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발끝으로
<걸>
차한비 / Choice / 2021-01-05

벨기에의 젊은 감독 루카스 돈트의 첫 장편영화 <걸>은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 주목할 만한 시선 남우주연상(빅터 폴스터), 국제비평가협회상, 퀴어 종려상까지 4관왕을 차지했다. 현재 독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무용수 노라 몽세쿠흐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 발레리나를 꿈꾸는 10대 트랜스젠더 여성 라라(빅터 폴스터)가 통과하는 치열한 시간을 그려낸다. 국내에서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제8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바 있으며, 억압에 맞서는 성소수자 청소년의 도전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영화는 일부 비평가로부터 자격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걸>이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출품되었을 당시, 평론가 올리버 휘트니는 <더 할리우드 리포터>를 통해 “<걸>은 트랜스젠더 캐릭터에 관한 가장 위험한 영화”라고 주장했다. 휘트니는 영화의 감독과 주연 배우가 시스젠더 남성임을 강조하며, 특히 성기를 포함한 라라의 신체를 집요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문제 삼았다. “트랜스 트라우마 포르노”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노라 몽세쿠흐는 <인디 와이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내 이야기는 시스 젠더 감독의 환상이 아니다. 라라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다.”라고 강경하게 입장을 밝혔다.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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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노라 몽세쿠흐는 각본 집필부터 캐스팅에 이르기까지 제작과정 전반에 깊이 관여했다. 루카스 돈트는 2009년에 신문 기사를 통해 당시 15세였던 노라 몽세쿠흐의 이야기를 접했다. 소년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낯선 인물에 매료된 감독은, 약 10년 동안 노라 몽세쿠흐와 교류하며 영화를 완성했다. <걸>은 새로 이사한 집에서 깨어난 라라의 얼굴로 시작한다. 발레 학교에서는 입학 결정을 유보하며 8주간의 시험 수업을 제안하고, 병원에서는 호르몬 치료를 받을 날이 기대되느냐고 묻는다. 변화와 지연 사이에서 라라는 불안에 휩싸이지만 대개 감정을 감추며 침묵한다.

당사자성을 의심하는 시각에서는 라라가 신체 변형에 집착하고 자해를 시도하는 장면을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라라가 갈망하는 무대를 들여다볼 때, 몸을 향한 강렬한 집중은 불가결해 보인다. 발레는 정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이자 엄격한 전통이 지배하는 세계다. 성별 이분법적인 사회의 축소판처럼 꽉 막힌 그곳에서 라라는 어떻게든 설 자리를 찾으려 애쓴다.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변화 속도에 절망하기도 한다. 다른 ‘여자애들’이 12세에 시작하는 푸앵트에 뒤늦게 도전할 때 라라는 홀로 전쟁을 치른다. 중력을 거스르는 행위를 반복할수록 발은 피투성이가 되지만, 라라는 눈앞에 놓인 무대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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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비틀거리는 라라에게 “정말 원한다면 노력해야 해. 원래 그런 거야.”라고 완강하게 다그친다. 결국 발레는 라라의 구체적인 목표인 동시에, 그녀가 평생 지속해온 싸움을 상징한다. 정체성을 재단하는 편견과 친밀감을 빙자한 폭력에 대항하며 라라는 발끝으로 선다. 누구도 대신하거나 온전히 알아차릴 수 없는 고통을 온몸으로 관통하는 라라에게 아빠는 말한다. “네가 얼마나 용감한지 모르는구나.” 이때 라라는 “본보기가 되는 거 싫어요. 여자가 되고 싶을 뿐이죠.”라고 단호하게 응수한다. 라라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도, 사춘기 소녀의 복잡한 감성을 내보이는 전형적 인물도 아니다. 노라 몽세쿠흐가 말했듯 <걸>은 라라의 이야기이고, 라라는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며 도약하고 회전하는 일에 골몰하는 한 사람이다. <걸>로 첫 연기에 도전한 현대 무용수 빅터 폴스터는 몸짓과 표정을 통해 라라를 우아하게 해석한다.

 

Girl 감독 루카스 돈트 출연 빅터 폴스터, 아리 보르탈테르 수입 더쿱 배급 리틀빅픽처스 공동배급 더쿱 제작연도 2018년 상영시간 105분 등급 15세이상관람가 개봉 2021년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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