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연은 하나의 힘을 아는 배우다. 말 한마디와 눈빛 한 번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자신이 준비한 하나를 내어놓는다. 바람 잘 날 없는 집안 분위기를 한탄하다가 나란히 누운 동생에게 보여주는 수희의 웃음은 든든했고(<벌새>), 갖은 불행이 연속하는 사이에도 이를 악물고 앞을 향해 달려 나가는 한주의 발짓은 절실했다(<앵커>). 동글동글하고 부드러운 인상은 한없이 온화해 보이지만, 박수연은 그 속에 희망만큼 강력한 절망과 원망도 고루 심어낸다. 덕분에 그를 거쳐 간 영화 속 인물들은 착하다기엔 복잡하고, 무르기보다는 단단한 사람으로 남는다. <가만한>(손모아, 안정연, 2020)에서 박수연은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인생의 원점에 선 서른 살 준서를 연기한다. 영화 내내 준서의 과거는 불투명하게 그려진다. 엄마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예전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하지만, 정작 준서는 어떻게든 현재를 살아내려고 애쓴다. 자칫하면 관객 역시 준서의 현재가 아닌 과거에 집중하게 될 법한데, 박수연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비난하는 기색이 역력한 이들 앞에서 준서는 핑계와 변명 대신 침묵으로 자신을 지켜내며 홀로 숨 쉬는 법을 익혀 나간다. 마침내 준서가 또 다른 무대에 도착했을 때, 박수연은 이번에도 정확한 한 가지를 꺼내 보인다. 말도 눈빛도 없이 뒷모습 하나만으로 엔딩을 온전히 책임진 배우 박수연을 만났다.
포털 사이트에 박수연 배우를 검색하면 교복을 입고 머리에 헬멧을 쓴 귀여운 사진이 나온다. 이건 언제 찍은 건가.
<소은이의 무릎>(최헌규, 2017) 촬영 당시 스태프가 찍어준 사진이다. 현장 스틸 중 하나였는데, 지금 내 모습과는 많이 다른지 주변에서 뭐라고 하더라. 더 어려 보이고 둥그스름한 느낌이라면서. 나는 딱딱한 느낌이 싫어서 일부러 그 사진을 골랐거든. 한동안 딱히 프로필을 바꿀 계기가 없어서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얼마 전 소속사에서 새 프로필을 촬영했다. 이제 곧 사라질 거다. (웃음)
<소은이의 무릎>을 포함해서 그동안 10대를 연기한 경험이 적지 않다. <선희와 슬기>(박영주, 2019)에서는 공부 잘하고 인기 많은 정미였고, <전학생>(박지인, 2015)에서는 전학 첫 날 인사를 거듭 연습하는 수향이었다. 실제 박수연은 학창 시절에 어떤 아이였나.
인생의 8할은 기쁨인 애였던 거 같다. 시간이 지나서 미화했을 수도 있지만, 그때 인생에 끼어든 어려움이란 지금에 비하면 너무 작게 느껴진다. 학창 시절에는 지금보다 사람들과 연결된 상태로 지내면서 행복하게 지냈던 거 같다. 요새는 별수 없이 단절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나. 출연작 중에는 <선희와 슬기>의 정미와 제일 비슷하지 않을까.
‘인싸’였나 보다.
학생회장까지 했으니 나름 ‘핵인싸’였지. (웃음) 정미보다는 소탈한 느낌이었다. 여고여서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망가지며 놀았다.
본래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고 당시 별명이 ‘철학과 송중기’였다고.
송중기 배우의 데뷔 초반 얼굴. (웃음) 요새는 레드벨벳 슬기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어 봤다. 10대 때 전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어떻게든 서울로 대학을 가자고 마음먹었다. 문과대 중에 철학이 가장 재밌어 보이더라. 학교에 와서도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연기에도 도움을 준 부분이 있는 거 같다.
어떤 도움?
연기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적어도 마음가짐에 좋은 힘을 주는 건 사실이다. 삶이든 연기든 늘 즐거울 수만은 없지 않나. 힘들고 벅차다고 느껴질 때, 수많은 철학자가 말했던 내용을 되새기다 보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더라. 철학이란 게 결국 인생과 행복,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니까. 덕분에 인생이란 게 어떤 거구나, 하며 마음의 준비를 좀 더 해나간 계기가 되어준 거 같다.
아버지가 전주에서 연극을 하신다고 들었다. 자연스레 어릴 적부터 연기를 접했을 텐데, 뒤늦게 연기를 결심한 이유가 있나.
아빠는 연극을 하면서 행복한데, 내 눈에 엄마는 너무 힘들어 보이는 거다. 당사자는 즐겁지만 가족은 뭔가를 감내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용기를 내기가 어렵더라. 그러다가 대학에 와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다시 나만 생각할 수 있게 된 거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연극영화과를 찾아갔다. 1학년 때부터 복수전공으로 연기 수업을 들었으니 전과도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철학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더라. 철학과 연기 공부를 병행하느라 대학 생활을 바쁘게 보냈다.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
사실 중학교 때 연기할 기회가 한 번 있었다. 학교 앞에서 기획사 매니저로부터 명함을 받았는데, 이야기가 좀 진행돼서 서울로 미팅도 가고 그랬다. 그때 엄마가 지금 나이에 무작정 서울로 가면 이도 저도 안 된다면서 정 하고 싶으면 스무 살 넘어서 시작하라고 하더라. 대학에 들어간 후에 연기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는 딱히 찬성도 반대도 없이 그렇구나 하셨다. 엄마가 정말 대인배거든. 부모님 모두 자식이 하는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분들이고, 오히려 그 덕분에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났다.
2012년 단편 <노 스페이스>(최진영)를 시작으로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작년에는 <벌새>(김보라, 2019)와 <앵커>(최정민, 2019) 등으로 개봉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간 작품을 고르는 배우만의 기준이 조금씩 자리를 잡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에 단편 제안도 꽤 받기는 했는데, 내가 너무 커버렸는지 치기 어린 작품은 못 하겠더라. 내가 제일 잘났고 나는 나밖에 모른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작품들 말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작품에는 아무래도 매력을 느낄 수 없다. 내가 이제 세상과 함께 발맞춰 살아가나 보다. (웃음) 요새는 SF에도 관심이 많고 <이어즈 앤 이어즈>처럼 근 미래를 다루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액션도 꼭 해보고 싶고.
잘 어울린다. 그동안 작품에서도 스포츠와 인연이 많았다. <앵커>에서는 육상선수였고 <소은이의 무릎>에서는 농구부였다. <가만한>에서는 수영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스포츠를 즐겨 하는 편이고 몸을 쓰는 연기도 좋아한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여성 액션을 볼 기회가 적지 않나.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기 전에 많은 여성 배우들이 액션을 경험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좋겠다. 한 번은 “액션 하고 싶으면 이시영, 김옥빈 배우 정도는 되어야 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날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했는데, 사실 남자 배우도 작품이 정해지면 그때 액션 스쿨에서 배우고 들어가지 않나. 여성 배우라고 해서 진입 장벽이 더 높아야 할 이유가 뭘까 싶더라. 내가 액션을 해서 지평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웃음)
<가만한>은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끌리던가.
당시에 시놉시스만 읽고 마음이 동했다. 피아노를 못 치는 피아니스트라니 흥미롭게 느껴지더라. 시나리오가 궁금해져서 오디션에 지원했고, 그 무렵에는 <가만한>에만 집중해서 준비했다. 오늘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는데, 작업하면서 피아노와 연기가 거의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술은 하나로 통한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기술을 연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기하면서 제일 행복한 순간은 자기 자신을 표현할 때거든. 어떤 피아니스트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그런 말이 있더라. 결국 테크닉을 넘어서 피아노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대가의 길이라고. 유명 피아니스트 아르헤리치의 앨범 중에 연주하다가 실수한 부분이 그대로 들어간 곡이 있는데, 듣는 사람들은 그게 틀렸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따라서 친다고 하더라. 그만큼 자신만의 연주를 한다는 게 어렵고도 특별한 일 같다. 그리고 하나 더, 피아노 연주와 마찬가지로 연기도 잘 듣는 과정이 중요하다. 다큐멘터리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에 딱 그런 말이 나온다. “잘 들어야 잘 연주할 수 있고, 좋은 걸 아는 사람이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고.
감독이 보내준 영화였나.
맞다. 아르헤리치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도 봤고, 실제 피아니스트 연주 영상도 많이 보내주셨다. 특이한 폼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부터 정석으로 연주하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준서는 피아노를 관두고 나서, 그 이유를 설명하는 일조차 관둔 것처럼 보인다. 준서를 이해하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어땠나.
감독님들이 사전 작업을 무척 꼼꼼하게 진행하셨다. 대개 미팅도 3-4시간씩 이어졌고, 레퍼런스로 주신 자료도 아주 많았다. 안정연 감독님이 실제로 피아노 공부하실 때 보셨다는 <피아노음악>이라는 잡지도 받았다. 리뷰와 인터뷰를 공부하듯 읽었지. 혼자서 준서의 일기를 써보기도 했다. 다른 작업할 때도 그 인물이 좋아하는 걸 집중해서 찾는 편이다. 어떤 노래를 듣는지, 어떤 계절을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즐겨 보는지 상상하고 직접 그 내용을 써본다. 그럼 좀 더 인물에게 가까이 가닿을 수 있더라. 일기를 쓰고 난 다음에는 감독님에게 가져가서 내가 생각한 내용이 맞는지 확인도 해보고. 아무래도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큰 동기가 되지 않나. 재미도 있고 생각도 정리할 수 있는 과정인 거 같다.
생각이 많은 편인가.
생각 좀 그만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많다. (웃음) 책에서 봤는데 생각이 너무 많으면 ‘그만해!’라고 외쳐야 하는 순간이 있다고 하더라. 생각만으로 전부 이루어지지는 않으니까.
어떤 책인지 기억하나.
<가만한> 준비할 때 손모아 감독님이 알려준 『오늘은 어땠나요? 오늘도 모르겠어요.』라는 책이다. 정신과 상담소에서 상담자와 내담자가 상담한 내용을 기록한 그림책이다. 거기에 “생각이 너무 많을 때 마음속에서 가라고 외쳐야 해요.”라는 구절이 나온다.
준서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현재를 버티는 사람이다. 감정을 드러내거나 일부러 설득하려고 하지 않다 보니, 연기하기에 마냥 쉽지만은 않았을 거 같다.
감독님들이 감정 신을 무척 많이 편집하셨더라. 수미와 대화하며 속사정을 털어놓는 장면도 촬영하기는 했다. 감정을 덜어내고 나니 혼자서 가만히 참아내는 힘에 집중하며 훨씬 준서라는 인물이 명확해지는 거 같았다. 연기하면서 준서에 이입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연기를 시작한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힘을 낸다는 게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다. 성취가 없거나 동기가 생기지 않으면 힘이 빠져버리는 시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지 않나. 선배들과 이야기해보니 어떤 배우든 한 번쯤은 꼭 겪는 일 같더라. 그런 시기에 힘을 내고 싶어서 선택한 작품이고, 준서와 비슷한 마음을 품은 채 연기했다. 준서가 수미를 바라보는 시선은 내가 이화원 배우를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했을 거다. 수미는 이제 막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이지 않나. 이 작품으로 연기를 시작한 이화원 배우 또한 수미처럼 열정적이었기에 자연스레 그를 바라보며 나의 옛날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수미와 준서, 그리고 준서를 가르쳤던 선생님까지 쭉 이어지면서 마치 한 인물의 서로 다른 구간을 지켜보는 거 같기도 했다. 영화 속 피아니스트를 그렇게 배우로 치환해서 생각했다.
영화 속 준서를 생각하면 단박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나.
시나리오에 인상적인 지문이 있었다. 준서가 피아노 치는 수미를 바라보는 장면인데, “천천히 힘을 빼고 자신에게 몸을 맡긴다. 중간중간 실수를 하지만 스스로를 믿고 끝까지 연주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인생과 참 닮았다고 느꼈다. 감독님이 작품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것 아닐까 싶기도 했고. 아, 근데 배우보다 피아니스트가 훨씬 부지런하다. (웃음) 실제로도 연습을 거르는 순간 손가락에 바로 티가 난다고 하더라. 그런 면에서 힘든 순간에도 계속 내 일을 붙잡아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배우에게도 매일 연습하는 것이 있나.
연습이라고 해야 할까, 발음 교정에는 신경 쓰려고 한다. 배우로서 연기를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 안 좋은 건 사실이다. 쉬는 동안 힘이 좀 빠지기도 하고, 오랜만에 촬영하면 어쩔 수 없이 연기 외적인 부분을 의식하게 되더라.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금 어떤 표정을 짓는지 신경 쓰게 되니까.
영화의 전 과정 중에 특별히 아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좋아하고, 그때는 정말 인물이랑 관련된 일만 한다. 이번에도 감독님이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6주 정도 연습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원장님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셔서 아침에 학원 문을 열기도 전에 먼저 가서 바흐 곡을 연습했지. 피아노를 전공하는 10대 학생들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또 나와 전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구나 싶더라. 새로운 세상에 빠져들면서 인물의 인생을 느껴보는 순간이 늘 좋다.
<가만한>을 처음 본 건 언제였나. 그때 감상은 뭐였는지도 듣고 싶다.
지난 5월에 열린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졸업영화제에서 처음 봤다. 아무래도 나는 출연한 배우이다 보니 객관적으로 감상하기는 어렵더라. 준서라는 이 가만한 사람을 정말 이해하는 관객이 있을까? 아무것도 안 하면서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으로 보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들어서 다른 사람들이 작품을 어떻게 볼지 궁금하더라.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마냥 조용하고 심심하기만 한 영화도 아니거든. 개인적으로는 준서를 둘러싼 서늘한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촬영 때 음향에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 배우들은 마이크를 두세 개씩 사용했고, 배우마다 목소리도 따로 녹음했다. 목소리, 피아노 소리,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가 어우러지며 여운을 남기더라.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가만한>은 취향에 맞는 작품인가.
마음 상태에 따라 좋아하는 영화도 바뀌는데, 병든 인물에 끌리는 편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나 <러스트 앤 본>처럼 어딘가 고장 난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러고 보면 <가만한>도 같은 맥락에 있는 작품인 거 같다.
좋아하는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편인가, 아니면 새로운 작품을 계속 찾아보나.
한 번 보면 휘발하듯 흘려보내는 쪽에 가깝고, 두 번 이상 본 작품은 몇 개 없다. 그마저도 영화 자체에 대한 애정이라기보다는 극장에서 본 감흥 때문에 다시 본 경우다. <그래비티>와 <라라랜드> 정도. <라라랜드>는 뮤지컬 댄싱이 너무 재밌어서 다시 봤다.
영화 외에 취미는 뭔가.
얼마 전에 다른 배우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취미가 뭐냐고 물었는데, 어떤 분은 도예를 재밌게 하시고 다른 분은 요리 자격증을 땄다고 하시더라. 손과 관련한 생산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손을 움직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면이 있는 거 같다. 나는 원래 좋아하던 일을 못 한지 꽤 됐다. 사진을 찍으러 나갈 수도 없고 수영도 쉬고 있다. 겨우 헬스만 계속하는데 이번 주에는 헬스장도 문을 닫아서 집에서만 지냈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궁금해져서 그에 관련한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여태 돈을 벌기 위해 산 적이 거의 없는데, 코로나19로 인해서 여러 생각이 들더라. 과연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살아나갈 수 있을지, 이런 시대에 누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버는지 고민해보게 된다.
필요한 고민이다. 좋아서 하는 일로 돈을 번다는 게 제일 어렵게 느껴지더라.
오늘 인터뷰에 오기 전에 기억을 더듬을 겸 <피아노음악> 잡지를 다시 읽어봤는데, 어떤 피아니스트가 직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더라. 일 자체를 좋아할 수 있는 직업과 일로 얻는 보상을 좋아할 수 있는 직업. 피아니스트는 보상이 아니라 일 자체를 좋아할 수 있는 직업이니 얼마나 행복한가, 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배우도 비슷하다. 연기라는 일 자체를 좋아할 수 있어서 기쁘다. 다만 지금까지는 보상에 관해서는 지나치게 생각 없이 살았던 건 아닌가 싶다. 사실 연기를 지속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니까.
무기력한 시기에도 나름 바쁘게 지내는 거 같다.
최근에 친구들과 2주 챌린지를 하면서 조금이나마 나태에서 벗어났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은 모두 감독이고 그중에는 <전학생>을 함께 작업한 친구들도 있다. 다들 나보다 훨씬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어서 같이 하자고 말을 꺼냈다. (웃음)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이렇게 공공연하게 알리고 같이 북돋아 주어야겠더라. 다섯이 쓰는 단체 카카오톡 방이 있는데, 각자 소소한 목표를 정해놓고 2주간 지속하면서 매일 결과를 공유한다. 시작이 어려울 뿐이지 막상 하면 별일 아닌 거, 예를 들어 금주에 도전한 친구도 있고 하루에 두 페이지씩 글을 쓴 친구도 있다. 한 달 반 정도 됐는데 그사이에 매일 영어 공부 30분씩 하기, 하루 한 끼 잘 차려 먹기, 주식 도전하기 등 재밌는 챌린지가 많았다. 나는 덕분에 발음 연습을 꾸준히 했다. 남는 시간에는 텔레비전과 넷플릭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다들 비슷할 거 같다.
추천작을 소개해준다면.
왓챠에 올라온 <올리브 키터리지>. 프란시스 맥도먼드, 리차드 젠킨스, 빌 머레이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연기를 너무 잘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