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WFF 2021 Daily 08.31
공민정·김태은 인터뷰, 주요 상영작 프리뷰
리버스 / Festival / 202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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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날 믿어줬다  

<희수> 배우 공민정 

공민정 ⓒ이영진

<82년생 김지영>(김도영, 2019), <이장>(정승오, 2019) 등 그간 영화 속 공민정은 대체로 발랄하고 씩씩했다. 순식간에 변화무쌍하게 표정을 바꿨고, 톡톡 튀는 매력을 발산하며 스크린을 풍성하게 덧칠했다. 그렇게 컬러풀한 공민정을 기억하는 이라면, <희수>(감정원, 2021)에서 보여주는 모노톤에 깜짝 놀랄 것이다. 단조롭고 쓸쓸한 소도시에서 희수는 풍경처럼 존재한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입을 다물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고요하게 움직인다. 우연히 만난 이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물으며 글썽이기도 하지만, 이내 희수는 해야 할 일은 전부 했다는 듯 어디론가 휘 떠난다. 걸을수록 희수의 테두리는 점차 옅어지는데, 희수는 그 자리에서 계속 살아갈 이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처럼 건넨다. 공민정은 희수와 함께 보낸 시간을 치유라고 말한다. 종종 슬픈 마음을 어쩔 도리가 없어 울음을 터뜨렸지만, 눈물을 닦고 난 얼굴에는 애틋함과 개운함이 남았다. 어느덧 여름과 가을 사이, 무더위는 힘들었으나 계절과 작별하는 일이 조금은 아쉽다는 배우 공민정을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냈나. 몇 달 동안 포항에서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tvN, 2021)를 촬영했다고 들었는데.

즐겁게 찍고 있다. 감독님도 좋고, 현장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 촬영장 가는 날이 오면 행복하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좀 처지는 편이거든.

 

드라마에서는 어떤 인물을 연기하나.

이름은 표미선, 직업은 치위생사다. 본래 서울에서 살다가 친구 혜진(신민아)과 함께 공진이라는 지역으로 내려간다. 혜진이 개원한 치과에서 일하며 여러 사람을 만난다. 이웃도 생기고, 연애도 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다.

 

공식 홈페이지 소개란에 “푼수기 넘치는 4차원”이라고 적혀 있더라. 희수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겠다.

아예 다른 사람인데, 둘 다 나다. 너무 다른 나. (웃음)

 

올해 영화제에서 <희수>를 공개했지만, 촬영한 지는 3년 정도 지났다. 희수와 보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나. 

일기장처럼, 일기장 속에 담긴 귀한 추억처럼 남아 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기억이 생생하다. 안민영 선배가 시를 읽어주는 장면, 학선(강길우)과 수다 떨면서 밖을 쳐다보는 장면, 할머니한테 인사하는 장면… 그렇게 장면 하나하나가 계속 떠올라서 신기하다. 원래 이 정도까지 구체적으로 생각날 수가 없거든. 매 순간이 나에게는 그만큼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연기보다는 체험에 가깝다. 몸으로 경험한 것은 쉽게 잊을 수가 없지 않나.  

 

공민정의 무표정을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더라. 

영화를 찍을 때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일부러 무표정을 지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 사실 <희수>에서는 굳이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했던 적이 없다. 그냥 희수는 나였고, 감독님도 그걸 믿어줬다. 아주 특별한 작업이었다. 시나리오 지문으로 나온 특정한 동작 외에, 나머지 세부 사항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내가 하는 모든 선택이 곧 희수의 선택이 되는 상황인데, 그마저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자유로웠다. 참 이상하지. 감독님은 어떻게 그토록 완전히 믿어줬을까? 덕분에 나는 영화에서 한 신 한 신을 살아갈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희수가 꼭 그런 사람이다. 자기한테 주어진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계속 살아왔고 또 살아갈 텐데, 영화에는 그 시기의 희수가 담기는 거라고 봤다. 감정을 쉽게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표정에 많은 변화는 없지만. 음…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나.

<희수>
<희수>

무표정이 표정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살짝 토라진 듯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계속 감정이 묻어나는데, 결국 무표정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더라.

맞다, 영화를 찍으면서 마음속으로 수없이 말했거든. 대사는 없지만, 내 안에서는 한순간도 침묵했던 적이 없다. 할머니를 뒤로하고 떠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속으로 계속 기도했고, 엔딩 장면에서 뒤를 돌아볼 때는 학선이의 자전거 차임벨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테이크를 여러 번 가면, 감정이 자꾸 올라왔다. 슬퍼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갑자기 입 밖으로 말이 흘러나온 적도 있지. 그러니까 희수는 아무것도 안 하는 여자인데,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 여자이기도 하다. 

 

오프닝과 엔딩을 포함해서 영화 중간중간 뒷모습을 자주 비춘다. 왠지 가까이 다가가기는 어려운 인상인데, 유난히 작고 가냘픈 모습이어서 안아주고 싶어진다. 그게 영화에서 의도한 희수의 모습인지, 아니면 촬영할 당시 공민정의 무드였던 것인지 궁금하더라.

신기하다. 그게 나인 것 같거든.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에게 다가오기 어려워한다. 처음에는 거리가 있는 편이지. 그러다 친해지고 나면, 나를 보듬고 감싸주려 한다. 그런 면이 희수에게도 자연스레 반영된 것 아닐까. 나는 희수를 만들어내려고 따로 노력한 게 없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내가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것처럼 보일 텐데, 다른 면에서는 엄청나게 노력했다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

<희수>를 만드는 과정은 평소와 달랐다. 지금까지 작품에서 주로 보여줬던, 많은 사람이 공민정이라고 알고 있는 모습을 떠나보내고, 대신 그 자리에 내가 스스로 편안하게 느끼는 모습을 꺼내놔야 했다. 기질이라고 부를 수 있는 본래 내 모습. 쉽지 않았지만, 일단 끄집어내면 다음부터는 어려울 일이 없었다. 혼자 있을 때의 얼굴처럼 누구에게나 자기만 아는 모습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감독님이 그걸 봤다. 이전까지는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고, 그냥 오가며 한두 번 정도 본 게 다였다. 근데 어느 날 나한테 그러더라. 여태까지 언니가 보여준 캐릭터는 언니가 노력해서 해낸 것 같다고, 사실 언니의 본래 모습은 오히려 희수와 닮은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어땠나.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솔직히 평소에는 그런 생각도 안 하거든. 나는 그냥 연기가 즐겁고,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모습 또한 나라는 것을 안다. 다만, 너무 격차가 큰 인물을 연기할 때는 힘들기도 했다. 밖에서는 에너지를 끌어모아서 분위기를 한껏 띄우다가, 집에 오면 순간 멍해졌다. ‘나 뭐 하고 있는 거지?’ 싶은 거다. (웃음) 

 

희수를 연기하는 공민정에게서는 욕심이 엿보이지 않는다. 게으르다는 뜻이 아니라, 잘하거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풀려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기존 작품을 보면서 딱히 불편했던 것도 아닌데, <희수>에서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맞다, 보통은 내 기질대로 연기하면 안 된다. 인물의 성격과 상황에 맞게 연기해야지, 내 텐션에 인물을 맞출 수는 없지 않나. 억지로 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배역이든 최대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는 뜻이다. 나라고 ‘하이텐션’일 때가 없는 것도 아니고. (웃음) 가짜로 연기하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든 진짜를 보여주려고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보는 이에 따라 그런 모습이 성실함으로 비칠 수도, 욕심처럼 드러날 수도 있다. 어쨌거나 늘 진심으로 연기하려고 한다. 욕심이 느껴져도 불편하지 않았다는 건 그런 이유인 것 같다. 

<희수>
<희수>

미련은 없고 믿음만 있는 듯했다. 카메라가 가까이에 있어도 긴장하지 않고, 카메라가 멀리 있을 때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영화가 나를 어떻게 쓰든 상관없다고 여기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희수를 귀신이라고 생각했다. 귀신인 희수가 세상에 남은 미련을 훌훌 털고서 떠나가는 과정을 영화에 담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나는 카메라고 뭐고 신경 쓸 이유가 없지. 겁이 없으니 단단하고. 그와 동시에 희수는 아주 유약하고 여린 사람이다. 희수를 연기하면서 자주 중얼거렸다. 참 착하구나. 참 순수하구나. 영화 속 희수는 가장 선하고 순수한 상태의 희수라고 봤다. 나도 그랬다. 내 안의 순수함과 착함을 몽땅 끌어와서 희수를 만났다. 아무리 고된 삶을 사는 인물이라고 해도, 나는 희수로 살면서 오히려 치유 받았다. 물론 감정이야 들지. 슬프지 않은 신은 하나도 없었다. 근데 그 시간이 내게는 따뜻했다. 

 

그만큼 자유로웠다는 뜻이다. 감정원 감독은 어떤 연출자였나. 원하는 바를 어떤 방식으로 요구하던가. 

본인이 원하는 방향과 리듬은 분명했다. 그 외에는 내게 전부 열어줬고, 정답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우리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정원 감독이 촬영 전에 묻는다. “언니, 여기서는 어떻게 할 것 같아요?” 그럼 내가 말하지. “나는 이렇게 할 거야.” 그렇게 촬영을 마치고 나면, 정원 감독이 다가와서 궁금했던 걸 묻더라. 한 번은 길을 걷는 장면에서 내가 꽃을 피해서 갔나 보더라. “언니, 어떤 마음으로 걸었어요? 혹시 꽃 밟을까 봐 그런 거예요?” 나도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그냥 꽃이 보였고, 나는 당연하게 그걸 밟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순간이 많았다. 바구니에서 귤을 꺼내는 장면에서 내가 두 개를 잡았거든. 왜 그랬냐고 물어서 “학선이 주려고.”라고 했지. 정원 감독이 재미있다면서 학선이는 한 개만 잡았다고 알려주더라. (웃음) 우리끼리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게 희수인가 봐. 희수는 항상 뭔가를 나눠주고 싶은 사람이었나 봐.”

 

사진을 봤을 때는 둘이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안민영 선배도 착각한 적이 있다. 길에서 우연히 지나가는 뒷모습을 봤는데, 정원 감독인가 싶어서 불러 세웠다고 하더라. 내가 봐도 풍기는 분위기라든지 좋아하는 것들이 좀 비슷하다. 나도 배낭 하나 둘러메고 걷는 걸 즐기거든. 정원 감독도 그렇다. 항상 등산화 신고 큰 가방을 멘 채 뚜벅뚜벅. 곁에서 지켜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친구도 참 무던히 앞으로 걸어가려고 하는구나. 힘들어도 그냥 씩씩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구나.’ 

 

낯선 지역에서 촬영한 경험은 어땠나. 실제 공장에 들어가서 거대한 기계를 마주한 건 처음이었을 텐데.

사전에 방문하거나 리허설을 하지는 않았다. 처음 가보는 곳은 그냥 처음 가서 생경하게 느끼고 싶더라. 나도, 그러니까 희수도 어차피 그곳이 처음일 테니까. 공장에 들어갔을 때는 무서웠다. 사실 우리가 갔던 곳은 진짜 공장이 아니다. 제품을 테스트하거나 방문객이 견학하는 용도로 운영하는 곳이고, 실제 공장은 촬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환경도 훨씬 열악하고. 그런데도 공장에서 며칠 지내는 동안, 너무 갑갑했다. 소음도 심하고, 무엇보다 기계가 정말 거대해서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근데 희수는 그곳에서 10년 가까이 시간을 보낸 사람이지 않나. 희수가 원하는 것, 희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내가 희수를 안쓰러워할 이유는 없구나 싶더라. 희수한테는 이곳이 삶의 터전이고, 자연스러운 생활 공간이니까. 

<희수>
<희수>

희수는 일을 찾아서 공장, 식당, 모텔 등으로 계속 이동한다. 여러 일터를 돌아다니며 매번 새로운 사람과 일한다는 점에서 배우라는 직업과 비슷하다. 

그래서 상황 자체가 낯설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루틴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거든. 돈을 버는 데는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꾸준히 노동하는 감각 자체가 필요해서다.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내 힘으로 뭔가를 해내는 감각.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 끊임없이 일하는 거다. 근데 정원 감독이 그랬다. 희수는 저 세상에 가서도 계속 일할 것 같다고. 희수의 모델이 된 정원 감독의 실제 친구도 그렇게 말했다고 하더라. “정원아, 나는 죽어서도 일할 것 같아.”  

 

여러모로 잊지 못할 작품이겠다.

사실 배우로서 자신과 딱 맞는 작품을 만나기는 어렵다. 있는 그대로, 온전히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과연 얼마나 될까. 최대한 갭을 좁혀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이건 나야”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희수>는 귀한 작업이다. 아주 드물고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솔직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희수와 깊게 연결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테고, 나는 이 작품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살면서 희수 같은 여자를 만나본 적 있나. 

나? (웃음) 평소 작업할 때, 모델이 될 법한 사람을 찾는 편은 아니다. 무조건 내가 가진 것에서 구하려고 하지. 희수를 만나면, 혹시 꿈에서라도 보면… 그냥 안아주고 싶다. 아, 말하다 보니 눈물이 나네. 나에게 연민을 품지 말자고 늘 다짐한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나 역시 아플 때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나를 좀 안아줬으면, 내 편이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그래도 무너질 수는 없으니, 이내 기운을 차리며 내 방식대로 걸어가려고 노력한다. 희수처럼.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Interview 2------------------------------------------------------------------------------------------------------------

나란히 이어달리기 

<육상의 전설> 감독 김태은 

김태은 ⓒ이영진

조예슬 감독의 <소금과 호수>와 함께 ‘필름×젠더’ 지원 사업에 선정된 김태은 감독의 <육상의 전설>은 한 여성이 통과해온 삶의 위기를 능청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다루는 작품이다. 우리(김도이)는 데면데면하게 지냈던 이모 춘희의 장례식장에서 엄마에게 뜻밖의 사실을 전해 듣는다. 알고 보니 이모는 과거에 ‘육상의 전설’로 이름을 날렸던 달리기 유망주. 선수의 꿈을 키웠지만, 오빠의 학비를 벌어야 한다는 요구로 인해 육상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제 우리는 이모의 운동화를 신고 과거로 돌아간다. 어린 이모 곁에서 함께 달리며 현실을 바꾸려 애쓰지만, 애석하게도 이모가 맞닥뜨리는 불행은 한두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다만, 이모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안, 우리와 이모는 좀 더 가까워진다. 잘 몰랐던 사람의 이름을 힘껏 부르며 응원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어보자. 

 

2015년 <스탭업>을 시작으로 <육상의 전설>까지 총 다섯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그동안 영화제에서 작품을 소개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작년 2월에 중대 영화학과를 졸업했다. 커리큘럼에 따라 실습작을 만들긴 했지만, 영화제에 출품해본 적은 거의 없다. 작품을 제대로 완성하기가 어렵더라. 시작하는 에너지는 있는데, 마무리를 못 한다고 해야 하나. 네 번째 작품이 졸업 영화 <목공소를 부탁해>다. 후반 작업을 진행하다가 <육상의 전설>가 ‘필름×젠더’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부터 <목공소를 부탁해>와 <육상의 전설>을 세상에 내놓는 것을 올해 목표로 삼았다. 

 

‘필름×젠더’ 공모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지난 3월 8일, 그러니까 세계여성의 날에 우연히 필름X젠더 공모 소식을 접했다. 심지어 그날이 마감일이었다. (웃음) 다행히 시나리오가 아니라,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를 제출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부랴부랴 지원 서류를 준비해서 냈다. 

 

하루 만에! 기획 자체는 오래 생각해왔나 보다.

맞다, 언젠가부터 엄마와 이모 세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문정희 시인의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시를 좋아하고, 재학 중에는 교내 성평등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때 쓴 에세이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확장했다. 사실 하루 만에 쓴 시놉시스라 심사위원의 눈에도 허점이 많이 보였을 텐데, 용감한 결정을 내려준 것 같다. 속으로 ‘와, 이분들 화끈하시구나!’ 했다. (웃음)

<육상의 전설>

학내 성평등위원회 활동은 어떤 경험으로 남았나. 성폭력 사건이 벌어진 후, 그에 대응하기 위해 대책위원회를 꾸리며 급하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도 처음에는 대책위원회 같은 형태로 시작했다. 다들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계속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힘들었는데,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기도 하다. “언니, 이번에는 강령을 만들어볼까요?” 하는 식으로 친구들과 의논하며, 새로운 걸 하나씩 만들어가는 경험이 참 좋았다. 성평등위원회에 아무리 많은 시간을 소요해도, 소모되는 느낌은 들지 않더라.

 

학과 생활과 병행하다 보면, 힘에 부쳤을 법도 한데.

실은 학과 생활을 열심히 안 했다. (웃음) 영화보다는 다른 데 관심이 많았다. 성평등위원회와 힙합 동아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러다 3학년이 돼서야 뒤늦게 영화에 빠졌다. 본격적으로 연출을 공부하고 고민한지 얼마 안 된 셈이다. 스무 살에 영화과에 들어가서 올해 서른 살이 되었다. 남들은 영화를 10년 정도 공부했다고 할 텐데, 나는 이제 5년 했다는 느낌이다. 

 

그간 영화나 드라마에서 남성의 ‘왕년’을 자주 다루는 동안, 여성은 주변 인물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육상의 전설>은 한 여성을 전설로 칭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실제 모델이나 사건에 착안해서 구상한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다.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우리 이모의 이야기다. 암으로 고생하시다가 환갑도 안 돼서 돌아가셨다. 실제 내가 기억하는 이모가 춘희 같았다. 헤비스모커였고, 제정신인 모습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늘 술에 취해 있었다. 체중이 많이 나가서 거동하기도 어려웠다. 그런 이모가 중학생 때 전국체전에서 육상으로 2등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엄마 말로는 어릴 적부터 못 하는 운동이 없었다고 하더라. 공부도 워낙 잘해서 이화여고에 합격했는데, 결국 영화 속 춘희처럼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이모는 6남매 집안에서 중간에 낀 여자애였다. 딱 봐도 예쁨 받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지. 시나리오를 쓰면서 ‘누구를 없애면 될까?’ 생각했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이 큰외삼촌이었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 자리를 대신했는데, 굉장히 가부장적인 분이었다. 일단 집안의 ‘빌런’을 없애야겠다 싶더라. 이후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방향이 조금 달라졌는데, 본래는 그 여자애의 발목을 잡는 모든 이를 죽이는 내용이었다. (웃음) 

 

방향을 조정한 이유는 뭐였나.

우리가 할 법한 행동으로 바꿔야 했다. 장례식장에 가기 전까지 우리에게는 이모에 관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 유대를 쌓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가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가족 중에 영화를 본 사람이 있나.

엄마는 영화제에 초대할 예정이다. 사실 가장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이모인데, 그럴 수가 없어서 아쉽다. 보면 뭐라고 하실까? 그래도 춘희라는 인물을 만들 때, 나름대로 확신을 가졌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엄마와 다른 이모들을 인터뷰했다. 실제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가족들한테 “왜 그때 나 이화여고에 안 보내줬어?”라고 했다더라. 이모가 우울증을 앓고 술에 의존하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엄청나게 재능 있고 꿈도 컸지만, 결국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던 사람이구나 싶더라.

<육상의 전설>

실존 인물, 심지어 가족을 다뤘다. 뜻깊은 작업인 동시에, 무게도 느꼈을 거다.

가까운 이야기이고 코미디여서 쉽고 재밌게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아니더라. 지금까지 찍은 영화 중에 제일 어려웠다. 특히 춘희의 대사. 아무리 생각해도 이모가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어서, 결국 이모의 대사를 쓰지 못했다. 이건 영화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걸 알지만, 이모 입장을 짐작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평소에는 시나리오를 여러 번 고치지 않는데, 이번에는 10고까지 썼다. 이야기와 거리를 두기가 어렵더라. 내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서 자주 주저했던 것 같다.

 

이모가 다시 달리기를 바라며, 한여름의 거리를 달리는 우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우리가 장례식장에서 잠드는 설정이었는데, 동적인 느낌을 주고 싶어서 변경했다. 제목도 ‘육상의 전설’이지 않나. 누구든 달리는 장면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뛰면 되겠더라. 아쉬움이 남는다. 훨씬 멋지게 찍고 싶었거든. 그래도 김도이 배우가 지닌 에너지 덕분에, 무사히 완성했다.

 

우리 역을 맡은 김도이 배우의 야무진 눈빛이 매력적이다. 배우와는 어떻게 만났나.

굉장히 다층적인 매력을 가진 배우다. 친구 작품에 출연한 걸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되게 슬퍼 보였다. 곧 죽을 것만 같아서 무서울 정도였다. 근데 실제 성격은 ‘깨발랄’하다고 해서 만남을 청했다. 사실 내가 도이 씨를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다. 당시 나는 우리라는 인물에게 설득력이 있을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이모를 위해 달릴 수 있나? 동기 부여가 너무 약한 건 아닐까? 그때 도이 씨가 자기라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영화에서 어린 춘희가 자기 운동화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신발장 앞에 두는데, 외삼촌이 그걸 밟고 지나가지 않나. 도이 씨가 시나리오에서 그 장면을 짚어내며 “이걸 제 눈으로 봤다면, 저는 뛸 거예요”라고 하더라. 나는 그런 사람이 우리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우리는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시공간이 계속 변화하는 터라, 배우 입장에서는 적절한 연기 톤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을 듯하다.

엄청나게 헤맸다. 시나리오 흐름대로 촬영할 수가 없다 보니, 나중에 붙여 보면서 문제를 발견할 때가 잦았다. 몇 번이나 다시 찍었는데, 도이 씨는 한 번도 힘들다고 한 적이 없다. 늘 열심히, 진심으로 연기해줬다. ‘난 언제나 다시 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느낌이어서 믿고 갔다.

<육상의 전설>

2-30대 여성뿐만 아니라, 그들의 엄마와 이모 세대까지 반길 만한 작품이다. 서로 다른 세대 간의 연결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바는 뭐였나.

엄마와의 관계에서는 늘 여러 갈등에 휩싸인다. 너무 불편하고 갑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사람이 저렇게 사는 거 나만 아는데. 나 빼고는 아무도 몰라주는데.’ 싶어서 모른 척할 수가 없다. 근데 모든 질곡을 겪고 나서 한다는 이야기가 “그러니까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일 때, 별수 없이 마음이 안 좋은 거다. 그게 딸이자 ‘K-장녀’인가 싶다. 엄마가 고생했다는 걸 알고, 알아주고 싶다. 근데 나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거기까지가 지금 내 마음인 것 같다. 엔딩에서 춘희와 우리의 배턴 터치를 담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네 차례야’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페미니스트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항상 난처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창작자는 그런 불편한 감정을 파고들 수밖에 없고.

이십 대 중반에 페미니즘을 접했는데, 돌이켜보니 그전에 만든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했더라. 내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여성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여성 서사라든지 페미니스트 감독 같은 말을 들으면, 괜한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마치 지나치게 개인적인 주제를 담은 것처럼 말하니까. 여성 감독의 작품에는 흔히 ‘섬세한 연출, 작은 이야기, 잔잔한 흐름’이라는 수사가 따라온다. 과연 그런가? 아니, 내가 보기에는 전혀 잔잔하지 않다. 게다가 정말 중요하고 큰 이야기다. 세상의 반은 여자이고, 여성에 관해 말한다는 것은 그 반을 다룬다는 뜻이다. 개인적인 관심사라고 생각하는 대신, 꼭 한번 고민해볼 이야기라고 인식하면 좋겠다. 나부터 그래야겠다.

 

<육상의 전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참고한 작품이 있다면.

<롤라 런>(톰 티크베어, 1998)을 좋아한다.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만, 영화의 템포를 닮고 싶었다. 그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계속 달린다. 시나리오를 읽은 친구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나카시마 테츠야, 2006)이 떠오른다고 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오히려 그간 찾아볼 생각을 못 했다. 뒤늦게 봤는데,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이미지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호소다 마모루, 2006)를 참고했다.  

 

구상해둔 차기작이 있나. 힙합이 나오는 영화는 어떨까 싶기도 한데. (웃음)

힙합을 끊었다. 한국 힙합을 듣다 보면, 여성혐오적 가사를 계속 발견하게 되더라. 물론 대안적 방향을 모색하는 래퍼도 있지만, 예전에 비해 듣고 싶은 음악이 좀 적어진 것은 사실이다. 음악 자체는 여전히 좋아한다. 언젠가 힙합 아티스트를 찍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잠시나마 살짝 몸담은 세계이니, 잘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웃음)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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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봄 - 파둑 혁명 Padauk: Myanmar Spring

새로운 물결|진 할러시·라레스 마이클 길레잔|미얀마·태국·미국|2021|56분|12세 이상|컬러|다큐멘터리 

<미얀마의 봄 - 파둑 혁명>

총선 결과에 불복한 군부의 쿠테타, 이에 항의하는 국민들의 봉기. 2021년 2월 1일 이후 미얀마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의 정국으로 빠져들었다. 동남아시아의 인권 문제를 연구해 온 진 할러시와 라레스 마이클 길레잔은 평화 시위와 유혈 진압이 대치하는 도심 복판에서 ‘민주’의 가치를 되묻는다.

영화는 처음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20대 여성 난을 통해 세 명의 활동가를 조명한다. 2012년부터 군부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해온 마웅, 자신을 Z세대로 규정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시위를 전개하는 자우, 군부에 저항하는 운동이 과거의 민주화운동을 반성하는 방향으로 진행됨을 설명하는 인이 그들이다. 이들은 군부 쿠데타에 맞서는 시위가 ‘아웅 산 수 치 석방’이나 ‘군부독재 타도’와 같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익숙한 구호에 머물지 않고, 소수민족과 여성 등 모든 이들의 인권 투쟁과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난은 시위에 참여하며 페미니즘을 배우고, 로힝야족에 대한 버마인의 혐오와 무관심을 반성한다. 2021년의 ‘파둑 혁명’은 저항을 주도하는 새로운 세대에 의해 군부 독재를 포함한 미얀마의 전체 현실에 대한 싸움으로 확대된다.

물론 저항은 쉽지 않다. 수많은 시민이 체포되고 목숨을 잃는다. 쿠데타 직전 결혼식을 올린 난은 자신이 품고 있는 두려움과 슬픔을 내보인다. 저항을 이끄는 마웅과 자우는 군인들이 집에 찾아왔다고 말하며, 신변이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의 투쟁이 다음 세대를 위해 미얀마의 현재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며 다시 길거리로 나선다. ‘파둑’은 미얀마를 상징하는 꽃이다.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미래를 꿈꾸는 혁명가들은 파둑을 되살리기 위해 목숨 걸고 ‘세 손가락’을 치켜든다.

박동수/ 영화평론가  

<미얀마의 봄 - 파둑 혁명>

509 2021-08-31 | 15:10 - 16:31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7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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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증언 - 노동운동 속에서 선구적인 여성들 Women's Testimonies - Pioneer Women in Labor Movements in Japan

쟁점들|하네다 스미코|일본|1996|94분|12세 이상|컬러|다큐멘터리 

<여자들의 증언>

<여자들의 증언>(1996)을 연출한 하네다 스미코(1926~ )는 전후 일본 영화사, 특히 독립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만든 선구자로 평가받는 감독이다. 일찍이 <마을의 여학교>(1958)를 연출하며 활동을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80편이 넘는 작품 제작에 참여하며 여성과 노동, 도시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중 <여자들의 증언>(1996)은 일본 노동 운동 1세대 여성 활동가들의 생생한 증언을 기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가장 빛나는 성취는 물론 인터뷰이의 말 자체가 갖는 묵직한 무게감이다. 20세기 초 12살의 어린 나이에 공장에 취직해야 했던 기억, 노동 운동을 하면서도 기모노 걱정을 함께 해야 했던 씁쓸한 순간, 운동의 ‘발전’을 위해 누군가의 아내로 남아야 했던 모순, 경찰에게 고문을 당했던 끔찍한 고통 등 <여자들의 증언>에는 어두운 시대를 돌아보는 소중한 기억들이 가득하다.

<여자들의 증언>을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건 카메라 앞에 선 출연자들의 모습이다. 70대 이상의 노년에 접어든 활동가들은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생생히 끄집어내면서도 평온한 표정과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고, 또한 필요 이상의 비장한 태도를 취하지도 않는다. 존경의 감정마저 들게 하는 이 우아한 기품은 시대와 치열하게 정면으로 맞섰고 지금도 그 정신을 잃지 않은 존재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 같아 감동적이다. 그들은 카메라를 들고 찾아온 후배 활동가에게 자신의 경험을 차분하게 들려주며 계속해서 변화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전망한다. 하네다 스미코 감독 역시 끊임없이 미래를 모색하는 현재의 활동가들에게 세상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재차 질문한다.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여자들의 증언>

511 2021-08-31 | 14:35 - 16:09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9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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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의 좋은 여인 The Good Woman of Sichuan

발견|사브리나 자오|캐나다 ·중국|2020|88분|12세 이상|컬러|다큐멘터리 

<사천의 좋은 여인>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것을 실천하는 일이 버거울 때가 있다. 가령,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어느 시공간을 막론하고 타당한 도덕률이지만 이것이 나를 갉아먹는다면, 착하게 사는 것이 나의 삶을 위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오래전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선인(善人)>이 던진 질문이었다. 착하게 살라는 신을 명령을 받은 셴테 앞에 놓인 것은 자신의 선의를 이용하려는 이들 뿐이었고, 그가 단호한 남성 슈이타로 분(粉) 했을 때에야 그들을 밀어내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불문율과 이 안에서 분투했을 셴테의 고민이 아마도 이 작품을 연상시키는 <사천의 좋은 여인>의 중요한 줄기가 되지 않을까. 

작품의 중간중간 <사천의 선인>에 관한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영화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희곡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사천의 좋은 여인>은 희곡의 내용이 아닌 형식을 영화의 내부로 끌어오면서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영화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지 않는 대화를 통해 영화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보여줘야 하는지, 우리의 존재 혹은 앞날을 하나로 규정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목소리를 지닌 피사체들은 스크린의 변방에 위치하며, 카메라의 구도는 어딘가 불안정하고, 움직이는 것을 포착하기 위한 카메라는 정지된 것들에 주목한다. 으레 그렇다고 믿었던 것들의 혼란은 우리가 믿었던 영화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이는 세상으로 확장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이다.

송아름/ 영화평론가 

<사천의 좋은 여인>

517 2021-08-31 | 17:40 - 19:08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7관

 

Festival
타야의 숲
<가가> 라하 메보우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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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대로
<내 곁에 있어줘> 황원잉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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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아워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경아의 딸> 김정은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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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한 발 더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장건재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4-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