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나영 씨의 하루는 아주 이른 시간에 시작된다. 새벽 3시, 집을 나와서 신장센터가 위치한 병원으로 간다. 어둠 속에서 병원 주변을 돌며 낯익은 고양이들을 찾는다. 일일이 인사를 건네고 살뜰히 밥을 챙기다 보면, 잠시 후 전동 휠체어를 타거나 택시로 이동해온 ‘언니들’이 하나둘씩 도착한다. 은박지로 둘둘 싼 김밥을 나눠 먹으며 배를 채우고, 새벽 6시쯤 병원 문이 열리면 그때부터 투석을 받는다. 뇌병변 장애로 거동이 수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헌신적으로 고양이를 보살피는 ‘캣맘’ 나영 씨. 누군가는 나영 씨를 길 위의 천사라고 칭하며 마음을 보태려 하지만, 사실 나영 씨는 비난과 질타에 수시로 직면한다. 가급적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는 나영 씨와 달리,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사람들은 당당하고 거침없다. 여기는 동물이 아닌 사람이 사는 공간이며, 고양이가 함부로 돌아다니다가 병균이라도 옮기면 책임질 거냐고 으름장을 놓는다. 가로등 불빛만 고요하게 켜진 밤, 혼자 남은 나영 씨는 골목에 편지를 써 붙인다. “미안합니다. 저도 얼마 못 산다는 말에 동물도 사람 같이 한번 태어나고 죽는 거 같아서 줍니다.” 대학 동기로 만나 단짝이 된 김희주, 정주희 감독은 졸업 작품을 구상하던 중에 나영 씨를 만났다. 고양이에게 제대로 된 한 끼를 챙겨주려 애쓰는 마음을 헤아리는 동안, 두 사람의 고민은 점차 세상과 삶을 향해 뻗어갔다. 나영 씨는 두 감독을 영화 찍는 ‘동생들’이라고 부른다. 길에서 쌓은 세 사람의 우정과 고양이가 알려준 공생의 의미를 전해 들었다.
무척 친해 보인다. 신기하게 이름도 비슷하다. 주희와 희주, 합쳐 부르면 ‘주희주’다.
정주희_ 맞다, 가치관이 잘 맞는 친구다.
김희주_ 친한데도 같은 수업을 듣거나 공동 과제를 해본 적이 없었다. 구체적인 기획안이 나오기 전부터 졸업영화를 함께 만들자고 약속했다. 나는 가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사람을 향한 관심이 커졌고, 주희는 동물권과 인권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둘 다 이번 작품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다뤄보고 싶었다.
권나영 씨와는 어떻게 처음 만났나. 두 감독이 먼저 찾아가지 않는 이상, 일상에서 오며 가며 자연스레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주희_ 동물권과 생명, 사회적 약자를 향한 관심을 토대로 주제를 찾아 나갔다. 그때 페이스북을 통해서 나영 님과 만났다. 나는 ‘길고양이친구들’이라는 페이스북 그룹에서 게시글을 자주 찾아 읽고, 그곳을 통해 고양이를 입양하기도 했다. 거기에 나영 님이 많은 글을 올리는데, 왠지 볼 때마다 마음이 가더라. 맞춤법도 틀리고 앞뒤가 안 맞는 문장도 많은데, 누구보다 간절하고 진실하게 느껴졌다.
SNS가 맺어준 인연인 셈이다.
정주희_ 나영 님이 먼저 친구 신청을 했다. 교내 길고양이 관련 소모임에 참여하면서 TNR(중성화)이나 크고 작은 캠페인을 해왔는데, 페이스북에 활동을 공유할 때마다 ‘좋아요’를 눌러주시더라. 댓글로 소통하며 친밀감을 쌓았지. (웃음) 이분을 찍지 못해도 한 번쯤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희주_ 첫 만남이 작년 9월이다. 딱 1년 됐네.
그래선지 영화에도 나영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과 영상이 많이 담겼다.
김희주_ 페이스북은 나영 님에게 중요한 공간이고, 우리가 놓친 순간도 그곳에 저장되어 있다. 관객이 나영 님과 SNS를 통해 소통하는 기분으로 영화를 보면 좋겠다.
정주희_ 나영 님 페이스북을 보면서 ‘SNS의 순기능이란 이런 거구나!’라고 느꼈다. 캣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나영 님에게 사료를 보내주기도 하고, 어떤 이슈가 생기면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하더라. 나영 님에게 페이스북은 세상과 연결해주고 타인과 소통하는 창구인 셈이다.
촬영 기간은 얼마쯤 되나.
김희주_ 작년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찍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쉬었던 기간도 있다.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펀딩을 진행했다.
정주희_ 일단 졸업 작품을 완성해야 해서 작년 11월쯤 촬영을 중단하고 편집에 들어갔다. 근데 편집하면서 자꾸 아쉬움이 커지는 거다. 그때는 나영 님과도 잘 만나지 못했는데,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들을 때마다 ‘아! 내가 거기에 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했지. 희주한테 “우리 더 찍어야 할 것 같지?”라고 물으니까 곧바로 “응, 찍자”고 하더라. (웃음) 문제는 돈이었다. 이제 막 졸업한 상태였기에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거든. 그때 텀블벅을 통해 펀딩을 진행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따지고 보면 우리 식비와 고양이 식비 정도를 충당한 셈이지만, 많은 분이 관심을 보내주셔서 무사히 마무리했다. 후원자에게 보낼 굿즈를 만드는 과정이 너무 즐겁더라. 나영 님도 무척 좋아하셨고.
권나영 씨는 카메라 앞에서 굉장히 적극적이더라. 계속해서 두 감독을 새로운 곳으로 끌고 가는 느낌이다.
정주희_ 처음 만났던 날부터 그랬다. 나영 님을 보면서 ‘이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해’라고 직감했다. 한두 시간 정도 카페에서 대화했는데 나영 님에겐 언어장애가 있고, 우리는 그에 익숙지 않다 보니 정확히 알아듣지를 못했다.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나영 님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있구나’ 싶어서 무작정 약속을 잡고 촬영을 시작했다.
김희주_ 아무래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입장이니까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가려고 했다. 불편하시거나 힘들어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촬영을 시작해보니 염려와 달리 말씀을 너무 잘하시는 거다. 낯선 사람에게 이 정도로 마음을 열어주시는 분이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정주희_ 나영 님은 항상 사람들과 공유하고 소통하기를 기다렸던 거 같다. 우리가 촬영을 제안했을 때도 흔쾌히 수락하셨다.
김희주_ 상황을 널리 알려달라고 말씀하셨지.
정주희_ 위기에 처한 고양이가 많다는 사실, 그리고 고양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도 그만큼 많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길 바라셨다.
나영 씨는 고양이를 보살피며 많이 울고 그만큼 많이 웃는다. 고양이를 그저 귀여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로서 동일시하고 감응한다고 느꼈다.
정주희_ 처음에는 ‘나영 님에게 고양이란 뭘까, 왜 그토록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고양이를 돌보는 걸까?’라는 의문으로 영화를 시작했는데, 점차 질문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설명해도 100퍼센트는 아닐 테니까.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모를 감정인 거 같더라. 나영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에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다. 하늘에 간 고양이에게 “다음 생이 있다면 내가 너로 태어나고 싶다”라고 쓰셨더라. 그런 넘치는 애정 덕분에,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치는 약한 존재에게까지 나영 님의 시선이 가닿는 거 같다.
김희주_ 전작을 만들며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타인을 이해하고 정의를 내린다는 건 불가능하구나’라고 느꼈다. 그런 한계 속에서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다음 순서였다. 나영 님이 꼬맹이(고양이)한테 “미안해, 못 알아듣겠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당연히 사람은 고양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지. 다만 실패와 오해를 거듭하면서도 옆에 있고자 하는, 가까워지려는 노력 자체가 중요하지 않을까. 나영 님이 고양이를 대하는 마음과 우리가 나영 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얼마간 닮은 거 같다.
매일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고, 구조해서 치료하고, 입양까지 보내는 모든 활동은 사실 개인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일이다. 적절한 시스템이 부재하다 보니, 나영 씨처럼 선의를 지닌 개개인이 지나친 부담을 껴안는다.
정주희_ 아무래도 나는 젊으니까 여러 정보에 빠르게 접근하지 않나. 학교에서 소모임 활동할 때도 서울시나 기관이 주최하는 지원 사업을 찾아보고 도움을 얻었다. 나영 님은 어떤 지원도 없이 고군분투하는데, 계속 힘들어하는 게 보이더라.
김희주_ 솔직히 말하면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렇고, 지금도 계속 무력감을 느낀다. 처음에는 나영 님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바뀔 줄 알았는데, 변화에는 생각보다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더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실천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우리는 작업을 마치고 각자 자리로 돌아왔지만, 나영 님은 계속 그 삶을 살아가는 분이니까.
영화는 자연스레 동물권을 향한 논의로 나아간다. 나영 씨는 “나라에서 캣맘한테 뭐라도 좀 해주면 좋겠는데”라며 안타까움을 표하고, 개/고양이 식용에 반대하는 동물보호 집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정주희_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제 아닌가. 사람도 살기 어려운 나라에서 무슨 동물권을 따지느냐는 사람도 있고, 주위를 둘러보면 길고양이를 향한 혐오가 만연하다. 해당 주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나영 님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려고 했다. 관객이 나영 님의 삶에 잠깐이라도 들어올 수 있기를, 나영 님의 눈으로 고양이들을 바라봐주기를 바란다.
동물 학대와 혐오는 곧 ‘캣맘’을 향한 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에 폭행 사건이 있기도 했고. 촬영하면서 불안하거나 두려운 순간은 없었나.
정주희_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등장해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정말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무서웠다. 나영 님을 통해 그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건 알았지만, 직접 겪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막상 그 상황에 놓이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더라. 나영 님은 이런 두려움과 화를 매일 감당하실 거라고 생각하니 아득했다.
김희주_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는 거 같다. 대다수가 내 일이 아니면 무심코 지나쳐버리지 않나. 나도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고. 사실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고양이 학대를 보도한 기사를 봤을 때 ‘너무 안타깝다’ 정도로 반응하고 넘어갔거든. 근데 나와 관계를 맺은, 내가 아는 고양이와 사람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니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더라. 관계와 소통에 관해 거듭 고민하게 된다. 나와 무관한 타인의 일이라고 했을 때, 과연 얼마큼 관심을 기울이고 대화할 수 있나. 그런 노력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과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나.
영화에는 나영 씨와 두 감독의 우정이 담기기도 한다. 나영 씨가 ‘동생들’이라고 부르며 챙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정주희_ 나도 좋아하는 장면이다. 나영 님과 동행하면서 특별한 순간이 많았다. 새벽에 PC방에 데려가서 커피를 사주는가 하면, 그곳에서 손님들이 두고 간 우산을 챙겨 오더니 우리한테 나눠주기도 하고. 병원 가는 길에 같이 투석 받는 언니로부터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려서 운전할 수 없다는 전화가 오지 않나. 그때 나영 님이 선뜻 언니를 데리러 가겠다고 말하는데,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참 따뜻하게 다가오더라.
김희주_ 우리가 의도해서 만들어낸 장면이 아니거든. 현장에서 발생하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 즐거웠다.
정주희_ 병원에 들어가기를 기다리면서 김밥을 나눠 먹을 때도 좋았다. 꼭두새벽부터 나와서 4-5시간씩 투석을 받는 상황이라, 처음에는 분위기가 무거울 거라고 예상했다. 근데 무슨 파티라도 열린 것처럼 서로 얼굴 보며 웃고 반겨주는 거다.
김희주_ 그때 나도 모르게 선입견을 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지레짐작해서 걱정이 앞섰던 건 아닐까, 하며 반성했다.
정주희_ 맞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이 삶의 일부이자 만남의 일부구나 싶더라.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계획 중인가.
김희주_ 현재 매체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중이다.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 보니 작업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 주제는 미정이지만, 열린 마음으로 찾아보려고 한다. 얼마 전 을지로에 관한 특집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공간을 주제로 한 작업도 재밌을 거 같다.
정주희_ 다큐멘터리를 마무리하고 나서 영상 프로덕션에 입사했다. 나 역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기는 한데, 일단 가까운 곳에서 소재를 찾으려고 한다. 마음을 두드리는 무언가를 만나고 싶다. 화가 나든 슬프든 아니면 웃기든.
김희주_ 맞다, 좀 더 알고 싶어지는 이야기들.
정주희_ 희주는 전작에서 가족을 다루지 않았나. 자전적인 작품, 특히 가족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정말 어렵다고 생각하거든. 나한테는 그 부분이 숙제로 남은 느낌이다. 가능하다면 언젠가 엄마와 외할머니, 그리고 이모할머니를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다. 가족이자 세대가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가 되겠지. 예전에 엄마가 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많더라. 영화를 만들면서 세 분의 삶을 이해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김희주_ 주희가 그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고 있는데 정말 흥미진진하다.
정주희_ 인스타그램에는 차마 올리지 못할 감성이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