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와 랍스터
<갈매기> 김미조·정애화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1-07-29

여자는 제 몸집만 한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걷는다. 생선 장사로 한평생 가족을 건사해온 이답게, 오복(정애화)은 오늘도 살림살이를 짊어지고 홀로 거리를 누빈다. 고독하다. 그러나 당차다. 세상의 어설픈 호의는 한 번도 기대한 적 없고, 나와 내 가족을 지킬 무기는 전부 내 손에 있다는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준비하는 정애화도 비슷했다. 납작한 가방에서 화장품과 장신구를 주렁주렁 꺼내는 노련한 모습에, 왜 김미조 감독이 “선배님은 정말 프로페셔널하셨어요.”라며 눈을 빛냈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 곁에 감독이 슬며시 앉으니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일일 스타일리스트를 자처한 배우는 어색해하는 감독의 얼굴 위로 부지런히 붓을 놀렸다. 이 험한 세상…, “나만 믿어!”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갈매기>는 믿을 게 자신밖에 없는 여자 이야기다. 오복은 시장 재개발 대책위원장 기택(김병춘)에게 성폭행당한 후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동료 상인 중 누구 하나 오복의 편에 서는 이가 없다. 시장의 미래와 젊은 사람의 앞길을 생각해서 참으라고만 한다. 결혼을 앞둔 큰딸과 철부지 막내딸, 눈치 없는 남편도 본인 일처럼 사건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오복은 포기하지 않는다. 작은 덩치로 여기저기 들이받고 다니며 마구 화를 분출하고, 자기를 지킬 방법을 찾는다. 감독의 말처럼 <갈매기>는 그 생명력을 포착하는 영화다. 엄청난 에너지로 극을 이끄는 정애화는 지난해에만 4편의 공연을 무대에 올린 베테랑 연극배우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안국진, 2014), <혐오돌기>(김현, 2017), <죄 많은 소녀>(김의석, 2017) 등 다양한 영화에서도 활약 중이다. <갈매기>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마주하는 폭력을 기발한 형식으로 표현한 단편 <혀>(2017)와 <혐오가족>(2019)을 연출한 김미조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다.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눈물을 보이셨어요.

정애화_ 그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영화를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웃음) 엄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그날도 그랬어요. 지금도 목이 메려고 하네요.

 

처음엔 출연 제안을 거절하셨다고요. 시나리오가 다 나온 상황이었는지, 어떻게 제안했던 건지 궁금해요.

김미조_ 대학원 동기가 실습 작품 찍을 때 제가 연출팀이었는데, 그때 선배님을 멀리서 뵙고 이분이랑 다음 작품을 꼭 같이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연기를 너무 잘하셨고,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을 대하시는 모습에도 반했죠. 제 리스트에 적어놨어요. (웃음) <갈매기> 시나리오는 그 이후에 썼어요. 처음 생각했던 오복의 이미지는 퉁퉁하고 괄괄한 여자였는데, 자꾸 애화 선배님이 생각났어요. 이미지도 안 맞는데 참 이상하다 싶었죠. 그래서 6고까지 완성했을 때 시나리오를 드렸어요. 최종고는 11고였지만, 결말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요. 여름 촬영이라 부담된다며 고사하셨죠?

정애화_ 통영 비진도에서 <비진반점>(연출 김제훈)이라는 작품을 찍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감독님 전화를 받았어요. 해녀 역으로 주연을 맡았는데, 20일을 섬에서 지냈어요. 피로가 쌓인 상태라 별생각 없이 거절했을 거예요. 시나리오는 불편하면서도 재밌었어요. 기대되는 작품이었죠.

 

재차 부탁하기 위해 김미조 감독이 긴 편지를 썼다고 들었어요.

김미조_ 실제로 편지를 드리면 부담스러우실 것 같아 긴 문자를 보냈어요. 좋은 사람들과 좋은 현장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고요. 선배님이 시나리오를 다시 읽어보시고 저녁에 “같이 합시다.” 하셨죠.

정애화_ 후배들이 자꾸 추천하더라고요. 피로가 가시고 나니 배우로서 욕심도 났고요.

김미조_ 사실 작당을 했어요. (웃음) 산부인과 간호사 역으로 출연한 이은경 배우가 연극계에 아는 언니가 있다는 거예요. 그분이 애화 선배님 친구였어요. 마음을 떠봐달라고 부탁드렸죠. 거절하신 이유가 시나리오 때문인지, 제가 힘들게 할 것 같아서인지 알고 싶었어요. 시나리오가 좋았는데 고사하신 거라면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요.

정애화_ 지금 생각하면 제가 배부른 소리를 했죠.

김미조_ 저한테는 선배님이 1순위였어요. 선배님 아니면 안 됐어요.

정애화_ 이런 얘기도 듣고, 인터뷰가 좋긴 좋네요. (웃음) 학생 작품이고 엄마 역할이라서 처음엔 편한 마음이었는데, 회차가 거듭될수록 자세를 바로잡게 되더라고요. 감독님한테 그런 힘이 있었어요.

<갈매기>
<갈매기>

출연을 결정하고 두 분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뭐였나요? 서로에게 했던 부탁이나, 꼭 물어야 했던 게 있다면요?

김미조_ 우선 제가 왜 이 이야기를 쓰게 됐는지, 이걸 통해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선배님께 말씀드리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리고 제가 원하는 연기의 톤을 알려드리기 위해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와 마이크 리의 <세상의 모든 계절>(2010)을 레퍼런스로 보내드렸어요. 그 작품에서 보이는 연기의 거친 결과 자연스러움이 좋았거든요. 전라도 사투리도 해야 했는데, 그거야 선배님이 워낙 잘하셨고요.

정애화_ 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연극 <사건발생 일구팔공>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시장 엄마를 연기했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오복도 어떤 캐릭터인지 보이더라고요. 전 사투리가 필요하면 대본 들고 바로 지방에 내려가요. 며칠씩 머물면서 콩고물을 묻혀오는 편인데, 이번에는 다행히 공부를 더 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김미조_ 자기를 감추고 살던 오복이라는 여자가 왜 마지막에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지 궁금해하셨던 게 기억나요. 그래서 결말에 이르는 계기를 만들고 이것저것 추가하며 시나리오를 많이 고쳤어요. 그 덕에 저도 정말 깊게 고민할 수 있었어요.

정애화_ 고민 많이 하셨죠. 일단은 제가 설득돼야 하니까 물어본 거예요. 사실 감독한테 뭘 자꾸 묻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좀 달랐어요. 그렇게까지 물었던 유일한 작품이에요. 영화 보면서는 항상 놀라요. 마지막 장면이 정말 압권이잖아요. 오복의 발이 먼저 나오고 마침내 얼굴을 보여주는데, 설명이 필요 없죠.

 

배우의 질문을 받고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수정한 건데요. 감독 입장에서는 이미 마음속에 있던 답을 꺼내서 다듬는 과정이었나요?

김미조_ 좀 복합적이에요. 우리가 고려했던 여러 선택지 중에는 오복이 기택한테 가서 무력으로 결판을 내는 버전도 있었어요. 그건 제 취향에 좀 더 가깝죠. 많은 가능성 중에 딱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게 힘들더라고요. 청와대 앞에 가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방법도 생각했고, 산이나 바다로 가보려고도 했어요. 그중 어떤 게 오복다운 선택일지, 어떻게 해야 이야기의 초점이 맞을지 고민을 거듭했어요. 시나리오를 수정하며 여러 사례를 찾았는데, 1인 시위 하는 모습을 정말 많이 봤어요. 시위 결과를 알 수 없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결말을 썼어요.

 

앞서 사투리 연기를 말씀하셨는데, 정애화 배우의 예전 프로필을 보면 특기로 한국무용, 장구, 사투리를 써두셨어요. 무용과 악기를 전문으로 하신 적이 있나요?

정애화_ 그렇지는 않아요. 이전에 구립극단에 있었는데, 지방 특성상 공연이 짧고 공백기가 길었어요. 그때 배우로서 훈련을 위해 이것저것 배웠어요. 장구, 재즈댄스, 마임, 한국무용까지. 제가 뭘 하면 피 터지게 하는 편이라, 동료들 사이에서 항상 1등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나중엔 다 제 것이 돼 있더라고요. 여기, 자랑해도 되는 자리죠? (웃음)

 

처음 연극무대에 서게 된 계기는요?

정애화_ 대학교 다닐 때 선배들이 공연하는 걸 봤는데,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발을 들이고 곧 극단에 들어갔어요.

 

중간에 긴 공백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결혼과 육아의 영향일까요?

정애화_ 그렇죠. 결혼하고 15년 정도 가정과 시댁에 충실하며 열심히 살았어요. 저는 집에서도 열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아이들이 반기를 들며 이제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오케이, 좋아. 그럼 난 이제 뭘 해야 하나 생각해봤더니, 연기가 다시 하고 싶었어요. 극단에 들어가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했죠.

 

그렇게 쭉 연극을 하다가 처음 경험한 영화가 배창호 감독의 <길>(2004)이라고요.

정애화_ 40대 초반이었어요. 당시에 아동극을 하고 있었는데, 배창호 감독님이 우리 연출님한테 배우를 좀 섭외해달라고 하셨나 봐요. 어쩌다 보니 제가 발탁된 거죠. 여인숙 주인 역이었어요. 마냥 신기하고 재밌었죠. 제 역할에만 몰입해서 열심히 찍었는데, 감독님이 흡족하셨는지 저 배우 누구냐고 물어보시고 차에도 동승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그런데 그 후에 영화 쪽으로 눈을 돌릴 생각은 쉽게 못 했어요. 하면 할수록 연기가 어려워져서, 매체를 넘보기보다는 연극에 충실해지자 싶었죠. 영화는 가끔 기웃거린 정도였고요.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훨씬 뒤예요.

김미조 ⓒ이영진 

김미조 감독은 사범대 재학 중에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서 영화가 본인의 길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어요. 왜 영화였을까요?

김미조_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따라 점 보러 가는 걸 좋아했는데, 항상 선생님이나 교수가 될 거라는 얘길 들었어요.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더라고요. 그러다 대학교 갈 때가 돼서 법학과에 지원했는데, 4수를 한 거예요. 운명을 거슬러서 그런가 싶어 결국은 사범대에 갔죠. 그런데 특유의 분위기가 저랑 너무 안 맞았어요. 결국, 휴학을 하고 호주에 갔어요. 선생님 말고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정말 좋아했다는 게 떠올랐어요. 영화 노트도 열심히 썼고, 좋아하는 영화는 스무 번씩 봤거든요.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영화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때는 오히려 욕망이 움트더라고요. 어차피 내 삶은 정상 궤도에서 벗어났으니, 영화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갈매기>에 셋째 딸 지애 역으로 나오는 김가빈 배우가 셋째 언니인데, 당시 제 고민을 많이 들어줬어요. 그렇게 복수전공으로 영화를 배우기 시작했죠.

 

시나리오 집필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아까 결말 이야기를 먼저 했는데, 또 어떤 점이 어려웠나요?

김미조_ 기획 단계부터 왜 굳이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지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복어처럼 잘 손질해봐야 본전인 소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어느 편이냐는 소리도 들었고요.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어요. “왜 안 돼?” 싶었죠. 시작하고 나서는 제가 오복 또래가 아니라서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저는 60대 중년 여성의 삶을 겪어본 적이 없고, 자세히 들여다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들, 그리고 애화 선배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덩이를 많이 붙여나갔어요.

 

성폭력 피해는 개별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너무 특수한 사례처럼 묘사할 위험이 있죠.

김미조_ 오복에게 일어난 일이 오복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당장 우리 주변에서,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타임라인을 정형화하려고 했어요. 서지현 검사의 미투,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 대한항공 회항 사건 등에서 가해자와 가해자의 주변인들이 보인 모습을 많이 따왔어요. 또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외치는 “사과하라!”는 구호도 끌고 오려고 했고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보편성을 만들어내려고 했던 거죠.

 

오복이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직접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일부러 힘을 주고 찍은 게 아닌데도 굉장히 강렬해요. 오복이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가 느껴지죠. 결말에 이르는 동안 단 한 번도 위축되지 않는 이 인물의 동력을 무엇으로 보셨어요?

김미조_ 제가 워낙 그런 캐릭터를 좋아해요. 투사 같은 인물, 불의를 당해도 울거나 주저앉기보다 어떻게든 뚫고 나가는 인물요. 그래서 오복은 처음부터 그렇게 결정돼있었어요. 한 대를 맞으면 네 대를 갚는 사람이죠. 많은 영화가 성폭력 피해자들을 수동적으로 그리고, 그녀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요소를 나쁘게 묘사하잖아요. <갈매기>는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모두에게도 나름의 사정과 정의가 있지만, 그게 오복으로부터 먼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오복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자가 아니에요. 시스템을 뚫고 나가려고 몸부림치는 자그마한 개인이죠. 그 생명력을 그리고 싶었어요. 현실에선 오복처럼 행동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건 영화니까 대안적 현실을 만들고 싶었고요.

정애화_ 가빈 배우와 대화를 나누다가 부모님이 교육을 잘 시키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감독님도 그렇고 가빈 배우도 그렇고, 본인들이 생각하는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표현하거든요. 저는 좀 회피형이라 부러웠어요. 오복의 동력은 제가 가지고 있던 힘이 아니었어요. 작품의 힘과 인물의 힘을 제가 따라간 거죠. 그런데 <갈매기>를 찍고 나서 저한테 배짱이 생긴 거 있죠? 요즘엔 가족들한테 좀 더 분명히 말하고, 의견도 딱딱 제시한다니까요.

 

오복이 큼지막한 배낭을 딱 매고 부지런히 걸어 다니는 모습이 떠오르네요.

김미조_ 자료조사 때문에 시장을 많이 다녔는데, 어머니 또래분들이 전부 백팩을 매고 다니시더라고요. 빠른 걸음은 선배님한테서 가져온 거예요. 조그마한데 발이 정말 빠르시거든요. 그 모습이 참 귀여우세요. 제가 귀여운 사람을 정말 좋아해요. (웃음) 게다가 기동성도 좋죠. 오복은 시장에서 자기 터전을 일구고 가족들을 건사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 여자니까, 역시 발이 빠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영진 

김미조 감독은 영화를 설명할 때 유독 ‘기세’라는 단어를 많이 쓰더라고요. 정애화 배우에게서도 기세를 봤다고 했고, 기세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도 했죠. 좀 더 설명해준다면요?

김미조_ 작은 규모의 영화를 만들면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았어요. 룩이나 의상도 그랬고 보조출연자도 섭외할 수 없었죠. 그러면 뭐로 승부를 봐야 할까? 밑도 끝도 없이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는, 에너지가 가득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제목 타이틀을 크게 넣은 것도 그런 몸부림의 일환이고요. <갈매기>를 만들 때 심취해있던 영화가 <영자의 전성시대>(김호선, 1975), <꼬방동네 사람들>(배창호, 1982), <바보선언>(이장호, 1983) 같은 7~80년대 한국영화였어요.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투박한 힘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혹시 랍스터 이야기 아세요? 랍스터는 싸우기도 전에 승자에게서 승자의 호르몬이 나온대요. 승리라는 게 스킬이 아니라 카리스마와 기운에 달려있다는 거죠. 그런데 랍스터가 인간과 호르몬이 유사하다고 하더라고요. 책에서 그걸 읽고, 대학원 다니는 내내 동기들한테 우리는 이기는 랍스터라는 얘기를 하고 다녔어요.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는 이긴다고요. 그게 영화 안에도 고스란히 담긴 것 같아요.

정애화_ 기운이 세면 그것만으로 이길 수 있다는 거군요?

 

오복이 기택의 가게에 벽돌을 집어 던지는 장면이 생각나네요.

김미조_ 선배님이 열연하신 장면이죠. (웃음)

정애화_ 보통 영화를 찍고 나면 아쉬운 장면들이 생각나게 마련인데, 이번엔 그런 게 없었어요. 모든 장면이 살아있어요. 다시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요.

 

사건 경과와 감정 변화가 중요한 영화인만큼 촬영 순서도 중요했을 거예요.

김미조_ 되도록 순서를 맞추고 싶었지만, 로케이션이 워낙 많아 전부 지킬 수는 없었어요. 그래도 마지막 장면만큼은 후반부에 배치하려고 했어요.

정애화_ 제가 처음 찍은 게 한복 고르는 장면이에요. 이미 성폭행 사건이 지나고 나름의 평정은 찾았지만, 여전히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상태여서 고민스럽긴 하더라고요. 감독님은 현장에서 항상 그 직전 장면이 무엇이고, 어떤 감정인지를 얘기해줬어요. 그게 굉장히 도움이 됐죠.

 

촬영과 관련해 눈에 띄는 지점이 있어요. 카메라가 인물을 멀리서 바라보기 때문에 그사이에 겹겹이 걸리는 게 매우 많아요. 부감도 적극적으로 썼고요.

김미조_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를 떠올리면 대개 가까이서 얼굴과 표정을 찍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갈매기>는 오복 개인보다는 시스템 안에 있는 오복의 이야기에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거리를 떨어뜨리려고 했어요. 오복이 여러 사람에게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걸 보여줄 때, 더 많은 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시장에 워낙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일일이 통제하기 힘들기도 했고요. 또 제가 원체 부감을 좋아해요. 인간이 그런 시선으로 누군가를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카메라로는 가능하니까 시각적 쾌감이 있죠. 나중엔 오복이 고공에서 피켓 시위하는 사람을 올려다보고, 지상에서 행동에 옮기잖아요. 그런 연결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선이고요.

정애화_ 처음엔 영화가 제 시선만 따라가게 될까 봐 우려했어요. 어느 순간 관객이 싫증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오복에게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감독님이 부감도 많이 쓰시고,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주셔서 좋았어요. 영화가 풍성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예리한 후배가 그러던데요. 감독님이 언니의 옆모습을 ‘최애’하는 것 같다고. (웃음)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표정에서 오히려 많은 감정이 느껴지죠.

김미조_ 저는 오복이 쪽방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장면을 좋아해요. 시나리오 쓰면서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 못 했는데, 촬영할 때 그게 영화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인간이 거울에 비친 자기를 내면화해서 보는 게 <갈매기>의 중요한 포인트라는 걸 알게 됐죠.

정애화_ 감독님은 그런 걸 느끼셨군요. 저는 오복이 거울을 보며 “나 예쁘네?” 하는 느낌이었어요. 평생 생선 장사하면서 화장할 틈도 없이 살았을 텐데, 그때는 나도 여자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정애화 ⓒ이영진 

장르 영화의 주인공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큰딸에게 전화해서 “이제 돈 준비됐어.” 하는데 굉장히 멋있잖아요.

정애화_ 맞아요. 엄마의 포스가 거기서 나오죠. (웃음)

김미조_ 서부극이나 히어로물 같은 느낌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는데, 너무 튀지 않게 결을 정돈했어요. 하지만 인내하는 참한 여성의 이미지보다는, 분노하고 용기 내는 엄마를 그리고 싶었던 건 분명해요.

 

같은 맥락에서 김치 써는 장면을 꼭 얘기하고 싶었어요. 정말 짧은데 거의 공포 스릴러처럼 찍혀있죠. 그러고 보면 정애화 배우도 장르적 표현이 두드러지는 영화를 많이 찍었고, 김미조 감독의 단편들도 평범하지만은 않아요.

김미조_ 원래는 아주 일상적인 장면이었는데, 자꾸 마음에 걸려서 다시 찍었어요. 우리가 표현하고 싶었던 건 아무리 눌러도 다시 일어나는 힘이었기 때문에, 더 세게 치고 나가는 지점을 만들고 싶었어요. 드잡이로 곧장 이어지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주 맑고 해가 쨍쨍한 날 재촬영을 했죠. 그때 제가 부탁드린 거 기억나세요? 김치를 기택의 목이라고 생각하고 썰어달라고 했잖아요. 배어 나오는 국물은 핏물이고요. (웃음) 너무 잘해주셔서 두 번 만에 오케이가 났어요.

정애화_ 참 기발하다고 생각하며 찍었어요. 영화에 들어갔을 때도 너무 잘 살더라고요.

김미조_ 스릴러와 코미디가 섞인 이야기를 늘 좋아했어요. 그래서 제가 극을 쓰면 사람들이 항상 “이 장면에서는 웃어야 해, 울어야 해?” 하고 질문해요. 그런 장면들이 극을 훨씬 더 살릴 수 있다고 봐요. 장르물에 대한 저의 애정이 <갈매기>에도 조금씩 들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완급조절이 좀 어려웠죠.

정애화_ 그게 정말 어려운 거예요. 사실 코미디가 진짜 힘들어요. 일부러 웃기려고 하면 망가지기 쉽거든요. 그러고 보면 감독님이 디렉팅을 그렇게 세세하게 하진 않았는데, 그게 좋았어요.

김미조_ 그랬나요? (웃음) 불편해하시는 것 같으면 시나리오를 잊고 즉흥적으로 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전형적인 극 연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걸 지향했거든요. 시장 술자리 장면이나 상견례 장면을 그렇게 찍었어요. 자연스럽게 연기하시면 저랑 촬영 감독님이랑 몰래 찍었죠.

정애화_ 인애(고서희)랑 침대에서 얘기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고민하셨던 게 기억나요.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하면서 풀어가는 재미가 있었죠.

김미조_ 맞아요. 오복과 인애가 싸우고 집안사람들이 사건을 다 알게 되는 장면이죠. 자칫하면 오복이 너무 철없는 엄마처럼 보일까 봐 우려했어요. 선배님이랑 톤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영화 전반에 모녀 사이의 애증이 탁월하게 표현돼있어요. 특히 큰딸 인애와의 관계가 그렇죠.

김미조_ 제가 딸 넷인 집의 막내거든요. 어려서부터 엄마와 큰언니의 관계가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큰언니가 부모가 된 것 같고, 어머니랑 아버지가 자식 같이 보이기도 해요. 한국 사회에서 집안이 평화롭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첫째의 희생이 분명히 필요하죠. 맏딸은 더욱더 그렇고요. 제가 엄마나 언니들을 보며 느낀 감정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 같아요.

정애화_ 확실히 그래요. 저도 큰 고민은 큰애한테 얘기하게 돼요.

 

제목을 갈매기로 지은 이유가, 현실이라는 육지에 발 딛고 있는 오복의 모습이 갈매기와 겹쳐 보여서라고 하셨죠. 오복은 집에서도 그렇지만 시장에서도 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고, 처리해야 할 일도 넘쳐나요. 북적이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정애화_ 감독님이 조율을 잘하셨죠. 집에서 아빠랑 딸들이 TV 보는 장면은 정말 가족 같아 보이지 않아요? 서로 챙기고 투덕거리고.

김미조_ 시장 상인으로 출연한 분들은 대부분 ‘안톤체홉극단’ 단원들이세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분들이기 때문에 합이 잘 맞았어요. 무대 연기를 오래 하셔서 동선도 너무 잘 짜주셨고요. 애화 선배님을 제외한 가족들도 이미 서로 알고 있던 사이였어요. 거기에 성격 좋은 선배님이 잘 어우러지셔서,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죠.

 

<갈매기>에 ‘안톤체홉극단’ 분들이 출연하셨다기에 놀랐어요. 재밌는 우연인가요?

김미조_ 셋째 언니가 연극을 하다 보니까 저도 따라서 연극을 많이 봤어요. 언니가 연극 <갈매기B>를 할 때 가서 봤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배경을 부산으로 옮긴 극이었어요. 그 매력에 빠져있었는데, 알고 보니 집 앞에 ‘안톤체홉극단’이 있었어요. 안톤 체호프의 작품만 올리는 곳이었죠. 체호프의 극에는 다수의 등장인물이 나오고, 지금 시점에서는 막장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은데, 전 그 소동극이 너무나 좋았어요. 그런데 언니가 그 극단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그렇게 단원분들과 친해지면서 캐스팅이 수월하게 이루어졌어요. 정말 인연인가 봐요.

<갈매기>
<갈매기>

정애화 배우는 극단 생활을 오래 하셨죠. 체감하시는 무대 연기와 영화 연기의 차이가 있을까요?

정애화_ 아무래도 호흡이 달라요.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가기 때문에, 한번 삐거덕거리면 끝까지 가기 힘들어요. 영화는 다시 호흡을 찾아갈 수 있는 여유가 있고요.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계속해서 다지고, 엑기스를 빼내는 맛이 있어요. 사실 무대 연기에서 카메라로 넘어오기가 쉽지 않았는데, 하다 보니 상당히 매력적이더라고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으라면 어떤 걸 말해주시겠어요?

정애화_ 엄마한테 전화하는 장면이죠, 뭐. 별로 많이 찍지도 않았어요. 감독님도 굳이 쥐어짜는 대목이 아니라고 하셨고요. 제가 오복이 되는 데 있어 그 대사의 힘이 정말 컸어요.

김미조_ 전 거울 들여다보는 장면이요. 그 외엔 술자리 장면이 무척 사실감 있게 나와서 좋아하고요. 아, 드잡이할 때 부감으로 빠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때 지나가던 행인분이 왜 그러냐고 말을 거시는데, 그것도 기억에 많이 남네요.

정애화_ 속 시원한 장면이죠. 치고 패고. (웃음)

김미조_ <꼬방동네 사람들>에 아낙네들이 드잡이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생명력이 넘쳐요. 그걸 꼭 영화에 넣고 싶었어요. 입을 비트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요.

 

완성된 영화를 배우들에게 보여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해요.

김미조_ 참여해주신 모든 분이 영화를 보고 본인이 일방적인 악한 사람으로 묘사됐다는 느낌을 받지 않길 원했어요. 천하의 나쁜 놈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의 인간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죠. 편집할 때도 그런 생각이었고요. <갈매기>는 사람을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살리려는 영화예요. 생에 대한 의지를 가진 한 인간의 생존기라는 게 잘 드러났으면 했어요.

정애화_ 전 울고 웃으면서 봤어요. 너무 재밌더라고요. 음악이 들어가면서 작품이 어떻게 살아나는지도 생각하게 됐고, 편집도 기발했어요. 사실 본인이 출연한 영화를 보면 머쓱할 때가 있는데, 그걸 잊을 정도였죠. (웃음)

 

두 분께 <갈매기>는 어떤 의미로 남았나요?

김미조_ 영화 만들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우린 세모를 굴리고 있다.”는 거였어요. 원은 손만 대도 쉽게 굴러가지만, <갈매기>라는 영화는 굴리기 힘든 세모라고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제게 어마어마한 용기를 줬어요. 제가 더 단단해지고 강해졌다는 걸 느껴요.

정애화_ 찍을 땐 몰랐는데, 제가 <갈매기>를 통해 나를 찾아가는 힘을 얻었더라고요. 다른 분들도 영화를 보고 그럴 수 있었으면 해요. 어린 친구들도 부당한 건 부당한 거라고 목소리를 낼 수 있길 바라고요.

 

배우로서, 연출자로서 고민과 목표가 있다면요?

정애화_ 연기를 다시 하기까지 오래 쉬었기 때문에 제가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걸 느끼는 지금이 괜찮아요. 좀 더 눈과 귀를 열고 배우는 자세를 취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큰 목표는 없어요. 계속 이렇게 하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해있겠죠?

김미조_ 궁극적으로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일꾼처럼 꾸준히 작품을 만드는, 직업인으로서의 영화인이 되는 게 꿈이고요. 예전부터 여자들이 많이 등장하는 스릴러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제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발전시키는 중이에요. 내년에는 찍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정애화_ 그 시나리오로 공모전에서 상 받은 얘기도 하셔야죠.

김미조_ 맞아요. 출발이 나쁘지 않네요. (웃음) 용기를 얻어서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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