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츠카 홀란드에게 나치즘과 전체주의는 언제든 출몰할 수 있는 불멸의 망령이다. 야만의 20세기를 몸소 겪으며 폴란드에서 체코로, 다시 프랑스로 거처를 옮겼던 아그네츠카 홀란드는 예술이야말로 망각의 위기에 처한 역사와 미처 드러나지 않은 비극을 소환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켜왔다. 유태인 여인과 그녀를 숨겨준 폴란드인의 사랑을 그린 <전장의 로망스>(1985), 나치즘이 한 소년의 인생행로를 여지없이 뒤틀어버린 <유로파 유로파>(1990), 나치를 피해 지하에서 은둔했던 폴란드인들의 아픔을 조명한 <어둠 속의 빛>(2011), 체코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삼은 <타오르는 불씨>(2013) 등이 대표적이다. <미스터 존스>(2019) 역시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으로 대표되는 1930년대 체제와 이데올로기 아래서 개인이 직면한 실존적 고민과 자각, 분투를 그린다.
역사를 다룬 아그네츠카 홀란드의 많은 작품처럼, <미스터 존스>도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영화화했다. 주인공은 웨일스 출신인 젊은 저널리스트 가레스 존스(제임스 노턴). 히틀러와 인터뷰한 최초의 외신기자로 알려져 있다. 존스는 지상 낙원을 선전하는 스탈린 정권이 막대한 혁명 자금을 어디서 끌어오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모스크바로 향한다.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낙원과 혁명이 아니라 부패와 타락이다. 정치가와 지식인은 술과 마약, 향락에 빠져 산다.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뉴욕 타임스> 모스크바 지국장 월터 듀란티(피터 사스가드)는 스탈린 정권의 비밀에 눈감고 그 대가로 사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 존스는 모스크바로 흘러드는 곡물과 자금이 수백만 인민들의 아사의 대가라는 소문을 듣고,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주저 없이 우크라이나로 향한다. 스탈린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대기근과 대학살, 홀로도모르(Holodomor)를 두 눈으로 확인한 존스는 어떻게든 이 끔찍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 한다.


존스의 결심은 폴란드인 어머니와 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와 홀로도모르 생존자인 조부 밑에서 자란 작가 안드레아 샬루파의 결심이기도 하다. 홀로코스트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홀로도모르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의기투합한 둘은 스탈린과 나치즘이 저지른 죄악에는 타락한 언론과 무능한 정치가 한몫했음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미스터 존스>가 농장의 돼지 떼를 보여주며 아마도 미래에 『동물농장』으로 완성될 글을 집필하는 조지 오웰(조셉 묠)로 시작하는 건 의미심장하다. 존스와 오웰은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동물농장』 역시 존스 사후 10년 뒤에 출간되지만, 영화는 둘의 조우를 통해 소비에트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 허상이었음을 지적한다. 소련 정부에 감금됐다 가까스로 풀려나 런던으로 돌아온 존스는 오웰에게 “스탈린은 당신이 생각한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존스의 확신은 오웰의 각성으로 이어진다.
진실을 향해 내달리는 존스를 중심에 두고 영화는 런던, 모스크바, 우크라이나, 웨일스 등을 오가며 빠르게 전개된다. 특히 홀로도모르에 짓밟힌 우크라이나 장면은 잊기 어렵다. 존스가 우크라이나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영화는 잿빛으로 변한다. 굶어 죽은 자들의 시체 더미와 살아남은 자들의 텅 빈 눈, 존스는 꽁꽁 얼어붙은 설원을 황망히 바라본다. 지옥의 동토, 극단의 폭력 앞에서 인간은 대체 무엇을 행할 수 있는가. 집요한 쾌속의 움직임으로 존스의 추적과 탈주의 다급한 역동을 따르던 카메라가 때론 멈춰 서서 혹은 멀찍이 물러서 인물들의 슬픔과 좌절을 한없이 지켜볼 때, 상처 입은 영혼의 아우성은 몇 곱절 배가되고 증폭된다.


미스터 존스 Mr. Jones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 출연 제임스 노턴, 바네사 커비, 피터 사스가드, 조셉 묠 수입 (주)제이브로 배급 (주)디오시네마 제작연도 2019년 상영시간 118분 등급 15세이상관람가 개봉 2021년 1월 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