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는 희망
제3회 독립영화비평상 수상자 박동수·오진우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1-03-10

제3회 ‘독립영화비평상’ 수상자로 박동수, 오진우 씨가 선정됐다.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발간하는 비평 전문지 『독립영화』가 주관하는 행사로, 올해도 문서 비평 부문과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 부문으로 나눠 공모와 심사가 진행됐다. 영화로 삶을 돌아보고, 영화로 삶을 꾸려가는 욕심 많은 두 청년은 인터뷰 내내 비평의 한계를 수긍하기보다 비평의 희망을 긍정했다. 참고로 심사평과 수상작은 한국독립영화협회 홈페이지(bit.ly/3sFSLPB)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상 세계, 미래 세대' 

문서 부문 당선자 박동수 

문서 부문 수상자는 장평으로 「‘자동 로그인’된 영화 -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과 <내 언니 전지현과 나>」를, 단평으로 「기억의 시차를 넘어서기 위한 투쟁 -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를 쓴 박동수 씨다. “가상세계의 경험을 다룬 동시대의 독립영화를 다루면서 영화사적 맥락, 게임, 현대미술의 컨텍스트 속에서 가상의 현상학”을 그려보는 그의 장평은 “기성의 영화비평 언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관과 시각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인상”과 “영화, 개인, 세계의 긴장 관계 속에서 형식과 주제를 아우르고 있다는 신뢰감”을 안겨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박동수 씨가 처음으로 영화의 매력에 끌렸던 건,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을 보았던 초등학생 때다. 한강처럼 익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영화의 힘이 신기해 혼자서 거듭 극장을 찾았고, 온라인 세상에서 “오만 이상한 공포 영화들”을 보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나이 제한이 풀린” 스무 살이 되어 처음 가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영화 팬들의 열기와 흥분을 고스란히 느꼈다. 그렇게 열심히 본 영화들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마테리알』, 『콜리그』 같은 새로운 비평 플랫폼에 기고하기도 했다. 지금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에 다니며 미학과 미술사를 공부하는 대학생인 박동수 씨는 졸업 후 계속해서 영화와 어울려 살기를 여러 방향으로 가늠해보는 중이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독립영화비평상’의 문을 두드렸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계속 영화 글을 쓰다가, 작년부터 욕심이 생겨 ‘독립영화비평상’을 시작으로 여기저기 지원을 해봤다. 이번에도 그런 시도의 연장으로 응모하게 됐다. 지난해에는 문서 부문 당선자가 없었는데, 접수된 글 전부에 대해 심사평을 써주셨더라. 그런 평가를 다시 한번 받고 싶었다. 당선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놀라고 당황스러워하다가 수강 신청을 망쳤다. (웃음)

 

학교에선 여전히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나.

그렇다. 작년엔 수강은 물론이고 영화 관람도 주로 집에서 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예전만큼 많이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극장 상영 자체가 적었으니까. 대신 게임을 많이 했고, 관련해서 이런저런 고민도 하게 됐다. 이번에 쓴 장평도 그런 경험과 맞물려있는 것 같다.

 

영화 글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

지방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스무 살 때 서울에 올라왔다. 그러면서 시네마테크나 영화제도 가보고 영화를 많이 봤는데, 보고 나면 항상 내용을 다 잊어버리더라.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블로그에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스물한 살 때 블로그를 만들었으니, 6년 정도 됐다. 이젠 습관이다. 군대에 가기 전에 학교에서 ‘영화와 서사’라는 영문학과 수업을 들었는데, 과제가 만만치 않았다. 팀을 짜서 영화를 찍어야 했고, 매주 영화를 보고 세 쪽짜리 에세이를 써야 했다. 어느 정도 분량이 있는 글을 그때 처음 써봤다.

 

즐겁게 읽은 평론이나 자극받는 종류의 글이 있다면.

어릴 때부터 인터넷을 들락날락하며 접했던 블로그 글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아직도 블로그 하시는 분들에게 가장 자극을 많이 받는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정말 쓰고 싶어서 쓰는 사람들이지 않나. 블로거들은 영화에 대해 그야말로 ‘아무 말’이나 하기도 하고, 전문적인 비평을 쓰기도 하고, 영화사 속 유명한 거장들을 다루는 몇 년짜리 프로젝트를 혼자 진행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 작업이나 비디오 에세이에도 관심이 간다. 내가 할 줄 모르는 종류의 작업이라 더 그런 것 같다. (웃음)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정여름, 2020)과 <내언니전지현과 나>(박윤진, 2020)를 중심으로 가상 세계에 대한 세대 경험을 다루는 비평을 써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공지를 발견해서, 전에 써둔 것들 중 하나를 골라 수정했다. 애인과 만든 ‘씨네미루’라는 모임에서 지난해 10월에 상영회를 열었다. ‘공공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공간을 대여해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과 <내언니전지현과 나> 그리고 <그녀를 지우는 시간>(홍성윤, 2020)을 상영했다. 앞의 두 편이 게임을 다루고 있고, <그녀를 지우는 시간>도 영화 전체가 거의 데스크톱 필름이다 보니, 가상이라는 측면에서 같이 볼 수 있겠더라. 그때 세 편을 엮어 써둔 글에서 중심 줄기를 가져왔다.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내언니전지현과 나>

게임과 같은 가상 세계를 다루는 기존 담론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다.

<1917>(샘 멘데스, 2019)처럼 액션을 롱테이크로 잘 찍었다는 영화가 나올 때마다 ‘게임 같다’는 수사가 심심찮게 붙고, 반대로 새로운 게임이 나왔을 때 ‘영화적’이라는 말도 많이 하는데 그런 수식의 교환이 늘 너무 쉽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게임을 할 때와 영화를 볼 때의 체험이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를 내 나름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두 체험이 어떤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지도 계속 생각하게 됐고. 그러다 때마침 그런 관심사와 연관해서 생각해볼 만한 두 편의 영화를 만났다. 운이 좋았다.

 

기존의 가상-현실 이분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매체 경험에 대해 말하기 위해 ‘자동 로그인’이라는 개념을 가져왔다.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고민하다가 무의식적으로 ‘포켓몬 GO’를 켰다. 사실 오늘도 인터뷰 장소에 오는 중에 계속했다. (웃음) ‘포켓몬 GO’ 같은 게임이 됐든,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됐든 모든 온라인 기반의 플랫폼은 언제나 접속 상태이고, 우리는 항상 그 세계를 보고 있다. 실제로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이나 그전에 나온 게임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서처럼 화려하고 스펙타클한 접속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가상 세계인 오아시스 장면은 다 디지털로 찍고 현실 장면들은 필름으로 찍을 정도로 매체적으로 구분하면서도, 추격 장면 같은 데에서는 두 세계의 연결을 일부러 드러내기도 한다.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의식하지만, 계속 두 세계를 구분 지으려는 영화로 보였다. 내 세대, 혹은 나보다 어린 세대의 경험과 차이가 있는 거다. 그리고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과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바로 그런 지점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봤다.

 

지난해엔 「기억의 조건(들)」이라는 글로 응모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록 장치들의 차이,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서로 다른 기억의 조건에 대해 언급하는 글이다.

확실히 세대 간에 발생하는 경험의 차이가 주된 관심사인 것 같다. 애인의 조카가 아주 어린데, 아이에 대한 모든 기록이 인스타그램에 올라가고 카톡으로 교환되는 걸 보면서 내 경험과 매우 다르다고 느꼈다. 우리는 필름 사진을 모아두는 앨범이나 홈비디오를 기억하는 세대 아닌가. 무엇보다 스마트폰이 전면적으로 보급되는 시기에 성장했으니, 자연스레 관심을 두게 된다.

 

단평으로는 이길보라 감독의 <기억의 전쟁>에 관해 썼다. 기억하는 주체들이 놓인 다양한 맥락을 통해 기억의 시차를 더듬어본다.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에서 청탁받아 썼던 글을 다듬어서 냈다. 영화를 다시 보는데, 한국에 있는 베트남 마을 관광지와 베트남에 있는 땅굴 관광지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이 가장 눈에 띄었다. 거기서부터 시작한 글이다.

 

또 어떤 글을 쓰고 싶나.

당장 떠오르는 주제는 없다. 올해 영화를 보다 보면 생기지 않을까. 상반기에는 계속 바쁠 것 같다. 개강도 했고, 졸업논문도 써야 하고, 얼마 전부터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 인디그라운드’에서 여는 배급 아카데미도 다니고 있다. 일단 그것들을 다 해내는 게 목표다. 곧 졸업인데, 생계를 고민하는 와중에 그래도 영화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다.

박동수 ⓒ이영진

 

 

'영화의 영화'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 부문 당선자 오진우 

“이후로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 부문 당선자 오진우 씨가 받아든 심사평에는 애정 어린 응원이 묻어있다. 그는 당선작인 「<작은 빛>에 대한 단상」 외에도 「<도망친 여자> : 말, 프로필, 와인」과 「장률 플롯의 각도」를 함께 제출했고, 1회부터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 부문에 응모해 온 꾸준하고 활발한 작업자다. 두 차례 연속 쓴맛을 봤다고는 하지만, 최종 심사평에 매번 언급될 정도로 심사위원들은 그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오진우 씨는 거기서 약간의 희망을 얻었다. “나도 어딘가의 최종심에 이름이 올라갈 수 있구나. 오케이, 가자.”

지난해 오진우 씨는 2회 응모작인 「이강현과 얼굴들」을 기반으로 쓴 장평으로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고 다양한 영화 글을 써보는 ‘기회’의 시간을 보냈다.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 같은 새로운 방식이든, 참신한 소재와 내용이든, 그는 영화 비평의 영역에서 ‘나만의 특성’을 찾고 가다듬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중이다. “올해의 당선작으로 최종 선정한 「<작은 빛>에 대한 단상」은 비록 짧은 ‘단상’이었지만, <작은 빛>이라는 한 작품이 품고 있는 정서와 의미를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근본 물음의 자장 안에서 ‘군살’ 없이 잘 드러내고 있는 작업이었고, 하나의 비평적 ‘문제 설정’으로 손색이 없었다.”는 평은 지치지 않는 행동력에 관한 더없는 찬사일 것이다. 

 

 

‘독립영화비평상’ 첫 회부터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 부문에 매번 응모해왔다.

영상이론을 공부하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갔는데, 다들 글을 너무 잘 쓰더라.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을 시도해보면 내 특색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응모했는데 계속 떨어졌다. 숙원사업처럼 마음에 응어리가 남아 있었다. (웃음) 두 번째로 떨어진 날 바로 아이디어를 여러 개 내서 나름대로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만족스러운 결과지만, 이번에 안 됐어도 또 도전했을 거다.

 

영화 비평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나는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등 지금의 베테랑 감독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에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한국 영화를 해외영화보다 먼저 받아들인 세대다. 그렇다고 영화에 빠져 지냈던 건 아니고, 학교 땡땡이칠 때 영화관 가는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 성인이 돼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2010)을 보고 완전히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을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후 편입해서 신문방송학과에 다녔는데, 졸업하고 영화 기자를 하겠다고 얘기하고 다녔으니까. 취업 준비하면서 그런 열정이 다 식었다가, 문득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씨네21』 영화평론상에 응모했지만 떨어졌다. 그러다 입시가 한 달 남은 시점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알게 되어 마지막 테스트라는 생각으로 지원을 준비했다. 할 거면 정말 열심히 하고, 안 할 거면 시작도 하지 말자는 마음이었다.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이라는 돌파구는 어떻게 찾았나.

‘독립영화비평상’ 공모를 보고 처음 알게 됐다. 강좌를 연다는 ‘공공미디어센터 미디액트’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수료생들의 작품이 올라와 있더라. 수강하지 않고도 그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늘 파국의 시작인 법인데. (웃음) 마침 영화와 음악을 섞는 짧은 영상작업을 해보던 시기였다. ‘에이뽈타운’이라는 음악 레이블에서 <시월애>(이현승, 2000)를 노래와 믹스하는 작업을 한 걸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연결할 만한 영화와 음악 목록을 쭉 작성하고 하루에 서너 편씩 만들어나갔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바로 실행하는 스타일인가보다. 원래 영상작업 경험이 있었나.

아니다. 그때 처음으로 해봤다. 편집도 애플에 기본으로 깔린 ‘아이무비’로 계속해왔다. “나는 파이널 컷이 없어서, 프리미어가 없어서 못 해” 라는 변명을 하기가 싫었다. 내가 이걸로 해내면, 다음 누군가도 기초적인 장비로 또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제 슬슬 프로그램을 바꿔보고 싶긴 하다. <에듀케이션>(김덕중, 2019)을 가지고 뭔가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구현을 못 하겠더라. 폭파 효과를 내고 싶었는데. (웃음)

 

「이강현과 얼굴들」이나 「장률 플롯의 각도」 등 다른 작업을 살펴보니 책에서 따온 문구, 라디오나 팟캐스트, 편집 프로그램을 캡처한 화면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더라.

좀 색다르게 해보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개봉한 영화가 다운로드되는 시점까지 기다리다 보면, 이미 수많은 담론이 나오고 또 사그라든 후가 된다. 어떤 새로운 얘기를 할지 치열한 고민이 시작되는 거다. 다른 평론가들을 보면 한 줄 평을 딱딱 써내던데, 나는 그게 잘 안 돼서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렇게 고민하며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대로 비평이 된다고 느낀다. 이것저것 뒤져보고, 작업에 들여온다.

<얼굴들>
<작은 빛>

당선작은 <작은 빛>(조민재, 2018) 한 편에 밀착해 만든 「<작은 빛>에 대한 단상」이다.

일단은 영화가 재밌었다. 「<작은 빛>에 대한 단상」은 사진과 영화라는 테마를, 뇌동맥류가 피와 뿌리, 가족으로 이어지는 흐름과 잘 섞어보려고 노력한 결과다. 1초에 사진 24개가 연결되면 영화가 되지 않나. 영화의 마지막에 가족들이 일렬로 걸어가는 장면이 그것과 이어진다고 여겼다. 아버지의 관을 파고든 나무의 모습이 뇌동맥류가 일어나는 과정과 비슷할 거란 생각에 EBS에서 관련 영상도 열심히 찾아봤다. 실제로 뇌혈관 벽이 얇아지면서 똬리를 트고, 그러다 그게 터져서 뇌출혈이 일어나는 거라고 하더라. 거기서 뿌리나 혈류 같은 단어를 떠올리고 가족과 연결 지으려 했다.

 

직관에 근거하되, 내용을 간결하게 풀어가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그 과정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1995)도 포개본다.

<작은 빛>과 함께 볼 여지가 많은 영화다. 두 편 모두 (극영화) 데뷔작인 데다가 주제적으로도 조응하지 않나. <환상의 빛>에 등장하는 장례행렬이 <작은 빛> 마지막 장면의 가족들과 겹치기도 하고. 할머니가 빛을 쫓아가는 장면을 캡처해 쭉 연결하면서 사람의 행렬이 되고, 또 영화가 되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 내 나름의 형상적 작업인 셈이다. 감상평을 한 줄로 쓰는 대신 하나의 이미지로 그려보는 거다. 「장률 플롯의 각도」 같은 경우엔 그 이미지가 반사경이라는 사물이었다.

 

지난 작업까지 아우르는 꼼꼼한 심사평을 받았다. 특히 ‘자기 반영성’이 특징으로 꼽혔는데.

아무래도 나로부터 시작하게 된다. 「<작은 빛>에 대한 단상」에선 언급을 줄였지만, 그 안에도 자기 반영성이 다 들어있다. 진무가 기억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지 않나.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돌이켜보니, 예전에 산에 갔다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한동안 눈이 안 보인 경험이 떠올랐다. 그것을 시작 부분에 녹여냈다. 그냥 자료를 찾고 그것들을 나열하는 방식에는 크게 흥미를 못 느낀다. 자기 반영성 외에도 심사평에서 여러 키워드를 얻을 수 있어 감사했다. 아쉬운 점으로 언급하신 ‘군살’이라든지. (웃음) 이제는 그런 키워드들을 가지고 재밌게 놀 수 있게 된 것 같다.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 작업은 계속 이어나갈 생각인가.

계속해야겠지. 이미 버릇이 돼 버렸다. 영화를 보다가도 저 장면을 이렇게 잘라서 거기다가 붙이면 어떨까를 떠올린다. 디제이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고 하더라. 이 작업이 적어도 글처럼 읽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고유의 리듬과 센스가 느껴지는, 영화에 가까운 작업을 하고 싶다. 계속 이어지다 보면 나만의 개성이 생기지 않을까. 최근에는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가 특히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에 용이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필름을 자르거나 글을 쓰는 행동 등이 편집점이 되니까. 아니면 시나리오와 영화를 나란히 붙여서 각본의 문제에 대해 다뤄보고 싶기도 하다.

 

영화 자체를 질료로 쓰다 보니, 저작권 문제 같은 것이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있다.

일단은 그냥 가보는 거다. (웃음) 실은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상금은 안 받아도 되니까 그걸로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작업을 맘 편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산업의 측면에서 보자면, 영화를 가지고 만드는 영상으로 수익을 내는 건 영화 유튜버들의 프리뷰 영상이지 이런 비평 작업은 아니지 않나. 무조건 다 막을 일인가 싶은데, 온라인에 영상을 업로드해보면 걸림돌이 의외로 많아서 놀라게 된다. 어쨌든 지금은 내 나름대로 계속 이어가자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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