은 잘 지낸다. (웃음)
촘촘하게 시간을 보냈구나 싶다. 경험한 바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도 열심이다. 브런치에 봄은 좀 서글프다고 썼는데, 가을은 어떤가.
가을을 제일 좋아한다. 신기하게도 가을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늘 일이 많고, 봄에는 주로 백수였다. 정해진 촬영이 끝나고 ‘앞으로는 어떻게 하지?’ 하며 걱정하는 마음으로 봄을 맞이했다. 올해도 가을에 접어들며 점점 바빠졌다. 글을 쓸 여유가 좀처럼 나지 않는데, 실은 출간 계약을 한 상태라 빨리 써야 한다. 브런치에 쓴 글을 엮고, 원고를 좀 더 추가하기로 했다. 요새는 <아워 바디>(한가람, 2019) 제작기를 쓰는 중이다.
브런치에 올린 <박열>(이준익, 2017) 제작기를 재밌게 읽었다.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개봉했을 당시, 소규모 지역 극장을 돌며 관객과 만난 경험도 인상적이었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도 나름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크겠다.
너무 아쉽다. 도쿄에 가서 편의점을 싹쓸이 해야 했는데. (웃음) 반대로 일본 배우들은 “한국에 가면 다 같이 맥주 한 잔 해야지!” 기대했다고 하더라. 온라인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쉽다. 서로의 나라에 방문해서 관객과 만났으면 시너지가 훨씬 컸을 거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는 영화를 완성하고 개봉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최악의 경우, 제작을 중단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코로나19가 심각해지기 전에 촬영이 끝났다.


이시이 유야 감독으로부터 처음 연락을 받은 건 언제였나.
2019년 말에 처음 연락을 받았고, 2020년 1월에 첫 미팅을 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19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촬영을 시작한 2월 중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감독이 “희서 씨는 도전자네요” 했다고.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인가.
감독님이 인터뷰하듯 여러 질문을 던졌다. <박열>은 어땠는지, 다른 전작은 왜 선택했는지. 그때 “저는 호기심이 많아요. 해봤던 것보다는 새로운 걸 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감독님이 도전자라는 표현을 썼다. “희서 씨는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네요.”
대화에서 왠지 긴장감이 느껴진다.
감독님이 훅 들어오는 스타일이다. 처음 만났을 때, 인사하자마자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시나리오는 어땠어요?”라고 묻더라. 가식이 없다고 해야 할까, 모든 면에서 굉장히 간결하고 정확한 사람이다. 나도 솔직하게 말했다. “한국어 시나리오는 별로였는데 일본어 시나리오는 좋았습니다.” 그랬더니 다들 같은 소리를 한다면서, “왜 한국어 시나리오가 안 좋을까요?” 하며 난감해하더라. (웃음) 이후에는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눴다. 감독님 눈이 엄청나게 매섭다. 나를 빤히 바라볼 때 살짝 압도당했는데, 움츠러들기보다는 ‘나도 당신만큼 센데?’ 하는 식으로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쳤다. 그랬더니 되게 마음에 들어 하더라. 기 싸움이라고는 표현하고 싶지 않다. 다만, 어떤 배우들은 감독님 앞에서 뒷걸음질 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과 시선이 직설적이고, 워낙 겉치레가 없는 분이니까. 근데 나는 재밌더라. 솔직히 이준익 감독님과 오래 만나다 보니, 이제 웬만한 눈빛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웃음)
애초 시나리오를 한글 번역본으로 받았다가 원안을 요청해서 다시 읽었다고 들었다. 무얼 확인하고 싶었나.
말하자면 전부다. 대학에서 비교문학 수업을 들었는데, 한 학기 만에 관뒀다. 그만큼 언어라는 게 어렵다. 서로 다른 언어에서 발생하는 간극이 있고, 단순히 사전적 정의에 의해서만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시나리오에서는 대사만큼이나 지문도 감정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츠요시는 솔의 눈을 보고 싶다’는 문장을 번역할 때, ‘츠요시는 솔의 눈을 보고자 한다’고 쓰면 뉘앙스가 전혀 달라진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상당히 큰 문제다. 당시 국어 시나리오는 초벌 번역 상태였고, 그와 같은 미묘한 뉘앙스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고민하다가 원문을 요청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입장에서 원문을 읽지 않고 연기한다는 건, 할 일을 제대로 안 하는 느낌이었다. 읽어 보니 원문에는 훨씬 시적이고 함축적인 단어가 많았다. 반대로 훨씬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대사도 있었고.

촬영장에서도 통역사 역할을 담당했다고. 감독에게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잘된 일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기본적으로 일본 배우를 담당하는 통역사가 따로 있었고, 조감독인 후지모토 신스케 님도 중간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두 분 모두 한국어를 잘하셨지만, 한국 배우와의 소통에는 내가 많이 참여했다. 사실 모국어가 무엇인지에 따라 통역에 조금씩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나도 가끔 자막을 번역하다 보면, 비슷한 어려움을 느낀다. 일어를 한글로 변환하기는 상대적으로 쉬운데, 반대 과정에서는 좀 더 시간이 걸린다. 일본의 문화와 감성을 온전히 흡수한 상태가 아니다 보니,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거다.
솔은 아주 세속적인 세계에 몸담은 동시에, 천사를 볼 줄 아는 순수함을 간직한 인물이다. 솔을 생각하면 붉은 립스틱과 순백의 원피스가 나란히 떠오른다. 양극의 설정을 지닌 캐릭터가 어떻게 다가왔나.
감독님이 “솔은 순진무구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가진 캐릭터”라고 했다. 어릴 적 솔이 부모님에게 천사 스노우볼을 선물 받고 기뻐하는 장면이 잠깐 플래시백으로 나오지 않나. 바로 그때처럼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삶에 아무런 책임도 부담도 없이 하루하루 순수한 행복을 느끼던 때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지금 솔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였다. 의지할 부모님도 안 계시고,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상황에서 돈은 돈대로 벌어야 한다. 내적 갈등을 겪는 인물이라고 봤다.
솔은 장녀, 가장, 연예인, 어른 등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가면을 여러 겹 쓰는 여자인데, 그게 절대 쉽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다. 얼마나 마음이 여러 번 무너졌을까 싶어 연민하게 되는 캐릭터다.
편집된 장면이 떠오른다. 소속사에 간 솔이 오디션을 보러 온 신인 가수를 발견하는데, 그때 오디션 장소를 일부러 엉뚱한 곳으로 알려준다. 그 바람에 신인 가수는 오디션을 놓친다. 솔의 마녀 같은 모습이 나오는 장면인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삭제했더라. 너무 나쁜 사람처럼 보였나? 내게는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 장면이었고, 잘 연기하고 싶었다. 이 주체할 수 없는 뒤틀린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으며 전달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솔의 또 다른 면이 드러나는 장면이지 않나. 밖에서는 본인의 성공 욕구를 그렇게까지 발현시키는 여자인데, 집에 들어가면 동생 앞에서 별소리를 못한다. 또는 소속사 대표가 던져주는 오만 원짜리 지폐를 바라보며 아주 잠깐이나마 고민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솔의 마음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어려웠지만, 캐릭터에 얽힌 숙제를 풀어나가는 일이 재밌더라. 소속사 대표와 잠자리를 갖는 등 일부 설정은 조금 자극적이라고 생각했다. 오빠한테도 참 못됐고. 표면적으로 바라보면 그다지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이고, 그렇기에 내 방식대로 고민하며 인물을 만들어나가야 했다. 나는 그런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수첩에 뭔가를 끄적이고 직접 가사를 짓는 모습에서 최희서와 닮은 구석이 엿보이기도 했다.
내 습관이나 행동이 묻어나서 재밌더라. 글을 쓰는 것도 그렇고, 나도 실제로 장녀다. 솔처럼 노래를 부르지는 않지만, 관객이 없는 무대에 서는 기분은 너무나 잘 안다. 예전에 소극장 공연을 할 때, 관객 여덟 명 앞에서 연기한 적이 있다. 배우와 스태프가 총 열세 명이었는데, 그보다도 적었던 거다. (웃음)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터라, 그런 장면은 어려움 없이 연기했다.
‘찰랑찰랑’을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사랑이란 한잔 술이던가. 그것이 거짓 없는 진실이라면 나는 그대 잔 속에서 찰랑찰랑대는 술이 되리라.” 마치 이 영화를 위해 준비된 노래처럼 들렸다.
그 장면을 촬영 첫날에 찍었다. 긴장을 많이 했는데, 덕분에 어울리는 얼굴이 나왔나 보다. 현장에 모니터가 없어서 당황했다. ‘왜 모니터가 없지? 어디에서 확인해야 하지?’ 하며 두리번거리는데, 감독님이 바로 다음 컷을 찍자고 하더라.
현장에서 감독도, 배우도 모니터링을 안 했다고. 생소한 방식인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했는지 듣고 싶다.
현장에 감독님 의자가 없다고 보면 된다. 감독님 위치는 촬영 감독님 옆이고, 모두 서서 일한다. 초반에는 매니저가 휴대폰으로 포커스 모니터를 찍어서 보여줬는데, 나중에는 그마저도 안 봤다. 일본 배우들한테 물어보니, 이시이 감독은 원래 모니터를 안 본다면서 자신들 역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 나도 그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부터는 매니저에게 별도 영상을 기록할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화면에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태로 촬영을 마쳐야 했다. 겁나지는 않았나.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무척 신선했다. 보통 현장에서 모니터링하면, 주요 장면 대부분은 미리 확인하게 된다. 현장 편집을 했던 <박열>의 경우, 크랭크업하는 날에 영화를 거의 다 본 셈이었고. 근데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은 정말 처음 보는 영화였다. 실은 분장부터 연기까지 ‘아차!’ 싶은 부분이 꽤 있다. (웃음) 근데 현장에서 모니터링을 하면, 과연 연기에 아쉬움이 없냐? 그건 또 아니거든. 언제나 아쉬움은 남는다. 이번에는 연기를 잘하는 것만큼이나 과정의 새로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중요했다. 다른 현장에서는 모니터를 보기 싫어도 봐야 한다. 가끔은 이미 찍은 신은 털어버리고 다음 신에 집중하고 싶은데, 늘 누군가가 “희서 씨, 여기 와서 이거 좀 봐요” 하고 부른다.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자유로웠다. 아예 모니터가 없으니까. 테이크도 한두 차례 갈 뿐이어서 연극을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국어 대사 장면의 경우, 감독의 오케이와 엔지 사인은 어떻게 결정됐나. 배우로서 납득할 수 있었나.
이것도 이준익 감독님과 비슷한데, 이시이 유야 감독님은 귀보다 눈을 믿는 분이다. 대사를 확인하기는 하지만, 감독님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배우의 눈이다. 물론 정확한 분이다 보니, 대사 또한 조감독님에게 계속 확인했다. 대본에서 한국어 대사가 나오는 구간은 일일이 일본어 음을 달아놓기도 했고. 이따금 배우가 어미를 다르게 처리하면, 이유를 물어보셨다. 다만, 대사 문제로 다시 촬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분명한 동시에, 매우 주관적 기준이다. 엔지라고 하면 막막했겠다.
“한 번 더 갑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궁금해졌다. 어디가 이상했을까? 대사는 안 틀렸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눈에서 감정이 덜 느껴졌다고 하더라. 집중력이 좋다는 말도 많이 해주셨다. 그때 ‘아, 이 사람은 배우가 얼마나 집중하는지를 보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여러모로 색다른 현장이었다. 감독님은 자기만의 기준과 방식이 확고한 분이라, 곁에서 많은 자극을 얻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또 함께 작업하고 싶다.
도전자답다. 영어를 못 하는 영어 연기도 잘 하더라. <박열>에서 한국어가 어눌한 한국어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잘할 수 있는 걸 못하는 연기, 실은 그게 참 어렵다. 이번에 <반디>를 찍을 때, 박소이 배우가 말을 더듬는 연기를 해야 했다.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소이에게 시켰던 거다. 직접 시범을 보이며 소이를 설득했다. “소이야, 잘 걷는 연기와 못 걷는 연기 중에 뭐가 더 어려울 것 같아? 봐봐, 못 걷는 연기가 훨씬 어려워. 말도 마찬가지야. 근데 우리 소이라면 할 수 있어. 소이 최고!” (웃음) 나도 나인데, 소이 어머니가 굉장히 훌륭한 코치다. 옆에서 늘 아이를 칭찬하고 북돋아 주기에, 소이도 금세 자신감을 찾고 적극적으로 나선다. 나 역시 칭찬을 받으면, 더 잘하고 싶어진다. 배우로서 어떤 마음인지 이해하다 보니, 소이와 대화할 때도 오래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
엔딩에 자리한 두 번의 고백 신에 관해 듣고 싶다. 먼저 이모네 집 마당에서 솔은 츠요시(이케마츠 소스케)와 같은 천사를 만났음을 확인한다. 이때 솔은 “넌 내 운명의 사람이야?”라고 말하는데, 그 순간 솔의 표정에 놀랐다. 진실하지 않으면, 뭔가를 무릅쓰는 간절함이 없다면 그저 허무맹랑하게 들릴 대사이지 않나.
어우, 내가 감독님한테 물어봤다. 대사 왜 이러냐고, 꼭 이렇게 번역하셔야 했냐고. (웃음) 허무맹랑할 뻔한 것이 아니라, 허무맹랑하지. 우리 영화는 허무맹랑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 민재 오빠가 잘 소화해주셨는데, 정우 대사에는 이런 것도 있다. “돈보다 중요한 게 있어, 사랑.” 글로 봤을 때 ‘이걸 어떻게 해?’ 싶었다. 근데 일본어 대사도 똑같이 쓰여 있었고, 조감독님도 거듭 강조하셨다. 우리 감독님만의 색깔을 지켜 달라고. 직접적이다 못해 영혼을 뚫고 지나가는 대사가 여러 개였다. 내 입으로 말해야 하는 입장에서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걱정도 컸다. 감독님의 전작 <도쿄의 밤하늘은 가장 짙은 블루>(2019)를 보면서도 연극적이라고 느낀 지점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비슷했다. 사람을 움찔하게 만든다고 해야 하나? 감독님의 고유한 색이고, 그대로 받아들이며 따르는 것 또한 내게는 값진 도전이라고 여겼다.

츠요시와의 대화가 어중간하게 끝나버린 후, 다음 날 아침 바닷가에서 솔은 천사를 만난다. 솔이 긴 독백을 마치면, 츠요시가 다가와서 전날 밤의 대화를 비로소 마무리한다. 이때도 100% 직구라고 일컬을 법한 대사가 나오는데.
카메라 앞에서 발가벗은 기분이었다. 심지어 눈앞에는 발가벗은 천사가 있고. (웃음) 해변에 사람이 없기에 망정이지, 지나가는 관광객이 봤다면 깜짝 놀랐을 거다. 천사를 연기한 세리자와 타테토 배우는 일찌감치 바다 앞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날도 추운데, 허리춤에 천 하나만 두르고. 날개도 어깨에 고무줄로 고정했다가 나중에 CG로 지운 거다. 어쩌나 하면서 촬영장에 들어갔는데, 문득 솔의 일차적 절망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 솔은 자신 앞에 나타난 천사가 너무 초라한 모습이어서 슬퍼하거든. 천사란 자신이 볼 수 있는 최상의 희망을 상징하지 않나. 그러니까 솔은 다시 가수로 복귀해서 노래하는, 뮤직어워드 같은 행사에서 상도 받는 화려한 모습을 보고 싶었겠지. 근데 웬걸. 정작 눈앞에는 흰 머리에 몸은 다 망가진, 슬픈 눈을 한 천사가 발가벗은 채 있는 거다. ‘내가 보고 싶은 희망의 모습은 이게 아니야!’라는 데서 오는 좌절감이 있으리라 봤다. 근데 여기서 문제는, 갑자기 솔이 ‘그렇지 않아! 천사는 어떤 모습이라고 멋대로 단정하면 안 돼!’라고 자각하거든. 그 흐름을 타기가 어려웠다. 실은 원래 천사도 말을 하는 캐릭터였다. 솔에게 깨우침을 주는 한국어 대사가 있었는데, 관객의 몰입을 위해 후반부에 대사를 들어냈다.
두 배우 모두 아쉬웠겠다.
세리자와 타테토라는 배우를 보면서 자주 감동했다. 짧은 대사를 소화하기 위해 촬영 1년 전부터 한국어 공부를 하셨다고 하더라. 실제로 식당에서 국밥을 어찌나 잘 시키던지. (웃음) 본인이 기대한 대로 현장이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별다른 내색 없이 묵묵하게 참여하셨다. 참고로 촬영을 마친 후에도 계속 한국어를 공부해서, 최근에는 한국어능력검정시험 3급을 취득하셨다. 참 순수한 분이라는 걸 느꼈고, 그게 연기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 천사를 마주한 솔의 마음, 감동과 절망이 온통 뒤섞이는 그 마음은 인간 최희서에게도 와닿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천사를 통해 일종의 깨달음을 얻고 나면, 솔 앞에 츠요시가 등장한다. 이케마츠 소스케와 고백을 주고받는 장면을 찍을 때는 어땠나.
솔은 절망으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 긴 독백으로 그 과정을 마친 후에, 츠요시가 다가온다. 사실 그 장면을 연기할 때, 얼마나 불안에 떨었는지 모른다. 근데 이케마츠 소스케는 너무너무 맑은 눈을 가졌거든. 소처럼 크고 깨끗한 눈이다. 이케마츠의 눈을 보는 순간, 곧장 감정에 몰입할 수 있겠더라. 결국 함께한 사람들 덕분에 해낸 것 같다. 지금은 이산가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촬영 내내 배우들과 대화를 정말 많이 나눴고, 특히 이케마츠는 배우로서 참 잘 맞는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오다기리 죠와의 작업도 흥미로웠다. 전 세계를 통틀어서 그 같은 배우가 또 있을까 싶더라.
오다기리 죠의 연기에 새삼 놀랐다. 어쩜 그렇게 물처럼 움직일까.
연기뿐만 아니라, 대기할 때 모습도 물 같다. 국밥집에서도, 버스 정류장에서도 자꾸 눕더라. (웃음) 오다기리 죠는 촬영하기 직전까지 힘을 풀고 편안하게 쉰다. 그런 여유와 유연함이 부러웠다. 놀랍게도 그가 연기한 토오루는 기존 시나리오에 없다가 마지막에 추가된 캐릭터다. 오다기리 죠가 감독에게 먼저 말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촬영하는데 날 안 데리고 가? 당신이 만든 영화라면, 당연히 나도 출연해야지. 게다가 난 한국을 완전 좋아해.” 그래서 시나리오를 고쳤는데, 정말 다행이었지. 우리 영화에 토오루가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싶다. 감독님이 좀 짓궂다. 이케마츠 소스케와 오다기리 죠를 보면서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을 형제로 붙이면 재밌겠는데?’ 싶었다더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어울렸고, 지금 일본에서는 두 배우가 드라마도 함께 찍는다.
카스도 참 맛있게 마시더라. (웃음)
시부야 극장에 영화 소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케마츠가 입은 옷과 서류 가방, 그리고 카스 캔 두 개. 일본 트위터를 검색했는데, 다들 블루 캔이 너무 예쁘다고 하더라. “한국에 여행 가면, 닭갈비와 카스 맥주를 꼭 마셔야겠어요!”라는 글을 보고 놀랐다. 어떡하지. 상상하던 맛이 아닐 수도 있는데. (웃음) 생각해보면 이질적인 여러 가지가 모여서 하나의 큰 덩어리를 만들어낸 영화 같다.


촬영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
회차로는 26회였다.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고, 촬영하면서 우리도 여행길에 오른 것처럼 느꼈다. 일본 친구들은 정말 한국에 여행을 온 상황이기도 했고. 편집됐지만, 마나부가 츠요시에게 소설책을 건네는 장면이 있었다. 츠요시가 쓴 “인기 없는 소설”인데, 책 제목이 ‘여행의 끝’이다. 무척 낭만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도 여행이 끝나고, 감독님에게도 이 영화의 끝은 곧 여행의 끝을 의미하지 않나. 우리 시나리오 북 표지에도 여행 여(旅)가 붓글씨로 쓰여 있다. 반으로 접어놓은 상태에서는 그냥 문양처럼 보이는데, 책을 펼치면 완성된 글자가 보이는 식이다. 시나리오를 읽다가 책상 위에 올려두었을 때, 종종 ‘그래, 이건 여행이구나’ 하며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솔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그렇게 삶의 가치를 질문하는 영화다. 최희서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요즘 내 화두는 균형이다. 일과 휴식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올해 여름을 무척 바쁘게 보냈다. 이렇게 한 번 정신이 쑥 빠지도록 일한 다음에는, 피로감이 후유증처럼 오래가더라. 한 작품이 끝나면, 얼마간 나를 풀어 두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일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 마음에 남는 여독 같은 것이 자연스레 증발하도록 나를 내버려 둬야 한다.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면, 일할 때 능률이 떨어진다. 이러다 다음 작품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어쩌나 불안해지기도 하고. 밥을 해 먹는 것과 비슷하다. 한 상 푸짐하게 차리고 나면, 설거지를 제대로 해야 하지 않나. 쉬지 않고 일하는 건, 접시를 닦다 만 채 다시 상을 차리는 것과 같다. 휴대폰 전원을 끄듯, 가끔 내 전원을 끄고 싶어진다. 포맷까지는 아니고, 한 달 정도 전원 끄기? (웃음)
이전에는 일과 휴식의 우선순위가 뚜렷했을 듯한데, 생각이 달라진 계기가 있나.
20대에는 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말 그대로 아무런 가치도 두지 않았다. 그때 연기를 공부하면서 안톤 체호프의 희곡을 많이 읽었다. 당시에는 전혀 와닿지 않는 대사였는데, 요즘 들어 떠오르는 게 있다. 예를 들면 『바냐 아저씨』에서 소냐의 마지막 독백. 시골에서 평생 일하고 빚에 쫓기며 살았던 삼촌에게 소냐가 말한다. “우리는 밝고 아름답고 멋진 삶을 보게 될 거고 우리는 기뻐하며 지금 우리의 불행을 감동과 미소로 회상하면서 쉬게 될 거예요.” 그렇게 소냐는 계속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라는 말을 반복한다. 예전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이제야 알겠다. 삶이 고된 사람에게 쉼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사실 맥락을 보면, 그 희곡에서 말하는 쉼이란 죽음이거든. 죽으면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거라는 뜻인데, 요즘 나는 ‘죽기 전에 쉬어야지!’라고 생각한다. (웃음) 비단 나뿐만 아니라, 주변 동료와 친구들 또한 비슷한 시기를 통과하는 것 같다. 올해 아버지가 정년퇴임을 하시기도 했고. 프리랜서로서 일을 중단하고 쉼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일상에서 끊임없이 노력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주기로 안식월을 가지면 좋을 텐데.
템플스테이라도 해야 하나? 묵언 수행과 채식까지는 할 수 있는데, 절에 들어가면 술을 못 마시니 안 되겠다. (웃음)
최희서가 생각하는 가장 근사한 쉼은 어떤 모습인가.
마지막으로 마음 편안히 쉬었던 때가 신혼여행 갔을 때인 것 같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스케줄이 없는, 그렇게 3일 정도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 특별하다. 바닷가에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책을 봤다. 선베드에 누운 채 중간중간 커피나 칵테일을 주문해서 계속 마셨지. 핸드폰을 로밍했지만 잘 안 봤다. 그게 참 중요하더라. 3일 동안 이메일이나 전화에 답하지 않아도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 올해 바쁜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다시 한 번 그런 근사한 쉼을 누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