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칼 대신 수저
DMZ Docs 2021 <수프와 이데올로기> 양영희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Festival / 2021-09-08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어느 재일 코리안 가족의 영상 일기 <디어 평양>(2006)과 <굿바이, 평양>(2009)의 멀고도 가까운 후속편이다. 지난 세기 한반도를 휩쓴 전쟁, 해방, 분단의 소용돌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떼어놓았다. 양영희 감독의 얽히고설킨 가족 이야기도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일본에 거주하는 부모님은 재일 코리안 1세이자 열렬한 조총련 활동가 출신으로 평생 북한을 조국으로 여기며 살았다. 그런 부모에 의해 북한으로 보내진 세 오빠는 평양에서 밝지만은 않은 새 삶을 꾸렸다. 그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던 막내딸은 카메라에 가족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삶과 기억을 물었고(<디어 평양>), 평양에서 태어난 조카를 통해 자신을 돌아봤다(<굿바이, 평양>).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지금껏 평양에 있는 가족들의 생활을 지원하며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해온 어머니에 대한 영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사카에서 홀로 지내는 어머니는 어느 날 자신이 제주 4.3의 체험자라는 놀라운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준다. 딸은 어머니의 기억을 따라 슬픈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다시 한번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 그 여정을 담는 영화엔 어쩔 도리 없이 슬픔이 고이지만, 한없이 화창하고 다감한 순간들 역시 소복이 쌓인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9월 9일 개막하는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굿바이, 평양>을 공개했을 때 이미 어머니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적 있다. 워낙 대단한 분이라 고민 중이라고 했는데,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완성했다.

원래는 어머니의 인생을 각색해서 극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나서 좀 지쳐있었다.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타인의 실생활을 찍는 일인 데다가, 영화가 공개된 이후에는 북한에 있는 가족을 항상 걱정해야 했으니까. 게다가 난 영화 때문에 북한 방문이 금지돼 2005년 이후엔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멍하니 생각하고 있으면 눈물도 나고, 넘치는 걱정에 꿈도 꾼다. 고맙게도 가족은 계속 격려해줬지만, 다큐멘터리는 그만두고 극영화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4.3 체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거다. 일단 너무 놀랐고, 생각할수록 기록으로 남겨야겠더라. 그땐 영화 생각은 못 했다. 언젠가 북한에 있는 오빠와 조카를 만날 날이 온다면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4.3에 관한 어머니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됐나. 오랜 세월 묻어둔 말이었을 텐데.

내 조부모와 외조부모가 모두 제주 출신이고, 아버지는 15살까지 제주에 살다가 일본으로 갔다. 어머니는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제주에서 잠시 산 적이 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이 궁금했고, 또 당시 제주의 모습이 알고 싶었는데, 그런 얘기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디어 평양> 편집을 시작하면서 어머니한테 먼 친척이나 아버지 소꿉친구 중에 4.3 희생자가 있는지 물어봤다. 그때도 그런 건 모른다고, 너무 옛날 일이라 다 잊어버렸다고만 하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가족의 나라>를 찍었다. 인기 있는 중견 여배우가 어머니 역할을 맡았는데, 어머니가 좋아하면서 “너는 정말 영화감독이 되고 싶구나.” 하시더라. “어머니, 무명하고 가난하지만 나 영화감독이에요.” 했지. (웃음) 그때 영화 많이 만들라면서 그 얘기를 해주셨다. 일본에 살던 어머니는 1945년에 폭격을 피해 제주도로 피난 갔다. 일본과 달리 민족차별이 없어 자리 잡고 살아보고자 했는데, 3년 뒤에 4.3이 터진 거다. 당시 의사였던 어머니의 약혼자가 산부대에서 사람들을 돕다가 죽었고, 위험해진 어머니는 동생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밀항했다. 물론 이걸 한 번에 다 들려주신 건 아니다. 하도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숨겨두고 자물쇠로 잠가둔 이야기라, 기억날 때마다 조금씩 힘들게 말씀하셨다. 옆에서 하나씩 물어보기도 하며 이야기를 모았다.

 

결국 어머니가 겪은 과거의 일과 가족이 현재 마주한 변화가 맞물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사이 양영희 감독의 남편이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됐고, 두 사람은 어머니와 함께 제주에서 열린 ‘제주 4.3 70주년 추념식’에 방문했다.

기록을 남겨두자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을 때, 이상한 일본 남자가 나타났다. (웃음) 만나고 3개월 만에 청혼을 해왔는데, 그때는 결혼 말고 동거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굳이 어머니한테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하더라. 내 부모님은 일본사람과 결혼하는 걸 오랫동안 반대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까 궁금했다. 한편으론 그 상황이 재밌기도 했다. 일본사람이 우리 가족의 성원이 될 수도 있다니! 그때부터 이걸 찍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남편에게 동의를 구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어머니 같은 소위 ‘조선’ 국적인 사람도 남한에 입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마침 제주도에서 추념식이 열린다는 걸 알았고, 어머니도 가고 싶어 하셔서 셋이 함께 제주에 가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때부터 어머니가 걷기 운동을 많이 하셨다. 우리도 오사카에 좀 더 자주 들르게 됐고.

<수프와 이데올로기>
<수프와 이데올로기>

세 사람이 함께하는 현재의 일상이 다정하고 유쾌하게 담겼다. ‘수프’를 만들고 함께 먹는 장면이 반복되면서 세 사람이 정말 가족이 되어가는 게 보인다.

제목에 국물, 수프, 백숙 같은 단어를 넣고 싶었다. 남편이 워낙 한국음식을 좋아했고, 어머니도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걸 좋아하셨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게 참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디어 평양>을 본 사람들은 내가 아버지와 원래 사이가 좋은 거로 아는데, 실은 부모님과 웃으며 밥을 먹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정치적으로도 반대니까, 싸우기 싫어서 20대 때는 아예 같이 식사를 안 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만들면서 아빠한테 웃으며 다가가기 시작했고 밥을 같이 먹게 된 거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라는 제목은 사상과 종교가 달라도 결국은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총이 아니라 수저를 들자는 거다.

 

여러모로 남편이 큰 역할을 했다.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 때는 아버지와 나, 북한에 있는 조카와 나 사이에서 카메라가 브릿지가 돼줬다면, 이번에는 카메라와 함께 남편이 브릿지가 돼줬다. 전에는 늘 어머니랑 이런저런 문제로 싸웠는데, 남편이 이 관계에 들어오니까 나도 어머니한테 좀 더 다정해질 수 있었고 우리 사이에 웃음도 많아졌다. 어머니도 안심하신 것 같다. 본인이 죽으면 혼자 남을 딸을 항상 걱정하셨으니까. 어머니와 남편의 관계를 보는 게 재밌었다. 하나도 정치적이지 않아 보이지만, 실은 대단한 정치가들이다.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안다. (웃음) 남편이 어머니의 요리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모습도 참 신선했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며 오래도록 부모를 바라보고 찍었지만, 어머니와 함께 제주에 방문하는 대목에서 드러나는 부모에 대한 이해는 이전과는 또 다른 결을 지닌다. 4.3을 제대로 안다는 건 감독에게 어떤 의미인가.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하고 민족학교도 다녔기 때문에, 한반도 역사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알게 됐다. 제주도에 방문했을 때는 매일 울만큼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4.3을 안다는 건 내 뿌리를 아는 일이었고, 동시에 오사카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했다. 내가 나고 자란 오사카 교포 사회에는 제주도 출신이 정말 많았다. 그저 거리가 가까워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는데, 4.3을 모르면 그 시작을 모르는 거나 다름없더라. 당시 피난 온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거였으니까. 우리가 나이 들어가면서 ‘우리 부모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을 많이 하잖나. 사실은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해왔던 거다. 한 사람을 이해하고 그 인생을 안다는 게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가족의 나라>
<굿바이, 평양>

제주에 처음 방문한 건 언제였나.

내가 2004년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는데, 그 전에 아버지 본적을 정리하려고 2003년에 처음 방문했다. 그때는 바다가 예쁘고 맛있는 게 많은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웃음)

 

<디어 평양>에는 평양을 ‘조국’이나 ‘혁명의 수도’가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곳, 보고 싶은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고 표현한 인상적인 내레이션이 흐른다. 양영희 감독에게 제주는 어떤 곳인가.

기억해줘서 고맙다. (웃음) <디어 평양> 때는 아버지, 이번에는 어머니가 주인공이라고 하지만, 사실 내 다큐의 진짜 주인공은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는 나다. 내 생각과 느낌을 말하고 싶어 가족의 이야기를 통하는 거다. 제주도는 부모님의 청춘, 가족의 뿌리, 어머니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제주의 아픈 역사를 안 후에는 신기하게도 그곳이 가깝게 느껴진다. 더 알고 싶고 더 듣고 싶다. 4.3을 알고 나서 보는 바다는 정말 다르다. 돌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전 영화에선 상황과 정보를 알리기 위해 자막을 썼는데, 이번엔 애니메이션을 통해 전쟁부터 제주 4.3에 이르는 역사를 쉽고 자세하게 표현했다.

글자로 설명하거나 뉴스 영상을 빌려오기는 싫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채우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한테 어릴 때부터 10대 때까지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 당시에 가난하고 사진 찍을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제주로 피난 가면서, 또 일본으로 밀항하면서 짐을 하나도 챙길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왜 제주에 가게 됐고, 왜 또다시 일본으로 갔는지 설명하기 위해 처음부터 애니메이션을 쓰고 싶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일본의 그림책 작가인 코시다 미카 씨와 함께 작업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
<수프와 이데올로기>

어머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참 많아 보였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답을 듣지 못하는 순간이 많다. 혹시 가장 듣고 싶었던 답이 있나.

제주도에서의 생활이나, 어머니가 살면서 했던 결심의 이유에 대해서는 거의 듣지 못했다. 그런 디테일을 여쭤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알츠하이머도 급격히 진행됐고, 뇌경색으로 쓰러지기까지 하셔서 대답을 듣긴 어려울 것 같다. 다른 질문이라고 하면…, 어머니는 과연 조국을 갖고 싶었는지, 지금 어머니의 조국은 어디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태어난 곳인 오사카는 차별이 너무 심했고, 피난 간 제주에서는 너무 큰 비극을 겪었으니까. 아마 가족이 있는 평양이라고 대답하실 것 같지만, 그래도 궁금하네.

 

다큐멘터리가 대개 그렇겠지만,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특히 더 우연과 운명의 영화처럼 느껴진다. 완성한 소감은.

<디어 평양>을 찍기 시작한 게 1995년이니까, 26년 걸려서 3부작을 만든 셈이 됐다. 예정한 건 아니었지만. (웃음) 그게 준비 기간이었던 것 같다. 이제 겨우 영화감독이 될 준비를 했다고 할까. 그런 생각과 더불어, 50대 후반이 돼서 내가 난민의 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했다는 점이 매우 의미 깊다. 지금 아프가니스탄도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여러 이유로 피난을 경험하는데, 그런 일들을 더 자기 문제로 느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배운 것을 다른 이들과 많이 나누고 싶다.

 

평양의 조카들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고, 마음속 이야기를 풀기 위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어떤 과정을 겪어온 것 같나.

이런 부모의 딸로 태어난 것, 이런 오빠들을 가진 것, 그러니까 모든 가정적인 배경이 내게는 전부 부담이었다.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피하고 도망치면 결국 해방될 수 없더라. 맞서고, 마주 보고, 그래서 자기만의 답을 찾아야 하는 거였다. 물론 아주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지만. 그건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든 마찬가지일 거다. 알고 보면 망가지지 않은 가족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 모든 사람은 미완성이다. 그걸 알고 더 대담하게 시야를 열어야 해방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이제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 겨우 날개가 준비됐다. (웃음) 편집을 위해 지난 2년간 한국에 머물렀는데, 그간 힘든 일도 있었지만 도움을 주는 분들도 많이 만났다. 결국 인생이 자기가 있을 자리를 만드는 과정인 것 같다. 좀 더 내 욕심에 솔직해지면서 앞으로도 잘 버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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