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쉼 없이
SIFF 2020 <사상> 박배일
글 김선명 사진 이영진 / Festival / 2020-11-27

성희는 한평생 노동 현장을 떠돌며 살았다. 가족을 위해 일을 쉬지 않던 그가 어느 날 사고로 왼손 검지를 잃고 우울증에 시달린다. 수영은 재개발 지구에서 쉼 없이 투쟁했다. 기나긴 싸움 끝에 남은 건 몇 가구 안 되는 마지막 주민들의 안타까운 외침과 지친 기색뿐이다. 이들이 노동하고 투쟁했던 부산 사상구는 1980년대 부산 최대 공업 지대였던 사상공단이 있는 지역. 이제 사상공단은 최첨단 스마트 시티 사업으로 제2의 센텀시티를 꿈꾼다. 자본의 광폭한 발톱이 휩쓸고 간 바로 그 자리에 두 가부장이 위태롭게 서 있다. 

사상은 박배일 감독이 30년을 살아온 곳이다. 지난 10년, 그의 카메라는 긴박한 투쟁 한가운데 머물렀다. 연대가 필요한 현장에서 잠시 물러난 그가 사상으로 돌아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그림자를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인물의 피폐한 정신과 현실의 뒤틀린 공간을 예민하게 감각하면서 영화라는 존재에 관해 되묻는다는 점에서 <사상>은 <밀양 아리랑>(2014) 이후 박배일 감독이 거듭해온 고민의 연장이기도 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에서 처음 공개된 <사상>은 11월 26일 개막한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부문에 초청됐다.

 

 

<사상>은 오래전에 시작된 이야기다.

영화를 시작하고 2, 3년 지났을 때였다. 부산 영화의 전당 자료실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을 무료로 볼 수 있었다. 거기서 영화를 많이 봤다. <나비와 바다>(2011)를 편집하던 즈음이었는데,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공간을 다룬 중국 영화였다. 그때 사상을 처음 떠올렸다. 어릴 때부터 살던 곳이라 그 공간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조사를 해보니 자본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들이 깊게 배어 있는 곳이었다. 당시 품고 있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번 찍고 몇 사람 만나면 될 거라고 가볍게 시작했는데 (웃음) 결국 이제야 완성했다.

 

사상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어릴 적 기억과도 마주쳤을 것 같다. 사상은 어떤 곳이었나.

더러운 삼락천이 맨 먼저 떠오른다. 공장이 밀집해 있어 악취가 끊임없이 진동했다. 새카만 폐수 위로 버려진 냉장고가 떠다니고. 사람을 토막 내서 버렸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어둡고 무서운 곳이었다. 피부색이 다른 이주노동자에게 쭈뼛쭈뼛 다가가서 같이 놀기도 했다. 어른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아이들을 잡아먹는다고 겁줬는데, 나는 두려우면서도 피부와 언어가 달라 그들에게 눈길이 갔다.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Awan(아완)의 노래 중에 ‘모라 산책’이 있다. 아버지가 사는 곳이 사상구 모라동인데 아완이 그러더라. 다른 사람들은 소음과 쓰레기로 모라와 사상을 생각하는데, 자신은 모라를 산책할 때 노동자들이 밤에도 일하는 공간의 매캐한 냄새까지도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나 역시 그렇다. 부모님이 다툴 때마다 나와서 동생을 달래던 집 앞 도로가 아픈 기억으로 남았지만,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날이면 그 도로에서 신발 벗고 뛰어다니며 자유를 만끽했다.

<사상>
<사상>

<소성리>(2017)부터 계속 아완과 음악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아완의 정서가 나와 잘 맞는다. 현장에서 느낀 감각을 소리로도 전하고 싶었다. 주인공의 몸과 사상이라는 공간으로부터 소리를 만들었다. 첫 가편부터 함께 본 뒤 콘셉트를 정리해 주면 거기에 맞게 음악을 만들어 준다. 사실 아완과 작업하는 게 쉽진 않다. 내 의견대로 단번에 수정하는 법이 없다. (웃음) <소성리> 때도 6번을 넘게 고쳤다. 계속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이젠 영화가 꼭 내 감각으로만 이뤄지지 않는구나, 그렇게 수긍하며 협업을 즐기고 있다. 엄청 열심히 하는 친구다. (웃음) 다른 감독들한테도 많이 추천하고 있다.

 

생각이 바뀔 만큼 오랜 기간 작업했다.  

<밀양 아리랑> 이후 관객들이 내 영화와 만났으면 하는 지점이 바뀌었다. 밀양 때는 투쟁에 연대하는 매개체로서의 영화를 가장 앞서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목표로 했던 것보다 영화는 작을 수도 있겠더라. 내 영화적 현장은 어디까지나 투쟁 현장인데 영화가 내가 생각했던 연대로서의 매개가 될 수 없다면? 난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영화가 무엇인지 하는 고민이 많았다.  

 

연대의 매개, 영화가 그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밀양 아리랑> 개봉할 때 처음 버전에서 정말 많이 수정했다. 관객들에게 더 친절하게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관객 수가 너무 적었다. 우리가 사는 현재의 공동체는 투쟁 영화를 반기지도 않고 그게 좋은 연대 도구도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쟁하는 우리끼리는 위로와 자극이 되겠지만, 다른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도구는 아닌 것 같았다.

박배일 ⓒ이영진

<밀양 아리랑> 이후 작품에서 투쟁 현장과의 긴밀한 결합을 넘어 영화적 야심이 두드러지는 것은 그런 고민의 결과라고 봐도 되나. 

(웃음) 극장까지 영화를 보러 오는 분들에게 영화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 이미 이야기는 포화 상태 아닌가. 관객 스스로 질문을 품을 수 있도록 이야기가 아닌 감각으로 현장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까만 큐브 안에 엄청난 사운드와 좋은 화질을 갖추고 선형적 흐름을 강제할 수 있는 극장이라면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면서 사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변해갔다. 이걸 정리하면 내가 이제껏 세상과 영화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고백할 수 있겠더라. <라스트 씬> 끝내고는 이걸 가장 시급한 나의 현장이라 여기고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모라동에 사는 아버지 성희와 만덕 5지구 대책위 (부산 북구 만덕동은 사상구와 인접한 지역이다. 2001년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된 만덕 5지구는 70년대 중반 도시정비사업으로 초량과 영도 일대 판자촌 주민들을 강제 이주 시켜 형성된 동네. 2011년 보상계획이 재개된 다음부터 보상액 현실화와 주거권 보장을 외치는 주민들과 LH의 갈등이 본격화됐다. 일각에선 ‘제2의 용산’이라 불리며 6년 동안 긴 싸움이 이어졌다.) 최수영 대표가 영화를 끌고 간다.

원래는 최수영 대표가 아니라 만덕 5지구 여성 활동가를 찍었다. <사상>에 아주 잠깐 등장하는 아기 엄마다. 최수영 대표와 비슷하게 이 공간에 살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분이었다. 공장지대가 많은 사상에서 환경 운동을 오래 해온 여성 활동가도 인터뷰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공간과 사람을 할퀴는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은지 고민하다 두 분의 삶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가 해답을 제시할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해당 부분을 편집하면서 뺐다.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사상>의 몫이 아닐까. 그 몫을 잘 해내기 위해 최수영 대표와 내 아버지인 성희를 중심에 두고 이들의 삶과 꼭 닮은 사상을 연결했다.

 

만덕 5지구 투쟁 때도 촬영을 계속했다고 들었다. 그것도 긴급한 투쟁이었을 텐데 다른 작품들과 달리 그 자체로 영화를 완성하지는 않았다.

일단 그 당시가 밀양에 연대했던 끝자락이었다. 그래서 밀양을 더 잘 정리해야 했다. 또 소성리나 밀양처럼 가시적인 투쟁이 폭발적으로 있진 않았다. 재개발 지역의 투쟁 현장이 부산에 엄청나게 많지 않나. 내부적으로 공동체가 와해되는 고통을 겪었지만 밖에서 봤을 땐 흐지부지하게 투쟁이 마무리되어 버렸다. 그걸 껴안고 영화를 만들기엔 나도 부담스럽고 함께 투쟁했던 공동체도 힘이 빠지고.

<사상>
<사상>

성희는 영화 시작 후 얼마 안 가 손가락이 잘린다. 수영의 투쟁 역시 전세가 꺾인 지 오래다. 밀양이나 소성리에서 싸우던 여성들의 기운과는 사뭇 다르다.

성희와 수영 모두 어떤 시기가 지난 시점에 영화가 시작한다. 자본주의가 휙 지나간 뒤 또 다른 형태로 변하고 있는 사상과 비슷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 공간과 이 사람들이 어떻게 바뀌는가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게 사상을 넘어선 우리 이야기로 느껴졌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했던 한 노동자, 공동체를 지키려고 투쟁한 한 인간이 그 모든 시간 이후에 어떤 삶을 사는가. 결국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의해 홀로 남겨지는 사람들이다.

 

대안과 희망보다 쇠락해가는 지금을 절박하게 알린다는 뉘앙스가 <라스트 씬>에 이어 계속된다.

대안이 환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밀양 아리랑>의 마지막. 지금 보면 엄청난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 장면을 보고 위안과 용기를 얻겠지만, 정작 주인공들은 다시 절망감에 빠질 수도 있겠더라. 영화를 같이 보고 극장에서 이야기 나눌 때는 서로가 마지막의 기운으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주인공들은 집에 돌아가면 다시 송전탑이 보이지 않나. 영화로 현실을 담는 다큐멘터리가 이런 환상을 줘도 되나 무서웠던 적이 있었다. 섣부르게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지금 이곳을 더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작업을 <사상>까지는 해야 했다.

 

80여 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불, 물, 바람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챕터 별 주된 이미지의 구분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초반 30여 분에는 성희가 손을 다치는 시점에 보이는 주조 공장의 불부터 ‘달집태우기’(정월 대보름날 액을 쫓고 복을 빌기 위해 나무나 짚으로 만든 달집에 불을 질러 주위를 밝히는 놀이)의 거대한 불이 있고, 뒤이은 30여 분은 집에 물이 새는 장면에서 시작해 성희가 목욕하는 장면에서 기분 나쁘게 축축한 느낌이 강조되며 마무리된다. 수영이 망루에 올라 농성하기 시작하면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카메라가 집중적으로 느껴진다.

녹인 쇠붙이를 거푸집에 부어 물건을 만드는 주조 공정은 실제 9년 전 사상공단의 한 공장에서 찍은 거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요즘엔 그렇게 안 하니까. 불은 화의 근원이 될 수도 있고 소원을 비는 대상이기도 하다. 물 역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지만 누군가에겐 대단한 골칫거리일 수 있다. 망루 위에서 시원하게 바람을 맞는 수영 대표와 바람이 불 때마다 덜거덕거리는 망루의 위태로움도 한 장면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필수적이면서도 사람들을 떠밀거나 위협하는 자연의 이중성을 보여주려 했다. 이야기가 아닌 감각으로 현장을 전달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봐주면 좋겠다.

<사상>
<사상>

노동자들이 잠자면서 꿈꾸는 것처럼 서로 연결 짓는 시퀀스도 있다. <소성리>부터 꿈을 이야기했다.

인간이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악랄하게 변한 이 세상의 결정체가 코로나 아닌가. 계속 꿈을 꾸는 것 같다. 엄청난 폭력들이 난무하는데 개인은 외로이 유령처럼 떠다닌다. 그래서 꿈, 특히 엄청난 악몽 안에 있는 것처럼 장면을 이어보려 했다. 사람들은 다 고립되어 악몽을 꾸고 있는데 그 악몽은 서로 이어져 있다. 자고 있는 이들은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후반부에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본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전할 때 역시 꿈꾸듯 부유하는 느낌의 화면을 사용했다.

이 상황과 약간 떨어져서 이야기하려 했다. 내레이션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집약해서 이야기하는데, 그걸 보여주는 방식은 이전까지 이 영화를 보여줬던 방식과 달리 확 떨어뜨려서 이상한 기운처럼 느껴지도록. 두 번째 내레이션은 프로듀서가 그러더라. 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안 그런 사람들에겐 자의식 과잉으로 보일 수 있다고. 그런데 어차피 이 영화 자체가 엄청난 자의식 과잉이지 않나. (웃음) 사실 여기서도 내가 숨으면 안 되겠더라. 처음엔 아버지도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성희로 부르려 했다. 하지만 누구의 평가와 상관없이 내가 활동했던 시간을 고백하는 거라면 내가 빠진 상태로 고백하는 건 정말 치사하지 않나. 치사하기도 하고 아예 영화가 성립이 안 될 수도 있겠더라. 적절한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손발이 오그라든다, 여전히. (웃음)

 

올 초부터 밀양에 아완을 포함한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영화가 연대의 효과적 매개가 아니라면 그 매개가 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다. 내 주변에 있는 예술가들과 함께 밀양에 들어가면 어떨까. 그들이 할머니들과 소통하면서 할머니들이 그 예술가들의 영역에서 자기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기록을 하는 사람이니까 구술 아카이빙을 하고. 다른 예술가들은 무용, 음악, 미술 등의 분야에서 어떤 시기가 될 때마다 각자 자기표현을 하는 거다. 그렇게 계속 밀양의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서 나올 수 있게. 그 결과물로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나오는 거고, 아니면 그냥 구술을 중심으로 계속 활동하고. 그렇게 올해부터 3년 정도 보고 있다.

 

내년이 오지필름 10주년이다.

기획전을 준비 중이다. 오지필름 작품을 중심으로 2010년대를 돌아볼 수 있겠더라. 내년 9월 정도부터 전국을 돌며 상영할 예정이다. 그 기획을 위해 <사상>을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할까 고민하고 있다. ‘강원래 프로젝트’라는 4대강 옴니버스 때 만든 <비엔호아>(2011)라는 단편이 내가 드러났던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였다. 우연히 10년 뒤에 <사상>이 나왔다. <비엔호아>처럼 내 이야기이면서 낙동강 이야기이기도 한. 그래서 <비엔호아>와 함께 10년 동안 나와 사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개하는 방식의 구성도 가능할 것 같다. <사상>은 많은 물음표가 있을 영화다. 그런 물음표를 지워갈 방법을 여러모로 구상 중이다. 물음표가 없는 영화들이 너무 많은데, 관객들 스스로 그런 물음표를 느끼고 힘들더라도 그걸 느낌표나 마침표로 바꿔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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