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거의 새로운 인간>과 <그들은 우리의 응시에 응답한다>를 선보이는 백종관 감독을 만났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촬영한 두 작품은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닥뜨린 무용수들과 그들의 무대를 기록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배경으로 하는 <거의 새로운 인간>에서 주인공들은 예술 교육의 또 다른 방식을 개발하고 그에 적응할 것을 요구받는다.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교수와 학생 모두 시행착오를 겪고, 정기 공연이 취소되는 등 무력감에 빠지는 순간이 늘어난다. 한편, <그들은 우리의 응시에 응답한다>는 스페인 안무가 랄리 아구아데와 국립현대무용단의 협업 과정을 따라간다. 랄리 아구아데의 입국이 어려워지자, 그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온라인 화상 미팅을 통해 작업을 지속한다. 어느 한 곳에 다 함께 모일 수 없다는 것은, 서로의 몸과 호흡을 관찰하고 활용해야 하는 무용수들에게 엄청난 제약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든 연결을 포기하지 않으며 ‘거의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무용수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열심히 “만들면서 움직이는” 백종관 감독에게 영화와 극장에 관해 물었다.
<순환하는 밤>(2016) <검은 옷을 입지 않았습니까?>(2020) 등 항상 작품 제목이 인상적이다. 이번에 제목을 지을 때는 어디서 힌트를 얻었나.
실은 나만의 제목 리스트가 있다. 평소 책을 읽다가 인상적인 문장을 발견하면 메모해둔다. ‘거의 새로운 인간’은 폴 발레리의 아포리즘을 모아서 엮은 책에서 가져왔다. 늘 이런 식으로 제목을 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 문구를 봤을 때부터 ‘잘 기록해두었다가 적절한 상황에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영화의 주제와도 연결되고,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전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문구 같다.
지난 2년간 사회적 거리 두기와 비대면 소통이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누구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며 어려움을 겪겠지만, 춤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더라.
무용은 신체와 신체를 마주하는 것이 중요한 장르다. 이를 비대면 방식으로 소화하기란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해결책을 찾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비단 무용수뿐만 아니라, 다들 어떤 식으로든 변화해야만 하는 시기 아닌가. 코로나19로 인해 환경 자체가 달라졌으니까. 그런 면에서 발레리가 경험한 세상, 즉 ‘거의 새로운 인간’이라는 문구가 튀어나온 배경을 살펴보면 재미있다. 발레리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중반에 죽었다. 산업혁명 이후,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땠을까? 자본주의가 싹트면서 세상은 훨씬 복잡해졌고, 당대 지식인은 사회의 진보와 쇠퇴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지금 우리에게 100년 전의 혼란은 별것 아니지만, 당시 발레리가 체감한 바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단편 <그들은 우리의 응시에 응답한다> 역시 책에 나온 구절을 인용한 제목인가.
맞다. 작업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입으로 말하려니 괜히 좀 부끄럽다. (웃음) 최근에 장 스타로뱅스키의 『자유의 발명 1700~1789 / 1789 이성의 상징』을 흥미롭게 읽었다. 18세기 프랑스 문화사를 다룬 책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회화를 중요한 레퍼런스로 삼는다. ‘그들은 우리의 응시에 응답한다’는 문장에서는 ‘그들’과 ‘우리’라는 대명사가 중요하다. 대부분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사람을 가리킬 거라고 생각하지만, 맥락을 살펴보면 그 문장에서 ‘그들’은 사물이다. <그들은 우리의 응시에 응답한다>를 촬영할 때, 랄리와 무용수가 소통하는 방식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서로 얼굴과 몸을 확인하며 대화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스크린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어떤 매개가 필요한 상황, 그런 방식이 지니는 장단점 등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물론 제목을 다르게 해석해도 상관없다. 나 또한 ‘그들’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 명시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긴장을 원했다.


그동안 시나 희곡을 재료로 삼거나 기록을 낭독하는 등 텍스트에 기반한 작업을 주로 했다. 창작 반경을 한 발짝 넓힌 느낌인데, 본래 몸과 춤에 관심이 많았나.
2011년에 회사를 관뒀다. 영화를 공부하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었는데, 회사 생활을 지속하기에는 몸이 너무 안 좋기도 했다. 과로로 몸이 썩어가는 듯했거든. 퇴사하면 꾸준히 운동하면서 신체 건강을 회복하리라 다짐했다. 그때 우연히 LG아트센터에서 현대무용 워크숍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전까지 관객으로서 무용 공연을 즐기긴 했지만,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은 없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참여 신청서를 냈다. 돌이켜보니 정말 의욕이 충만했던 시기다. 다음 해에는 영화과 대학원에 입학할 예정이었고,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며 이것저것 시도해봤다. 워크숍을 마친 후, 무대까지 섰다. 정영두 안무가가 이끄는 두댄스시어터와 LG아트센터가 기획한 <먼저 생각하는 자 - 프로메테우스의 불>(2012)의 트라이아웃 공연이었다. 워크숍에서 훈련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오디션이 열렸고, 운 좋게 합격하면서 공연에 참여했다. 무모한 도전이었지. (웃음) 3-4개월 트레이닝하면서 발톱도 빠지고 많이 고생했는데, 그때 경험이 이후 영화 작업에 큰 영향을 줬다.
어떤 자극을 얻었나.
감각하는 방식이 달라진다고 해야 하나? 예컨대 군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옆 사람과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함께 훈련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공기의 흐름이 느껴진다. 꼭 눈에 보여야만 옆 사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리, 숨결, 혹은 또 다른 무엇을 감각할 때가 있고, 그걸 계속 발전시켜야만 공연이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몸의 확장을 경험하기도 했다. 나는 동작을 꽤 능숙하게 따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연습실에서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머릿속에 그렸던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 드러나는 내 움직임은 너무 작고 초라하더라. 스스로 갇혀 있음을 인식하고, 조금이나마 틀을 깨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순간에는 내 몸이 실제 사이즈보다 커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 그런 경험과 감각이 영상 작업에 도움을 준다. 덕분에 촬영 방식과 도구, 영화의 주제와 내용 등 다양한 측면에서 확장성을 고려하게 됐다.
영화제에서 단편과 장편을 함께 공개한다. 각각 국립현대무용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이 제작처라고 나오는데, 어떻게 시작한 작업인가.
두 작품 모두 제작처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단순히 위기를 돌파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태도에 관해 여러 생각거리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수락했다. 고맙게도 학교와 무용원 모두 내게 작업을 전적으로 맡겨 줬다. 취지는 분명하되, 특별한 요구 사항을 덧붙이지는 않는 식이었다. <거의 새로운 인간>의 경우, 교수진이 학교에 아이디어를 냈다고 들었다. 전대미문의 상황을 마주하며 교수와 학생 모두 힘들어하는데, 그 안에서 뭔가를 새롭게 시도해나가는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면 좋겠다고 하더라. 수업도 수업이지만, 무엇보다 공연은 학생에게 자신을 보여줄 엄청나게 중요한 장이지 않나. 무대에 설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다 보니, 공연이 아닌 또 다른 형식이 필요해졌던 셈이다. <그들은 우리의 응시에 응답한다>는 훨씬 특수한 상황에서 출발했다. 랄리 아구아데의 공연은 이미 1년이 미뤄진 상태였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도 진행이 불투명해졌다. 다들 오래 기다렸던 터라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공연을 언제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워크숍을 진행하며 이를 기록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하더라. 제작한 영상은 <승화>라는 제목으로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무대에서 6월에 상영이 되었고, 이를 보완, 재편집한 영화가 <그들은 우리의 응시에 응답한다>이다.


작업하며 즐거웠나.
재밌더라. 주어진 상황 자체가 장르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거의 새로운 인간>과 <그들은 우리의 응시에 응답한다>는 댄스 필름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놓인 작품이다. 중간중간 무용수의 움직임이 아주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내고, 이때는 댄스 필름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에서 완성된 댄스 작품을 보여줄 수는 없다. 그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만 담길 뿐이다. 장르를 제한하지 않는 나의 평소 작업 스타일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거의 새로운 인간>에서 한 인터뷰이는 공연장을 “분위기, 아우라, 감정들과 만나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만남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때다. 감독 또한 최근 극장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할 텐데.
여러 가지 생각을 했고, 여전히 그렇다. 작년 이맘때 삼일로창고극장의 ‘2020 창고개방 - 창고에서 창고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말들은 거울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고 커튼 속에 묻히지도 않은>을 만들었다. 연출가, 기획자, 배우, 비평가, 극장 관계자, 테크니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공연예술인을 인터뷰했고, 그 내용을 엮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창작자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그들의 삶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지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다. 정책이나 제도 면에서 생각해볼 문제도 많지만, 결국 근원적인 질문을 향해 나아가게 되더라. 극장이 문을 닫으면, 영화는 지속될까? 극장은 무엇이고, 영화란 또 무엇인가? 사실 코로나19 이전이라고 해서 이런 질문을 아예 떠올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훨씬 시급하고 치명적인 문제가 됐다.
무용수들은 “우리는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감독은 자신을 뭐라고 정의할지 궁금하다.
만드는 사람, 그리고 나도 움직이는 사람 같다. 만들면서 움직이는 사람. 실제로 몸을 많이 쓰기도 하고, 움직임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기도 한다. 움직임에 관해 생각하는 과정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얻는 편이다. 나는 영화에 스틸 샷을 많이 쓰는데, 이 또한 움직임과 연결된다. 보통 내러티브 영화에서는 스틸 샷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관객 입장에서는 갑자기 영화가 멈춘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지니까. 하지만 영화에는 운동성이 존재한다. 멈춘 것처럼 보일 때조차 물리적으로든 인지적으로든 운동성을 내포하는 요소가 영화 안에 있는 거다. 그런 게 재밌다. 운동에 대한 사유를 즐기고, 영화에서도 이에 관해 많이 언급하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