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에 맞서는 법
<요요현상> 고두현(with 양주연)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1-01-13

고두현은 의외로 요요를 못했다. 한국에서 요요 잘하기로 유명한 대열, 동훈, 현웅, 동건, 종기를 2011년부터 카메라에 담아왔으니 ‘롤러코스터’ 정도는 식은 죽 먹기로 해낼 줄 알았는데, ‘트라피즈’를 성공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고두현은 그런 자신을 ‘구경꾼’이라 설명했다. “축구도 직접 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챔피언스리그에 어떤 팀이 출전하는지 구경하면서 즐기는 사람도 있잖아요.” 구경꾼에게는 롤러코스터도, 트라피즈도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요요하는 친구들을 관찰하고 요요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했다. 8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요요현상>(2020)을 완성하는 동안, 고두현에게 요요는 영화가 되었다. 꿈과 현실, 취미와 업,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매번 그 사이에서 분주하게 고민했지만, 끝내 영화를 놓지는 않았다.

혼자라면 용기를 내기 어려웠을 텐데, 다행히 고두현은 좋은 동료를 만났다. 친구이자 연인인 양주연은 누구보다 든든한 파트너다.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만났던 두 사람은 감독과 프로듀서로 역할을 서로 바꿔 가며 함께 영화를 만든다. 양주연은 교내 청소노동자를 다룬 <내일의 노래>(2014)와 5.18민주화운동의 흔적을 뒤쫓는 <옥상자국>(2015)을 연출했고, 현재 첫 장편 <양양>을 촬영하는 중이다. 고두현은 <요요현상>을 제작하는 동안, 마석 공단 이주노동자를 기록한 <옥상 위에 버마>(공동연출, 2016)와 <목소리>(2017)를 부지런히 선보였다. <요요현상> 개봉을 앞두고 고두현 감독과 양주연 프로듀서를 나란히 초대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하고 인물에 다가가는 방식을 고민하며 성장해온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옮긴다.

 

 

둘은 어쩌다 친해졌나.

고두현_ 2012년에 다큐멘터리 상영회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본 작품은 마이클 무어의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2009).

양주연_ 와, 우리 되게 ‘올드’한 사람 같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당시 ‘다큐서클’이라는 모임에서 활동하며 상영회를 열었는데, 외부에도 열린 행사여서 다른 학교 학생들도 종종 보러 왔다.

고두현_ 그때는 각자 다른 짝이 있었지. (웃음)

양주연_ 내 기억으론 그날 동건에게 전화를 받았다. 친구를 통해 이미 동건과는 아는 사이였거든. 자기가 좋아하는 형이 영화 보러 한예종에 가는데 길을 못 찾을 수도 있으니 잘 부탁한다고 하더라. 대체 얼마나 좋아하는 형이기에 이렇게까지 챙기나. (웃음) 그 사람이 두현이었다.

고두현_ 당시 나는 중앙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를 보고 얼마 안 지나서 중대 자유인문캠프에 ‘다큐나이트’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려면 많이 봐야 하는데, 집에서 혼자 보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같이 보고 이야기 나누는 게 좋겠더라. 그러다가 주연과도 다시 만났다.

 

다큐멘터리가 맺어준 인연이다.

양주연_ 우리 너무 다큐밖에 모르는 바보처럼 보일 거 같다. (웃음)

<요요현상>
<요요현상>

2012년이면 <요요현상> 촬영을 이미 시작했을 때다. 그때는 이렇게까지 제작 기간이 길어질 줄 몰랐을 텐데.

고두현_ 필모그래피로는 두 번째 장편이지만, 시작한 시점으로는 <요요현상>이 첫 작품이다. 경험이 부족하기도 했고, 워낙 오래 작업하다 보니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렵더라. 애초 꼼꼼하게 기획하고 들어간 작품도 아니었고.

양주연_ ‘영화’를 만든다는 자각이 없던 거 아닌가.

고두현_ 처음에는 그랬다. 처음에만. (웃음) 촬영하면서 엄청나게 헤맸고, 다른 사람에게 피드백을 듣고 중심을 잡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러다 자문했다. 이 작업을 왜 시작했을까? 나는 뭐가 궁금했던 걸까? 결국 친구들이 어떻게 살지, 요요를 자기 삶에서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지 지켜보고 싶더라. 다큐멘터리 제작 기간은 대개 2-3년 정도인데, 그 시간으로는 그걸 확인하기 어려웠다.

양주연_ 두현에게 <요요현상>은 과정이 중요한 작업이었다. 영화 안에서 출연자들이 각자 길을 찾아가듯 두현 또한 작품을 만들면서 연출자로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영화 밖으로 빠져나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답답했을 법도 한데.

양주연_ 답답했지. 사실 여러 번 재촉했다. 우리는 작업 스타일이 꽤 다르다. 나는 기획 단계에서 품을 많이 들이고, 최대한 빠른 기간에 제작하는 걸 목표로 하거든.

고두현_ 나도 지금은 그게 목표다. (웃음) 신기하게 글을 쓸 때도 주연은 제목부터 정한다. 나는 일단 본문을 쓰다가 나중에 제목을 짓고.

양주연_ 작품 성격과도 맞물리는 거 같다. <요요현상>을 포함해서 두현은 그동안 동시대 인물을 카메라에 담아 왔다. 그들의 삶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마무리할 시점을 잡기 어려웠을 거다. 결국 외부에서 정해준 마감 일자가 계기가 되더라. 작년 부산청년영화제에 출품하면서 후반 작업에 속도가 더해졌다.

 

감독과 프로듀서라는 역할을 오가며 작업하기가 어렵진 않나.

양주연_ 사실 나 자신을 프로듀서라고 인지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요요현상>의 경우, 편집 과정부터 함께했다. 요즘 배급과 개봉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나도 팀원이구나’ 싶더라.

고두현_ 주연이 참여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 <요요현상>은 거의 혼자서 만든 작품이나 마찬가지다. 제작 여건이 여의치 않다 보니 심적으로 힘들었다. ‘이걸 누가 보겠어?’ 회의하며 그만두려고 했던 적도 있다. 그때 주연이 “적어도 지금 요요를 하는 친구들에게는 충분히 유의미한 이야기”라며 포기하지 말라고 하더라. 주연을 통해 프로듀서의 역할을 배워 나간다. 옆에서 힘을 불어 넣으며 작품의 의미를 발견해주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고두현 ⓒ이영진

창작자이자 동료로서 상대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양주연_ 어, 생각해본 적 없는데. 먼저 말해봐. (웃음)

고두현_ 각자 잘하는 영역이 다르다. 이번 작업도 그랬지만, 주연이 <옥상자국>을 연출할 때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보통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며 넘기는 일을 주연은 삐딱하게 바라볼 줄 안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지지.

양주연_ 두현은 영화를 작업하며 출연자와 친구가 되고, 영화를 마친 후에도 꾸준히 관계를 유지한다. 나는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고,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먼저 연락하는 일도 거의 없다. 두현을 옆에서 지켜보며 좋은 영향을 받았다. 무엇보다 혼자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옥상자국>을 마치고 나서 한참 고민했다. 영화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혼자 작업해야 한다면 어렵지 않을까. 그때 두현이 보였다. 8년 동안 우직하게 <요요현상>을 만드는 사람. (웃음)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물은 적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두현처럼 계속 쌓아나가는 방식으로 작업하면 고립감을 덜어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간 다른 작품도 만들었다. <옥상 위에 버마> <목소리>는 마석 가구공단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는데.

고두현_ 대학원에서 마석으로 답사를 갔을 때 미얀마 이주노동자를 만났다. 처음엔 고용허가제로 짧게 한국에 온 다른 분을 소개받았다. 꽤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도 서로 말이 안 통해서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그분이 한국어를 잘하는 친구를 데려 왔다. 그때 온 친구가 영화에 등장하는 마르코 형이다. 형을 보자마자 호기심이 생겼다. 이미지만으로도 궁금증을 자아내거든. 우리끼리 ‘다큐멘터리 모멘트’라고 부르는 순간인데, 찍고 싶다는 마음이 ‘확’ 생기더라.

 

인물에 매력을 느끼는 순간이 중요한가 보다. 전작과는 다른 분위기지만 <요요현상> 또한 인물에 대한 애정 없인 불가능한 작업이다.

고두현_ 결국 내 관심사는 ‘선택’이다. 인물이 무얼 선택하는지, 그로 인해 삶에서 어떤 결과를 마주하는지 따라가고 싶다. <요요현상>의 주인공들이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듯, <옥상 위에 버마>에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과 옥상에 남기로 한 사람이 나란히 등장한다. 그러한 선택의 의미를 보여주고 싶고, 이를 통해 인물의 역사와 사회적 배경을 드러낼 수도 있다고 본다.

<옥상 위에 버마>
<목소리>

<요요현상>을 선택한 순간은 어땠나. 그때의 ‘다큐멘터리 모멘트’는?

고두현_ 본래 친구인 동건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자들은 2011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머물렀는데, 동건이 친구들과 팀을 꾸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온다고 하더라. 공연을 기록해줄 수 있냐고 묻기에 알았다고 했다. 다큐멘터리를 찍겠다는 계획은 없었지만 궁금하긴 했지. 마지막 공연이라고 했거든. ‘정말 이렇게 끝낸다고?’ 하면서 따라 나섰다. 축제 마지막 날, 정말 멋지게 공연을 끝내고 꽃가루를 뿌리면서 퇴장할 때 ‘다큐멘터리 모멘트’가 찾아왔다. 이들이 한국에 돌아가서 어떻게 사는지 지켜보고 싶더라. 2012년 말에 대열과 현웅이 전문 공연자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갔다. 다큐멘터리 공부와 제작을 병행하는 시기였다. 작업하다 보니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요요와 나>라는 단편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요요현상>의 밑그림이 된 작품인가.

고두현_ 맞다. 10분 남짓한 영상을 4편 만들었다. 그중 마지막 편의 주제가 <요요현상>과 살짝 겹친다. 공연자가 된 둘은 더는 취미로 요요를 즐길 수 없어서, 다른 일을 선택한 친구들은 좋아하는 요요를 후순위로 미뤄야 해서 힘들어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불행하다고 해야 할까. (웃음) 그런 식으로 마무리해서 아쉬웠고, 친구들의 선택을 긴 호흡으로 봐야겠다 싶어 장편 준비를 시작했다.

 

편집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 찍었으니 분량도 방대하고, 촬영 방식이나 수준도 변화했을 텐데. 

고두현_ 처음에는 ‘왜 그걸 안 찍었지? 어쩜 이렇게 엉망으로 촬영했지?’ 하며 자책했다. 근데 어느 순간에는 과거의 나에게 고마워지더라.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하다가 찾아보면, 필요한 장면이 딱 나오는 거다. (웃음) 첫 상영 이후에도 조금씩 손을 봤다. 동훈이 오지 못한 2014년 요요대회 장면은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전에 추가했다. 대열은 동훈을 찾고, 현웅과 종기는 요요를 생업으로 삼은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대열과 현웅이 갈등하는 내용은 원래 버전에도 있었지만, 한 명은 작업실에서 풍선 마임을 연습하고 다른 한 명은 요요를 연습하는 상징적 장면은 추후에 더했다.

<요요현상>
<요요현상>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발에서 촬영한 공연 영상은 너무 잘 찍었더라. 첫 촬영이었다니 놀라운데, 당시 촬영 팀을 따로 꾸려서 갔나.

고두현_ 혼자였다. 중간에 에든버러로 여행을 온 대학 동기 중 한 명이 B카메라를 잡아주기는 했지만 거의 혼자 찍었지. 사실 되게 못 찍었다. 15일 동안 촬영한 분량 중에 정말 좋고 좋은 것만 골라내서 만든 거다.

양주연_ 편집 때 고생했다. 여러 번 시도해서 만든 장면이다.

 

출연자들도 카메라에 적극적으로 다가오더라.

양주연_ <요요현상> 특유의 에너지가 거기서 나온다. 출연진이 감독과 카메라를 어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고두현_ 다행히 모두 영상 매체에 친숙하다. 미디어 전공자도 있고, 어릴 적부터 요요를 해온 터라 촬영 경험도 많다. 대회에 나갈 때는 6mm 비디오로 찍어두었고, <스타킹> 같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도 있다.

 

그래도 촬영과 개봉은 또 다른 일이다. 출연자들이 과거의 생각과 감정, 모습을 다시 마주하는 것에 어떤 반응을 보였나. 설득이 필요하진 않았나.

고두현_ <요요와 나>를 만들 때부터 친구들과 영상을 공유했고, 어떤 채널에 공개하기 전에는 항상 동의를 구했다. 신뢰가 쌓인 덕분에 전 과정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개봉을 확정하고 나서는 오히려 응원을 많이 받았다. 워낙 오랫동안 마무리를 못한 채 붙잡고 있었으니까. 특히 <요요와 나>를 만든 2013년 이후로는 촬영 장면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 완성하긴 할 거냐는 질문도 여러 번 들었거든. 기왕 이렇게 된 거 평생 찍으라고 농담하기도 하고.

양주연_ 부산청년영화제 첫 상영이 기억난다. 다들 부산까지 와서 응원해줬다. 야외 상영이었는데, 하필 그날 비가 너무 많이 왔다.

고두현_ 천막에 물이 고여서 떨어지고. (웃음)

양주연_ 출연진 대부분은 영화제를 가본 경험이 많이 없다 보니, 원래 이렇게 힘든 일이냐며 두현을 안쓰럽게 보더라. (웃음)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도 다 같이 와줬는데, 그때는 조금 떠는 기색이었다.

고두현_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보는 건 처음이니까.

양주연_ 개봉에 관해서 막연하게 생각하다, 포스터 촬영 날은 뭔가 본격적으로 일이 진행되는 풍경 때문인지 긴장하고 그랬다.

 

앞서 말한 6mm 비디오 영상이 궁금했다. 영화 초반에 90년대 광고와 뉴스를 통해 요요 열풍이 일어나던 사회 분위기를 환기한 후, 등장인물의 유년 시절 모습을 보여준다. 자료 영상은 어떻게 수집했나.

고두현_ 요요를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정보는 열심히 찾아봤다. 어떤 스포츠든 직접 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기를 챙겨보며 즐기는 사람도 있지 않나. 나는 요요를 구경하고 자료를 찾는 과정이 재밌더라. 파면 팔수록 신기한 게 계속 나왔다. 요요가 일제강점기에도 유행했다는 사실을 아나? 무려 1920년대에 요요 챔피언을 촬영한 흑백 영상이 남아 있더라. 출연진은 199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고,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각종 요요 기술을 영상으로 공유하는 문화에서 자랐다. 특히 선수 중에 유영상 씨라고 있는데, 그분이 모아놓은 자료가 상당했다. 어떻게 이름도 영상인지. (웃음) 본인이 참석한 대회와 각종 ‘번개’ 모임 등을 오래 촬영했더라. 대열이 요요 커뮤니티 역사를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그분에게 6mm 테이프를 전달받아 보관하고 있었다. 영상 씨에게 동의를 구한 다음, 테이프를 디지털로 변환해서 영화에 사용했다. 다른 친구들은 쓸 만한 영상이 많은데, 동건이가 좀 부족했다. 서울이 아닌 부산과 창원에서 활동했고, 또 톱 플레이어가 아니어서. (웃음)

<요요현상>
<요요현상>

인물 소개 방식도 인상적이다. 마치 재야의 고수를 불러내듯 한 명씩 호명하는데, 이름 옆에 주 종목과 대회 성적이 명기될 때는 왠지 모르게 뭉클하다.

고두현_ 인물 소개가 큰 과제였다. 이들이 어떻게 요요를 접했고 무엇에 이토록 매력을 느꼈는지 오프닝에서 설명해야 했다. 그래야 관객도 이들에게 요요가 얼마나 중요한지, 왜 고민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니까. 다행히 다섯 인물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더라. 개별 경험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와중에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거든. 대부분 텔레비전이나 만화책에서 요요 공연을 처음 봤고, 경품을 준다는 말에 혹해서 요요를 시작했다. 일단 재미가 붙으면 좀 더 잘하고 싶지 않나. 그렇게 인터넷 커뮤니티를 찾아가고 서로 알게 된다. 거리에서 요요를 선보이며 박수 받고, 공연을 더 잘하고 싶으니까 다 같이 모여서 준비하고.

양주연_ 비슷한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또래다 보니 공동의 문화를 경험한 거다. 근데 나는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요요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 줄 몰랐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 지역과도 관련이 있는 거 같더라. 동건을 제외하면 출연자 모두 서울 출신이다. 수도권 중심의 문화가 아니었나 싶다.

고두현_ 사실 요요의 성격은 도시의 조건과 굉장히 맞닿아 있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아이들의 놀이 문화가 아닐까. 축구는 넓은 야외 부지가 필요하지만, 요요는 자기 방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또 그걸 촬영해서 PC통신에 업로드해 누군가와 같이 즐기는 놀이니까.

 

코로나 시대에 추천할 만한 놀이다.

고두현_ 진짜 그러네. (웃음) 나도 요요를 하지는 않았지만 출연자들이 이야기하는 당시 문화엔 익숙하다. 중학생 때 이영도의 판타지 소설에 푹 빠져서 PC통신으로 연재소설을 찾아 읽었거든. 울산에 살았는데 온라인으로 사귄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까지 간 적도 있다.

양주연_ 나도 ‘팬픽’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인터넷 문화가 막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PC통신으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메일 계정을 만들어서 연락을 주고받고.

 

또래 문화를 공유하는 세대로서 인물을 바라보는 동시에,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로서 묘한 유대를 느꼈을 텐데.

고두현_ 에든버러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요요에 별 감흥이 없었다. 동건이 요요를 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저 특이한 취미 정도로만 여겼지. 근데 에든버러에 머무는 보름 동안 사람들과 급속도로 친해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다 같이 촬영본을 모니터링하곤 했다. “여기가 아쉬우니까 내일은 이렇게 해보자”라며 진지하게 공연을 평가했지. 그때 동경이라는 감정이 생긴 거 같다. 요요에 열정적인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뭘 잘하지? 나에게도 이만큼 좋아하는 게 있었나?’ 싶더라.

 

감독이 문현웅 씨에게 “공연하는 건 좋아?”라고 물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현웅 씨는 너무 좋다고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걸 또 잃어버릴까 봐” 걱정이라고 답한다.

고두현_ 영화에는 안 썼는데 에든버러 공연이 끝나고 나서 한 사람씩 인터뷰 했다. 시간이 지난 후에 그때 영상을 다시 보니 선택의 씨앗이 보이더라. 근데 촬영하면서는 미래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 현웅, 동훈, 대열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길로 나아갔다. 그게 참 좋더라. 영화를 시작할 때 계획했던 것들이 뒤집어지고, 결국 예상과는 전혀 다른 장면을 마주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걸 깨닫고 경험하는 게 다큐멘터리를 찍는 재미 같다.

양주연 ⓒ이영진

양주연 감독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

양주연_ 동훈이 “어느 우주에는 요요하는 내가 있겠지”라고 말하는 장면. 덤덤하게 하는 말인데 듣고 있으면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요요로 똘똘 뭉쳐 분투하던 다섯 친구는 서서히 멀어진다. 각자 나이를 먹고 다른 목표를 찾아 떠나는 모든 과정은 자연스럽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내심 아쉬웠을 거 같다.

고두현_ 다시 모일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2011년에 <무한도전>에서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를 열었다. 여러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서 멋진 무대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때로는 의견 차이로 티격태격하기도 했지. 우여곡절 끝에 공연을 마쳤을 때는 화면에 엔딩 크레디트만 남더라. 문득 엔딩 크레디트를 보고 나서 다음에는 저들이 어떻게 살지 궁금해졌다. <요요현상>의 현웅, 대열, 동건, 종기, 동훈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에든버러에서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 그들이 맞닥뜨린 변화를 지켜보는 일이 중요했다.

 

<요요현상>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에 에필로그를 통해 다섯 인물의 현재 모습을 짧게 보여준다. 결국 모든 이야기를 갈무리할 시점은 어떻게 정해졌나.

고두현_ 내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인물이 나아가기 시작했을 때가 분기점이었다. 단지 요요를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 다음까지 담고 나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두 번째 선택이 발생하기를 기다렸던 거다. 인물들은 “그만둬서 아쉬워.”라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결심을 들려준다. 또는 “계속하는데 너무 힘들어. 그래서 난 이렇게 해볼 거야.”라고 말한다. 대열이 유학을 떠나고 동훈이 자신을 긍정하며 다시 대회에 나가는 시점이 그때다.

 

엔딩에서 양주연 감독은 요요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를 인터뷰한다. “5년 넘어도? 10년 넘어도?”라며 재차 요요를 계속할 거냐고 묻더라. 왜 그렇게 반복해서 물어 봤나.

양주연_ 대회장을 가득 채운 수백 명의 아이들을 보며 무척 놀랐다. 정말 많은 숫자였고 열띤 분위기였다. 아이들은 본인을 선수라고 소개하는 동시에, 상대 역시 선수로서 인정하고 대우했다. 그야말로 ‘프로’의 세계였지. 밖에 나가 보니 다들 진지한 얼굴로 요요를 연습하더라. <요요현상> 출연진의 어린 시절이 자연스럽게 겹쳐 보였고, 그때 영화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건 다섯 명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구나. 어쩌면 그 아이들이 <요요현상>의 또 다른 주인공일 거라는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옥상자국>
<40>

양주연 감독의 <양양>은 언제쯤 공개할 예정인가.

양주연_ 촬영과 편집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아마 내년에는 완성할 수 있을 거다. 그동안 몰랐던 고모의 존재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시작한 작품인데, 고모가 왜 가족의 비밀이 되었는지 추적하는 내용이다.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여성의 삶과 죽음이 어떤 방식으로 그려졌는지 살펴보며, 내 이야기를 통해 이를 현재와 연결하려고 한다. 1970년대와 2010년대를 잇는 ‘K-장녀’ 다큐멘터리가 될 거 같다. (웃음)

고두현_ 이제 역할이 반대로 바뀌었다. <양양>은 주연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가족사가 섞이기에 부담감이 클 거다. 재밌고 필요한 이야기이니 열심히 만들라고 북돋는 중이다.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이 감독이라면, 두 번째는 피디 아닌가. 때로는 감독이 못 보고 지나친 걸 봐주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작업해나가려고 한다.

 

얼마 전에는 함께 영화사 ‘금요일’을 열었다.

양주연_ 아직은 둘뿐이지만 느슨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둘이서 모든 일을 소화하고 싶지도 않다. 가능성을 열어두며 최대한 많은 사람과 협업하고, 이를 통해 작업을 확장하려고 한다. <양양>에는 두현 외에도 강사라 프로듀서도 함께한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위해 작가도 섭외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며 항상 새로운 이미지에 갈증을 느껴 온 터라 이번 작업이 무척 기대된다.

 

고두현 감독도 차기작 <안경, 안경들>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고두현_ 1989년에 의문사한 이내창에 관한 이야기다. 2014년 이장식에 영상 기록으로 참여하면서 ‘이내창기념사업회’ 선배들과 교류하게 됐다. 수십 년 전에 벌어진 사건을 여전히 잊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꽤 오래 고민했는데, 운이 좋게도 푸티지를 많이 얻었다. 이내창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학생회장이었고, 예대에는 영화과도 있다 보니 영상 자료가 여러 편 남아 있더라. <안경, 안경들>이라는 제목은 의문사자와 의문사자의 친구들을 의미한다. 이내창이 사망했을 당시 현장에서 발견한 안경을 함께 묻었는데, 이장하는 과정에서 그 안경이 나왔다. 내게는 그때가 또 다른 ‘다큐멘터리 모멘트’였다. 둘러보니 그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대부분 안경을 쓰고 있더라. 다들 나이가 들었으니까.

양주연_ 선배들은 이제 5-60대에 접어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청년 같은 느낌이 있다.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다. 만날 때마다 저런 어른도 있구나, 감탄한다.

고두현_ <안경, 안경들> 역시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선배들은 젊은 시절에 겪은 친구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스스로 선택했고, 그 결과로 지금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 과정이 흥미롭다. 작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기획개발지원을 받았는데, <요요현상> 후반 작업을 진행하느라 촬영이 계획보다 늦어졌다. 2월부터 본격적으로 촬영한다.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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