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1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엄마. 예측불허인 시아버지만 해도 버거울 텐데 시아버지와 따로 사는 시어머니까지 살갑게 챙기는 엄마. 촌수조차 따지기 어려운 먼 시댁 친척의 결혼식까지 한달음에 달려가는 엄마. 심지어 ‘집을 나가 따로 살자’는 시아버지의 통보에도 엄마는 이사 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째서 엄마는 ‘시월드’를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무엇이 엄마를 붙잡고 있는 걸까.
한태의 감독은 엄마를 향한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고서 자신의 첫 장편 <웰컴 투 X-월드>를 완성했다. 감독 나름대로 엄마와 ‘시월드’ 사이의 관계를 추측해 보기도 하지만, 단박에 정리되지는 않는다. 다만, 영화가 진척될수록 점점 더 선명해지는 건 정 많고 사람 좋아하는 엄마의 에너지, 가족이 함께 산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오랫동안 살아온 공간을 쉬이 떠나지 못하는 엄마의 긍정과 낙천의 힘이다. 사람과 관계를 귀하게 생각하는 엄마에게 이 복잡다단한 ‘시월드’는 탈출의 영역이 아니라 사랑의 장소일 지도 모르겠다. <웰컴 투 X-월드>는 비록 ‘시월드’에 관한 생각은 달라도 친구처럼 함께 하는 이들 모녀의 성장과 독립, 새 출발을 흥미롭게 지켜본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 시선상과 올해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고양상을 받은 <웰컴 투 X-월드>가 10월 29일 개봉한다. 한태의 감독을 미리 만나는 자리에 이나연 감독을 인터뷰어로 초대했다. 뿔뿔이 흩어져 사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못, 함께하는>(2016)을 시작으로 이나연 감독은 극영화 <쓰리 룸>(2017),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2018) 등을 통해 가족 서사를 확장해왔다. 두 감독은 친밀하면서도 먼 가족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기까지의 과정과 고민에 관해 묻고 답했다. ‘가족의 발견’이 그녀들에게 남긴 것들에 관한 대화이기도 하다.
이나연_ 개봉, 축하한다. (웃음)
한태의_ 실감 나지 않는다. 개봉을 커다란 이벤트라고 생각하면 괜스레 긴장되니까 그렇게 생각지는 말아야지. 개봉하면 엄마와 함께 GV에 참석할 일이 많을 것 같아서 걱정을 덜었다. 내가 엄마 앞에서는 떨려도 안 그런 척을 잘한다. (웃음)
이나연_ 배급사인 시네마달에서 개봉을 먼저 제안한 건가.
한태의_ 학교 선생님인 정지우 감독님께서 개봉을 준비해보면 좋겠다며 시네마 달의 김일권 대표님께 찾아가보라고 추천해주셨다. 내가 찾아갔을 때 대표님께서도 마침 내게 연락하려던 참이라고 하시더라. 기분이 엄청 좋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 먼저 연락해주실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볼걸’ 하는 마음도 살짝…. (웃음)
이나연_ <웰컴 투 X-월드>를 보면서 <못, 함께하는>을 만들 때 생각이 많이 났다. 학교 과제로 만든 영화라 만들 때만 해도 그 영화로 관객을 만날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다. 그러다 인디포럼2016의 개막작으로 상영하게 됐고 시네마 달에서 배급하자는 연락이 왔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이어졌다. (<못, 함께하는>은 뒤이어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단편경선 우수상,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을 받았다.)
한태의_ <못, 함께하는>을 장편으로 만들어볼 생각은 없었나.
이나연_ 학교 과제라 무조건 30분에 맞춰야 했다. 물론 찍을 땐 장편이 되고도 남을 정도의 분량이 나왔지만. 작업할 때마다 느끼는데 영화의 몸집이 자꾸만 커져 큰일이다. (웃음) 인터뷰어를 제안받고 ‘감독님과 나의 접점이 뭘까’를 생각해 봤다. 감독님 영화도 가족이 중요한 촬영 대상이고 작업의 참여자이며 영화를 같이 만든 스태프가 아닐까 싶었다.
한태의_ 가족을 찍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상을 같이 보내니까 촬영 스케줄을 따로 잡지 않아도 되고. 그런데 촬영할수록 촬영과 촬영이 아닌 때를 구분하는 게 어려워졌다. 엄마와 내가 싸웠을 때가 대표적이다. 엄마가 ‘찍지 말라’고 한다. 나도 감정이 상해서 안 찍는다. 그런데 영화상으로는 그런 날이 정말 중요하잖나. 또 엄마를 인터뷰할 때 내가 엄마와 진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너무 어렵더라. 연출자로서의 나와 딸 사이에서 역할 구분이 안 됐다. 그러다 겨우 어려운 질문을 하고 엄마의 대답을 들으면 나 역시 가족의 일원이다 보니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이 모든 게 처음 겪는 과정이었다.
이나연_ 가족을 찍다 보면 내가 연출자이면서 동시에 촬영 대상이 되니까. 영화에 필요한 질문인데 그걸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더라.
한태의_ 엄마가 어떤 성격과 성향의 사람인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그런데 한편으론 놀라기도 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엄마가 강한 사람이더라. 내 딴에는 이런 질문을 하면 엄마가 답을 피하겠지 싶었는데 오히려 덤덤하게 답하는 거다. 그런 엄마가 되게 멋있었다.
이나연_ 내게 <웰컴 투 X-월드>는 어머니의 건강한 기운으로 기억될 것 같다. 개봉하면 어머니의 팬이 많아지지 않을까. (웃음) 엄마가 본인 인생을 후회한다며 우실 때 마음이 아팠다. ‘엄마 세대를 이 ‘시월드’에서 어떻게 구하지? 어떻게 그녀들을 꺼내줘야 하지?’ 막 답답하고. 그런데 또 사람에게 이토록 애정이 넘치는 어머니라니. 그 기운으로 지금껏 자신의 삶을 꾸려온 분이라고 생각하니 걱정할 필요 없이 안도가 됐다.
한태의_ 엄마에게 잘 전하겠다. (웃음)
이나연_ 나는 시나리오 쓸 때가 제일 괴롭고 촬영할 때가 가장 즐겁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할 때도 구성안을 짜라고 하잖나. 그런데 다큐멘터리는 예상할 수가 없으니. 한창 찍고 있다 보면 내가 CCTV 찍듯 전부 다 찍으려고 드는 게 아닐까 싶다. 촬영도 꽤 오래 했을 것 같고 장편이라 촬영 소스도 상당했을 텐데 어떻게 가닥을 잡고 지금의 이야기를 만들었나.
한태의_ 촬영은 6~7개월 정도 했다. 찍을 때까지만 해도 단편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땐 주제도 명확하지 않았다. 일단 엄마를 찍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따로 살자’고 말씀하시는 바로 그 일이 벌어진 거다. 일단 이사는 가겠지 싶어 그것까지 찍어보려 했다. 그렇게 찍다 보니 내가 엄마에게 반복해서 하는 질문이 있더라. 시가를 향한 엄마의 희생에 관한 부분이었다. 나는 엄마의 희생에 화가 날 대로 났고 감정적으로 폭발하기 직전까지 가 있었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나와 엄마는 왜 이렇게도 다르지?’, 질문이 생겼다. 그렇게 촬영을 마쳤고 편집은 1년 뒤에 시작했다. 그동안은 소스만 뒤적였다. 가족들 나오는 걸 보는 재미가 크더라. (웃음) 한데, 막상 편집하려니 너무 막막했다. 기획과 구성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고 있다가…. 다른 장편 다큐멘터리들을 찾아보며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파악하고 곧바로 엄청나게 큰 화이트보드를 사서 장면 장면마다 번호를 매겨가며 구성을 해갔다.
이나연_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영화를 통해 엄마가 어째서 ‘시월드’를 벗어나지 못하는가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질문이 진척되지 않는 것 같더라. 엄마를 향한 의문에서 그친 것처럼 보인달까. 그러다 또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어쩌면 감독님에게는 이 질문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영화에서 감독님이 연출자인 동시에 가족이고 엄마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참여자이다 보니 그 중 ‘하나의 역할만 해야지’라고 선을 긋기가 어려웠을 거다. 왠지 감독님은 이 중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를 고민하기보다는 가족이 맞은 큰 변화 앞에서 엄마 곁에 있으면서 엄마를 잘 지켜봐 주는, 엄마의 동반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역할로 이 영화에 참여하는 게 감독님에게는 더 중요한 게 아니었을까.
한태의_ 맞다. 나와 엄마의 관계 맺기가 그러하다. 엄마와 진지한 얘기를 하다가도 나는 꼭 장난치고 싶다. 나만 입을 다물고 있었어도 엄마가 더 말해줬을 텐데. 내가 꼭 말을 해서 못 쓴 장면이 꽤 많다. (웃음) 영화를 완성한 후 집에서 엄마에게 영화를 처음 보여드렸는데 엄마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안 웃는 거다. ‘영화가 재미없나?’ 걱정했는데 가만 보니까 엄마가 울고 있더라. “그냥, 슬프다. 이거 사람들이 다 보는 거야? 좀 부끄럽다”고 했다. 영화가 처음으로 공개됐던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 엄마랑 GV를 하는데 관객들이 엄마에게 많이 공감하며 “멋있다”, “잘 살아오셨다”고 따뜻한 말을 많이 해주셨다. 엄마가 정말 좋아하셨고 관객들과 만나면서 이 영화가 훨씬 더 좋아졌다고 말씀하시더라. 엄마도 영화로 좋은 영향을 받고 생각의 변화도 경험하고 있는 거다.
이나연_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건 감독님과 어머니가 서로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음에도 서로를 지지하고 같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태도였다. 어떻게 가족끼리 서로 할퀴지 않고 싸울 수 있을까. 가족끼리는 서로의 밑바닥을 다 드러내며 공격하지 않나.
한태의_ 엄마와 크게 싸운 적이 거의 없다. 가족에게 내 밑바닥을 드러내는 게 내게는 더 큰 상처인가 보다. 그렇게까지는 안 하게 된다. 엄마 생각은 다르려나? (웃음) 아, 한 번 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내가 영화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다. 엄마와 3개월간 대화를 하지 못 했다. 엄마가 나를 투명 인간처럼 대하는 바람에…. (웃음) 나는 성인이 돼서도 연애 상담부터 친구들 사이의 고민까지 모두 엄마와 이야기할 만큼 편한 사이다. 친구와 싸우면 얘랑 다시 못 볼 수도 있겠다 하는 불안이 있는데 엄마와는 싸워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런데 그땐 무려 3개월이나 말을 못 했으니. 너무 힘들었다.
이나연_ 감독님은 할아버지께서 엄마에게 나가서 살라고 하셨을 때 엄마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이는 이유를 나름대로 추측해보기도 한다. ‘이사 갈 돈이 없어서’, ‘20년 넘게 산 이 집에 정이 들어서’ 등등.
한태의_ 사실 촬영을 다 마친 뒤에 감독인 내가 이런 식의 접근을 한다는 건 누가 봐도 페이크가 아닌가. 그런데도 그렇게 한 건 ‘이것은 이래서 이렇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의견을 확실하게 전달하기보다는 내가 항상 엄마에게 갖고 있던 질문을 영화 내내 계속해가고 싶었다.
이나연_ 엄마에게 실제로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나.
한태의_ 엄마가 불편해할까 봐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이사를 못 가는 이유가 당연히 경제적인 이유일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엄마가 경제적으로 준비가 안 됐는데 내가 물어보면 엄마가 불편하지 않겠나. 평소에도 나한테 더 많은 걸 못 해줘서 미안해하는 엄마니까. 엄마와 부동산에 갔을 때도 당연히 전세나 옥탑방을 알아보겠구나 싶었다. 엄마가 집을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거다.
이나연_ 감독님과 어머니가 이사를 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분이 할아버지다. 감독님도 할아버지를 향한 복잡한 마음이 있었을 텐데 정작 감독님은 할아버지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거나 할아버지에게 질문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태의_ 할아버지가 따로 살자고 했을 때 솔직히 ‘할아버지가 왜 그런 생각을 하셨지?’와 같은 건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좋았고 신이 났다. 오히려 영화를 공개하고 관객 질문을 받으면서 그 부분을 생각하게 됐다. 엄마에게 내가 더 질문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할아버지와의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내가 피한 거다. 그러고 보니 계속 내가 피하기만 했던 것 같다. 또 러닝타임을 고려했을 때 이 영화에서 할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가족인 할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따로 살자고 하니까 굉장히 서운했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밉기도 했고 피하고 싶었으니까. 그런 내 감정의 핵심만 잘 전달하면 될 것 같았다. 대신 나와 할아버지의 시퀀스에는 음악을 넣어 설명을 대신하고 싶었다.
한태의_ <못, 함께하는>을 보니 감독님은 나와 달리 돌파형이더라. 아버지나 동생들과 대화할 때도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 화법이다. 내 속이 다 시원하더라. (웃음) 가족을 대하는 방식이 나와는 달랐다. 난 성격상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가족을 사랑하니까 가족에게는 그냥 속아주고 싶을 때가 많다. 엄마와 나는 친구 사이처럼 다 얘기하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서로의 속내를 모르는 척할 때도 많다. 사랑을 주고받는 내 방식이 그런가 보다.
이나연_ 나도 가족들을 보면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왜 없었겠나. ‘왜 남들처럼 살지 못하지?’라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웰컴 투 X-월드>를 보며 ‘이런 식으로도 가족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구나’ 싶더라. 무엇보다 어머니와 감독님을 보면서 ‘이런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망할 일 없어!’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딸의 우정을 봤달까. 어머니가 어린 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으셨지만, 오히려 그게 어머니를 무너뜨리기는커녕 더 강하게 만든 것 아닐까. 특히 시댁 친척분의 결혼식에 참석한 엄마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할 때 엄마의 표정이 소녀 같았다. 또 새로 들어갈 집을 두고 “좋다”, “행복하다”고 하는 엄마를 보니 내가 다 울컥하더라. 엄마가 어떻게 살아오셨을지 지난 삶이 가늠되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한태의_ 결혼식장에 갔을 때 엄마 표정이 완전 아기였다.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정작 ‘강아지’라고 불릴 사람은 난데 다들 엄마를 보면서 ‘우리 강아지 왔느냐’는 듯 반기고. 그걸 보는데 가족이란 정말 뭘까 싶더라. 모르겠다, 정말. (웃음) 나도 <못, 함께하는>에서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다. 영화의 시작부터 좋았다. ‘불안을 재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전등을 바꿨다’라는 감독님의 내레이션에 정말 공감했다. 나도 불안해서 정작 중요한 일은 미뤄두고 갑자기 책 정리를 한다든지, 일기장을 꾸민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다. 근원적인 질문에 돌입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는 거다. 영화가 그렇게 시작하는데 감독님이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이 영화 안으로 데리고 가려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영화 후반부에 감독님이 아버지와 동생들과 함께 차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과정도 좋더라. 내비게이션에는 도착지가 분명히 나와 있지만, 그곳을 찾아가기까지는 쉽지 않고 우왕좌왕하고. 이 가족만의 방법과 형태로 오래도록 서로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응원하게 되더라.
이나연_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나도 오랜만에 <못, 함께하는>을 다시 봤다. 그 시기의 내가 가족의 의미를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더라. 가족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당시의 내가 했던 중요한 생각을 많이 잊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영화를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한태의_ <웰컴 투 X-월드>를 엄마 나이가 돼서 다시 보면 어떨지도 정말 궁금하다. 엄마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이 영화가 내겐 선물 같다. 영화를 만든 후 나와 가족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잘하는 걸 보면서 난 종종 엄마한테 과장해서 극단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엄마 한 명밖에 없어!” 그런 내 태도가 영화에 고스란히 찍혀 있는 걸 보니까 어찌나 꼴 보기 싫던지. 엄마가 시댁 일을 하는 게 그렇게 싫었으면 내가 나서서 엄마 대신 하거나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아야 했는데 나는 그저 말만 하더라. 더는 말로 엄마를 재단하지 말아야지. 당장 나의 작은 습관도 못 고치면서 50년 넘게 그렇게 살아온 엄마를 바꾸겠다는 게 가능한가. “나는 요즘 이렇게 생각해. 엄마는 어때?”라는 식으로 대화를 시작하려 한다. 엄마가 자발적으로 행동을 바꾸면 그게 제일 이상적이고 멋진 일 아닌가. 또 예전에는 할아버지 댁에 가는 것조차 싫었는데 요즘은 엄마가 같이 가자고 하면 그렇게 한다. 그게 엄마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길이라고 생각하니까.
이나연_ 나도 가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서 가족들 간에 믿음이 생긴 것 같다. ‘우리 가족에게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영화를 통해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들어볼 수 있었구나. 잠정적으로나마 정리해둘 수 있었구나’ 하면서. 그 경험 자체가 정말 필요했다. 사적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나서 생긴 믿음이다.
한태의_ 다큐멘터리를 찍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엄마는 되게 약한 사람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엄마만 속일 것 같아서 늘 내가 엄마를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를 찍고 생각이 바뀌었다. 엄마가 다른 사람들을 잘 챙긴다는 건 엄마가 내적으로 그만큼 단단하고 풍요로운 사람이라는 증거더라.
이나연_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한태의_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공부만 열심히 잘해서 대학에 가면 탄탄대로일 거로 생각했다. 그러다 삼수를 하며 독서실 생활을 하는데 하나도 행복하지 않더라. 미래에 대한 고민을 그때 처음 하게 됐다. 그러면서 주도적으로 생각하는 힘도 생겼고. 그때 우연히 영화 <파수꾼>(연출 윤성현, 2011)을 보게 됐는데 단박에 영화의 매력에 빠졌다. 2시간짜리 영화가 누군가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대단하더라. 뭔가에 강렬하게 끌려본 게 그때가 처음이다. 앞서 말했듯, 그때 엄마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지만.
이나연_ 우리 집은 방치, 아니 방목형의 집이라…. 대신 아빠가 교육열이 강해 강남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엄청난 사교육을 받으며 공부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 있다 보니 내 인생이 숫자로만 평가받는 것 같았다. 정말 답답한 유년기였다. 그러다가 만난 영화는 말이 아닌 다른 언어로 내 경험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 신기했다. 감독님은 지금까지 가족에 관한 장‧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가족 이야기 말고 다른 서사로 시선을 이동해가고 싶은가.
한태의_ 그렇다. 다큐멘터리는 엄마였기에 찍을 수 있었다. 탐구하고 싶은 대상이 생긴다면 다큐멘터리도 찍을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무조건 극영화를 만들고 싶다. 실제 내 일상에 나타난다면 정말 곤란한 캐릭터이지만 영화에서만큼은 더없이 매력적인 경우를 그려보고 싶다.
이나연_ 이경미 감독님 영화 속 여성 주인공들 같은?
한태의_ 정말 좋다. <친절한 금자씨>(2005)의 인물들도 내 일상에서 만난다고 생각하면 감당이 안 되지만 영화에서는 계속 보고 싶지 않나.
이나연_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나 보다.
한태의_ 트리트먼트 작업 중이다.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로 가득 찬 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나연_ 큰 이야기라면?
한태의_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이야기랄까. AI 같은 설정도 좋고. 지금까지는 내 경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나를 벗어나 상상의 세계를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나연_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시도한다는 건 창작자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큰 이야기라는 표현이 나와서 혹시 사적인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데 한계를 느낀 적이 있었나.
한태의_ 되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극영화 작업에 관심을 두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인물 한 명 한 명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런 태도로 극영화 캐릭터도 아끼며 소중히 그려갈 거다. <벌새>(2018)의 김보라 감독님이 진행한 에세이 수업을 들은 적 있다. 내가 회피했던 과거에 관해 글을 썼는데 수강생 한 분의 코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이 작가는 어렸을 때 사고로 아빠의 잃고 현실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생존한 게 아닐까. 언젠가 꼭 자신의 과거와 마주할 것이고 잘 이겨낼 것이다.” 그 에세이로 아빠 이야기를, 이번 다큐멘터리로 엄마 이야기를 한 번씩 정리했다. 이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보려 한다. 그렇게 조금씩 더 단단해지길 바라면서.
이나연_ 나도 그런 과정을 거쳐 온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만드는 사적인 이야기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여성들이 하는 이야기를 ‘사적인 것’이라고 말하며 마치 덜 중요한 일로 폄하하는 문화가 있지 않나. 사적인 이야기라도 누가, 어떤 위치에서, 또 어떤 시대적 맥락 속에서 하느냐가 중요한데 말이다. 자기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를 하려는 욕망 자체는 굉장히 중요하다. 여성들이나 소수자가 ‘나는 이러해’라고 말하면 왜 그런지 질문부터 받아야 하고 그 이유를 증명하고 납득시켜야 하는 일이 너무 많더라. 여성들이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 나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더 하려 한다.
한태의_ 궁유정, 이옥섭 감독님과 작업실을 공유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글쓰기를 한다. 하나의 문장을 두고 각자 글을 쓰면 서로 읽고 피드백 해주는 거다. 한 사람의 글을 연속해서 읽다 보면 그 사람의 세계에서 계속해서 감지되는 유사한 감정이 읽힌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그 사람의 성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더라. 나연 감독님만이 써 내려갈 이야기, 감독님만의 캐릭터가 정말 기다려진다.
이나연_ 요즘은 영화를 잘 만들어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욕심이 예전보다는 덜해졌다. 지금은 같이 작업하는 여성 창작자들과 어떻게 하면 더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간다. 영화를 만드는 새롭고 또 다른 방식을 도모하고 싶다. 영화 현장, 특히 독립영화나 단편 영화 현장은 고용의 매뉴얼도 충분하지 않고 노동을 착취하면서 “고생했다”는 말로 퉁 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내가 일하는 현장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도록 하고 싶다.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다.
한태의_ 작업실을 공유하면서 내가 느끼는 바도 비슷하다. 혼자 있으면 늘어지는데 모여 있으니까 서로서로 자극하고 힘이 돼준다. 동료 감독들이 영화를 찍었다고 하면 내 일처럼 기쁘다. 힘든 과정을 뚫고 완성한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으니까. ‘그래, 우리 다 할 수 있어!’ 용기가 생긴다. 더 열심히 작업해서 동료들에게 힘이 되고 자극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