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날 탈 脫>은 <선잠>(2016), <솧>(2018), <탈날 탈(頉)>(2018) 등에서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지속해온 서보형 감독의 첫 번째 장편이다. 전반부는 불치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남자 영목(임호준)의 하루하루로 채워져 있다. 매일 108배와 명상을 통해 마음을 수련하는 그는 죽기 전에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일상에 균열이 인다. 귀신인지 죽음인지 모를 형상이 그의 곁에 다가오기 시작한다. 후반부엔 신작 준비로 힘들어하는 미술 작가 지우(위지원)의 시간이 담긴다. 그녀는 모종의 이유로 애니메이션 작업을 피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지우를 고민케 하는 화두는 이야기의 종결과 죽음이다. 어떻게든 이 고민에 작업으로 맞서보고 싶은 그녀의 일상에도 역시 구멍이 뚫린다. 영목과 지우, 두 사람은 같은 집에 거주하지만, 다른 시간대에 속해있어 서로를 모른다. 영화는 둘의 시공간이 섞이고, 교차하고, 영향받는 순간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며 ‘깨달음’이라는 알쏭달쏭한 단어를 형상화하고자 한다. 얼핏 관념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컷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영화 질료의 배열을 통해 주제에 도달하려는 작품이다. <벗어날 탈 脫>을 아주 큰 '몽타주'로 소개하는 서보형 감독을 만났다.
<탈날 탈(頉)>을 만들던 때부터 ‘탈 시리즈’를 생각했던 거로 안다.
처음엔 단편 3부작을 생각했다. 동일한 집에서 찍고, 거문고로 연주한 곡을 사용하며, 두 남녀가 등장한다는 것이 시리즈의 공통점이다. 그런데 <벗어날 탈 脫>은 결국 장편이 됐다. 아무래도 짧게 압축하긴 어렵겠더라. 원래 불교에 관심이 많다. 영화 주인공처럼 깨달음을 얻고 싶어서 몇 년 동안 수련한 적도 있다. (웃음)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무아’, 즉 내가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다.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사고의 전환에 가깝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체험을 영화화하고 싶다고 오래 생각했는데, 계속 마땅한 형식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의 이야기를 교차시키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됐다.
줄곧 영화화하고 싶었던 주제로 첫 장편을 만들었다. 어떤 영화가 되길 바랐는지.
영제 ‘Not One and Not Two’는 불일불이(不一不二)라는 불교의 철학을 이른다. 너와 내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는, 영상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이 화두를 영화화하는 게 목표였다. 들뢰즈가 화가는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게 만든다고 말했듯이, 영화의 문제도 보이지 않는 것을 형상화하는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벗어날 탈 脫>은 불가의 철학에 관한 이야기면서, 영화 매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벗어날 탈(脫)은 육달월 변(⺼)에 기쁠 태(兌)가 합쳐진 한자다. 제목은 어느 단계에서 지었나.
<탈날 탈(頉)> 제목 지을 때 한자를 많이 찾아봤다. 한자가 참 시각적이고 재밌는 언어다. 그 의미적 결합이 영화의 몽타주 같은 느낌도 있고. 당시 그칠 지(止)와 머리 혈(頁)이 결합한, 머리가 정지한 상태라는 뜻의 탈날 탈(頉)을 찾아 제목으로 지으면서, 벗어날 탈(脫)이라는 한자의 모양도 보게 됐다. 왼쪽은 육체를, 오른쪽은 그걸 벗어난 자의 웃는 모습을 뜻한다. 육체를 벗어난 자의 웃고 있는 형상이라니, 너무 재밌지 않나. 정신적인 엑스터시 같은 건데, 후반부의 검은 옷을 입은 존재처럼 이미지로 형상화해보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내 베이스가 미술이라 그런지 환유적 기법을 많이 쓰는 편이다.


남자의 이야기와 여자의 이야기가 기묘하게 얽히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디테일은 어떻게 채워나갔나.
‘너와 내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라는 선문답을 영화화하는 게 가장 큰 아이디어였고, 탈 시리즈의 기본적인 방향이 남녀의 등장이었기 때문에, 둘의 이야기가 어떻게 연관성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며 틀을 잡아갔다. 내용을 채우는 데는 우연도 많이 작용했다. 시나리오 쓰기 전에 캐스팅을 먼저 했는데, 그러면서 위지원 배우가 혼자 칸에 가서 찍은 사진을 보게 됐다. 거기서 ‘해변의 사나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고, 그 사진을 실제로 영화에 썼다. 또 우연히 손선경 작가의 애니메이션을 알게 돼, 미술 작가 이야기와 엮어 영화 안에 들여오기도 했다. 손 작가는 원래 한국화를 전공했는데, 한없이 가벼워지는 매체를 다루고 싶어 애니메이션을 시작했다고 하더라. 그런 것들이 하나씩 결합해 지금의 이야기가 됐다. 프로세스 아트 같은 느낌의 작업이었다. 막연하게 시작했는데, 여러 과정을 통해 생각이 점차 정리됐다.
남자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고 여자는 영감을 얻으려 한다. 인물 설정은 어떻게 했나.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모티브 정도를 정했다. 불치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남자한테는 깨달음을 얻고 싶은 마음이 동력이고, 여자는 이전에 그만뒀던 애니메이션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한다. 둘을 엮으면서는 깨달음과 영감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봤다. 굳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 아니더라도, 깨달음이라고 하는 건 여태까지의 패러다임이 확 바뀌는 경험인 것 같다. 영감도 비슷하다고 본다. 갑자기 뭔가 뒤집히는 거다.
캐스팅이 일찌감치 이루어졌다고 했다. 여러 작품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임호준 배우, 익숙하진 않지만 개성적인 외모의 위지원 배우가 함께했다.
임호준 배우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희극성이 있다. 영화가 너무 심각해지지 않길 원했고, 종교 영화의 틀에서 벗어나길 바랐기 때문에 임호준 배우와 하게 됐다. 호준이와는 에피소드가 좀 있다. 난 여태껏 메소드까진 아니지만 작품을 연구하고 파고드는 스타일의 배우를 많이 만난 편이다. 그런데 호준이는 아무것도 안 가진 상태에서 촬영에 임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야 진짜가 나온다고 생각하더라. 그런 연기 방식을 받아들이면서 나 또한 배우와 연기에 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주제나 의도가 배우에게 명확하게 전달되고 공유되지 않더라도, 배우는 그저 그 인물로 살면 된다는 걸, 그러면 영화가 완성된다는 걸 알게 된 거다. 미술 작가와 귀신을 연기한 위지원 배우는 모델 출신으로 움직임이 무척 좋다. <솧>에 캐스팅하려고도 했었는데, 이번에 함께 하게 됐다. <벗어날 탈 脫>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위지원 배우가 떠올라서 커피나 한잔 하자며 만난 적이 있다. 그때 입고 나온 옷이 빨간 셔츠에 검은 치마다. 그 복장 그대로 귀신을 연기했다. 나는 환(幻)이라고 부른다. 환각의 환, 헛것이란 뜻이다.
<탈날 탈(頉)>과 마찬가지로 4:3 화면비를 사용했다.
정확히 얘기하면 아카데미 비율인 1.375:1이다. 시리즈가 이어지다 보니 비율을 먼저 결정하고 거기 맞는 미학을 찾았다. 이 영화에선 영목의 108배나 후반부에 등장하는 명상 춤 등 수직적인 움직임이 중요해서, 수직성을 많이 고려하며 프레임을 구성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이 비율로는 그만 찍으려고. (웃음) 너무 힘들다. 회화적인 프레임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화면을 일부러 구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딱딱하고 제한적인 느낌이라고 할까. 다음엔 훨씬 자유롭게 하고 싶다.


영화엔 여자와 남자, 물과 불, 생과 사 등 대비가 많이 등장한다. 그것들이 그냥 극과 극에 있는 요소로 나타나기보다 결국엔 연결되는 느낌이 강한데, 대비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무엇인가.
<솧>이나 <탈날 탈(頉)>에도 대비가 많이 나온다. 내 영화의 특징이기도 한데, 대비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없애기 위해 대비를 사용한다. 영화엔 물불, 남녀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대비도 있고, 색채 대비도 있다. 그게 교차하면서 제3의 무언가가 되는 게 아니라, 결국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로 나아가는 게 이 영화의 방향성이라고 봤다.
왜 대비에 끌리는 걸까.
그간 만든 영화를 보면 전반부와 후반부가 나뉘는 이중적인 구조를 많이 갖고 있다. 나도 왜 자꾸 이렇게 되나 생각을 많이 해봤다. 어렸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세계의 끝’이라는 챕터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챕터로 나뉘어있는데, 하루키 역시 내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한 챕터씩 교대로 쓰기 시작해 지금의 결론에 이르렀다고 하더라. 그런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결국은 몽타주에 관한 관심과도 이어진다. 한 이미지가 다음 이미지를 만났을 때 시너지가 생기는 거잖나. 그 과정에서 감각이 생겨나고. 그게 영화 아닌가 싶다. <벗어날 탈 脫>에 등장하는 두 인물도 같은 공간,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데 영화적 몽타주를 통해 만나는 순간이 생긴다. 이야기 속에서든, 관객의 머릿속에서든 말이다. “아, 이게 이렇게 맞춰지는구나!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 연결을 알아차리는 순간에는 일종의 관능이 느껴진다.
난 설렘이라는 정서를 생각했다. 계속 거부하다가 드디어 만났을 때의 설렘. 그걸 깨달음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깨달음은 바늘 끝과 태양이 만나는 거란 얘기가 있다. 너무 큰 것과 너무 작은 것이 만나며 그 초점이 정확하게 딱 맞는 거다. 그 설렘은 마지막 엔딩 곡이 전부 말해주는 것 같다. 전작에 이어 박우재 음악감독과 함께 작업했는데, 내가 원했던 정서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잘 만들어줬다. 거문고가 울림이 참 큰 악기다.
공포 스릴러 계열의 장르적 긴장감도 영화 전반에 드리워져 있다.
원래 공포물을 좋아하는데, 최초의 극장 기억과 관련 있다. 어렸을 때 극장을 너무 좋아했는데, 거기엔 공포와 에로틱한 면이 동시에 있었다. 검은 커튼을 열고 아주 어두운 공간에 들어가면, 시각적으로 너무 강렬한 이미지들이 쏟아졌다. 이상한 냄새도 났고. 그게 두려우면서 아주 매혹적이었다.


미술 작가의 고민을 통해 사진 이미지와 서사라는 영화의 중요한 두 구성 요소에서 죽음의 의미를 길어낸다. 창작자로서의 고민이 투영된 결과로도 보인다.
패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 해변의 사나이가 나오는데, 여름 휴가철 바캉스 기간에 해변에서 사진을 찍으면 우연히 찍히는 존재를 이른다. 누구인지, 언제 나타나서 언제 사라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항상 누군가의 사진에 나타나는 피사체다. 소설에선 그게 우리라고 얘기한다. 유한성을 가진 존재인 우리는 결국 해변의 사나이라는 거다. 그 모티브가 죽음과 연관돼 영화에 들어왔다. 작업하면서 로라 멀비의 『1초에 24번의 죽음』을 읽었는데, 거기서 영화의 서사를 종결하는 장치로 장례식과 결혼식 등을 이야기한다. 그게 너무 재밌었고, ‘The End’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에게 맞는 영화적 형식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첫 장편을 만든 지금, 그 고민은 여전한가.
내게 맞는 형식은 계속 찾는 중이다. 이번 작업을 하며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배우들과의 관계나 디렉팅에 관해서, 앵글이나 색감 같은 부분에서도 그렇다. 한편으론 지금까지 실험했던 것이 여기서 완성된 느낌이다. 첫 번째 장편은 내 맘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단편으로 시작했던 이 영화를 장편으로 바꾼 게 아닌가 싶다. 이게 내 첫 장편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고, 앞으로는 실험이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여러모로 분기점이 될 작품인 것 같다. 어떤 말로 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나.
임호준 배우가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무슨 얘긴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좋다고.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도 그렇게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결국 깨달음이란 것도 논리적인 이해로는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있다. 체험으로서밖에 알 수 없는 거다. <벗어날 탈 脫> 역시, 뭘 봤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느낌이 오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
다음 작품은 많은 면에서 달라져 있겠다.
영화적 리얼리즘이 화두가 될 것 같다. 훨씬 덜 실험적인 영화가 될 테지만, 내게는 일종의 실험인 셈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다뤄보지 않은 걸 하는 거니까.

벗어날 탈 脫 Not One and Not Two
감독 서보형 출연 임호준, 위지원, 성용훈, 김현정, 장준휘 제작연도 2021년 상영시간 73분 등급 15세 이상
195 10-09 11: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10관
300 10-10 15: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10관 GV
437 10-12 16:00 CGV센텀시티 4관 GV
523 10-13 16: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G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