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쇼헤이 입문>은 그 제목에 걸맞게 일본의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세계에 대한 친절하고 흥미로운 설명으로 시작한다. 오즈 야스지로의 집과 달리 인간의 민낯이 드러나고 생명력을 낳는 물이 흐르며 격렬히 운동하는 기차가 근처를 지나가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집. 영화의 절반 즈음에 다다랐을 무렵, 감독은 돌연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를 찬찬히 뜯어보기를 중지하고 직접 이마무라 쇼헤이처럼 영화를 찍어보기로 한다. 거장의 프레임을 흉내 내보기도 하고, 서울에 보존되어있는 일본식 가옥인 박정희 전 대통령 가옥에 찾아가 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 짧은 여정은 배움을 동반한 실패의 기록이다. ‘나’는 결국 이마무라 쇼헤이처럼 찍을 수는 없지만, 나처럼 찍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병기 감독은 삼성전자서비스 A/S 기사들의 투쟁을 다룬 <무노조서비스>(2014),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투쟁과 그것을 바라보는 감독 자신의 마음을 기록한 <같이>(2016)라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다룬 극영화 <소리, 공간, 영화에 대한 나름의 연출론>(2018)을 연출했다. <이마무라 쇼헤이 입문>은 제24회 인디포럼 신작전 상영작이다.
2014년부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원래 언론홍보학과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두 개의 문>(김일란, 홍지유, 2011)을 보고 많은 자극을 받았다. 내가 알던 다큐멘터리는 방송 다큐멘터리밖에 없었는데,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난 거지. 그때부터 독립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디다큐페스티발 홈페이지에서 프로그램 리스트를 훑어봤더니 재밌어 보이는 영화가 무척 많더라. 지금은 스트리밍 사이트가 꽤 있지만, 당시엔 관심이 가는 영화가 있어도 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감독에게 페이스북으로 직접 연락하거나, 푸른영상에서 매달 열었던 다큐멘터리 상영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미디액트에서 독립다큐멘터리 수업을 들었고 수료작으로 <무노조서비스>를 만들었다.
지금은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다.
첫 작업 이후에 복학했더니 학교에서 청소노동자 투쟁이 벌어지고 있더라. 천막을 들락날락하면서 현장을 찍게 됐고,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제작지원을 받아 <같이>를 완성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하고 나서는 나한테 영화적으로 할 이야기가 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그렇다고 영화를 만드는 다른 방식에 대해서도 잘 몰랐으니까. 그즈음에는 김환태 감독의 <핵마피아>(2016) 작업에 참여한 인연으로 다큐이야기에서 수익사업 같은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백종관 감독의 <순환하는 밤>(2016)을 봤는데, 그게 내게 또 크나큰 자극이 됐다. (웃음) 실험영화라는 게 마음에 확 들어온 거지. 그래서 실험영화제도 다니고 영화들을 찾아보다가 대학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학교에 다녀보니 어떻던가.
온갖 영화들을 접하면서 그동안 내가 편협한 세계에 갇혀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니까 굉장한 해방감이 느껴지더라. 장률 감독님 수업을 재밌게 들었는데, 감독님께서 할 얘기가 없어서 영화를 못 만들겠다는 내 상태를 가지고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과제로 극영화를 하나 만들어봤다. <소리, 공간, 영화에 대한 나름의 연출론>이라고, 정말 마음대로 찍은 영화다. (웃음) 그걸 찍으면서 뭔가 해소되는 걸 느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세계영화사를 배우면서 60년대의 일본 누벨바그 영화들을 많이 봤다. 선배 감독들을 파묻어버리려는 좌파 감독들의 전위적인 태도가 너무 놀랍더라. 심지어 이마무라 쇼헤이는 오즈 야스지로의 조연출 출신이었는데도! (웃음) 해외 비평가들은 그런 감독 중에서 오시마 나기사를 가장 좋게 보는 것 같은데, 나한테는 이마무라 쇼헤이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논문 주제로 정하게 됐고, 그런 와중에 <이마무라 쇼헤이 입문>도 만들게 됐다.
영화의 시작엔 어떤 기획이 있었나.
처음부터 스크린을 상정해서 만든 영화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브라운관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TV를 만들어서 설치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수업에서 일본식 가옥구조에서는 다다미 숏처럼 낮은 눈높이의 숏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듣고는 직접 가서 확인해보고 싶더라. 마침 신당동에 있는 박정희 집에 일본식 가옥이 보존되어 있다는 걸 알고 무작정 찾아갔다. (웃음) 그렇게 이마무라의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전반부와 내가 직접 확인하는 후반부를 절반씩 붙여서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의 전반부는 오즈 야스지로와의 비교를 통해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세계를 들여다보는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으로 채워져 있다.
여기 쓰인 영화들은 전부 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연출했거나 조연출 등으로 참여한 영화들이다. 사실 작가 연구를 할 때 누구와 비교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오즈와 비교하는 것은 너무 뻔하고 재미없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마무라의 영화 궤적에서 오즈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더라.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의 특징들이 60년대 영화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데, 그건 분명히 오즈에 대한 반미학적인 태도와 관련되는 것 같거든. 특히 미친 듯이 폭주하는 이마무라의 기차는 오즈의 기차와 너무나도 다르지 않나. 그런 것들을 비교하면서 보여주고, 사람들이 관심을 두게 하고 싶었다.
이마무라 쇼헤이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 (웃음) 전반부를 마무리하면서 이마무라 쇼헤이처럼 영화를 찍고 싶었다는 말이 나오고, 실제로 촬영을 해보기도 한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특징 중 하나가 프레임 안의 프레임인데, 그걸 너무 찍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ㅅㄹ, ㅅㅇ, ㅅㄹ>(2020)의 강예은 감독에게 출연을 부탁해서 찍어봤는데 생각보다 멋지지 않았다. (웃음) 내가 특히 좋아했던 이마무라의 특징적인 형식은 프리즈 프레임이다. 사운드는 계속되는데 화면이 멈추는 그 순간들에 정말 힘이 있거든. 그런데 그것도 내가 하니까 그냥 NG가 되더라. (웃음) 그걸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보려고 했던 게 영화 마지막의 전철 장면이다. 열렬히 좋아한다고 해서 그 감독의 양식이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작가마다 자기 세계가 있는 거니까. <도쿄가>(1985)에 보면 빔 벤더스도 오즈처럼 찍어보는 장면이 나오지 않나. 거기서도 그게 잘 되진 않더라.

영화 소개에 쓴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가 좋아서 시작한 영화였지만….’이라는 문구가 그처럼 예상치 못한 영화의 진행 과정을 드러내 주는 것 같다.
난 이 영화의 장르가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카메라를 들고서 찍은 모험담이랄까. 이마무라 쇼헤이는 평생 인간을 재밌어했던 사람이다. 심지어 인간을 제대로 보는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프라이버시를 무시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던 사람이니까. 다다미 숏을 확인하기 위해 갔던 박정희 집에서, 혹시 지금 내가 인간의 내면을 본 게 아닐까 싶은 순간들을 마주했다. 박정희가 거기서 쿠데타를 계획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순례하듯이 그 집을 방문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부르고, 한국에서 다시 쿠데타가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당황스러운 말을 듣고서, “내가 지금 뭔가를 본 건가?”하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제대로 보진 못한 것 같지만.
그 집이 주는 굉장히 기묘한 느낌이 있다. 박정희와 육영수의 등신대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촬영하면서는 사실 좀 무서웠다. 2018년도 말이었는데, 촛불이 지나고 얼마 안 된 시기라서 언제든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되던 때였다. 다시 박근혜 시절처럼 될 거라는 기대가 그 공간에 있었다. 사실 지금의 홍콩을 보면 언제든 다시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어쨌든 누군가는 여전히 그곳에서 쿠데타의 시기를 기억하면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있었던 거니까. 두 번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영화 전반에 걸쳐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는데, 독특하게도 일본인 여성이 내레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꼭 내가 직접 내레이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건 영화니까 내가 여자도 될 수 있는 거고 굳이 한국인일 필요도 없지 않나. 일본어 대사가 나오는 <인류학 입문>(1966)의 한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하는데, 거기서 갑자기 한국어로 “이 영화는 1966년도에 이마무라 쇼헤이가 만든 인류학 입문이고….”하면 좀 재미가 없고 잘 안 붙을 것 같더라. 내레이션을 맡아준 아리사는 내 아내의 친한 친구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 잘해줬다. (웃음) 이거라면 제대로 붙는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더라. 굉장히 즐겁게 편집했다.
모험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여전히 집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병기 감독에게 집이라는 테마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일본 영화를 보면서 인간이 사는 집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됐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말했던 인간의 민낯은 집과 같은 공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집에서 민낯의 언어들을 마주할 수도 있겠지. 사실 독립 다큐멘터리들의 경우 대개 그런 내밀한 목소리나 진심을 시간의 힘을 통해 발견하지 않나. 그런데 난 그런 것들을 집이라는 공간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철에서 바깥 풍경을 찍는 장면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실제로 그렇게 촬영이 끝났다. (웃음) 당시에 내가 했던 생각을 더 정리하지 않은 채로 그냥 담고 싶었다. 찰나의 단상이라고 할까. 전철에서 그런 생각 많이 하지 않나. 또 그렇게 거창하지 않은 게 단편의 매력인 것 같다.
앞으로 남은 계획은 무엇인가.
내가 오이를 못 먹는데, 재작년에 DMZ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제작지원을 받아서 오이 못 먹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단편 정도의 분량은 이미 있고, 거기에 오이 비누 공장에도 가고 영양사도 만나면서 내용을 더 붙이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진행을 못 하고 있다. 학교에 돌아가서 졸업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논문을 쓰고 작품을 해야 하고. 계속 뭔가 만들 일은 있는데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제작지원 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이마무라 쇼헤이도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부유하게 살다가 계속 집을 줄여나가며 영화를 찍었다고 하더라.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