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기 같은 남자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이름을 알 수 없는 주인공 나(에모토 타스쿠)는 어느 순간 마음속으로 되뇐다. 이는 그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이다. 제 욕망이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마치 공기처럼 상대를 바라보기. 성실히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건 내키지 않고, 머리 아픈 고민은 그냥 놔두면 어떻게든 될 거라 여기는 그에게 이러한 사랑은 꽤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 ‘나’의 가까이에 두 인물이 있다. 지금은 실업 상태인 룸메이트 시즈오(소메타니 쇼타)와는 굳이 사정을 캐묻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편히 지낸다. 그들은 왜 함께 사느냐는 물음에 일단 재밌어서라고 답할 수 있는 친구 사이다. 같은 서점에서 일하는 사치코(이시바시 시즈카)와는 어느 저녁의 우연한 사건으로 가까워졌다. 질척거리는 관계가 싫다는 사치코의 말을 따라 둘은 담백하고 유쾌하며 딱히 뭐라 규정되지 않는 연애를 시작한다.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세 사람이 함께 보내는 젊은 날의 여름, 그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은 영화다. 햇살이 환하게 쏟아지는 낮과 가랑비가 세상을 적신 고요한 밤, 그 공기를 가르는 밝고 흥겨운 웃음소리, 사람 없는 항만 도로를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니거나 술과 음악에 나른하게 취해 자유로이 춤추는 인물들. 이러한 상태와 시간이 중대한 위협이나 뚜렷한 국면의 전환 대신 이야기를 끌어간다. 물론 인물들 모두 제각기 근심이 있다. 사치코와 시즈오 사이에서 우정 이상의 친밀하고 애틋한 감정이 생겨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들을 하나의 사건으로 묶어내기보다 인물들이 순간적으로 주고받는 시선과 반응에 집중하면서 셋을 지켜본다. 자연히 행동과 대화의 내용보다는 그것을 보고 듣는 이의 얼굴이 화면에 주로 담기는데,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덕분에 사랑과 기쁨, 경이와 당혹, 서운함과 안타까움 같은 정서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세 인물의 관계와 작용을 중심으로 하는 기본적 구도는 원작인 사토 야스시의 동명 소설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변화한 점이 있다면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다. 1970년대의 도쿄가 현대 홋카이도의 하코다테로 바뀌었다. 그러한 결정에는 물론 예산 부족이라는 요소도 작용했지만, 시대와 장소를 옮겨놓아도 변치 않는 보편적인 우정과 청춘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는 것이 감독의 말이다. 사토 야스시의 고향이기도 한 하코다테는 저자가 여러 차례 소설의 배경으로 삼았던 공간이기도 하다. 그의 하코다테 3부작은 <카이탄 시의 풍경>(구마키리 가즈요시, 2010), <그곳에서만 빛난다>(오미보, 2014), <오버 더 펜스>(야마시타 노부히로, 2016)로 전부 영화화됐다. 이 작품들에서는 일관적으로 자조와 우울, 체념과 실패의 감각이 느껴지는데, 아마 그것은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멈춘 작가의 인생사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인물들 또한 일반적인 의미의 성공과는 거리가 있는 청년들이지만, 여기서는 자기 처지에 대한 비관보다 상대를 바라보고 관계를 유지하려는 눈길의 힘이 더 세다.
공기 같은 사랑, 공기 같은 우정은 세 사람에게 썩 어울리는 표현이다. 이들은 딱히 상대에게 애정의 응답을 바라지 않고, 관계를 정의하거나 정리하자는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같이 있다. 언제까지고 함께 웃고 떠들며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처럼. 하지만 언젠가 끝은 오게 마련이다. 시즈오가 제안한 캠핑에 사치코만 동행하면서, 캠핑을 다녀온 이후에는 시즈오의 어머니가 쓰러지면서 그처럼 당연한 사실이 이들에게 자연스레 닥쳐온다. 거추장스러운 일은 모두 잊고 가뿐하게 지속해온 관계는 과연 종결의 예감 앞에서 어떻게 변화할까. 관계를 보존하기 위해 이들에겐 어떤 진실과 용기가 필요할까.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바로 이 질문 앞에서 끝난다. 현재 조건에서 가능한 사랑의 형태를 새롭게 모색하려 한다는 점에서,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2018)나 이시이 유야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와 같은 동시대 일본 영화들과 함께 생각해보아도 좋을 영화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きみの鳥はうたえる (And Your Bird Can Sing) 감독 미야케 쇼 출연 에모토 타스쿠, 이시바시 시즈카, 소메타니 쇼타 수입·배급 디오시네마 제작연도 2018년 상영시간 106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0년 4월 16일