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
<혼자 사는 사람들> 공승연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1-05-12

공승연은 예쁘다. 입가에 담뿍한 미소와 밝은 갈색 눈동자는 ‘뷰티 아이콘’이라는 타이틀을 실감하게 한다. 동생이자 트와이스 멤버인 정연과 나란히 거론되며 ‘우월한 유전자’라 찬사받는 그는 데뷔 이래 줄곧 ‘드라마 스타’로 활약했고, <육룡이 나르샤> <풍문으로 들었소> <너도 인간이니?> 등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그런 공승연에게 따라붙는 화려한 수사를 모두 걷어낸 작품이다. 평범한 콜센터 직원인 진아는 ‘뷰티 아이콘’이어서는 안 되고, 웃지도 꾸미지도 않는 인물이니 ‘우월한 유전자’를 자랑할 기회도 없다. 홍성은 감독은 ‘드라마 스타’ 공승연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 반신반의했다고 털어놓았다. “저한테도 승연 씨한테도 첫 영화잖아요. 부끄럽지만 처음에는 괜한 편견도 가졌고, 주변에서도 ‘초짜’끼리 가능하겠냐고 우려하는 말이 많았어요.” 첫 미팅은 세 시간 가까이 걸렸다. 탐색전과 같은 그 자리에서 홍성은 감독은 확신을 얻었다. 안정적인 목소리와 여유로운 자세 덕분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떨렸다고 하던데, 그날은 전혀 눈치를 못 챘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는 사람이구나 싶었죠. 실제로 촬영하면서도 불안하게 만든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예쁜’ 공승연은 프로페셔널이다. 감독은 연기력만큼이나 훌륭한 태도를 갖춘 배우라고 설명했다. “제가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파트너였어요. 보조 출연하는 단역 배우들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며 현장에 안정감을 실어줬고요.” 공승연은 차근차근 의심을 지워나갔다. 스타이기 이전에 배우로서 충실하게 현장에 임했고, 익숙한 장식 없이도 보란 듯이 새로운 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공승연은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다. 잘한다는 칭찬에도 마음이 들뜨지 않는 이유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인정받고자 애쓰기 때문이다. 늘 목마른 공승연에게 영화는 갈증을 채울 또 다른 장이자, 주어진 세계를 확장하려는 적극적 시도다. 공승연은 <혼자 사는 사람들>로 얻은 수확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영화라는 매체에 존재를 알린 것,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 그리고 전보다 겁이 없어진 것. “처음부터 끝까지, 어쨌든 해냈잖아요. 앞으로는 나를 어떤 틀에 가두지 않고, 좀 더 과감하게 나아가고 싶어요.” 낯설고 매력적인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공승연은 어느 때보다 지금 눈부시게 빛난다.

 

 

개봉을 앞두고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첫 영화의 첫 관객을 만난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다들 자는 거 아니겠지?’ 하며 계속 객석을 살폈다. (웃음) 누가 뒤척일 때마다 돌아보게 되더라. 상영하기 전에는 전전긍긍했는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마음을 놓았다. GV에서 “진아랑 너무 잘 어울렸어요”라는 말을 들으니 ‘휴, 다행이다’ 싶더라.

 

영화제에서 배우상을 받았다. “감독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린다”고 소감을 밝혔는데, 또래 여성 연출자와 작업하는 경험은 어땠나.

드라마 <꽃파당>(JTBC, 2019)에서도 여성 감독님과 만나긴 했는데, 이렇게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감독님과의 작업은 처음이었다.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여태 참여했던 작품 중에서 감독님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작품이기도 하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 사무실에서 같이 밥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리딩하면서 의견을 주고받았다. 감독님이 부르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갔다. (웃음) 세세하게 신경 쓸 부분이 많다 보니 마음이 급해지더라.

 

시나리오 받고 얼마 만에 촬영했나.

한 달?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담배를 배웠던 시간을 떠올리니까 그쯤인 것 같다. (웃음)

 

배운 티가 나더라. (웃음) 

어색하지? 아, 영화를 보고 너무 아쉬웠다. 비흡연자는 몰라도, 흡연자가 보면 알아차리겠구나 싶어서. 손 모양도 살짝 어색한데, 그보다 내가 장초를 계속 버리지 않나. 직장 상사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빨리 빠져 나오고 싶어 한다는 설정이긴 하지만, 담배를 미리 좀 자르고 불을 붙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한 달 동안 준비할 일이 많았겠다. 주로 입었던 단벌 의상이 특히 눈에 띄던데.  

겉에 입은 야상 점퍼는 내 옷이고, 안에 입은 건 대부분 감독님 옷이다. 현장에서 감독님 옷을 바로 입은 적도 있다. “이거 괜찮은데?” 하면서 메이크업해주는 언니 옷을 벗겨서 입기도 했고. 일부러 색상 변화가 거의 없는 무채색 옷을 골랐다.

<혼자 사는 사람들>
<혼자 사는 사람들>

영화 속 진아는 혼자 있기를 자처한다.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거의 모든 장면에서 무표정한 얼굴이다. 웃지 않는 공승연이 낯설게 느껴지더라.

캐스팅을 제안받았을 때, 나도 의아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밝고 에너지 넘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으니까. <혼자 사는 사람들>에서는 결이 전혀 다른 인물을 맡다 보니 나 역시 궁금했다. 내 얼굴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 이 인물로 이해 받을 수 있을지. 나만큼 주변에서도 흥미로워 했고, 도전해보라며 용기를 줬다. 이번 작품을 통해 공승연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쁜 얼굴’을 활용할 만한 역할도 아니다. 

딱히 예뻐 보이는 게 싫지는 않다. 다만, 더 내츄럴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는 했다. 배우 공승연이라고 하면 다들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지 않나. 그런 모습과는 반대인, 또 다른 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최대한 진아처럼 보이기 위해서 많이 덜어내려고 노력했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진아의 일상은 퍽 건조하다. 그걸 계속 보게 만들기 위해서는 진아를 단조롭지 않게 표현해야 했는데.

어떻게 하면 진아의 심리 변화를 예민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거듭 고민했다. 시나리오에 쓰인 순서대로 촬영하는 게 아니다 보니, 장면마다 정확한 감정을 드러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일례로 아버지를 찾아가는 장면과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속내를 토로하는 장면을 모두 첫날 찍어야 했다. 감정을 충분히 쌓고 난 다음에 연기하는 상황이 아니라서 많이 걱정했다. 차라리 감정의 고저가 뚜렷하다면 괜찮을 텐데, 진아는 스스로 변화하는 지도 모르는 사이에 바뀌는 인물이니까. 섬세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일이 중요했다. 그와 동시에 시선과 움직임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진아는 자기 세계를 크게 벗어나는 인물이 아니지 않나. 자연스레 시야도 넓지 않고 행동 반경도 작다. 눈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는 캐릭터임을 상기하며 좁은 세상에 갇힌 느낌을 내려고 노력했다.

 

콜센터 베테랑 직원이자 ‘에이스’로서 목소리도 중요했다. 신뢰감을 주면서도 틈을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비즈니스용 목소리다.

상담원 목소리를 여러 번 들으며 따라 했다.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해본 둘째 동생에게 묻기도 했고. 근데 목소리보다 표정을 고치는 게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상담원처럼 목소리를 내려면 약간 웃어야 하거든. 감독님은 무표정을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입 꼬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더라. 아이패드로 영상을 찍어 가면서 연습했다.

 

영화에 도전한 계기가 궁금하다. 그간 드라마와 광고에서 주로 활동했고, 첫 영화는 단편 <별리섬>(배종, 2018)이다. 프로젝트 작품이지만, 기반이 확실한 감독에 변요한 배우가 함께했다. 당시 촬영으로 영화에 흥미를 느낀 건가.

영화는 오랫동안 꿈꿔온 매체였다. 그때도 촬영장에 들어가자마자 분위기에 반했다. 뭐랄까, 시간에 쫓기기보다 최대한 공을 들인다는 느낌? 배우들이 편안하게 연기하도록 도와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현장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열기가 좋고, 그곳의 일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 촬영장에 갈 때면 늘 긴장하지만, 막상 도착하면 기운이 솟는다. 출근길을 행복해하는 직원이다. (웃음)

ⓒ이영진 

공들여 연기하는 것만큼이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가 보다.

맞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촬영할 때 되게 신기했다. 점심시간에는 모든 스태프와 함께 밥을 먹고, 일 마치면 또 모여서 작품 이야기하고. 드라마 촬영장에서는 정말 감독님과 밥 먹을 시간도 없거든. 영화 찍으면서 친해진다고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

 

왜 영화를 꿈꿔왔나.

단순하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매체니까. 오디션도 여러 차례 봤지만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영화계에서는 나라는 배우를 잘 모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남동협 감독의 데뷔작 <핸섬 가이즈>(2021)와 단편 <애타게 찾던 그대>(이민섭, 2021) 역시 공개를 앞두고 있다. 대부분 신인 감독이 연출한 저예산 작품인데, 이만한 인지도와 경력을 쌓은 배우로서는 남다른 행보다.

일부러 그런 작품이나 연출자를 고집한 건 아니다. 배우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었고, 때마침 좋은 시나리오를 받았다. 돌이켜보면 ‘그래서 다들 열정이 넘치셨구나’ 싶기도 하다. (웃음) 신인 감독님의 에너지 덕분에 나도 열정적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

 

2012년 드라마 <아이러브 이태리>(tvN)로 데뷔한 후, <써클: 이어진 두 세계>(tvN, 2017) <너도 인간이니?>(KBS2, 2018) 등으로 주연을 맡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드라마에서 그랬듯 영화에 참여할 때도 한 계단씩 올라가겠다는 마음이었을까.

음, 계속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에 가깝다. 사실 아직까지는 나랑 잘 맞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능력이든 한계든 부딪혀야 알 수 있지 않나. 이것저것 경험해볼 생각이다. 연기라는 영역에서 뭔가를 해내는 내 모습이 궁금하다.

 

그런 욕심은 어디에서 나오나.

솔직하게 말하면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다들 그러지 않을까. 의미 있게 살고 싶다고 생각할 무렵, 연기를 만났다. 여전히 길을 찾는 중이기에 이 일을 통해 뭔가 이루겠다는 열망이 생긴 것 같다.

ⓒ이영진 

“의미 있게 살고 싶다”는 건 무슨 뜻인가.

배우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유의미한 삶을 살 수 있겠지. 다만, 이미 시작한 이상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고 싶다. 정확히 어떤 지점에 도달해야 스스로 ‘이뤘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런 상태이기에 계속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그와 같은 목표를 세웠나.

시작할 때는 아니었다. “넌 안 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거든. 당시엔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이었다. (웃음) 무엇보다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었다. 처음에는 응원해주셨지만 오디션에서 거듭 낙방하다 보니 많이 걱정하셨다. 그냥 이쯤에서 관두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고. 가족들의 우려와 불안을 없애주고 싶어서 애쓰는 시기였다.

 

이제 인정받고 싶은 대상이 달라진 거다.

그렇지. 엄마, 아빠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는 것을 넘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나를 배우로서 바라봐주기를 원한다.

 

‘SM 7년 연습생’으로 유명하지 않나. 그 자체가 ‘노력파’라는 증거처럼 보인다. 연습생을 관둔 후에는 연기를 배우기 위해 학교에 들어갔고.

당시엔 연습생으로 살아온 시간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그동안 학교 생활을 충실히 하지 못했으니 일단 학교에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대학에 가면 저절로 배우가 되는 줄 알았다. 졸업하는 순간, 곧바로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크게 착각했지. (웃음) 미친 듯이 입시에 매달렸는데, 입학하고 보니 그게 시작이더라. 여기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에 충격 받기도 했다.

 

“다른 삶, 다른 모습”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과 다른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원동력 아닌가 싶다.

바라든 바라지 않든 늘 다르니까. 난 이것만 보고 달려왔는데, 막상 목표 지점에 다다르면 눈앞에 또 다른 게 펼쳐져 있다. 연기도, 삶도 그런 과정의 연속인 것 같다.

ⓒ이영진 

작품을 통해 다른 인물이 되는 것도 즐기는 편인가.

압박과 재미를 동시에 느낀다. 아예 다른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연기하다 보면 캐릭터에 내 모습이 조금씩은 들어가거든. 새 작품을 만날 때마다 내게 있는 것을 중간중간 꺼내서 쓰는데, 사실 꺼내기도 어렵거니와 그렇게 한 인물을 창조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근데 촬영 들어가면 언제 고민했냐는 듯이 모든 걱정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다 다음 작품을 만나면 또 다른 시련이 닥치고. (웃음)

 

새로움을 향한 욕구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나. 

사실 그동안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선택했다. 조금이나마 자신 있는 것. 물론 처음에는 ‘뭐라도 좋으니 기회를 주세요’라는 마음이었고. (웃음) 근데 요즘 들어서 기준이 좀 바뀌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나 <드라마 스테이지 2021-대리인간>(tvN) 등 최근작의 경우, 오랫동안 욕심내지 못한 종류의 작품이었다. 그런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해서 지레 겁을 먹었거든. 근데 두려움을 접어두고 시작해보니, 결과적으로 잘 해냈더라. (웃음) 용기를 얻었다. 앞으로는 더 과감하게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능력이든 한계든 부딪혀야 알 수 있”으니까. 

<혼자 사는 사람들>도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못할 것만 같았다. 이렇게 섬세한 연기를 해본 적도 없고, 연기하며 진아와 비슷한 표정을 지어본 적도 없었다. 나랑 어울릴지, 관객들에게 어색함 없이 다가갈 수 있을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연기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거나 자칫 잘못하다가는 작품을 망치겠다는 생각에 걱정했는데, 정말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더라.

 

드라마는 시청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하지만, 영화는 관객을 만나기까지 시차가 생기지 않나. 드라마 촬영에 익숙한 입장에서 불안하지는 않았나.

당연히 불안했다. 심지어 어떻게 연기했는지 가물가물할 즈음에 개봉하고 관객을 만나니까. 근데 영화를 보니 하나둘씩 생각이 나더라. ‘지금 하면 더 잘할 수 있는데!’ 싶어서 아쉽기도 하고. (웃음) 촬영장에서는 감독님을 전적으로 믿었다. 어찌 보면 대중으로부터 즉각적인 평가가 돌아오지 않는 환경이기에 스트레스가 덜했던 것 같기도 하다. 드라마를 찍을 때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거든. 기사나 댓글에서 내 연기를 평가하는 말을 발견하면 계속 떠오르고. 반면, 영화에서는 감독님과 약속한 바를 지켜내는 게 우선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옳다고 믿고, 그대로 가면 되니까.

 

감독의 역할이 중요했다.

안 그래도 주변에서 “승연이는 감독님을 타는 배우인 것 같아”라고 하더라. 소속사 식구들도 <혼자 사는 사람들>을 보고 많이 기뻐하며 칭찬해줬다. 좋은 감독님을 만난 덕분에 멋진 작품을 만들어낸 것 같다고. 감독님은 대화가 잘 통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똑똑한 사람이라서 좋았다.

ⓒ이영진 

감독이 마음을 샀구나. 어떤 면에서 똑똑한가.

말도 잘하고, 디렉팅도 정확한 분이다. 음, 감독님을 지켜볼수록 되게 잘하고 싶어졌다. 나도 장편 주연은 처음이었고, 감독님도 장편 연출은 처음이지 않았나. 힘을 합해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끈끈함을 공유했던 것 같다. 감독님이 좋은 평가를 얻었으면 했고, ‘그러니까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 잘해야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연기 스펙트럼이 꽤 넓다. <써클: 이어진 두 세계>에서는 1인 3역에 도전했고 <꽃파당>에서는 천민과 중전 후보를 오가는 캐릭터를 맡았다.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지만, 그간 연기나 작품보다는 ‘미모’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쯤 되면 억울하지 않을까 싶더라.

솔직히 옛날에는 예쁘다는 말이 참 좋았다. 지금도 물론 감사한 칭찬이지만, 요즘에는 연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좀 더 보여주고 싶다. 아니, 내가 그렇게 연기하고 싶다. 내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은 없나. 사람들이 규정하는 이미지 중에 오해를 풀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연습생 7년 했다는 거! 다들 노래와 춤을 잘할 거라고 기대하는데, 왜 7년 동안 연습하다가 그만두었겠나. 아, 정말 지우고 싶다. (웃음) 나무위키에 뮤지컬을 했다고 올라가 있는데, 그것도 잘못된 정보다.

 

목소리가 워낙 좋으니까. 라디오 방송에는 관심 없나. 

안 그래도 DJ에 도전해보고 싶다. 일전에 ‘대타’로 해본 적이 있는데 재밌더라.

 

‘연예인 집안’이라는 말도 늘 따라붙는 수식 중 하나다.

트와이스가 갓 데뷔했을 무렵에는 정연이를 ‘공승연의 동생’이라고 불렀는데, 요즘에는 나를 ‘트와이스 정연의 언니’로 부르는 경우가 늘어났다. 함께 있는데 정연이를 먼저 알아본 다음에야 나를 인지할 때는 ‘오잉?’ 했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우면서도 속으로 ‘이러면 언니로서 면이 안 서는데’ 싶었지. (웃음)

ⓒ이영진 

여러 인터뷰에서 다작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더라. 그 마음, 변함없는지. 

그대로다. 드라마 촬영하는 기간에도 시간이 나면 단편영화라도 계속 찍고 싶다. 대신 옛날에는 뭐든지 하겠다고 급하게 생각했다면, 지금은 무게감이 좀 더 생겼다. 다작하되 잘해야지. 그건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기도 하고, 내 필모그래피에 대한 책임감이기도 하다. 경력이란 건 점점 쌓아나갈 수는 있어도 지울 수는 없지 않나. 나한테 부끄럽지 않은 필모그래피를 만들고 싶다.

 

데뷔한지 10년이다. 배우 생활에서 분기점이 됐다고 꼽는 작품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분기점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사실 10년 차 배우로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에 걸맞은 배우인지 확신하기 어렵고,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지금의 나’를 놓고 봤을 때는 부끄럽기도 하다.

 

어떤 마음일까. 자신을 배우라고 말하는 게 쑥스럽나.

아직은 그렇다. 나한테 떳떳할 때, 내가 나를 인정할 때 편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비행기를 탈 때도 입출국신고서 직업란에 배우라고 못 쓴다. 괜히 민망해서 학생이라고 쓰는데, 더 나이를 먹으면 그것도 못할 거 같다. 그때는 아마 프리랜서라고 쓰지 않을까. (웃음)

 

어떻게 하면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겠나. 요즘 배우로서 고민하는 바와 연결될 것 같다.

사실 말하다 보니 ‘내가 나한테 참 박하구나’ 싶기도 하다. 그동안 나름 최선을 다해서 연기했거든. 아마 그게 최선이었을 거다. 그러니 나를 조금 더 안아주면 좋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항상 자신감이 없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클수록 내 연기를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도 컸다. 근데 그 마음이 나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한테도 도움이 안 되더라. 이제는 자부심을 갖고 달려볼 생각이다.

 

동료를 위해서라도 자부심을 갖겠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한 작품의 주연 배우라고 하면, 단순히 촬영 분량이 많다는 걸 떠나서 작품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지지 않나. 내가 흔들리거나 아프면 촬영 자체를 진행할 수 없고. 당연히 신경 쓸 부분이 늘어나고, 촬영이 가까워질수록 부담도 커진다. <혼자 사는 사람들> 찍을 때는 어찌나 긴장했는지 화장실에 못 갔다. 신기하게 딱 촬영하는 날에만 그러더라. (웃음) 그런 긴장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면 일단 나를 믿어야 한다.

ⓒ이영진 

자신감이 없다는 건 기준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인지 내 눈에 비친 나는 참 보잘것없고 초라하다. 당장은 코앞에 닥친 일에 허덕이는 상태이지만,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좀 더 좋은 영향력을 가진 배우, 좀 더 마음을 넓게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품을 보면서도 잘한 점보다는 아쉬운 점이 더 많이 들어오겠다.

맞다, 한 번도 화면 속 나를 보면서 ‘와, 저때는 진짜 잘했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칭찬해줘도 잘 들리지 않는다. 왜 그렇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아니, 왜 잘하지 못할까?

 

‘연기력 논란’에 시달린 적도 없지 않나.

무슨 소리! (웃음) 드라마 <꽃파당>에 출연할 때도 방영 초기에는 지적을 받았다. 나 역시 아쉬움이 컸는데, 그래도 고민하고 노력할수록 나아지더라. 그때 많이 배웠다. 사실 처음에는 ‘이미 안 좋게 바라보는 분들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있을까?’ 싶었다. 근데 내가 점차 개똥이라는 인물에 가까워지자 시청자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주더라. 결국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약한 사람은 절대 아니구나 싶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서 만족스럽게 연기한 장면을 말해준다면.

아, 너무 괴로운데. (웃음)

 

억지로라도 떠올려보자. (웃음)

수진 역의 정다은 배우랑 통화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중요한 장면인데 촬영 초반에 소화해야 해서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감독님과 음향 감독님이 배려해주신 덕분에, 실제로 전화를 하며 연기했다. 다은 배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감정과 상황에 집중할 수 있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
<혼자 사는 사람들>

스스로 강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매 순간 생각보다는 강하다고 느낀다. 지금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조만간 이보다 더 힘든 일이 닥친다는 걸 알거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스트레스가 심하면 그냥 잔다. 푹 자고 일어나면 마음도 한결 누그러지더라. 나름 건강하고 또 강한 사람인 것 같다.

 

여전히 서예 좋아하나. 심신 건강에 도움을 주는 새로운 취미가 있다면.

다들 뜨개질을 하기에 따라 해봤는데, 내가 정말 손재주가 없더라. 똑같은 부분을 몇 번이나 돌려봐도 모르겠어서 결국 포기했다. (웃음) 최근에 골프채를 선물 받아서 한번 배워볼까 고민하는 중이다. 친구들과는 줌으로 만난다. 화상 연결해서 우리끼리 맥주 파티를 연다. 수다도 떨고, 한 명이 음악을 틀면 다들 리듬 타고. 그렇게 스트레스 푼다.

 

진아가 떠오른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모든 등장인물은 혼자이지만, 결국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공승연은 어떤가. 가족, 친구, 동료에게 어떤 존재이고 싶나.

자주 만나지 못해도 계속 옆에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든든하고 단단한 존재가 되고 싶다.

 

영화 커리어를 이제 막 시작했다. 앞으로 만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모든 장르가 궁금하다. 공포영화를 못 보지만 출연은 꼭 해보고 싶고, 액션에도 관심이 많다. 기회가 된다면 진짜 해보고 싶은 건 멜로다. 아주, 아주 깊은 사랑 이야기.

 

목숨을 바치는 사랑?

맞다, <타이타닉>(제임스 카메론, 1997)을 정말 여러 번 봤다. <노트북>(닉 카사베츠, 2004)도 좋아하고. 내가 좀 구식인가? (웃음) 그런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하나뿐인 사랑을 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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