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보다 더 지하
<언더그라운드> 김정근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1-08-19

<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을 운행하고 역사(驛舍)를 관리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투시도다. 영화는 정비공, 기관사, 청소노동자 등 부산도시철도 노동자들의 24시간을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바라본다. 그렇게 공공 교통 기관이 작동하는 원리를 수많은 이들의 노동을 통해 이해하면서, 비정규직과 자동화 등 현재 노동 현장의 각종 의제를 함께 살핀다. 이처럼 다양한 직무와 복잡한 문제를 한데 그러모았지만, <언더그라운드>의 온도는 의외로 낮다. 한 지점에서 부글거리며 끓어 넘치기 전에 선로를 옮겨 다음 현장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정거장에서 카메라가 주로 담는 건 노동자들의 반복되는 몸짓이다. 자욱한 연기와 아스라한 불빛에 휩싸인 육체는 회화적 아름다움을 전해주지만, <언더그라운드>는 그 감탄스러운 구경의 순간을 지나 육체노동의 고단함과 위태로움까지 느끼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영화다. 그를 위해 김정근 감독은 노동자들을 따라 현장으로 출퇴근하며 노동의 시간을 함께 살았다. 그러면서도 너무 뜨거워지지 않도록 온도를 낮추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그 노동이 어떻게 차별적으로 배치되는지 알고, 노동문제를 더 큰 구조 속에서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버스를 타라>(2012)와 <그림자들의 섬>(2014)으로 노동운동의 현재와 과거를 돌아봤던 그는 세 번째 장편영화로 노동의 세계를 더 폭넓게, 더 선명하게 들여다본다.

 

 

영화제 상영본보다 러닝타임이 조금 늘었다. 야간에 선로 침목을 교체하는 하청 노동 파트가 새로 추가되면서, 영화에 담기는 노동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졌다.

처음부터 이렇게 구상했지만, 해당 촬영본을 어떻게 넣을지 고민하느라 계속 헤맸다. 정규직 노동자를 마냥 비난하지 않으면서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하청 노동자의 처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했다. 그 톤을 조절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결국은 마감이 일을 시킨다고, 개봉이 다가오니 편집하게 되더라. (웃음) 마음이 많이 가는 장면이다. 하청 반장님 인터뷰에는 현재 하청 노동자들이 처한 복잡한 현실이 담겨있고, 침목 교체 현장은 지상인데도 불빛이 하나도 없어 지하보다 더 지하처럼 느껴진다.

 

<그림자들의 섬> 개봉 즈음부터 <언더그라운드>를 얘기했으니, 꽤 오래된 프로젝트다. 우선, 왜 지하철인가.

예전부터 노동하는 모습을 찍고 싶었다. 노동 현장을 통해 노동문제를 다뤄보고 싶었으니까. <그림자들의 섬> 때도 조선소 내부를 촬영하고 싶었는데, 출입이 아예 불가능했다. 그나마 수리조선소에서 건조 장면을 일부 찍을 수 있었지만,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그래서 방법을 계속 찾아봤다. 프레더릭 와이즈먼처럼 공공기관에 들어가면 가능하겠더라. 지하철은 다양한 직군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계급과 노동 구조 이야기를 해보면 흥미롭겠다고 판단했다. 와이즈먼의 영화들, 왕빙의 <철서구>(2003) 같은 작품을 보며 고민을 이어갔다. 한편으론 내가 왜 노동문제에 천착하는지 찬찬히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 내게 굉장히 흥미로운 테마라서 그런 것 같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전부 강하고 세 보이지만, 따로 보면 유약한 형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함께 모여 배를 짓잖나. 뭉클하다. 어쩌면 거기 인간의 위대함이 있는 게 아닐까. 기차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그 큰 열차를 조립해 마침내 굴러가게 한다는 데서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

 

열차 자체의 매력도 있지 않나. 많은 영화가 열차의 운동에 이끌리고, 김정근 감독은 본인을 ‘철도 덕후’라고 소개한 적도 있다.

맞다. (웃음) 그런데 열차의 운동성에 주목하진 않으려 했다. 열차를 찍는다고 하면 흔히 기대하는 쇼트가 있을 거다. 독수리의 시선처럼 내려다보며 수평, 수직의 운동을 찍을 수도 있다. 물론 우리도 다 찍었는데, 하나도 쓰지 않았다. 내겐 기계의 운동성보다 그걸 만드는 사람들의 운동성이 훨씬 중요했다. 열차를 뜯어내고 다시 붙이는 노동을, 노동자의 시점을 담고 싶었다.

<그림자들의 섬>
<언더그라운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촬영했다. 애초 예상한 기한이 있었나.

전작처럼 투쟁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서, 한동안 방향의 갈피를 못 잡았다. 촬영 기간에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각종 노동 문제가 쏟아졌다. 그걸 일일이 팔로우하는 게 맞을지, 묵묵히 노동을 기록하는 게 맞을지 많이 고민했다. 기간을 가늠하지 못한 채로 고심하다가 지안 프랑코 로시의 <화염의 바다>(2015)를 보고, 구조와 사이클을 통해 노동 문제를 다루기로 마음을 굳히면서 촬영을 마무리했다.

 

꾸준히 노동 문제를 카메라에 담고 있지만, 초점과 형식은 매번 다르다. 노동 현장에 관한 고민을 풀어낼 여러 방법을 찾는 듯 보인다. <언더그라운드>를 시작할 때 가장 크게 고심했던 건 뭐였나.

<버스를 타라>는 정규직의 정리해고 문제, 그러니까 현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다. 희망버스 운동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노동운동의 획기적 전환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의구심과 희망을 말하려고 했다. <그림자들의 섬>은 과거 이야기다. 한국사회의 변화와 발전의 흐름 속에서 노동 문제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본 거다. 다 중요한 문제지만, 결국은 모두 정규직의 이야기였다는 데서 고민이 시작됐다. <그림자들의 섬>의 핵심 인터뷰를 꼽으라면, 김진숙 지도위원이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끌어안지 못했다고 반성하는 대목을 말하고 싶다. 비정규직 문제로 엉망이 돼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이 <언더그라운드>로 이어졌고, 거기 무인화 문제가 더해졌다. 우리나라 무인 기계 사용률이 세계 1위라고 하더라. 이제 막 비정규직 노동자로 사회에 진입하는 공고생들이 결국 공장에 가서도 ‘버튼맨’밖에 못 되는 시기가 온 거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런 질문을 담으면서 살짝 미래를 바라보려고 했다.

 

<언더그라운드>는 그걸 직설적으로 묻거나 설명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열차와 역사 구석구석을 관찰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현장을 보여주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전문가 인터뷰도 해봤지만, 당장의 해법은 없다. 그렇다고 정치인을 앉혀놓고 묻기도 난망한 일이잖나. 특히 무인화, 자동화처럼 어느 순간 우리에게 아주 익숙해진 영역은 일단 그 모습을 보는 게 중요하다. 기관사는 지하철 노동 구조 안에서 나름 상위에 속한 직업이고 연봉도 비교적 높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일마저도 자동화되는 시대가 됐다. 지하철 무인 매표소가 도입될 때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지 않았던 게, 부메랑이 돼서 정규직 노동자들한테 돌아온 거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전문가의 의견을 덧씌울 필요는 없다고 봤다. 실제로 그 일을 겪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현장을 보여주는 거로 충분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기관사님은 우리 의도에 적극적으로 동의해주신 분이다. 그래서 엔딩 촬영 땐 부탁드리고 극영화 찍듯 테이크를 두세 번 가기도 했다.

ⓒ이영진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갈등을 좀 더 부각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었을 거다. 지금은 다양한 장면을 쭉 나열하며 질문이 고이기를 기다리는 느낌이다.

내게 이 영화는 순환선 같다. 그다지 연관성이 없는 각각의 역을 열차가 하나씩 거치며 순환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라는 뜻이다. 관객이 영화에 병렬된 노동 현장을 쭉 순환하고 나서, 종국에는 그 문제들의 연계성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작업의 핵심이었다. 조금은 친절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게 맞는 방향이라고 봤다.

 

대신 노동 의제를 드러내는 몇몇 장면이 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민주노총 설명회, 청소노동자들이 참여한 집회 등이다. 촬영 소스가 많았을 텐데, 어떤 기준으로 최종 장면을 골라냈는지.

일단 투쟁과 쟁의의 현장에서 흔히 보이는 뾰족한 순간들은 다 뺐다. 머리띠 두르고 팔뚝질하는 거 말이다. 영화의 톤과 맞지 않을뿐더러, 투쟁 장면이 없는 노동 영화를 찍고 싶은 욕심에 그런 걸 많이 도려냈다. 물론 노동조합 측에선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단합된 힘을 보여주길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의 핵심은 그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단결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조명하는 거였다.

 

사무실에 모인 노동자들이 머뭇거리며 구호를 처음 외쳐보는 장면이 기억난다.

내게도 참 생경했다. 그동안 주로 조직된 노동자들, 구호 외치는 게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으니까.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앞서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지하터널과 공장에서 노동하는 모습을 보면 일단 시각적으로 굉장히 압도된다. 육중한 차체, 흩날리는 분진, 기계의 굉음 등이 매혹과 위협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일부 장면은 SF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촬영하고자 했나.

내게도 그 현장들은 매혹이자 위협으로 다가온다. 사실 첫 촬영본은 난리도 아니었다. (웃음) ‘덕심’ 때문에 한껏 경도된 상태였고, 거의 철도 홍보 영화 같았다. 이후 촬영 스타일을 정말 많이 고민했다. 수리하는 분 옆에 붙어서 괜히 말도 걸어보고, 핸드헬드로 따라가며 찍어보기도 했는데, 영화의 분위기와 안 맞더라. 애초에 가만히 바라보면서 구조를 파악하려는 의도였으니까. 그래서 당시 많이 봤던 스탠리 큐브릭 영화처럼 소실점을 중심에 두고 각을 맞춰 찍는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표준 렌즈를 사용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광각 렌즈를 쓰면 공간의 거대함을 훨씬 압도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건 현장을 왜곡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현장을 경험하는 노동자들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또 육체노동의 아름다움이 보이길 바랐다. 각각의 노동이 절대 초라하지 않은,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드러내고자 했고.

 

노동에 관해선 복잡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육체노동은 물론 아름답지만, 한편으론 너무 쉽게 보잘것없는 게 돼버린다. 숭고한 동시에 초라하다. <언더그라운드>는 그걸 함께 말하는 영화 같다.

신발공장에서 일할 때 깨달았는데, 일은 결국 일이다. 지난하고 지루하다. 책상에 앉아서 포토샵으로 누끼 따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그 지난하고 지루한 일을 해내는 사람들에게 숭고함이 있다. 그리고 그게 다시 돈으로 환산되면, 말해준 대로 보잘것없게 느껴질 수 있다. 거기서 오는 양가적인 감정이 내게도 무척 중요했다. 영화를 통해 그걸 체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개별 쇼트를 길게 편집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아예 배제하는 방식도 고민해본 적 있나.

홍보 영화 같았다는 첫 번째 버전에는 인터뷰가 없었다. 그런데 모니터링해보니 최소한의 맥락은 있어야겠더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이를테면 무인 매표소가 생기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같은 건 인터뷰로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이영진 

인터뷰 땐 주로 어떤 질문을 던졌나.

당시 고민이 많아서 손경화 감독에게 도움을 구했다. 이런저런 노동 관련 작품을 만들었던 친구고, 또 친한 사이기도 하니까. 어떤 질문을 던지면 좋겠냐고 했더니, <무한도전> 보는지, 거기서 누구를 좋아하는지 물어보라고 하더라. (웃음) 자기는 그런 사적인 걸 주로 물어봤다고. 나도 일상적인 걸 많이 물어보려고 했다. 청소노동자인 영희 이모님께는 좋아하는 트로트 한 소절 불러 달라고 했다. 본인의 노동이나 노동조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도 물론 중요했지만, 노동해서 번 돈으로 일상을 영위하고 공간을 가꾸는 이야기 또한 그만큼 중요했다.

 

등장인물 중 하나인 공고 학생 입장에서 보면, <언더그라운드>는 일종의 견학이자 준비운동이다. 촬영 소스를 학생에게 보여주는 장면도 있는데, 이러한 구성에 대해 좀 더 설명해준다면.

다음 영화로 <공고>(가제)를 준비 중이다. 공고생들이 대한민국 사회의 초입에 어떻게 노동자로서 진입하는가를 다룬다. 내가 그 작업 하는 걸 아는 한 평론가가 <언더그라운드>를 보고 다음 영화 예고편이라고 하더라. (웃음) 맨 처음엔 공고생들 얘기가 없었는데, 이걸 넣어야만 다른 결이 생기겠다는 판단에 부러 포함하게 됐다. 그 학생의 시점, 그러니까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하게 될 사람에게 지금의 노동 현장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이 친구가 현장을 보고 어떤 답을 들려줄지 궁금했는데, 누가 비정규직이고 정규직인지 단번에 알아보더라. 육체노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현장의 위계가 그의 눈에는 바로 보이는 거다. 거기서 관객이 당혹스러워하길, 균열이 생기길 바랐다. 작가로 참여한 지민 감독과 매우 많은 논의를 거친 장면이기도 하다. 자기 운명을 알아차리는 가혹함이 묻어나는 대목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지금 사회는 그걸 알아버린 학생이 결국 별다른 선택지 없이 거기 인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어져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 장면 때문에 만든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CCTV 화면이 가득한 관제실 장면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출구가 없는 폐쇄회로의 감각이 현재의 노동 문제와 이어지는 것 같다고 할까.

솔직히 그 정도의 의미와 맥락을 고려하진 않았다. (웃음) 지하철을 수리하고, 그것을 운행하고, 역사를 청소하고, 야간으로 넘어가는 노동의 사이클을 만드는 과정에서 개별 씬의 전환을 위해 다소 기계적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많은 분이 관제실 장면에 대해 말씀하시더라. 감시자 같다는 의견도 꽤 여러 번 들었다. 흥미롭게 생각한다.

ⓒ이영진 

매표소 해고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미래를 미리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어떻게 보여주고 싶었나.

무인화 얘기가 들어가면서 반드시 언급돼야 할 부분이었다. 무인 매표소가 도입된 2000년대 중반에 번화가인 서면에서 노동자들이 1년 가까이 투쟁했다. 대부분 다양한 나이대의 여성이었다. 내게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하철 노조가 세다고 들었는데, 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매표소에 사람이 없어지는 걸 보게 됐는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지금은 역사에서 길을 잃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다. 최근 지하철 콜센터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콜이, 길을 묻는 노인들의 전화라고 하더라. 게다가 그것마저 콜센터에 용역 외주를 주는 방식이다. 그런 상황이 주는 기이함을 영화에 담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매표소 이야기를 꼭 거쳐야 했다. 다만 디테일한 정보를 넣기보다는,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무인매표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자는 톤으로 말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게 노동자들에게 어떤 감정을 남겼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언더그라운드’는 장소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이르는 표현이기도 하다. 작업 초기부터 이 제목을 고수했는데, 어떻게 떠올렸고 어떤 뜻을 담고 싶었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에서 가져왔다. (웃음) 손경화 감독이 다큐멘터리 하는 사람이라면 봐야 하는 책이라며 추천해줬다. 재밌게 읽었고, 언더그라운드라는 표현도 좋아서 가져다 쓰게 됐다. 사실 맨 처음엔 ‘두더지’로 지으려 했다. 전 세계에서 지하철이 가장 먼저 들어선 게 영국인데, 그게 두더지의 생태를 본떠 만들어진 거라고 하더라. 근데 주변에서 다들 말렸다. (웃음) 결국 ‘언더그라운드’가 됐다. 중의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거다. 실제로 지하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면서, 그들이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오지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버스를 타라>로 장편 작업을 시작하면서, 영화 만드는 동기를 부채감으로 설명한 일이 많았다. 지금도 그 마음이 남아있나. 버겁게 느낀 적은 없는지 궁금하다.

버겁지 않다, 지금은. (웃음) 돌아가신 분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함께 언급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김주익이 왜, 어떻게 싸웠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림자들의 섬>에 나온 (최)강서 형 기일에는 아직 마음 한쪽이 좀 힘들기도 한데, 그래도 부채감을 덜고, 현재의 중요한 얘기를 많이 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장편 작업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현장에 빨리 달려가기 어렵다. 그런 것 때문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언더그라운드>
<버스를 타라>

공고 자퇴하고 일을 시작하면서 다큐멘터리 강좌를 찾아 들었다고 알고 있다. 김동원, 태준식 감독의 영화들을 보며 다큐멘터리 찍기를 소망했다고.

집안 사정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공고로 전학을 갔는데, 당시 학교 근처에 영화과로 유명한 경성대가 있었다. 거기서 열리는 독립영화 상영회에 자주 참석했다. 김동원 감독님의 <상계동 올림픽>(1988), <명성, 그 6일의 기록>(1997), <철권 가족>(2001) 같은 영화도 그때 접했다. 당시 나는 어쨌든 어딘가에서 탈락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은 엉망진창인 것 같고, 맘에 드는 것도 하나도 없는 그런 시기에,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접하게 된 거다. 그게 마음에 불을 지른 거지. (웃음) 그때부터 영화를 하고 싶었다. 그러다 학교 자퇴하고 인쇄소에서 일하면서 다큐멘터리 수업을 듣게 됐다. 그때 <칠레전투>(파트리시오 구스만, 1975)부터 시작해서 태준식 감독님 작품까지 많은 영화를 접했다. 그러다가 일종의 사회적 기업에 초기 멤버로 들어갔다. 거기서 드디어 다큐멘터리를 할 줄 알았는데, 홍보영상 만들고 디자인하는 일을 4년 정도 했다. 그러다 <그림자들의 섬> 만들면서 정리하고 나왔다. 돌이켜보면 다 즐겁고 좋은 과정이었다. 많은 훈련과 연습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고.

 

어떤 영화를 찍고 싶었나.

꼭 다큐멘터리를 고집했던 건 아닌데, 어쨌든 노동자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켄 로치 영화도 많이 봤다. 현장에 있으면서 현장 바깥을 꿈꾸고 고민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언더그라운드> 개봉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 영화도 잘 마무리하고 나면, 언젠가는 극영화를 꿈꿔볼 수도 있겠다. (웃음)

 

부채감에서 몇 걸음 떨어진 지금, 작업의 동력은 무엇인가.

거창한 건 없고, 그냥 노동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작업 스타일도 ‘나인 투 식스’다. 제시간에 나와서 일하고, 부지런히 촬영해오고, 엉덩이 붙이고 편집하는 게 전부다. 대단한 동력이 필요한 일도, 공명심 때문에 하는 일도 아니다. 말 그대로 그냥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을 내가 좋아할 수 있어서, 마음을 계속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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