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행, 이런 우정
<더스트맨> 우지현·강길우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1-03-29

“호랑이띠, 깊게 파내려가던 우물에 물이 차오른다.” 86년생 동갑내기 배우들을 기다리며 신년 운세를 검색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오고 가뭄에 단비가 든다는 말처럼 해갈을 알리는 기분 좋은 문장이었다. 강길우와 우지현은 3년 전 무주에서 처음 만났다. 돌이켜보면 한창 힘주어 흙을 뜨는 시기였다. <한강에게>(박근영, 2018)와 <겨울밤에>(장우진, 2018)를 나란히 상영하는 축제의 열기는 뜨거웠고, 초여름 들판에 불어오는 저녁 바람은 그간 쌓인 피로를 식힐 만큼 시원했다. 낯가림이 심하지만 나설 때는 나선다는 강길우가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스스로 의심 참 많은 성격이라고 자평하는 우지현은 “신기하게 몇 마디 나누자마자 나랑 같은 과구나” 하며 그를 알아봤고, 강길우는 곧장 “우리 동갑인데 말 놓자”라며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나이와 직업이라는 공통분모로 물꼬를 트고 나니, 대화에는 점차 고민과 꿈도 스스럼없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나와 너의 교집합을 넓혀나가는 동안, 둘은 다르면 다른 대로 꽤 잘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우정의 비결은 유머와 존중. 우지현은 툭툭 던지는 농담에 속 깊은 이야기를 적절히 배치할 줄 알고, 강길우는 진중한 태도로 말을 아끼다가도 이내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띤다. 은근히 죽이 맞는 친구답게 봄을 통과하는 리듬도 엇비슷하다. <정말 먼 곳>(박근영, 2021)을 선보이며 극장을 누비는 강길우와 <더스트맨>(김나경, 2021) 개봉 준비에 드라마 <마우스>(tvN) 촬영까지 병행하느라 바쁜 우지현을 잠시 불러 세웠다. 부지런히 파고든 우물에 맑은 빛이 찰랑이기 시작한 지금, 두 사람은 무얼 바라보고 있을까. 그들이 길어 올린 물은 어디로 흘러갈까.

 

 

강길우 배우가 소속사(눈컴퍼니)에 들어갔다고. 이제 둘은 정말 ‘한솥밥’ 먹는 사이가 됐다.

우지현_ 피 터지는 사내 경쟁이 시작되겠지.

강길우_ 양궁 국가대표 선발처럼.

우지현_ 벌벌 떨고 있다. (웃음)

강길우_ 소속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물론 선택은 내 몫이지만,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좋더라.

우지현_ 사실 오늘 너무 편하게 할까 봐 걱정이다. 인터뷰 끝나고 회사에서 ‘얘네는 공식적인 자리에는 같이 부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웃음)

 

오늘은 얼마 만에 보는 건가. 

우지현_ <정말 먼 곳> 시사회 할 때 잠깐 봤다. 길우가 진짜 연예인처럼 꾸미고 왔던데.

강길우_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지.

우지현_ 무척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줘서 감탄했다. 나는 소속사 없을 때 행사 자리에 가면, 늘 엄마 없는 애처럼 멀뚱히 있었거든.

 

<정말 먼 곳>은 어떻게 봤나. 친구가 출연하는 작품을 볼 때 집중하기 힘들지는 않나. 

우지현_ 친구 이전에 배우로 접해서 그런지, 인물과 강길우라는 사람이 겹쳐 보이지는 않는다. 진우라는 인물이 특별하기는 했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는 결이 다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긴 호흡을 갖고 중심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처음 본 거니까. 나름 기대하면서 봤는데, 그만큼의 무게와 에너지를 보여주더라. 잘할 줄 알았다. 다시금 ‘배우’ 강길우를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지. 같이 못한 게 아쉽더라. 실은 나도 되게 참여하고 싶었던 작품이었거든.

<정말 먼 곳>
<겨울밤에>

어떤 역할로?

우지현_ 홍경 배우가 연기한 현민. 예전에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영화를 보니 홍경 배우가 적격이구나 싶더라. 극중 인물들의 관계와 배우 앙상블이 워낙 좋잖아. 팬이자 관객으로서 즐겁게 관람했다. 뭐, 현민 아니면 장우진 감독이 맡은 군인 역할? (웃음) 근데 장우진 감독이 연기를 잘해.

강길우_ 욕심이 있더라고.

우지현_ 우리 주위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감독들이 몇 명 있잖아. 김대환 감독도 연기하고. 그중 제일 잘하는 거 같아. 정가영 감독을 이길 수는 없겠지만. (웃음)

 

둘은 어쩌다 친해졌나. 동갑이라고 다 친구가 되는 건 아닌데.

강길우_ 처음 대화한 건 <겨울밤에>와 <한강에게>로 무주산골영화제에 갔을 때였다. 두 팀이 같이 모여서 캠핑하듯 놀았는데, 자리가 슬금슬금 무르익을 때쯤 둘이 옆으로 빠져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에 한유원 감독이 단편 <나는 사람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다>(2019)를 준비할 때 다시 만났다. 지현이가 나를 감독에게 추천했거든. 원래 지현이도 출연할 예정이었는데 <더스트맨> 촬영 일정과 겹치면서 못했다. 그 자리에는 오동민 배우가 들어왔고. 사실 <더스트맨>에도 나를 꽂아줬다. 얘가 내 캐스팅디렉터였던 거지. (웃음)

우지현_ <더스트맨> 찍으면서 많이 가까워졌다. 이전까지는 약간 ‘수줍수줍’ 상태였는데, 촬영하면서 자주 보니 점점 편안하고 익숙해지더라.

 

<더스트맨>에서 강길우 배우가 연기한 도준은 홈리스이자 장애인이다. 여러 고민이 필요한 역할인데, 강길우 배우를 추천한 이유는 뭔가.

우지현_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다. 길우와 (심)달기 배우 모두 되도록 빨리 작품에서 만났으면 했지. 캐릭터를 봤을 때도 잘 어울리겠더라. 우선 모아는 생생하고 싱그러운 에너지를 내뿜는 인물이잖아. 달기 배우라면 멋지게 소화해낼 거라 예상했다. 그런가 하면 도준은 어렵고 특별한 인물인 동시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표현해야 하는 인물이었다. 길우라면 잘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켜준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우지현_ 캐릭터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단지 기능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인 부분까지 깊이 고민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봤다. 강길우라는 배우가 믿음직하게 느껴졌기에 김나경 감독님한테 얘기할 수 있었다. 매력적인 캐스팅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길우처럼 그동안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역할을 주로 맡았던 배우가 여기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재밌지 않을까 싶었거든. 여지없이 잘 해내더라.

ⓒ이영진

강길우 배우는 연기할 때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려 둔다고. <파도를 걷는 소년>(최창환, 2019)의 갑보는 회색 상어, <온 세상이 하얗다>(김지석, 2020)의 모인은 아주 살짝 물기를 머금은 풀. 그럼 <정말 먼 곳>의 진우와 <더스트맨>의 도준을 보면서는 각각 무엇을 떠올렸나.

강길우_ 진우는 처음부터 글로 만난 게 아니어서 시나리오를 보고 딱 떠오르는 이미지는 없었다. 오히려 현장에서 이미지를 찾았다. 나무나 소처럼 우직한 느낌을 주는 것들. 도준은 사실 말해도 잘 와닿지 않을 거 같은데, 구멍 뚫린 자그마한 천 조각을 떠올렸다. 아마 내가 살면서 봐온 이미지나 심상에 기반한 거겠지.

 

무슨 색깔?

강길우_ 회색과 파란색. 한쪽 올이 많이 풀린 천이었다. 캐릭터를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처음에 느낀 이미지는 그랬다. 사실 도준은 명확한 레퍼런스가 있었다. 감독님이 다큐멘터리를 보여줬다. 거기 나온 인물을 바탕으로 도준의 장애와 특성에 관해 이야기를 오래 나눴다. 준비 과정에서나 촬영하는 내내 표현을 경계했다. 사실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지켜보는 입장에서 나쁘게 보려면 얼마든지 나쁘게 볼 수 있잖아. 내가 인물에게 진심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여느 인물과 다름없는 하나의 존재로 여겨야겠다고.

 

<더스트맨>에서는 두 배우 모두 어느 정도 위험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도준이 자칫 차별적인 시선으로 희화화될 가능성이 있었다면, 태산은 너무 답답하거나 일면 느끼하게 보일 뻔했지. 

우지현_ 분위기에 취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취한 상태로 연기하거나 인물이 도취한 것처럼 보이면 문제가 생길 거라 봤다. 그래서 희로애락을 분명하게 표현하려 애썼다. 물론 태산은 주로 슬프고 우울하다. 아니면 그런 감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거나. 하지만 그 와중에도 도준이나 모아와 함께 지내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때로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기도 한다. 가급적 입체적인 인물로 구현해야 관객들이 긴 시간을 견디고 봐주지 않을까 싶더라. 태산 역시 감독님이 구체적으로 그려놓은 인물이 있었다. 그 디자인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좀 더 세밀하게 채워내는 게 내 몫이었던 거 같다.

강길우_ 태산의 대사는 글 같은 느낌이 있잖아. 내가 집에서 혼자 해봤거든. 쉽지 않던데? 지현이가 진짜 멋있게 잘했다.

우지현_ 에이, 멋있는 건 진우지.

 

진우의 어떤 점이 그렇게 멋있나.

우지현_ 태산과 진우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항상 아프고 괴로운데 고통에 무뎌진, 어쩌면 고통을 견디는 일 자체에 책임감을 느끼는 인물이잖아. 예전에 공지영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비슷한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정작 본인은 모르고 지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늘 피가 흐르는 종류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인 거지. 나는 핑계도 변명도 일절 없는 사람들을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태산을 잘 연기하고 싶었고 진우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더스트맨>
<더스트맨>

강길우 배우도 동의하나.

강길우_ 음, 나는 진우에게서 멋을 발견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선지 진우가 하는 말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고. 사실 여러 가지를 현장에서 채워나갔다. 나름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촬영하면서 턱턱 막히는 순간이 잦았거든. 그동안 허투루 시간을 보냈나 싶을 정도로. 지금도 내가 그 인물을 온전히 이해한 상태로 촬영을 끝마쳤는지 잘 모르겠다. 나한테 진우는 참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진우보다는 진우와 관계 맺는 인물을 이해하려고 더 노력했다. 멋있는 부분을 말하기는 어렵고, 다만 앞으로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진우의 다음 행보가 멋있기를 바란다.

우지현_ 진우 진짜 멋있는데.

강길우_ 태산이 멋있지. 어제 <더스트맨>을 다시 봤는데, 지현이한테 바로 문자 보냈다. “지현아, 너 조각상 같아. 내가 미술을 전공할 때 석고상을 많이 그려봐서 안다.” (웃음) 

 

심달기 배우가 찍은 영상편지 봤나. “우지현 배우님의 미모가 열일하는 영화”라고 소개하던데.

우지현_ 와, 진짜 어떡하지? (웃음) 개인적으로는 달기 배우의 예쁨이 잘 담긴 영화라고 생각하거든. 감독님도 신경을 많이 썼다. 이전과는 또 다른, 심달기 배우만의 매력을 보여주겠다고 공 들였지. 근데 달기가 공개적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복수해야지. (웃음) <더스트맨>은 내가 아니라 심달기 배우의 미모에 주목해야 하는 작품이다. 심지어 영화에서 달기가 헤어 스타일만 거의 아홉 번을 바꾸거든. 여러분, 심달기 배우의 헤어와 패션을 주요 관람 포인트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강길우_ 근데 태산은 진짜 어려웠을 거 같아. 현장에서 감독님이 “태산은 멋있어야 한다”고 짚어주셨거든. 물론 홈리스라고 멋있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인물의 외양을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부분이 생기잖아.

우지현_ 감독님이 서사와 촬영만큼이나 각각 인물의 비주얼도 고민을 진짜 많이 하셨다. 구체적인 시안이 마련되어 있었고, 연출부에서는 거기에 또 이름을 붙였더라. 씻기 전 태산은 ‘더티 섹시’였다. (웃음) 연출부 스태프가 분장 선생님께 “오늘은 ‘더티 섹시’ 태산으로 해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걸 들었지. 태산이 씻는 날에는 ‘클린 섹시’였고.

 

‘섹시’는 항상 붙였구나.

우지현_ 그렇지. 모아랑 문화생활 하는 날에는 ‘문화 섹시’였다니까. (웃음) 영화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멋있게 보인다면 전부 그런 계획과 노력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현장에서 본명으로 안 부르는 게 어디인가 싶더라. 속으로 ‘그래, 나는 지금 우지현이 아니라 태산이다. 괜찮다.’ 이랬거든. 거기서 ‘더티 섹시’ 지현이라고 불렀어 봐. 큰일이지.

 

도준의 비주얼 콘셉트는 뭐였나. 

우지현_ 귀엽고 따뜻하게?

강길우_ 맞아, 귀여움을 강조했던 거 같다. 나도 꽤 부담스러웠지. 

우지현_ 강길우의 새로운 도전!

우지현 ⓒ이영진

여긴 ‘섹시’가 아닌 ‘큐티’였군.

강길우_ 현장에서 그 캐릭터를 많이 좋아해 줬다. 안 그랬으면 용기를 못 냈지. 문제는 캐릭터성이 짙다 보니 ‘현타’가 오는 거야. 컷을 하고 나서 다음 테이크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잖아. 그때 자의식을 이겨내기가 만만치 않더라.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싶고.

우지현_ 진짜 웃겼다. 컷하기 직전까지는 도준이잖아. 일자 앞머리에 볼 터치도 약간 하면서 귀엽게 세팅해놨는데, 쉬는 시간이 되면 자꾸 돌아가는 거다.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본래 강길우로. 그러다 액션하면 금세 또 바뀌니까 온도 차이가 심했지.

 

우지현 배우가 말했듯 태산과 진우는 비슷한 데가 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더스트맨>과 <정말 먼 곳>은 ‘자리 찾기’라는 주제를 공유하지 않나. 둘 다 외곬이랄까, 기본적으로 고지식하고 고독한 인물을 연기했다.

강길우_ 본래 인물에 푹 빠지는 편이 아닌데, <정말 먼 곳>은 한동안 후유증이 있었다. 인물에 빠졌다기보다는 이상한 외로움을 느꼈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진우의 마음인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처음으로 이런 역할을 맡아서 헷갈리는 건가 싶기도 하다. 나는 아무도 없을 때부터 <정말 먼 곳>을 지켜봤잖아. 처음에는 감독과 나, 둘뿐이었으니까. 그러다 한 명씩 들어와서 합을 맞추기 시작했고, 얼마 후에는 북적이던 시간이 모두 끝났지. 그런 과정을 거쳐선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무언가가 마음에 자꾸 남더라. 늘 내가 연기한 인물의 다음 스텝을 응원하지만, 특히 진우는 잘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가상의 인물이고 ‘오버’라는 걸 아는데, 여운이 계속 남는다. 나름대로 애증이 있는 작품이다.

우지현_ 난 인물과 나를 완전히 별개로 생각한다. 촬영이 끝나면 그걸로 끝! 인물에게 정을 주기보다는 작품과 연결성을 가져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더스트맨>을 찍으면서도 향후 태산이 어떻게 살아갈지 그려본 적이 딱히 없었다. 다만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를 위로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기획 단계부터 감독님은 ‘찰나’를 소중히 다루자고 이야기했다. 아주 작고 유한하지만, 절대 무의미하지 않은 순간. 관객들도 그런 부분을 함께 지켜보며 에너지를 갖는다면 좋겠다.

 

연기는 굉장한 협업이지만, 듣다 보면 참 외로운 싸움 같기도 하다. 결국에는 상대 배우도 감독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나랑 붙어서 끝을 봐야만 하는 순간을 마주하지 않나.

강길우_ <정말 먼 곳> 작업하면서 그런 생각이 좀 세게 왔다. 진우가 중심이기는 한데, 그를 둘러싼 인물이 정말 많잖아. 주연 배우로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부담도 컸지만, 그만큼 모두를 배려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단지 사람 간의 배려뿐만 아니라, 인물 대 인물로서 배려를 익혀야 했지. 한 장면에서 배우들이 어떻게 지분을 나누는지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달라지니까. 촬영 당시에는 ‘주인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경험을 더 쌓은 상태에서 이 작품을 만났다면 나았을까?’라는 생각이 스칠 만큼 버겁기도 했다. 아까 말했던 묘한 외로움은 그런 상황에 따른 감정일 수도 있을 거 같다. 나를 잘 지켜서 중심을 잡는 것과 현장에서 여러 가지를 지켜보며 배려하는 것, 두 가지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혼자 있을 때가 많았거든. 나야 감독과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다른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감독과 만나서 대화할 시간이 부족했잖아. 현장에서 그들에게 시간을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독과도 그 부분에 관해서 합의한 상태였고. 글쎄, 어떤 방식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이기도 하고, 배우마다 다를 테니까. 앞으로 차차 찾아 나가야 할 부분이다.

우지현_ 연기는 항상 새롭다. 최근 산업 안에서 일하며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책임감과 의지를 재고해보게 됐다. 외부 상황이나 본인 기분과는 상관없이 좋은 태도를 유지하는 분들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지금보다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지. 작업이나 배우의 덩치가 커지면, 그에 걸맞는 또 다른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더스트맨>은 귀하고 좋은 경험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모두가 무게를 감당하려고 애쓴 작업이었거든. 일단 추위라는 커다란 ‘빌런’이 있었지. 이겨내려면 각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고, 다들 책임감과 의지를 100% 이상으로 발휘했다. 초인적이라고 하기까지는 그렇지만, 각자 굉장한 인내를 보여준 건 틀림없다. 그들의 에너지와 집중력에 힘입어 태산의 얼굴을 담아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영진

박근영, 장우진, 최창환 등 두 배우 모두 한 번 인연을 맺은 감독과 관계를 길게 이어 간다. 여러 작품을 만들면서 가까워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공동의 세계를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 오리라 예상한다. 그런 작업에서는 단지 1/n으로만 남을 수는 없을 거 같다. 더구나 <정말 먼 곳>은 시작 단계부터 함께했기에 무게가 남달랐을 거다.

강길우_ 맞다. 착각하는 바람에 이상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 그저 작품의 일원으로서 존재하면 되는데,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영역을 오해하게 되더라. 영화의 완성, 출품, 개봉 같은 건 사실 내 일이 아니잖아. 내가 선택할 문제도 아니고. 괜히 스스로 불편한 감정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은 나하고만 대화하고 일하는 게 아닌데, 나는 감독하고만 말하다 보니 마치 프로듀서가 된 것처럼 착각했지. 한동안 마음이 무겁다가 이제 다 털어냈다. 그러고 나니 영화도 훨씬 잘 보이고, 편안하게 응원할 수 있더라.

우지현_ 좋은 관계야. 가시적인 성과나 도움 외에, 서로 마음을 풀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 자체가 오래 남겠지. 나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길우도 박근영 감독한테 의지하면서 안정을 찾았을 테고.

강길우_ 재밌는 만큼 어려운 일이다. 감독마다 분위기도 다르다. 근영 형이랑 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훨씬 조심스럽지. 형이 워낙 섬세한 사람이다 보니, 나도 단어 하나하나를 고르면서 말하게 된다. 반면, 창환 감독님과는 그냥 편하게 이야기한다. 누가 더 좋다는 게 아니라, 색깔이 전혀 다르다. 현장 분위기와 디렉션을 주는 방식도 다르지. 그에 따라 내 ‘모드’도 변화한다. 아마 감독마다 생각하는 내 성격이 천차만별일 거다. MBTI가 ISFJ거든. 난 맞춤형이야. 시키는 거 잘하고. (웃음)

 

우지현 배우에게도 장우진 감독은 특별한 의미일 텐데. 

우지현_ 늘 어렵지, 그 사람과 같이하는 건. (웃음) 서로 기존에 보여준 좋은 면을 좀 더 개선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뛰어넘으면서 작업해왔거든.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다음 작품에서도 그 좋음을 유지하는 동시에,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니까. 매번 걱정을 안고 들어가는데, 막상 시작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편하고 즐겁다. 지점토로 찰흙 놀이하듯 뚝딱뚝딱. 생각해보면 박근영 감독이나 장우진 감독이 그런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배우에게 분명한 안정감과 신뢰를 제공하거든. 영화적 비전이 확실한 연출자이기도 하고. 멋진 사람들이니 우리가 잘 붙잡아야지.

 

우지현 배우는 박근영 감독과 작업한 적이 없지?

강길우_ 없지. 나도 장우진 감독과 작업해본 적이 없고.

우지현_ 희한하게 안 겹친다. 길우랑 나랑 군이 좀 다른가 봐.

 

유일하게 겹치는 사람이 이상희 배우다.

우지현_ 그분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니까. (웃음)

 

감독과 배우가 바뀐다면 어떨까. 박근영 감독은 우지현을 보면서 어떤 인물을 상상할지, 또 장우진 감독은 강길우에게서 무얼 기대할지 궁금하더라.

강길우_ 재밌을 거 같아. 

우지현_ 내가 볼 때는 둘 중 하나야. 멱살 잡고 다시는 안 하겠다고 하거나 “이제 찾았네!”라면서 푹 빠지거나.

강길우_ 아, 근영이 형을 쉽게 줄 수 없는데.

우지현_ 마찬가지거든! 아니, 무슨 가진 적도 없는 사람을. (웃음) 

 

연기는 잘 맞는 일 같나.

강길우_ 성격이 보수적인 편이라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반대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도 싫어한다. 너무 지겹거든. 태어나서 한 번도 어떤 직장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연기는 내게 잘 맞지. 알맹이를 지키면서도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니까. 사실 연기는 내 인생에 갑자기 나타난 일이다. 딱히 꿈꿔온 일도 아닌데 10년 넘게 지속했고, 여전히 재밌다. 더 잘하고 싶고 연기 외에는 특별히 눈길이 가는 것도 없다. 지금은 이게 내 유일한 관심사이자 취미이고 또 직업인 거다.

우지현_ 나도 연기할 때 빼고는 좀 게으른 편이다. 쉬는 날에는 집에서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고, 연기 아니면 새로운 걸 경험할 일도 별로 없다. 확실히 잘 맞는 일이긴 한데, 자신감이 떨어지는 순간이 더러 찾아온다. 조금 거만해진다 싶으면 바로 “정신 차려!”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거든. 진짜 ‘밀당’이 심한 일이다. 아니, 당겨준 적은 거의 없지. 짝사랑으로 끝날까 봐 걱정이네. (웃음) 

<더스트맨>
<더스트맨>

능력만큼이나 성격이 중요한 일 같다.

우지현_ 음, 나는 고통에 무딘 편이다. 현장이 주는 고통이 있잖아. 체력적으로 힘들 수도 있는데, 감정으로 오는 게 크지. 자존심이 깨지기도 하고, 때로는 패배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니까. 다행히 나는 그런 상태를 어느 정도 즐기는 거 같다. 더 해보자는 마음이 생기거든.

강길우_ 대단한데?

우지현_ ‘돌파해야 하는 순간이구나’라고 자각하면, 머리카락이 곤두서면서 시야가 또렷해진다. 불안을 감당하면서 뭔가를 만들어낼 때 결과도 좋았던 거 같고. 예전에는 그 위기감이 무섭고 싫었는데, 요즘에는 좀 더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됐다. 어쨌거나 잘 참고 기다리는 성격이거든. 사주에도 나온다. 인성 다자라고.

강길우_ 뭐?

우지현_ 인성이 많다는 거야. 생각도 많고, 결정하기까지 장고하고. 근데 결론은 그저 그런. (웃음)

강길우_ 가성비가 떨어지네. (웃음)

우지현_ 맞아, 근데 이런 애가 또 도망은 안 가.

강길우_ 자신감이 있나 보다. 고통을 즐길 정도면.

우지현_ 한편으로는 관점이 달라지는 거 같다. 옛날에는 화면에 나오는 것만 내 실력이라고 여겼는데, 지금은 배우의 영역이 그 이상일 수도 있겠구나 싶거든. 반반이겠지? 근데 ‘배우가 현장을 어떻게 돌아가게 하느냐’라는 것도 중요한 질문이지 않을까. 물론 영화에는 안 남는데, 또 어떤 방식으로든 영화에 담기기는 하거든. 그가 절약한 시간, 묵묵히 집중하는 태도,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낸 분위기 같은 거. 관객의 눈에는 안 보이겠지만, 전체적인 퀄리티에는 분명히 영향을 미칠 거란 말이지. 아, 근데 이런 말하면 친구들이 왜 충성심을 갖냐며 혼쭐낸다. “연기로 보여줄 생각을 해야지, 자꾸 회사 다니는 기분으로 연기할래?”라면서. (웃음)

 

강길우 배우는 어떤가. 패배감과 수치심을 맞닥뜨린다면 잘 버틸 거 같나.

강길우_ 너무 싫지. 최대한 피하고 싶다. 난 추위도 힘들어.

우지현_ 얘가 이렇다니까.

강길우_ 좋은 것도 많은데 왜 굳이 나쁜 걸 만나려고 하나. (웃음)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이렇게 얘기하다 보면 꽤 다르구나 싶다. 연기하는 스타일도 다르고, 현장에서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도 다르지. 나는 길게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어렵기도 하고, 말이 쌓이면 더 오해가 생길 거 같거든. 감독과 소통할 때도 말보다는 눈빛이 중요하다. 말로 설명해주는 방식은 도리어 불편할 때가 있다. 서로 통찰력을 갖고 작업하는 과정이 재밌다. 일단 해보고 맞으면 기분 좋고, 아니면 다르게 해보고. 호흡을 눈치로 맞춰 나가는 거지.

 

현장에서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라면.

강길우_ 난 영화를 진짜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를 만드는 현장. 내가 그곳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질 만큼 현장에서 경험하는 영화가 멋있거든. 엄청나게 정신없고 시끄럽다가도 슛 들어가는 순간 공기가 바뀐다.

우지현_ 맞아, 그때 너무 좋지.

강길우_ 앵글 안에 있던 스태프들이 전부 사라지고 모니터에는 극 중 인물만 남는 거다. 정말 짜릿한 순간이다. 관객은 그 떨림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로. 그때마다 ‘내가 이래서 이 일을 좋아하는구나’ 싶다.

 

연기 스타일은 어떻게 다른가. 서로 부러워하는 면이 있을 거 같다.

강길우_ 지현이는 굉장히 정확하게 연기한다. 자신이 계획하고 설계한 바를 분명하게 해내는 느낌. <더스트맨>에서도 컷마다 보여주어야 할 모습을 정확히 수행했고, 그게 우지현을 태산으로 만들었다. 연기에 구멍이 생기면 우지현이 드러났을 텐데, 자기가 서 있는 공간이나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전혀 빈틈을 만들지 않더라. 나는 정확하게 연기하자고 결심했다가도 어느 순간 ‘정확한 게 뭐지?’ 싶거든. (웃음) 실제로 지현이는 본인의 위치를 고려하며 영화와 각 장면의 의도에 가장 적합한 걸 선택한다고 하더라. 놀랍고 배울 점이지.

우지현_ 길우는 인물을 오래 고민해준다. 오늘도 얘기를 듣다가 좀 신기했다. 나는 영화가 끝난 후에 인물이 살아갈 앞날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거든. 대개 인물을 고민한다고 하면,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할지 그 방법을 찾으려고 하잖아. 근데 길우는 영화라는 매체를 씌우기 이전으로 돌아가서 인물 자체를 깊이 생각한다. 몇 시에 자고 일어나는지,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지, 지금까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피부에 닿을 때까지 곱씹는 거다. 길우 연기에는 이질감이 없다. 인물이 얼굴에 붙는다고 할까. 영화를 보면 때로는 배우가 보이기도 하고, 잘 만든 캐릭터가 보이기도 하고 그렇잖아. 근데 길우는 영화에 섞인다. 그냥 거기에 꼭 맞는 사람 하나가 서 있지. 단편 작업할 때부터 그랬다. <명태>(이홍매, 2017)에서 처음 봤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배우의 얼굴이 곧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된다니. “저 얼굴은 뭐지?” 싶더라.

강길우_ 내가 비주얼 배우잖아. 주로 시골이나 산에 최적화 된. (웃음)

우지현_ 맞아, 비주얼 배우야. 길우가 얼굴에 영화의 핵심을 담아낸 걸 보면 늘 신기하고 부럽다. ‘나는 저런 적이 있나? 나도 가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지?’ 혼자 그런 생각하거든. 

강길우_ 갖고 태어난 거지. 부모님께 감사하자. (웃음)

강길우 ⓒ이영진

<정말 먼 곳>과 <더스트맨>을 제외하고 서로 ‘최애작’을 고른다면. 

우지현_ 방금 말한 <명태>. 길우를 화면으로 봤던 첫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 메시지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인물을 보여줬다. 한참 사회가 분노와 비난으로 들끓던 시기였는데, <명태> 보면서 힘을 많이 받았다. 애정과 믿음을 바탕으로 한 만남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작품이거든. 관계의 선순환을 그려낸 이홍매 감독님도 대단하지만, 강길우라는 배우가 없다면 성립되기 어려운 영화가 아닐까 싶더라. ‘너무 싸우지 말고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그래도 안 되면 모레 또 방법을 찾아보자. 그래야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좀 더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길우의 얼굴에 이런 문장이 전부 담긴 듯했다.

강길우_ 지현이 영화는 다 좋아하는데 최근 작품에서 고르면 <뒤로 걷기>(방성준, 2020). 배우가 책임감을 갖고 영화를 잘 세워주는 느낌이었다. 나는 과한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모자란 것도 싫어하거든. 가성비와 효율성이 중요하지. (웃음) 근데 지현이가 딱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연기하더라. 어떻게 보면 방성준 감독의 실제 사연을 일부 재현하는 작품이기도 한데, 그런 부분에서 책임을 피하지 않고 훌륭하게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칭찬이 끊이지 않네. 평소에도 이런가.

강길우_ 지현이는 많이 해준다. 난 말수가 없어서 대개 듣지. 그러다 ‘먹튀’하고. (웃음) 

 

아쉬운 점은 없나.

우지현_ 딱히 없다. 뭐, 길우도 이제 바보 같은 짓도 좀 하고 이랬으면 좋겠어. (웃음) 농담이고, 사실 처음 만났을 때 우리가 이미 30대였잖아. 아무리 동갑이라고 해도 이렇게 친구 먹고 친해지기가 쉽지 않은데, 신기하게 몇 마디 나누자마자 ‘내 과구나’ 싶었다. 닮았다는 뜻이 아니라, 같이 있으면 편하고 좋을 거 같다는 느낌. 아쉬운 점이라고 할 게 있나. 요즘 내가 아쉬워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내 코가 석 자라 남의 단점을 볼 시간이 없다.

강길우_ 나도 그래. 실은 지현이한테 고마울 때가 많다. 오동민 배우까지 셋이 참 다르면서도 친한데, 두 사람이 활동 시기나 영역 면에서 나보다 몇 걸음 앞서 있거든. 동민이, 지현이, 나 순서대로 가는 중이지. 얘네가 ‘몸빵’ 해주는 게 분명히 있다. 먼저 시행착오를 겪은 친구들이 나한테는 좋은 것만 주니까. 뭘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하는지 물어볼 수도 있고. 지현이가 <더스트맨> 찍을 때 회사에 들어갔는데, 당시에도 여러 생각과 고민을 공유해줬다. 그로부터 1년 반 정도 시간이 흘러서 내가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많이 의지했다.

우지현_ 길우랑 얘기하면 머릿속이 정리된다고 해야 할까. 사실 길우가 고민하는 문제는 내게도 여전히 중요하거든. 어느 순간 길을 놓쳤다가도 이 친구와 대화하면서 환기한다.

<명태>
<뒤로 걷기>

다르지만 말이 통하는 거다.

강길우_ 적당히 달라서 더 좋다. 내가 지현이를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인데, 얘는 뒤끝이 없다. 지지부진하게 감정을 가져가는 편이 아니고 무척 솔직하다.

우지현_ 미워하기도 잘 미워하고 풀기도 잘 푼다. 근데 내가 선입견이 많잖아.

강길우_ 호불호가 확실하지. 자기 사람으로 받아들이면 완전히 끌어안고.

우지현_ 맞아, 어제까지 괜히 의심하고 경계하던 사람도 가까워지는 순간부터 바로. 동민이랑도 처음에는 이렇게 친해질 줄 몰랐다. 작품으로만 봤을 때는 왠지 나랑 안 맞을 거 같았거든.

강길우_ 가운데에서 둘을 보고 있으면 재밌다. 내가 볼 때는 극과 극이거든. 서로 엄청나게 놀린다.

우지현_ 인내를 모르는 낭만주의자와 참고 견디는 현실주의자의 대결이지. (웃음)

 

강길우 배우에게는 새로운 막이 열리는 시점이다. 먼저 경험한 입장에서 우지현 배우가 팁을 줄 수 있을 듯한데, 영화와 드라마 혹은 상업과 독립 사이에서 배우로서 어떤 차이를 느끼나.

우지현_ 장르나 작업 특성에 따라서 다르기에 뭐가 더 좋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내가 독립영화에서 주연이라는 역할로 장편을 찍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곳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고, 배우로서 발언할 기회도 많다. 한편, 상업 신에는 또 다른 재미가 있지. 계속 새로운 걸 알려주고, 그에 맞춰 내가 나를 판단하는 기준도 높아진다. 둘 중 하나만 했다면 지금처럼 일하기가 어려울 거 같다. 여기서 배우고 훈련한 걸 저기서 써먹기도 하고, 여기서는 할 수 없는 걸 저기서 구현해보기도 하거든. 여러 매체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의 경우, 당연히 능력도 출중하겠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도움을 얻는 면도 있는 거 같다. 각각의 영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느낌이다.

 

저글링을 잘하고 있다.

우지현_ 배울 게 너무 많다. 잘하는 사람도 넘쳐나고. 인터뷰하면 신나서 떠드는데, 집에 가면 ‘내가 뭘 안다고 그랬나?’ 싶다니까. 길우랑 만날 때도 술 먹고 한참 떠들다가 돌아가는 길에 후회한다.

 

가뜩이나 상대방은 말도 적은데. (웃음)

우지현_ 그러니까. 매일 나만 실수하고.

강길우_ 아니야. 다 좋은 말이지. (웃음)

 

강길우 배우는 생각했던 길로 가고 있는 거 같나. <정말 먼 곳>은 주연을 맡은 첫 장편이고, 올해 개봉부터 소속사까지 여러 일을 경험하는 중인데.

강길우_ 잘 가고 있는 거 같다. 해마다 신년 목표를 정하는데, 돌아보니 생각한 대로 다 이뤄졌더라. 애초에 목표 자체가 현실적이었다. 사실 누구나 알지 않나. 나는 어디쯤에 있으니 이 정도는 해볼만 하겠다, 그렇게 계산이 서는 일을 목표로 삼아선지 무리 없이 흘러온 거 같다. 지금 속도가 딱 좋다. 갑자기 능력 밖의 뭔가가 주어지면 힘들 거고, 그렇다고 생각대로 진도가 안 나가도 고역이겠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목표를 세우는 단계라는 게 기쁘다. 아직 애송이지. 겨우 10년 했잖아. 어느 직업이든 10년은 해야 직업인으로서 말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요즘엔 또 장수하는 시대니까. (웃음)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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