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 2021 신작전
<보조바퀴>
윤아랑/ 영화평론가 / Ground / 2021-10-01

'아이들의 영화'라는 말을 듣거나 읽을 때 얼굴이 절로 찌푸려지는 걸 억제하기는 어렵다. 물론 그런 모종의 소(小) 장르 자체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나, '아이들의 영화'라는 말을 하는 이가 대부분 청소년기를 지난 어른이고, 그들이 생각하는/보고 싶어하는 어린이나 청소년의 모습에 따라 그런 말을 꺼낸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내 의지를 벗어난 내 얼굴은 미간부터 시작해 입꼬리까지 서서히 찌푸려진다. 

한 쪽에는 (가령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고서 어른을 위한 동화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의 관점에서 더 많은 맥락이 보일 수 있는 건 사실이나, 저런 말은 작품의 '엄격하고 진지한' 맥락과 요소를 어른의 것으로 섣불리 치환해버리는 못된 심보의 일환일 가능성이 크다. (테즈카 오사무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처럼 뛰어난 '아이들의 영화'를 만든 이들은 어린이들야말로 작품 속 세계 자체를 진지하게 믿고 대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가하면 다른 쪽에는 아이들이야말로 진리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근본문제에 대한 접근이 언제나 '우둔하고' '어리석은'―즉 어린이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자신이 잃어버렸다고 간주하는 순수함을 대상에 투사하고 요구하려는 비열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 (어린이들의 세계가 만만치 않은 폭력으로 가득 차있다고'만' 말하는 사람들 역시 근본적으로는 마찬가지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이런 말들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그들의 세계로 접근하는 '아이들의 영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보조바퀴>

새삼스레 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 건 (당신께서도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보조바퀴>를 본 이후였다. 그런데 이 영화의 내러티브에 있어 중심축은 무엇인가? 자식과 부모 간의 사랑인가? 꿈을 위한 청소년의 노력인가? 그도 아니면 (영화가 오랫동안 분량을 할애하는) 이리저리 오가는 복잡한 연애심리인가? 아니, 이런 이야기들은 영화를 이루는 각각의 크고 작은 가닥이고, 그 가닥을 하나의 영화로 묶는 건 서영이라고 봐야 한다. 다만 서영이 어떤 사건에 처하는 게 중심축이 아니라, 서영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중심축인 것이다. 이 말은 주의 깊게 읽혀야 한다. 왜냐하면 영화 전반에서 서영의 분량 자체는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라면 불가능할 양식화된 앵글(인물들은 픽스된 카메라의 프레임에서 오랫동안 벗어날 생각을 않는다)과 대화(인물들은 카메라 앞에서 너무 쉽게 연애 감정을 쉽게 털어놓는다)를 스스럼없이 삽입하며 스스로가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보통의 페이크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이 작품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근거란 아마도 서영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런저런 네트워크들에의 가시화일 것이다. 한 네트워크(가족)에서 다른 네트워크(연애심리)로 급작스럽게 시선을 전환하고 겹치는 데 있어 장애를 덜고자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차용했으리란 얘기다. 

이런저런 네트워크들이 서영을 중심으로 겹쳐지면서 주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 물론 '어른 되기의 어려움'. 하지만 <보조바퀴>는 심리극도 교훈극도 아니다(물론 연애심리에 있어 '감정의 기술'에 깊은 관심을 갖긴 하지만 말이다). 이 영화가 주제를 드러내는 방법은 서로 다른 이야기들 사이의 비교인데, 여기서 서영의 역할이 비로소 활성화된다. 내러티브의 가닥들이 서영을 시작점으로 삼아 펼쳐지고 다시 서영에게로 수렴되면서 서로를 '어른됨'이라는 맥락 안에서 비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어른이 되려면 먼 것 같다는 부모, 서로의 연심을 우스꽝스럽게 표출하는 청년들, 그리고 천진난만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들과 스스로를 정확하게 바라볼 줄 아는 서영. 여기서 문제시되는 건 '어른됨'의 기준 자체다. 

서영은 마냥 '순수'하지도 마냥 '진지'하지도 않다. 그저 스스로의 잣대를 갖고 판단할 수 있는 평범한 캐릭터일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평범한 성질로 인해, 서영은 (의식하지 않고서도) '어른됨'이라는 기준을 재정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 그런 평범함이 (생물학적인!) 어른의 것이라는 관념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다소 성기긴 하나, <보조바퀴>에서 우리는 기존의 많은 '아이들의 영화'에선 쉬이 볼 수 없는 '아이'를 볼 수 있다.

<보조바퀴>

감독 이주예 | 2021 | DCP | 60분 34초 | 컬러 | 극영화 

 

10월 1일(금) 16:45 메가박스 성수점 1관

10월 3일(일) 17:40 메가박스 성수점 1관

10월 4일(목) 17:40 메가박스 성수점 1관 폐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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