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그게 뭔데?
SIDOF 2020 <I BY YOU BY EVERYBODY> 김남석·최승윤
글 정지혜 사진 이영진 / Feature / 2020-05-28

김남석 감독은 두 번째 장편 <12 하고 24>(2018)로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찍고자 하는 대상과 깊이 교감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려는 형식적 탐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김남석 감독의 재능을 지지해온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최승윤 감독은 <12하고 24> 상영회 때면 물심양면 힘을 보탰다. 그런 두 사람이 이번엔 공동 연출자로 협업했다. 각자의 장기를 살려 만든 <I BY YOU BY EVERYBODY>(2019)는 무용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한 기록이다. 영화는 무용수 최승윤의 고민으로 시작한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가 사라진 뒤 정작 자신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공연 영상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무용수들의 이야기를 담을 방도는 없을까. 최승윤 감독의 질문은 신뢰하는 동료 김남석 감독에게 전달됐고, 두 사람은 함께 카메라를 들었다.

 

 

최승윤 감독이 김남석 감독에게 공동연출을 제안했다고 알고 있다.

최승윤_ 곧바로 사라져 버리는 무용 공연의 휘발성에 허무함을 느꼈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무용하는 사람들과 같이 작업하고 싶었다. 무용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댄스필름을 찍는다. 나는 그게 좀 싫더라. 춤은 몸의 선이나 형태 이상의 것이다. 관객과 무용수가 춤이 발생하는 그 순간을 공유할 때 그들 사이에 분위기와 특정한 공기가 생기는데 그것이야말로 무용의 중요한 요소다. 춤추는 이의 몸의 선, 몸의 모양새, 춤의 특정 효과만 영상으로 담고 싶지 않았다.

김남석_ 처음 제안을 받고 거절했다. 영화라는 게 어떤 지점까지는 공동 작업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내가 작업해온 방식과 확고한 면면을 가져가야 할 때가 있으니까. 그때 다른 누군가의 생각과 섞이면 불화가 생길 수 있다. 또 최승윤 안무가를 제외하면 이번 영화에 참여한 다른 무용수들을 그때까진 거의 알지 못한 상태였다.

최승윤_ 김남석 감독으로서는 제약이 많았다. 나는 이미 내가 안무하고 콘셉트를 잡아 2017년 12월에 무대에 올렸던 동명의 공연을 통해 팀원들과 가까워져 있었다. 게다가 서울문화재단 등에서 제작 지원을 받아 만드는 영화라 2018년 안에는 꼭 완성해야 했으니까.

김남석_ 그런데도 최종적으로 함께해보자고 결정한 데는 새로운 상태에 나를 던져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최승윤 안무가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실제로 무용을 하는 사람들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무용과 미래의 고민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들을 섭외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최승윤_ 김남석 감독이 무용수들과 친분이 없었기에 시간을 따로내 무용수들을 만났다. 그들이 지금 어떤 관심을 갖고 사는지를 듣는 시간이었다.

김남석_ 모든 걸 열어뒀다. 댄스필름이라는 장르도 잠시 생각해본 적 있다. 그런데 카메라가 개입하는 순간, 무용 공연이라는 본연의 매체 특성이 흐릿해질 수 있겠더라. 그 방식에 구미가 당기지 않기도 했다. 무용수들과의 작업인 만큼 그들의 일상적인 움직임을 카메라에 포착하고 싶었다.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이 공연하는 모습이 아니라 무대 밖 무용수들의 상태, 생각, 일상에 관해서. 촬영 들어가기 전에 내가 그분들께 한 이야기는 하나다. “‘지금’에 집중하자. 나중에 생각이 어떻게 바뀌든 ‘지금’을 담자. 그리고 솔직해지자.”

최승윤_ 우리 영화에 나오는 무용수들은 전문 무용수라기보다는 무용을 배운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더 맞다.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휴학했거나 아니면 무용 공부를 하다가 군대 문제가 걸려 있는 경우다. 영화에도 나오는데, 무용과를 나왔지만 무용수가 되는 게 무섭다고도 하고. 무용이 재밌지만 하고 싶은 일이 매번 바뀐다고 하는 친구도 있다. 이들의 당시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I BY YOU BY EVERYBODY>
<I BY YOU BY EVERYBODY>

안무가이자 무용수로서 최승윤 감독의 당시 고민은 무엇이었나.

최승윤_ 공연 작품을 매번 올리는데 나한테 남는 게 없더라.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야망이 있기에 그런 생각이 든 것도 있겠다. 지금은 그때와는 생각이 또 달라졌다. 영화는 남았지만, 나는 이미 또 바뀌지 않았나. 영화 속 모습으로 박제된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참 재밌다. (웃음)

 

극 중 승윤은 동료 무용수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그들 각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반대로 승윤이 그들의 공간으로 찾아가기도 한다. 그 중간 지점쯤, 승윤의 집에 무용과 관련 없는 낯선 손님이 방문하는데 <나다 카다치의 혼돈의 삶>(2018)을 연출한 마르타 헤르니즈 피달 감독이다.

김남석_ 친구인 마르타 감독이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한국에 왔을 때다. 마르타를 포함해 영화하는 친구를 보기 위해 이 영화 촬영 중간에 전주에 다녀왔다. 마르타가 한국에 온 김에 서울에 들러 며칠 있다가고 싶다고 하더라. 최승윤 안무가의 집에 머물게 됐고 자연스럽게 ‘아, 마르타를 찍어야겠다’ 싶었다.

최승윤_ 다시 생각해봐도 이 영화는 정말 철저하게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 2018년 이맘때의 영화다. 마르타 감독이 당시 우리 집에 머물렀기에 영화에도 나오게 된 거잖나. <아이 바이 유 바이 에브리바디> 공연도 즉흥성이 강한 공연이었는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와 맥이 닿아 있다.

 

영화에서 김남석 감독은 보이스오버로 영화를 찍을 준비를 하는 극 중 승윤 안무가에게 영화 연출에 관한 본인의 생각을 편지처럼 전한다. 그런데 보이스오버가 들릴 때마다 고정 숏으로 남산서울타워가 보이는 게 특이하다.

김남석_ 내 작업에 내가 직접 출연하거나 참여하는 방식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특히 최근 작업은 타자에 관한, 그들의 속 깊은 얘기를 듣는 방식이었고 부분 부분을 주목해나가는 식이었다. 이번에는 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과 그들의 상황이 유기적으로 이어지길 바랐다. 그러면서도 보는 이가 흥미를 잃지 않게 할 영화적 형식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내가 직접 보이스오버로 등장했다. 영화에서 그 보이스오버의 등장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계속 떠돌고 있는 인물 같기도 하고, 이 영화 전체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보이스오버에 서울남산타워를 붙인 건 영화를 찍은 후암동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이라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최승윤_ 마지막까지 김남석 감독이 본인 목소리가 들어가는 게 맞는지 고민하더라. 나는 그게 맞다고 봤다. 본인이 해야 했다. 김남석 감독을 대신할 수 있는 목소리란 없지 않은가.

김남석_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나를 영화에 드러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승윤과 무용수 사이의 대화는 어느 정도까지 만들고 촬영에 들어갔나.

최승윤_ 큰 방향은 정했지만, 그것에 고정되고 싶진 않았다. 테이크를 가고 대화하면 김남석 감독이 컷을 외치고 피드백을 준다. 그렇게 몇 차례 테이크가 진행되면서 대사가 된 것 같다.

김남석_ 기본 맥락이 있다 해도 카메라 앞에서 대화를 하면 말에 두서가 없어진다. 대화가 흥미롭기 힘들다. 대화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테이크마다 피드백을 했다. 시간적 제약으로 내 욕심만큼 충분히 해냈는지는 모르겠다. 대신 나와 대상 사이의 관계의 한계를 최승윤 안무가가 촬영 대상과 직접적으로 대화하는 인물로 등장해 메워 줬다. 공동연출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최승윤 ⓒ이영진

고정 롱테이크 쇼트로 계단을 올라오는 인물, 걸어가는 사람을 지켜본다. 전작들에서도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김남석_ 구조적인 측면은 기존에 내가 해온 것에서 많이 가져왔다. 영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그런 장면은 항상 있었다. 내가 좋아한다.

최승윤_ 영화 후반부에 무용가들이 연습실에서 각자 몸을 푸는 장면이 길게 찍힌 게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때 그 부분에서 관객들이 많이 힘들어하더라. 문득 든 생각이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무용을 안 보러 오는 걸까?’ (웃음) 특별한 사건 없이 무용수들 저마다 움직이는 장면이고 우리는 그걸 관찰한다.

김남석_ 그 장면은 연출된 것도 아니고 무용수들이 몸 푸는 걸 찍은 거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이제 사람들은 보는 일을 멈췄다.’ 정신과 의식을 붙잡고 있지 않으면 좀처럼 제대로 볼 수 없는 세상 아닌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걸어 다닐 때도 다들 휴대폰을 보거나 이어폰을 꽂고 있다. 버스 안에도 TV가 달려 있고. 본다는 것의 의미, 보는 행위를 우리는 잃어버렸다. 그래서인지 가만히 멈춰 서서 카메라를 통해 대상을 보고 있는 이런 순간이 좋다.

 

뮤지션 신세하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 <12 하고 24>에 이어 이번에도 그의 음악 얘기와 음악이 들어가 있다.

김남석_ 실제로 마르타에게 신세하의 음악을 추천했고 마르타가 그의 앨범을 사 갔다. 영화에서도 마르타가 한국의 영화감독이 추천해준 앨범이라고 말한다. 우연이라는 걸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것이 일종의 흐름이고 에너지의 집합이더라. 실제로 편집하면서 보니 영화에 어떤 에너지가 흐르기도 하고. 임은정 무용수가 “예술가가 되고 싶다. 그냥 스치는 바람도 그냥 스쳐 보내는 게 아니라 스치면서 느끼고 가슴이 흔들리고…”라고 말하지 않나. 또 마르타와 최승윤 안무가가 영화의 테이크 개념에 관해 말하는 장면이 있다. 테이크를 여러 번 가는 게 반복이지 않느냐는 말에 마르타는 이번 테이크에서는 바람이 불었지만, 다음 테이크에서는 바람이 안 불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한다. 영화 안팎으로 서로 만난 적 없는 임은정, 마르타 두 사람이 ‘바람’이라는 걸 이야기를 하며 예술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이어짐이 영화 전반에 자연스레 들어가 있다.

 

최승윤 감독은 안무와 무용수로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

최승윤_ 2013년 <사라지기 위한 시간>의 안무가로 데뷔했다. 당시 여기저기 기사도 나고 대학로 아르코 대극장에 대형 걸게도 걸리고. 나름 화려한 시작이었다. 5살 때부터 클래식 발레를 했고 선화예고, 이화여대 무용과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국립발레단 시험도 봤는데 합격한다고 해도 내가 시스템에서 잘 견디지 못할 것 같았고 불행할 것 같았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무작정 베를린으로 갔다. 아버지께 계획서까지 써서 드리면서 딱 1년간 경제적 지원을 부탁드렸다. (웃음) 그곳에서 보고 싶은 공연, 축제를 다 챙겨봤고 무용수로도 잠시 활동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결심했다. 안무하는 예술가로 살아가야겠다고.

 

72초 TV가 만든 웹 드라마 <dxyz>(2015~2019)에 모리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최승윤_ 그 드라마 연출가와 공연을 통해 알게 됐다. 그분도 프랑스에서 공연예술이론을 전공했고 한국에서 공연 연출을 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셨다. 영상 콘텐츠 제작을 시작하시면서 내게 출연 제안을 하셨다. 배우로서 첫 작품이다. 지금도 계속 연기를 하고 있는데 오늘도 인터뷰 마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생의 단편 작업 리딩에 참여한다.

 

무용수, 안무가, 영화감독, 배우 등 많은 활동을 하는데 무엇이 가장 재밌나.

최승윤_ 이제는 구분을 두려 하지 않는다. 한때는 나도 모르게 순수예술에 대한 우월 의식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위계가 촌스럽고 사고의 폭을 좁히는 일이더라. 훈련을 통해 할 수만 있다면 제안 오는 걸 다 해보려 한다.

김남석 ⓒ이영진

김남석 감독은 어떻게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됐나.

김남석_ 미국에서 태어났고 그 후 한국에서 공부하다가 고교 시절 다시 미국으로 갔다. 뉴욕에서는 패션 관련 마케팅, 머천다이징 공부를 했는데 주변에 예술 계통에서 일하고거나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하루는 친구들의 학교 전시를 보러 갔는데 그곳에서 나도 창의적인 방식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지인 중에 카메라 작업을 하는 이가 있어서 그분의 뷰파인더를 한번 보게 됐다. ‘아, 이거다!’ 직관적으로 오더라. 생각해보면 사진 찍기나 디지털카메라로 동영상을 촬영하는 걸 좋아 했다.

 

미국 뉴욕 헌터칼리지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벨라타르의 필름팩토리를 졸업했다.

김남석_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해본 적이 없고 한국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한국의 영화 관련 학교에 지원했지만, 결과적으로 못 갔고 또 안 갔다. 그때 앞서 말한 카메라를 다루는 지인이 사라예보에 필름팩토리 프로그램이 있다고 알려줬다. 마침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벨라 타르 영화 상영회가 있었다. <런던에서 온 사나이>(2007), <토리노의 말>(2011)을 보고 이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가볼 만하겠더라.

 

벨라 타르 감독이 애정을 갖고 지도한 학생으로 안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게 있다면.

김남석_ 감독님이 많이 격려해주셨다. 초중고교 과정 통틀어 학교에서 인정받고 격려 받은 경험이 거의 없는데 작업자로서 내가 존경하는 분이 응원까지 해주신 것이니. 감독님은 ‘네가 대하는 대상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며 대상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사라예보에서 첫 장편 <쿼타>(2015)를 작업할 때 그 말을 많이 생각했다. 대상과 내가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것에 관해서.

 

앞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

최승윤_ 무용, 연기, 동화책 글쓰기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작업을 같이하자고 제안해 온다. 경계를 두진 않고 있다. 무용수로 계약한 작업도 하나 있고. 내가 안무를 짜서 하는 작업은 서두르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 영화의 관객들이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 내용도 잘 봐주시면 좋겠지만 무엇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 이어져 있는 이 영화의 구조를 통해 영화 만들기의 과정을 환기해주길 바란다. 그 구조를 만들어낸 김남석 감독, ‘진짜 천재’다 싶더라. 초대하길 잘했다. (웃음)

김남석_ 이 작품 이후 단편 작업을 했다. 오랜만에 극 영화적인 면이 좀 더 강한 장편 시나리오도 준비 중이고. 말하고 싶은 뭔가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기다. 지금까지도 자연스럽게 영화를 찍을 기회가 왔으니 그런 흐름이 만들어지면 또 뭔가가 시작되지 않을까.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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