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은 충북 제천 덕산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의 1년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작은 학교의 아이들은 1학년 때부터 6년을 한 반으로 지냈다.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지만, 그만큼 쌓인 갈등도 많다. 처음으로 담임을 맡은 젊은 교사 윤재는 아이들과의 소통이 어렵기만 하다. 이 사이에서 카메라를 든 이는 현직 초등학교 교사인 고한벌 감독이다. 섣불리 개입하는 대신 각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 재미난 장면을 연출해보기도 하는 사이, 계절이 바뀐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선생님과 아이들, 아이들과 아이들 사이에 무언가 변화가 생긴다. 영화는 그 변화의 비밀을 파고들어 탐구하기보다, 비밀이 깃든 풍경을 소중하게 펼쳐놓는다. 아이와 어른의 눈높이를 맞추게 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이 헤아릴 수 없는 비밀은 점차 카메라를 사랑스럽고 어여쁜 순간으로 이끈다. <어느날 교실을 나오면서>(2017)로 신규 교사의 고민을 풀어냈던 감독에게, 어떤 마음으로 다시 교실로 돌아갔는지 물었다.
덕산초 6학년 학생들의 1년을 담은 영화를 만들었다. 어떻게 시작된 인연인가.
교사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 아이들의 담임을 맡았다. 당시 아이들은 2학년이었고, 나는 군대에 막 다녀온 신규 교사였다. 그 이후 청주로 근무지를 옮겼다가 영화를 공부하게 됐고, 아이들은 6학년이 됐다. 그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 다시 찾아갔다.
영화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너무 추상적이라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처음엔 아름다운 순간을 담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했다. 코이카 단원으로 탄자니아에서 군 복무를 하며 사진을 많이 찍으러 다녔다. 그 경험이 좋았고, 자연스럽게 좀 더 긴 호흡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화에 관심을 두게 됐다. 검색해보니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다큐멘터리를 공부할 수 있다고 하더라. 아프리카에서 찍었던 것들을 간략히 편집해서 원서를 냈는데, 처음엔 떨어졌다. (웃음) 그래서 한예종 평생교육원에서 단편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을 수강했고, 조금만 더 배워보자는 생각에 다시 시험을 봐서 방송영상과 전문사에 입학했다.
그때 만든 단편이 <어느날 교실을 나오면서> 인가.
맞다. 처음 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잘 놀아주는 교사가 될 줄 알았다. 덕산초 가기 전 맨 처음 발령받은 학교에서, 내 입장에선 정말로 즐겁게 지냈다. 그런데 이듬해, 우리 반이었던 아이가 학년 올라가고 선생님이 바뀌어서 행복하다고 얘기하더라. 당황스러웠다. 나는 훌륭한 교사, 꿈속에 그리던 교사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던 거다. 실은 미성숙했고, 고민도 없는 교사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그래서 그 아이, 푸른이에게 사과하면서 교사들의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고 후회하는 마음을 담은 영화를 만들게 됐다.


영화 만들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일단 푸른이가 흡족해했다. 이건 가능성이 있다, 영화가 되겠다고 하더라. (웃음) 당시 3학년이었지만 어른들의 모순을 인지할 정도로 똘똘한 아이였다. 주변의 동년배 교사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서,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수긍해줬다. 걱정을 많이 하며 시작했는데, 무사히 만들 수 있었다.
원래는 김영란법을 주제로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맺는 관계에 관한 영화를 찍으려 했다고. 결은 다르지만,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역시 관계를 다루는 영화다.
김영란법이라는 제도 자체가 어른들의 문법이고, 아이들의 실생활에 전혀 닿지 못 하는 말이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꽃을 뇌물로 해석해야 하는 모순, 반대로 지금까지 많은 교사가 실제로 저질렀던 잘못을 그 제도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스승의 날까지 기다리는 게 영화답지 못한 것 같더라. 결국 법 이야기가 없어도, 아이들의 문법과 일상을 담는 게 맞겠다는 생각에 방향을 바꿨다. 한편으로는 미숙했던 시절을 한 번 더 마주 하고 싶기도 했다. 단편을 만들며 뼈저린 반성을 했지만, 덕산초에서 만난 아이들에게도 잘해주지 못했으니까. 왠지 이 아이들에게 가야 할 것 같았고, 오롯이 1년을 다시 잘 지내보고 싶었다.
다시 만난 아이들, 그리고 6학년 담임인 윤재 선생님과는 작업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나.
아이들에게는 아마 너희는 이 시절을 점점 잊겠지만, 나중엔 분명히 아름답고 소중하게 보일 거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러니 내가 남길 수 있게 해달라고 열심히 설득했다. 또 지워달라는 부분은 무조건 지울 테니 1년간은 느긋하게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윤재 선생님은 기간제로 근무하다가 처음 담임을 맡는 상황이었다. 5학년 때 아이들을 담당했던 여자 선생님이 그대로 6학년 담임을 한다고 전해 들었던 터라, 처음엔 그 변화가 너무 불안했다. 이 영화를 싫어할 것 같았으니까. (웃음) 그런데 만나보니 나의 예전 경험을 투영하면서 오히려 건강하게 담을 수 있겠더라. 윤재 선생님도 영화의 의도를 이해하고, 끝까지 찍어보겠다고 했다.
맨 처음 목표로 삼았던 영화의 모양이 있나. 1년을 오롯이 보낸 후, 무엇이 담기리라 기대했는지.
막연하지만 시간에 관한 걸 담고 싶었다. 아이나 어른이나 시간의 유한함을 동일하게 느낄 텐데, 그 동질성을 느낄 때 아이와 어른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오늘을 힘들게 보내듯이, 아이들도 부모님이 아프실까 봐 무섭고 상실을 두려워하니까. 그런데 내 생각을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가 어렵더라. 작업을 도와준 친구들이 처음에는 극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을 해줬다. ‘색깔도둑’이라는 존재가 등장해서 아이들의 색을 빼앗고 생동감을 떨어뜨리는 내용이었다.


형식이 바뀐 후에도 가면을 쓴 검은 존재는 계속 등장한다.
찍으면서 의미가 계속 바뀌었다. 처음엔 아이들 옆에 머물면서 색을 빼앗고 침투하는 단순한 존재로 여겼는데, 마지막에는 죽음으로 상정하고 찍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과 마주하지만, 우리가 슬플 때 감싸주고 언제나 곁에 있는 것 또한 죽음 같다. 그런데 어른이 돼갈수록 죽음과 생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니까, 이 존재를 통해 그런 쓸쓸함도 표현할 수 있으리라고 봤다.
검은 존재가 등장하는 장면과 더불어 연출된 순간들이 종종 등장한다. 출연자와의 협업으로 완성된 결과물인데, 어떤 과정을 거쳤나.
내 영화 공부 여정과 맞닿은 과정이다. 처음엔 다큐멘터리가 신속하게 어떤 순간을 훔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빠르고 가볍게 아이들의 순간을 포착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할수록 뭔가가 계속 어긋나더라. 자꾸 아이들이 원치 않는 순간에 들어가는 상황이 생겼다. 그렇게 찍은 걸 쓸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갈등하고 있을 때, 친구들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다큐와 극의 경계를 오가는 영화들을 소개해줬다. 아이들이 연기한다고 해서 꼭 거짓이 아니고, 오히려 그 경계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1학기 때는 내가 포착해내야 하는 순간이 뭔지 탐구했다면, 2학기 때는 아이들과 같이 논의하면서 장면들을 만들었다. 다큐멘터리를 대하는 내 태도의 변화 또한 영화에 담고 싶었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촬영을 어려워하지 않지만, 카메라를 거슬려 하는 순간도 적지 않다. 카메라의 자리와 존재감을 만드는 과정에선 어떤 고민을 했나.
빠르고 신속하게 촬영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계속 숨으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엔 카메라가 오히려 드러나야 하고, 아이들이 카메라의 존재를 인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연기해주는 것 같은 순간도 마주할 수 있었다.
영화의 전반부에는 제법 날카로운 분위기가 많이 담긴다. 학생들과 선생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고, 학생들 사이에도 긴장이 흐른다.
여느 학교나 그렇겠지만, 여기도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 작은 학교라 1학년 때 편성된 반으로 6년을 지내야 해서, 반이 바뀌며 갈등이 개정될 기회가 전혀 없다. 거기에 선생님과 아이들의 갈등도 있으니, 처음엔 이걸 감히 찍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차라리 안에 들어가서 중재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고. 하지만 너무 많은 맥락이 얽혀있는 일이라 그것도 어려웠다. 결국 개인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윤재 선생님이 아이들이 겪어온 6년을 함부로 헤아릴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서 아이들과 급속도로 관계가 좋아졌다. 어쩌면 그게 교사들이 꼭 겪어야 하는 변화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의 삶에는 헤아리기 어려운 많은 맥락에 있고, 거기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예측할 수 없는 1년이었지만, 결국 관계의 변화를 담아내게 됐다. 하지만 드라마틱하거나 교훈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는데, 편집 과정에서 전체적인 틀은 어떻게 잡았나.
그것도 고민이 정말 많았다. (웃음) 추상적인 주제만 있고 굵은 가지가 없는 채로 촬영했고, 검은 존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 명확한 기승전결과 친절한 내러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는데, 프랑수아 트뤼포의 <포켓 머니>(1976)라는 시골 학교 아이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 꼭 명확한 줄기가 없어도,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쇼트들을 이어나가면 영화가 될 수 있겠더라. 그렇게 하나씩 붙여나갔다. 오히려 그런 명확함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성장과는 어울리지 않겠다고 판단하기도 했고. 나중에 시우라는 친구가 인터뷰하면서, 우리 사이가 왜 좋아졌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지 않나. 윤재 선생님도 비슷한 말을 하고. 그 말을 따라서 영화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영화를 완성했다. 어떤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아이와 어른이 공존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외려 아이가 더 성숙하고 어른이 미숙하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어린 시절의 섬세하고 영민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 교실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영화 만드는 과정에서 많이 했다. 윤재 선생님도 인터뷰하면서 솔직한 얘기를 들려주셨고,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정리하셨던 것 같다. 이 영화가 본인한테도 귀한 인연이라고 하더라. 어쩌면 이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이들과 신규 교사의 미숙한 시절을 보여주는 영화인데, 시시비비의 시선보다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
교육의 현장,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조명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다음 주제는 무엇이 될 것 같나.
학교폭력을 다뤄보고 싶다. 정말 심각한 위급상황이라고 느낀다. 김영란법처럼, 이 역시 제도의 언어로 상황을 설명할 때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어린아이들이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단어를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어떤 형식으로 풀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또 신체장애를 가진 아는 형과 예전부터 영화를 찍기로 약속했는데, 그걸 꼭 지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