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따라
DMZ Docs 2020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2: 금기에 도전> 김환태
글 김선명 사진 이영진 / Festival / 2020-09-20

김환태 감독과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의 인연은 2002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다큐이야기’의 신년 기획 회의에서였다. 2001년 12월 불교 신자 오태양 씨가 병역거부선언을 했고, 그의 친구였던 당시 ‘다큐이야기’ 멤버에게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한국에서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2003)이 탄생했다. 2004년엔 현역군인 신분으로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며 병역거부를 선언한 강민철 씨의 농성 현장을 쫓아 <708호 이등병의 편지>(2004)를 만들었다. 

하지만 진전을 이루던 대체복무제도 도입 논의가 이명박 정권 들어서며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전제로 <받들어 총!>(가제)을 만들고 있던 김환태 감독에게 이는 방황의 시작이었다. 보수 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답보 상태였던 대체복무제도 논의는 지난 2018년 헌재의 판결로 비로소 되돌릴 수 없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오랜 촬영을 마무리하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2: 금기에 도전>을 내놓으며 마음의 큰 짐을 덜었다는 김환태 감독을 만났다.

 

 

<받들어 총!>(가제)이 긴 시간을 지나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2: 금기에 도전>으로 완성됐다.

<받들어 총!>은 한국 사회에 내재한 군사주의와 국가주의를 전편보다 재기발랄하게 그려낼 생각이었다. 2007년에 대체복무가 도입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전편의 대체복무 도입 운동의 흐름과는 조금 다른 걸 해 보고 싶었다. 대체복무가 도입돼도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들을 토대로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게 내 나름의 완결 점이었고. 한데, 대체복무 도입이 완전히 엎어지면서 정리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2018년 헌재 판결로 대체복무 도입이 다시 공론화됐다. 처음 구상과 달리 지금의 제목과 형태로 영화를 완성한 이유가 궁금하다. 

찍어놓은 걸 죽 펼쳐놓고 보니 <받들어 총!>의 느낌을 주기가 어렵더라. 2010년 이후의 기록이 생각보다 없기도 했고.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이 걸어온 시간을 담백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면서 제목도 바뀌었다. 병역거부자들에게 가편본을 보여줬는데 그분들도 전작과의 연속선에서 이를 마무리하는 영화로 제목을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2>로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받들어 총!>은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 (웃음)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주제로 줄곧 작업했다. 계속 관심을 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은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가치관을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여호와의 증인이 군대에 안 간다는 건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다. 군대에 안 가는 것도, 그래서 처벌을 받는 것도 그때는 그들이 이단이라는 생각이 강해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이상한 애들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런데 오태양 씨는 불교 신자였다. 촬영하다 보니 자기 신념으로 군대에 안 가겠다는 사람이 또 있고. 한국 사회는 그들을 다 처벌하고 있었다. 이분들 얘기를 들으면서 소수자의 인권, 소수자의 양심을 사회가 지켜줄 때 그 사회가 변할 수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기록했다. 학생운동을 했고 군대 다녀와서 영상으로 사회운동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들었으니까. 2008년 이후에는 이전 기록들로 인해 남겨진 짐이 컸다. 운동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활동가들 만나면 어 끝날 거야, <받들어 총!> 곧 나와, 이런 얘기를 굉장히 많이 했다. 큰 숙제를 끝낸 거 같아서 좋다. 그들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도.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2: 금기에 도전>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2: 금기에 도전>

하나의 운동을 긴 시간 지켜보는 데 있어 당사자와 활동가들의 생각과 말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그들이 했던 말이나 활동하는 모습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2002년부터 그들이 병역거부를 선언하며 읽어 내려간 소견서들이 굉장히 감동적이다. 그 소견서들에 한국사회의 여러 모순이 다 담겨있다. 이를 받아 풀어내는 과정이 바로 이 사회가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아닐까. 러닝타임을 계산해야 했기에 소견서들을 만족할 만큼 다 넣을 수 없던 게 가장 아쉽다. 임재성 변호사, 성 소수자 효웅, 2008년 촛불 집회 진압 의경이었던 이길준, 이 세 사람이 소견서를 읽는 장면은 특히 운동의 변곡점이 될 주요 발언들이라 힘을 줘서 배치했다.

 

또 주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이용석, 최정민 활동가다. 2001년부터 이어진 긴 운동의 시간을 이용석, 최정민 활동가와 임재성 변호사를 안내자 삼아 정리한다.

정민은 이 문제에 대해 가장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일 거다. 2001년에 <한겨레21>이 여호와의 증인에 관한 글을 쓰며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는데, 거기에 소스를 준 사람이 정민 씨였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의 집행위원장이기도 했고. 전반적인 관계를 제일 많이 알고 있으면서 여성으로서 다른 관점으로 이 문제를 짚어주는 점도 있다. 용석은 본인이 병역거부자이면서 ‘전쟁 없는 세상’의 주요 활동가로 오래 일했다. 이들을 팔로우하며 얘기를 더 끄집어내는 방식도 고민했지만 다양한 병역거부자들의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나는 게 좋다는 생각으로 분량을 줄였다. 이들의 생각과 마음은 이미 이들의 활동에 다 녹아 있으니 활동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임재성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의 시간 동안 성장하는 한 인물의 변화가 함께 보이는 인물이다.

처음 병역거부 선언할 때부터 결혼하고 변호사가 돼서 여전히 열심히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성장의 모습을 하나의 큰 축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다른 병역거부자들이 다 그렇게 살아왔다. 첫 마음을 잊지 않고 실천하면서 말이다. 그들이 다른 특별한 곳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자신들이 했던 말을 지키기 위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2: 금기에 도전>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2: 금기에 도전>

한국사회의 군사주의가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보수집회 이미지가 긴 시간을 통과하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운동 초반부터 보수집회는 화면에 많이 담을 수밖에 없었다.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에 대한 그들의 저항이 매번 있었으니까.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이 수면 위로 올라오던 2002, 2003년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보수집회의 위력이 상당하던 시기였다. 그때 집회를 주도한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많이 남아있다. <신의 한 수>의 신혜식 대표처럼. 그래도 역사를 길게 보면 박근혜 탄핵을 거치며 박정희로 대표되는 군사주의나 극우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다른 상상을 더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 바로 그 상상을 위해서 필요한 핵심이 병역거부자들이 걸어온 시간과 마음을 읽는 데 있다고 보는 것이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특공대 출신으로 안보를 강조하는 발언이 영화에 담겼다. 한국에서 군사주의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큰 흐름을 볼 때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말이다. 남은 잔재에 대해선 계속 성찰해야 한다.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어 35명이 대체복무심사에 통과됐는데 전원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평화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분들은 증명을 해야 하는데 그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대체복무 심사위원에 다행스럽게도 병역거부 운동 활동가들이 들어갔다.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다 보면 또 다른 방향이 나오겠지.

 

‘전쟁 없는 세상’은 평화운동의 방향성을 고민하며 무기거래 반대 운동으로 나아간다. 영화를 보면서 이들의 의지와 활동에 공감했지만 동시에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닌가 싶었다.   

재성도 그 장면들이 가장 좋았다고 얘기하더라.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그 느낌. 위태롭고 말도 안 되게 보이지만 여전히 그렇게 가고 있는 거 아닌가. 지치지 않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있어서 일정 정도의 성취도 이뤄냈다. 대체복무제도 도입이라는 이 한 걸음은 되돌릴 수 없는 큰 변화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재성, 용석, 정민의 첫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20대 초중반의 저 세 사람이 말하는, 어찌 보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그 마음을 그들은 계속 지켜왔고 결국 변화를 이뤄내지 않았나. ‘전쟁 없는 세상’의 주요 활동에는 병역거부 운동, 무기거래 반대 운동과 더불어 비폭력 트레이닝도 있다. 아직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텐데, 그냥 꾸준히, 묵묵히, 지금처럼 가는 거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2: 금기에 도전>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2: 금기에 도전>

원전과 피폭 문제에 관한 작품도 여럿 만들었다. 반전과 평화, 특히 일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들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다. 향후 계획은?

고민이다.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 동안 많이 힘들었다. 이번 작업 마무리할 때는 예전과 달리 혼자 마무리 하게 돼서 더 많이 지쳤다. 긴 시간 영화를 만들었는데, 들어가는 노력, 하다못해 제작비 측면에서도 지속이 불가능한 구조같이 느껴지더라. 올해가 ‘다큐이야기’ 20주년이었다. 조촐하게 지금 멤버들과 축하 파티를 했다. 지난 20년의 작업과 시간을 돌아보고 싶어졌다. 항상 뭘 촬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일부러 안 하고 있다. 이 시기가 지난 다음에 뭘 할지 다시 고민해봐야겠지.

 

<잔인한 내림 - 遺傳(유전)>(2012)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7년간의 촬영본을 편집해서 완성했고, 이번 작업도 헌재 판결을 계기로 20년 가까운 촬영본을 다시 편집해 만들었다. 이런 작업 방식에서 오는 어려움이 컸을 것 같다.

그런 작업은 그만 하려고 한다. (웃음) 예전부터 고민했는데, 내러티브를 지우면서 이미지적으로 새로운 걸 만들어보고 싶다. 사회운동에 긴밀히 결합하면서, 오래 지켜보는 방식 말고. 그래도 다큐멘터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사회운동에 대한 기본적 관심과 사명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완전히 벗어나진 않겠지. 스스로 자주 하는 말인데, 젊을 때의 기억을 단지 추억하고 싶지 않다. 추억이 아니라 그때의 마음을 내 삶 속에서 계속 구현하고 싶어서 되돌아보는 거다. 이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세 사람의 첫 마음을 넣은 것도 그런 이유다. 사실 그 장면들 찾느라 힘들었다. (웃음)

 

‘다큐이야기’에는 현재 누가 함께 하고 있나?

<이마무라 쇼헤이 입문>(2019)의 이병기 감독과 <땅의 여자>(2009)와 <까치발>(2019)의 권우정 감독이다. 느슨한 네트워크 조직이다. 사무실도 없고. 필요할 때 일 도와주며 서로 응원하고 기획서나 가편본 보며 조언하는 식이다. 권우정 감독은 <까치발> 개봉 준비에 바쁘고, 이병기 감독은 오이를 못 먹는 남자에 대한 영화를 찍고 있다.

 

그럼 이병기 감독 영화에 참여하는 건가? (웃음)

얘기는 했다. 마지막 정리 과정에서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품앗이해야지. 그건 쉬는 거 아닌가? 그 정도는 쉬는 거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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