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파트너, 뉴 프렌즈
<아이들은 즐겁다> 이지원·손진용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1-05-07

나란히 앉아서 어색하게 딴 곳만 바라보는 두 사람을 보며 아차 싶었다. 대화가 쉽게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며시 눈치를 봤더니, 이지원 감독이 “이래 보여도 우리 되게 친해요”라며 웃었다. 이지원과 손진용은 스무 살에 처음 만났다. 영화학과 신입생이던 두 사람은 각자 연출과 촬영으로 길을 찾아 나갔고, 2016년에 단편 <여름밤>을 함께 만들었다. 이지원 감독이 장편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손진용 촬영감독은 <폭력의 씨앗>(임태규, 2017) <초행>(김대환, 2017) <파도치는 땅>(임태규, 2018) <두번할까요>(박용집, 2019) 등에 참여하며 현장 경험을 차곡차곡 쌓았다. 어느 날 이지원 감독은 “기본적인 성향은 물론이고, 서로에 관해 꽤 많은 걸 아는” 친구에게 새 영화를 같이 만들자고 했다. <여름밤>을 제안했을 때와 비슷했다. 시나리오는 초고 상태, 갈 길은 멀었다. 하지만 손진용 촬영감독은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이지원이 “결국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내고야 마는 연출자”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동고동락하며 <아이들은 즐겁다>를 완성했다. 어린이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일은 처음이었고, 잦아들 기미가 없는 코로나19도 위협이었다. 매끄럽기만 한 여정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만들고 난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언제나 즐겁고, 영화도 여전히 즐겁다. 두 친구의 즐거운 대화를 옮긴다.

 

 

둘은 어떤 관계인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파악할 만큼은 친한가.

이지원_ 2004년에 처음 만났으니 오래된 인연이다.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선후배 사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 친구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나는 대학원에 갔다. 친하게 지내면서도 함께 작업했던 적은 없는데, 대신 촬영 아르바이트를 오랫동안 같이 했다. 손 감독이 촬영하면, 나는 운전하고 짐 옮기는 걸 돕는 식이었다. ‘언젠가 연출과 촬영으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여름밤>을 제안하면서 처음 호흡을 맞췄다. 사실 <여름밤>은 <아이들은 즐겁다>만큼이나 역사가 길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촬영하기까지 2-3년 정도 걸렸는데, 초고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손 감독에게 부탁했다. 날 믿고 오래 기다려줬다. <아이들은 즐겁다>도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전에 일단 같이하자는 말부터 꺼냈다. 처음 예상했던 시기보다 촬영이 늦어졌는데, 어떻게 보면 그동안 손 감독은 이 영화에 매여 있던 거나 마찬가지다.

손진용_ 매였다기보다… 우린 그냥 파트너다. 서로 발목 잡는 사이는 아니다. (웃음)

 

첫 장편영화를 준비하며 부담이 컸을 거다. 손진용 촬영감독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는 판단이었나.

이지원_ 그렇지,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손진용 촬영감독은 마음을 잘 주지 않는다. 아무리 친해도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고, 여러 면에서 철저한 태도를 유지한다. 근데 한번 마음을 주면 말 그대로 전부 내준다. <여름밤>을 촬영하면서 감탄했고, <아이들은 즐겁다>에서도 그 열정과 책임감에 큰 힘을 얻었다. 사실 같은 현장에 있어도 감독을 제외하면 ‘이 작품은 내 작품이야’라고 여기는 사람을 만나긴 쉽지 않다. 근데 손진용 촬영감독은 자기 작품으로 받아들인 순간부터 시간, 에너지, 모든 걸 쏟아붓는다. 촬영 실력도 좋지만, 무엇보다 일하는 모습에 진심이 묻어나는 작업자다. 연출자로서는 엄청난 아군을 얻은 기분이다.

 

손진용 촬영감독은 왜 제안을 받아들였나. 좀 더 노하우가 쌓인 연출자와 작업하고 싶은 시기였을 수도 있는데.

손진용_ <여름밤>을 함께한 경험이 <아이들은 즐겁다>를 선택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줬다. 이지원 감독이 얼마나 집요한 연출자인지 알거든. 어느 날 시나리오를 건네줘서 읽고 몇 마디 했더니, 시간이 지난 후에 다른 시나리오로 발전시켜서 들고 오더라. 몇 차례 그걸 반복하고 난 다음에야 <여름밤>을 찍었다. 끝까지 파고드는, 결국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내고 마는 연출자구나 싶었다. 촬영하고 편집할 때도 조급해하지 않고 충분히 시간을 들였다. 완성도를 고민하며 추가 촬영까지 진행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동료로서 신뢰가 쌓였다. ‘늘 최선을 다하는구나’라는 믿음이 있고, <아이들은 즐겁다>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불안하지 않았다. 촬영을 기다리는 기간에도 계속 각본을 다듬더라. 보통 “시나리오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나머지는 콘티 짤 때 정하자”고 하는데, 이지원 감독은 대사 하나하나에 신경 쓰며 꼼꼼하게 수정했다.

<아이들은 즐겁다>
<아이들은 즐겁다>

욕심이 아주 많은 감독이라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손진용_ 근데 우악스러운 느낌은 아니다. 피드백도 잘 듣거든. 주변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자기 할 일을 끈기 있게 해나가는 사람이다. <아이들은 즐겁다> 또한 시나리오 초고부터 지켜봤고, 서로 의견을 계속 주고받았다. 결과적으로 그게 나한테도 도움이 됐다. 시나리오를 어떻게 수정했고 왜 현재 버전으로 완성했는지 아니까. 말하자면 시나리오의 전사를 파악한 상태이다 보니, 콘티 작업할 때나 현장에서나 확실히 소통하기가 편하더라.

 

시나리오 초고 단계부터 결합했다니. 영화적 조언을 구하고 의지하는 상대라는 뜻인데.

이지원_ 친구인 동시에 소중한 동료다. 어떤 순간에는 미워 보이기도 했다. 야속하다 싶을 만큼 냉정하게 이야기하거든. 하지만 일순 감정이 상한다고 해서 손진용 촬영감독의 시선과 판단까지 불신하는 건 아니다. 이번에도 덕분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손진용 촬영감독이 시나리오를 보며 지적했던 건 무엇인가.

손진용_ <아이들은 즐겁다>는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는 영화가 아니라, 원작에서 출발하는 영화에 가깝다. 감독에게도 그런 기준을 갖고 이야기했다. 영화에 맞지 않는 장면이나 대사가 보여서 물어보면, 원작에 나오는 거라고 답하더라. 원작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일종의 팬서비스 같은 장면을 삽입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영화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다.

이지원_ 내 안에서도 충돌이 일어났다. 내가 좋아하는 원작 장면과 대사가 있는데, 막상 시나리오 안으로 가져오면 어울리지 않는 거다.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울 때, 손 감독에게 의견을 구했다.

손진용_ 원작은 상관없이 시나리오만 놓고 얘기하자고 말했다. 물론 나도 집에 가서 다시 원작을 들춰 보기는 했지만. (웃음)

이지원_ 봤나? 난 진짜 안 봤다.

손진용_ 감독이 “이거 원작에 있는 거야”라고 하면 확인해보긴 했지. (웃음)

 

각본 완성까지는 얼마나 걸렸나.

이지원_ 글을 빨리 쓰는 편이 아니다. 2018년 8월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고, 투자가 결정된 시점이 2019년 8월이다. 마무리한 시간까지 더하면 1년 3-4개월 정도 걸렸다.

 

제작사인 영화사 울림과는 어떻게 만났나. 연출을 제안받은 건가.

이지원_ <여름밤>을 통해 현재 제작사 대표님과 연이 닿았다.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며 <아이들은 즐겁다>를 제안해주셨다. 원작을 못 본 상태여서 일단 웹툰을 봤는데 너무 좋더라. 당시 다른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었는데도 <아이들은 즐겁다>를 먼저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사실 별 고민 없이 무심코 결정했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웃음)

이지원 ⓒ이영진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투자 단계에서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들었나.

이지원_ 우여곡절이 많았다. 본래 훨씬 작은 규모로 만들 계획이었다. 주인공이 어린이인 데다가 상업영화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 흐름도 아니니까. 제작지원으로 예산을 확보해서 독립영화를 찍을 생각이었는데, 제작사는 투자 가능성도 열어두자고 하더라. 투자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었지만, 영화의 방향만큼은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근데 생각보다 큰 투자사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상업적인 포인트를 살리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몇 달 동안 줄다리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음고생이 심했겠다.

이지원_ 막바지에 한 달 동안 연락을 끊었다. 일방적으로 끊었다기보다는 나도 제작사도 서로 연락하지 않는 기간이었지. (웃음) 그때 시나리오를 고치면서 ‘이래도 똑같은 말이 나오면 그만두자’고 결심했는데, 다행히 수정한 시나리오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때부터는 촬영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작업에서 분수령이 되는 시점이었다.

 

전작 <푸른 사막>(2011) <여름밤>(2016)은 스토리텔링 능력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허5파6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아이들은 즐겁다>는 의외의 행보처럼 느껴진다.

이지원_ 이 작품을 하면서 원작 기반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연결할 수 있는 원작이 있다면 앞으로도 도전하고 싶다. 사실 아이들의 이야기여서 끌렸던 건 아니다. 내가 아이들에 관해 잘 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오히려 그 안에서 드러나는 어른들의 모습에 눈길이 갔다. 어른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마음에 오래 담아둔 질문 중 하나다. <여름밤>도 그와 같은 화두에서 출발했고, <아이들은 즐겁다>를 제안받았을 때 따로 쓰고 있었다는 시나리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이어지는 지점이 있다 보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손진용 촬영감독은 원작 웹툰을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

손진용_ 단숨에 읽을 정도로 재밌는 작품이었는데, 영화로 만들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다. 원작은 명확한 스토리를 전개하는 대신, 소소한 일화를 통해 감성을 쌓아가지 않나. 어쨌거나 영화에는 기승전결이 필요하고 2시간 내외라는 시간제한도 있다 보니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이지원 감독이 초점을 잘 맞췄다. 아이와 엄마라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아이가 엄마를 만나러 가는 여정을 영화에 담았다. 돌이켜보면 전작과의 연관성도 느껴진다. <푸른사막> <자리>(이지원, 2012) 등 주로 불안을 말하는 영화들이 많았거든. <아이들은 즐겁다>는 기본적으로 다이(이경훈)의 성장 드라마이지만, 그 안에는 다이가 엄마(이상희)의 죽음에 갖는 불안도 드러난다. 감독의 개성을 지키는 동시에, 원작도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잘했다. (웃음)

이지원_ 사실 원작 웹툰을 좋아하고 아끼는 팬들에 대한 부담이 크다. 판권을 사는 과정도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허5파6 작가님을 설득하기 위해 장문의 편지를 썼다. 작가님과 작품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얼마 전 시사회에서도 계속 작가님이 오셨는지 확인했다. 개봉하면 보시겠다고 하더라. 혹여 배신감을 느끼시는 건 아닐까, 하며 긴장하고 있다.

<아이들은 즐겁다>
<아이들은 즐겁다>

어른이라는 존재나 불안이 화두인 이유는?

이지원_ 글쎄, 불안은 늘 동반하는 감정이다. 근원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환경이 확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영화 취향도 그때를 기점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스스로 좋은 어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지만, 몹시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내 주변에는 좋은 어른이 별로 없었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다.

 

사실 허5파6 작가와 먼저 인연을 맺은 건 손진용 촬영감독이다. <여중생A>(이경섭, 2018)를 촬영했던 경험이 이번 작품에 도움을 준 부분이 있다면.

손진용_ 결국 영화는 감독 성향에 따라 달라지다 보니 뚜렷한 연결성을 짚어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비슷한 그림체로 두 작품을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 건 있었다. <아이들은 즐겁다>와 비교했을 때, <여중생A>에는 영화화하기 좋은 소재가 좀 더 많았다. 원작에서 유명한 장면을 재현하면서 부감 샷 같은 특정 구도를 가져온 적도 있다.

 

원작에 기반을 두되 너무 얽매이지 않으려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원작 내용을 유지하는 부분도 있지만, 삭제하거나 추가한 내용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지원_ 다이를 중심으로 커다란 줄기는 가져가되, 에피소드에는 구애받지 말자고 생각했다. 완전히 새롭게 설정한 부분도 많고, 사실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온 에피소드는 거의 없다. 상황은 달라도 원작이 전달하는 감정의 결은 비슷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다이가 냄새난다고 지적 받는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웹툰에서는 다이가 친구인 민호에게 “나한테서 냄새나?”라고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다이를 대신해서 싸워주는 친구들을 보여주며 마무리한다. 일화는 동일하지만, 마무리는 사뭇 다르다.

이지원_ 매체 차이에서 비롯하는 결과 같다. 웹툰은 영화보다 설명해주는 내용이 확실히 많다. 영화라면 굳이 거기까지 말하지 않아도 될 법한 것들이지만, 웹툰에서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그게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시나리오로 가져오는 순간, 지나치게 설명적이라는 느낌이 들더라.

손진용_ 정보뿐만 아니라, 감성을 전달하는 면에서도 선택이 필요했다. 웹툰에는 정서적인 울림을 주는 작은 상황이 많은데, 영화는 정해진 시간에 인물과 관계의 성장을 담아야 했다. 세세한 정서를 모두 가져갈지, 아니면 주제에 초점을 맞춰서 굵직한 상황에 집중할지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아이들은 즐겁다>
<아이들은 즐겁다>

촬영감독 입장에서는 시나리오를 보며 매력적인 점과 어려운 점이 동시에 눈에 들어왔을 듯하다.

손진용_ 어린이 배우가 많다 보니 촬영 환경에 신경을 많이 썼다. 최대한 주의 깊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감독과도 그 부분에 관해선 일찌감치 합의한 상태였다. 어린이 배우가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일부러 대사를 지정해주지 않았다. 대사를 외우지 않는다는 건 동선 또한 열어둔다는 뜻이었다. 그에 맞는 촬영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어렵다면 어렵고, 재밌다면 재밌었다. 성인 배우가 대본 없이 연기하는 것과는 또 다르거든. 내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저 대사를 외우지 않는다고 해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낼 수 있는 건 아니었을 텐데.

손진용_ 이지원 감독이 촬영 전에 아이들과 만나서 오랫동안 즉흥 연기를 연습했다. 사실 아역 배우가 잠깐 나오는 영화라면, 해당 대사를 외워서 딱 하고 가면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즐겁다>는 어린이 배우들이 전체를 이끌어가는 작품이지 않나. 결국 테이크를 가다 보면 익숙해지더라도 영화 곳곳에서 조금이나마 나이브한 느낌을 주길 바랐다.

이지원_ 어린이 배우들이 연기하기에 편안한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동시에 어떤 순간에는 촬영에서 새로운 걸 시도해보고 싶기도 했다.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도에 의해 우리가 지향하는 ‘자연스러움’이 방해를 받는 순간도 있었거든. 계획한 바를 모두 이루지는 못했지만, 현장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손진용 촬영감독과의 작업이 즐거운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영화에 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작품에 가장 밀접한 사람으로서 어떤 태도로 현장을 운용할 것인지에 관해 정말 많이 의견을 나눴거든. <여름밤>부터 이어져 온 대화였고, 그게 감독으로서나 인간적으로나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실제 현장은 어땠나. 사전에 합의한 원칙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실시간으로 맞닥뜨리는 어려움에 대처하는 것이 중요했으리라 짐작한다.

손진용_ 시간이 몇 배로 걸리는 현장이었다. 대사 없이 상황을 이해시켜야 하니까. 스태프들은 시나리오를 숨기느라 고생하기도 했다. (웃음) 실제 촬영하면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지점은 아이들이 반복 연기를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앵글을 바꿔서 찍을 때 똑같이 연기해주는 게 아니다 보니, 어떻게 찍고 연결하느냐가 문제였다. 계속 롱테이크로만 갈 수는 없는 영화인데 어쩌지 싶더라. 그렇다고 카메라를 여러 대 놓으면 사운드나 조명 등 감수해야 할 부분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동시에 한두 테이크로만 찍기도 어려웠다. 우리가 원하는 자연스러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처음 촬영한 버전이지만, 어린이 배우들이 카메라를 본다든지 상대 배우의 본명을 부른다든지 하는 실수도 그때 가장 많았다. 결국 구간별로 나눠서 찍고 붙이기를 거듭했다. 처음에는 약간 손해를 본다는 느낌도 있었다. 반복적으로 연기를 해주면, 촬영에서 뭔가 시도해볼 여지가 있을 텐데 그게 어려운 상황이니까. 하지만 촬영보다 좋은 연기와 편안한 환경이 먼저라는 감독의 말에 동의하기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작업 방식에 적응한 다음부터는 시간도 효과적으로 쓸 수 있었다.

이지원_ 보통 촬영장에서는 마스터 샷을 찍고 나서 타이트하게 찍지 않나. 우리 영화에서는 감정이 중요한 신을 찍을 때, 배우들의 집중력을 고려해서 타이트한 샷을 먼저 찍었다. 그 후에 마스터 샷을 찍으면서 일일이 맞춰야 하니 꽤 힘든 과정이었다. 사전에 촬영이 어떻게 진행될 거라고 안내하기는 했지만, 다들 이런 현장은 처음이다 보니 적응하기까지 혼란스러웠을 거다.

ⓒ이영진 

학교 촬영은 어땠나. 인원도 인원인지라 어려웠겠더라.

이지원_ 가장 정신없는 촬영이었다. 일단 장소 섭외부터 너무 힘들었다. 크랭크인이 작년 4월 29일이었으니 딱 작년 이맘때인데,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촬영을 거절하더라.

손진용_ 아이들도 등교를 안 할 때였다. 학생들도 못 오는데 무슨 촬영이냐는 식이었다.

이지원_ 결국 학교 내부와 운동장을 다른 곳에서 찍어야 했고, 일정을 조정하기가 어려워서 6회차 정도를 휴차 없이 진행했다.

 

학교나 병원 등 어려운 공간이 꽤 많았다.

이지원_ 그러게, 어렵지 않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너무 어려운 공간이 돼버렸다.

손진용_ 원래 아이들이 기차 여행을 간다는 설정이었는데, KTX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 버스로 변경했다. 버스는 그냥 대절하면 되니까.

이지원_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버스가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도 든다. 기차 플랫폼이라는 공간이 생각보다 영화에, 특히 어린이가 나오는 장면에 자주 등장하거든. 당시엔 아쉬웠는데, 완성하고 나서는 오히려 잘됐구나 싶더라.

 

촬영 전에 <우리집>(2019) <우리들>(2016)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을 찾아가서 조언을 구했다고.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나.

이지원_ 다짜고짜 아토 제정주 프로듀서를 찾아갔다.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던 와중에, 제정주 프로듀서가 차라리 윤가은 감독을 한번 만나보라고 하더라. 연출 경험부터 촬영장에서 조심해야 할 부분 등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나로서는 ‘연기 커뮤니케이터’라는 역할에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윤가은 감독님은 꼭 연기를 놓고 말한 건 아니었다. “만약 아이들이 출연하는 영화를 또 찍게 된다면, 그때는 아이들만 전담하는 직책을 마련하고 싶다”고 하더라. 아무리 감독이나 연출부가 신경 써서 챙긴다고 해도, 현장이 바쁘게 돌아가다 보면 아이들이 방치되는 순간이 어쩔 수 없이 생긴다는 의미였다. 굉장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거기서 ‘연기 커뮤니케이터’라는 역할을 떠올렸다.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이나연, 2018) 등에 출연한 신지이 배우가 연기 커뮤니케이터로 참여했다.

이지원_ 배우 오디션을 진행할 때부터 함께했다. 상황극을 진행하다 보니 연기를 받아줄 배우가 필요해서 부탁했는데, 아이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나더라. 단순히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넘어, 연기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신지이 배우 역시 연기하는 사람이다 보니 배우들이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쉽게 받아들이는지 잘 알기도 했고. 신지이 배우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당시에는 이렇게 고된 일인 줄 모르고 수락했을 텐데. (웃음)

손진용_ 신지이 배우가 없었다면 아마 감독이 훨씬 늙었을 거다.

이지원_ 나도 늙고 영화도 늙었겠지.

<아이들은 즐겁다>
<아이들은 즐겁다>

일등 공신이다. 연기 커뮤니케이터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 

이지원_ 아이들이 전부 모이면 다섯 명인데, 사실상 그들을 모아 놓고 혼자 설명한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신지이 배우와 나눠서 했기에 그나마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난감했을 때, 신지이 배우가 중간에서 배우들과 소통하며 해결해준 지점도 많았다. 촬영이 총 32회차였는데 본래 신지이 배우와는 16회차만 계약했다. 그러다가 5회차쯤 되었을 때, 신지이 배우한테 따로 비용을 지불할 테니 제발 전 회차에 나와달라고 사정했다. (웃음) 결국 1회차만 제외하고 31회차 동안 전부 나와주었다.

손진용_ 감독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했을 거다. 나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야지 싶다가도 급할 때는 나도 모르게 카메라 블로킹이 어떻고 하면서 어른의 언어가 튀어나오더라. 현장에서 신지이 배우가 그걸 아이들의 언어로 바꿔서 이야기해주는 식이었다. 왜 ‘연기 커뮤니케이터’라고 하는지 알겠더라.

이지원_ 워낙 생소한 역할이다 보니 초반에는 오해도 있었다. 현장 스태프 입장에서는 ‘연기 지도는 감독 고유 권한인데?’ 싶었나 보더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 알았던 것 같다. 신지이 배우가 없으면 현장이 안 돌아가는구나.

손진용_ 길게 갈 것도 없이 2-3회차 만에 다들 알았을 거다. (웃음)

 

어린이 배우들이 현장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연기했다는 게 느껴진다. 카메라 위치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섬세하게 조정했다. <아이들은 즐겁다>가 공개되고 나면, 자연스레 윤가은 감독의 작품과 비교되는 일이 많을 듯하다.

이지원_ 당연히 신경 쓰인다. 윤가은 감독은 물론이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까지. (웃음) 어린이가 나오는 영화를 찍는다면 어쩔 수 없이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시선에는 신경을 안 쓰려고 했다. 그분들처럼 잘해보고 싶다고, 그분들이 현장에서 아이들을 대했던 태도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굳이 ‘다른 영화를 만들어야만 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원작부터 기존 감독과 영화 등 신경 쓸 게 참 많았다.

이지원_ 어떻게 만들어도 비교되리라는 사실은 분명해서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잘해도 못해도 비교한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자 싶더라.

손진용_ 아이들을 위한 촬영 환경을 고민하고, 그걸 이어 나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이지원 감독이 윤가은 감독을 찾아가서 물어본 것처럼, 다음에 어린이 영화를 만드는 누군가가 이지원 감독을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먼저 찍은 선배에게 의견을 묻고, 선배는 후배에게 본인 경험을 들려주고, 거기서 각자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내는 과정 자체가 유의미하다고 본다.

손진용 ⓒ이영진 

연기 커뮤니케이터가 있는 현장이었지만, 감독과 촬영감독에게도 배우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중요했다. 이번 작품은 배우가 어린이라는 점에서 숙고해야 할 지점이 명확했는데, 각자 어떤 방법을 시도해봤나.

이지원_ 아는 척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만든다 해도 실제로 내가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나. 난 이미 다 커버렸고 그와 동일한 사람도 아닌데.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고 생각했고, 시나리오 쓸 때도 그 부분을 경계했다. ‘아이니까 이렇게 반응하지 않을까?’라고 접근하는 순간, 많은 걸 놓치겠더라. 현장에서도 아이들이기 때문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온전한 한 명의 배우로 대하려고 노력했다. 대화할 때는 항상 눈높이를 맞췄다. 동등한 위치에서 말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무릎은 아팠지만 그나마 꾸준히 챙길 수 있는 건 그런 자세이지 않을까 했다. (웃음)

손진용_ 비슷하다. 촬영 당시 아이들이 10살, 11살 정도였으니 충분히 대화가 통하는 나이였다. 배려해야 하는 부분과는 별개로, 함께 영화를 만드는 구성원이자 배우로서 접근하려고 했다. 아이들도 눈치를 채거든.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지, 아니면 존중하려고 노력하는지. 기술적인 면에서는 아이들을 관찰하며 때마다 적합한 방식을 찾아 나갔다. 예컨대 화면에 잘 나오게 해주려고 반사판을 갖다 댔더니 아이들은 눈을 부셔하더라. 그럼 반사판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바닥에 테이프 마킹도 사용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그걸 보면서 신경 쓰는 순간 연기가 어색해졌거든. 그 외에 움직이는 장면에서는 핸드헬드를 많이 사용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촬영하면서 방법을 찾아낸 경우가 많다.

 

손진용 촬영감독은 <초행>처럼 매우 자율적인 상황에서 촬영한 적도 있다. 즉흥성과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과 철저한 계획을 기반으로 진행하는 작업 중 어느 쪽이 더 맞는다고 생각하나.

손진용_ <초행>은 완전히 라이브로 찍었다. 음, 내가 좀 더 어렵다고 느끼는 건 후자다. 물론 양쪽 모두 어떤 경지에 도달하기까지는 정말 쉽지 않다.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지 않나. 즉흥적으로 찍으면서 아름다움과 진정성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날씨를 포함해서 주변 상황을 전혀 통제하지 않는 가운데,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와야 하니까. 한편,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해서 촬영하는 방식도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머릿속으로 그려 놓은 대로 현장에서 찍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촬영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볼 때 ‘진짜 애썼구나, 엄청나게 오래 걸렸겠구나’ 하며 존경심이 생긴다. 재미는 좀 덜할 수도 있겠지만, 훨씬 더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감탄한 영화 중에는 뭐가 있나.

손진용_ 로저 디킨스 감독을 좋아한다. 최근 샘 멘더스 감독과 작업한 <1917>(2019)부터 드니 빌뇌브 감독과 찍은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코엔 형제의 <헤일, 시저!>(2016) 등을 보며 한 겹씩 쌓아가는 촬영 방식에 놀랐다. 글쎄, 모르겠다. 로저 디킨스 같은 감독도 아이들 다섯 명이 나오는 영화를 찍으면 “야, 이건 핸드헬드로 찍어야겠다” 할 수도. (웃음)

이지원_ 궁금하긴 하다. 로저 디킨스라면 어떻게 찍을지. 근데 그마저도 잘할 것 같다.

손진용_ 내공이 있으니까.

 

두 사람이 공들인 장면은?

이지원_ 마지막에 다이가 엄마랑 얘기하는 장면. 시나리오 단계부터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고, 연기하기도 까다로웠다. 촬영이 가까워질수록 미쳐버릴 것 같더라. 이경훈 배우는 물론 훌륭한 배우이지만, 어쨌든 아이이다 보니 집중력이 들쑥날쑥했다. 어느 날에는 말도 안 되게 잘하는가 하면, 갑자기 왜 이럴까 싶은 날도 있고. (웃음) 심지어 그때는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대본 없이 상황을 설명하다 보니 가급적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었거든. 사실 31회차를 버텨준 것만으로도 너무나 대단한 일이지. ‘과연 이게 가능할까?’ 하면서 속을 끓였는데, 다행히 공 들인 만큼 잘 완성한 장면이라 기억에 남는다.

손진용_ 다이 아빠로 나오는 윤경호 배우가 화물차를 몰고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 공들였다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다. 성인 배우들만 나오는 회차가 딱 하루였는데, 그때 되게 신선했다. 영화에서도 다이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잖아. 아빠가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얼굴인지. 계속 아이들 시점으로 가다가 그날 어른들을 따로 들여다보는 느낌이 좋더라. 이지원 감독의 단편에서 두드러졌던 정서가 갑자기 거기에 딱 놓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이가 엄마를 찾아가는 길에 노란색 꽃을 심는 장면도 좋아한다. 사실 그때도 헌팅 때문에 일이 많았다.

이지원_ 기적 같은 순간이 두 번 있는데 그중 하나였다. 애초 나는 영화에 담은 것처럼 야생에 다양한 종류의 꽃이 핀 곳을 상상했다. 그러다가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노란색 꽃이 만발한 땅을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스펙터클에 압도돼서 거기로 해야겠다고 결정했지. 근데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 확인하러 갔더니 예전의 웅장함이 사라진 거다. 햇빛에 꽃이 타버려서 시든 걸 보고 급하게 다른 공간을 찾았다. 당시에는 아찔했지만, 지나고 보니 천만다행이다. 스펙터클에 홀려서 진짜 거기서 찍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더라.

손진용_ 나도 새로 찾은 장소가 마음에 들었다. 그때 촬영하면서 감정적으로 동요했다. 감독님이 경훈 배우한테 적당한 곳을 찾아서 꽃을 심어보라고 했더니, 경훈 배우가 손으로 흙을 파낸 다음 돌을 골라내더라. 와, 이상하리만치 뭉클했다. 엄마의 무덤 같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꽃이 상할까 봐 풀샷을 먼저 찍었는데, 감독도 편집 과정에서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넣었더라.

 

기적 같다고 느낀 나머지 순간은 언제였나.

이지원_ 시나리오에서는 엔딩이 지금과 달랐다. 다이가 교문 앞에서 신발 끈을 묶으며 친구들과 서서히 멀어지는, 조금은 전형적인 장면을 구상했고 실제로 촬영하기도 했다. 근데 편집하다 보니 ‘이게 아닌데’ 싶더라. 학교 헌팅이 여의치 않다 보니 장소가 세 번 정도 바뀌었거든. 아무래도 상상했던 그림과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촬영 당시에도 현재 엔딩으로 들어간 장면을 찍을 때 되게 만족했다. 그 장면이야말로 라이브였다. 경훈 배우한테 “드디어 너의 진짜 성격을 발휘할 때가 왔다”라며 맘껏 뛰라고 했지. 숨을 헐떡이면서 달리는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서 좋았다. 그 모습을 보니 여기서 끝나는 게 맞겠구나 싶더라. 활짝 웃는 얼굴이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좀 찡해지기도 하고.

<여름밤>
<여름밤>

엔딩을 포함해서 영화 곳곳에 흐르는 음악도 인상적이다. 이진아 음악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이지원_ 대중음악 가수는 아예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어느 날 투자사 관계자가 “이진아 씨랑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요?” 하더라. 알고 보니 그분이 진아 씨의 엄청난 팬이었다. (웃음) 생각할수록 괜찮은 조합 같아서 아버지한테 연락을 드렸다. 진아 씨 아버님이랑 우리 아버지가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웃음) 아버지께 “넌지시 얘기만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진아 씨도 영화음악을 해보고 싶었다면서 흔쾌히 수락했다. 작업하는 내내 정말 행복했다. 살면서 만난 사람 중 가장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후반 작업하며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진아 씨와 만나며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다.

 

빚을 여러 곳에 졌다.

이지원_ 그러니까. 앞으로 잘 살아야 한다. (웃음) 초반에는 으레 영화음악이라고 하면 떠올릴 법한, 악기를 최소화한 잔잔하고 단순한 멜로디 위주의 레퍼런스 곡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음악감독의 색깔을 가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서로 헤매는 시기였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 잊자고 했다. 그냥 음악감독님이 느낀 대로 만들어달라고. 욕심과 애정을 갖고 작업해주신 덕분에 멋진 음악이 나왔다. 스스로 세션까지 꾸려서 연주해줬다.

 

둘의 차기작을 들으며 마무리하자. <아이들은 즐겁다> 전에 쓰던 시나리오는 완성했나.

이지원_ 트리트먼트까지는 썼는데, 영화를 만들지는 않을 생각이다. 지금 와서 보니 별로 흥미롭지 않더라.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아예 다른 작품을 준비하는 중이다.

손진용_ 정확한 작업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는데, 인디스토리에서 제작하는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영진 
 
Interview
이것이 전부란 말인가
<숨> 윤재호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5-03-17
Interview
사랑하는 당신
<두 사람> 반박지은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2025-02-11
Interview
정서의 확장
<은빛살구> 나애진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5-01-16
Interview
바람 불면, 하늘 보고
<힘을 낼 시간> 현우석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5-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