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미군 기지
인디포럼 2020 <그라이아이 : 주둔하는 신> 정여름
글 김선명 사진 이영진 / Feature / 2020-07-21

용산기지는 일본군과 미군의 연이은 주둔으로 100년이 훨씬 넘게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국내 인터넷 지도에서도 용산기지는 녹지로 표시된다. 정보통신망법이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정보의 유통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6월 주한미군사령부가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하고 작년부터 기지 반환 절차가 진행되면서 용산기지 일대는 진짜 녹지로 탈바꿈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용산공원 조성사업은 어긋났던 장소-기호를 제자리로 돌려놓게 될까. 

<그라이아이 : 주둔하는 신>은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기지 내 ‘체육관’(PokeGym 이용자가 포켓몬을 이용해 대결을 벌이는 장소)과 ‘포켓스톱’(Pokestop 포켓몬을 잡는 데 필요한 아이템 보급소)을 단서로 녹지가 은폐하던 용산기지를 엿본다. 정여름 감독에게 미군들의 SNS 속 용산기지는 마치 “누군가 꾸민 세트장” 같았다. 위장을 한 꺼풀 벗기니 드러나는 또 다른 무대. 허구와 실제, 믿음과 기억이 중첩되는 용산기지를 독특한 내레이션과 다채로운 파운드 푸티지를 통해 짚어가는 다큐멘터리 <그라이아이 : 주둔하는 신>은 인디포럼 2020 개막작에 선정됐다.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졸업전시 이후에 전주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했다.

졸업전시 때는 지금의 구성을 제시하는 데 집중한 초기 단계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전시를 위해 작업을 다듬는 중에 전주영화제에서 연락을 받았다. 영화제에 출품은 했지만 사실 이 작업이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직접 촬영한 게 아니고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찍어 올린 것들을 편집한 거니까. 지금은 모두가 영상을 공유하고 그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환경 아닌가. 유튜브 프리미엄처럼 오히려 보지 않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시대다. 그래서 이게 영화가 될 수 있다고도, 특별히 새롭다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용산기지를 둘러싸고 뉴스와 미군들의 공적인 홍보 영상부터 고전 영화, 나아가 ‘포켓몬고’의 증강현실 게임 이미지와 ‘스냅챗’, ‘브이로그’에 올라온 사적 영상까지 다양한 출처의 푸티지가 결합된 작품이다. 작업의 시작이 궁금하다.

장소가 담고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아버지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소련 시절 공장을 재정비하는 작업을 했다. 공장을 현대화하는 과정을 이메일을 통해 볼 수 있었는데 그게 상당히 미묘하더라. 장소가 바뀌고 그에 따라 장소의 서사들도 움직이는 게 흥미로웠다. 푸티지의 배치도 장소가 담고 있는 이야기의 변화에 맞춰 구성했다. 예를 들어 초반부에 삽입된 영화 <병정님>(방한준, 1944)은 조선 청년들을 태평양전쟁에 보내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을 담은 선전영화다. 이 영화의 주요 공간인 훈련 장소는 일제의 패망 후 일본의 군사 시설을 그대로 흡수한 미국에 의해 용산 미군기지가 됐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희생자를 기렸던 기지 내 위령비 또한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미군들을 위한 위령비로 바뀌었고. 이 위령비가 포켓스톱으로 지정되어 있길래 그 화면을 영화에 삽입하면서 장소 속 이야기의 변화를 담아냈다.

<그라이아이 : 주둔하는 신>
<그라이아이 : 주둔하는 신>

용산기지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였나?

작년에 해방촌으로 이사했다. 처음엔 무척 낯설었다. 이국적인 풍경과 높은 담. 어느 날 자다가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 너무 놀라 깬 적이 있다. 불꽃놀이였다. 알고 보니 미국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행사가 용산기지에서 있었더라. 담으로 가려져 평소엔 있는지도 모르게 지나치던 곳이었는데 그때 저기에 진짜 뭐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다 포켓몬고를 하며 산책하던 중에 담 근처에서 기지 안쪽의 포켓몬고 체육관을 발견했다. 체육관은 포켓몬고 이용자들이 포켓몬을 이용해 대결을 벌이는 장소로 주변 사진들을 찍어 포켓몬고 쪽에 보내야 등록 신청이 가능하다. 국내 지도에는 군사 기밀로 취급되어 녹지로 표현될 뿐 아무 정보도 잡히지 않는데 어떻게 체육관을 등록할 수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들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졸업 전시가 작년 말이었으니까 6개월여 만에 작업을 완성한 셈이다. 활용한 자료가 방대해서 더 많은 기간이 필요했으리라 짐작했다.

한 번 꽂히면 계속 검색해서 보는 버릇이 있다. 아무거나 다 보는 편이다. 인스타그램 태그로 미군을 검색하면 미군들이 기지 내 생활을 올려놓은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더라. 편집자로도 함께 한 안지환 피디님이 이미지를 잘 찾아주기도 했다. 반죽을 최대한 넓게 핀 다음 쿠키 반죽 찍어내듯 필요한 걸 맞춰갔는데 이때 글이 중요한 매개가 됐다. 뭘 하든 글을 먼저 쓰는 편이다. 설거지를 할 때도 설거지를 했다고 글을 미리 써놓고 한다. 이번에도 이미지들을 찾기 전에 3막에 걸친 이야기를 먼저 썼다. 그 글을 쓰기 위해 논문을 찾거나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며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보냈고.

<그라이아이 : 주둔하는 신>
<그라이아이 : 주둔하는 신>

3막에 걸친 글의 내용은 무엇이었나?

1막은 군사기지의 가시성과 비가시성에 대한 이야기다. 담벼락이 분명 있는데 없다고 여겨지는 것, 혹은 지도에서 보이지 않는 것처럼. 2막은 모방과 재생의 과정이다. 기지 내 카페테리아나 골프장처럼 실제 장소를 원하는 대로 편집하려는 욕망을 드러내고자 했다. 3막은 기록의 삭제에 관한 내용이고 이를 용산공원을 통해 얘기하고자 했다.

 

직접 쓴 글이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인지 직접 녹음한 내레이션에도 개성이 묻어난다. 특히 후반부 미군의 세 가지 작전명에 대한 해석을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작전명에 흥미를 느껴 모았던 적이 있다.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군사 작전명에 쓴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왜 그렇게 됐을까. 그래서 그 문장들을 보며 내 생각을 읊어 나갔다. 문장의 모순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그 말 자체가 허구적으로 느껴지더라. 이 말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말 자체의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강조하려 했고 결과적으로 다른 부분보다 힘이 들어간 내레이션이 나오게 됐다.

 

기지 내부 촬영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알고 있다. 일부러 간접적으로 얻은 장면들로만 영화를 구성하고자 한 것인가?

기를 쓰고 거기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가상의 세계에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찾았으니까. 여기 이런 게 있다고 기지 안 사람들이 다 올려놓은 것 아닌가. 거기에 그게 있는지 내가 직접 확인하는 건 무의미하다. 실상 그게 없더라도 그 사람들이 있다고 올려놓은 그 이야기는 실재하니까.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들여다본다는 개념이 중요했다. 포켓몬고로 포켓스톱을 해킹해 들어가는 순간부터 누군가의 눈을 빌려 기지 내로 들어간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스 신화 속 ‘그라이아이’ (백발의 노파인 세 자매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 하나와 젊어지는 이 하나를 돌아가며 사용한다.)를 제목으로 정한 것도 그 이유다.

<그라이아이 : 주둔하는 신>
<그라이아이 : 주둔하는 신>

기지 내 포켓스톱을 찾은 과정이 궁금하다.

그건 사실 내가 한 게 아니다. 포켓몬고에 열광하는 이들은 포켓몬을 빠르게 잡기 위해 해킹 툴을 이용하곤 한다. 그런 어플이 있다. 한 달마다 포켓몬고 쪽에서 업데이트를 통해 막기 때문에 매달 새로운 어플을 찾아 들어가야 한다. 이번 작업에서 난 대부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걸 썼다. (웃음)

 

인디포럼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인디포럼에서 관객들을 처음 만나게 될 텐데?

전주에서 내 영화는 온라인 공개를 안했다. 큰 스크린에서 모두가 어느 정도는 수동적으로 보길 원했다. 한 사람의 아주 작은 말도 그냥 흘려듣지 않았으면 하는 갈증이 있다. 사람들이 영상을 2배속하거나 스킵하며 보는 데 너무 익숙하지 않나. 이 영화를 온라인으로 보면 아무 의미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거기서 다 나온 영상들 아닌가. 굳이 그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걸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까?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극장에 미련이 많다. 기회만 주어지면 상영이든 전시든 개의치 않고 오가겠지만 이번 작품은 극장에서 더 자주 공개하고 싶었기 때문에 인디포럼 상영이 기대된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난 6월 원주의 옛 미군기지 캠프롱에서 ‘캠프 2020’이라는 부지 개방 행사가 열렸다. 거기 참여해 이번 영화를 전시 형태로 공개했다. 할머니가 원주 분인데 전쟁 직후에 기지로 빨래하러 다니며 생계를 이어가셨다. 이런 우연들이 겹치면서 지금은 미군기지 작업에 가장 재미를 느끼고 있다. 캠프롱은 평택으로 부대가 모두 이전한 후 10년 간 비어 있었다. 캠프롱에 대해 조사하다가 재밌는 걸 많이 찾게 됐고 다음 작업은 이것들을 갖고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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