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덕션>은 투박하다. 홍상수의 앞선 영화들이 줄곧 시간적, 공간적, 존재적 모호함으로 관객을 곤경에 빠뜨렸다면, 촬영과 편집까지 직접 도맡은 그의 스물다섯 번째 장편은 너무 투명해서 곤란을 안긴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후, 「버라이어티」는 영화의 “복잡하지 않은 연대기”적 시간 구조를 짚었고, 「인디 와이어」는 “기본적으로 세 번의 포옹에 관한 이야기”로 <인트로덕션>을 요약했다. 여기엔 시공간을 나누고 비트는 형식적 실험도, 인물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의 변주도 없다. 그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포옹하는 장면들이 이어질 뿐이다. 흑백의 화면은 영화를 한층 더 간결하게 만든다. 몇몇 장면에서는 과다한 노출 탓에 배경이 하얗게 지워진 것처럼 느껴지고, 소품과 의상도 대개 희거나 검다. 조악한 화질로 인한 노이즈와 인물이 또렷하지 않은 포커스로 인해 낯설고 당황스러운 순간도 있다. <인트로덕션>은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하는 영화의 요소를 모두 덜어낸다.
영화는 3부로 구성돼 있다. 젊은 남자 영호(신석호)의 경로가 느슨하게 각 부를 연결하나, 간간이 제시되는 사연과 방문의 목적보다 강렬하게 눈길을 사로잡는 건 예고편에도 고스란히 쓰인 서로를 끌어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1부에서 영호는 한의사 아버지(김영호)를 보러 한의원에 들른다. 그는 아버지가 불러서 왔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왜인지 시간을 끌며 만남을 미룬다. 하릴없이 기다리던 영호는 건물 바깥 계단에 나와 담배를 피운다. 그러면 앞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간호사(예지원)가 따라 나와 그 곁에 선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던 영호는 돌연 간호사를 꼭 안는다. 그녀도 그를 안아준다. 갑자기 내리는 눈과 옛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둘의 순간은 따뜻하고 다정하다.

2부의 배경은 독일이다. 의상 공부를 하고 싶은 주원(박미소)은 엄마(서영화)와 함께 엄마의 지인인 화가(김민희)의 집을 찾는다. 오랜만에 만났다는 두 여자는 나직이 안부를 묻고 느긋하게 동행한다. 어리고 미숙한 주원은 둘 사이에서 종종 머뭇거린다. 그런 주원을 만나러 연인인 영호가 찾아온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보고 싶어서 왔다는 그는 길을 걷다 문득 멈춰 서서 연인을 안는다. “떨어져 있는 거 싫어”, “너랑 나랑 여기서 같이 공부하면 얼마나 좋을까.” 젊은 연인은 애틋하다. 당장 함께 지내기 위한 뾰족한 방도는 없지만, 둘은 지금의 사랑을 흘려보내기 싫다는 듯 서로를 감싸 안은 채 상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3부에 이르러 영호는 한국에 돌아와 있다. 여기서는 어머니(조윤희)가 영호를 부른다. 그녀는 평소 알고 지내는 배우(기주봉)와 바닷가의 한 식당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영호는 친구(하성국)와 함께 이곳에 도착한다. 1, 2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3부에서도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이 이어진다. 영호의 친구는 프레임 끄트머리에서 쭈뼛거리고 있고, 배우의 취기는 곧 흥분과 호통이 된다. 이윽고 영호와 그의 친구는 해변으로 나가는데, 이때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이 펼쳐진다. 홍상수의 인물이 때때로 바다를 바라보거나 해변의 가장자리를 걸었던 것과 달리, 영호는 파도치는 바다로 뛰어든다. 어떠한 비감도 없이 천진하게 차가운 파도에 몸을 담그고 나온 그를 친구가 와락 안아준다.

애틋하고 간절한 세 번의 접촉은 말과 시선을 압도하는 강력한 행위다. <인트로덕션>에서 인물들이 내뱉는 말에는 관계의 간극을 좁힐 능력이 없다. 말은 오히려 벽이 되거나, 인물들 사이에서 의미 없이 미끄러져 버린다. 베를린의 화가는 한국어의 존댓말이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며 편하게 지내자고 하지만, 존댓말로 대답하는 주원은 그녀 앞에서 좀처럼 긴장을 놓지 못한다. 영호의 부모와 모두 인연이 있는 배우는 언젠가 영호에게 했다는 중요한 말, 그의 진로를 결정하게 했다는 그 말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한다. 영화에선 “(당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표현이 재차 반복되는데, 끝내 그 내용은 드러나지 않고 아무도 그것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를 부르고 만나려는 인물들에게 결국 말은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말이 부서진 자리에 시선이 남는다. 그러나 그마저도 너무 연약하다. 한의원 진료실의 흰 커튼이 인물을 가리는 순간, 그 간단한 움직임은 인물의 존재감마저 삼켜버려 처음부터 그곳에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인트로덕션>엔 통상적인 시점 쇼트가 없지만, 해변의 두 청년이 호텔 발코니의 엄마를 발견하는 대목에서는 유일하게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순서대로 편집되어 있다. 이때 발코니 쇼트는 과격한 줌 때문에 깨지고 닳아 식별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있고, 이는 시선의 연결이 아니라 양자 사이의 아득한 거리만을 드러낸다. 3부에서 잠깐의 꿈처럼 등장하는 주원은 불현듯 눈의 질병을 고백하며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영화라는 매체가 말과 시선을 통해 관계를 매끄럽게 접붙이기 위해서는 갖가지 촬영과 편집 기법에 기대야만 한다. 그렇게 연결된 관계는 실은 그리 튼튼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화면의 중심에서 서로 부둥켜안는 행위는 얼마나 즉각적이고 직관적인가. 여기엔 덧없는 말도, 격식도, 기술도 필요하지 않다. <인트로덕션>은 그 간결하고 투명한 행위에서 다시 시작해보려는 다짐일지도 모르겠다.

인트로덕션 INTRODUCTION 감독 홍상수 출연 신석호, 박미소, 예지원, 김영호, 김민희, 서영화, 기주봉, 조윤희, 하성국 제작 영화제작전원사 배급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제작연도 2020년 상영시간 66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1년 5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