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심장을 폭파하라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김선명 / Choice / 2020-08-21

1974년 8월 30일.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도쿄 본사 건물에서 시한폭탄이 터졌다. 이 폭발로 8명이 사망하고 376명이 다쳤다. 한 달 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늑대’라는 이름의 단체는 폭발 사건을 자신들 소행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을 ‘일제 침략기업’으로 규정했을 뿐 아니라, 폭발 사건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같은 노동자’나 ‘아무 상관없는 일반 시민’이 아닌 ‘일제에 기생’하는 ‘식민자’로 지칭했다. 흡사 1945년 8월 15일 이전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동아시아 사람들이 연대한 무장단체를 떠올릴 법한 이름의 이 조직은 놀랍게도 전후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인으로 구성되었다.

조직원 7명이 체포되기 전까지 1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늑대’에 이어 ‘대지의 엄니’와 ‘전갈’ 부대가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등장했다. 이들은 미쓰이물산, 다이세이건설, 가시마건설, 하자마구미 등이 소유한 건물들을 폭파하면서, 일제의 침략 과정에 협력해 조선인과 중국인을 강제노동 시키고 학살한 기업들의 잘못을 적시했다. 예를 들어 다이세이건설의 전신인 오쿠라구미는 1922년 발전소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를 혹사시켰고 이 과정에서 백 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 가시마건설은 1945년 하나오카 광산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 800여명이 봉기하자 400여명을 학살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자국 기업에 전쟁과 식민지배의 책임을 물으며 폭탄을 던졌던 이들의 궤적을 좇는 다큐멘터리다. 김미례 감독은 일용직 건설노동자였던 아버지에 관한 다큐를 만들던 2004년, 일제의 식민지배 시절부터 공사판에서 인부들을 부르던 속칭 ‘노가다’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일본 오사카의 가마가사키에 가게 됐다. 가마가사키 일용직 건설노동자의 환경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열악했고, 그 안에서 자본과 싸우는 사람들을 담아 <노가다>(2005)를 완성했다. <노가다> 상영회 중, 가마가사키 노동운동의 전신인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이야기를 다뤄달라고 말하는 활동가들을 만났다. 당시엔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해 미뤄뒀던 문제를 2014년 세월호를 겪으며 다시 꺼내들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체포 후 40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당시 부대원들을 직접 만나 근황을 묻고 이야기를 듣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명은 체포 당시 몸에 지니고 있던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으며 네 명은 복역 중이었고 세 명은 지명수배 중이었다. 게다가 체포 당시 엄청났던 언론의 관심은 이들을 철없는 ‘폭탄 마니아’나 국민의 적으로 몰아세웠고,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일본 사회에서 터부시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산야와 가마가사키의 일용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이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은 존재했고, 이들은 부대원들의 재판투쟁을 함께 하며 현재까지도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영화는 지원자들을 인터뷰하는 동시에, 면회가 불가능한 감옥 안 부대원의 경우는 그들이 남긴 글에 그들과 주고받은 편지 내용을 더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 제기한 문제를 되살리고자 한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일본 제국주의가 패전으로 끝난 게 아니며, 자신들을 비롯한 일본인을 제국주의적 국가자본주의의 수탈과 착취에 기대 현재의 풍요를 보장받은 식민 본국인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홋카이도의 아이누 민족에 대한 몇 백 년에 걸친 압박과 차별에서, 가마가사키의 일용노동자에 대한 노동착취에서 공통적으로 일제의 강제징용과 식민지 침탈을 봤다.

영화에 등장한 부대원들은 과거 폭력 행위가 잘못된 수단이었다고 반성한다. 예상보다 더 컸던 테러의 피해와 함께 그들이 고민했던 가치들까지 전부 부정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는 국가가 자신의 압도적인 폭력을 감추기 위해 테러 세력의 폭력을 적극적으로 가시화한 전략의 결과이기도 했다. 이들이 속한 세대에게 전학공투회의(전공투)가 불타버린 야스다 강당의 이미지와 함께 과격한 극좌학생운동으로만 기억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투쟁했고 어떤 논의들을 했는지는 더 이상 얘기되지 않는다. 영화는 출소 후 비폭력적 방식으로 운동을 지속하는 부대원들의 현재를 보여준다. 자기 안에 또 다른 식민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는 자본주의 국가체제에 대항한다는 의미에서 원전반대운동이나 여성운동도 이들에겐 반일투쟁의 연속이다. 무고한 시민을 죽였다는 가해의 무게를 짊어진 채로 지금 여기서 다시 반일투쟁의 가치를 고민하는 이들의 모습이 큰 울림을 준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East Asia Anti-Japan Armed Front 감독 김미례 출연 오타 마사쿠니, 다이도지 지하루, 아라이 마리코, 에키타 유키코 외 제작 감 픽쳐스 배급 아이 엠(eye m) 상영시간 74분 등급 15세이상관람가 개봉 2020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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