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 2021 신작전
<들랑날랑 혼삿길>
손시내 / Ground / 2021-09-30

<들랑날랑 혼삿길>은 퀴어 구성원을 둔 가족의 내밀한 발화로 가득하다. 영화의 감독이자 오픈리 게이인 홍민키는 20대 후반에 접어들며 결혼 적령기를 맞았다. 그에게는 오래 연애한 동성 파트너가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둘은 법적 부부가 될 수 없다. 한편, 감독의 친형은 최근에 여자친구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독은 부모, 형 부부, 심지어 형수의 어머니에까지 이르는 여러 가족 구성원을 만나 결혼의 의미와 자신의 커밍아웃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가족 중에 성소수자가 있다는 것이 당신한테 어떤 의미인지, 그것이 형의 결혼에 걸림돌이 되진 않았는지, 그리고 게이인 자신의 결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에게 하나씩 물어간다. 얼핏 날카롭고 무거운 문답을 예상할 수 있을 법한 상황이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퍽 즐겁다. 감독은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고민과 그들이 지닌 모순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한국 사회에서 퀴어로 산다는 것에 대해 경쾌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화는 대부분 일대일 인터뷰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이때 들리는 말들은 가림막 하나 없이 너무나 솔직해서 놀랍다. 가족들의 발언은 친밀함과 애정을 토대로 하지만, 종종 성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이해나 사회적인 폭력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게이인 아들이 장남이 아닌 것에 안도하고, 내심 아들이 (이성애자로) 돌아오기를 소망하며, 성소수자성이 혹시 유전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는 때로 당혹감을 안긴다. 그런가 하면 이들은 동시에 동성애자 구성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로 인한 자기 삶의 변화를 수용하는 일종의 급진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그건 그가 가족이기 때문에, 생판 모르는 남이 아닌 우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성소수자의 가족이 된다는 건 그들의 문제를 곧 나의 문제로 끌어안는 일임을 카메라 앞의 사람들은 덤덤히 받아들인다. 그들은 눈앞에 존재하는 사람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단어와 낯선 세계를 모르는 척 무시하지 않는다. 이처럼 영화에 담긴 말들은 들랑날랑, 들쭉날쭉하다. 또한 그 말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과 결혼 제도 안에서는 강력한 포용의 언어가 되지만, 그 껍데기를 깨부술만한 힘은 가지고 있지 않다. 감독의 부모는 끝내 동성 커플의 제도적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렇게 말해버리고 만다. “결혼 안 하고 살 순 없나?”

<들랑날랑 혼삿길>

이때 고정된 카메라 뒤에서 이들과 대화하는 감독은 영화 안에 모이는 말을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틀로 거르거나 조목조목 반박하는 대신, 발화의 조건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택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건 다름 아닌 인터뷰이들의 등 뒤로 펼쳐진 가상 배경이다. 3D 시뮬레이션 게임을 연상케 하는 이 배경들은 일반적인 한국 가정집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각각 서재, 안방, 신혼집 등을 형상화한 이 가상 배경의 벽에는 이따금 정상 가족의 상징인 결혼식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린다. 이처럼 인터뷰이들이 머물고 말하는 가족의 공간은 영화 속에서 컴퓨터그래픽을 통한 조작의 산물이자, 이성 간의 결혼을 근간으로 삼는 한국 사회의 반영적 구성물로 그려진다. 현실의 질서가 고스란히 투영된 이 가상 세계는 성소수자의 욕망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화의 후반부, 아들이 미국인 남자친구와의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난감해하는 엄마의 모습은 ‘네트워크 연결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일그러진다. 어쩌면 이 깨진 화면을 현재 한국 사회 가족 제도와 퀴어 구성원 사이의 필연적인 균열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들랑날랑 혼삿길>은 그러한 어긋남을 전면화하고 기존의 세계와 전투적으로 대결하려는 영화는 아니다. 이 작품은 다만 전통적인 의미의 결혼과 그 결과 구성된 가족의 형태가 결코 담지 못하는 다른 삶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인터뷰 장면들 사이사이에는 카메라가 가볍게 움직이는 순간들이 삽입돼 있다. 감독이 퀴어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며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서로 다른 세계 사이의 대면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긴급한 일로 와 닿는다. 한편 그와는 다른 무드로 찍힌, 영화에서 가장 편안하고 사랑스러운 장면도 있다. 카메라를 든 감독이 자신과 일상을 나누는 애인 맥스를 찍는 대목이다. 어떤 조작도 가해지지 않은 홈비디오 같은 화면은 이 순간을 영화 전체에서 가장 예외적인 장면으로 만든다. 영화는 이처럼 아직 어떤 질서에 편입되지 않은 상태,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삶의 모양을 보여주며 그들의 고민을 세상에 돌려준다. 올해로 25회를 맞은 인디포럼 개막작이다.

<들랑날랑 혼삿길>

감독 홍민키 | 2021 | DCP | 39분 45초 | 컬러 | 다큐멘터리 

 

2021년 10월 2일(토) 15:30 메가박스 성수점 1관 

2021년 10월 4일(월) 15:40 메가박스 성수점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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