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비로소
<소울메이트> 민용근
글 정지혜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1-03-11

<혜화,동>(2011)을 기억한다면, <소울메이트>를 고대할 것이다. <혜화,동>으로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부문 감독상, 제36회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민용근 감독이지만, 두 번째 장편 <소울메이트>를 만들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단편 작업을 병행하며 8년 동안 준비한 시나리오를 접고 새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만난 <소울메이트>는 중국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증국상, 2017)가 원작이다. 안생(주동우)과 칠월(마사순), 둘의 우정과 사랑이 균열되고 변모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낸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에 민용근 감독 특유의 서정이 더해질 것이다. 미소 역을 맡은 김다미와 하은 역을 맡은 전소니,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젊은 배우들의 조우도 관심을 모으는 요소. 민용근 감독은 <소울메이트>가 “오랜 세월 돌고 돌아 자기 마음을 깨닫는 이야기”라고 귀띔했는데, 그 전언은 설렘과 좌절을 반복했던 지난날에 관한 감독의 소회처럼 들리기도 했다. 창작의 기쁨을 한껏 맛보고 있는 민용근 감독을 만났다.

 

 

<소울메이트>는 촬영을 끝내고 편집 중인가.

자유롭게 놀던 즐거운 시간은 다 지나갔다. 막바지 후반작업이 한창이다. 작업시간을 최대한 줄이면서 잘 다듬어야겠지.

 

10년 만에 두 번째 장편을 내놓게 된다. 너무 오래 걸렸는데. (웃음)

두 번째 장편을 만들려고 애쓴 시간이 8년 정도 된다. 사람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했을 거다. (웃음) 나름 되게 바쁘게 지냈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단편 <얼음강>을 만들어 옴니버스영화 <어떤 시선>(2012)으로 개봉했고, 또 그게 인연이 돼 『그들의 손에 총 대신 꽃을-영화감독 민용근이 전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이야기』(2014, 끌레마)도 썼다. 꾸준히 강의도 했고, 그러다 보니 대학원에 가야겠다 싶어 박사 과정까지 마쳤다. 대학원 다니면서 단편도 여럿 찍었다. 최종적으로 연출을 하지는 않았지만, 1년간 드라마를 준비한 적도 있다.

 

그간 품었던 그 시나리오는 어떤 작품이었나.

<혜화,동>을 함께한 심현우 프로듀서와 미스터리 장르물을 준비했다.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가, 작가에게 맡겼다가, 어떻게든 내가 마무리를 지어보려고 했는데. 아직 아이템은 유효하지만, 2018년 말에 중단했다.

 

<소울메이트> 연출 제안을 받았던 시기에 여러모로 마음이 무거웠을 것 같다.

오래 준비한 작품을 그만둔 게 나름 큰 결정이었던지라…. 어쩌면 그걸 놓지 못해서 다른 기회를 얻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 작품을 준비하면서 상업영화라고 하면 갖춰야 하는 일종의 장르적, 영화적, 스토리적 요소에 관해 알게 됐다. 투자를 받으려면 그런 요소들을 시나리오에 녹여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어느 순간부터 의무처럼 느껴졌다. 일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창작의 즐거움을 잊어버린 듯해서 힘들었다. 애초 그 이야기를 쓰고자 했을 때 가졌던 재미는 다 사라지고 ‘이렇게 써야 한다’는 것만 남았으니까. 작품을 중단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면서 과연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을까, 영화가 아니면 뭘 할 수 있을까, 한동안 사람들도 만나지 않으면서 깊이 고민했다. 무엇보다 창작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싶던 차에 제작사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에서 제안을 해왔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소울메이트>

원작의 어떤 면에 이끌려 리메이크를 해볼 만하다고 판단한 건가.

처음 봤을 땐 고사해야겠더라. 좋은 작품이지만 여성 감독이 맡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안생과 칠월 두 친구 사이의 미묘하고 섬세한 관계를 그려내기엔 역부족 같고. 그래도 혹시 몰라 영화를 한 번 더 봤는데, 원작의 한 장면이 유독 깊이 다가왔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나란 사람은 스토리나 장르가 아니라 한순간 감정을 딱 끓어오르게 하는 것에 꽂혀서 영화를 만든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에서도 그런 한순간이 있었다. 그 감정에 이끌려 따라가다 보면 창작의 즐거움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전 작업도 감정을 흔드는 한순간에서 출발했나.

<혜화,동>만 해도 그렇다. 그 전에 오랫동안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때 유기견을 도와주려고 애쓰는 한 분을 만났는데 구조하려는 강아지가 오히려 자신을 피해 도망가는 걸 보며 그분이 눈물을 보이더라. “도와주려고 하는데 왜 도망가는지 모르겠다”며. 그 순간, 그분 안에 다른 상처가 있는데 강아지가 그걸 딱 건든 게 아닐까 싶더라. 또 그분의 감정을 알 것만 같았다. <혜화,동>은 그 순간에 시작됐다. 구체적인 스토리로 시작한 게 아니라 도대체 저분의 감정은 뭘까, 가 모티프였다. <얼음강>도 마찬가지다. 본인은 병역거부가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세상은 이걸 죄라고 할 때 느낄 누군가의 외로움. 그런 감정이 내게 딱 오면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울메이트>는 어떤 감정으로부터 비롯됐나.

내가 누군지,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 때가 많지 않나. 알아도 나를 억누르고 살 때가 많고. 원작이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안생과 칠월은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비로소 본인과 상대의 진심을 깨닫는다. 그게 마음에 가장 크게 와 닿았다.

 

원작과 다른 <소울메이트>만의 감성과 시선이라고 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 무엇을 주목해서 봐야할까.

편집하며 많이 느끼고 있다. <소울메이트>는 미소와 하은의 얼굴과 그들이 주고받는 눈빛이 굉장히 중요한 영화임을. 기본적으로 원작 스토리의 밀도가 상당하고 특히 극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그렇다. 여기에 더해 <소울메이트>에서는 김다미, 전소니 두 배우의 매력을, 그들 각자의 눈빛과 두 사람의 눈빛 교환을 잘 표현하려 한다.

ⓒ이영진

<혜화,동>도 배우의 얼굴,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는 영화다. 김다미와 전소니, 두 배우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나.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났을 때 과연 어떤 에너지가 발생할까 궁금했다. 김다미 배우는 ‘괴물 신인’이라는 수식어가 있을 만큼 주목받는 배우잖나. <마녀>(박훈정, 2018), <이태원 클라스>(2020)에서도 그 개성과 힘을 마음껏 보여줬고. 근데 막상 만나보니까 강하고 센 모습과는 전혀 다른 매력도 가지고 있더라. 매 장면 찍을 때마다 그런 다양한 얼굴을 발견했다. 영화에서 16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데 한 배우가 그 세월을 얼굴로 감당해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분장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눈빛의 문제니까. 10대 후반부터 30대까지, 폭넓고 깊이 있는 김다미 배우의 눈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전소니 배우는 <악질경찰>(이정범, 2018), <밤의 문이 열린다>(유은정, 2018) 등을 보면서 되게 영화적인 얼굴, 영화라는 매체와 잘 어울리는 눈빛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했다. 캐스팅 전에 우연히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이미 느꼈다. 자기만의 독특한 취향과 고유한 감성을 지닌 배우라고. 무엇보다 되게 재밌는 사람이다.

 

<올드보이>(박찬욱, 2003)로 데뷔한 유연석 배우는 군대 제대 후 다시 신인과 같은 마음으로 <혜화,동>에 참여했고, 공명 배우도 <얼음강>으로 처음 영화 작업을 해본 것으로 안다. 함께 작업한 뒤 배우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독립 영화를 찍다 보면 새로운 얼굴을 발굴할 수밖에 없다. 내 영화를 통해서라기보다는 배우들이 이후 참여한 작품으로 잘 된 거다. 그 모든 이들이 하나 같이 눈빛이 좋았다. 다들 잘 돼서 좋다.

 

눈빛이 좋다는 건 어떤 건가.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눈빛이 앞서야 한다. 눈빛은 내면을 반영하니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눈으로 느껴진다. 누구나 다 그렇지 않나. 관심을 두고 보면 알 수 있다. 눈빛과 함께 하나 더 꼽자면 목소리다.

 

영화적 얼굴에 관해 좀 더 설명해달라.

기본적으로 어떤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면 그 순간 그 감정이 사라지는 거 같다. 슬픈 걸 표현하려고 슬픈 표정을 짓는 순간 슬픔이 사라지는 것처럼. 무표정이 그래서 중요하다.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는 얼굴인데 오히려 어떤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다. 단편 <도둑 소년>(2006)을 찍을 때였다. 엄마의 죽음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소년에 관한 영화다. 실제 기사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언제부터인가 소년이 동네 뒷산에 가서 멍하니 아랫동네를 내려다 봤다는 기사를 읽고 그때 그 소년의 눈빛이 어땠을지,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이 궁금해졌다. 그게 출발이었다. 오디션 때 뭔가를 표현하려고 하는 배우들 대신 멍한 눈으로 뭔가를 중얼거리는 배우를 캐스팅했다. 유다인, 공명 배우도 비슷했다. 표현하지 않고 가만 있어도 여러 감정이 읽히는 얼굴이다. 그런 게 영화적 얼굴이 아닐까.

<마녀>
<악질경찰>

<무뢰한>(오승욱, 2014), <벌새>(김보라, 2018) 등에 참여한 강국현 촬영감독과의 협업은 어땠나. 

촬영하기 전부터 “예쁘게 찍지 않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왜 그리도 아름다운지! (웃음) 제주도가 주요 배경으로 나오는데 그간 제주도 하면 관습적으로 많이 봤던 아름다운 풍경을 전혀 찍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아름다웠나 보다.

 

총 회차는?

58회차. 3개월 촬영 중 한 달을 제주에서 머물렀다. 기본적으로 세트보다 야외 로케이션 촬영이 많았다. 변화무쌍한 제주 날씨와 코로나 상황으로 걱정이 많았는데 운 좋게도 잘 마무리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언제가 가장 즐겁나.

촬영 날 아침밥 먹으러 갈 때?! (웃음) 밥 차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는 사실 좀 괴롭다. 프리 프로덕션을 할 때도 뭔가를 앞두고 있다고 하면 부담이 크다. 본격적으로 프로덕션에 들어가면 촬영 한 번 하고 다음 촬영까지는 긴장의 시간이다. 근데 막상 촬영 당일 날, 특히 아침을 먹으려고 현장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촬영에 들어가도 재밌다. 컷 순서를 두고 관련 회의를 따로 진행하기도 했다. 어떤 컷을 먼저 찍을지, 그 컷 촬영에 할애할 시간은 어느 정도로 잡을지를 미리 계획하는 거다. 언제까지 이 신을 찍어야 하는데 만약 그 시간보다 오래 걸린다 싶으면 먼저 찍을 수 있는 걸 당겨서 찍는 식이다. 근로 조건에 부합할 수 있었고 긴장감을 느끼며 작업할 수 있었다. 스태프들이 도와준 덕분이다.

 

단편을 꽤 많이 만들었다. 평가도 좋았고. 단편의 매력을 꼽자면.

<혜화,동>까지는 전권을 잡고 작업하는 편이었다. 배우에게 심지어 눈을 깜빡이는 것 하나까지 이야기 할 정도였으니까. 촬영이나 음악도 구체적으로 요청하고. 그런데 이 방식을 깨보고 싶었다. 단편이라면 그럴 수 있겠더라.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 만든 단편 <자전거 도둑>(2014), <고양이춤>(2015)은 그런 시도의 결과다. 목표는 분명했다. ‘등록금도 비싼데 최대한 초저예산으로 찍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촬영하고, 서너 명의 스태프로 프로덕션 규모를 최소화하고, 콘티도 미리 만들지 않았다. 촬영을 맡은 친구와 공간을 물색하러 다니면서 ‘이런 분위기의 공간이면 좋겠다’ 정도만 얘기하고 그에게 맡겼다. 배우들에게도 중요한 부분만 전달하고. 그런 방식으로 찍다 보니 오히려 생각지 못한 순간을 영화에 담을 수 있었다. <고양이춤>에서 박성연 배우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찍을 때다. 카메라가 배우 가까이에서 찍다가 트랙 아웃 하기로 이야기를 나눈 상태였다. 테이크를 여러 번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카메라가 뒤로 빠진 뒤 시간이 애매하게 남는 거다. 내심 카메라가 가만히 지켜봐 주길 바랐는데 갑자기 카메라가 배우 쪽으로 다시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땐 그게 너무 이상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런데 편집하면서 보니까 카메라의 그러한 움직임이 인물의 감정과 더 잘 맞더라. 촬영감독 역시 기계적으로 움직인 게 아니라 배우의 감정을 느끼며 움직였을 테니까. 그가 가진 순발력이 훨씬 좋은 장면을 만들어줬다.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의 창의성을 끄집어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개입해서 들어갈 때와 빠져 있어야 할 때를 아는 게 중요하더라.

ⓒ이영진

오랫동안 영화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출 워크숍을 진행해왔다. 가르치는 일은 잘 맞았나.

예전엔 재밌었는데, 최근엔 재미없어졌다. (웃음) 영화과 수업 중 연출 워크숍은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다. 누군가가 쓴 시나리오를 같이 읽으면서 그 사람을 알아가니까, 그러한 작업 끝에 영화 한 편을 완성하는 것이고. 그러니 단순한 강의와는 완전 다르다. 그만큼 학생들과의 호흡이 중요하다. 처음엔 선생님이라는 생각보다는 똑같이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그나마 내가 좀 더 경험한 걸 알려준다는 생각이 있었다. 학생들도 다들 감독이니까 각자 판단해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더 내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 된 것 같더라. 영화과 학생인데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많이 찾아보지 않고. 학생 땐 영화를 좋아하고 재밌어하면 그걸로 충분한데, 아무래도 취업과 생계에 대한 고민이 크다 보니까 영화로 놀고 영화를 즐길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가 뭔가를 더 알려주려는 것보다는 학생들이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길, 뭔가를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알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창작의 즐거움을 가장 크게 느낄 때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트리트먼트를 쓸 때까지가 가장 좋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으니까. 막상 시나리오를 쓰고, 그 시나리오로 투자를 받아야 하고, 이런 현실적인 목표가 생기면 그때부터는 견디는 시간이다. 그러다 다시 촬영하면 좋다. 예전에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도 그랬다. 방송용 아이템은 2~3주간 촬영 대상과 생활하며 찍으니까 촬영하면서 친해진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소위 ‘논다’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현장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 단편 본선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최근의 독립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

재미가 없다고 할까. 만듦새나 참여 스태프의 숙련도는 놀라울 정도로 좋다. 그런데 단편 작업에서 그런 걸 보고자 하는 건 아니잖나. 기발한 아이디어, 도발적인 주제 등 무엇이 됐든 뒤통수를 ‘탁’ 치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더 많은 작품을 찾아보지 못해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으나, 독특하고 이상하고 기묘한 작품을 예전만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도 흥미를 느낀 작품이 있을 텐데.

고봉수 감독의 <델타 보이즈>(2016)와 <튼튼이의 모험>(2017). 정말 신선했다. 자꾸 보고 싶더라. 스토리도 재밌고 인물들이 살아 움직인다.

 

그간 만든 영화를 보면 확실히 유머 욕심이 있다. 다만, 그 욕심을 마음껏 드러내진 않은 것 같다. (웃음) 진지한 상황에서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는 등 관객이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맞다. 웃기려고 한 건데 사람들이 싫어해서 그동안 절제해왔다. (웃음) 예전에는 그런 유머를 더 많이 구사하고 싶었다. 굉장히 심각한 순간에 터져 나오는 실소 같은. 실제 삶이 그렇지 않나.

<도둑 소년>
<혜화,동>

본격 장르영화는 아니지만, 장르의 컨벤션을 활용해 인물의 감정과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사건의 본질을 접하거나 누군가를 알아갈 때 결국 그 접근 방식이라는 건 미스터리에 다름 아니다. 앞서 <도둑 소년>도 소년의 멍한 눈빛이 궁금해 시작했다고 했지만 바로 그 궁금증이 사실은 미스터리와 이어지는 것 아닐까. 눈빛에 어떤 사연이 있는 지를 단번에 확 열어서 보여주면 인물의 감정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으니까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거다. ‘이 캐릭터는 이런 인물’이라고 영화 초반에 설명을 쫙, 하고 그걸 바탕으로 밀고 나가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캐릭터의 외피를 한 꺼풀씩 벗겨가며 그 사람을 조심스레 드러내는 영화도 있다. 나는 후자 쪽에 훨씬 흥미를 느낀다. 본질이 조금씩 드러나는 방식 말이다. <소울메이트>도 그렇게 작업했다. 만드는 사람이 어떤 태도로 인물에 접근하느냐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착취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 인물에 접근하려 한다. 그게 중요하다. <혜화,동>도 미스터리 물을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인물을 보여주려다 보니 미스터리한 방식을 쓰게 된 경우다.

 

레이먼드 카버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와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 그의 소설은 내가 하고 싶은 영화와 닮았다. 짧고 단순한 문장으로 일상에 관해 써 내려가는데도 어느새 보면 본질이 확 드러난다. 한 문장에 담는 정보의 양도 많지 않은데 그 문장들이 모이면 정보 그 이상의 큰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인물을 보여줄 때도 풀숏으로 한 번에 다 보여주는 게 아니라 눈 하나하나, 코, 어깨 등을 하나씩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그게 관객의 머릿속에서 조합되고 완성되길 바라면서. 지향하는 영화의 내러티브 진행, 숏 구성도 그런 식이다. 그걸 영화의 형식으로 가져가 보고 싶어서 <도둑 소년> <혜화,동>에서 의도적으로 클로즈업을 많이 썼다.

 

요즘엔 어떤 창작물에 관심이 끌리나. 

최근은 아니지만, 넷플릭스의 <나르코스> 시즌 1을 재밌게 봤다. 인간의 모순되고 기묘한 면을 장르적으로 풀어냈고 완성도도 상당하다. 판권을 구매하지 않은 상태라 제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여러 챕터가 마치 모자이크 형식으로 구성된 한국소설을 읽었는데 상당히 흥미로워 그중 한 챕터를 모티프 삼아 트리트먼트를 써보기도 했다.

 

<소울메이트>는 올해 개봉이 목표라고 알고 있다. 너무 이른 질문이지만, <소울메이트>를 끝낸 뒤 계획은.

<소울메이트>가 기회가 돼 준다면 영화든, 드라마든 좀 더 자주 만들고 싶다. 지금껏 오래 쉬었으니까. (웃음) 플랫폼 다변화라는 지금의 상황이 양날의 검 같다. 자본의 쏠림이 우려되지만, 창작자에겐 기회가 많아지니까. 그동안 시나리오 개발을 위해 팀을 꾸려 몇 개의 이야기를 준비해온 게 있는데 영상화할 수 있게끔 빨리 완성해야겠다. 결국 가장 필요한 건 스토리 아니겠나. 동시다발, 문어발식으로 해봐야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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