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어디서 봤는데 누구였더라, 싶은 배우가 있다. 개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크린에 펼쳐놓는 모습이 변화무쌍해서다. 정수지 또한 엔딩 크레디트에서 뒤늦게 이름을 확인하며 손뼉 치게 만드는 배우다. 다양하다거나 새롭다는 표현만으로는 아쉽다. 정수지에게는 반전이 있다. 앳되고 사랑스러운 얼굴 뒤에 단단한 결기를 품는가 하면, 해사하게 휘어지는 눈꼬리에는 얼마간 능청과 배짱도 섞여 든다. 헤어짐을 통보한 애인 앞에서 엉엉 울다가도 할 말은 하고 돌아서고(<2박 3일>), 엄마를 향한 애정이든(<나의 자리>) 가해자를 겨냥한 분노든(<비하인더홀>) 기어코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달한다. 그런 정수지 덕분에 영화는 흥미로워진다. 앞이 훤히 내다보이는 익숙한 길보다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관객을 이끌 것만 같다.
정수지는 데뷔한지 6년차에 접어든 배우이자 두 편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작년 한 해만도 <비하인더홀>, <나의 자리>, <어떤이> 등 여러 단편으로 영화제를 찾았고, 첫 영화 출연작인 <2박 3일>이 다른 작품과 묶여 <오늘, 우리>라는 제목으로 개봉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여름에는 두 번째 연출작 <이름 없는 다방에서>를 촬영하며 한 계절을 보냈다. 정수지가 부지런하게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만남은 조금씩 미뤄지다가 해를 넘겨 연락을 주고받았다. 영화를 궁금하게 만드는 정수지가 궁금했다. 인터뷰를 청하는 전화에서 그는 “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코로나19가 맞물리면서 되게 낯선 상황”이라고 말했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마음먹었을 때 공교롭게도 전염성 바이러스가 ‘거리 두기’의 시간을 몰고 왔다는 뜻이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어진 기묘한 여유를 틈타 정수지를 만났다. 일을 멈추자 일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는 그에게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일상을 꾸리고 싶은지 물었다. 정수지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말과 생각을 동시에 이어 나갔다. 끝을 짐작하기 어려운, 그래서 흥미진진한 영화를 보는 듯했다.
사진 찍는 거 좋아해요? 촬영할 때 보니 인터뷰 전에 통화했을 때보다는 에너지를 되찾은 느낌이어서요.
조금씩 이 시간에 적응해가는 중이에요. 쉬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사실 사진은 아직 어색해요. 경험도 별로 많지 않고 굳이 따지면 찍히는 것보다는 찍는 쪽을 더 좋아해요.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면서 정말 한가해졌다고 했죠. 왜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나요.
흔히 ‘번 아웃’이라고 하잖아요. 이전까지는 그냥 남의 일이라고만 여겼고 “난 강하니까 괜찮아, 더 열심히 하자!”고 다독였죠. 근데 작년에 <이름 없는 다방에서>를 찍으면서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컸어요. 휴학 중에 학교 밖에서 만든 작품이고 어떤 지원도 없이 스스로 책임져야 했거든요. 7월에 촬영하고 나서 8월부터 제작비를 메우는 대장정이 시작됐죠. (웃음) 바쁜 시간을 쪼개 현장에서 일을 거들어준 친구들에게도 빚을 갚아야 했고요. 연기하거나 오디션을 보러 가지 않을 때는 스태프로 일했어요. 매일 일하며 반년을 보내고 나니까 ‘지금 뭐하는 거지?’ 싶더라고요. 무엇보다 이전까지 연기하며 느껴본 적 없는 피로감에 당혹스러웠어요. 일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연기가 즐겁지 않을 때는 정말 심각하다고 생각했죠. 그러면서도 이미 예정된 일을 소화하느라 바로 휴식을 갖기가 어려웠어요. 작년 연말을 버티듯 보냈고 올해 초에 <이름 없는 다방에서> 후반작업을 진행했어요. 3월 중순에 촬영하기로 한 작품이 있어서 최근까지도 일을 놓지 못하다가 이제 막 쉬기 시작했어요.
안 그래도 2015년에 연극 <어느 계단 이야기>로 데뷔한 이후 필모그래피가 비었던 해가 없더라고요. 그전에는 대학로에서 스태프로 일했다고 들었어요.
연기가 하고 싶어서 무작정 대학로에 들어갔어요. 그런 사람이 많죠.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배우들은 차고 넘치는데 오디션 기회는 적으니까요.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스태프 일을 병행하다가 운 좋게 기회를 얻었어요. 배역은 작았는데 저한테는 귀한 경험으로 남아 있어요. 어떤 네트워크도 없이 들어간 곳에서 견고한 벽을 ‘뚫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고요.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졸업 이후에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어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무척 많았을 것 같은데 원래 꿈은 뭐였어요?
십 대 시절부터 막연하게 배우를 꿈꾸기는 했지만 길을 몰랐죠. 광주에서 자랐는데 일단 서울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고요. 어린 마음에 아무도 제 얘길 안 들어줄 거라고 여겼나 봐요. 부모님과 상의한 적도 없었고 당연히 반대하시리라 예상했죠. 가족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어요. 입 밖으로 꺼내면 주워 담을 수 없거나 못 견디게 하고 싶어질 거 같았거든요. 어린 시절은 딱 <나만 없는 집>(김현정, 2017) 같은 풍경이었어요. 공부 잘하고 눈에 띄는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낀 둘째였죠. 자유롭기도 했지만 관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어요. 어차피 안 될 테니까 차라리 다른 걸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대학 다닐 때는 방송 기자가 되고 싶기도 했어요.
기자가 하는 어떤 일에 마음이 갔을까요?
기자 역시 말과 글을 사용하는 직업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만 다르지 배우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만약 부모님이 좀 더 응원하고 기다려주셨다면 지금쯤 기자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기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했을 때도 일반 회사에 취직하는 걸 권유하셨거든요. 결국 몇 달 동안 직장인으로 살기도 했어요.
어떤 회사였나요?
백화점이요. 의류를 바잉하는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현타’가 왔어요. 쇼핑에도 별로 관심 없고 브랜드도 잘 모르거든요. 동기들은 꿈에 그리던 직장이라며 밝은 얼굴인데 저는 매일 출근하는 게 고역처럼 느껴졌어요.
‘더는 못하겠다, 이 일이 아니라 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이 선 순간이 있어요?
한 친구가 들떠서 말하는 거예요. 몇 년 후에 저 선배처럼 되고 싶다고요. 그 얘길 듣는데 속으로 ‘아, 나는 저렇게 되면 안 되는데? 저게 내 미래면 안 되는데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퇴사한 다음에 주변에는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려고 관둔 거라고 거짓말했어요. 도서관 가서 공부한다고 해놓고는 대학로에 갔죠. 부모님이 나중에 아시고 굉장히 배신감을 느끼셨어요. 여태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둘째여서 관심이 덜하기도 했겠지만, 달리 말하면 부모가 주의 깊게 챙기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 몫을 해내는 아이였던 거 아닐까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른 생활’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게 저예요. 제가 나쁜 길로 빠지는 걸 누구보다 저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거죠. 차라리 어릴 적에 좀 엇나가기라도 했으면 부모님이 그렇게 화를 내셨을까 싶어요. 연기한다고 알리고 나서 오랫동안 사이가 안 좋았어요. 이상한 ‘바람’이 들었다고 생각하셨는지 제가 뭘 해도, 아니 하면 할수록 그만두라고 하시더라고요. <2박 3일>(조은지, 2016)로 제16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았을 때도 전혀 기뻐하지 않으셨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할 때도 “지금 네 나이가 서른인데 대체 무슨 생각이냐”면서 싫어하셨어요. 저한테는 상처이자 허물이기도 해서 한동안은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했어요.
누구나 응원이 필요하잖아요. 꾸준히 성과를 내면서도 불안했겠어요.
응원받는 친구들이 너무 신기하고 부러웠죠. 저로서는 이게 응원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인가 싶었으니까요.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에 가족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일부러 해맑은 척 소식을 전했어요. 물론 반응은 없었지만요.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당해야 한다고, 우직하게 맞서면 될 거라며 스스로 달랬어요. 근데 일 년쯤 전에 아빠가 갑자기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하다니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제가 대단한 성취를 이뤄내는 게 중요했다기보다는 저를 인정하기까지 부모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셨던 것 같아요.
<구례 베이커리>(김동찬, 2018)의 노을과 <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곽민승, 2019) 속 수아가 떠올라요. 두 인물은 빵을 만든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서 살다가 어느 순간 마음을 직시하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듣고 보니 실제 수지 씨의 이야기와도 겹치는 구석이 있네요.
맞아요,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죽음이 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방 촬영을 가면 장시간 차를 타잖아요. 운전하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고 길 위에서 갑자기 어떤 재난이 닥칠지 모르는 일이죠. 촬영하면서도 이 작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촬영 마치면 “끝났다!”가 아니라 늘 “살았다!”고 말해요. 연기를 선택한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맥락이에요. 결국 죽을 텐데,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시기보다 일찍 죽음이 찾아올지도 모르는데, 그때 백화점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연기하는 게 훨씬 낫겠다 싶었거든요.
<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에서 엄마와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 파리 에펠탑 앞에서 찍은 사진이 나오잖아요. 아주 앳된 얼굴인데 언제 촬영한 거예요?
10년 전에 유럽 여행했을 때 사진이에요. 부모님이 동생을 데리고 가면 보내준다고 하셔서 같이 갔죠. (웃음)
여행 좋아하나요?
연기하기 전에는 많이 다녔어요. 인도에도 가봤고 유럽 여행도 두어 차례 다녀왔어요. 일 년에 한 번은 어떻게든 해외에 나가려고 노력했는데, 취업을 준비하고 진로를 바꾸면서 한동안 못 갔죠.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요?
서른을 기념하며 떠난 제주도 여행이요. 한예종에 합격하고 나서 가족과 한참 사이가 안 좋은 시기였어요. 2017년 2월 무렵인데 개강 전에 혼자 어디라도 다녀오자 싶었어요. 공항으로 가는 전철에서 비행기 표를 끊었죠. 하필이면 폭설 주의보가 발령된 날이어서 착륙만 한 시간 가까이 걸렸어요. 자동차를 빌려서 며칠 동안 섬을 한 바퀴 돌았어요. 바다가 다 다르게 생겼더라고요. 여행 마지막 날에 글을 썼는데 돌아와서도 한 번씩 꺼내서 읽어 봤어요. 스스로 응원하는 내용이에요. 그동안 잘했고 앞으로는 이렇게 지내면 좋겠다, 하는 이야기요.
좀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어요?
살다 보면 언제 해가 뜨고 지는지 잘 모르고 넘어가잖아요. 그러다 여행을 떠나면 그런 것들이 되게 중요해지죠. 몇 시에 일어나서 언제쯤 잠자리에 들지,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 매일 생각하고요.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을 잘 인지하며 살자고 썼어요. 최근에는 그걸 출력해서 머리맡에 놓아두었어요. 당시 제가 듣고 싶었던 말과 요즘 제가 저에게 해줘야 할 말이 비슷하더라고요.
사실 입학 직전인 2016년은 어느 때보다 결실이 풍성한 해였어요. 연극 <올모스트 메인>을 장기 공연했고, 첫 영화인 <2박 3일>을 촬영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죠. 그러던 중에 연기가 아닌 연출 공부를 시작했어요. 연기보다 영화라는 매체를 향한 관심이 컸나 봐요.
연극 무대에 설 때도 늘 모자라고 부족한 배우였어요. 그냥 저만의 느낌이 아니라 확실히, 객관적으로요. (웃음) 그런 면에서 더는 충격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또 다른 세계였죠. <2박 3일>은 너무 좋은 기회였지만 돌이켜보면 감독님과 스태프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커요. 영화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찍었으니까요. (조)은지 언니가 모니터하라고 불러도 안 갔어요. 내가 화면에 어떻게 보이는지 알면 연기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무대에서 연기할 때처럼 한 호흡으로 보여주는 것만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촬영을 마치고 나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잘하는 게 하나도 없구나’라는 자책이 밀려왔어요. 계속 이 상태라면 영원히 연기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시에 영화가 재밌기도 했어요. 어쩌면 이게 나와 더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영화를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먹긴 했는데 앞길이 안 보였어요. 프로필도 돌리고 오디션도 갔지만 당장 닿을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때가 9월이었어요. 지방 공연을 다니던 중이었는데 12월이면 모든 스케줄이 종료되는 상황이었죠. ‘내년에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그럼 학교에 가자!’ 하고 원서를 접수했어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신감을 키우는 면에서도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어요. 전공자가 아니어서 겪는 설움이나 자격지심을 떨쳐내고 싶었거든요.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 연출 공부가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던 거군요.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연기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하지만 연기를 전공한다면 현주소에서 좀 더 멀리 나아갈 수는 있어도,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지는 못할 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합격할 자신도 없었어요. 매년 (연극원 전문사 입시에서) 여자 배우 다섯 명을 뽑는데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막막했죠. 무엇보다 영화와 이야기 자체에 관심이 많아서 오래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연극을 할 때도 극작이라든지 1인극 창작 워크숍에 꾸준히 참여했어요. 연기도 못하면서 중간중간 딴짓을 했던 셈이죠. (웃음) 여전히 글로 존재하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요. 꼭 영화화되지 않더라도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글쓰기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뭔가요?
이따금 글의 힘이 느껴지는 시나리오를 읽을 때가 있어요.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요. 글에서 새로운 세계와 인물을 만들어내잖아요. 머릿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서 표현한다는 면에서 그야말로 완전한 순수창작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그만큼 클래식하면서도 멋진 일이 있을까 싶어요.
입학해서 처음 만든 단편 <담배를 태우는 법>(2018)에는 배우로서의 고민이 여실히 묻어나요. 노을(정수지)은 오디션을 준비하며 담배를 피우는 연습을 하죠. 시나리오에 나오는 흡연 장면을 제대로 연기하고 싶어서요. 그냥 태우는 척만 하라는 선배에게 노을은 불쑥 “홍아는 무슨 담배를 필까요?”라고 물어요. 평소에 연기할 때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리라고 짐작했어요. 대본에 나오지 않거나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 부분이 수지 씨에게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 되지 않을까 하고요.
실제로도 그런 편이긴 한데, 사실 시나리오 쓰면서는 ‘사람들이 같잖게 보겠다’며 걱정했어요. (웃음) 모든 배우가 그렇듯 저 역시 매 작품마다 다른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요. 티끌만 한 변화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이 길어지죠. 인물에게 어울리는 행동과 말투, 소소한 습관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어떤 작품에서는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가르마 방향을 바꿨어요. 사실 감독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관객도 눈치채지 못할 테지만, 아무 변화도 없이 연기를 지속한다는 건 계속 한 가지로 ‘돌려막기’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영화에서 노을은 “잘하고 싶다”는 마음도 재차 내비쳐요. 수지 씨가 생각하기에 잘한 연기란 뭔가요?
글쎄요, 연기를 잘한다는 건 결국 취향의 문제처럼 다가와요. 잘한다는 ‘이미지’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연기에 객관적인 기준은 없고 잘하고 못함을 잴 수도 없죠. 근데 분명히 어떤 연기를 볼 때 납득할 수 있는 순간이 있잖아요. 어색함 없이 믿게 만드는 힘이요. 결국 저한테 달린 몫은 아닌 거 같아요. 제가 노력해야 할 일은 연기하는 그 순간에 최대한 집중해서 할 수 있는 만큼 해내는 거겠죠.
작년에 영화제를 통해 나란히 소개된 단편 <나의 자리>(이지현, 2019)와 <비하인더홀>(신서영, 2019)을 보고 놀랐어요. 비슷한 시기에 촬영한 작품들인데, 어떤 인물을 연기하느냐에 따라서 분위기뿐만 아니라 외모 자체가 달라보여서요. <나의 자리>에서는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엄마의 변화를 목격하는 인물을 맡았고, <비하인더홀>에서는 회사 내 불법촬영을 응징하는 인턴 사원을 연기했죠. 나이와 직업, 성격이 전부 다른 인물을 연이어 연기하면서도 어색함 없이 작품에 스며든 비결이 뭔가요?
<나의 자리>를 2018년 9월에 <비하인더홀>을 10월에 찍었어요. 한창 연기에 집중하는 시기였고 노력하는 만큼 성과를 냈던 거 같아요. 왜 공부도 하다 보면 흐름을 타서 잘 되는 시기가 있잖아요. 두 작품 모두 감독님들과 합이 좋기도 했어요. 저보다 연하인 여성 감독님들이었는데 서로 마음을 열고 이것저것 시도해봤죠.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분위기였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라고 북돋아 주는 현장이었어요. 특히 <비하인더홀>의 정희는 저랑 신기할 만큼 닮은 인물이에요. 현장에서 그냥 정수지로 있어도 될 정도로 잘 맞더라고요. 사실 일부러 연기인 척하기도 했어요. 그래야 잘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웃음) 얼마 전에 서영 감독님과 제50회 템페레국제단편영화제 참가를 겸해서 짧게 유럽 여행을 다녀왔어요. 촬영할 때는 몰랐는데 정희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 MBTI와 에니어그램 유행까지 정해놓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근데 그 결과가 실제 저랑 다 일치해요. 감독님도 이번에 같이 여행하면서 확실히 알았대요. 하루는 저를 보면서 “배우님, 정말 정희랑 똑같으시네요…”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아무리 피곤해도 숙소에 돌아와서 바로 눕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치우고 정리하고 계속 그렇게 움직이니까요.
나이를 특정하기 어려운 얼굴이기도 해요. <2박 3일>에서는 젊다기보다는 어려 보였고,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이가홍, 2018)에서는 드라마 대본 회의 중에 걸핏하면 노조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운동권이야?”라고 핀잔받는 ‘막내’ 작가를 연기했어요. 동안인 덕분에 폭넓은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지만, 대개 나이보다 어린 인물을 연기한다는 점에서 내심 아쉬운 면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오히려 나이를 버린 느낌이랄까요? 제가 스무 살에 연기를 시작했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역의 연령대가 바뀌었을 수도 있죠. 근데 스물여섯에 시작했으니 이미 나이를 먹어버린 다음이잖아요. 저보다도 지켜보시는 분들이 아쉽다고 하실 때가 있는데, 솔직히 제 입장에서는 불러주시니 감사할 뿐이에요. 덕분에 교복도 입어보고요. 학교에 다니다 보니 주변에 영화를 찍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근데 친구들은 저한테 절대로 ‘어리고 여린’ 인물을 맡기지 않아요. 연기할 때는 분명히 다른 말투와 표정일 텐데도 평소에 받은 인상이 있어선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좀 싸우는 편이거든요. (웃음) 뭔가 잘못됐다는 판단이 서면 질문하고 지적도 잘해요.
그래서 두 번째 연출작은 멜로가 된 걸까요? (웃음) 어리고 여린 인물은 아니지만,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던 애틋한 정서가 두드러져요.
멜로를 좋아하고 즐겨 봐요. 시간이 지나서 다시 꺼내 보는 작품도 대부분 멜로 영화예요. 시기와 상황에 따라서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았거나 보고도 잊었던 것이 새로 보이더라고요.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도 멜로드라마에요. 두 명의 배우만으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는 데다, 사랑은 워낙 보편적이면서도 강렬한 감정이니까요.
어떤 작품을 좋아해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폴 맥기건, 2004)라든지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기타노 다케시, 1992), <500일의 썸머>(마크 웹, 2009)를 여러 번 봤어요. 최근 한국에서는 멜로 영화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서 아쉬워요. 제가 좋아하는 작품도 대개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나온 영화들이거든요. 이번 작품을 준비할 때는 <기쁜 우리 젊은 날>(배창호, 1987) 같은 80년대 한국 영화를 많이 찾아봤어요. 영화적 구성보다도 한 시대가 그려내는 사랑에 관심이 갔어요.
<이름 없는 다방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서 주고받는 긴 대화로 이루어져요. 특이하게 1986년 달력을 보여주며 시작하는데, 기억에도 없고 경험하지도 않은 시기를 영화에 불러온 이유가 있을까요?
오래된 물건을 좋아해요. 오늘 촬영 때 입은 옷도 다 빈티지예요. 정확한 시대를 정하지 않았을 때도 다방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옛 정취가 남은 공간을 담고 싶었거든요. 아무래도 영화를 만들 때는 저한테 의미 있는 여러 가지를 응축하게 되잖아요. 부모님이 결혼했던 날을 영화에서 기념하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연기하다 보니 딱히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거든요. 실제 결혼기념일은 1986년 5월 5일인데 촬영 시기상 연도만 유지하고 날짜는 바꿨어요. 연애하던 시절의 부모님을 떠올리면서 남녀 캐릭터를 만들어낸 부분도 있어요. 지금은 희소해진 낭만이라든가 사랑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고 생각하는 마음이 영화에 담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보이지 않는 것들도 영화 안에 함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요. 음, 일단 멜로가 진행되려면 스마트폰이 없어야 해요. (웃음) 제 영화에서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다방에서 전화를 기다리고 편지를 부치죠. 상대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더 오래 기다릴 수도 있고, 좌절할 때는 더 크게 무너지기도 하고요.
영화에서 이학주 배우가 시인으로 등장해요. 주인공들이 각자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털어 놓는 과정에서 함께 시를 읊고 베껴 쓰고, 또 직접 지어보기도 한다는 설정이 재밌어요.
뭔가 떠올랐을 때 누구나 완성된 문장 형태로 메모하지는 않잖아요. 시가 짧다고 하지만 시보다도 짧은 문구와 단어로 그 순간 포착한 감정을 기록해두는 거죠. 영화에 종종 시인이 등장하는 이유를 알 것 같더라고요. 시는 감성적인 글인 동시에 경제적인 언어니까요. 애초 계획은 영화에 시 자체가 등장한다기보다는 시를 쓰는 상황과 정서를 가져올 생각이었는데, 캐릭터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점차 시의 비중이 늘어났어요. 인물들이 어떤 시를 쓰고 읽을지 생각하다 보니 기다림에 관한 시에 눈길이 가더라고요. 둘 다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중이니까요.
기다림은 누군가를 또 무언가를 사랑하면서 겪는 가장 큰 괴로움이기도 하잖아요.
맞아요. 저는 기다리는 거 잘하는데 별로 하고 싶지는 않아요. 배우가 기다리는 직업이라는 것도 알고 왜 그런 말이 생겼는지 이해해요. 그런데도 마냥 기다리고 싶지만은 않은 거죠. 뭐라도 하면서 바라보고 싶어요. 결국 일이든 사람이든 뭔가를 원할 때 항상 그렇잖아요. 내가 간다고 저쪽에서 “그래, 이리 와”하면서 받아주는 게 아니라 마치 숙명처럼 결정이 나는 거죠. 그러고 보면 기다림을 못 견디는 사람은 있어도, 단 한 번도 뭔가를 기다려본 적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겠네요.
어떤 기다림이 가장 막막하고 힘든 것 같아요?
저 자신을 기다려줄 때요. 저는 부정적인 감정이 튀어나오면 ‘빨리 여기서 벗어날 거야!’라고 다짐하면서 변화를 주는 편이에요. 생각을 멈추거나 행동을 달리해왔죠. 요즘만큼 제가 저를 가만히 두고 보는 시기가 따로 없었어요. 아주 괴롭기도 해요. 여태 정신없이 달려오면서 간과하고 놓쳤던 부분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아요. 하루는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처럼 자신감이 차오르다가 다음 날에는 영영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자괴감이 들어요. 쉬면서 이 과정을 충분히 지켜봐야죠. 그게 저 자신을 기다려주는 자세 같아요. 성격상 이 기간을 그리 오래 끌 마음은 없지만 좀 더 노력해보려고요.
잘하고 싶은 만큼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새해가 되면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목표 달성에 매진하는 스타일처럼 보이는데 어때요?
어떻게 아셨어요? (웃음) 올해 시작하며 체크리스트를 없앴어요. 서른을 넘기면서 시간에 관해 다른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열여섯에 어떤 애였는지, 어떻게 스물다섯을 보냈는지 저는 기억하잖아요. 과거를 판단하는 나이에 접어드니까 ‘시간을 체감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겠더라고요. ‘아, 이 정도가 십 년이구나. 그럼 앞으로 십년은 어떻게 보낼까?’ 그런 고민을 새롭게 하게 됐죠. 이제까지는 늘 일 년 단위로만 살았거든요. 새해 목표를 세우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어요. 11월쯤 되면 우울했죠. 체크리스트에 뭐가 지워지지 않았는지 보면서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작년까지도 그렇게 살았는데 올해는 아니에요. 계획도 딱 세 가지뿐이에요. 여행, 염색, 연애. (웃음)
몇 가지는 이미 이룬 듯 보이는데요?
여행은 일찌감치 다녀왔고 염색 대신 파마를 했어요. 연애는 아직 리스트에 남아 있지만 벌써 셋 중에 둘이나 달성했으니 마음은 가벼워요. (웃음) 작년에 쓰다 만 다이어리를 얼마 전에 다시 봤어요. 놀랍게도 스스로 약속했던 걸 다 지켰더라고요. 연말에는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를 만큼 힘에 부쳤는데 말이에요. 나름대로 위안이 됐어요. ‘나는 왜 항상 이렇게 막연하고 조바심이 날까?’ 하면서 제가 속한 환경이나 지난 선택을 자책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목표로 삼은 걸 이뤘다는 사실이 든든하게 느껴져서요. 당분간 느긋하게 지내보려고 해요. 최근에는 친구들과 등산모임을 만들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산에 올라요. 대개 집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하루에 한 번은 산책하러 나가고요. 차도 사람도 많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꽃을 보면 ‘봄이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