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는다
DMZ Docs 2020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김철민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Festival / 2020-09-22

‘재일조선인’은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 결과로, 해방 이후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거주하게 된 조선인과 그 자손들을 이른다. 김철민 감독이 이들을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금강산에서였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재일조선인 1세부터 4세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만남으로 이어졌고, 간첩 조작사건이라는 아픈 역사에 대한 취재로 연결됐다. 그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얼굴들이 모두 영화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자 다른 위치, 다른 자리에서 자기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라는 제목 아래서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는 당당한 모습으로 만난다.

현재는 ‘다큐창작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철민 감독은 분단과 통일 문제, 국가보안법 문제 등을 꾸준히 다뤄온 영상 활동가다. 2011년엔 민중가수 백자를 통해 사회운동 진영의 변화를 따라가는 <걸음의 이유>를, 2014년엔 국가보안법 피해자 가족의 삶을 다룬 <불안한 외출>을 내놓았다. 다큐창작소에서는 동료들과 함께 짧은 영상물을 통해 한국 사회의 주요 이슈를 긴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일을 줄이자’가 요즘 고민이라는 김철민 감독을 만났다.

 

 

영화의 시작은 2002년 금강산으로 거슬러 간다. 재일조선인들과의 첫 만남이 마음에 오래 남아서 그 이후로 관계를 이어갔고 영화로까지 연결됐다고.

그때 처음으로 금강산에서 청년들의 통일행사가 열렸다. 그걸 기록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촬영하러 갔던 거다. 여러 가지 공연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재일조선인분들의 공연이 되게 인상 깊었다. 한복을 입고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겨서 말도 걸어보고 인사도 나누고 했지. 헤어질 때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면서, 분단이 무엇인지 비로소 느끼게 됐다. 일본에서 자신을 조선 사람이라고 밝히고 민족성을 지키며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가 내게 질문으로 남았다. 그분들께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 그렇다면 인간답게 산다는 건 뭔지 스스로도 계속 고민하게 됐고.

 

재일조선인 3세 박금숙 씨처럼 오랜 기간 알아 온 분들과는 매우 친밀해 보이더라. 어떻게 인연이 이어진 건가.

한국의 한 공연팀이 재일 동포 분들의 초청을 받았을 때, 기록을 위해 공연 스태프로 일본에 따라갔다. 그때는 <우리 학교>(김명준, 2006)도 안 나왔을 때였다. (웃음) 2005년이었거든. 금강산에서 만났던 그런 분들이 하는 공연이라는 것만 알았고 별다른 배경지식은 없었다. 일본의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조총련(조선인총연합회)이 함께 연 행사였는데, 거기서 조선학교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됐다. 호기심이 생겨서 촬영 허락을 구했고, 교토 조선제3초급학교에 갈 수 있었다. 륭세라는 아이가 귀여워서 촬영했다가 나중에 영상을 만들어 보여드렸더니, 륭세 어머니이신 박금숙 누나가 블로그로 연락을 주셨다. 너무 잘 봤고 고맙다고, 다음에 또 일본에 올 기회가 있으면 만나서 얘기하자고. 이후에도 일본에 가서 촬영할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만나 뵈면서 관계가 이어졌다.

 

촬영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기 전부터 계속했나보다.

자연스럽게 기록했던 것 같다. 아주 개인적인 만남이라기보다는 계속 영상을 매개로 하는 작업 속에서 만났으니까. 재일조선인분들을 만나면 일단 재밌고 좋았다. 그래서 계속 만나 뵙고, 종종 해주시는 이야기를 담아서 간단한 영상을 만들어 드렸다. 사실 돌아보면 좀 무모했던 것 같은데. (웃음) 영화를 만들겠다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1세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소개를 부탁하기도 했거든. 그렇게 할아버지를 만나고 그다음엔 할머니를 만나고, 여성들이 주축이 되는 단체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그 단체를 촬영해서 영상으로 만드는 식이었다. 노래나 공연 영상을 찍어서 온라인에 올리기도 하고.

 

그러다 한 편의 영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1970년대에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한국에 유학 왔던 재일조선인들이 간첩으로 몰려서 10년, 15년씩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다. 내 전작인 <불안한 외출>이 국가보안법,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보니까, 그 연속선에서 이분들의 이야기를 다뤄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게 2015~16년 즈음이다. 그렇게 피해자 선생님들을 만나 취재를 시작하면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간첩 조작사건 중심으로 갈 수도 있었을 텐데, 결과적으로는 재일조선인 사회를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폭넓게 담았다.

피해자 선생님들을 만나보면 그 시절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 삶을 가치 있게 여기시고, 그 경험을 통해서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신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하려면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를 함께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이분들이 왜 한국에 유학 오려고 선택했고, 또 어떻게 지금까지 그걸 후회하지 않고 통일 문제나 민주화 문제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계신지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더라. 그래서 재일조선인 1세 어르신들을 비롯한 내가 만났던 다른 분들의 이야기까지 확장하는 선택을 하게 됐다.

 

담고 싶은 내용이 많았을 거 같다. 전체적으로 영화를 구성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무엇인가.

우리는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고 쉽게 말하지만, 해방 후에 바로 분단이 되면서 일본에서 살 게 된 분들은 아직 식민 지배의 역사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다. 그 역사 속에서 다들 각자의 어려움을 겪어온 거다. 조선학교를 지키는 어려움, 간첩으로 누명을 쓰는 어려움, 일본에서 힘들게 통일운동을 하는 어려움…. 그런데 그분들은 그런 어려움이나 차별에 좌절하거나 굴복하는 게 아니라 거기 맞서고 사회를 바꾸고자 하신다. 그렇게 저항하는 삶 자체가 인간답게 사는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고, 공간도 세대도 다른 이들이 이어져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려 했다.

 

그간 잘 몰랐던 재일조선인 사회에 대해 알게 됐다. 영화는 조선학교 문제뿐만 아니라, 조총련, 민단(재일대한민국민단), 한통련(한국민주통일연합), 한청(재일한국청년동맹) 등 재일조선인 사회 안의 다양한 단체의 역사와 실천을 다루고, 그 안에서 청년기를 보낸 분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도 보여준다. 신문에 조그맣게 실린 전태일 열사의 분신 소식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다.

한국 사회가 복잡한 만큼 동포 사회도 복잡하다. 한국 내에서 그런 것처럼 동포 사회에서도 통일 운동, 반독재 투쟁, 민주화 운동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거다. 욕심 같아서는 이걸 오해 없이, 편견 없이 잘 전달하고 싶었는데, 정보도 너무 많고 나조차도 객관적일 수가 없으니 고민을 많이 했다. 이 복잡한 이야기를 과연 잘 다룰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지. 어쨌든 조국의 분단된 현실이 재일조선인 사회의 분단으로 그대로 이어져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고심했다. 결국은 조선학교와 통일운동 하시는 분들 이야기, 간첩 사건 피해자분들의 이야기가 좀 더 중심이 됐는데, 한통련 등 민주화 운동을 하신 분들 이야기를 더 많이 하지 못해서 아쉽기도 하다. 4.19를 비롯해서 한국 민주화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함께하셨거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에서 살해 위협을 느끼고 피난을 재일조선인 사회로 가지 않았나. 독재정권에서 해외에 목소리 내는 활동을 동포분들이 적극적으로 하기도 했고.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재일조선인분들이 오사카에서 연 2016년도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다.

그분들은 일본에 있고 자유롭게 한국에 올 수는 없지만, 우리와 함께 역사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어떤 상황이냐, 어떤 대통령,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그분들의 삶에 굉장히 직접적인 영향이 간다고 하더라. 한 선생님께서는 한국이 민주화되어야 동포사회도 민주화된다고 말씀하신다. 한국에 있는 촛불 시민들에게도 그렇지만, 그분들께도 촛불은 오랜만에 큰 감동으로 남은 경험이라고 한다.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분들을 만나는 건 꽤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피해자 선생님들 만나는 게 사실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과거의 큰 상처를 많이 극복하고 이겨내시기도 했지만, 당시 상황을 떠올린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니까. 그들 대부분이 감옥에서 나온 건 1980년대인데, 최근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게 되면서 언론 등에서 많이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한국 정치 상황과도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 김기춘이라는 인물이 그 사건의 핵심이기도 하니까. 어쨌든 이분들의 이야기나 당시 상황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진 상황이다 보니, 선생님들께서 본인들을 그저 피해자, 역사의 희생자로만 다룰 거면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엄청난 투사처럼 그려지진 않는다. 다들 담담하게 이야기하시고, 카메라는 정직하게 그 모습을 담는다.

이야기를 잘 전하고 싶었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그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거든. 그로 인해 더 잘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셨다고 하지 않나. 그러면서도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한국에 간 본인을 독재 권력이 이용하고 간첩으로 몰았던 것에 대해 분노하고, 생존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표현에 씁쓸해했던 느낌을 잘 대변해주신 것 같다. 물론 한계는 있다. 그걸 이분들의 말씀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촬영의 한계 때문에 매 순간을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장면들을 담지 못해 아쉽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일본에서 조선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품고 영화를 시작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찾게 된 답이 있나.

누가 이렇게 물어보면 딱 설명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웃음) 어떤 이유에서든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지 않나. 우리가 빈부나 학력, 성별처럼 다른 이유에 의해서 그런 순간을 겪을 수는 있지만, 어떤 민족이라는 이유로 한국 사회에서 그런 걸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분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걸 느끼고 고민을 하게 되는 거다. 자기 존재를 스스로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너무나 정당하고 필수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나는 조선사람’이라고 밝히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차별에 저항하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인 것 같다.

 

제목이 그걸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같은데, 지을 때 고민 많았을 것 같다. (웃음)

맞다. (웃음) 사실 좀 길기도 하고 발음도 어렵다. 주변에서 이상하다는 말도 들었거든. 그런데 영화에 출연하신 분들이 제목 좋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래서 힘이 많이 났지.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라고 밝히는 게 단순히 소개의 차원이 아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이고 어디에 맞선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영화는 학교 문제로 돌아오며 마무리된다. 거리에서 학생들이 직접 고교무상화의 권리를 외치며 집회를 여는 장면을 담았는데, 여전한 현실이 안타깝지만 굉장히 활기차고 좋은 힘이 느껴진다.

나도 재일조선인분들 만나면서 기본적으로는 아픈 역사를 많이 봐왔는데, 이분들이 그런 역사에 눌려서 힘들어하기만 한 게 아니라 학교를 만들고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한다는 게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15년 전보다 일본 사회는 더욱 차별과 혐오가 심해져서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상황만 보면 비관적일 수 있는데, 그 안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분명히 보이거든. 만나면 힘을 받고 온다. 관객들도 그런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고, 분단 문제가 너무 큰 담론이 아니라 우리 삶과 관련 있다는 걸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잘 알지 못했던 재일조선인 사회의 역동성과 다양한 결을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기록의 측면에서 중요한 자료들이란 생각이 드는데, 앞으로 작업을 더 확장할 계획은 없나.

영화에 담지 못했던 아쉬운 이야기들이 많다. 재일조선인사(史) 중에 사건이든 단체든 인물이든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이제 해외촬영도 어렵게 됐고, 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지금처럼 기록을 축적하고 있다가, 좋은 계기가 만들어져서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웃음)

 

벌써 다음 작업인 <게임의 전환> 텀블벅이 열렸더라.

메인 연출은 아니고 스태프로 참여하는 작품이다. 촛불혁명이 한국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거라 생각했는데, 촛불 시민들이 원했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드는 데는 여전히 미흡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중 가장 큰 문제가 국가보안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생각을 검열하고 제한하고, 남북이 화해하는 걸 막고 있으니까. 지금 시기에 이 문제를 말해야 한다고 여겨서 10월 말 완성을 목표로 두고 있다. 그 외에도 1, 2년짜리 프로젝트로 개인에게서 출발하는 국가보안법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다.

김철민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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