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그곳에 있었다
<당신의 사월> 주현숙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1-04-01

빡빡한 개봉 준비에 피로회복제까지 챙겨 먹었단다. 하지만, 비상약 삼키고 생기가 솟은 건 아닐 것이다. "원래 호기심이 많다”는 주현숙 감독은 둘이서 주고받는 대화도 순식간에 풍성히 만든다. 약속한 시간을 훌쩍 넘겨 계속된 인터뷰에서도 그는 지친 기색 한번 내보이지 않고 영화를 말했고, 사람을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를 살아가는 다섯 인물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도 이 넘치는 활력과 뛰어난 집중력 덕분일 것이다.

<당신의 사월>의 주인공들은 일반적 의미에서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다가 TV로, 인근 해역에서, 지인의 연락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듣고 경과를 지켜본 ‘목격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당사자와 목격자라는 흔한 구분이야말로 영화가 정면으로 부정하는 편견이다. “나는 아픈데, 당신은 어때요?” 카메라가 집요하게 담아내는 이 조용한 물음은 ‘그들만의 아픔’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돌려세울 만큼 힘이 세다.

<계속된다-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2004), <가난뱅이의 역습>(2012), <빨간 벽돌>(2017) 등에서 꾸준히 노동과 일상을 기록했던 주현숙 감독은 세월호 참사 3주기인 2017년에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프로젝트에 작가로 참여했고, 이듬해엔 옴니버스 프로젝트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2018)로 묶인 단편 <이름에게>를 내놓았다. <당신의 사월>은 단편의 아이디어를 확장한 작품. 잊히지 않고, 잊을 수 없는 8번째 봄날에 주현숙 감독을 만났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영화가 공개됐다. 개봉이 늦어진 건 어떤 이유에선가. 

바로 개봉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19에 선거까지 겹치면서 어렵게 됐다. 그 과정에서 세월호는 하나도 이슈가 안 됐고, 나 또한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 힘들더라. 이대로 시간에 쓸려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영화를 만들고 나면 그걸 해석하기까지 감독에게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데, 지난 1년간 건강한 거리 두기가 됐다. 이건 사건이 만들어낸 마음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 그 마음을 좀 더 다양하게 들여다보고 성찰할 수 있었다.

 

그간 영화제에서 쭉 상영했다. 공동체 상영도 계속해왔고.

유가족분들이 영화를 많이 보셨고, 올 초에는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에서) 진실버스 간담회를 하면서 공동체 상영도 같이 진행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님은 지금도 홍보한다고 나보다 더 바쁘시다. (웃음) 유가족분들은 주기가 돌아오면 마음도 아프지만 몸이 많이 아프다고 하더라. 그래도 영화 덕분에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고 말씀하신다. 시민들의 생각을 듣고 위안이 됐다고도 하시고. 아이를 잃고 경황이 없어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 했는데, 이 영화가 그 말을 대신해주는 것 같다고 하신 유가족 어머니도 계셨다. 영화를 보시고 더 아픈 게 아니라 위로받으시는 것 같아서, 보여드리는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네덜란드나 대만에서도 상영했다고 들었다.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영화는 아닌데, 해외반응은 어땠나.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중국 감독을 만났는데, BBC에서 세월호 뉴스를 보고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고 하더라. 듣고 깜짝 놀랐다. 생각해보면, 해외에서도 그날의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목격자가 될 수 있는 거잖나. 그럼 생명에 대한 보편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거고. 게다가 각국에 사회적 참사가 좀 많은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작지원 피칭을 했을 때, 참가자들의 국적이 다양하다 보니 “여러분 나라의 사회적 참사를 생각해 달라”는 멘트를 준비했다. 그런데 일본에서 온 사회자가 먼저 그 얘기를 하더라. 대만과 홍콩에서의 상영 경험도 비슷하다. 서로의 상황을 알리고 응원하는 자리가 됐다. 요즘은 어딘가에서 사회적 참사가 벌어지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시대다. 그래서 트라우마도 증폭되고 당사자의 범위도 넓어지는데, 피해자를 한정적으로 특정하는 관행이 남아있어서 자기 이야기를 못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슬픔의 위계가 만들어지는 거다. 결국, 그 과정의 끝은 혐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신의 사월>
<당신의 사월>

논쟁적인 반응은 없었나.

<당신의 사월>은 판을 까는 영화지 논쟁하려는 영화는 아니다. 모두를 당사자로 만들고자 하는 정치적인 영화지만, 그렇다고 진영적이지는 않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본인의 경험을 떠올렸으면 했다. 감정을 증폭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음악도 섬세하게 썼다. 몸으로 오는 감각, 마음속에 있는 트라우마를 저음이나 앰비언스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이민휘 음악감독이 정말 잘 해줬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다들 자기 얘기를 한다. 관객과의 대화를 해도 질문이 별로 없다. 모두 본인 경험을 들려주니까. 이 영화가 ‘당사자 되기’의 시작이길 바란다.

 

<이름에게>를 장편으로 확장했다. 어디에 초점을 뒀는지.

신기하게도 주인공들이 다 어디에 매몰되거나 묶이지 않은 분들이라, 그분들이 일상을 살아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많은 것이 담기게 됐다. (<이름에게>에 등장하는 7명 중 4명이 <당신의 사월>에 출연한다) 장편 작업을 하게 됐다고 박철우 님께 연락했더니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부터 하시더라. 5주기 때니까, 가게 앞에서 매주 태극기 집회가 열리던 시기였다. 그전까지는 태극기 집회에 대해 잘 몰랐다가 막상 가서 봤더니, 우리가 이런 시기를 살고 있다는 아찔함이 확 밀려왔다. <이름에게>가 촛불집회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는 시기를 보여줬다면, <당신의 사월>은 그 이후의 시간이 담기면서 현재성을 띠게 됐다.

 

촬영은 처음부터 다시 했나.

인터뷰를 다시 했지만, 이전 분량 중 일부를 보이스오버로 넣는 등 내용을 배합하는 과정이 있었다. 기존에 촬영한 이미지들도 가져다 썼고. 단편 작업 때부터 워낙 콘셉트가 명확했고 촬영에 공을 들였기에 가능했다. 어버이날에 유가족분들이 도로를 걷는 장면처럼,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푸티지와 새로 촬영한 영상을 조합해 일상성을 구현하려고 한 부분들도 있다. 그날의 기억으로 훅 들어갈 수도 있지만, 일상 안에 내재하는 트라우마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려고 일부러 새벽에 나가 텅 빈 거리를 찍었다. 그렇게 계속 톤을 조절하는 게 관건이었고, 촬영도 거기 맞춰서 진행했다.

ⓒ이영진

주요하게 참고한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는 성폭력과 가정폭력 사례를 다루며 트라우마의 사회적인 측면을 보려는 시도로 쓰인 책이다. 작업에는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된 건가.

저자의 인식과 연구가 여성주의 역사 안에서 길어 올려졌다고 쓰여 있지 않나. 일단 믿을만하다. (웃음) 나한테는 공동체와 나, 둘 다 중요하다. 내가 궁금한 것이 사회와 연결되길 바라고, 호기심을 채워가며 만나는 진실을 세상과 나누고 싶다. 사실 세월호 참사 초기에는 아예 눈길도 주지 못했다. 뉴스조차 볼 수가 없더라. 가슴 속에 덩어리가 있어서 자꾸 아픈데 그게 뭔지도 잘 모르겠고. 그러다 3주기 때 미디어위원회에 도움을 주고 나니까,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매고 다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물어보기 시작한 거다. 2014년 4월 16일에 뭘 했는지 다들 예민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이게 우리 모두의 기억이라는 생각에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책을 추천받았다. 읽으면서 끊임없이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는 점이 좋았다. 소재 때문에 영화를 보기까지 진입장벽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트라우마 연구라는 일종의 틀거리가 되어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사적 문제를 공적 언어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주현숙 감독의 작업과 주디스 허먼의 연구가 맞물리는 것 같다.

맞다.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니까. 이 작업 전에 동네에서 다큐멘터리 상영을 한 적이 있다. 여러 편을 묶어서 틀었고 그중에 세월호 다큐도 있었다. 평소엔 안 나오던 분이 그날은 아이 셋을 데리고 오셨다. 그러면서 본인은 사회에 관심도 없고 애 보기에도 바쁜데, 세월호 얘기만 들으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고 하시더라. “저도 그래요. 그게 아마 트라우마인 것 같아요.” 하고 말씀드렸다.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감정인데, 붙일 이름이 없었던 거다. 이름을 붙이고 서로 연결하면서 의미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고 생각한다.

 

도입부부터 명시적으로 트라우마에 대해 말하며 시작한다. 그간 미디어에서 온갖 이미지를 접한 게 사실인데, <당신의 사월>은 트라우마를 재현하지 않으면서 트라우마를 다루는 작업으로 느껴진다.

트라우마를 또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이쯤 되면 성찰하고 싶지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지는 않았다. 세월호 선체를 어떻게 보여줄지가 중요했다. 그 자체가 참사의 현장이니 보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감정들이 떠오르는데, 그걸 굳이 또 부각해야 하나? 처음부터 침몰하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히려 일상의 균열을 보여주는 게 목표였다. 영화에 세월호 선체가 들어오는 부분은 전부 긴 고민의 과정을 거쳤고, 톤이 맞는 지점을 계속 찾았다. 아주 멀리서 세월호가 인양되는 장면에선 현장성을 최대한 배제하려 했다. 땅으로 올라왔을 땐, 일상의 운동이자 노동이라는 맥락 안에서 선체를 청소하는 동작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대목에서 비로소 전체를 비춘다. 누워있는 고래 위에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느낌이었다. 눈은 따뜻하고 차가운 양면성이 있잖나. 복잡한 감정을 줄 수 있을 것 같더라. 미디어위원회 팀에 있던 분이 진도항에서 그 장면을 찍었다. 당시에는 현장에서 진상규명에 필요한 것들을 촬영할 때라 평소 같으면 찍지 않았을 컷인데, 영화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촬영해줬다. 준비된 사람만 만날 수 있는 푸티지가 있는 법이다.

<당신의 사월>
<당신의 사월>

푸티지를 고르고 톤을 조절하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조연출인 이하경 씨가 고생했다. 8테라 분량의 영상을 계속 봐야 했으니까. 힘들어지면 언제든지 멈추라고 말했고, 호흡이 달라진다 싶으면 바로 끊고 같이 산책하러 나가곤 했다. 무리하지 않고 일상을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 또 힘든 일이다. 포기하지 않고 오래 살면 이긴다. (웃음) 윤여정 배우가 70세에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고 상을 휩쓰는 걸 보면서 다시 한번 절감했다. 그래 맞아, 저거야! (웃음) 영화 보러 오신 분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면, 오신 것만으로도 이미 승리하신 거라고 말한다. 노란 리본이 아픔이 아니라 안부의 상징이 되면 좋겠다. 서로 확인하면서 우리 살아있네, 내 편이 또 있네, 하는 거지.

 

일상을 잘 다독이는 비결은?

몇 년 동안 안 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일주일에 세 번 꾸준히 요가를 한다. 출근해서 퇴근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책 읽고, 요리하고, 청소하는 데 집중한다. 그래도 쌓이는 것들이 있는데, 그럴 땐 음악을 듣는다. 아이유의 ‘이름에게’와 BTS의 ‘봄날’을 진짜 많이 들었다. ‘봄날’의 톤이 정말 좋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면서 담담하게 시작하지 않나. 그래, 보고 싶다고 말할 수는 있는데, 울면서 슬픔에 빠지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는 거다.

 

출연자들은 나이도, 직업도, 거주지역도 다른데, 다들 섬세하게 들려줄 본인의 이야기가 있는 분들이다. 어떻게 섭외했나.

일단 자료조사를 열심히 했다. 3주기 때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미 현장 자료가 많은 상황이었다. 그걸 보면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거다. 이분이 어떤 걸 느꼈기에 그런 선택을 하셨을까? 이런 일이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전화를 한다. 목소리를 딱 들으면 느껴지는 게 있다. 자기 억압이 없구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러면 만나게 된다.

 

섭외 과정에서 염두에 둔 기준은 무엇인가.

고통이라는 게 사람마다 고유해서 지문의 수만큼 종류가 다양하다고 하더라. 세월호 참사에서 느끼는 고통도 그렇다. 그 당시에도 물론 힘들었지만, 이후에 사회가 유족들, 피해자들, 생존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더 참혹하고 경멸스러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양한 폭이 있는 거다. 영화를 보며 누구든 연결점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랐다. 인터뷰이는 평범한 사람이면서, 참사 이후의 분기점을 짚을 수 있는 이들로 찾고 싶었다. 사건을 중심에 두고 물리적, 심리적으로 가까운 순으로 배치해나갔다. 가장 가까이 있었던 어민분, 그다음은 선생님, 당시에 학생이었던 사람, 촛불집회를 가까이서 본 카페 사장님, 그리고 거리를 두고 봐줄 수 있는 인권활동가. 특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세월호 희생자를 대표하는 게 학생인데, 학생들은 주 양육자 이외에 선생님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나. 당시엔 교사들끼리 모여서 힘들다는 얘기도 많이 했다고 하더라. 선생님 중에도 희생자가 있으니, 그게 자기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을 테고, 본인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도 여러 번 생각했을 거다. 섭외할 때 다들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보다 더 열심히 한 분이 많아요.”, “제가 한 게 없는데요.” 우리 안에도 슬픔의 위계가 있었던 거다. 분명히 충격을 받았는데, 표현을 못 했던 거고.

<당신의 사월>
<당신의 사월>

다양한 위치와 복잡한 감정을 너르게 보여주는 게 중요했을 텐데. 

우리가 그동안 잘 살았다며 전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길 바랐다. 그건 위험한 거다. 출연자들이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좋았다. 어떤 걸 느꼈는지 얘기해주길 원했으니까. 다 싫어서 외면하고 살았다고 이야기해줄 사람도 필요했고, 그게 20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또래를 계속 찾지 못했다. 사실 그 나이에 솔직하기가 어렵잖나. 마침 조연출의 동생인 유경 학생이 솔직한 마음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세월호 때문에 정보 기록학을 공부하게 됐다는 건 하경 씨도 몰랐던 사실이라고 하더라. 박철우 님 말처럼 모두의 마음에 씨앗이 심겼는데, 발아 시점이 전부 다른 거다. 그러니 조급해하거나 눈치 줄 필요가 전혀 없다. 영화가 그렇게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인터뷰어의 역할이 중요한 작업이었을 텐데, 특별한 비기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를 잘 끌어내더라.

사람의 고유성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 있다. 우주와 우주가 만나는 거잖나. 인터뷰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웃음) 사실 힘든 일이다. 상대에게 온통 주파수를 맞추고 모든 신호를 알아채야 하니까.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온갖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가서는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다행히도 기자가 아닌 다큐멘터리스트다 보니 푸티지를 반복적으로 돌려볼 수 있고, 뭔가 발견하면 다시 가서 인터뷰를 청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예민한데, 그걸 해석해내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그런 성향과 잘 맞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징적인 구조가 있다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구성이다.

연대기적인 구성이라고 하기에는 객관적인 정보가 많지 않다. 사건이 마음에 어떤 생채기를 냈는지가 더 중요했다. 사건 자체에 대한 트라우마, 폄하와 혐오의 트라우마,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것에 대한 트라우마 등을 세심하게 형상화하고 싶었다. 한 땀 한 땀 작업했다. 어떤 것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동시에 어떤 것도 과하지 않게 표현하려고 했다.

ⓒ이영진

중요한 분기점으로 촛불광장이 등장한다. 그 시기를 지나오면서 정말 많은 카메라가 현장에 갔고 기록을 했다. 광장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는 미디어 활동가와 영화감독들에게 무겁고 예민한 질문이었을 거다.

정말 다양한 편집본이 있었다. 어떤 장면을 쓸 것인가부터 고민이었다. 스펙터클이 난무하는 현장 아니었나. 당시 감정으로 들어가서 부풀릴 수도 있지만, 일단 팩트를 담자고 생각했다. 길이 열렸고, 우리가 그곳에서 만났고, 함께했다는 그런 사실들 말이다. 이후의 흐름과 실망스러운 현실이 있으니 낙차를 어느 정도로 만들 것인가도 문제였다. 좌절과 한숨을 끌어낼 수도 있었겠지만, 최대한 절제했다.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거리를 두려고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촛불집회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던 순간이지, 엄청난 승리의 순간은 아니었다. 그걸 포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싶었다. 만약 신화화해버리면 그때나 가능했지 지금은 안 된다는 결론으로 빠지기도 쉬우니까. 그러면 결과적으로 위로가 아니라 우울하고 패배적인 분위기의 영화가 됐을 거다. 성취를 분명히 하고 앞으로 신경 써야 하는 지점을 생각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그게 이 영화의 역할인 것 같다.

 

예전부터 싸움을 당사자만의 것으로 한정하거나, 유가족을 특정한 이미지에 가두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당신의 사월>에도 유가족이 등장하지만, 영화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故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는 현장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하경 조연출에게 슬쩍 물어보니, 아버님과 함께했던 즐거운 추억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하더라.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신다. 찍어놓은 장면도 많은데. (웃음) 사실 유가족분들은 지금껏 너무 많은 역할을 해온 분들이고, 정말 훌륭한 활동가들이다. 이분들을 피해자 프레임에 넣는 것만큼 게으른 재현도 없다. 특정한 이미지에 가두면 곧장 선이 나뉘게 되고, 결국엔 혐오가 된다. 그 과정은 정말 고속도로 깔리듯 빠르게 진행된다. 그래서 유가족의 어떤 인터뷰도 넣지 말자는 철저한 원칙이 있었다. 대신 농담하고 웃는 일상적인 장면이 있지 않나. 유가족이 웃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본 기억이 있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말미에 흘러나오는 노래 ‘당신의 사월’의 가사를 썼다. 담담한 노래인데 그 안에 다양한 감정이 담긴다.

마지막 부분에 음악이 더 필요해서 이민휘 감독에게 연락했더니, 여기는 노래를 넣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 “그래, 알았어. 노래는 누가 해?” 했더니 자기가 한다고. 그때까지 무키무키 만만수의 만수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들었는데 잊었나? (웃음) 가사를 쓰라는데, 처음엔 못 하겠더라. “노래 불러야 하는 나도 있는데, 쓰세요!” 하는 소리를 듣고서 “네” 하고 쓰기 시작했지만. (웃음) 사실 영화를 만들면서 미안한 마음이 하나 있었다. 어민 이옥영 씨가 바다에서 수습한 故 문지성 학생에 대한 마음이다. 누군가를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 죽음으로 기억하는 것만큼 슬픈 게 없지 않나. 올바른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영화에서 그 마지막이 이야기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이옥영 씨가 인터뷰하실 때 단 한 번도 시신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셨다. 학생, 지성이, 조카라고만 하셨지. 편집도 최대한 묘사를 줄이고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했는데, 그러고도 마음이 계속 편치 않았다. 그래서 단편적일지라도 누군가의 일상이 담긴 가사를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구체적인 삶이 가사에 담긴다면, 304명의 사람이 어떤 덩어리가 아니라 각각의 개별적인 존재로 느껴질 것 같더라. “당신을 이런 모습으로 기억할게” 하고 말하고 싶었다.

<당신의 사월>
<당신의 사월>

2003년부터 이주, 여성, 빈곤, 노동 등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주제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왔다.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돌이켜보면 꿈을 이뤘다. (웃음) EBS TV 과외 1세대라, 고3 때 야간 자율학습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작은 텔레비전으로 과외 프로그램을 봐야 했다. 그게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니, 다른 채널에 얼마나 재밌는 게 많았겠나. 다큐멘터리에 푹 빠졌다. 그러다 대학에 갔는데 문예 아카데미에서 다큐멘터리 강의를 한다는 거다. 거기서 <옥포만에 메아리칠 우리들의 노래를 위하여>(다큐멘터리작가회의, 1991), <상계동 올림픽>(김동원, 1988) 같은 영화는 물론이고 70~80년대 해외 다큐멘터리까지 정말 많은 작품을 봤다. 정말 매력적이었던 영화가 <돼지의 해>(에밀 드 안토니오, 1968)다. 공산주의자인 미국 감독이 만든 베트남 전쟁에 대한 다큐멘터리인데,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역사 공부를 엄청나게 했더라. 그 과정들 자체가 너무 재밌었다. 세 번째 볼 때는 소름이 끼쳤다. 영화를 보면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제작연도가 68년, 종전선언은 72년이다. 감독은 온갖 팩트를 모아 자기가 진실이라 믿는 것을 말하고, 훗날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굉장하지 않나? 첫사랑도 필요 없을 정도의 전율이었다. (웃음)

 

대단한 열정이다. (웃음)

그래서 카메라를 배우겠다고 16mm 워크숍도 들었다. 바로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이후에 정보통신 운동을 했고, 방송국에서도 일했다. 일을 잘해서 돈을 많이 모았다. (웃음) <추적 60분>에서 잠입 취재도 여러 번 했다. 3년 정도 돈을 모으고 나서, 방송국을 나와 <이주>(2003) 작업을 시작했다.

 

소재나 주제는 어떻게 찾는 편인가.

뭔가가 궁금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작업을 시작한다. 처음엔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가장 많이 소외되는 존재가 이주노동자더라. 그들이 평등하다면 모든 사람이 평등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마침 『제7의 인간』을 쓴 존 버거라는 스승이 길잡이가 돼줬다. 그렇게 <이주> 작업을 한 것이 <계속된다 - 미등록 이주 노동자 기록되다>(2004)로 이어졌고, 이주여성들의 위대함을 보면서 <멋진 그녀들>(2007)을 만들게 됐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주류 사회에서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가 <가난뱅이의 역습>(2012)이다. <빨간 벽돌>(2017)을 할 즈음에는 박근혜 시기이기도 했고, 너무 우울하고 힘들었다. 그 우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겠더라.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생존의 논리가 아닌 삶의 논리가 있을 것 같았고, 이타적인 마음에 답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가장 이타적인 마음은 투쟁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다 그만두고 자기 살길 찾아가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남아서 싸우는 거니까. 그 수혜는 다음 사람이 받는 거지, 자기가 받는 게 아니지 않나. 그래서 30년 전의 구로동맹파업 얘길 담게 됐다.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꺼낼 수 있는 말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당시에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영화 얘기를 하지 못한 게 좀 아쉽다.

 

지금은 활기차고 좋아 보인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웃음) 열심히 운동하고, 1년에 한 번 단식도 한다. 서서히 음식을 줄이다가 3일 정도는 물, 효소, 소금만 먹는다. 그리고 다시 미음, 죽부터 늘려가는데, 입맛이 살아나는 느낌이 그렇게 좋다. 몸도 가벼워지고.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노회찬 전 의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더라. 운동권 내부에 여성주의적 인식이 없을 때부터, 수배되어 도망 다닐 때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썼다고 한다. 묵묵히 자기 길을 개척했던 분인 것 같다. 당장은 어려워도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다. 일단은 세월호 연작을 해보고 싶다. <당신의 사월>처럼 사람들을 만나되, 직업군을 다양하게 해보는 거다. 처음부터 기자들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아쉽게도 담지 못했다. 취재하다가 너무 괴로워서 부서를 옮긴 분도 있다고 들었고, 사진기자들도 정말 힘들어했다고 하더라. 한편으론 세월호 이후에 ‘기레기’라는 얘길 많이 들었으니, 언론 입장에서 세월호는 일종의 분기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야기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기록하고, 사회적 트라우마를 기억할 수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영진
Interview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바람의 세월> 문종택·김환태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2024-04-05
Interview
카메라 걸고 약속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장민경(with 오지수)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4-04-03
Interview
그늘보다 햇살
<벗어날 탈 脫> 위지원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2024-02-21
Interview
알아서 울어주니
<울산의 별> 김금순 x <딸에 대하여> 오민애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4-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