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앞에서 서로 기대 환하게 웃는 세 사람을 보다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 인터뷰, 잘 정리할 수 있을까? 인터뷰이가 여럿이고 진행 시간이 길다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말하는 이를 향한 사려 깊은 눈길,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짧은 침묵, 듣고만 있어도 마음 편해지는 웃음소리. 얼핏 따져도 줄글의 단어와 문장 사이에 누락될 게 너무 많았다. 촬영 분량이 전부 중요하게 느껴져서 도무지 무엇을 골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는 남순아 구성작가의 마음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이들의 대화는 영화만큼,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만큼 치열하고 풍부했다.
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페미니즘 이슈의 한가운데서, 강유가람은 “과연 나는 페미니스트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자문했다. 이윽고 그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활발히 활동했던 영페미니스트 친구들을 찾아 떠난다. 여성학 대학원, 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 온라인 포털 사이트 등 다양한 공간에서 만났던 그들은 이제 새 길 위에 서 있다. 전북 정읍에서 수의사가 된 ‘키라’, 삶의 터전을 제주로 옮긴 ‘짜투리’, 의료복지사회협동조합 ‘살림’을 만든 ‘어라’,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인 ‘오매’, 10년 넘게 뮤지션으로 활동 중인 ‘흐른’. 하는 일도, 사는 방식도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페미니스트로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일구는 일에 관해 말한다.
<우리는 매일매일>은 그 말들이 자유롭게 헤엄치는 넓고 깊은 바다다. 다양한 고민을 세심하게 듣고, 적합한 언어로 기록할 수 있었던 데는 고된 과정을 함께 한 동료들의 덕이 컸다. 촬영과 구성을 담당한 오랜 동료 손경화와 새로운 시각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남순아, 그리고 긴 여정을 끝낸 강유가람의 기억과 다짐의 일부를 옮긴다.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많지 않다고 들었다.
손경화_ 개봉 버전 수정 회의할 때 마지막으로 봤나?
남순아_ 그게 봄이었다. 우리 그렇게 자주 안 본다. (웃음)
강유가람_ 만나면 일하고.
손경화_ 칼 같이 헤어지고. (웃음)
<우리는 매일매일>을 여러 차례 봤는데도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뭉클하다.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이슈가 끊이지 않다 보니 언제나 시기적절한 작품이 된다는 것도 특기할만하고. 세 사람은 어떤가. 감상자로서 느끼는 바가 있다면.
강유가람_ 자막 감수하면서 마지막으로 보는데, 영화 만들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영화에 담긴 시기 이후에 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 페미니스트들에게 힘든 시간이 계속 이어져 왔다. 그런데 영화 자체는 승리의 기운을 많이 담고 있는 편이어서, 각 시점에서 어떻게 읽힐지 궁금한 마음으로 본다.
남순아_ 언제나 만든 사람 입장에서 보게 된다. 구성작업 할 때부터 인물들이 너무 매력적이고 이야기가 재밌어서, 빨리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 ‘아, 이제 자랑할 수 있겠군’ 했는데, 지금은 더 많이 자랑할 수 있게 되어 만족스럽다. (웃음)
손경화_ 회의할 때는 문장 하나 가지고도 계속 고민하고, 기능적인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지 않나. 그러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때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와, 생각보다 너무 좋은데?” 싶더라. 감동이었다. 이 영화가 극장에 앉아있는 페미니스트들, 같은 고민을 하는 2~30대 여성들에게 주는 위로가 크다는 걸 나도 극장에 가서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세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손경화 감독과 강유가람 감독은 이미 공동 작업을 한 경험이 있다.
손경화_ 전에는 오가며 영화제에서나 만나던 사이였다. 그러다 낙태를 주제로 한 <자, 이제 댄스타임>(2013)을 여성 제작자들이 공동으로 만들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함께 작업하는 동료가 됐다.
강유가람_ 내가 PD, 손경화 감독이 촬영, 조세영 감독이 연출, 박소현 감독이 조연출이었다.
남순아 감독과는 어떻게 만났나.
강유가람_ 내게 순아 감독은 영화계 내에서 성평등 교육을 하는 멋진 셀럽, 존경스러운 사람이었다. 좀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한국독립영화협회 성평등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가까워졌다. 위원장인 감독님을 내가 옆에서 잘 보좌하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순아 감독은 나를 센 캐릭터로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아니었다고 하더라. (웃음)
남순아_ 센 페미 언니인 줄로만 알았다. 성폭력 사건 관련 자료를 이만큼 주면서 꼭 다시 돌려줘야 한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구성작업 하면서 의외로 허당인 면을 발견했다. (웃음) 경화 감독하고는, 언제였지?
손경화_ 2008년 정도.
남순아_ 그즈음에 미디액트에서 수업을 같이 들었다.
강유가람_ 무슨 수업이었나.
손경화_ 최진성 감독님이 하는 다큐멘터리 수업. 거기 장윤미 감독님도 있었고, <여름의 나무들>(2020)을 만든 이수유 감독님도 있었다.
기획의 시작은 2014년까지 거슬러 간다. 영페미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고 성과와 한계를 되짚어보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당시는 세 사람이 모이기 전이고, 각자의 고민을 각자의 작업으로 풀어가 보려던 때인 것 같다. 어떤 시기로 기억하나.
강유가람_ 첫 번째 작업 끝내고 <자, 이제 댄스타임> PD를 하고 난 다음이었는데, 내가 정말 좋아했던 한 시기를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 그래서 ‘꼴페미 전성시대’라는 이름으로 기획서를 써서 문화기획집단 ‘영희야놀자’ 멤버들한테 보여줬다. 그때는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다. 우리끼리만 보고 말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고. 더 진행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이태원>으로 작업 방향을 돌렸다.
남순아_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만드느라 죽어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작업은 처음이었고, 고민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경화 감독한테 미팅을 요청했는데, 제목까지 지어줬다.
손경화_ 내가 해준 게 아니다. 이 영화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물어봤던 거지.
남순아_ 그래서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했더니, 그거 제목으로 하면 된다고 하더라. 점집 같았다. (웃음) 당시 경제적 독립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많이 고민했다. 스스로 변명하지 않으면서 내용을 잘 엮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고.
손경화_ 나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10년 정도 했을 때였다. 어떤 한계에 부딪힌 것 같고, 이렇게 계속 작업하기는 힘들겠더라. 그래서 <의자가 되는 법>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마지막 연출 작업이 됐다. 상영을 마무리하고 나서는 작업하느라 그동안 미뤄두었던 이런저런 활동을 했다.
‘영페미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지점 중 하나가 <시국페미>(2017)를 만든 일이다.
강유가람_ 처음 기획했을 때부터 지금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을 같이 담고 싶어서 조금씩 쫓아다니고 있었다. 마침 회의하는 모습을 찍어달라는 ‘페미당당’의 요청을 순아 감독이 전해줬다. 촬영하러 가서 마주한 그들의 거침없는 에너지가 정말 놀라웠다. 그러던 중에 박근혜 퇴진 정국이 만들어졌고, 그때 활발하게 활동한 페미니스트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 내용만으로 <시국페미>를 만들게 됐다. 그러고 나니까 이 세대의 이야기를 영페미 이야기와 굳이 섞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페미니스트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콘셉트로 기획을 수정하게 됐다. 그렇게 정리된 기획을 제일 먼저 경화 감독한테 보여줬다. 홍대 근처 밥집에서. 기억나?
손경화_ 장소는 기억 안 나는데. (웃음) 가람 감독이 어떤 고민으로 어떤 기획을 하고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가람은 이전 작업을 하면서도 워낙 고생을 많이 했다. 곁에서 지켜보며 힘들겠다고 생각하던 차이기도 해서, 혹시 내게 같이 하자고 제안하면 해야겠다고 미리 마음먹고 있었다.
그때 받았던 게 최종 기획안인가.
손경화_ 맞다. <이태원>처럼 확장되는 얘기였다면, 다른 촬영감독이 더 잘 할 수 있을 테니 아마 거절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친구를 카메라에 담는 건 되게 내밀한 작업이지 않나. 감독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촬영감독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촬영에 관해서는 어떤 얘기를 나눴나. 보도자료를 보면 촬영감독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다.
손경화_ 뭘 맨날 미안해. (웃음)
강유가람_ 인물을 따라가야 하는데 출연자들이 너무 바빠서 촬영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만나러 가면 일단 무엇이든 찍느라 급했다. 그러다 보니 촬영 콘셉트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지 못한 채 찍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촬영감독으로서는 연출자가 어떻게 찍고 싶은지 알면 좋은데, 그렇지 못했으니 미안했던 거다. 경화 감독이 엔딩 촬영에 관해 아이디어를 많이 냈고, 그걸 찍어야 한다고 얘기해줬던 게 너무 좋았다. 인물 촬영 진행할 때도 그런 기획이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예산이 넉넉했다면 촬영을 더 적극적으로 해봤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손경화_ 사전인터뷰가 갑자기 본 촬영이 되기도 했다. 오매가 말한 것처럼 5분 쉴 시간도 없다는데, 시간을 계속 뺐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 출연자들 스케줄에 맞춰서 움직였다. 다큐멘터리의 특성이 그런 거 아니겠나.
강유가람_ 오매는 정말 바빠서 인터뷰 일정 잡기도 힘들었다. 당시에 집회도 많았고 안희정 사건 공대위도 할 때니까. 집회에 가면 늘 오매가 있었다. 그래서 거기서 오매를 찍었지. (웃음)
출연자 섭외는 어떻게 이뤄졌고, 반응은 어땠는지.
강유가람_ 일단 여성운동을 하거나 연구자가 되지 않은, 다른 영역으로 간 친구들을 대상으로 했다. 모두 섭외에 흔쾌히 응해줬고, 키라를 제일 먼저 만나러 갔다. 짜투리 섭외할 때 경화 감독이랑 같이 제주도에 갔는데, 만나자마자 영화에 들어가면 좋을 얘기들을 많이 해주더라. 어라는 그렇게까지 친했던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출연하고 싶다고 해줬고, 흐른은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럽다고 했다. 오매는 활동가라서 원래 서브로 인터뷰할 계획이었지만, 출연자로 섭외하게 됐다. 내가 촬영하러 갔던 어느 워크숍 자리에서 그해에 5분도 쉬지 못했다며 눈물을 보인 적이 있는데, 그때 오매의 마음을 더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각 출연자의 일상과 노동이 풍부하게 담겼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찍은 느낌이 들고, 출연자들도 카메라를 어색해하지 않더라. 촬영자 입장에서 순발력과 친화력이 모두 필요한 현장이었을 것 같은데.
손경화_ 촬영하다 보면 마음이 불편한 현장도 있고 편한 현장도 있다. 출연자들과 관계 맺기가 안 되어있는 상황에서 카메라가 비집고 들어가야 하거나, 불편한 상황을 기록해야 할 때 촬영자로서 마음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가람 감독은 그런 불편함을 만들지 않는 연출자라는 신뢰가 있었다. 역시나 이번에 촬영하면서도 항상 출연자들을 배려했고, 출연자들도 가람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거부감 없이 본인을 보여줬던 것 같다. 내가 뭘 한 건 없다.
손경화 감독은 영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나 당시의 풍경에 관해서는 어떤 기억이 있나.
손경화_ 학교 다닐 때는 그런 활동에 대해 잘 몰랐다. 이후에도 ‘언니네트워크’에서 글을 읽는 정도였지, 가깝게 본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보니 정말 에너지가 넘치더라. 만나러 가기 전에 기획만 봤을 때는 좀 아련한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아련할 틈이 없었다. 과거를 추억하기보다는 모두 현재의 일을 힘 있게 해내고 있었다. 예전에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치열하게 지내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는 데서 나도 힘을 많이 받았다. 고민이 많던 시기에 만난 인물들이 큰 에너지를 전해줬고, 그들이 내 안에 많이 남게 됐다.
출연자들의 현재를 통해 페미니스트적인 실천이라는 게 어디에나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언제인가.
강유가람_ 낙태죄 폐지하던 날. 정말 긴장하면서 촬영하러 갔다. 좋은 자리에서 찍어야 하니까 아침부터 자리도 맡고. (웃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역사적인 순간일 거라 생각했다. 잘 알려진 활동가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 어딘가에 오매도 있는 그런 순간을 우리 영화에 담을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뻤다. 결과가 나왔을 때는 정말 환호의 도가니였다. 원래 촬영 끝나면 스틸 같은 걸 잘 안 찍는데, 그날은 너무 기뻐서 경화 감독이랑 헌법재판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손경화_ 더 감격스러웠던 건 <자, 이제 댄스타임> 할 때도 똑같은 장소에서 촬영했던 적이 있어서다. 그때는 다른 판결이 났고, 낙태 이슈에 대해 이렇게까지 대중들이 많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 영화에 출연하신 분들도 굉장히 큰 결심을 해야 했고, 모자이크 처리를 했던 상황이기도 했으니까. 8년 뒤에 이런 결과를 마주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활동가들이 많이 울었다. 오매도 울었고, 우리도 울면서 찍었다. 개인적으로는 출연자들의 태도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말로 표현하기 좀 어렵긴 한데…, 추억팔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현재를 섬세하게 보려는 태도가 모두에게 있었다. 영화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어라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 20대 페미니스트들이나 인터넷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한 분들이 기존에 여성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반감을 갖는 일에 대해 질문했을 때였다. 어라가 좀 생각하더니, 그게 지금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다고,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하더라. 그래서 결국은 다 같이 잘살아 보자고 하는 큰마음이 모든 출연자에게 있었던 것 같다.
촬영 이후 합류한 남순아 감독은 촬영본을 보며 어떤 인상을 받았나.
남순아_ 녹취를 먼저 읽었다. 그때는 흐른이나 오매를 제외하고는 출연자들의 얼굴을 몰랐기 때문에 나름 강렬하고 무서운 얼굴을 상상했는데, 촬영 소스를 보니 다들 너무나 온화하더라. (웃음) 당시에는 해시태그 운동(#영화계_내_성폭력)도 있었고, ‘찍는 페미’ 같은 단체도 생겼을 때다. 나도 그런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여러 생각을 하던 중이었는데. 이 작업을 통해 우리의 고민과 경험이 세대를 넘어 반복됐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속했던 조직에서나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위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호칭을 바꿔보는 시도를 했다. 짜투리가 본인이 활동할 때 그랬다는 얘길 하지 않나. 반복된 경험이 분명히 있는데, 그게 왜 전달되지 못했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작업 당시의 상황과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겹쳐 볼 여지가 여러모로 많았겠다.
남순아_ 아까 이야기한 넓은 태도를 보며 자극을 많이 받았다. 그때는 나한테 억울함과 화가 되게 많았고, 페미니즘 운동을 평생 할 수 있다는 생각도 쉽게 들지 않았다. 해시태그 운동하면 세상이 바뀔 줄 알았고, 미투 운동하면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생각했는데, 바뀌긴 바뀌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더라. 그런데 출연자들을 보면서 다양한 방식의 실천을 계속해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영페미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먼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활동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꼭 어디 소속되거나 학자가 되지 않아도 말이다. 그게 감동이었다.
어떻게 구성작가로 합류하게 됐나.
남순아_ <시국페미>를 보고 너무 좋아서 어떻게든 가람 감독의 다음 작업을 같이하고 싶었다. 계속 얼쩡거리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 달라고 했지.
강유가람_ 인터뷰한 소스는 다 너무 좋은데, 이걸 가지고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일단 경화 감독한테 같이 구성하자고 했고, 세대가 다른 사람을 한 명 정도 더 찾고 싶었다. 그때 순아 감독이 퍼뜩 떠올랐다. 정말 성실하고 꼼꼼하게 작업하는 스타일이다. 표를 만든다든지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 걸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
남순아_ 사실 구성 작업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일이었다. 녹취 푸는 일 정도를 예상했는데. (웃음) 전체적인 구성이랑 오프닝은 가람 감독이 했고, 나랑 경화 감독이 인물을 나눠서 구성했다. 티는 안 냈지만 되게 두근거렸다. 망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나를 후배로 대하기보다는 책임져야 할 몫을 딱 줘버리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힘들었지만 많이 성장했다.
구성작가는 보통 어떤 역할을 하나. 또 이번에는 어디에 중점을 두며 구성작업을 진행했나.
손경화_ 다큐멘터리는 감독이 혼자 구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전달해야 할 정보가 많아서 구성작가의 역할이 좀 컸다. 보통은 주어진 소스를 가지고 감독의 의도에 맞는 흐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을 구성작가로 보면 될 것 같다.
강유가람_ 나는 알지만 관객은 모를 수 있는 정보가 있는데, 구성작가들이 그런 부분을 객관적으로 캐치하고 정리해줬다. 또 두 사람이 오프닝에서 감독의 시선과 이야기가 많이 묻어나야 한다는 점을 짚기도 했다.
손경화_ 다섯 인물이 감독의 지인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감독의 캐릭터가 살아야 했다. 처음에 가람은 자기 얘기하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았지만. (웃음) 기획하고 촬영하는 과정에서 그런 형식은 이미 나왔던 것 같다. 과거 이야기로 다 채울 수도 있었으나, 작업할 때 혜화역 집회(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나 해시태그 운동 같은 페미니즘 활동이 워낙 활발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지금 시점에서 어떤 위치에 자리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 많이 얘기했다.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흐름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각 인물의 이야기도 구성이 잡혔다.
가장 치열한 논의는.
남순아_ 감독이 드러나야 해서 내레이션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가람 감독의 무의식이 저항했다. (웃음)
강유가람_ 정리가 안 되거나 모호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질문을 명확하게 던져줘서 잘 다듬을 수 있었다.
손경화_ 난 좋았던 기억만 있다. (웃음) 제대로 일하는 듯한 희열이랄까? 순아 감독이 구성작업에 엄청난 에너지를 줘서, 그 힘으로 계속해낼 수 있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같이 이 작업을 잘 해내고 싶다는 의지가 있어서 의견을 주고받는데도 거리낌 없었다.
남순아_ 케이크 먹으면서 재밌게 했다. (웃음)
강유가람_ 순아 감독이 내레이션 녹음할 때도 어감이라든지 여러 가지를 꼼꼼히 체크해줬다. 끝까지 지지받는 느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출연자들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과거 푸티지나 기록자료도 많이 들어갔다. 비혼선언문 낭독이나 ‘언니네트워크’ 관련 자료들, 학내 반(反)성폭력 자치규약 등 귀중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강유가람_ 잘 못 버리는 성격이라 개인적으로 모아왔던 자료가 꽤 된다. (웃음) 그 외에도 이화여대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지인에게 연락하거나, ‘언니네트워크’에서 직접 구하기도 했다.
구전으로만 들어왔던 ‘난동 사건’에 관한 비디오 자료도 들어가 있다. 고려대 남학생들이 이화여대 대동제에 매해 난입했던 사건을 기록으로 남긴 건데, 당시 이대 학생이던 짜투리의 활약이 대단하다. 개봉 버전에는 변영주 감독의 모습도 추가됐다.
강유가람_ 한두 시간 정도 되는 분량의 영상이다. 축제가 시작되는 낮부터, 남학생들이 술 마시고 난리 피우는 밤까지 집요하게 촬영했더라. 짜투리가 사람들 쫓아다니면서 인터뷰를 계속한다. ‘고대’를 외치면서 뛰어가는 남학생도 있고, 이대생들 인터뷰도 담겨있다. 처음에는 그 영상을 발견한 기쁨에 분량을 너무 많이 넣었다가 다시 덜어냈다. 앞부분에 변영주 감독님과 서동진 선생님이 사전 토론회 하는 장면이 있다. 변영주 감독님의 멘트가 핵심적이어서 개봉 버전에 추가했다.
카메라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장면이다. 한편, 카메라 앞에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용감한 일인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손경화_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들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는 다큐멘터리 하는 사람들에게 늘 무겁고 고민스러운 주제다. 그게 그 다큐멘터리의 핵심일 테고. 촬영 하다 보면 이 장면은 쓸 수 없겠다, 출연자가 원하지 않겠다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여기 출연한 분들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원하는 게 있으면 어서 얘기해, 내가 다 말해줄게! 내 삶은 지금 이렇게 큰데, 네가 묻는 건 요만큼이야.” 하는 느낌이었다. (웃음) 그만큼 당당하고 솔직하게 본인의 삶을 사는 분들이어서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강유가람_ <이태원>을 찍을 때는 전혀 모르던 분들의 삶을 담는 게 너무너무 조심스러웠고, 다음에는 친한 사람들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다른 맥락의 어려움이 있더라. 친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워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 기존의 관계를 망칠까 봐 고민도 많이 했다. 영화를 통해 새로운 국면이 열리고, 관계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남순아_ 출연자들이 가람 감독을 환대하고 신경 써주는 것이 많이 보였다. 이렇게 다들 서로 믿고 친구를 위해 본인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해줄 수 있는 모습을 보며 20대 아닌 삶, 나이 든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난동 사건 비디오 영상은 나도 이야기로만 듣다가 편집하면서 처음 봤다. 당시에는 카메라의 의미가 지금과는 또 달랐을 것 같다. 요즘엔 혐오 발언하는 사람들이 본인을 드러내는 걸 더욱 안 두려워하지 않나. 오히려 출연자들에게는 공격이 가닿을 수 있는데, 그런 차이를 고민해보게 되더라.
기록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볼 측면도 있다. 특히 여성의 이야기는 물어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지 않나. 질문을 던지면서 유독 새롭게 다가왔던 답변이 있나.
강유가람_ 오프닝에 쓴 것처럼, 영화계 내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게 당시의 큰 고민이었다. 그런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이 처음부터 단단했던 게 아니라 모두 흔들리고 갈등하면서 지금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물어보기 전에는 그 어려움을 잘 몰랐던 것 같다. 키라가 갑자기 성폭력상담소 일을 그만두고 수의학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그 선택이 쉽게 이해되진 않았다. 과연 이야기해줄까 싶었는데 솔직하게 대답해주더라.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다는 것도 말이다. 어라는 늘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지만, ‘살림’의 일이 이렇게까지 힘들다는 걸 전에는 잘 몰랐다. 짜투리는 영페미 세대를 새롭게 성찰하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나. 긍정적으로 돌아볼 줄 알았는데, 그때 우리는 후배를 키워내는 개념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니까, 오히려 기운이 나고 좋았다.
손경화_ 페미니즘이 계속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가람도 무게감을 느꼈을 거다. 그런데 인물들이 여러 가지 어려운 점, 힘든 에피소드를 얘기한 다음에 너무 해맑게 “그런데 난 좋았어, 행복했어.” 하고 말하지 않나. 그게 꽤 놀라웠다. 아마 그런 만족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활동을 하고 앞으로도 이어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또 오매가 자기 안에 억울함도 원망도 없어야 한다고 했던 것. 그게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지?
강유가람_ 그 생활을 어떻게 버티는가.
손경화_ 맞아, 그 멘트! 난 그게 너무 좋았다. 힘겹게 싸우고 최전선에 서는, 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가 있지 않나. 좀 퍽퍽할 것 같다든지 하는. 나도 만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깊은 얘기를 할 때는 엄청 촉촉한 대답이 나오더라. 내게는 그게 위로가 됐다. 본인 안에서 그것들이 해소되어야, 싸우면서도 삐뚤어지거나 왜곡되지 않고 자기를 정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거였다. 당시에 내가 대의에 지쳐있을 때라서 그 말이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남순아_ 나도 페미니즘을 운동으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는 늘 무거운 마음이 있었다. 분노와 억울함을 동력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런데 <우리는 매일매일> 만들 때는 화내기보다 웃는 일이 많았다. 어디 물을 곳도 많지 않았는데, 그냥 이야기 듣는 듯이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고민이 있었구나, 이 경험은 우리랑 비슷하고 저건 좀 달라진 것 같다’ 하면서 작업했다.
출연자들을 투사로 그리거나 그들의 선택을 정답으로 해석하지 않고, 삶의 여러 경로를 보여준다는 것이 영화의 중요한 지점이다.
강유가람_ 같은 문화예술계 종사자로서, 여성주의자로 먹고사는 일에 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흐른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했다. 흐른이 인터뷰하면서 그동안 생계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가감 없이 다 얘기해주지 않나. 공감도 됐고, 지금의 젊은 세대들도 궁금해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짜투리가 페미니스트로서의 고민 때문에 이주한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일과 생활의 양립을 위해 제주에 왔다고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치열하게 고민하면서도 융통성 있게 다양한 선택지를 고려할 수 있다는 점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가닿으면 좋겠다.
오래 달린 끝에 영화를 세상에 내보낸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만든 시간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강유가람_ 이런 영화를 만들겠다고 사방팔방에 정말 많이 얘기하고 다녔다. (웃음) 굉장히 집중해서 어떤 고민을 했던 시간이었고, 지금은 만족스럽게 숙제를 마친 느낌이다.
남순아_ 짱 재밌었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 최전선에 있지 않은 사람들도 각자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면, 세상에는 더 많은 페미니스트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외롭지 않다. 출연자들의 10년, 20년 후가 궁금하고, 또 나와 내 친구들의 40대가 궁금하다. 자료를 잘 모아놔야겠다. 누가 또 이런 다큐를 찍을 수도 있으니까. (웃음)
손경화_ 이들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선물 같다. 지난 시간이 어떻기보다는, 이 영화의 앞날이 더 기다려진다. 여성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 시작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눈물을 쏟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의 온기와 말하지 않아도 통했던 마음을 기억한다. 각자의 삶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사람들이 <우리는 매일매일>을 단독으로 만나는 순간이 무척 기대된다.
개봉 외에도 모두 창작자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나. 남순아 감독은 곧 부천국제영화제에서 공포 영화 <유산>을 공개한다.
남순아_ 갑자기 이런 질문을? (웃음) 원래 공포 장르에 관심이 있다. 무언가를 무서워하는 데에는 사회문화적인 맥락이 있지 않나. 우리가 무엇을 무서워하고, 왜 무서워하는지 고민해보는 게 늘 재밌었다.
강유가람_ 무작정 무섭기보다는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영화다. 죄의식이라든지 효녀가 돼야 한다는 마음 같은. 보고 나면 얘기를 많이 하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남순아_ 지금은 단편 다큐멘터리 후반 작업을 하고 있다. 작년에 부모님 이혼 15주년이었다. 엄마 이혼 기념 파티를 열어드렸는데, 그 내용이 담긴다.
강유가람_ 그때 촬영하러 갔는데 되게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벌써 후반 작업하나? 진짜 부지런하다니까.
강유가람 감독도 다음에는 극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 이제 준비 중인가.
강유가람_ 레즈비언 커플이 아파트에서 어떤 사건을 만나고 해결해나가는 내용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애초 생각했던 건 드라마에 가까웠는데, 미스터리 요소가 더 들어가게 됐다. 또 <애프터 미투>라는 옴니버스 프로젝트를 작업하고 있다. 미투 이후에 관한 다큐멘터리고, 여성 감독들이 시각을 모으고 연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순아 감독에게 제일 먼저 제안해서 함께 하고 있다.
손경화 감독은 장편소설 『계투』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손경화_ 다큐멘터리를 10년 하고, 2016년을 안식년으로 정해 쉬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는데, 매일 할 게 없으면 생각이 많아져 불안할 것 같더라.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써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인물도 섭외하고 대사도 만들면서 쓰다 보니까 너무 재밌더라. 퇴고도 없이 무작정 쓰다 보니 중편 분량을 넘겼다. 그런데 쓰고 나니 다큐멘터리 할 때랑 같은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다. 야구를 소재로 삼았지만 노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의자가 되는 법>의 주제와 비슷한 느낌이다.
강유가람_ 언제 출간하나.
손경화_ 7월 중에 나올 것 같다. 제목은 『불펜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또 지금은 권아람 감독님이 연출하시는 퀴어 공간 다큐멘터리 <홈그라운드>를 촬영하며 지내고 있다.
김유원이라는 필명을 쓴다. 뜻이 있나.
손경화_ 전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면 항상 흐르는 들판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래서 한자를 찾다 보니 이름은 유원이 됐다. 또 지금까지 아빠 성으로 살았으니, 이제 엄마 성으로 살아보자는 생각에 김 씨를 썼다.
영화는 강유가람 감독이 가사를 쓰고 흐른이 작곡한 노래 ‘우리는 매일매일’로 마무리된다. 후렴구 ‘우리는 매일매일 헤엄치네’를 바꿔 부르면서 마무리하자. 우리는 매일매일,
강유가람_ 질문한다.
손경화_ 나아간다. 조금씩이라도.
남순아_ 넘어지고 다시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