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상호 감독의 행보는 국내 영상, 영화 콘텐츠 시장의 지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부산행>(2016)의 설정을 공유하는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 <반도>(2020)로 극장 문을 두드린 뒤, 연상호는 초자연적 현상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 <방법>(tvN, 2020)과 그 세계관을 확장한 미스터리 영화 <방법: 재차의>(김용완, 2020)의 각본을 썼다. 지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정이>(가제) 연출을 확정해 촬영을 앞두고 있으며, 티빙(TVING)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감독 장건재)에 작가로 합류한 상태다. 줄줄이 남은 미공개 작품 중 가장 이목을 끄는 건 오는 11월 19일에 공개되는 넷플릭스 6부작 시리즈 <지옥>이다. 이미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전반부 세 편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시리즈의 원작은 연상호 감독이 최규석 작가와 함께 만든 웹툰 『지옥』이지만, 핵심 아이디어는 감독이 2002년에 완성한 단편 <지옥>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세계관은 간단하면서도 파격적이다.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죽을 날짜와 죽은 뒤 가게 될 곳을 알려준다. 만약 운명에서 도망치면 지옥 사자들이 나타나 산채로 가죽을 벗긴다. <지옥>(2002)과 <지옥 Part 2>(2006) 연작으로 구성된 <지옥: 두 개의 삶>(2006)은 지옥행을 앞둔 남자와 천국행을 앞둔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가장 어둡고 음습한 구석을 가감 없이 파헤친다. 작은 캠코더와 이제 막 성능이 좋아지기 시작한 컴퓨터를 끌어안고 좌충우돌 부딪치며 영화를 완성했다는 당시의 연상호를 어떻게든 만나보고 싶어 감독에게 대화를 청했다. <지옥: 두 개의 삶>은 인디그라운드와 인디스페이스가 10월 15일(금)부터 11월 14일(목)까지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보통의 우리, 우리의 2000's'에서 상영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가제) 촬영과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의 공개를 앞두고 있다.
<지옥>은 마무리의 마무리 단계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일부 공개된 이후 CG와 사운드 등을 다듬고 있다. 반응이 나쁘지 않더라. <정이>(가제) 촬영이 얼마 남지 않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2000년대의 연상호 감독은 <지옥: 두 개의 삶>을 완성한 젊은 애니메이션 감독이었다. 작업에 관해 여러 고민을 하던 시기였을 텐데,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나.
2000년에 전역했다. 군대 가기 전부터 영상 작업을 좀 했는데, 복무하는 내내 뭔가 만들고 싶은 욕구가 컸다. 제대하자마자 급하게 작업했고, 세상에 거의 공개 안 된 <디 데이>(2000)나 2D 애니메이션인 <지옥> 등을 만들었다. <지옥>은 2002년에 완성해서 그해 십만원 비디오 페스티발에서 처음 상영했다. 남들은 월드컵 열기로 뜨거울 때 혼자 작업하던 기억이 난다. (웃음) 그때는 아직 학생이었다. 학생 시절의 마지막 작업이라고 생각하며 <지옥>을 만들었다.
<지옥> 제작연도가 대개 2003년으로 표기돼있더라. 첫 상영이 2002년인가.
아마 2003년부터 영화제에서 본격적으로 상영돼서 그럴 거다. 완성한 건 2002년이다. 대학 때부터 실사 단편이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딱히 영화제에 가진 못했다. 유일하게 갔던 곳이 십만원 비디오 페스티발,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지옥>도 거기서 처음 공개했고. 그런데 이후 다른 영화제에서 <지옥>을 상영할 기회가 없었다. 낙담했다. 학생 시절 마지막 작품으로 생각했던 거라, 여기서 영화감독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관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관뒀고. (웃음) 대학 졸업하고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업했다. 회사 다니며 답답한 마음에 씨지랜드(CGLand)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지옥>을 올렸는데, 반응이 있었다. 어떻게든 영화를 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씨지랜드 서버를 빌려 다른 커뮤니티에도 올렸고, 인터넷에서 화제가 좀 됐다. 인디포럼이나 서울독립영화제에 가게 된 건 그 이후다.


한 번의 낙담 이후 다시 가능성을 본 셈이다.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1년 반 만에 회사를 관두고 단편 작업을 더 했다. 그렇게 만든 게 <지옥 Part 2>다.
<지옥> 연작은 1인 제작 시스템으로 완성됐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던 청년에게 2000년대는 어떤 시기였나.
대학에 들어간 1996년도에 6mm 캠코더로 단편영화를 찍은 적이 있는데, 당시만 해도 편집이 힘들었다. 컴퓨터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비디오 두 대를 놓고 녹화와 스톱을 반복하며 편집하던 시절이다. ‘프리미어’가 처음 나온 시기이긴 하지만, 컴퓨터 사양이 따라주지 못했다. 데스크톱 용량이 2기가였던 때니까. (웃음) 그런데 군대 다녀오고 2000년대 초반이 되니까 갑자기 컴퓨터 사양이 어마어마하게 좋아졌다. 애니메이션과에 다니는 친구들이 컴퓨터로 2D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하더라. 나로서는 신세계를 본 거다. 그전엔 애니메이션을 개인이 제작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 했는데, 그때부턴 혼자서도 해볼 수 있겠더라.
<지옥>은 최근 제작된 웹툰과 넷플릭스 시리즈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다. 감독에겐 어떤 의미를 지닌 영화인가.
난생처음 써본 시나리오라는 의미? (웃음)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는 줄도 모르던 20대 초반에 5~6장 정도로 썼던 첫 작품이라 감회가 새롭긴 하다. 처음으로 작품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 수준의 글이었다고 할까. 그전에 썼던 건 일기도 뭣도 아닌 글이었다면, <지옥>은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는 계획 없이 시작했어도 형태를 갖춘 시나리오였다. 물론 그게 실제로 구현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상명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기 전부터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애정을 가졌다고. 전공은 어떻게 정했고, 이후엔 어떤 과정을 거친 건가.
어릴 때부터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텔레비전밖에 안 보고 살았으니까,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걸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걸 입 밖에 내기는 어려웠다. 너무 멀게 느껴졌고, 허무맹랑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미술학원 다니고 입시할 땐 또 별생각이 없었다. 시각디자인이나 산업디자인처럼 취업이 될 만한 과를 가고 싶었는데, 3지망으로 썼던 서양화과만 붙었다. 재수는 하기 싫어서 그대로 갔다. (웃음) 그때 친구가 그러더라.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그럼 영화를 해보자는 생각에 큰 맘 먹고 어머니한테 캠코더를 사달라고 말씀드렸다.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래 해봐라” 하는 느낌으로 그걸 또 사주셨다. 그렇게 스무 살에 첫 영화를 찍었다.


<생각나와남>이라는 제목의 6mm 단편 영화다. 내용 기억하나.
얘기하고 싶지 않다. (웃음) 가끔 물어보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비디오테이프 원본이 파기됐다. 별 내용 없는 단편이고, 아무것도 모르고 찍은 영화다. 배우랑 카메라만 있으면 영화가 되는 줄 알았다. 배우도 전문 연기자가 아니라 동네 친구를 섭외해서 찍었다. 그 친구가 촬영 날 술 먹고 안 나타나면, 혼자 카메라 끌어안고 죽치고 기다리곤 했다. 그렇게 1년간 고생해서 겨우 만들었다. 난 그걸 완성하면 재능이 뻗쳐서 유명한 감독이 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웃음) 아무래도 배우랑 작업하는 건 맞지 않는 것 같고, 뭘 해볼 수 있을까 하다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됐다. 캠코더에 ‘콤마 찍기’라는 기능이 있었는데, 그걸 이용해서 컵 같은 걸 조금씩 움직이며 뭔가 만들기 시작했다.
<생각나와남>이 우울하다는 코멘트를 찾아볼 수 있더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D의 과대망상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막 치료를 끝낸 환자가 보는 창밖풍경>(1997)이나 <디데이>, 2D로 완성한 <지옥>에 이르기까지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공유한다. 당시엔 어떤 세계에 매료돼있었나.
미술학원을 홍대 근처에서 다녀서 그런지, 그쪽 문화에 익숙했다. 당시 홍대엔 언더그라운드적인 바라든지, 음습한 음악 감상실 같은 게 많았다. (웃음) 거기서 비디오 아트 상영회도 했고.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지. 그래서 그 문화에 좀 젖어 들었던 것 같다. 우울한 음악 듣고, 우울한 책 읽고. 한편으론 그게 그리울 때도 있다. 딱히 바쁘지도 않고, 그런 분위기에 젖어서 이런저런 얘기하는 게 일이었던 시절이니까.
연상호 감독의 작화는 선이 굵고, 현실적이면서도 과감한 움직임이 특징이다. <지옥> 이후 다듬어지긴 했지만 <서울역>(2016)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스타일이다.
카툰 형식이 아닌 리얼한 그림체, 그러니까 삽화체를 원래부터 좋아했다. 취향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요새도 프랑스 등에서 삽화체 애니메이션이 가끔 나온다. 그럴 때마다 관심 있게 보는 편이다. <지옥>을 작업할 땐 애니메이션 기술이 없다 보니까 ‘로토스코핑’이라는 방법을 썼다. 실사를 찍어서 그걸 그대로 떠서 그림으로 그렸다.
거의 모든 인물을 혼자 연기했다고 들었다.
캠코더 하나로 혼자 만드니까. 맞는 사람, 때리는 사람, 지옥 사자 전부 내가 했다. (웃음)

<지옥>의 독특한 설정은 어떻게 만든 건가. 공허한 얼굴의 천사가 나타나서 죽는 시점과 죽은 후 가게 될 곳을 알려주지만, 그 이유는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또 죽음과 형벌을 집행하는 존재들이 등장해 인물을 뒤쫓는다.
당시 이상한 꿈을 꿨다. 시커먼 것들이 쫓아와서 무작정 도망치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서 너무 무서웠다. 근원적인 공포심을 느꼈다. 그걸 어떻게 이야기 속에 담아볼까 하다가 몇 가지 설정을 떠올렸다.
<지옥>은 일종의 세계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방대한 가능성을 가진 작품이다. 실제로 연작 형태로 작품을 구상했고, 이후 웹툰과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게 된다. <부산행>에서 <반도>로 이어지는 흐름에도 세계관 설정이 중심이고, 각본으로 참여한 <방법>도 마찬가지다. 창작 과정을 짚어볼 때, 세계관 설정은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갖나.
어렸을 때는 정말 유명한 영화가 개봉할 때가 아니면 극장 갈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비디오로 영화를 접했고, B 무비를 많이 봤다. 그런 영화들의 특징이 난데없는 공포, 난데없는 무언가다. (웃음) ‘난데없는 무언가’는 이미 그 비하인드에 뭔가 있으리라고 상상하게 만든다. 또 그런 B 무비가 잘 되면 거의 단물 빠질 때까지 시리즈가 제작되잖나. 10편까지 나온다. 그런 시리즈를 좋아했던 게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내가 시리즈물이나 세계관이 있는 영화를 만들게 될 줄은 몰랐다. 초기에는 한편으로 완결되는 형식의 영화를 만드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세계관이 있는 영화를 만들게 된 데에는 산업적인 요구도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산업 내부에서는 영화를 감독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나. 여러 의견과 요구가 합쳐진 결과고, 일종의 유행으로도 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당시에도 시리즈물에 대한 고려를 했던 걸로 보인다. <지옥 Part 2> 이후 계속 이어서 작업해보고 싶다는 얘길 한 적이 있더라.
<지옥>이 인터넷에서 알려지면서, 예술 쪽 일하는 형들이 이런저런 내용도 가능하겠다는 얘길 많이 해줬다. 이게 여러 내용이 가능한 이야기인가보다 싶었고, 파트 투를 기획하게 됐다. 사실 <부산행> 이후에 외국에서 <지옥>을 시리즈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좀 받았다. 그들이 생각했던 건 <블랙 미러> 같은 옴니버스식 구성이었는데, 난 하게 된다면 더 긴 호흡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당시 세 번째 에피소드를 생각해본 적은 없나.
그때는 아예 작업을 관두려고 했다. 돈은 없고, 나이는 들어가던 때니까. <지옥 Part 2>는 아르바이트하면서 근근이 만든 거라 작업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완성하고 나면 생계에 도움이 되려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마음이 급해져서 <지옥>이랑 <지옥 Part 2> 들고 유명한 영화제작자, 투자자를 엄청 많이 만나고 다녔다. 그것도 잘 안 됐다. 이제 때려 쳐야 하나 싶었는데, 최규석 원작의 <사랑은 단백질>(2008)이 제작지원을 받게 됐다. 그걸 연출하면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또 몇 년 미뤄졌다. (웃음) 계속 그런 과정의 반복이었다. 지금도 비슷하다. 프리랜서 아닌가. 할 수 있을 때 해보자는 마음으로, 요새는 제안 오면 다 한다.
오랜 친구인 최규석 작가와 『지옥』 웹툰 작업을 함께 했다. 최규석 작가는 2002년 당시에도 <지옥>을 좋아했다고 말했더라.
규석이가 상명대 만화과였고, 내 친구가 그 과를 다녔다. 그러니까 친구의 친구였다. 규석이랑은 <지옥> 만들면서 친해졌다. 로토스코핑이 원체 지루한 작업인데, 그게 공통분모가 됐다. 그런 걸 하는 애가 있다더라 하면서 가까워진 거지. <지옥> 만들고는 그냥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어떻게 하면 직업을 가질 수 있나, 이걸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면서. 그러다 세월이 지나 결혼도 하고 애도 키우고 바빠지니까 도저히 옛날처럼 자주 만날 수가 없더라. 같이 작업하다 보면 억지로라도 보겠지 싶어서 웹툰 『지옥』을 시작했다.
<지옥: 두 개의 삶>의 결말은 ‘혹시’, ‘설마’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보란 듯이 짓밟는다. 이후 <돼지의 왕>(2011)과 <사이비>(2013)로 인터뷰할 때도 인간의 딜레마, 보이지 않는 체계 아래서 얽혀 살아가는 인간들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왜 이렇게까지 어두운 이야기를 썼다고 보나.
내가 삐뚤어진 사람이라 그랬던 게 아닐까. (웃음) 삐뚤어짐과 막연한 희망 사이에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희망이 아예 없었다면 작업을 계속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도 않았다. 이 작업을 하고 나면 잘되겠지, 동시에 또 안 되겠지 하는 생각이 공존했다. 그 원망을 사회에 쏟아내기도 했고. 그게 작업에도 영향을 줬으리라 생각한다.


현재는 플랫폼을 유연하게 오가며 작업 중이다. <부산행>, <염력>(2017), <반도> 같은 영화를 만들 때만 해도 극장상영 위주였는데. 체감하는 차이가 있나.
드라마에 관심을 둔 지 꽤 오래됐다. 국내에 넷플릭스가 들어오기 전부터 드라마 시장이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건 규정이 안 되고 있다는 뜻이고, 그건 드라마가 이런저런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장이라는 의미다. <부산행>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8부작 정도의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냐고 주변에 물어본 적이 있다. 절대 안 된다고 하더라. 적어도 16부작 정도는 돼야 광고가 붙고 수익이 난다고. 그런데 불과 몇 달 후에 8부작, 4부작 드라마가 기획되기 시작했다. 이 산업이 정말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거기에 넷플릭스가 들어오면서 속도가 아주 빨라졌다. 반면 한국의 극장용 영화 시스템은 고착화돼가고 있는 것 같다. 그건 움직일 수 있는 틀이 좁다는 뜻이기도 하다.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는 한국 영화산업이 지금의 드라마 산업 같았다. 뭔가 바뀌고 있고, 그래서 뭔가 시도해볼 여지가 많았다. 그 후로 20년 가까이 지나면서 너무 틀이 짜여 버렸다고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한계를 많이 느끼던 시기에 드라마 제안을 받았고, <방법> 대본을 쓰게 됐다. 더 늦어지면 안 되겠더라.
넷플릭스와 작업하는 건 어떤가. 소위 말하는 ‘자유도가 높은’ 과정인가.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배급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한국의 와이드릴리즈가 넓은 대중을 상정한다면, 넷플릭스는 코어 타겟층을 노리되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삼는다. 아주 와이드한 마이너함이라고 할까. (웃음) 물론 그런 측면에서 분명히 매력이 있다.
변화의 시기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즐기는 중인가.
지금 콘텐츠 산업은 20년에 한 번 오는 대륙이동의 시기를 겪고 있다고 본다. 이런 시기에 중심 세대로 있을 수 있다는 걸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
애니메이션 작업 계획은 없나.
계속 고민 중이다. 예전처럼 작은 규모와 좀 더 큰 규모의 작업 둘 다 생각하고 있다. 다만 큰 규모의 애니메이션으로 가려면 산업을 좀 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겠다. 앞으로 일어날 큰 변화의 장에 내가 낄 자리도 있지 않을까.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