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처음과 끝에는 여러 이름과 호칭이 등장한다. 김순악, 김순옥, 왈패, 사다코, 대루코, 요시코, 마츠자케, 위안부, 기생, 마마상, 식모, 엄마, 할매, 미친개, 술쟁이, 개잡년, 깡패 할매, 순악 씨. 모두 다르게 부르지만 결국 하나였던 사람, 김순악은 1928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다.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소작농 집안의 딸이었고 아래로 남동생이 둘이었다. 실을 뽑는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을 때가 열일곱. 전쟁이 끝난 후에도 김순악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유곽에서 술장사를 했고, 미군 기지촌에 들어가서 ‘색시 장사’를 했다. 홀로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는 동안 거처를 옮겨 다니며 식모살이도 했다. 2000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공식 인정받았고, 2010년 숨을 거두기 전까지 증언과 캠페인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보드랍게’라는 영화 제목은 생전에 김순악이 남겼던 말에서 따왔다. “내 이야기 해가지고 ‘어이구 그랬구나, 너 참 애묵었다’ 이렇게 보드랍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소녀 혹은 할머니로 재현하는 방식에 문제를 느꼈던 박문칠 감독은 김순악의 생애 전체를 돌아보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에는 김순악의 증언과 활동가 인터뷰, 애니메이션, 아카이브 영상, 그리고 증언을 낭독하는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까지 다양하게 담긴다. 더는 당사자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어떻게 그의 삶을 되돌아볼지 고민했던 박문칠 감독을 만났다.
(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이 제작에 참여했다. 본래 인연이 있는 단체인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2018년 가을에 처음 만나서 작업을 제안받았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창작자를 수소문하다가 내게 연락을 주셨더라. 전작을 이미 찾아보신 상태였고, 영화에 관해서는 창작자를 전적으로 신뢰해주는 분위기였다. 작품 방향이나 내용에서도 특별히 요구하는 바는 없었다. 다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할 수 있는 작품이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작업을 제안받았을 때, 솔직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뭐였나.
부담스러웠다. 이미 훌륭한 작품이 여럿 나왔고, 오랫동안 이 주제를 고민해온 분들과 비교하면 나는 아는 게 없으니까. 자칫하다가는 의도와 다르게 도리어 누를 끼칠 위험도 있다 보니 선뜻 대답할 수가 없더라. 우선 생각해보겠다고 말씀드리고 벼락치기 하듯 자료를 찾아보면서 고민했다. 작년 3월부터 촬영을 시작해서 완성하기까지 1년 정도 걸렸다. 사실 영화를 만들면서도 종종 불안했다. 100퍼센트의 확신을 갖고 출발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중간중간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했다. 예상한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더라. 개인 작업이 아니다 보니 시간 면에서도 아주 여유롭게 생각할 수는 없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루는 경우, 창작자 스스로 자격을 묻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치는 듯하다. 감독 역시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리라 짐작한다.
무엇을 어디까지 또 어떻게 다룰 것인지 거듭 고민했다. 결국 영화는 고인의 삶 중에 일부를 선택해서 보여줄 수밖에 없는데, 그때 함부로 그분의 삶을 단정하거나 인상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편, 이미 끝난 문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사회 문제이기에 숙고해야 할 부분도 있었다.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온 활동가들과 관심을 두고 지켜본 국민에게 폐가 되면 안 되니까. 자기 검열까지는 아니지만 현실과의 긴장감은 계속 가져갔던 거 같다. 다큐멘터리를 작업할 때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는 김순악의 ‘위안부’ 피해 사실이 아니라, 출생부터 사망까지 이르는 생애를 재구성한다. 전기 쓰기의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왜 하필 김순악을 선택했는지 듣고 싶다.
시민모임 측에 김순악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한 활동가가 “할매가 감독님 마음에 꽂혔군요”라고 하시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랬던 거 같다. 거칠고 직설적인, 뭔가 에둘러서 이야기하는 법이 없는 캐릭터에 매료됐다. 쉽게 곁을 주지 않는 성격인데, 어떻게 보면 그래야만 살아낼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 가능하면 생애를 골고루 바라보고 싶었다. 생전에 입버릇처럼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라고 하셨더라. 증언하면서도 항상 의구심을 표현하셨지. 내가 말한다고 해서 상대가 온전히 알아듣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아는 분이었던 거다. 일부만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식이 아니라,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며 가장 응어리진 부분을 들여다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사는 동안 그런 인정을 바라신 듯하다. 특히 해방 이후 김순악의 삶에 주목했다. 성매매에 종사한다든지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른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봐온 ‘위안부’ 서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이었기에 더 마음이 갔다. 이제는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지 않나. 단지 한일 문제로만, 일본이 사과하면 우리가 이기는 문제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순악이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살펴보고,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폭력에 관해서 대화해야 할 시점인 거 같다.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다룬 <파란나비효과>(2017)나 대구퀴어문화축제를 담은 <퀴어053>(2019) 등 전작과 비교하면, 이번에는 참고할 자료와 기존 작품이 너무 많아서 어려웠을 거 같기도 하다.
전부 확인하고 알아야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시민모임과 협업하며 대구와 경북으로 지역적인 폭은 좁혀졌는데, 그곳에서 보유한 자료만 해도 양이 상당했다. 어쩔 수 없이 활동가에게 많이 의존했다. 대부분 10년 이상 활동해오며 당사자와 직접 관계를 맺은 분들이기에 방향을 잡아나가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할머니 성격이라든지 자잘한 일화처럼 공식 자료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치 극영화 캐릭터를 구상하듯 조금씩 인물을 그려 나갔다. 관객 입장에서 누구를 만나면 좀 더 흥미로운 만남일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했고. 결국 제약을 장점으로 끌어안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돌아가신 분이기에 제약이 많다고 여겼다. 새로 촬영을 할 수도 없고, 궁금한 점이 생겨도 직접 물어볼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뵙는다고 해서 그분 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활동가에게 남은 할머니의 흔적에 집중하면서 압축적으로 전해 듣는 과정을 거쳤다. 김순악 개인은 물론이고, 운동의 역사와 쟁점에 관해서도 흔쾌히 답해주셨다.
인터뷰와 기록 영상 외에 애니메이션을 사용했다.
젊은 관객에게는 길잡이로 삼을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야기만 들어도 자연스레 어떤 풍경을 떠올릴 수 있지만, 아무래도 젊은 세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나. “이때는 이랬어”라고 정리한다기보다는 힌트를 주는 정도로 톤을 맞춰 나갔다. 한편 애니메이션은 김순악을 이해하는 하나의 레이어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여러 버전의 김순악이 존재한다. 낭독자가 이해한 김순악이 목소리로, 음악감독이 해석한 김순악이 음악으로 담기는 것처럼 애니메이션에서는 애니메이터가 본 김순악이 드러난다.

영화 제목처럼 ‘보드랍게’ 느껴지는 그림체가 인상적이다. 애니메이터와 작업할 때는 어떤 과정을 거쳤나.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이재임 애니메이터와 만났을 때 “우리가 처음에 무슨 얘기를 했지?”라고 물어봤다. (웃음) 시간이 흐르다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했거든. 초반에 그림체를 두고 여러 차례 논의했다.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당사자와 꼭 닮은 모습으로 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당대 여성이 경험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가닿기를 바랐다. 애니메이터도 동의하는 부분이었고, 자연스레 좀 더 일반화할 수 있는 이미지를 고안해나갔다. 실제 김순악은 깡마르고 호리호리한 체형인데, 애니메이션에서는 팔다리가 굵고 둥글지 않나. 이번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작가 본인의 머릿속에 남은 최초 이미지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모든 스태프와 출연진에게 김순악의 증언이 담긴 책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카이>를 전달했다. 책을 읽고 난 후에 감상을 나누면서 작업했는데, 사람마다 인상 깊게 읽은 대목이 조금씩 다르더라. 이재임 작가의 경우에는 김순악이 ‘왈패’처럼 들판을 기운차게 뛰어놀던 어릴 적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서 지도를 통해 김순악의 이동 경로를 보여주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김순악은 수없이 자리를 옮겼지만, 한 번도 자기 뜻대로 떠나본 적은 없음을 암시한다.
처음부터 지도가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순악의 삶을 키워드로 풀어보면, ‘위안부’ 외에도 여성과 노동 등 다양한 주제가 등장한다. 그중에서 ‘이주’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라고 봤다. 언급한 대로 본인이 원해서 떠난 경우는 거의 없고, 일본군이든 생계든 무언가에 의해 끌려가거나 떠밀렸던 게 대부분이다. 삶의 챕터가 공간에 따라 나뉘기도 해서 이주 경로를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동시에 김순악이 어떤 심경으로 이주했을지 관객과 함께 상상해보고 싶었다. 기차에 탄 김순악을 다양한 나이대로 보여주고 사운드에도 신경을 썼다. 지명을 쓸 때는 애니메이터에게 김순악의 삐뚤빼뚤한 필체를 흉내 내달라고 부탁했다. 글을 읽지 못했던 김순악의 시점에서 바라보듯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영화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목소리다. 김순악, 그를 기억하는 활동가, 그리고 김순악의 증언을 낭독하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를 연결하고, 때로는 겹쳐서 들려주기도 한다.
'위안부'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는 증언이더라. 피해 당사자는 증언을 통해 사회와 말하기를 시도해왔고, 많은 이의 노력 덕분에 기록으로 남았다. 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 그러니까 그분들이 돌아가신 후에 우리가 어떻게 증언을 들어야 할지가 숙제로 남는다고 생각한다. 현 세대는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까?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재구성해나갈까? <보드랍게>를 통해 그런 고민을 확장해보려고 했다. 전통적인 방식은 계속해서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려주거나 증언하는 영상을 보여주는 거겠지. 물론 그런 과정도 중요하다. 다만 이번 영화에서는 증언을 그저 당사자에게만 그치는 이야기로, 혹은 과거에 벌어졌던 일로 간주하며 타자화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획 단계부터 고민해오던 지점이기에 비교적 제작 초반에 구상을 마쳤다. 이러한 ‘옛날이야기’를 젊은이의 몸과 목소리로 재현해보면 어떨지 궁금했고, 그런 과정을 경험하고 나면 낭독자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도 궁금했다. 관객 역시 이를 마주하며 새로운 감정이나 감각을 마주하지 않을까 싶었다.
후반부에 이르렀을 때야 증언을 낭독하는 세 여성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이들과는 어떻게 만났고, 영화 출연까지 설득하는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이들이 누구인지, 김순악과 어떤 관계인지 바로 알려주기보다는, 관객이 궁금해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에 밝히고 싶었다. 후반부에 의미가 풍부해지면서 전반부를 복기할 수 있도록 시점을 잡았다. 참여자는 대구에 위치한 여성 단체를 통해서 소개받았다. 어느 정도 편안하게 낭독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기는 했지만, 배우처럼 능수능란하게 연기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렸다. 각자 해석한 대로 낭독하길 원했고, 평소 톤이나 말투가 자연스럽게 묻어나길 바랐다. 무엇보다 낭독자가 지나친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낭독한 텍스트에는 폭력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 역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서로에게 좋은 작업이 되었던 거 같다. 낭독 이후 인터뷰를 진행하며 소회를 나누었다. 각자 이번 작업을 통해 본인의 경험을 정리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시더라.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 가족사를 다루는 <마이 플레이스>(2013) 이후, 줄곧 외부를 바라보는 듯하다. 세상을 공부하고 싶다는 의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관심이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을 거 같다.
내가 작품을 찾기도 하지만, 작품이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겁이 날 때도 있다. 특히 평소에 그리 깊게 고민하지 않은 주제를 마주했을 때는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잘할 수 있나?’라고 자문한다. 결국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으리라 기대하며 새로운 걸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다. 나를 어떤 상황에 몰아넣어서 시험해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이나 진행하는 동안에는 때때로 두렵지만, 마치고 나면 늘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작품을 통해 성장하기도 하고. 내가 다음에 어디로 튈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은 안테나를 넓게 펼쳐 놓고 고민하는 중인데, 관심사 중 하나는 1990년대다. 한국 사회가 여러 변화를 겪은 전환기이고, 내가 청년 시절을 보낸 시기이기도 하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