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그런 게 아니라고
인디포럼 2020 <술래> 김도연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Feature / 2020-07-21

영문도 모르고 엄마 승옥(남미정)을 따라나선 민우(우연)는 낯선 집에 도착한다. 잠시 다른 곳에서 엄마와 함께 사는 줄 알았는데, 엄마는 옛 동료 선이(김자영)에게 민우를 맡기고 떠난다. 다 괜찮을 거라는 엄마의 말과 달리, 민우는 갑작스런 상황에 도무지 적응하기 어렵다. 혼자가 된 민우는 술래처럼 숨은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연락이 닿지 않는 엄마를 수소문하고 무뚝뚝한 오빠(곽진무)가 사는 기숙사를 방문한다. 민우의 눈에 두 사람은 혼자서도 잘 해내는 것만 같다.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원망할 대상조차 분명하지 않은 밤, 민우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다만 바라봐주거나 달래는 이가 없기에 눈물은 빠르게 멈춘다. 민우는 과연 어디쯤에서 술래잡기를 멈출 수 있을까. 민우가 술래를 관두면 뿔뿔이 흩어진 가족은 어떻게 다시 만날까. <술래>를 연출한 김도연 감독을 만나 영화를 만들기까지 거쳐야 했던 우여곡절을 전해 들었다. 영화가 불가능하게 보였던 순간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이들을 떠올리는 얼굴에서 고마움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술래>는 영화제를 통해 관객을 만난 첫 작품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영화제에 출품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학교에서 평가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는데, 영화를 완성하고 나면 더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부족한 점만 계속 눈에 들어오더라. <술래>는 첫 출품작이자 졸업영화이기도 하다. 교내 졸업영화제가 열렸을 당시, 감사하게도 여러 배급사로부터 제안을 받았고 이후 자연스레 영화제를 찾게 되었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에 이어 인디포럼이 올해 세 번째 영화제다.

 

얼마 전 폐막한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연기상을 받았다. 들뜨고 벅찬 상태에서 7월을 시작했을 텐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영화제에 가면 마냥 기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좀 처지더라. 너무 들뜰까 봐 무서운지도 모르겠다. 새를 날려 보내듯 멀리 떠나보낸 영화가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느낌이랄까? 다음 작품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현실적인 고민도 이어진다. 기쁘고 고맙고 걱정스럽고 그렇다.

<술래>

최근 <실>(공동연출 조민재, 2020)을 공개한 이나연 감독과도 친한 거로 안다. 엔딩 크레디트에 고마운 사람으로 꼽았더라.

나연 언니와 예전에 같은 작업실을 썼다. 그때 <가현이들>(2016)을 연출한 윤가현 감독까지 셋이서 술도 자주 마시고 친해졌다. <술래>를 찍기 전에 시나리오를 피드백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딱 나연 언니가 떠오르더라. 언니 작품 중에 <못, 함께하는>(2016)을 정말 좋아한다. 가족을 담은 다큐멘터리인데 내 상황과 겹치기도 해서 보는 내내 울었다. <술래>를 촬영한 후에도 모니터링이라든지 DCP 출력 등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줬다. 아! 무엇보다 주연을 맡은 배우들을 소개하고 추천해준 공을 잊을 수 없다. 확실히 눈이 예사롭지 않더라.

 

우연 배우와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 필모그래피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낯선 얼굴인데 영화에서 보여주는 공력이 대단하다.

나연 언니에게 소개받은 후 오디션을 제안했다. 사실 오디션에 훌륭한 배우들이 정말 많았는데, 우연 배우가 입장하는 순간 ‘아, 민우다!’ 싶었다. 연기도 너무 편안했고 마치 10대인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첫 미팅 때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내가 예전에 쓴 일기를 미리 메일로 보냈다. ‘오글거린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너무 진지한가?’ 하면서 한참 걱정했는데, 우연 배우가 자기 일기장을 보여주는 거다. 운명이다 싶더라.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걸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대화든 작업이든 진도가 쭉쭉 나갔다.

 

오디션 때는 어떤 연기를 보여줬나.

민우가 엄마에게 짜증 내는 장면. 속으로 ‘나랑 똑같잖아?’ 하면서 깜짝 놀랐지.

<술래>

어떤 배우를 찾고 싶었나. 당시 생각했던 기준이나 조건이 있다면.

<로제타>에 나오는 로제타(에밀리 드켄)를 많이 생각했다. 마냥 우울하거나 한없이 착한 사람은 아니길 바랐다. 화라는 감정이 밑바닥에 깔린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사실 여자들과 대화하다 보면 대부분 화난 상태임을 느낄 수 있다. 다만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거나 못하고 속으로 삭이는 사람이 많은 거다. <술래>의 민우는 그 감정을 드러내 보인다. 우연 배우가 잘 표현해준 덕분에 전체적인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민우는 감정 표현에 서툰데, 한편으로는 얼굴에 속마음이 금세 드러나기도 한다. 입을 다물고 시선을 떨어뜨릴 때는 툴툴대거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촬영하기 전에 우연 언니에게 시를 한 편 보냈다. 이승희 시인의 「여름의 우울」이라는 시인데 “누군가 내게 주고 간 사는 게 그런 거지라는 / 놈을 잡아와 사지를 찢어 골목에 버렸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언니도 핸드폰이나 노트에 저장해두고 종종 읽더라. 특히 민우가 녹즙을 먹거나 논둑에서 자전거를 꺼내 올리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현장에서 그 시를 보며 감정을 다잡았다.

 

시를 좋아하나 보다.

소설보다 시에 끌린다. 정해놓은 감정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상상할 여지가 있고, 시를 보며 떠오르는 이미지와 내 경험이 맞닿을 때 다가오는 즐거움이 크다.

<술래>

엄마로 등장하는 남미정 배우도 인상적이다. 동일한 상황에 딸과는 전혀 다르게 반응하지 않나. 불안과 불만을 터뜨리는 민우 앞에서도 승옥은 끝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여기서도 나연 언니가 등장하는데. (웃음) 엄마 역할을 한창 고민하던 때, 언니가 지나가듯 “근데 미정 선배님이랑 우연이랑 좀 닮지 않았어?”라고 하더라. 내가 왜 미정 선배님을 까먹고 잊었나 싶었지. 일전에 다른 현장에서 뵌 적도 있거든. 바로 연락드리고 미팅을 잡았다. 근데 내가 살짝 늦는 바람에 미정 선배님과 우연 언니가 먼저 만나게 된 거다. 둘이서 어색할까 봐 부랴부랴 달려갔는데 기우였다. 마주앉은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는데 나랑 엄마를 보는 듯했다. 집에 온 느낌이랄까? 그날 셋이서 엄마 얘기를 한바탕했다. 체면 챙기는 엄마한테 서운하고 나만 예민하게 구는 것 같아서 화나는데, 또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런 복잡한 마음. (웃음) 리딩하면서도 자연스레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공유하곤 했다. 그때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한번은 미정 선배님이 “엄마는 꼭 내가 그 기분이 아닐 때 사진 찍자고 한다”는 거다. 다들 어떤 상황인지 너무 잘 알지. (웃음) 그렇게 민우와 승옥이 셀카를 찍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두 사람의 온도 차이는 외양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승옥의 밝게 탈색한 헤어스타일이나 원색을 강조한 옷차림은 민우와 사뭇 대조적이다.

민우는 제 분노를 다스리는 데 급급하다 보니 꾸밀 생각조차 없을 것 같더라. 나 역시 치마를 즐겨 입는 아이가 아니기도 했고. 어릴 적엔 엄마가 나를 선머슴처럼 키웠거든. 집에서 바가지 씌우고 머리카락을 자를 정도였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갑자기 치마를 입히려고 하는 거다. 부자연스러운 느낌에 더 거부감이 들었다. 민우도 그런 맥락에서 편하고 익숙한 옷을 찾지 않을까 했다. 반면 엄마는 좀 더 보편적인 행복에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기에 일부러라도 밝은 옷을 찾아 입을 거라고 여겼다. 미정 선배님이 의상과 소품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술래>

전부 핸드헬드로 촬영한 것처럼 보이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카메라의 미세한 흔들림과 이동 때문에 계속해서 누군가가 민우 옆에 함께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제껏 모든 작품을 핸드헬드로 찍었다. 나도 그렇고 이재혁 촬영감독도 예전부터 핸드헬드를 좋아했다. 나로서는 샷을 나눠서 찍고 편집하는 방식을 상상하기가 어렵더라. 과연 그렇게 감정이 나올 수 있나 싶기도 하고. 감정이란 건 사실 굉장히 복잡하지 않나. 우울하다고 말할 때조차 그 안에 슬픔, 두려움, 불안, 심지어 기쁨도 얼마간 포함된다. 여러 결을 담으려면 핸드헬드가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일정 거리를 지킨다. 일반적으로 카메라를 픽스할 때와 비슷한 거리감이라고 느꼈다.

보통 배우를 가까이 잡을 때 핸드헬드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카메라가 인물에게 너무 밀착해서 훑어 내리는 느낌이 싫다. 픽스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민우는 이미 답답해하는 사람인데, 프레임까지 고정하면 보는 나로서도 미칠 거 같겠더라.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공간이다. 머물 곳이 사라진 민우는 재개발과 공사로 황량해진 골목을 걷거나 그 뒤에 빽빽이 들어선 빌딩 숲을 바라본다. 결국 어느 쪽도 민우를 품을 만한 풍경은 아니다.

로케이션 때문에 영화가 엎어질 뻔했을 정도로 고생했다. 결국 촬영을 일주일 남겨두고 인천까지 가서야 발견한 곳이다.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 옆에 곧 무너질 듯한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걸으면서도 비현실적인 풍경이었고 너무 갑갑하더라. “떨어지면 죽습니다”처럼 당연한 말을 써놓은 현수막도 인상적이었고.

<술래>

캐스팅, 스태핑, 로케이션 등 여러 어려움을 통과한 끝에 <술래>를 완성했다. 졸업과 동시에 새로 출발하는 느낌이겠다. 처음 영화를 만든 건 언제였나.

고등학교 2학년 때, 중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이 불쑥 연락을 주셨다. 청소년영화워크숍이라는 게 있는데 내가 생각났다면서 말이다. 딱히 할 일도 없는 방학 기간이라 호기심으로 가봤는데 너무 재밌더라. 선생님한테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아셨나 싶다. 사실 중학생 때 장래희망은 디제이였거든. (웃음) 엄마가 반대하는 걸 무릅쓰고 혼자 실용음악 학원에도 다니고 그랬는데, 선생님이 음악도 아닌 영화를 추천하니까 신기했다.

 

그래도 이전부터 영화에 관심이 있었나보다.

언니에게 영향을 받았다. 어쩌면 언니가 영화 말고 미술에 빠진 사람이었다면 나도 그쪽 분야에 도전하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언니는 소위 예술영화나 고전을 많이 찾아봤고 영화 음악도 무척 좋아했다. 한 번은 뭘 그렇게 재밌게 보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어린 애가 뭘 알겠냐는 식으로 무시하는 거다. 그때 엄청나게 자극받았지. 언니 하드디스크에 몰래 들어가서 영화를 다 훔쳐봤다. (웃음) 선생님께 워크숍을 추천받은 시기가 마침 <로제타>(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같은 작품을 보고 딱 ‘필’이 왔을 무렵이었다.

 

언니는 <술래>를 보고 뭐라고 하던가.

하이퍼 리얼리즘이냐면서 소름 돋는다고 하더라. (웃음) 실제 우리 가족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상하게 가족끼리 통과해온 시간이나 역사가 떠오른다면서. 본가에 내려갔을 때 부모님께도 보여드렸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 없이 고생했다고만 하셨는데, 얼마 전 엄마가 전화해서는 이런 영화 찍지 말라면서 우시더라. 무슨 마음인지 이해하니까 걱정 말라고 답했다. 예고도 했지. “엄마, 기다려 봐. 다음은 아빠야.” (웃음)

 

그럼 차기작 구상을 마친 건가.

계속 가족에 관해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다. 어릴 적에 느꼈던 기분이나 감정을 풀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예전부터 품어온 질문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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