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앞에 다양한 수식이 붙는 두 사람을 초대했다.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며 배우로 활동하는 염문경은 최근 개봉한 <메이드 인 루프탑>(김조광수, 2021)에서 연기는 물론 각본에도 참여했다. 그는 EBS 예능 <자이언트 펭TV>를 포함해 다수 프로그램에 작가로 이름을 올렸고, 올해 초에는 『내향형 인간의 농담』이라는 에세이집을 펴내기도 했다. 동시에 단편 <현피>(2019)와 <백야>(2020)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까지 도맡은 감독이다. 김소형은 첫 단편 <사랑과 평화>(2018)부터 연출과 연기를 병행했다. 작년에는 <우리의 낮과 밤>과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나란히 선보이며, 다수 영화제에서 호평을 얻었다. 김소형은 영화에서 하루에 한 시간만 서로를 볼 수 있는 연인의 여름날을 조용히 따라가는가 하면, 한국인 할머니와 일본인 손녀의 어색한 첫 만남을 너그럽게 담아낸다.
재주 많은 두 창작자는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까. 염문경은 주변의 칭찬과 인정에 들뜰 겨를이 없다는 듯 “요령 있는 게으름뱅이”라고 표현했다. “공부든 창작이든 그럴싸해 보이도록 해냈어요. 세간의 기준을 맞추는 일에 능하지만, 사실 요령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진짜’이고 싶다는, 꾀를 부리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한 어떤 깊이에 도달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김소형은 오래 말을 고른 끝에 “일상을 포착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냥 스쳐 지나갈 많은 순간이 영화에서는 아주 소중해져요. 영화 덕분에 삶이 풍요로워졌어요. 어쩌면 제가 그걸 원하는 사람이라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둘이 앉은 테이블에는 일과 사랑, 그리고 정체성이라는 말이 자주 올라왔다. 매일 새로운 꿈을 꾸기에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고, 어디로 흘러가든 대화는 좋은 곳에 도착했다.
인터뷰 전에 서로 작품을 공유했어요. 각자 흥미롭게 본 작품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염문경_ <사랑과 평화>는 신선한 충격을 줬어요. 오늘 만나면 어떻게 연출하게 됐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제가 <자이언트 펭TV> 이슬예나 PD님과 처음으로 함께 만든 작품이 떠올랐거든요. <마법소녀 최리>라는 15분짜리 어린이 드라마인데, <사랑과 평화>처럼 일종의 마법소녀 밈을 사용하는 거예요. <카드캡터 체리>의 주인공 이름 ‘체리’를 ‘최리’로 바꿨어요. 마법소녀를 꿈꾸는 최리와 사악한 마법에 빠진 최리의 언니가 나와요.
김소형_ 실은 <선화의 근황>(2018) 시나리오를 먼저 썼는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담이 커졌어요. 오랫동안 영화를 꿈꿨는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왜 이렇게 무서울까 싶었죠. 저한테 영화 찍는 재미를 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사랑과 평화>를 만들었어요. 비너스 역할을 맡은 배우 외에는 전부 친구들이에요. 연출 전공하는 동기들. (웃음) 덕분에 영화를 즐겁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물귀신> <피터팬의 꿈> 등을 연출한 엄하늘 감독도 출연했죠.
김소형_ 다들 연출 전공자이다 보니, 현장에서 재미있는 순간이 많았어요. 제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도 진짜 오케이 맞냐고 되묻더라고요. “한 번 더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서 나가는 것까지 찍어야 연결될 것 같은데?”라는 식이었죠. 연기하면서 편집까지 생각해주는 거예요. (웃음) 서로 조언을 주고받으면서 열정적으로 찍은 기억이 나요.
염문경_ EBS는 생각보다 예산 규모가 작아요. 단편영화보다 작은 사이즈로 진행할 때도 있고요. <마법소녀 최리> 변신 장면을 크로마키 스튜디오에서 찍기는 했는데, 사실 아주 멋지지는 않아요. 근데 <사랑과 평화>는 퀄리티가 너무 높은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김소형_ 멀티미디어 영상과에 재학 중인 분이 컷을 짜는 일부터 촬영까지 세심하게 챙겨줬어요. 제가 복이 많았죠. 변신 장면을 찍을 때 너무 행복했고, 완성하고 난 다음에도 몇 번이나 돌려 봤어요. 제가 봐도 좋아서요. (웃음)
두 분에게 여러 공통분모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법소녀로 연결될 줄은 몰랐네요.
김소형_ 어릴 적에 <세일러문>을 즐겨 봤어요. 그때도 참 멋진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염문경_ 저도 <세일러문> 진짜 좋아했어요. 지금도 주제곡 가사를 2절까지 다 외운답니다. (웃음) 그럼 혹시 우리가 비슷한 나이일까요? 저는 89년생인데.
김소형_ 와, 저는 92년생! 유년 시절에 자주 접한 장르여서인지, 한 번쯤 마법소녀 코드를 활용해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등장하는 캐릭터도 각기 다른 매력이 있고요.


염문경 감독이 만든 작품을 보고 나선 어땠는지 궁금해요.
김소형_ 일단은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백야>는 내용도 내용인데, 촬영을 작년에 하셨더라고요. 코로나19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염문경_ 작년 ‘필름X젠더’ 제작지원을 받고, 여름에 곧장 찍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이지만, 어쩔 수 없이 무시해야만 했죠.
김소형_ <현피>와 나란히 보니 더 좋았어요. 두 작품에서 연기한 캐릭터가 사뭇 다르잖아요. 시나리오도 직접 쓰신 거죠?
염문경_ 네, 사실 <백야>는 연출을 목표로 쓰지는 않았어요. 근데 시나리오로 지원을 받고 나니, 연출을 맡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 같더라고요. 보통 독립영화나 단편영화에서 시나리오를 쓴 다음에 감독을 섭외하는 경우는 없잖아요. ‘아, 내가 해야 하는구나’ 깨닫고, 케이퍼 무비마냥 사람들을 한 명씩 모으기 시작했어요. (웃음) 글쎄요, 여전히 연출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쓴 이야기니까 작품이 말하려는 바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저일 거라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연출은 또 다른 영역인 것 같아요. 가능하면 좋은 협업을 이룰 수 있는 동료를 많이 만나고 싶어요.
<현피>가 첫 연출작이죠?
염문경_ 맞아요, <자이언트 펭TV>로 한창 바쁠 때 만들었어요. 배우가 아닌 ‘펭수작가’로 불리며, 정체성에 심각하게 혼란을 느끼던 때였죠. 작가라고 해서 글만 쓰는 것도 아니거든요. 출연진 섭외하고, 광고 수위를 협상하고, 관계자들과 미팅하고. 그러다 보니 제 것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어요. ‘몇 년을 연기했는데, 결국 ‘펭수’가 제일 잘 됐구나’라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짧은 시간 동안 적은 예산으로 진행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썼어요. 하루 만에 찍은 영화이지만, 이야기 자체는 오랫동안 품어온 거예요. 저는 인터넷을 많이 하는 여성 청소년이었어요.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가 등장하기 전부터, 예를 들면 ‘엽기 혹은 진실(엽혹진)’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죠. 어린 눈에도 이상했어요. 엽기적이면서 야하고, 지금 생각하면 정치적으로 너무나도 옳지 못한 것들이 쏟아졌으니까요.
청소년 시절부터 궁금증이 쌓였던 거네요.
염문경_ 인터넷에서 서로를 적대시하는 이들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실제로 만나도 서로 그렇게 미워할까? 오래전부터 그런 질문이 제 안에 맴돌았어요. 한편으로는 여전히 갈등이 반복된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제한된 장소에서 대화로 극을 끌어갈 방식을 고민하다가, 인터넷에서 싸움을 벌이던 여자와 남자가 ‘현피’를 뜨기 위해 만난다는 설정을 떠올렸어요.
김소형_ 감독님이 밝고 재미있는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현피>에서 그런 면모가 드러나요.
<백야>를 먼저 본 관객 입장에서는 당황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백야>에서는 성폭력 피해자의 일상을 세심하게, 또 아주 진중한 태도로 다루잖아요. 반면, <현피>는 젠더 이슈에서 시작하면서도 로맨스와 코미디를 접목했죠.
염문경_ 어쨌든 현실에서 이성애자의 연애는 계속되니까요. 남자와 여자로서 연애하며 관계를 꾸려가려고 하는데, 서로 불안하다 보니 충돌하는 거죠. 내 남자친구를 사랑하고 싶지만 걸핏하면 이상한 소리를 하고, 내 여자친구를 사랑하는데 ‘얘가 ‘메갈’인가?’싶고. <현피>에서 로맨스 코드는 일종의 착시 효과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블라인드 데이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알고 보면 서로 고소하겠다고 나선 상황인 거예요. 근데 막상 대화를 시작하자, 묘하게 플러팅의 기운이 감지되는 순간도 발생하고요. 코미디적 흐름이라 가능하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여자가 구애를 거절하는 이유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에, 영화에서 그 부분을 강조하려고 했고요.
용감한 시도처럼 보여요. 자칫 누군가를 편든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
염문경_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어요. 둘 다 틀렸다는 양비론에 빠질 수도, 서로 욕만 하고 끝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죠. 다만, 저는 영화 속 대화를 통해 자가당착을 포착하고 싶었어요. 그럼 서로 화해하는 지점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고 해도, 이전보다 이해도는 높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었죠. 각 젠더의 상황도 드러나요. ‘실제로 만나 보니 괜찮은데?’라며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남성의 상황이라면, 혹여 그렇다고 해도 안전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여성의 상황이죠.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우리가 처한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맥락에서 <우리의 낮과 밤>에도 공감할 부분이 많았어요.
두 감독이 그려내는 ‘연애’가 흥미로워요. 정확히 말하면, 남성과 연애하는 여성 주인공이요.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평범한 애정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사회 분위기라든지 경제 조건 등 끊임없이 외부 영향 아래 놓이는 인물들이죠.
염문경_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여성이 있잖아요. 각기 다른 조건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성주의를 실천하며 살아가고요. 근데 때로는 제가 남자와 연애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마치 가부장제에 부역하는 것만 같고. (웃음) 최근에 N번방을 추적한 여성 기자들이 펴낸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추적단 불꽃, 이봄, 2020)를 읽었어요. 취재기와 더불어 에세이를 실었는데, 그중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어요. 한 분이 남자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동료에게 숨기다가, 결국 울면서 고백했다는 내용이에요. 사실 N번방 같은 사건을 취재하다 보면, 남성 일반이 끔찍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본인이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상대, 즉 애인이 남성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던 거죠. 어떤 마음인지,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갔어요. 저도 연애하면서 의식하는 부분이고, 동시에 연애 상대에게는 좀 더 엄격한 기준을 내걸게 되죠. 주변 동료와 친구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걸 알면서부터 ‘이 시대에 연애하는 사람’이 재미있는 주제로 다가왔어요. 그래선지 <우리의 낮과 밤>처럼 여성주의 시각으로 이성 간 연애를 담아낸 작품에 마음이 가요.
김소형_ 애인에게 엄격해진다는 말에 동의해요. 저도 더 예민하게 반응하거든요.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부터 시작해서 “그런 생각이 잘못된 거야”에 이르기까지. (웃음) 연애 초반에는 자주 싸웠고, 연애 외적으로 마음이 힘들기도 했어요. 이 친구와의 관계에서는 거듭 대화하며 길을 찾으려고 하는데, 밖에서는 그러지 못하니까요. 특히 권위 있는 사람 앞에서는 비슷한 불쾌감을 느낀다고 해도 제때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때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하며 괴로웠죠. 지금은 연애 덕분에 건강해졌다고 느껴요. 남성과 정서적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 지냈다면, 남성이 소통 가능한 존재임을 몰랐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부당한 상황에 놓일 때, 발화에 앞서 인지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 순간에는 말하지 못했지만, 이제 계속 생각하거든요. 무엇이 잘못인지, 앞으로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애인과 대화를 나눈 경험이 저한테 자양분이 돼요. 그러고 보면 연애를 통해 많이 성장하는 것 같아요. 언제나 ‘현타’를 동반하긴 하지만요. (웃음)
염문경_ 저도 그래요. 연애를 제외하면, 저를 둘러싼 관계 대부분은 느슨해요. 느슨해서 안전하지만, 동시에 내밀한 부딪침을 겪을 일은 거의 없죠. 연인을 상대로만 연습해온 것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연애에서 얻은 건, 단지 연애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기술인 거죠. 상대를 설득하는 법과 이해하려는 노력, 나를 돌아보는 시간까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밀착된 관계에서 하나씩 부딪히며 발전해온 거예요.
성장과 발전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연애가 배움이라면, 창작에도 분명히 영향을 주리라 짐작해요. 염문경 감독은 최근 <연애톡강>이라는 EBS 예능 콘텐츠에 기획 및 작가로 참여하기도 했어요.
염문경_ 옛날부터 연애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연애의 온도>(노덕, 2013)를 두고 ‘하이퍼 리얼리즘’이라고들 했잖아요. 현실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특이한 연애도 재미있지만, 그렇게 보편적으로 맞닥뜨리는 문제를 그려내는 작품에 눈길이 갔어요. 근데 요즘에는 관계를 폭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요. ‘사람들은 나만큼 연애에 관심이 없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웃음) 저한테 중요한 주제는 관계와 심리예요. 나는 왜 이렇고, 저 사람은 왜 저럴까. 그걸 생각하는 범주가 자연스레 연애였던 거죠. 저와 비슷한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연애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잖아요. 연애가 아닌 다른 관계에서 성숙을 경험하기도 하고요.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창작자가 될 수는 없지만,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연애보다는 ‘연애하는 나’에 매력을 느꼈고, 그걸 동력으로 삼는 시기가 있던 거네요.
염문경_ 맞아요, 연애만큼 나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경험도 드물잖아요. 감정적으로 많은 자극을 주었고, 이제 써먹을 만큼 써먹은 것 같아요. (웃음)
김소형_ 저는 ‘연애하는 나’에 관해서는 반반이에요.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해요. 근데 늘 최선을 다해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스무살이 된 후로 줄곧 사랑을 찾아 헤맸죠. (웃음) 돌이켜보면 어릴 적부터 내밀한 관계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10대 시절에는 친구들과 연애하듯 관계를 맺곤 했거든요. 의지할 상대를 찾는 제 모습이 만족스럽지는 않아요. 스스로 성장하는 삶을 바라지만, 참 쉽지 않더라고요. 다만, 지금까지 경험한 사랑 중에 연애로 느낀 사랑이 가장 직접적이긴 해요. 그래선지 사랑에 관해 생각할 때, 연애가 항상 먼저 떠올라요. <우리의 낮과 밤>을 쓸 때도 그랬어요. ‘나는 삶에서 사랑을 지키고 싶어. 그러려면 이 연애를 지켜야 해.’라는 마음이었어요.
10대 시절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도 영화를 좋아했어요? 어떻게 보면 외로운 사람들이 영화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김소형_ 중학생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누가 꿈을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답할 정도로요. 제가 친구들과의 관계에 집착했다고 했잖아요. 집에서는 기댈 사람이 딱히 없었고, 그 무렵 제게는 친구들이 전부나 마찬가지였어요. 근데 관계에 서툰 상태에서 만나다 보니, 실망하고 상처받는 일이 많았어요. 너무 힘드니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영화를 보기 시작했어요. 영화 속 인물이 하는 행동을 따라 했죠.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유키사다 이사오, 2004)를 본 다음에는 녹음기를 들고 다니기도 했어요. 혼자서 하는 재미를 조금씩 찾아가는 과정에서 영화를 좋아하게 됐고, 결국 직접 만들고 싶다는 마음마저 생겼어요.
염문경 배우는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고, 김소형 감독도 처음부터 영화를 전공한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김소형_ 고등학교 졸업하고 물리치료학과에 갔어요. 막연하게 감독을 꿈꾸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됐는데, 제 성적으로는 어렵다는 걸 알았죠. 무엇보다 덜컥 무서워졌어요. 영화가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저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어요. 상황을 핑계 삼으며 꿈을 미루었죠. 당장 영화과에 갈 성적도 아니고, 지방에서는 영화 현장을 접할 수도 없으니 ‘일단 돈을 벌자’고요. 그때는 돈을 모아서 서울에 갈 생각이었어요. 물리치료학, 국어교육학, 국문학을 놓고 고민하다가 셋 중에 가장 빨리 취업할 수 있는 과를 골랐어요.
염문경_ 저는 신문방송학과가 멋져 보였어요. 입시 과정에서 제 꿈과 포부를 기술해야 했는데, 광고는 미디어의 꽃이라며 열정적으로 학업계획서를 썼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광고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거든요. 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는 완전히 달라졌죠. 학과 공부보다 연극 동아리 활동에 매진했고, 광고는 제게 자본주의라는 악의 꽃이 되었어요. (웃음) 사회과학대는 그나마 운동권적 성격이 남은 곳이었어요. 몰랐던 세계를 접하면서 ‘흑화’하는 시기였던 거죠. 그런 눈으로 볼 때, 연극은 아주 순수한 예술로 다가왔고요.
김소형_ 저는 물리치료학과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지금 영화를 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에 이렇게나 재미 없는 게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흥미를 전혀 못 느꼈거든요. 집에서 학교까지 2분 거리였는데, 학교를 아예 안 갔어요. 학사 경고를 두 번 맞은 후에 자퇴했고, 얼마간 빵집에서 일했어요.
<선화의 근황>이 떠오르네요. 반죽부와 성형부 등 빵 만드는 직군 자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계급 구조를 보여주잖아요.
염문경_ <우리의 낮과 밤>에서 우철(김우겸)이 일하는 곳도 빵집이어서 ‘감독님이 잘 아는 빵집이 있나?’ 했어요. (웃음)
김소형_ 원래 2-3년 정도 일할 계획이었는데, 1년쯤 근무하고 관뒀어요. 극장에서 잔 적이 있어요. 광고가 나올 때 잠들어서 영화가 끝난 후에야 눈을 떴어요. 그만큼 피곤했던 거예요. 당시 빵집에서 굉장히 강도 높은 노동을 소화해야 했거든요. ‘내가 뭐 하려고 여기에 있지?’ 싶더라고요. 그때 학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영화에 관해 말하는 시간,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너무 그리워서요.
20대 초반을 정신없이 보냈네요. 지금은 정리해서 말할 수 있지만, 진로를 선택할 당시에는 불안했을 것 같아요.
염문경_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점점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연극은 연애 외에 저 자신을 발견하는 가장 큰 창구였어요. 새로운 감정을 마주하고 표현하는 과정이 소중했고, 늘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소형 감독님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바랐던 것처럼 저 역시 연기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어요. 연습이나 공연을 마치고 나면, 다 같이 술을 마시러 가잖아요. 즐겁게 노는 와중에도 항상 아쉬움이 남았어요. 우리끼리 수고했다고 박수치는 걸 넘어서, 더 치열하고 깊게 고민하는 영역이 궁금했죠.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말했던 순간이 떠올라요. 뚜렷한 계획은 없지만, 일단 말은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당시에도 얹혀사는 상황이었고, 연기를 시작하면 독립은 더더욱 요원해질 테니까요.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를 얹은 채로 엄마와 마주 앉았죠. 울면서 소리 질렀어요. “나는! 연기가! 해보고 싶어!” 엄마 입장에서는 ‘급발진’이었을 거예요. (웃음)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언제 안 된다고 한 적 있냐?’, 그런 표정? (웃음)
염문경_ 어느 정도 예상하신 것 같았어요. 중학생 때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제가 코스프레만 안 했을 뿐이지, 나름 ‘오덕’이였거든요. 만화 그려서 코믹콘 나가고. 결국 담임 선생님과 엄마가 조언한 대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긴 했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그때 만류했던 일이 기억에 남았나 봐요. 평범하게 취직하는 길을 선택하지는 않으리라 짐작하셨을 수도 있고요. 별 내색 없이 받아들이셨고, 돌이켜보면 최선의 서포트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로서 꾸준히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생계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또 엄마에게는 엄마만의 네트워크가 있잖아요. “문경이는 요새 뭐 해?”라는 질문에 엄마 혼자 이런저런 말을 만들어내며 견뎌온 시간이 있을 거예요. 감사한 마음으로 동거인의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해요. 일어나기 싫어도 제때 일어나고, 귀찮아도 밥 차리고. (웃음)
김소형_ 우리 집과는 분위기가 다르네요. 부모님은 저한테 신경을 쏟는 분들은 아니에요. 홀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았고, 입시를 준비할 때도 부모님과 상의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한예종에 합격했을 때는 너무 기뻐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서울 소재 국립대학이라고 설명했는데,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어요. 그때는 엄청나게 섭섭했어요. 근데 생각해보면 아빠와 저는 늘 그런 분위기를 유지했더라고요. (웃음) 학교에 들어가서는 먼 미래보다 당장 찍어야 할 영화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어요. 그게 내 전부이자 정체성이라고 여겼기에, 불안을 달고 산 것 같아요.
염문경_ 단편 네 작품 모두 재학 중에 만드셨어요?
김소형_ 네, 2018년에 <사랑과 평화>와 <선화의 근황>을, <우리의 낮과 밤>과 <아마도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2020년에 만들었어요. 대개 일 년에 한 작품씩 찍어요. 졸업하기 전까지 대부분 두 편을 만들고, 간혹 한 편만 찍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2018년에 두 편을 찍은 다음, 휴학해서 돈을 벌었어요. 복학해서 다시 두 편을 찍고요. 스스로 혹사하다시피 했던 거죠.
첫 영화부터 연기를 병행했어요. 쭉 따라가다 보면, 단지 경제적 이유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작품에서는 연기 욕심이 엿보이기도 하고요.
김소형_ 학창 시절에 성당에서 연극을 한 적이 있어요. 작은 역할로 출연했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강렬한 기분은 처음이었어요. 무대에 서니까 그 많은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이는 거예요. 그때부터 연기가 궁금했어요. 빵집에서 일할 때는 잠시 극단에서 연기를 배우기도 했어요. 연기학원에 다닐 돈은 없으니 무작정 극단을 찾아갔던 거죠.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를 세 번이나 반복한 끝에 겨우 용기를 내서 들어갔어요. 배우 한 분이 나오셨는데, 그분을 보자마자 펑펑 울었어요.
염문경_ 너무 망설였으니까요.
김소형_ 맞아요, 그분은 굉장히 당황스러웠을 거예요. 제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극단을 드나들게 됐어요. 형편이 워낙 어려운 극단이라, 거기서 오래 지내지는 못했지만요.
염문경_ 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는요?
김소형_ 연출을 전공하다 보니, 연기 욕심을 드러내기가 부끄럽더라고요. 음, 한편으로는 배우에 관해 막연한 편견도 가졌어요. 나랑은 다른, 특별한 사람만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여겼죠. 두려움과 욕구가 뒤엉켜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무렵, 동기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단편을 찍을 예정인데, 저를 캐스팅하고 싶다고요. 그때 시나리오를 보내면서 “네가 안 한다고 하면, 나는 그냥 이 영화를 찍지 않으려고 해”라는 거예요.
안 할 수가 없게 만들었군요.
김소형_ <감자>(루돌프 한, 2018)라는 작품이에요. 촬영 첫날, 첫 번째 신을 찍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레디’와 ‘액션’ 사이의 짧은 침묵과 공백이요. 너무너무 신기한 공기였어요. 촬영을 끝내고 집에 와서 밀린 빨래를 하는데, 눈물이 막 났어요. 연기를 더 해보고 싶더라고요. 어떤 감정인지 자세하게 알고 싶었어요. 그런데도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는데, 어느 날 친구가 방법을 제시해줬죠. 정 그렇게 부끄럽고 힘들면, 제가 연출하는 영화에서 연기해보라고요. 다른 사람의 영화에 준비되지 않은 채로 들어가서 민폐를 끼칠까 봐 마음이 무거웠거든요. 그 말을 듣고 <사랑과 평화>를 준비했어요. 근데 그때도 주연 배우가 저라고 말하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촬영 감독이 물어봐도 미루고 미루다가 “사실은 제가 주인공 역할을 맡으려고 해요”라고 고백하듯 이야기했어요. 저는 항상 왜 이럴까요? (웃음)
염문경 배우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얼굴이네요.
염문경_ 너무 알죠. 주변에서는 저를 대담한 사람으로 평하지만, 연기에 뛰어들기까지 엄청나게 재고 따졌어요. 저도 부끄러웠거든요. 배우는 반짝반짝 빛나는, 아주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선생님이나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는 달랐어요. 훨씬 허무맹랑하고 유치하게 보일 것 같다는 두려움이 컸죠. 모든 배우는 무대나 카메라 앞에서 한 번쯤 사랑에 빠져봤을 거예요. 저 또한 정적에서 오는 엄청난 긴장감, 극도로 몰입하는 순간에 매료됐어요. 근데 연기에 매력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배우라는 꿈은 ‘내가 철딱서니 없이 구나?’라는 의문을 품게 해요. 오디션에서 종종 듣는 질문이 있어요. “왜 좋은 대학 나와서 연기하려고 해요? 부모님이 반대 안 해요?” 작품과 캐릭터에 관한 질문보다 그게 먼저 나와요. 여러 버전의 대답을 준비하면서, 저도 계속 생각하는 거예요. ‘왜 배우가 되려고 하지? 연예인이 되고 싶나? 연기하면 뭐가 좋지?’ 저한테 연기는 그냥 더 잘하고 싶은 일인데, 변명거리를 찾듯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던 거죠.
각본, 연출, 연기를 동시에 소화하는 건 어때요?
염문경_ 짧게 말할 수 있어요. 힘들어요. (웃음) 그만큼 재미도 있고요. 소형 감독님이 ‘주연 배우가 나’라고 말하기까지 오래 걸렸다고 했잖아요. 무슨 마음인지 알아요. 어떤 배우는 “배우가 연출하고 연기하는 작품에는 출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해요. 연기할 곳을 찾는 배우는 너무 많고, 배우들끼리 힘을 합해 뭔가를 만들어 내려는 움직임도 꽤 많아요. 그렇게 나온 작품의 결과가 늘 만족스러울 수는 없잖아요.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보는 시선도 있고요. 그런 인식을 모르지 않다 보니,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렵더라고요. 결국 여러 이유를 늘어놓게 돼요.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제가 해야 할 것 같다는 식이죠. 물론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것도 맞거든요.
두 분에게 쓰는 호칭이 감독님, 배우님, 작가님 하며 계속 달라져요. 염문경 배우는 최근 배우보다는 작가로 자주 호출됐어요.
염문경_ 여러 포지션으로 활동하면서 “무엇을 ‘메인’으로 여기나?”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 제 대답은 언제나 배우인데, 말하기가 부끄럽더라고요. 배우로서 하는 일과 작가로서 하는 일의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 뿌리는 배우예요. 배우로서 경험한 고민과 사유 덕분에 글쓰기가 가능했고, ‘연기는 좋은 밑거름이었어요’라며 과거형으로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지금도 연기하고 있어요. 아직은 배우가 아닌 다른 타이틀로 참여한 작업에서 제가 좀 더 드러날 뿐이고요. 동시에 배우라는 정체성을 방패처럼 쓰지는 않으려고 해요. 연기할 때는 5만 원만 받아도 온갖 노력을 다하면서, 다른 일할 때는 ‘이건 아르바이트니까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지’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적당히 하고 싶지는 않아서 공부하는 중이에요. 시나리오 작법 책도 읽고, 멘토링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요.
혼란스러운 동시에 분명한 이득도 있으리라 생각해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작업이 결과를 내기까지 거쳐야 하는 프로세스를 다각도로 경험하는 중이잖아요.
염문경_ 맞아요, 결국 모든 작업에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임하거든요. 과정만 놓고 봤을 때, 글을 쓰는 일과 연기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대본을 받으면 이 인물은 누구인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이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하나씩 찾아가잖아요. 결국 실마리는 제 안에 있고요.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인물과 상황 역시 제 안에서 나오니까요.
김소형_ 전혀 다른 영역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연기 경험이 연출에 도움을 주고, 글을 쓰는 시간이 연기에 영향을 미쳐요. 다만, 연기를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어요. 최근에는 연출과 각본에 집중하고 있어요.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장편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거죠?
김소형_ 네, 실은 작년부터 제작사에서 일하는 중이에요. 일단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것이 목표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고민이 생겨요. 저뿐만 아니라, 기획 작가라든지 인턴 작가라는 이름으로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친구들도 비슷한 상황이에요. 서로 일하는 환경은 어떤지, 급여는 어느 정도인지 공유하다 보면 종종 속상해지기도 해요. 당장 크레디트가 없는 신인 작가로서 감내해야 할 현실이 무섭기도 하고요. 다만, 부당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잖아요. 동료들과 계속 대화하면서 고민을 이어가려고 해요. 대학원에 간 이유도 이와 연결돼요. 일부러 연출이 아니라, 시나리오 전공을 택했어요. 결국 저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절실하게 필요하더라고요. 학교에 다니면, 천천히라도 제 글을 쓰겠다 싶어서요.
하루가 정말 길겠네요. 시간을 쪼개 쓰는 상황일 텐데.
김소형_ 무리해서라도 병행하는 거죠. 심지어 회사에서 버는 돈만으로는 생활이 어렵다 보니, 청소년 대상 영화 제작 동아리 강사로 일해요. 서울에서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일이 정말 만만치 않아요. 저는 나름대로 괴롭고 힘든데, 그렇게라도 일할 수 있어서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심리 상담을 받는 중이거든요. 상담 선생님도 자꾸 그런 말씀을 하세요.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데, 당신이 바쁘다는 건 정말 감사할 일이다.”
염문경_ 전혀 힘이 될 말이 아닌데요.
김소형_ 우울해지죠. 더 나쁜 상황과 비교하면서 위안을 받아야 한다니. 여러모로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건강하게 돈을 벌고 싶네요.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고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요.
염문경_ 작가로서 저는 운이 아주 좋았다고 생각해요. 지인에게 일자리를 소개 받았고, ‘펭수’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었어요. 다만, 소형 감독님이 말한 모멸감을 모르지는 않아요. 싼값에 부른 사람에게 일단 뭔가를 써보게 하고, 아니면 말고. 배우로서 비슷한 과정을 수차례 겪었거든요. 연극할 때는 계약서가 다 뭐예요. 공연하고 돈을 못 받은 경우도 있어요. 페이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봤다가 엄청 혼났죠. 당시엔 저도 일종의 트레이닝이라고 받아들였어요. 그래도 여기는 나를 써주니까, 나는 무대에 서고 싶으니까. 어쩌면 작가로서 일할 때는 그런 끈적한 욕망이 덜하기에, 부당한 대우를 거부할 수 있는지도 몰라요. 배우 시절에 이미 모멸감과 좌절을 너무 많이 느껴서 이제 피하려는 걸 수도 있고요.
나를 잘 지켜내야 창작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에, 두 분 모두 고민이 깊어지는 거라 생각해요. 두 분이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는 뭐예요?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들려준다면요.
염문경_ 관객으로서는 후한 편이에요. 재미를 추구하고, 장르 영화를 즐겨 봐요. <기생충>(봉준호, 2019) <쓰리 빌보드>(마틴 맥도나, 2018) 같은 작품이요. 마틴 맥도나는 유명한 희곡 작가이기도 한데, 영화를 보는 내내 대단한 이야기라며 감탄했어요. 근데 사실 ‘인생 영화’라고 하면, 어릴 적에 본 작품이 먼저 떠올라요. 결국 연애 이야기로 돌아오는데, <이터널 선샤인>(미셸 공드리, 2004)을 좋아해서 몇 번이나 봤어요. 결은 전혀 다르지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나카시마 테츠야, 2006)도 빼놓을 수 없고요. 두 작품 모두 장르적 장치를 부여해서 재미있게 구조화했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정치 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FX, 2020)를 흥미롭게 봤어요. 저마다 다른 목표와 욕망을 지닌 여성 캐릭터가 등장해요. 늘 궁금했거든요. ‘똑같은 양복 입은 남자들이 나와서 싸우는 드라마를 다들 왜 이렇게 열심히 볼까?’ 여성 캐릭터가 주도하는 극을 보니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웃음) 저도 그런 방향으로 확장해나갈 것 같아요. 여자들이 싸우고 갈등하면서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요. 현재 제 관심사가 ‘여성이라는 젠더로 사회에 존재하는 나’이니까요.
김소형_ 저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되게 좋아해요. 중학생 때, 일본 영화를 많이 봤어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와이 슌지, 2001)에 푹 빠지기도 했고요. 한예종에 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이창동 감독님 때문이었어요. ‘저분이 계시는 학교에 가겠다!’ (웃음) 어느 때는 소노 시온과 다르덴 형제 영화를 열심히 보기도 했죠. 그렇게 시기마다 몇몇 감독을 파고들던 것 같아요. 결국 제가 만들고 싶은 영화와 맞닿을 텐데, 지금은 딱 두 편을 꼽을 수 있어요. <도쿄 소나타>(구로사와 기요시, 2008)와 <아파트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빌리 와일더, 1960). 일상을 탁월하게 담는 동시에, 아주 섬세한 방식으로 유머를 그려내요. 볼 때마다 새로운 작품이에요. <아파트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를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게 바로 이거야!’라고 생각했어요. 부조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그 안에 깃든 사랑을 이야기하며 귀여운 순간을 빚어내잖아요. 저도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