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싸움, 끝까지
DMZ Docs 2021 <차별> 김지운·김도희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Festival / 2021-09-13

<차별>은 2013년부터 진행된 조선학교의 무상화 재판 투쟁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일본은 고등학교 수업료 무상화 정책에 따라 공립학교에는 무료 교육을, 사립학교에는 취학지원금을 제공한다. 조선학교는 이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모든 고등학생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한다’는 원칙에서 제외된 유일한 학교다. “북한의 간첩 양성 학교”라는 근거 없는 비난이 이어지는 동안, 재일조선인 청소년은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상황을 반복해서 겪는다. <차별>은 피해자는 물론 그들과 함께 행동하는 일본 시민을 조명하며, 재일조선인 문제를 정치적 사안이 아닌 인권의 시각에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의지와 능력을 존중하는 동료로서 오랜 시간 협업해온 김지운, 김도희 감독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만났다. 영화 안팎의 시간을 풀어내며 대화를 주고받는 두 감독의 목소리에는 단호함과 따뜻함이 고루 섞였다. 인터뷰를 마친 뒤, 김지운 감독은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덧붙인다며 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재일동포는 한반도 현대사의 상흔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아온 존재입니다. 대한민국은 역사적 책임을 느끼고, 이제라도 조선학교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에서 프로덕션 ‘이스크라21’을 운영하며 꾸준히 영상 작업을 해왔다.

김지운_ 다큐멘터리 외에도 다양한 영상 작업을 진행한다. 이스크라21을 운영한지 20년 정도 됐는데, 처음 10년 동안에는 방송 외주 일을 주로 했다. 지금은 부산 내 시민단체라든지 공연예술가와 협력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돈은 받기도 하고, 뭐 힘들다고 하면 안 받기도 하고.

 

소문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웃음)

김도희_ 이미 우리가 그렇게 일하는 거 다들 안다. (웃음) 난 2005년에 이스크라21에 입사했다. 김지운 감독과는 손발을 오래 맞추다 보니, 어느덧 말이 필요 없는 사이가 됐다.

김지운_ 동지다, 동지.

 

올해 오지필름, 탁주조합, 미디토리 등 부산 영화인이 출범한 다큐멘터리 네트워크 ‘다다’에서도 활동 중이라고.

김지운_ ‘다다’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한 달에 두어 번 정기 모임을 연다. 서로 작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기획안을 봐주거나 영화 제작 관련 정보를 교환한다. 최근 부산에서 다큐멘터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새로 유입되는 분들에게 일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모임으로 자리잡으면 좋겠다. 우리 또한 ‘다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 본다. 장기적으로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감독과 재일조선인 감독, 일본 감독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기를 바란다. 부산, 경남 지역에는 일본 강점기와 연결된 이야기가 워낙 많지 않나. 도시의 근현대성을 말할 때, 재일동포는 빠질 수 없는 존재다. 꼭 우리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작업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차별>
<차별>

김지운 감독의 전작 <항로-제주, 조선, 오사카>(2015) 역시 조선 국적을 가진 재일동포 3세를 다룬다. 조선학교 문제에 관심을 둔 계기가 있나.

김지운_ <항로-제주, 조선, 오사카>가 첫 장편 영화였고, 그때 김도희 감독은 조연출과 촬영감독으로 함께했다. 나는 영상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재일동포에 관심이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20년 동안 오사카에 계시다가 한국으로 오셨다. 어릴 때부터 가족을 통해 일본 생활이라든지 차별을 겪은 경험에 관해 자연스럽게 접했다. 외삼촌은 공부를 정말 잘했는데, 일본 학교에서는 상을 한 번도 못 받았다고 하더라. 어머니 사촌 중에는 일본에서 총련 활동했던 분도 있고. 2009년에 ‘부산동포넷’을 찾아가서 영상으로 참여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전에도 재일조선인 관련한 짧은 영상을 만들기는 했지만, 조선학교를 방문하거나 촬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동포넷에서 활동하며 ‘KIN지구촌동포연대’ 등 여러 단체와 만날 수 있었고, 최근에는 우토로 마을과 사할린을 기반으로 영상 기록을 진행하는 중이다.

 

<차별>에서는 두 연출자가 촬영, 구성, 편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했다. 함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어땠나.

김지운_ 무상화 소송이 도쿄, 오사카, 규슈 등 일본 전역에서 진행되다 보니, 처음에는 지역마다 작업할 분을 따로 구하려고 했다. 무엇보다 현장을 잘 찍고 싶다는 욕심이 컸는데, 혼자서 왔다 갔다 하면 놓치는 것이 생기겠더라. 그렇게 공동 작업을 기획하다가 상황이 어려워졌고, 결국 김도희 감독과 둘이 나눠서 촬영하는 상황이 됐다. 김도희 감독은 극단 달오름과 강하나 씨를 촬영했고, 나는 주로 곳곳을 돌아다니는 역할이었다. 편집 책임자는 김도희 감독이었다. 가편집을 해서 도희 감독에게 확인받는 식이었다.

 

김도희 감독은 인터뷰에서도 말수는 적은데, 계속 눈빛으로 김지운 감독에게 사인을 보낸다. (웃음)

김지운_ 맞다, 최종 데스크는 이쪽이다. (웃음)

김도희_ 서로 건드리지 않고 일하는 법을 터득했다. <차별>이 공동연출로는 첫 작품이라고 해도, 경험이 쌓인 터라 의사소통이 어렵지는 않았다.

김지운_ 사실 <항로-제주, 조선, 오사카>도 공동연출이나 마찬가지다.

김도희_ 그때는 심지어 촬영도 내가 더 많이 한 것 같다. (웃음)

김지운 ⓒ이영진

영화에서 발족식 장면을 보여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이 공동제작이더라.

김지운_ 설립 논의 시기부터 함께했다. 현재 김도희 감독은 ‘봄’의 운영위원이고, 나는 총괄사업단장이다. ‘부산동포넷’에서 조선학교와 유적지 방문 사업을 진행했고, 꾸준히 일본을 오가며 영상을 만들었다. 그러다 2013년에 무상화 소송이 시작되며 조선학교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생겼다. 동포 사회에서도 조선학교 문제 해결을 위해 좀 더 힘을 모아 달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동포넷’은 재일조선인뿐만 아니라, 조선족과 고려인 등 다양한 재외 동포와 연대하는 단체거든. 부산 내 여러 시민단체를 찾아가서 논의한 끝에 ‘봄’을 설립했다.

 

재일조선인을 향한 수많은 차별 정책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특히 고교무상화 투쟁에 집중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지운_ 동포 사회에서 차별은 70년 동안 이어져 왔다. 조선학교 폐쇄령, 전국대회 출전 금지, 대학 입시 자격 박탈 등 종류는 다양했다. 다만,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것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생했던 일이고, 동포들은 때마다 투쟁하며 무효화시켰다. 특히 2000년대 이후로는 제도적 차별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조선대학 출신 ‘1호 변호사’인 김민관 변호사도 이야기했다. 오히려 조선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심각한 차별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다고. 결국 고교무상화 배제는 수십년 만에 등장한 ‘가시적 차별’이며, 동시대 재일조선인에게는 살면서 경험한 차별 중 가장 심각한 차별이기도 하다. 게다가 5개 학교가 참여하는 대규모 소송은 처음이었다. 자연스레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고, 소송 과정에서 많은 일본 시민이 연대하면서 내부 의지도 강해졌다. ‘이 싸움은 끝까지 간다’는 마음으로 재판을 지속하는 중이다.

김도희_ 그만큼 중요한 소송이다. 학교는 동포 사회의 핵심이기도 하고.

김지운_ 동포 사회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주요한 축이 있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 조선은행, 그리고 학교다. 총련은 세무 조사를 당하면서 세력이 약해졌고, 사람들도 많이 빠져나갔다. 조선은행은 애초 일본은행에서는 돈을 빌릴 수 없는 조선인에게 큰 역할을 하던 곳인데, 현재는 아예 은행 자체가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마지막으로 남은, 재일조선인 네트워크의 중심이다. 학교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동포들이 나서서 반발할 수밖에 없다.

 

출연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거나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 나가며 신뢰를 쌓았구나 싶은데.

김지운_ 소송 현장, 투쟁 현장을 잘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서사를 만들 수 없다고 봤다. 우리와 관계를 꾸준히 맺어온 분들 중에 주인공을 섭외했다. 규슈조선고급학교 1기 졸업생이자 후쿠오카조선학원 이사장인 최유복 선생님, 규슈조선고급학교 졸업생이자 규슈 소송을 담당하는 김민관 변호사, 오사카조선고급학교에 재학 중인 강하나 학생. 이렇게 세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꼭 맞추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정해놓고 보니 재일동포 2세, 3세, 4세더라. 학교 지켜왔던, 지켜내는, 그리고 앞으로 지켜갈 사람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차별>
<차별>

학생과 어머니회 등 당사자뿐만 아니라, 연대하는 인물들의 목소리도 정성껏 담았다.

김지운_ 조선학교는 동포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이 아니다. 동포의 이익만 우선시하는 학교가 아니고, 민족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일본인도 많다. 변호단에 참가하는 일본인 변호사, 현장에서 발언하며 힘을 싣는 일본 정치인 등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넣고자 했다.

김도희_ 일본 사회가 곪아가는 모습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고 하더라.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떠나서, 어쨌든 다 같은 아이들 아닌가. 여기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를 졸업하면 사회에 나간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김지운_ 적극적으로 지지 운동에 참여하는 일본인을 보며 놀랐다. ‘재특회’의 헤이트스피치라든지 ‘치마저고리 칼질 사건’과는 반응 양상이 좀 다르다. 그건 일반인이 주도하는 차별 행위라면,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만 제외하는 것은 정부 차원의 차별이다. 함께 목소리를 내며 맞서야 할 문제라고 여기는 것 같더라. 최유복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신다. 우리를 가장 많이 괴롭히는 이는 일본인이지만, 우리를 가장 열심히 도와주는 이도 일본인이라고. 나도 촬영하면서 느꼈다. 국내에도 조선학교 무상화 소송 투쟁에 연대하는 단체가 여럿 있지만, 아무래도 활동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 재일조선인은 일본에서 계속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니, 일본 사회와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기대되는 장면은 무엇인가.

김도희_ 오사카조선학교가 재판에서 승소한 후, 강하나 씨가 집회 발언하는 장면. 실은 그때 아무도 승소를 예상하지 않았다. 하나 또한 패소를 가정하고 발언문을 작성했는데, 판결 이후 급하게 고쳤다고 하더라. 하나는 재판 결과를 “우리도 이 사회에서 살아도 되는구나. 그렇게 인정받는 기분이다.”라고 표현한다. 여러 생각이 들더라. 우리한테는 너무 당연한 일이지 않나. 여기서 태어났으니 그냥 여기서 사는 건데, 하나는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던 걸까 싶더라. 같은 맥락에서 규슈 재판 장면도 떠오른다. 패소가 결정된 후, 아이들이 의기소침했다. 그때 한 여자 선배가 고개 숙이지 말라면서, 아이들을 향해 울부짖는다. 너희는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니까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나도 촬영하다가 울컥했다.

김지운_ 일본에서 촬영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사베쯔(さべつ, 차별)다. 차별의 당사자에게 ‘차별’이라는 말은 그저 단어가 아니라, 뼈에 사무치는 아픔이라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나는 이러한 차별이 단지 조선학교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권과 역사의 문제로 인식해야 하고, 현재 우리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마주하는 현실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한 이주민, 임금 차별을 경험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등 여러 문제가 남아 있다. 차별에 관해 폭넓게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제목을 ‘차별’이라고 지었다.

 

다음 작품에서도 재일조선인 문제를 다룰 예정인가.

김지운_ 확실히 정해둔 바는 없지만, 다큐멘터리를 또 만든다면 재일조선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동포들과 너무 친해졌다. (웃음) 2009년부터 했으니 햇수로 따지면 13년이다. 주변에서는 어떻게 계속 이 작업을 하느냐고 묻는데,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즐거움과 반가움이 크다. 물론 사명감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원동력이 되어주는 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최유복 선생님은 아버지 같고, 극단 달오름 김민수 대표와는 친구가 됐다. 공연 영상이 필요하다고 하면, 비행기 티켓만 끊어서 일본으로 간다. 김민수 대표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술도 잔뜩 얻어 마시고 온다. 그런가 하면 하나는 딸 같다. 실제 내 딸과 나이도 한 살 차이다. 그런 사람들이 눈앞에서 울고불고하는데,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않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촬영하고 기록하면서 함께하려고 한다.

김도희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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