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말고 내일
인디그라운드 센터장 조영각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Feature / 2021-06-01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 인디그라운드가 온라인 상영관 특별 기획전 《안녕, 90's》를 열었다. 언젠가부터 추억을 더듬는 프로그램이 늘었고,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와 패션이 다시 유행하는 일도 잦아졌다. 하지만 과거를 들여다보는 행위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뒤따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1990년대 단편 영화에 주목하는 인디그라운드의 이번 기획은 “회고하는 게 아니라 현재로 소환해야 할 가치”에 중점을 둔다. 그때 그 시절을 낭만적으로 되돌아보기보다는 22편의 단편에 담긴 당대를 바라보는 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기획전의 취지를 자세히 듣기 위해 조영각 인디그라운드 센터장에게 만남을 청했다. 다양하게 꾸려진 상영작을 통해 그가 나누고 싶은 건 “단편 영화가 본래 가진 힘”이다. 이야기보다는 이미지에 몸을 맡기고, “여러 가지 상황이 널려 있다면 그중에서 하나의 압축적인 풍경을 끌어내는”(김성숙 감독) 단편 작업의 묘미는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 온라인 상영관에서 6월 1일부터 보름간 만나볼 수 있다. 인디포럼 프로그래머,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을 거쳐 지금은 독립영화의 유통배급 생태계를 가장 가까이에서 고민 중인 조영각 센터장과의 대화를 옮긴다.

 

 

인디그라운드가 개소하고 해를 넘겼다. 센터 일에는 익숙해졌나.

특정 영화를 배급하거나 영화제를 여는 식의 명확한 과제가 있는 게 아니라, 환경 전반을 개선하고 소통 구조와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을 하다 보니 금세 익숙해지긴 어렵겠더라. 현재는 코로나 19나 OTT 서비스 등 환경 변화에 영화계 전체가 역동하고 있고, 독립영화는 산업 바깥의 영역으로 밀려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기민하게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다.

 

유통배급지원센터의 필요성이나 현재의 부족한 점은 막상 일을 시작하면서 더 피부에 와 닿았을 것 같다.

인디그라운드는 창작자, 배급사, 극장 등 필드에 있는 분들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돕는 곳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기존 제도는 극장이나 영화에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선에서 끝난다.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는 거다. 나는 근거리에 있기에 비교적 그들의 상태를 잘 아는 줄 알았는데, 막상 살펴보니 생각보다 심각했다. 지원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이 생태계에서 어떻게 건강성을 유지하면서 일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그게 한국 영화문화의 수준을 결정하지 않겠나. 할 일이 많다는 걸 느낀다.

 

인터뷰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아무래도 개인으로서 이 자리에 오는 게 아니다 보니까 부담이 있었다. (웃음)

ⓒ이영진 

기획전 《안녕, 90's》의 취지는 무엇인가. 그간 진행한 온라인 상영전이 동시대 독립영화를 매핑하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재발견과 아카이빙의 성격이 엿보인다.

보통은 회고전 형태로 1990년대 작품을 돌아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기 단편영화는 상당한 동시대성을 갖고 있다. 단편영화의 원류, 말하자면 이미지로 승부하고 영상 중심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는, 여전히 젊은 영화들이다. 지금의 단편영화는 완성도는 뛰어나지만 드라마타이징화된 경향이 있고, 마치 짧은 장편영화처럼 만들어지는 느낌이 있지 않나. 심플하고 이미지에 중점을 두는 영화는 그보단 적은 것 같다. 이번 기획전을 통해 젊은 관객들이 그런 매력을 느껴보고, 걸출한 감독들의 어린 시절도 볼 수 있지 않을까. 1980년대나 2000년대 작품들까지 더 많이 틀고 싶은데, 일단은 1990년대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22편의 단편을 상영한다. 선정 기준이 있었나.

지난해 인디스페이스에서 비슷한 주제로 상영기획전을 준비하며 설문조사를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기억하는 단편영화 목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도 기억을 보탰고, 인디그라운드 유통배급팀에서 배급사들로부터 리스트를 받아 상영 가능한 영화를 추렸다. 음악 저작권 문제나 화질 문제, 연락이 닿지 않는 문제 등이 있어 최종 22편으로 결정했다. 

 

조영각 센터장은 대부분 현장에서 만난 영화들이다. 1990년대의 제작, 상영, 배급과 관련해 떠올리는 풍경은 어떤 것인가.

영화 만드는 게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지던 시대다. 10분짜리 단편에 몇 개월을 쏟아부었고, 지원 사업이 없어서 돈 구하는 것도 매우 어려웠다. 그러니 누군가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이 들리면 다 몰려가서 축하해주고 그랬지. 한 영화의 탄생과 상영을 함께 응원했고, 영화를 진중하게 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한편에는 그에 반하는 부류가 있었다. 니들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러냐는 식으로. 상영회 하면 감독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정지우 씨, 이 영화 찍는 데 얼마 들었습니까? 조명은 뭘 썼습니까?” 했다니까. 하지만 나는 그들이 단지 감독보다 영화를 더 존중했던 것이고, 영화 찍는 행위를 귀하게 여기긴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그런 쿨하고 진지한 태도를 배우고 싶었다. 한편,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이었지만 영화제 한두 번 돌면 그대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전설로만 남아있지, 도무지 직접 볼 수가 없는 거다. 그런 문제의식 때문에 문화학교 서울에서 감독들을 불러 영화를 틀고 작가와의 대화 같은 걸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인디포럼이다.

<동시에>
<81,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

상영작 중 당시의 기억이 많이 남아있는 영화들이 있을 것이다.

<동시에>(김성숙, 1998)는 98년 인디포럼 개막작이다. 급하게 완성해서 틀었는데, 개막식에 취재진이 많이 몰렸다. 영화제라는 게 익숙하지 않을 때라 관심이 더 컸지. 영화는 바로 다음 해에 칸영화제 단편경쟁 부문에 올랐다. <81,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김동원, 1999)에 관해서도 재밌는 기억이 있다. 그때는 예심을 필름으로 했으니까, 프로그래머들이 문화학교 서울에 모여 밤새도록 영사기 돌리면서 영화를 봤다. 영사기 누가 돌릴래, 그러면 내가 한 10편 돌리고 또 그다음 사람이 이어서 돌리고. (웃음) 그게 얼마나 힘들겠나. 어둡고 암울한 영화도 많아서 모두 지쳐있을 때, 마지막으로 <81,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를 봤다. 그걸 보고 다들 너무 좋아하면서 행복하게 집에 돌아갔지, 첫차를 타고.

 

필름 예심이라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새삼 놀랍다.

35mm의 날도 따로 정했다. 시사실이나 극장을 빌려야 했으니까. VHS로 예심을 진행할 때도 쌓아둔 비디오가 줄어드는 걸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아날로그의 재미랄까. 그때는 프린트가 상하면 안 되니까 늘 조심해서 다뤄야 했다. 그런 물성이 영화를 존중할 수밖에 없게 했던 것 같다.

 

제작된 지 30년 만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한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김소영, 1990)처럼 개인적인 접점이 없는 영화도 있다.

맞다. 이 영화는 이전에는 못 봤고, 이번에 우리 스태프들이 발굴해서 리스트에 올린 작품이다. 이번 상영을 준비하면서 작품들 복원까지는 기획을 못 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른 기관들과 협조해서 리마스터링 같은 것을 시도해 봐도 좋겠다.

ⓒ이영진 

리스트를 훑어보는 것 자체가 재밌다. <지하생활자>(김대현, 1993)나 <지리멸렬>(봉준호, 1994)처럼 계속해서 불려 나오는 영화가 있고, <동시에>나 <전염>(이승민, 1996)처럼 그간 확인할 기회가 없던 영화도 있다.

현재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이미 유명한 작품들보다는 덜 알려진 영화를 많이 틀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한 감독의 대표적인 출세작이 아니라 그보다 전에 만든 단편들을 찾아서 함께 보고 싶었는데, 그 정도로 기획의 시간이 길지 않았다. 난 사실 <지하생활자>보다는 <안개>(김대현, 1995)를, <오버 미>(임창재, 1996) 이전의 <오그>(임창재, 1994)를 상영하고 싶었다. 류승완 감독의 <변질헤드>(1996) 같은 영화도 있는데, 확보를 못 했다. 뭐, 감독들은 원치 않을 수도 있다. (웃음) 패기 있고 치기 어릴 시기에 만든 영화 아닌가. 그런데 그 모습이 궁금한 거지.

 

그런 의미에서 상영작 중 패기 넘치는 작품을 골라본다면.

<전염>, <장마>(조범구, 1996) 같은 영화들. 이 시기가 단국대학교 영화과가 생기고 첫 졸업 영화가 나올 즈음인데, 전통의 중앙대, 동국대, 한양대와는 다른 참신함이 있었다. <장마>는 아마 한국 최초의 원 나잇 스탠드 영화가 아닐까. 같이 술 마시던 선후배가 얼떨결에 자고 나서 창피해하며 쓸쓸하게 헤어지는, 그 뒤끝을 그린 영화다. <전염>은 밤에 촬영한 장면이 많은 상당히 스타일리쉬한 영화다. 당시 젊은 친구들이 서로 많이 추천해주고 상영도 여러 번 했다.

 

전반적인 제작은 대학과 창작집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건가.

대개 대학에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 않은 게 <지하생활자>나 <다우징>(김윤태, 1996) 같은 영화들. 김윤태 감독이 영화 만든다고 하면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던 게 기억난다. 정지우 감독의 <생강>(1996)은 영화제작소 청년의 야심작이었다.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는데, 감독뿐만 아니라 청년 멤버들이 다 같이 펑펑 울고 있더라.

<전염>
<장마>

포함하지 못해 아쉬운 영화도 알려 달라.

김진한 감독의 <햇빛 자르는 아이>(1997). 한국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또 지금은 돌아가신 조은령 감독의 <스케이트>(1998). 영화의 원초적인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임필성 감독의 <소년기>(1998)나, 류현경 씨가 아역 시절에 나온 손태웅 감독의 <필통 낙하 시험>(1997) 같은 영화들도 있다. 연락할 방법을 못 찾았거나 음악 문제 같은 것들 때문에 다 나중으로 미뤄뒀다.

 

이번 기획전을 통해 관객들이 어떤 것을 보았으면 하는지.

지금 유명한 감독이 과거에 만들었던 단편이라는 의미보다는, 2~30년 전의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하며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당시 청년들이 시대적인 공기를 호흡하면서 어떤 영화를 만들었는지, 또 그것이 지금과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며 보시면 재밌지 않을까. 영화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 치기 어린 철부지 같은 마음이 담겨있는 작품들이니, 많이 봐주시길.

 

아마 90년대의 다른 장면, 다른 이미지를 접할 기회가 될 것 같다.

90년대 하면 떠올리는 선입견이 있지 않나. 지금 90년대를 기억하는 방식에는 한쪽에 신세대와 오렌지족이, 다른 한쪽에 지존파와 성수대교가 있다. 그런데 미디어가 주로 다루지 않는, 주류의 정서에서 벗어나려는 청년들의 움직임이 분명히 존재했다. 상당히 진지한 예술적 시도부터, <포 더 피스 오브 올 맨 카인드>(이석훈, 1999)나 <지우개 따먹기>(민동현, 1999)처럼 어두운 분위기에서 벗어난 장르적인 작품까지, 그 청년문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이번에 만나볼 수 있을 거다.

<포 더 피스 오브 올 맨 카인드>
<지우개 따먹기>

2001년으로 건너가 보자. 그해에 발간된 계간 『독립영화』 8호는 ‘서기 2020년 4월 1일 독립영화판은’이라는 특집을 기획해 독립영화의 미래를 상상하는 7편의 글을 실었다. 당시 한국독립영화협회 조영각 사무국장은 「서기 2019년 나의 타임코드」를 썼고.

기억난다. <블레이드 러너> 때문에 시점을 2019년으로 잡았다. 거기 김동원 감독님이 평양 미디어 센터 소장이라는 내용도 있다. (웃음)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패기가 있었던 것 같다. 무서운 것도 없었고,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독립영화인들이 영화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을 것이고, 전반적인 상황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썼다. 통일은 안 됐지만, 실제로 독립영화 전용관도 생겼고 인디그라운드도 만들어지지 않았나. 다만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영화 보러 다니는 삶을 꿈꿨는데, 지금 너무 바쁘게 살고 있다. (웃음)

 

글에는 상업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공적인 배급이 여전히 화두라는 대목도 있다. 당시에 장기적으로 중점을 두었던 과제와 고민은 뭐였나.

그때 목표로 했던 건 전용관이었다. 그리고 전용관이 설립되기 위해서는 독립 장편영화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봤다. 90년대는 단편의 시대 아닌가. 2000년대 초반의 미션은 독립 장편영화가 가능해지는 것, 그래서 독립영화 전용관이 생기고, 독립영화가 배급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거였다. 당시에는 단편이 충무로로 가기 위한 발판처럼 여겨지는 때이기도 했는데, 그러지 말고 여기서 장편을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했던 거다. 2002년에 미디어 센터가 생겼고, 2007년에 인디스페이스가 생겼으니까, 결국은 열심히 싸워서 우리의 의제를 확립하고 미션을 이루어냈다. 성과가 눈에 보이는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MB정권 이후 블랙리스트가 실행되면서, 생태계 기반을 빼앗긴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온라인 영역에 관한 고민이 커지는 시기인 것 같다.

온라인 플랫폼이나 공공라이브러리 구축은 애초 영진위의 큰 그림 안에 박혀있던 핵심 사업이다. 좋은 영화들은 많은데 그걸 보여주는 방법이 요원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데, 이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영화를 한군데 집적시켜서 관객들이 볼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수익을 내야 하는 거니까. 다시 정리하면 독립예술영화에도 OTT가 가능하냐는 질문이 될 것 같다. 아마 6월에 열리는 포럼에서 발제하고 토론하게 될 거다. 물론 스트리밍 방식의 한계가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할 건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일의 가짓수가 참 많다. 최근에는 배급아카데미 1기 과정이 끝났는데, 구성이 매우 알차서 놀랐다.

보람 있는 일이었다. 감독, 배급사 대표, 교수, 영화제 직원 등 현직에 있는 분들을 포함해서 240명 정도가 응모를 했다. 그중에서 이제 막 필드에 진입하려는 분들을 중심으로 15명을 선발했다. 모두가 수료증을 받았고, 배급기획서 작성이라는 미션까지 잘 마쳤다. 후속 모임도 진행 중이다. 2차로는 홍보마케팅 분야에 대한 강의를 계획 중이다. 또 배급사 등 현업에 있는 분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창작자에게는 배급 프로세스를 이해시키는 중급 이상의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순조로운 첫발을 디딘 것 같다.

기대도 많을 테고, 아직 처음이라서 아쉬운 점도 있을 거다. 장기적인 환경을 만드는 건 인디그라운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장에 계신 창작자, 배급사, 또 새롭게 시작하는 커뮤니티 시네마 분들과 함께 사업을 구상하고 실현하는 과정을 통해 가능하지 않을까. 그동안 안 하고 못 했던 것들을 많이 상상하고 해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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